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사태로 이득을 보는 것은 한국(그리고 미국)이다. 한국이 이득을 본다는 것은 한국이라는 기계장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득을 본다는 뜻이다. 한국이라는 기계는 명목상으로는 그 국민의 소유로 되어 있지만  국가기계에서 국민이란 자신의 힘을 체계적으로 국가기관들에 양도하도록 되어 있는 동력원천일  뿐이기 때문에 그 실소유주는 해당 시기에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입법, 행정, 사법, 미디어의 실질적 지배자가 해당 사회 한국의 실소유자인 셈이다.

박재범 사태의 정치적 효과, 그것의 정치적 메시지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연예인은 한국이나 한국인을 싫어한다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한국이나 한국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연예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실소유자들은 손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게 되었다. 공인 뿐만 아니라 사인(私人)까지도 국가 이데올로기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아직도 세상이 국가들/영토들로 분할되어 있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는 한 국가의 합법적 구성원이 되지 못하면 지구상에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국가는, 사람들의 상행위를 지켜주고 돈을 뜯어내고 말을 듣지 않으면 그곳에서 쫓아내던 중국의 무사들이나 일제 시대의 건달들처럼, 개인들의 생존활동을 등록하여 보호해주면서 그들로부터 세금을 뜯어내고 통제하는 기관이다. 국가는 보호해주면서 수탈하며 보호를 명분으로 억압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쫓겨나면 다른 보호자를 찾거나 그렇지 못하면 야생동물처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엄밀한 의미에서의 야생은 없다.  인간에 의해 보호받는 야생동물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체제로부터 쫓겨난 인간이 설 땅은 지구상에는 없다고 해야 한다.

역사적 조건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한 국가의 구성원이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지식인들, 언론인들, 교사들, 정치가들 등 국가의 공무원들은 이 불가피한 조치에 숭고한 이미지를 부여하곤 한다. 전통, 혈통, 반공, 성장 등에다가 심지어는 자유니 민주주의하는 개념들까지 끌어다 쓴다. 아무리 화장을 많이 한다하더라도 국가기계와 근대 공화국은 소유자들의 재산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의 휘하에 끌어들여 억압하는 장치 이상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박재범이 "korea is gay....i hate koreans.....i wanna come back....korea is whack.."이라고 말했을 때, 거기에는 진실이 있다. 한국=korea라는 기계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의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의 평화롭고 평등하고 우애롭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기대했다면 백중백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사나운 야수들이 설치는 동물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 까지야. 미국에는 더 사나운 야수들이 설치지. 미국도 국가기계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 더 사나운 짐승들이 지배하는 나라라서 자국 국민들을 더 잘 보호해주고 그만큼 더 잘 수탈하지. 심지어 세계주민들을 보호하고 그곳 사람들을 수탈하는 일까지 하니까. 그러니까 박재범이 원한 것은  자유와 평화의 공동체가 아니라 더 단단하고 튼튼한 우리(cage)였던 것. 그러니까 사람들이 박재범을 속은 희고 겉은 노란 트윙키1라고 부르고 박진영이 박재범을 미국 무대에 세위기 위해 일부러 한국 욕을 하게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까지 나오는 것.2

한국에는 koreans, 한국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가는 권력을 통해 그 영토의 주민들 모두를 자신의 국민으로 끌어들인다. 국민으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은 통장을 만들 수도 없고 학교에 갈 수도 없고 검문을 받으면 끌려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려면 등록해야 한다. 스스로 좋아서 등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강요되어 등록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의식도 하기 전인 유아기에 한국인으로 등록된다. 한국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객관적으로 한국인이다.

박재범이 이 한국 사람들 모두를 겪어보았을리는 없다. 그는 미국인이며 한국에 온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한국에 줄곧 살았더라도 모든 한국인들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koreans, 그가 미워하는 한국인은 누구일까? 국적이 한국인 사람들? 한국의 애국자들? 그의 한국인 팬들? 그들의 어떤 점이 그는 싫었을까? (그가 마이페이스에 쓴 구절 중에는 '자신의 랩은 형편 없는데, 자신을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이 어이 없다'는 내용이 나오긴 한다.) 아니 싫었던 것이 정말 그들일까? 자신이 아니고? 미국인들이 인종차별적으로 만들어낸 한국인의 이미지(ugly korean)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의 욕망이 자신에 대한 미움을 koreans에 대한 미움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한국가의 국민으로서 스스로의 정체를 새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추하다. 타자들을 배제하고 그들과 싸우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임무이며 그것을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자임하는 한국인들이기 때문이다. 그 추한 koreans들에 대한 미움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박재범에게 결여된 것은 americans에 대한 미움이 없다는 것, america를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생각한다는 것, 요컨대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주의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재범이 어렸고, 데뷔전이었고, 힘든 조건이었고 어쩌구저쩌구 하는 전여옥 식 눈물찍어내기는 이 사태의 정치적 핵심을 회피하면서 착취와 수탈의 기계로서의 공화국들인 한국이나 미국을 거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3 박재범은 미국을 편들면서 한국을 욕함으로써 국가들의 경쟁 논리를 체현하고 실행한다. 그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세포로서 기능한다. 그런 한에서 그는 한국에 있건 미국에 있건 노예이다. 박재범을 비난하는 개인들과 문화평론가들은 한국을 옹호함으로써 국가간 경쟁논리를 체현하고 실행한다. JYP는 박재범에 대한 비난을 수용함으로써 경쟁논리를 체현한다. 팬클럽과 일부 문화평론가들은 박재범의 연예활동과 발언을 분리시키고 전자를 옹호함으로써 간접적으로(그리고 문화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박재범의 미국주의를 지지한다. 이 싸움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미국 아니면 한국 혹은 국가일반이고 손실을 보는 것은 국가들의 존재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공통체 구축을 저지당하고 있는 서발턴들, 종속된 사람들이다. 미국도 한국도 가난한 사람들의 기계가 아니다. 서발턴들은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나서 특이한 존재로서 타자들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함으로써만 , 즉 다중으로  도약함으로써만 애국주의와 자유주의, 인종차별주의, 문화주의 등이 벌이는 정치적 환상들의 이 이전투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

  1.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1010 [Back]
  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6329.html [Back]
  3. 이 악어의 눈물이 실제로는 사이버모욕죄 추진을 위한 정치적 선동의 몸짓이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15415 참조. [Back]
2009/09/12 16:02 2009/09/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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