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은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에서 '미국을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으로 이해했다'고 쓰면서 자신은 그러한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고 쓴다. 세상에!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으로 명명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을 군주국으로 하는 네트워크 권력이라는 사실은 초심자들도 이제는 안다. 세계공화국을 주장하는 그의 책에 이런 오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독이나 실수에는 무의식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는 법이다. 그는 결국 현대 세계가 국가간 체계이며 제국주의임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는 내부에 대해서만 아니라 외부에 대해서 국가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체제론과 유통주의는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결국 그의 요점은 "아메리카가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주장은 걸프전쟁으로부터 10년 후 이라크 전쟁에서 반증되었습니다. 아메리카는 이제 UN의 지지를 얻기는커녕 그것을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단독행동주의'를 단행했기 때문입니다."(214쪽)라는 말로 집약된다. 만약 이러한 논법이라면, 이제 오바마의 집권과 그의 다자주의 외교는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또 그는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 하에서 국민국가는 실질적으로 소멸한다고 말했다"([세계공화국으로], 217쪽)고 쓴다. 두 사람은 국민국가가 지구제국의 마디가 된다고 썼다. 여기서 가라타니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국민국가가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탄생하는 칸트적 세계공화국이 국민국가를 마디로 하는 지구제국과 얼마나 다를까? 개인은 국가에게, 국가는 세계공화국에 주권을 양도할 때, 결국 개개인들은 주권의 피지배자로 남게 되지 않을까?
그가 국가에게든 제국에게든 주권을 양도하지 않는 개인들로서의 다중에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에게는 주체성에 대한 담론이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이는 네그리/하트의 세계혁명론에 국가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것과 유관하다. 그는 주체성의 독자성이 아니라 국가의 자립성을 옹호하고자 한다. 국가를 강화시키지 않으려면 국가의 자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불가사의한 논법. 국가의 자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나키즘을 경계해야 한다(219)는 충고와 더불어. 그렇다면 그의 대안은 무엇인가?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대로 파국의 길을 걷고 말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국가에 대항하면 좋을까요? 그 내부에서 부정해 가는 것만으로는 국가를 지양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게 양도하도록 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재편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헌법 제9조에 있어 전쟁방기는 군사적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하는 것입니다. 각국에서 이와 같이 주권의 방기가 이루어지는 것 외에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225)
일본으로 하여금 자신의 군사적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하게 한 것은 승전국들이었다. 국제연합은 승전국들이 세계를 제패하는 조직형태이다. 국제연합은 어떠한 민주적 구조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이 군사적 주권을 전적으로 장악하게 할 때, 다중은 거대한 권력의 재거노트에 깔려 신음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것이 국가들을 '위로부터' 봉하는 방법일까? 그는 여기에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덧붙인다. 그것이 위로부터의 운동과 연계하여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글로벌 커뮤니티가 서서히 실현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이라는 가라타니의 이중어에서 전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후자는 위로부터의 운동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전자의 어소시에이션은 다중의 네트워크와 상통한다. 그런데 후자의 어소시에이션은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와 상통한다고 하기 어렵다. 그것이 낡은 정치형태로서의 국가 표상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제연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및 국가들의 연합)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연합체를 상상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때, 자유는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국가의 자율성론은 가라타니 정치철학의 상처이다. 그리고 그것이 맑스를 칸트에게 무릅 꿇리는 방식이며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에게 종속시키는 방식이다.
Pensu kiel singulara aŭtonoma marksisto, agadu kiel kosmopolitika esperantista homaranis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