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트를 비계급으로서 정의하려는 노력(예컨대 니롤라스 쏘번, 고병권)은 나름 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사회적 실체로서 프롤레타리아를 정의함으로써 혁명을 봉합해온 스탈린주의 전통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와 대칭적인 계급은 결코 아니다. 비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엇보다 비판, 해체, 탈주로서 규정된다. 하나를 둘로 만드는 것, 그것은 둘을 하나로 만들려는 부르주아 관점에 대한 비판을 제공하는 것으로 마오에 의해 유효하게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오늘날 무엇보다도 공통적인 것의 생산자이다. 비판, 해체, 탈주는 공통적인 것 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공통적인 것에 대한 정의 없이 비판, 해체, 탈주만을 강조하게 되면 공통적인 것을 침식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본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는 것조차 자본과 동일시하면서 그것의 해체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중은 특이한 주체성이지만 공통적인 것을 생산하는 주체성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다중의 저항과 탈주는 공통적인 것의 생산과정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2009/08/19 22:19 2009/08/1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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