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물질화를 설명할 때 산업노동에서 예술활동으로의 변화를 예로 들곤 한다. 예술은 산업에 비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지적이고 정서적이고 소통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술에 있어서도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의 변화는 뚜렷이 확인되는 것 같다. 미술에서 특히 그러하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서 전시장으로 혹은 소비자에게로 향할 하나의 독립된 생산물을 만들어 내던 미술이 언제부터인가 보는 사람과의 직접적 소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 해프닝이 그것이다. 백남준은 작품을 우주적 전지구적 소통과정으로 변형시켰을 뿐만 아니라 물감을 주사선같은 유연한 소재로 바꾸었다. 스크린(의 복수적 결합)이 캔버스를 대체했을 때도 그와 유사한 효과가 난다. 미술의 퍼포먼스화(수행화, becoming performance)는 생산의 관점에서보면 생산의 내재화(becoming immanent)이다. 생산 외부에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생산이다. 생산도 생산이요 소비도 생산이다. 똥 누는 것도 생산으로, 젖 먹는 것도 생산으로 이해되는 [앙띠오이디푸스]의 절대적으로 내재적인 생산 개념이 직접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나타난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외화하는 생산에서 내화하는 생산으로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방가르드의 개념에 머무는 한에서 기존의 외화하는 예술제도를 보존했다. 퍼포먼스, 즉 삶정치적 수행은 삶 속으로 고스란히 녹아들지 못하고 작품(work, 영어로 쓰고보니 '노동'과 같은 철자이다)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고 실체화되었다. 내(재)화는 상대적 수준에 머물렀다. 백남준의 작품활동도 삶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삶 밖으로 외화된다. 예술을 외화하는 예술제도, 예술시장의 회로를 따라 흘러간다. 예술가가 만들어지고 그 향유자층이 구축된다. 비평가들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해서 예술을 열려고 했던 백남준의 실천은 낡은 울타리 속에 갇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백남준(존 케이지, 보이스, 아니 다다 예술가들)은 넘어서야 할, 그러나 반드시 '딛고' 넘어서야 할 존재이다. 흠모와 모델화, 영웅화는 위험하다. 그것은 예술가라는 낡은 제도형태를 재생산하는 방식이며 보수적 운동이다. 백남준은 예술 속으로 삶을 통합하려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예술이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중은 그것을 넘어 삶에 예술을 통합하고 삶을 그 자체로 예술로 만들려는 실천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은 다중이 누구나 예술가로서 사는 일이며 그것을 가능케할 조건을 창출하는 일이다. 삶의 현장현장을 정치의 시공간으로, 행동의 시공간으로, 사유의 시공간으로, 공감형성의 시공간으로, 충격과 변이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예술이념의 진정한 실현이라면 예술종말이라는 오래된 생각이 구현되는 방식은 예술의 죽음이 아니라 삶-예술, 예술-삶의 일반화, 즉 예술의 보편화를 통해서라는 것이 우리 시대에 분명해지고 있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