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Posted at 2009/09/08 12:15// Posted in 쓰기(skribi)/정치_P

정운찬 총리 내정에 대한 기존의 분석틀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정운찬 개인의 정치적 입지 구축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 정운찬은 영남기반의 박근혜를 상대화하면서 차기 대권주자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 그는 심대평의 총리기용이 무산된 상황에서 그 공백을 이용하여 충청권의 지역입지를 굳힌다. 이것을 위한 주요 카드가 세종행정도시 문제의 해결이다. 또 그의 계산에는 경제지표들이 호전되기 시작한 시점에 결합함으로서 경제전문가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고 큰 틀에서 이명박에 동조하면서도 몇 가지 정책에서만 다른 목소리를 내도 차기 대권에서 독자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둘째는 이명박의 권력포석에서 정운찬 내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 정운찬은 우선 당을 경합체제화하여 박근혜 독주를 견제함으로써 이명박 자신의 권력안정화를 추구하는 당내 포석으로 읽힌다. 또 정운찬은 촛불과 용산, 그리고 쌍용자동차 등의 투쟁에 의해 자신의 친기업적 친부자적 성격이 명백하게 드러남으로써 취약해진 권력기반을 보충, 보강할 원군으로 배치된다. 친서민과 중도실용 구호를 단순한 구호나 이미지를 넘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것이다.(1) 이것은 실제로 상승하는 지지도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이것은 서민의 대표자로 자신을 내세우면서 민주대연합 행보를 준비하고 있는 민주야권의 발걸음을 흩어놓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민주대연합 유지에 사회통합이라는 맞불을 통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 정운찬 카드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어떤가? 민주당과 선진당은 이러한 포석이 자신들에게 가져올 부정적 효과를 저지하거나 축소하기 위해 정운찬의 세종시 관련발언을 문제삼거나 그의 배신(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의 배갈아타기)을 문제삼는다. 그의 발언의 변화를 문제삼기도 한다. 대응은 정략적 수준을 넘지 않는다.

정운찬의 총리내정을 거시적인 국제정치경제역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미국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이어 일본에서 민주당의 하토야마 내각이 들어선 것이다. 이것은 라틴아메리카의 탈신자유주의적 선회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거쳐 분명해진 신자유주의의 위기-종말 현상의 일부이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시류와 달리 구래의 신자유주의를 밀고 나왔다. 이것에 대한 저항은 집권 이후 1년 반 이상 동안 사회각계각층에서 다각도로 터져나왔다. 이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 반사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정운찬 카드는 이 흐름을 차단하고 한나라당을 기반으로 신자유주의의 위기-종말 국면을 돌파하려는 방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가 자칭 케인지언임을 자처해 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2)

중도실용은 탄력적인 논리이다. 중도는 극단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중도실용에서 실패했다. 그는 친기업적이고 친시장적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운찬은 국가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시장친화적 한나라당을 국가쪽으로 구부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이라는 것을 좀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중도실용은 근대의 지배논리들을 적절하게 섞어쓰려는 유연논리이고 여기에서 시장과 국가, 기업과 서민은 대립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장인가 국가인가가 아니라 지배하는 것, 권력을 재생산하는 것, 그래서 생산의 공통체를 사적 소유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이명박과 정운찬 연합은 분명 지난 1년 반 이상 동안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적 친자본 정책에 대한 저항의 효과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생산공통체를 구성하는 다중 연합체를 포획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정치적 장치로서 고안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제적인 정치적 주체인 다중 대신에 가짜 정치적 주체들을 불러모으는 전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각주]
(1)청와대는 정 전 총장이 '중도-리버럴'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드라이브를 강조하는 효과도 고려했다. 청와대는 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간 경제비평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대한 건설적 대안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경험이 대통령을 보좌하여 행정각부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을 내실 있게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2)그는 올해 1월, 이명박 정부가 대표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녹색뉴딜'에 대해 "토목건설과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경제운영 행태에 대해서도 "성장률 몇 퍼센트를 달성하겠다고 하다가 다음날 경제위기가 온다고 하는 식의 일관성 없는 행태는 시장의 불신을 사고, 의도와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면서 "국내에서 진행 중인 각종 규제완화, 특히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식 시장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정책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정책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강조하는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서도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2008년 12월)이라고 했었고, "국가 경영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업 경영이 아니다"(2008년 3월)라고 이 대통령을 직접 비판했다. 경제철학 자체에 있어서도 이 대통령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거시경제학 책 서문에 스스로를 '케인지안'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 반면, 현 정부는 최대한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쪽이다. 민영화, 감세, 규제철폐 등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보론] 9월 9일에 출판된 새사연의 이슈진단 '정운찬의 변심인가 MB정책의 변화인가?'는 MB 정책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정운찬의 총리내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정운찬의 총리내정이 사교육 대책,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 서민감세와 대법인 감세축소 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남 부자들과 주식투자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지지층을 만족시킨 후 지지도 확대를 위해 사용한 친서민정책이 실속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허구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중심으로 대응해온 야권의 전략이 표적을 놓치고 있었고 최근 들어서야 부랴부랴 생활정치 운운하며 방향전환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필자 김병권의 분석은 중요한 점을 놓치지 않고 건드렸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에 대해서는 경제결정론적 방식으로 대처한다. 세계경제의 상황이 이명박-정운찬 연합에게 위기탈출을 허용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며 이 때문에 이 연합이 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세계경제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에만 의지하면서 전 세계 다중의 행동 잠재력을 분석에서 제외함으로써 정세예측은 외발로 서 있는 불안정한 모습을 취한다. (9월 9일 추기)

[보충읽기자료]

1. 이명박 대통령의 '강부자 토건파' 경제정책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 정책실장, 강만수 경제특보를 통해 계속 강행될 것이다. 반케인스주의자의 양극화와 토건화가 그야말로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운찬 씨는 어떻게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정년을 2년밖에 남겨 놓지 않은 그가 자신의 '노후용'이 아니라 정말 나라의 '개혁용'으로 총리 후보를 수락했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조만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는 그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해 그야말로 적확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서 대단히 훌륭한 경제학자의 칭송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 나라의 학문을 위해서도 그는 자신의 학문을 지키면서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을 보필할 것인지를 국민 앞에 잘 밝힐 필요가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04093055&section=01)

2. 그를 전국적 인사로 만들었던 서울대 총장 시절, 그는 참여정부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는 3불제에 반대했고, 대학 입시의 자율화를 원했다. 국립대 법인화 정도가 아마 그와 참여정부가 유일하게 일치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말하자면 그는 교육의 산업화 내지는 경쟁 심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그가 이번에도 경쟁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자신과 MB가 다를 게 없다고 한 것을 보면 경쟁을 그의 소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싶다. http://blog.mediaus.co.kr/2029

2009/09/08 12:15 2009/09/0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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