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운동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농민들이 광대한 왕유지를 점거하여 가축을 방목하기 시작하면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그것은 사용되지 않는 건물이나 땅을 임대계약 없이 사용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스쾃은 그 지점을, 스콰터는 그 행위자를, 스콰팅은 그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것은 재화에 대한 사용가치적 접근을 표현한다. 사용되지 않는 건물이나 땅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재화의 생명력을 죽이기보다 살리곤 하기 때문이다. 교환가치적 측면에서 스콰팅은 부등가적이지만 사용가치적 측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스콰팅은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가치관계와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이며 대안적 가치 개념에 대한 요청이자 문제제기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1라고 불리는 2004년의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 퍼포먼스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할 공간을 제공하라는 요구투쟁이었다. 서울시가 이 투쟁을 흡수한 방식은 서교예술실험센터 2, 문래동을 중심으로 실험되고 있는 아트팩토리 사업3, 서초동의 창작아케이드 사업 등이다. 이 흡수시도는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문화는 돈입니다. 그러나, 문화가 돈이 되기 위해선 환경이 필요합니다.”라는 정신에 의해 이끌리고 있다. 도시환경을 예술적으로 가꾸어서 토지, 건물, 작품 등의 화폐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계획 속에서 예술실험센터, 아트팩토리, 창작아케이드 등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4 2004년의 오아시스 프로젝트에서 나타났던 선언적 행동은 이렇게 아트팩토리나 창작아케이드와 같은 관주도 예술환경사업으로 귀착되었다.
유휴시설은 스콰터들의 투쟁에 의해 아래로부터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와 가치관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점거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주도 하에 위로부터 자본주의적 가치관계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가들에게 시혜된다. 환경의 예술화, 예술환경 사업을 통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사업 내부에 두 개의 선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술이 공통재를 확대하는 사용가치적 창조의 선, 그리고 이것을 교환가치로 환원하여 지가나 건축물가 상승의 수단으로 배치하는 포획의 선.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 사업들은 결코 다중을 위한 것으로 배치될 수 없다. 예술노동자들의 활동을 가치관계에 포획하기 위한 시도이며 이 과정에서 비예술가 주민들은 소외된다. 예술가들은 다중의 이 소외 과정에 공모자로 참가한다. 예술가의 혁명적 능력은 쇠락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 없이 예술활동은 가치관계의 부품으로 편입된다. 예술운동은 예술적 능력의 자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토지나 건물의 사용가치의 이용은 예술가들의 이 정치적 독립 위에서 전개될 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예술적 길도 열 수 있다. 그 독립의 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상품 개념에 너무 깊이 포섭되어 있는 예술 개념의 파괴와 혁신과 재구축을 요구한다. 예술활동은 상품으로서의 작품을 만든다는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또 전문가로서의 예술가라는 자기정체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예술은 삶을 창신하는 활동이며 협의의 예술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레닌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려는 예술기획자였고 그것을 실천한 창작가였다. 볼셰비키는 집단적 예술가였다. 촛불봉기는 21세기 인류사에 출현한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 중의 하나이다. 예술가이기를 거부하는 예술가가 필요하다. 이것만이 예술능력에 대한 권력의 포획을 넘어서는 기초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이에 대한 글로는 http://www.hani.co.kr/section-001057000/2004/10/001057000200410122019215.html 참조. [Back]
- 관련 기사는 http://qtv.freechal.com/Movie/QTVMovieView.asp?docId=2399017&LogSection=QTV002_CLTM01_002 참조. [Back]
- 관련 기사로는 http://www.2byeol.com/431 참조. [Back]
- 이러한 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는 이원재의 글 http://www.culturalaction.org/webbs/view.php?board=cncr_6_1&id=59&page=1&category1=9을 참조. [Back]
Pensu kiel singulara aŭtonoma marksisto, agadu kiel kosmopolitika esperantista homaranis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