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적으로 우리는 시대정신의 이행을 한국의 정치철학적 사유의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단결, 연대, 통일은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피디의 연대, 엔엘의 일치는 모두 통일의 정신을 표현한다. 다름은 통일의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1990년대에 통일 정신의 거대한 붕괴가 있었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그 직접적 계기였다. 포스프모더니즘은 차이에 대한 강조를 통해 통일을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이는 글자 그대로 후기자본주의의 시대정신이었고 신자유주의의 지배전략으로 되었다. 차이의 정치학은 신자유주의와 내밀하게 공모했다.
막간에 관용의 정치학(홍세화)가 등장한다. 이것은 차이의 정치의 부정적 발전이다. 관용/똘레랑스는 타자를 의식하는 점에서는 일치나 통일만큼 나이브하지는 않지만 반면에 자신의 정당성을 전제하고 타자가 자신에게 복속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점에서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이다. 실제로 똘레랑스는 사민주의 정치학의 일부이다.
21세기에 우리는 차이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우정의 정치학은 이 자각의 표현이다. 관용의 정치학이 차이의 부정적 발전이라면 우정의 정치학은 차이의 긍정적 발전이다. 차이는 우정 속에서 상호적인 것으로 되지만 여전히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이다. 바로 이것의 문제점 때문에 사랑의 정치학과 돌봄의 정치학이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과 돌봄은 차이의 소원성을 넘어서는 상호침투와 협력을 전제한다. 사랑과 돌봄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면서 변용되는 정치학이다. 협력은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사랑과 돌봄은 공통적인 것을 확장하는 윤리정치적 특질이다.
이렇게 시대정신은 단결에서 차이로, 차이에서 돌봄으로 이행하고 있다. 시대정신의 이러한 이행은 정신의 이행일 수만은 없다. 그것은 분명히 생산의 이행과 운동의 이행과 병행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