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시술의 자율화를 위한 법안이 발의되어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구당 김남수는 60여년 이상 뜸치료를 계속해 왔고 뜸 시술의 자율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의료계는 시술과 치료의 자율화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명분으로는 부작용, 치료상의 위험, 구당 치료법의 오류 등을 들고 있지만 그것의 밑바닥에 제도의학과 병원체제를 수호하려는 권력적 욕망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렴치한 것이다. 제도의료계는 뜸이 화상과 농양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만 주의하면 피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는 뜸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도 없다. 현 의료계는 이러한 '부작용'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실제적 부작용을 수반하는 치료시술도 필요할 때에는 (심지어는 필요를 넘어) 행하고 있지 않는가? 또 구당이 체질이나 신체 상태와는 무관하게 고정된 자리에 뜸 자리를 지정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뜸 기술상의 논란이지 뜸을 자율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아니다.
근대 의학은 민중들의 자율적 치유의 잠재력, 기술, 지혜 등을 체계적으로 제도 의료권의 것으로 박탈해 갔다.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민중 착취의 한 단면이다. 그 결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료권력에 예속되는 것이었다. 구당의 뜸은 신체의 자생력, 지성과 기술의 수탈과 집중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에게 온갖 탄압이 가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뜸시술의 자율화 법의 제정이 신체, 기술, 지성에 대한 다중들의 자기관리권을 신장시킬 좋은 계기라고 보기 때문에 이 법안을 지지한다.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전개되어 왔다. 담론상의 논쟁은 중요하다. 이 전쟁에서도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사상, 욕망, 운동을 물질화하는 것이다. 이 물질화는 법과 제도의 실질적 개혁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실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담론은 구체적 물질화로 연결될 때에만 소모성을 면할 수 있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