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 영원성의 문제

Posted at 2009/10/21 02:02// Posted in 쓰기(skribi)/시학_P

백남준은 영원성에 대한 추구를 인류의 질병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백남준의 예술실천이 직면한 한계을 표명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는 기존의 선형적 무한성에 대한 추구를 비판했고 기존의 협화음, 고정관념, 기성질서 등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것을 통해 그는 새로운 음의 세계를 드러내고 기존 질서가 밀어낸 것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자극했다. 이것은 분명 반란이다. 우리는 이 반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고 그것의 현재적 의의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도달한 것은 어디였을까? 그는 음악을 공간화하려 했고 잠재력의 세계를 부인했다. 그는 비인과적 결합의 원리로서의 동시화를 추구함으로써 우연적 결합, 새로운 배치를 중시했다. 이것이 그의 관계론적 미학이다. 하지만 무엇들의 관계일까? 무엇들의 새로운 배치일까? 배제된 것들, 추방된 것들. 하지만 그는 배제된 것들과 추방된 것들의 적극적 함의를 드러내는 데 성공했는가? 그에게서 배제되고 추방된 것은 실재하는 구성력을 분명히 지시하지 못한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주체성에 대한 사유를 전진시키지 않음으로써 배제된 것은 사소한 것의 범주에 머무른다. 그래서 혁명적 동력, 다중적 추진력은 좀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관계론적 사유는 활력을 경시하며 비판적 파괴적 미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활력의 경시는 영원성의 부정의 효과가 아닐까? 그는 무한성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영원성까지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시간을 크로노스의 틀 속에서만 이해하고 시간의 진정한 실체인 활력과 영원성을 놓치지 않았는가? 그래서 시간화라는 문제가 그에게서는 공간의 한계 내에서 사유되어오지 않았는가? 공간화된 음악을 시간화하는 것이 필요한 때에 다른 공간화를 추구하는 데 머문 것이 아닌가? 선형적 공간에서 펼쳐진 공간으로! 그래서 시간, 활력, 영원성과 대면하는 문제는 다시 우리에게 넘어온다.

그래서 예술적 생성의 문제가 다중의 천재성이 아니라 예술가 백남준 개인의 천재성에서 찾아진 것이 아닐까? 상상력은 길을 찾지만 다중의 예술적 활력을 에두르고 피하면서 나아갔던 것이지 않을까? 그것이 노년 백남준을 다중보다는 자본에게 포섭되도록 만든 예술실천적 조건이었던 것이지 않을까?

2009/10/21 02:02 2009/10/21 02:02

http://amelano.net/trackback/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