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 대한 공포

Posted at 2009/10/23 21:35// Posted in 쓰기(skribi)/정치_P

에띠엔느 발리바르는 '대중의 공포'라는 모호한 제목의 책을 펴낸 바 있다. 모호하다는 것은 대중이 느끼는 공포일 수도 있고 또 대중에 대해 느끼는 공포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한 학생이 질문한다. "촛불집회에서 저는 대중의 힘도 느꼈지만, 저 힘을 누군가가 조종하여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용하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도 느꼈습니다. 대중이 우리의 삶에 공포를 줄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는지요?"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우리는 대중에 대한 공포의 두 가지 역사적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근대로의 이행기에 군주와 지배계급이 느낀 공포이다. 홉스가 다중을 위험한 계급이라고 불렀을 때, 이것은 정확하게 대중 앞에서 느끼는 질서 유지자들의 공포를 생각나게 한다. 또 하나는 파시즘 체험이다. 파시즘은 대중운동이었다. 그것은 히틀러와 나치당에 의해 유태인을 학살하는 기계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주권자가 느끼는 대중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소수자들이, 대중이 되지 못한 국외자들이 대중 앞에서 느끼는 공포이다. 대중이 정체화되어 순수 독일인으로서 통일적으로 사고할 때 대중은 공포스러운 존재로 표변한다. 월드컵에서의 붉은악마들 앞에서, 그리고 이후의 촛불 앞에서 좌파 지식인들이 느끼는 공포는 이런 유형에 속한다.

촛불은 이런 의미에서의 대중의 힘이었는가? 그것은 지도자, 총통에 의해 다중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였는가? 그와 정반대였다. 어떤 정당들도 촛불을 포섭하고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혁명정파들 모두 촛불 앞에서 총통의 힘을 발휘하기보다 촛불을 뒤따라다니느라고 바빴다(고 고백했다). 왜 그랬을까? 촛불들이 차이를 선호하고 집중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촛불의 약점이자 동시에 강점이었다. 촛불은 공포스러운 대중이 아니었다. 촛불은 통일성을 추구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외치고 싶어하는 주체성이었다. 대중에 대한 공포라는 역사적 기억은 이 새로운 주체성 앞에서 주춤하게 만든다. 그런 만큼 이 새로움을 향유할 가능성은 축소된다.

2009/10/23 21:35 2009/10/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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