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영화이므로 작품에 대한 미학적 접근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홀로코스트 영화는 유태인들의 희생을 주로 다루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유태인들의 저항을 주로 다루는 쪽으로 방향 선회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관객들이 식상했다는 시장적 이유 말고 어떤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것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대해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점과 지배를 이유로 혹은 홀로코스트의 산업화를 이유로 유태인들의 경험 일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내가 갖는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 영화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영화는 벨라루스 지역의 반독 저항을 그린다. 벨라루스는 어떤 지역일까? 잠깐 벨라루스의 역사를 참조해 보자.
6세기부터 슬라브족이 벨라루스 땅에 들어오면서 키예프 공국에 속하였다.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벨라루스 땅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폴란드 분할 때인 18세기 때 벨라루스 땅은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이 벨라루스 땅을 차지하게 된 후인 1918년 3월 25일 '벨라루스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이는 실질적 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1919년 1월 5일 붉은 군대가 민스크에 들어오면서 해체되었다. 벨라루스는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은 소련을 침략하면서 벨라루스 땅은 독일군의 점령하에 들어가고 '벨라루스 공화국'의 이름을 가진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가 세워졌다. 벨라루스인들의 게릴라식 저항은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벨라루스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독일의 패전 후 벨라루스는 다시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벨라루스는 1990년 7월 27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91년 12월 벨라루스는 독립국가연합의 회원국이 되었고 초대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카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97년부터 러시아와 국가 연합을 결성하기로 하였다.1
지금의 독립에 이르기전까지 슬라브-폴란드/리투아니아-러시아- 독일- 러시아- 독일,-러시아 순으로 이 지역의 주인이 바뀌었다. 영화가 그리는 유격전은 독일의 괴뢰정부인 벨라루스 공화국에 대항하는 것이었고 그 내부에서 러시아인 유격대와 유태인 유격대의 관계를 다룬다. 내가 관심을 갖고 싶은 것은 유태인 유격대의 형성과 그 내부의 노선분화이다.
유태인 유격대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체포를 피해 숲으로 도망친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고 비엘스키의 지도력도 그랬다. 러시아인 유격대는 대치, 복수, 전투, 그리고 권력탈환을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설정되며 영화는 그것을 배경으로 설정한다. 유태인 유격대에서 주스는 이러한 러시아적 노선에 동의하면서 러시아 유격대에 합류한다.
특이성은 유태인 유격대 나름의 고유한 투쟁노선을 선택하는 투비아 비엘스키에 의해 형성된다. 영화의 여러가지 장면들, 대사들, 전개들을 종합해 보면 그 노선은 1)살아남는 것이 복수이며 승리이다. 그러므로 대치를 피해 도주하며 도주하며 투쟁한다. 복수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2)남녀, 전사/비전사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다. 누구나가 일해야 하고 똑같이 나눠먹는다. 3)무기는 방어의 수단이다. 전투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공동체, 즉 주체가 중요하다 4)생명이 희망이고 사랑은 생명의 동력이다 등의 이념을 형성하며 발전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발전과정에서 지식인, 여성, 노인, 유아 등은 남성 전사들만큼이나 결정적이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는 뒷이야기에서 쫓기면서도 유격대의 수는 불어났고 탁아소, 병원, 학교까지 생겨났으며 1200여명이 살아남았다고 전한다.
투비아 비엘스키에게 모세의 이미지를 겹쳐놓고 비엘스키의 저항을 모세의 출애급에 비유하며 독일군을 피해 강을 건너 도주하는 유격대를 이집트 파라오의 군대를 피해 홍해를 건너 도주했던 (이후 유월절로 기념되는) 사건과 비유하는 것은 이 새로운 투쟁형태를 과거의 기억의 반복으로 만들고 신비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영화에서 투비아는 모세를 반복하지만 다르게 반복한다. 홍해를 여는 모세의 기적의 사건은 허리띠를 묶어 서로 협력하여 강을 건너는 사랑의 사건으로 나타난다. 투비아 비엘스키의 자생적 유격대가 형성한 노선과 이념은 모세의 출애급의 사건2(엑소더스)만큼이나 우시 시대에 다시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비변증법적 투쟁과 삶정치적 저항의 예비적 형상으로 간주되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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