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에 대한 잠정적 단상들

Posted at 2009/08/27 01:06// Posted in 쓰기(skribi)/시학_P
연구를 위한 메모로서 안정되지 않은 단편들이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생각들은 계속 바뀔 수 있다. -아멜라노


백남준은 괴짜이고 특이한 작가이다.
그는 어떤 정체성에도 고정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에게서는 동양과 서양, 인간과 기계, 음악과 소음, 예술과 폭력 사이의 모든 경계가 지워진다.
그는 기존의 가치와 경계를 넘어서는 코스모폴리탄이고 노마드다.
그는 과학기술을 통해 과학기술의 오용과 위험을 경고하고자 했다.
그는 과학기술을 새로운 지각과 감각의 형성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전자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전적 방식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조소를 표현하고자 한다"(24)
그는 예술을 소통의 미디어로 삼고자 했다.
그는 포스트모던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인간화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에게는 이 질문이 보편적 추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안근대성을 창출하려는 욕망이 경계를 넘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이끌린다.
실존하는 대안근대성과의 접목이 굳건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특이성이 충분히 시간적이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다.
그의 경계들은 공간적이며 공간적 경계를 넘는데서 그는 탁월하다.
그러나 시간적 특이성은 분명하게 실현되지 않는다.
시간적 특이성은 교차하면서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그는 공통적인 것을 창출하기보다 경계를 허물면서 잡다한 것을 뒤섞는다.
혼종과 공통의 차이가 설명되어야 한다.
공통이 비빔밥일까?
그의 혼종을 봉기적 교차와 동일시할 수 있는가?
가난의 공통과 소유의 혼종이 동일시될 수 있는가?
인터넷 이전의 전자예술의 개척자

포스트모던 예술은 삶이라는 거대한 예술작품을 의태한다.
삶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며 모든 사조를 뒤섞으면서 그것을 넘어 공통적인 것을 창출할 예술적 현장이다.
백남준은 모든 예술장르의 하나로의 통합을 전망하고 있다(26) 하지만 혁명적 삶이야 말로 모든 예술장르를 넘어 모든 장르의 지식, 행동 등을 통합한 종합예술이자 전위예술임을 그는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백남준의 예술은 아직 예술 자체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

백남준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올터모더니즘 사이에서 동요한다.
그래서 그를 한류의 첨병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들끓게 된다.
그가 다중의 특이성의 한 모델을 제공한 것은 어느 정도 맞지만 공통되기의 모델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추상적 세계시민과 혁명적 다중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는 민중과 다중에 대해 어떻게 사고했을까?

달이 태양을 따르듯, 하나는 다른 것을 따른다.
자본은 노동을 뒤따른다는 표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2009/08/27 01:06 2009/08/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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