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독일어 원전 완 역본(김만수 옮김, 갈무리, 2009)에 대해 쓴 고명섭의 서평(한겨레, 2009년 10월 10일)은 이 책의 핵심적 논지를 잘 정리하고 있다 . 나의 방식으로 이 논지를 재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목적)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목표) 폭력행위(수단)"이다. 목표는 군사적이고 수단은 물리적-기술적-심리적-조직적이지만 목적은 정치적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계속하는 정치이다.
둘째 근대전쟁은 국민전쟁이며 총력전이다.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만이 아니라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무장하지 않는 시민들도 전쟁 주체이다.
셋째 전쟁에서는 객관적 요소들(무기, 용병술)에 못지 않게 주체적 요소(무덕, 사기, 용기)가 중요하며 후자가 더 결정적이다. 국민의 전쟁에서는 국민의 구성을 이해하고 각 부분의 전쟁에 대한 태도를 성찰하면서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결집시키는 일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넷째 전쟁은 우연성과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일이다. 이것은 전쟁의 대상인 적의 행동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데에서 연유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전쟁주체의 구성이 끊임없는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우연성은 위험일 뿐만 아니라 가능성이기도 하다.
다섯째 불확실성의 세계를 뚫고 전장을 지배하려면 "특별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군사적 천재성"(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최고지휘관이 그 사례이다)이 필요하다. 그 천재성의 공통성향은 "많은 힘들의 조화로운 결합"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성(이성적 요소, 통찰력)과 용기(감성적 요소, 결단력)이다.
이런 재서술을 통해 우리는 전쟁의 목적, 목표, 수단; 근대 전쟁의 성격; 전쟁의 주객관적 요소들; 전쟁의 특성; 전쟁천재 등에 대해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 외에 그것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조건에 맞춰 재해석하고 혁신하는 일이 부과된다. 다중의 대안근대적 전쟁은 목적, 목표, 수단, 성격, 특성, 요소, 천재성 등의 모든 점에서 근대전쟁과 다를 수밖에 없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것, 즉 주권을 생산하는 데 있지만 다중의 전쟁은 주권을 해체하는 데 있다. 즉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적조차도 협력하게 만드는 일이 전쟁의 목적이어야 한다. 적대적 조건 위에서 전개되는 전쟁이 폭력을 통한 굴복, 비판을 통한 방해적 요소의 무력화=중립화를 피할 길은 없겠지만 폭력을 통한 굴복보다는 동의나 공감이나 신명의 창출을 통한 협력이 더 중요하다.
근대전쟁은 국민전쟁이지만 다중의 전쟁은 국민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해방과 자유를 위해 벌이는 절대전쟁일 것이다. 그것은 총력전이기보다 연방적 공통전(common war)일 것이다. 이 공통전에서 전방과 후방의 구별은 사라질 것이다. 삶의 모든 평면이 전선이 될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셋째와 넷째 요소는 다중의 전쟁에서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아니 더욱더 중요해져서 공통전의 주체성을 구축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전쟁 주체성의 구축은 전쟁의 목적에 종속될 수 없고 그 자체가 목적인 수단일 것이다.
불확실성의 요소, 우연성의 요소는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되며 이 다양한 에너지를 결집할 전쟁 천재성은 새로운 차원을 요구할 것이다. 복수적인 것들에 대한 예민한 감각, 그 감각물들을 공통화할 수 있는 다중적 지성, 그리고 이것을 행복한 삶에 대한 비전으로 제시할 직관이 요구될 것이다. 그것은 군사지휘관과 병사의 관계로 나타나기보다 삶정치적 투사들의 집단적 네트워킹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단상의 형태로 제시되는 대안근대적 전쟁론의 상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전유없이는 불가능하다. 전쟁론을 혁명론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세미나나 강의가 필요하다. 다중의 관점에서 읽는 [전쟁론].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