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과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도 부의 성장은 빈곤과 비참을 축적한다. 아니 성장의 제도들 자체가 비참을 생산하는 제도 자체이다. 경제성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경험되며 대다수의 다중들(multitudes)에게 분배되는 것은 성장의 과실이 아니라 비참의 일상이다. 이것이 근대 공화국 체제의 내적 갈등인데,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이 모순과 갈등을 더욱 더 격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에 대한 요구와 혁명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확장된다. 이 발표에서 나는 우리 시대에 혁명은 가능한가, 그것의 성격과 동력은 무엇이며 그 경로는 무엇일 것인가를 살피면서 우리의 전통적 혁명 관념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논한 후 예술의 위상과 기능 변화에 대해, 그리고 예술과 혁명의 관계의 변화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혁명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생각은, 한편에 부 그 맞은 편에 빈곤과 비참이 축적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은 그것의 재생산을 점점 어렵게 하면서 결국 자본주의의 자동붕괴를 가져오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 관념이 경험에 의해 입증되지 않자 이것을 보완한 것은 권력과 부의 국가화를 촉진하고 이것을 가난한 사람들이 장악함으로써 빈곤과 비참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혁명을 부, 권력 등 물리적 힘들의 소유권 변화를 축으로 하는 객관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지난 세기들의 경험은 이 객관적 과정으로서의 혁명 관념에 입각한 실행들이 자본주의의 모순과 갈등을 끝내지 못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런데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사유화-국유화-재사유화,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신자유주의, 사적자본-국가자본-금융자본으로의 역사적 운동의 저변에서 생산적 주체성의 확장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전문노동-대중노동-사회노동, 손노동-산업노동-인지노동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오늘날 인지화된 사회적 노동은 그 자체가 물질적 상품보다 비물질적 상품을, 재화보다 삶 자체를 생산하는 노동으로서 전통적 산업노동을 자신의 마디로, 또 계기로 편입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노동은 곧 삶정치적인(biopolitical) 것으로 나타나며 이 삶정치적 노동은 세계를 직접적으로 변형시키는 활동으로 나타난다. 사실상 혁명은, 전통적 혁명 관념에서는 혁명으로 파악되지 않았던 지층과 수맥을 따라 부단히 전개되면서 그 표면에서 자본의 변형들을 강제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 우리의 혁명관념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혁명은 대상적인 것의 파괴나 지배에 그 본령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생산하는 다중의 능력, 활력을 확장시키는 것에 있으며 나아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공통화하는 것에 있다. 혁명사도 이 관점에서 재서술되어야 한다. 얼핏보면 객관주의 패러다임에서 주체주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로 보이는 혁명 개념의 이 전환은 실제로는 주객을 넘어서는 존재론적(ontological)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혁명 개념의 변화를 요구하는 그간의 역사적 변화는 예술 및 예술에 대한 사유에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가? 모더니즘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예술 형태는 삶으로부터 분리된 자율성을 보유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술 형태를 끝내고 그것을 삶 속에 해체시켜야 하는가? 혁명 예술이 필요한가, 예술 혁명이 필요한가? 모더니즘인가 리얼리즘인가? 우리는 이 모든 문제들을 다시 사유해야 하고 그것들을 단호하게 ‘노동의 삶정치적 노동으로의 이행’이라는 평면 위로 가져가야 한다. 요컨대 예술과 노동의 관계의 재구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예술 문제를 사고해야 한다. 예술의 문제를 의식하면서 우리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중은 생산과 창조의 현장 어디에나 있다. UCC(User Created Contents)를 세포단위로 웹2.0의 생산자, 창조자들은 다중의 실재성을 증언한다. 웹2.0에서 사용자들은 매순간 그물망 세계를 뒤흔드는 폭발적인 발명가, 예술가, 창작가로 나타난다. 웹2.0은 출현하는 다중의 삶의 양식을 일컫는 이름이며 웹2.0의 시대란 출현하는 다중의 시대를 일컫는 자본의 은어(隱語)이다. 이러한 시대에 예술은 다중 자신의 창조자화의 경향과 뒤섞이면서 탈영토화율이 강하게 드러나는 예술로, 직접적으로 정치성을 띤 예술로, 집합적 성격의 예술로 나타난다. 이 세 가지 특징은 특이한 것들의 삶정치적 공통화라는 우리 시대 혁명의 특징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혁명적 예술은 바로 공통적인 것에 기초하여 공통적인 것을 증식시키는 활동 자체를 지칭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개념으로 오늘날의 예술 상황을 바라보면 삶과 예술의 분리가 사라지고 삶 그 자체가 예술로, 예술적 행위로 되고 있는 과정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것은 삶과 분리된 예술 형태의 자율성에 대한 모더니즘의 주장과 예술의 종말에 대한 반복적 단언들 사이의 대립을 일순간에 종식시킨다. 삶과 예술의 중첩은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허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예술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의 자율화를 거대하게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상황이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는 개인들, 다중들로 하여금 예술가이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순간 창조적이도록, 매순간 집합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도록, 주어진 것에서 벗어나 살고 행동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다중의 삶은 오늘날 예술가가 요구받고 있는 예술적 요청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을 공통적이고 자유로운 삶이 생산되는 텃밭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 이것이 삶정치로서의 삶예술의 길이다. 이 길에서는 예술이 혁명인 만큼 혁명도 예술이 된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