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많은 공장, 사무실, 쇼핑센터, 아파트 등이 생산과정을 무인화하고 유통과정을 무인화하는 것은 기계 비용의 저렴화로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더 수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이전의 기계상황에서 구축된 고용관계를 해체하고 피고용자를 해고할 필요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래서 이전의 기계상황을 법적으로 반영한 노동법을 뜯어고치려는 시도가 시시때때로 전개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고는 살인이다'이므로 해고는 안 된다는 논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수익성을 사회운영의 근본원리로 내버려 둔 상태에서 수익성을 제1의 원칙으로 추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추구하되 최소한의 인간주의적 고려를 하자는 식(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으로 대들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 무엇인가는 본질적인 물음이 아니고 역사적인 물음이다.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인 것이라기보다 수익성 원리에 따라 사는 기계를 인간으로 보자는 (강제된) 사회적 약속이며 혹은 그것을 실행하는 사회적 관계형식이다. 자본주의는 나름대로의 인간성 관념을 갖고 있다. 해고는 안 된다는 인간주의적 요구는 다른 인간관을 제시하는 것인데 아무리 보아도 불철저하다. 수익성 인간 개념을 내버려 둔 상태에서 목숨 보존과 같은 최소요구를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동정의 연대 원리가 제기되곤 한다. 어찌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는가 라는 것. 하지만 동정은 가장 취약하고 보수적인 연대원리이다. 동정은 공통되기의 한 방법이지만 부패한 방법이다. 그것은 수익성 원리를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을 보존한다. 동정은 양다리를 걸치는 연대원리이다.
문제는 어떻게 수익성 원리를 해체하고 그것을 공통되기의 원리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완전히 다른 인간 개념으로의 도약을 이루는 것이다. 기계 가격은 점점 싸진다. 그것은 기계적 사고가 사람들의 사유의 공통분모로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고 자발적 기계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며 다중의 저 자발적 기계화의 능력을 무상으로 (즉 외부성으로) 전유하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즉 노동의 필요를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자본가의 나쁜 의도도 아니고 기계 그 자체의 발전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사람들의 삶의 공통화를 욕망하고 있고 또 그것을 공동으로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자동기계automaton로 된다. 그런데 삶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는 않고 있다. 그것은, 낡은 고용/임금, 노동/소득 원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하는 인간이 불필요해졌으므로 이들을 해고하면 된다. 해고된 혹은 해고의 위험에 직면한 다중의 입장에서는 자본관계가 불필요해졌으므로 그것을 해고/청산하면 된다. 이 두 역사적 방향이 지금 대립하고 있다. 자본관계가 불필요해졌다는 것은 자본이 노동자를 해고해야 될 필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웅변하는 것이다. 자본관계는 임금노동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임금노동에 대한 필요가 사라지고 있다면 자본관계 자체도 사실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해고는 지난날 자본순환의 한 계기에서 발생했던 일시적 해고, 산업예비군의 발생이 아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고용된 노동필요성의 보편적 사멸과정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를 해고하지 말라가 아니라 자본관계를 폐지하라, 사적 소유를 폐지하라, 소유관계를 지키는 강권적 주권을 해체하라, 모든 사람의 소득을 보장하라가 다중에게 유효한 방향이다. 이 요구는 다중들 스스로 외에 어느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요구이다. 다시 말해 다중들 자신이 기존의 자본/국가 공동체(공화국)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형태를 창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요구이다.
공장과 사무실과 아파트와 교통수단의 무인화 자체와 싸울 것이 아니라 무인화를 배제의 현장이 아닌 정치적 공통되기와 혁명적 군주되기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발생기에 러다이트들이 기계 그 자체와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기계사용과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많은 피와 시간이 요구되었다. 기계도입을 통한 무인화(또는 정리해고) 그 자체와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인화의 자본주의적 배치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도 아마도 그에 못지 않은 피와 시간이 요구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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