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분리된 앎이 있다. 앎의 양이 늘어나는데도 삶이 바뀌지 않는 앎이 그것이다. 그것과 다른 유형의 지식, 즉 삶앎은 앎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반대로 삶이 달라지는 데도 앎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적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동이 그것이다.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추종적이고 단순복제적인 행동이 그것이다. 이럴 때 삶형태는 바뀌지만 앎은 그래도 머물곤 한다. 그러므로 다른 유형의 지식에 대한 요구는 다른 유형의 행동에 대한 요구가 함께 간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삶앎/앎삶은 어떤 조건에서 누가 어떻게 생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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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u kiel singulara aŭtonoma marksisto, agadu kiel kosmopolitika esperantista homaranis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