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성의 정치학에 대하여

Posted at 2009/09/30 22:32// Posted in 쓰기(skribi)/정치_P
정치에서 유물론적 사유를 외부성의 정치학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서술된다.

정치에서 유물론이란 “외부성의 가동”을 통해 정의된다. 이는 세 가지 측면을 갖는다. 첫째, 정치의 ‘일차적 과정’을 이루는 ‘질료적 흐름’으로서의 대중을 통해 정치를 사유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은 단지 많은 수의 군집으로서 군중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하는 성분에 의해 정의된다. 이는 모든 주어진 질서의 외부다. 정치란 이탈의 벡터를 가동시켜 새로이 대중을 창안하는 활동이다. 둘째, 내부와 외부의 관계에서 외부성의 가동으로서 정치를 사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외부에서 내부로 밀고 들어가는 ‘침입’의 정치학과, 반대로 내부에서 외부로 밀고 나오는 ‘탈각’의 정치학이 있다. 이러한 의미의 정치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활동인데, 침입의 정치학은 탈각의 성분이 없다면 그것이 성공하자마자 포섭되고 만다는 아포리아를 갖는다. 셋째는 자본주의의 외부로서 코뮨주의를 통해 정치를 사유하는 것이다. 이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코뮨적 관계가 국가나 자본에 의해 포획되고 착취되는 것과 대결하는 방향에서 자본주의의 외부를 창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몇 가지 난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 대중 개념. 대중은 정치의 질료적 흐름으로 규정되면서 동시에 누군가에 의하여 창안되어야 할 대상(발명품)으로 정의된다. 정치의 질료이자 정치에 의해 창안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되는 것에서 대중 개념은 모호성을 면치 못한다. 그것은 주체성으로 정의되는 듯하다가 다시 대상으로, 객관성으로 설정된다. 그렇다면 대중을 창안하는 주체성은 누구인가? 대중이 대상인 한에서 정치는 대중의 자기활동이 아니라 이탈의 벡터를 가동시키는 촉발자일 수밖에 없다. 촉발자로서의 전위 개념은 질서 외부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대중 외부에 존재한다. 정치는 군중으로부터 대중을 생산하는  어떤 외부 주체성의 행위로 협소화된다.
둘째 외부성의 가동이 정치의 개념이라면 정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것으로부터 외부성을 가동하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고 외부성의 외부성의 외부성의 외부성.의...라는 무한 외부화의 순환 속에 놓이게 된다. 이 순환 속에서 외부화의 존재론적 기초는 사라진다. 보존되는 것도, 확장되는 것도 없는 순수 외부화의 과정만이 있게 된다. 이 과정은 극단적으로 불안정하여 더 완전한 전체화/덜 완전한 전체화의 구분은  사라진다. 코나투스가 이 개념 속에서 보수주의적인 것으로 기각되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셋째 침입과 탈각은 개량과 혁명 개념의 변주이며 레닌과 모세에 상응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침입과 탈각은 다중에 의한 새로운 삶의 생산이라는 단일한 과정을 내/외라는 공간 개념에 따라 인위적으로 식별한 것이지 않을까? 탈각의 성분을 가진 침입으로 읽힌 것은 새로운 삶의 생산에 성공한 경우일 것이고 탈각의 성분을 잃은 침입은 그것이 낡은 것으로 포섭된 경우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두 개의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중의 단일한 삶정치적 생산활동과 그것의 효과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 않을까?
넷째 생산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이 부재하다. 혹은 정치 개념이 생산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그 결과 정치는 사유자나 행위자에 의해 기존 질서에 도입되는 급진적 외부화 행동으로 규정된다. 그 급진적 외부화의 동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급진민주주의 사고에 고유한 것이다.
다섯째 외부성은 내부성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글쓴이가 (외부성의 개념을 가져온 푸코와 더불어) 글쓴이가 크게 의존하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내재성의 존재론으로 일의성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존재론적 내재성의 개념이 외부성의 개념을 허용할 수 있는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외부성은 내재성 개념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또 내재성과 내부성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만약 그것이 쉽지 않다면 들뢰즈의 내재성의 철학은 필자가 말하는 내부성의 철학에서 제외될 수 있는가? 이 문제들은 반드시 응답되어야 할 논리 내적 결락지점으로 남아 있다.
다섯째 그래서 코뮨주의는 자본주의의 외부로 전제된다. 대중을 형성하는 정치가 코뮨 관계로 나타나야 할 필연성이 대중/외부성 개념 속에 있는가? 그것이 자본주의 외부일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에 의해 보장되는가? 다중의 활력의 진화 과정에서 이루어질 코뮤니즘의 새로운 변이와 생성의 가능성은 충분히 숙고되지 않으며 또 추구되지 않는다. 나는 코뮤니즘이 자본주의 내부에 실재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것은 초보적인 것이며 투쟁들, 도약들, 혼종들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와져 나가는 팽창의 과정 속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2009/09/30 22:32 2009/09/3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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