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뛰세르가 수학/물리학/역사과학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을 강조했다면, 그에 기초하여 그리스 고전철학/데카르트에서 비롯된 근대철학/맑스와 레닌에게서 야생적으로 등장하고 알뛰세르 자신에게서 성숙되는 맑스주의철학(철학의 새로운 실천) 사이의 단절을 강조했다면 네그리는 존재론적 단절을 강조한다. 네그리는 주체성의 집단적 몸의 존재론적 단절과 이행을 자신의 주요한 이론적 탐구과제로 삼는다. 반인반수(켄타우르스)/인간/사이보그 사이의 단절(이에 대해서는 네그리,『혁명의 시간』, 갈무리, 2005 참조), 전문노동자/대중노동자/사회적노동자 사이의 단절(이에 대해서는 네그리,『혁명의 만회』, 갈무리, 2005) 민중/다중 사이의 단절(이에 대해서는 네그리와 하트,『다중』, 세종서적, 2008) 제국주의/제국 사이의 단절(이에 대해서는 네그리와 하트,『제국』, 이학사, 2001) 상업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인지자본주의 사이의 단절(이에 대해서는 Multutudes 지에 실린 네그리의 글들 참조) 등에 대한 네그리의 탐구는 모두 존재론적 단절과 이행을 주체성의 생산과 재생산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알뛰세르가 맑스의 시간 개념을 이데올로기 공간과 학교를 중심으로 풀어낸다면, 네그리는 그것을 생산공간으로서의 공장 및 사회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2. 19세기 말의 레닌이 강조한 자연발생성 개념은 네그리에게서 계급 주체성, 자율성의 개념으로 전유된다. 그것은 존재론적 활력이며 새로운 세계의 잠재력이자 새로운 삶을 여는 근원적 힘이다. 자연발생성은 부단히 한계지워지지만 바로 경험을 통한 그 자신의 재구성에 의해 그 한계를 넘어서려하고 또 그렇게 하는 능력이다. 특정한 시간 속에서 자연발생성은 항상 한계지워지지만 그것에 결정적으로 영구히 주어진 한계는 없다. 그것은 무한할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힘, 생명력이다. 자연발생성은 존재력, 생명령, 창조력에 붙여진 잘못된 이름이다. 존재의 활력 외부에 아무 것도 없다. '의식성'조차도 존재의 활력의 표현인 한에서 '자연발생성'의 일부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 생명력, 창조력, 발명력으로 이해된 존재 개념 속에서 의식성과 자생성의 대립은 무의미해진다.
3. 20세기 초의 레닌이 강조한 의식성 개념은 네그리에게서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대한 독해를 경유하면서, 대중지성, 다중지성, 떼지성의 개념으로 전유된다.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활동은 집단적 몸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전위당은 레닌 당대의 전문적 노동자가 노동 내부의 다양성을 단일한 집단적 몸으로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조직화의 형태였다. 네그리는 그것을 레닌의 계급합성론으로 이해한다.(계급합성 개념에 대해서는 조정환, 『아우또노미아』, 갈무리, 2003 참조) 선진노동자의 정치적 계급의식화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것은 당대에 전문 노동자가 노동계급 대중에 대해 헤게모니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계급구성적 진단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네그리는 1968년~1973년 사이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집단적 몸은 대중적 전위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본 바 있다. 케인즈주의는 전문노동자의 권력을 해체시켰고 노동계급은 대중노동자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적합한 정치적 조직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힘>은 그러한 대중적 전위로서 구상되었다. 대중적 전위는 전위이지만 대중밖에 있는 전위가 아니라 계급의 특정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 주도적으로 드러내는 지도적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학생, 여성 등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을 경험하면서 대중적 전위 개념은 폐기되고 노동계급 자율의 개념으로 이행한다. 이후 집단적 몸의 정치적의 의식적인 조직화의 역할은 대중지성이 떠맡는다. 레닌에게서 전국적 정치신문의 기능은 다중의 집단적 지성, 떼지성이 담당한다.
4. 1905년 혁명에서 1917년 사이 레닌의 중요한 두 가지 이론적 진전은 제국주의 비판과 국가 비판으로 나타난다. 『제국주의론』은 전자를, 『국가와 혁명』은 후자를 표현한다. 제국주의론의 주요한 주요한 문제의식은 자본주의의 독점단계에 대한 인식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민족국가가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되는 시대에 대한 인식이다. 독점 단계에서 민족국가 주권은 전 세계를 흡수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며 민족국가의 분할이라는 조건은 제국주의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네그리는 레닌의 핵심적 통찰이 제국주의가 독점자본주의라거나 독점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입증한 데 있었다기보다 바로 그 제국주의 전쟁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며, 제국주의 전쟁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야라는 것을 입증한 데 있다고 본다. 프롤레타리아트를 국경에 따라 분할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적 수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단결과 민족국가 주권을 폐절하는 세계혁명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전쟁을 전 지구적 내전으로 만드는 것이 레닌의 과제였다. 레닌의 내전은 러시아에 봉쇄되었지만 결국 20세기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키는 장기 세기로 기능했다. 동구의 사회주의, 서구의 케인주의, 제3세계의 발전주의국가는 내전을 봉합하고 관리하는 국가형태들로 등장했고 그것의 한계는 68혁명으로 폭발했다.(20세기 사회운동사에 대해서는 조정환,『21세기 스파르타쿠스』, 갈무리, 2002 참조) 68혁명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삶권력은 내전을 봉합하여 관리하기보다 위로부터 내전을 공공연하게 전개하는 권력이다. 제국주의는 제국으로 이행했고 내전은 과제가 아니라 현실로, 예외가 아니라 일상으로 되었다는 것이 네그리의 인식이다. 레닌은 민족국가가 자본의 계급지배의 형식이며 오늘날 그것은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되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국가기관을 장악해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선차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기존 국가기관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기관과는 별개인 국가권력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장악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네그리는 국가권력 장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행사가 필요하다고 보면서 행사되는 것으로서의 권력, 제헌권력은 일국 수준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고 또 일자의 지배인 주권의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주권으로부터의 분리와 탈주 및 그 탈주하는 힘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라고 본다.
5. 그러므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1917 혁명 당시 레닌의 권력 대안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제헌권력에 대한 직관을 포함하고 있지만, 오늘날 문자 그대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연합체였고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연합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 자체가 내적으로 특이한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중이 아니라 다중으로 재구성되었다. 특이한 다중들을 잠재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일사분란한 조직적 틀이 아니라 그 특이한 힘들의 삶정치적 공통화이다. 다중의 생산은 공통재의 부단한 생산이다. 생산이 소통, 지식, 정보, 정동의 생산인 한에서 그것은 공통재의 생산이다. 생산 수준에서 전개되는 이 공통화를 삶정치적인 집단적 몸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다중의 혁명의 과제이다. 오늘날 소비에트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다중지성을 통해서이다.(네그리와 가따리, 『자유의 새로운 공간』, 갈무리, 2005에 실린 '대중의 지성으로 소비에트를!' 참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등 모든 상대적 민주주의들을 넘는 절대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