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디어라면 아예 불신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미디어에 매혹되는 것이 미디어에 대한 두 가지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물론 미디어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운동은 미디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가장 기초적이고 오래된 미디어는 물질 자체이다. 백남준은 가장 오래된 스크린은 달이요 가장 오래된 라디오는 소문이라고 했다. 달은 태양을 비춘다. 월인천강지곡에서 달을 비추는 강을 상상할 때 그것은 미디어의 미디어이이다. 달이 비추어진 강을 영상화할 때, 그것은 미디어의 미디어의 미디어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액자화되어 온 것이 미디어다. 소문은 말이다. 말은 가장 기본적인 미디어이다. 라디오는 소문의 소문의 소문...을 전한다. 타산지석1이라는 말은 타자가 곧 미디어임을 의미한다.

오늘날 소리, 글과 말, 영상을 나르는 미디어는 점점 디지털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화된 미디어의 최첨단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연결하는 기술이다. 웹 3.0이 그것이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신속하고 광범하게 낡은 경계들을 넘어서 사람들을 연결시킨다. 이것은 블로거나 커뮤니티와 같은 웹2.0, 웹신문이나 웹저널과 같은 웹1.0을 대체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소셜디지털미디어는 웹1.0이나 2.0의 기반 위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비웹, 그러니까 아날로그 미디어에도 의존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 트위터를 통해 가장 이용하는 것은 책에 관련된 정보이다. 단행본, 잡지, 신문은 최첨단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활성화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자연, 타자, 말과 같은 물질들에서 단행본, 잡지, 신문과 같은 아날로그 미디어로, 그것에서 다시 웹신문, 웹저널, 웹블로그, 웹커뮤니티, 소셜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미디어로 나아오는 미디어의 빅뱅과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빅뱅과 팽창은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과정이 아니라 부단히 지층화되면서 우리의 미디어능력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첨단 미디어는 정보유통에는 유용하지만 사유의 유통에는 미흡하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은 사유하기를 방해한다. 디지털 소통은 아날로그 소통과 같은 무게를 싣지 못하며 물질과 물질 사이의 직접적 소통만큼 진하지도 못하다. 반대로 물질 대 물질의 소통이나 아날로그 소통은 탈경계적 소통능력을 디지털 소통만큼 갖지 못한다.

각종의 미디어들은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용되어야 하며 할 수 있다면 모든 미디어들을 인류의 공통재로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안미디어 운동은 특정한 미디어를 선택하는 운동이라기보다 우리 삶(과 삶수단) 전체를 해방과 자유를 위한 미디어로서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중동 문제를 바라보면 어떨까?

이른바 안티조중동과 언론악법 반대투쟁은 언론/방송이라는 문제를 핵심적 의제로 부각시킨다. 미디어의 중요성이 이 쟁점을 통해 인지된다. 언소주와 언론노조가 그 투쟁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이 투쟁에서 대안미디어의 문제는 좀체로 부각되지 않는다. 악법과 악한 언론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악법과 악한언론의 제거는 법과 미디어에 대한 대안적 사유와 대안적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조중동 대신 한겨레-경향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버린다. 정치적 반보수주의 투쟁에서 한겨레-경향은 나름 대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신문은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에서는, 즉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인 신문이다. 운동 전체를 돌파를 향해 끌고 갈 수 있는 극한적 힘이 작동하고 있지 않으면 운동은 일정한 수준에서 탈주와 자유의 운동이기를 다시 체제의 회로 속으로 추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중동 반대운동과 언론악법 폐지운동은 우리의 대안미디어 운동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총체적 비전 위에서 위상을 잡고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에 매몰된다면 해방과 자유의 가능성은 축소되고 운동은 중도반단될 것이다. 삶 전체를 미디어로서 활성화하는 것으로서의 대안미디어 운동(이것은 결코 뉴미디어 운동만이 아니며 다양한 미디어들의 혁명적 재배치의 운동이기도 하다)의 관점 속에서 기존 미디어들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자.
  1. 〈소아편(小雅篇)〉의 '학명(鶴鳴)'에 나오는 구절 '… 타산지석 가이위착(他山之石 可以爲錯;다른 산의 못생긴 돌멩이라도 구슬 가는 숫돌은 됨직한 것을!)' 에서 나온 말이다. [Back]
2009/10/08 09:03 2009/10/08 09:03

http://amelano.net/trackback/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