『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2)의 저자 홀러웨이의 새로운 책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자』(Crack Capitalism)를 번역하다가 김예슬 선언 까페에 들렀는데 그 첫화면에 굵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다.

김예슬이 던진 돌멩이로 균열은 시작됐다. 우린 김예슬들이다. 김예슬 선언은 나의 선언. 그녀의 용기는 나의 용기.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균열은 삶의 곳곳에서 가능하며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균열은 존엄의 현시이며 새로운 삶의 창조를 향한 신호탄이요 첫걸음이다. 공통체는 균열들이 여는 자유의 공통체로서만 가능하다. 홀러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존엄은 아니오의 권력의 전개이다. 우리의 거부는 우리를 우리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 필요성, 책임과 대면시킨다. 곤경에 처한 필 씨1를 떠난 여자들과 남자들은 이전의 노역 조건에 의해 억눌렸던 능력들을 발전시킬 기회와 필요에 대면한다. 국정교과서를 거부하는 교사들은 다른 교육을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것은 그 자체가 지배의 논리와 단절하는 것이다.
자본은 책임을 지운다. 우리는 자본이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지우는 책임을 지느라고 너무나 바쁘다. 자본을 위해 나선 지배자로 나선 사람들 중에서 누구를 우리의 새로운 지배자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책임, 자본의 나라를 지킬 군사적 책임, 자본의 이윤을 떠받칠 노동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의 책임, 자본에게 봉사할 아이를 낳고 키울 책임, 자본의 국가를 유지할 세금을 낼 책임, 내일 자본을 위해 일하기 위한 건강을 유지할 책임.....이 한 없이 다양하고 반복되고 강제되며 우리의 시간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책임들을 다하느라 우리는 정작 우리의 존엄한 삶, 가치있는 삶에 대해서는 돌볼 겨를이 없다. 삶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은 지금 아니오 이외의 다른 것으로 나타날 수가 없다. 삶의 창조는 본원적으로 아니오이다. 김예슬은 아니오를 통해 삶에 대한 책임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창조할 가능성은 그 거부의 강렬함에 의존할 것이다.
  1. 필 씨는 맑스가 생산양식의 역사성에 대한 설명을 위해 들고 있는 한 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맑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스완 강으로 5만 파운드에 달하는 생계와 생산의 수단들을 가져갔다. 필 씨는 게다가 남자, 여자, 아이로 구성된 노동계급에 속하는 3천 명의 사람들을 데려가는 선경지명을 가졌다.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필 씨는 자신의 침대를 만들거나 그에게 강에서 물을 길어다 줄 하인 한 명 없이 남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필 씨는 스완 강으로 모든 것을 가져갔지만 영국식 생산양식만은 수출하지 못했던 것이다.” [Back]
2010/03/18 10:51 2010/03/18 10:51
논쟁을 거치면서 네그리의 사유는 '공통체'(commonwealth)로, 홀로웨이의 사유는 균열(crack)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한쪽은 가장 거시적인 것으로, 한쪽은 가장 미시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대립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유의 발전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또 생산적이다. 구성적 경향과 비판적 경향의 이 대립은 맑스 속에 공존했던 두 요소가 두 개의 노선으로 분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맑스-레닌-그람시-네그리 노선과 맑스-평의회공산주의-비판이론(루카치, 벤야민, 아도르노)-홀로웨이(개방적 맑스주의) 선의 분화이다. 분화는 생산적이며 새로운 공통평면의 발명을 절실한 것으로 만든다. 이 문제를 위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2)에 실려 있는 홀로웨이의 네그리 비판에 대해 네그리가 가한 반비판(이것은 네그리와 꼭꼬의 책, 『글로발』, 조정환 옮김, 갈무리, 근간에 포함되어 있다) 의 요소들을 정리해 둔다.

1.홀로웨이는 현실을 물신주의적 측면에서만 고려한다.  그래서 권력의 모든 형상들을 오직 물신적인 것으로만 간주한다. 이 때 행위의 원리는 거부, 부정으로만 축소되고 제헌권력도 부정된다. 오직 거부만이 혁명의 계기인 것으로 파악된다. 거부의 외부에서, 그리고 피압박자의 '비명' 외부에서는 현실은 완전히 물화된다. 변증법이 승리하고, 그것의 궁극적인 부정성이 주장된다. 이것은 데리다의 '주변', 아감벤의 '벌거벗은 삶', 물상화에 대한 루카치의 비판 등과 유사하다.

2. 홀로웨이가 엥겔스적 전통 속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소비에트 맑스주의 속에서, 변증법의 개념이 사실상 장황한 자연법칙으로 변형되었을 때 이루어진 변증법 개념의 타락을 완전히 파악했지만 그는 순수하게 부정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지 않다.  오페라이스모에서 구성적 역능, 제헌권력은 노동의 가치들에뿐만 아니라 자유의 정치적 형상에까지 관계하는 제헌적 긍정성이다.  홀로웨이는 오페라이스모가 노동력에 귀속시키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계급투쟁에 귀속시키는 그 구성적 역능까지 부정한다. 이러한 관점 안에서 착취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3. 실제로 홀로웨이가 사용하는 바의 부정성으로 환원된 맑스주의 변증법은 변증법의 물신주의적 형태이며 그것은 변증법의 모든 요소들을 분쇄한다. 그것은 물신주의, 즉, 파악하기 불가능한 실재의 비극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의 다른 면은 절대적 사건으로서의, 즉 대문자로서의 혁명(la Révolution)일 것이다.

4. 홀로웨이는 오뻬라이스모를 기능주의로 비판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기능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회피하고 그것들을 중성화하는 것이며 변증법을 모순들과 차이들의 지양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해소적 요소들을 찬미하면서 변증법을 선형적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오페라이스모는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반대의 작업방식을 생산했다. 오뻬라이스모에서는 변증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노동력의 적대적 압력은 그 모순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순을 심화시킨다. 모순들의 이러한 심화는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첫 번째 효과는 주체(노동력, 프롤레타리아, 계급, 다중)의 일관성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이 존재론적 변형의 배치, 계속된 변형 운동을 이 주체적 실재에게 새기는 것에 있다. 첫 번째 효과의 결과인 두 번째 효과는 주체들(노동력, 프롤레타리아트, 계급들, 다중들)을 자본의 외부로 더욱더 밀치는 것에 있다.탈주는 바로 이 과정의 결과이다.

5. 홀로웨이 에게 있어서 자본의 무기인 변증법은 노동력에 대해서는 저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해결될 수 없는,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 내부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이 총체성의 수인으로 남아있게 된다.것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면 해결불가능한 문제에 직면한다. 이럴때 혁명은 제헌권력이 아니라 신비한 사건으로 된다. '노동거부' 속에서 '제헌권력'의 요소들이나 배치들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노동 '해방'의 과정 속에서 '자유화의 요소들'을) 식별할 수 없다고 보면, 생산과정에서 매장자(거부자)가 생산되지 않는다고 보면 계급투쟁의 역동적인 관점 모두를 금지하게 된다.

6.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주의의 구체적인 역사이다. 다시 말해 제도적 형상 외부에서 계급투쟁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계급투쟁의 제헌적 과정이 결코 결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형상들이나 그 자체의 반복들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계급관계를 프롤레타리아트적인 활력의 (혹은 다중의) 늘 새로운 공재면을 가로질러서, 다시 말해 계급투쟁의 상이한 극성화들을 가로질러서 발전시키고, 절합하고, 변형시키는 것이다.

7. 이와 연관하여 홀로웨이가 취한 추론의 정치적 퇴행은 혁명과 개혁 사이의 온갖 구조적이고 존재론적인 관계를 그가 발본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하다. 주권이 통일된 권력을 행사할 수 없고 그것이 이중성을 (다시 말해 운동과 '통치'의 관계를) 제도들의 성격이자 동시에 근본적 지평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톨리아티의 그람시가 아닌 레닌주의적 그람시는 이미 이 점을 통찰했었다. 

8. 홀로웨이의 입장은 코뮤니즘적 대안의 기본적인 유효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반란의 직접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런데 그 '형식 문제'라고 부르는 것, 다시 말해 물신주의의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게서는 비판적인 정치적인 방법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윤리-도덕적 범주로 환원된다. 물신주의가, 달리 말해 존재론적 부패와 그것의 실천적 결과가 계급 주체의 활력 그 자체를 건드리거나 변경시킨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부패가 존재하면 할수록, 그 부패가 대규모적이고 물리적으로 결정되면 그럴수록 혁명적 과정은 구체적인 개혁들에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공상적 꿈들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9. 오뻬라이스모(노동자주의)가 존엄한 이유는 혁명 개념을 개혁 개념에 결코 해소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오페라이스모가 유효한 이유는 개혁의 개념을 혁명의 개념 속에 늘 해소시켰기 때문이다. 오페라이스모가 유효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개혁과 혁명의 이 관계 내부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계 외부로의 탈주 속에서 형성된 프롤레타리아트적 주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 착취를, 계급의 실존 그 자체를 동시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함께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10. 우리는 홀로웨이의 정치학을, 삶권력과 삶정치적 활력 사이의 관계를 발전과 민족의 범주 아래에 밀어 넣으려는 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제도 좌파의 시도에 대한 최고의 반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선은 변증법적 부정성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부정성은 단지 "절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행복, 평화, 그리고 코뮤니즘을 계속적으로 긍정하려는 다중의 욕망이자 필요이기도 하다.

나는 두 입장의 발전과정과 관련하여 크게는 네그리의 입장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것이 홀로웨이의 입장과 대립한다고는 결코 보지 않는다. 실제로는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에서 홀로웨이가 강조한 절규, 그리고 그의 새로운 책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자』에서 강조하는 크랙(crack)의 방법을, 다시 말해 비판과 부정의 방법을 강력하게 결합할 때 구성의 방법은 약화되기는커녕 훨씬 더 강력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체』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개혁, 사랑, 행복, 공통성의 혁명적 가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많이 나아간다. 이것은 비관주의와 냉소주의가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절규와 균열내기와 비판의 어조를 깊이 함축하지 못하게 되면, 다시 말해 비판과 부정의 계기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할 때, 개혁주의에 동화될 위험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네그리는 제도주의를 한편에 놓고 그 다른 극단에 홀로웨이를 놓음으로써 이중전선에서의 싸움을 수행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정치주의와 탈정치주의의 양극과의 싸움에서 네그리와 홀로웨이, 구성의 입장과 비판의 입장은 상보적 협력자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홀로웨이의 새책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자』는 창조와 건설의 계기를 부정의 계기와 더불어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협력을 향해 한 발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03/17 09:07 2010/03/17 09:07
오늘날의 financial rent를 '금융렌트'라고 번역하기보다 '금융지대'라고 번역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땅 '地' 자의 구성으로 설명하곤 했다. 오늘날의 땅은 흙으로 구성된 것만이 아니라 언어로 구성되었다고 하면서.  땅의 언어학적 전환과 그것의 물리적 대지와의 연속성을 설명할 방법이 쉽지 않았다. 오늘 배달된 『수유 위클리』 7호에  실린 고병권  편집자의 글의 일절이 그래서 인상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번호 제게 큰 감동과 가르침을 준 <전선인터뷰>의 주인공 성태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언젠가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세우고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때 그때 아이들에게는 자기 낱말들이 필요해요.” 성선생님이 생각을 전하는 수단으로 ‘낱말들’을 말씀하신 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낱말’은 생각이 자라나는 ‘토양’이랄까 ‘바탕’ 같은 것이죠. 땅에 마디마디 심는 고구마순처럼, 우리 몸과 맘속에 던져진 낱말들에서 생각들이 자라나는 것 같아요. 살다가 어떤 일을 겪을 때 있죠, 그때의 외부 충격이 우리 내면의 낱말들로 하여금 생각의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덩굴을 이루게 하는 거겠죠.1


낱말들이 생각의 토양으로 간주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의 씨앗으로 간주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어는 생각의 토양이고 낱말은 생각의 씨앗이다'라고 말한다면 혼란은 다소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토지와 언어, 종자와 낱말을 연결짓는 이러한 생각은 금융의 이자나 수수료를 지대와 연결시키는 것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오늘날 금융지대는 낱말과 언어에 대한 사적 소유의 독점(지적재산권을 생각해 보자)를 통해 언어적 공통체를 착취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의 독점을 통해 토지 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활동을 착취했던 토지지대와 같은데,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지대 자체의 변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 http://suyunomo.net/?p=1438 [Back]
2010/03/13 10:27 2010/03/13 10:27
※이 글은, 오는 3월 19일 오후 3시 광주 NGO 센터에서 있을 5.18 30주년행사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할 집필중인 글의 서문(초고)이며 각주는 제외했다. 이 글은 조정환, 「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 한울, 2009, 273~307쪽의 후속편에 해당되기도 한다.- 아멜라노


5월 담론의 제헌적 재구성을 위하여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적 협력을 넘는 다중의 글로벌 코뮤니즘-

조정환

1. 머리말

30년 전 5월 25일부터 27일 사이에 시민학생투쟁위원회의 제헌권력은 전두환 호헌파의 학살적 계엄통치에 무장으로 맞섰을 뿐만 아니라 계엄군의 ‘과잉진압’ 중단과 시민군의 무기반납을 교환하려 했던 수습위원회의 개헌정치도 거부했다. 시민학생투쟁위원회는 외무부와 내무부, 그리고 시민군을 갖춘 엄연한 자치권력으로서, 비록 미분화된 형태로지만 입법과 사법의 기능까지 통일적으로 수행했다. 개헌파가 대오에서 이탈한 가운데,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학생투쟁위원회는 계엄군의 투항요구를 거부하면서 죽음으로 항쟁의 제헌적 생명력을 살려냈다. 고전적 비극은 단지 비참한 죽음을 보여주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통해, 그리고 죽음을 넘어 지속되는 삶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광주민중항쟁이야말로 역사 속에 등장한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피의 결사항전 사흘 후인 5월 30일, 정부의 만행에 항의하여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린 뒤 서강대학교 기독교 회관 옥상에서 투신한 김의기의 죽음, 「광주시민의 넋을 위로하며」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그해 6월 9일 이대 앞 네거리에서 “유신잔당 물러가라!”, “노동삼권 보장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를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른 노동자 김종태의 죽음, 그리고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하여 총상을 당한 바 있으며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85년 8월 15일 전남 도청앞 금남로 1가에서 진상규명을 미루는 정권에 항의하여 전단「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를 뿌리면서 분신한 홍기일의 죽음 등은 제헌권력이 어떻게 그 비극적 생을 이어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1980년 5월에 뚜렷이 현시되었던 제헌적 힘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가?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물음 앞에서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5월 항쟁이 1987년 6~9월의 항쟁으로 부활했으면서도 광주보상법(1990)과 5.18특별법(1995)을 거치면서, 그리고 호헌파로부터 이른바 ‘광주내란주모자’로 지목되었던 김대중의 집권기를 경유하면서 그것이 개헌파의 권력제도 속으로 포섭되어간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 노태우가 처벌되었고 항쟁 참가자들은 보상을 받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었으며 5.18은 기념일로 제정되었지만 이것이 항쟁의 희극적 반복이자 조작된 결산에 불과했다는 비판적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폭넓은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우리가 이 과정을 문제로 느낀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잠재력이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필요한 것은 5.18을 국가발전의 에너지가 아니라 다중의 삶정치적 해방과 제헌적 자유자치의 동력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제헌권력이 개헌파의 이 포섭을 뚫고나와 역사적 구성역능으로서 그것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30여년의 역사에서 개헌파가 어떻게 집권할 수 있었는지, 무엇이 그것의 제정된 권력을 지금까지 재생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것은 지난 30년 동안 경쟁적 협력관계를 맺어온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두 개의 바퀴로 확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제헌권력이 그 활력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실제적 힘들의 결집이 필요한지, 어떠한 비전(이념적 전망)을 갖추어야 하는지, 어떤 정치적 배치가 필요한지를 살펴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다중의 글로벌 코뮤니즘이 광주항쟁에서의 제헌권력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향이자 진로임을 밝힐 것이다.


2010/03/12 07:06 2010/03/12 07:06

local과 global의 어원조사

Posted at 2010/03/08 12:31// Posted in 쓰기(skribi)/언어_L
local (adj.) Look up local at Dictionary.com
late 14c., "pertaining to position," from O.Fr. local, from L.L. localis "pertaining to a place," from L. locus "place" (see locus). The meaning "limited to a particular place" is from 1610s. The noun meaning "a local train" is from 1879; "local branch of a trade union" is from 1888; "neighborhood pub" is from 1934. Related: Locally. Local color is from 1721, originally a term in painting; meaning "anything picturesque" is from c.1900.

globe Look up globe at Dictionary.com
1550s, "sphere," from L. globus "round mass, sphere," related to gleba "clod, soil, land." Sense of "planet earth," or a three-dimensional map of it first attested 1550s.

이 어원에 따른다면 로컬은 장소성을 글로벌은 공간성을, 로컬은 수직성을 글로벌은 수평성을, 로컬은 특수성을 글로벌은 보편성을, 로컬은 일차원성을 글로벌은 삼차원성을 지시한다. 특정성 대 보편성, 지역성 대 범역성, 지역적 대 지구적.

2010/03/08 12:31 2010/03/08 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