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되기의 존재론과 가치론을 위한 가설적 테제
1. 계급사회는 공통되기와 공통된 것을 분할하는 사회이다. 계급사회에서 공통된 것은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것, 반복되는 것과 창조되는 것, (반복에) 필요한 것과 그 이상으로 남는 것으로 분할된다.
2. 그래서 계급사회에서는 창조(생산, 생성)가 잉여로 나타난다. 최근의 계급사회인 부르주아 사회에서 창조 문제는 잉여가치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3. 창조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그래서 누가 잉여가치를 수취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시 말해 지배권력의 조형과 배치를 둘러싼 논쟁으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지배적 이론들은 지배권력의 기능이 된다. 이 이론들 속에서 공통되기를 통한 생명의 자기혁신과 자기창조(autopoiesis)는 수취하고 소유하는 것이 가능한 잉여가치의 틀 속에 갇힌다.
4. 중상주의는 잉여가치가 유통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상품이 가치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될 때의 차액을 잉여가치로 파악했다. 이것은 상업을 정당화하고 상업을 창조활동으로, 그것도 유일한 창조활동으로 정당화하는 이론적 방법이었다.
5. 중농주의자들은 중상주의자들과는 달리 잉여가치가 생산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생산과정에서 잉여를 산출하는 창조력을, 노동하는 인간에서 분리된 자연에게로 귀속시킨다. 자연의 생산력이 잉여를 산출하는 만큼 잉여는 자연의 선물이고 그것은 그 자연의 소유자인 지주에게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6. 맑스는 (중농주의자들을 따라) 잉여가치의 원천을 생산과정에서 찾고 (아담 스미스를 따라) 그 창조력을 유통이나 자연이 아닌 노동에서 찾으며 (중상주의자들을 따라) 그 노동이 화폐에 의해 매개되는 일반화된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7. 그러므로 맑스가 가치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것은 사회화된 노동이다. 맑스가 상품의 가치를 '그것의 (재)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정의했을 때 이미 사회적 노동, 사회화된 노동이 가치론의 핵심범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야 한다.
8. 맑스의 사회적 노동 개념은 전문노동, 대중노동에 이어지는 역사적 범주로서의 사회적 노동과는 차이가 있다. 맑스의 사회적 노동은 화폐 시대라는 역사적 조건에서 모든 노동들이 (시간을 척도로 하는) 교환관계 속에서 맺는 일반적 추상가능성(그 경향)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전문노동이나 대중노동도 맑스의 사회적 노동 개념 속에서는 사회적 노동의 역사적 출현형태들로 이해될 것이다. 우리가 전문노동, 대중노동, 사회노동 등의 개념을 사용할 때 그것들은 구체적 노동양상에 대한 이름에 더 가깝다.
9. 반면 맑스에게서 사회적 노동은 구체적 유용성을 추상한 추상노동 개념이다. 이 추상화를 한편에서는 이론이, 다른 한편에서는 화폐가 매개한다. 화폐가 실제적으로 발명하는 것을 이론이 관념적으로 사유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0. 맑스의 사회는 노동을 동력으로 발전해 나오지만 직접적으로는 교환, 화폐, 추상의 생산물이다.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는 노동력의 가치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회 속 상품들이 평가되는 방식의 투영이다.
11. 맑스는 사회적 창조력이 유통이나, 자연이나,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 노동에 그 원천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12. 이것은 화폐지배 사회에서 노동시간이 척도로 되고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 이상 부분이 잉여로 되는 메커니즘의 규명을 통해 이루어졌다.
13. 이것은 정확히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메커니즘에 대한 사태에 즉한 규명방식이다. 이것을 통해 맑스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자본가들이 잉여가치(이자, 이윤, 지대)의 형태로 착취한다고 고발할 수 있었다. 맑스의 목소리는 산업혁명과 산업화의 과정,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지주, 상인, 금융자본가, 산업자본가와 대립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목소리였다.
14.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가치생산의 유일한 원천이고 노동시간이 가치의 척도로 기능한다는 것은 큰 설명력을 갖는다. 하지만 맑스 자신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은 부의 유일한 원천이 결코 아니다. 자연력과 기계력도 부의 생산에 노동력과 더불어 참가한다. 여기서 가치창조와 부창조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다. 고타강령은 맑스의 비판의 표적이 되었지만 맑스의 사유 내부의 간극과 모순이 발현되는 한 양상이었고 그 징후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5. 중농주의자들은 끊임 없이 교환가치 맥락과 사용가치 맥락을 혼동했고 이 혼동을 통해 지주계급을 옹호할 수 있었다. 맑스는 이 혼동의 사슬을 끊고 가치의 문제를 교환가치 중심으로 설명해 낸다. 이것으로 사회로서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더 잘 설명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 방법은 노동시간을 유일한 가치척도로 설명함으로써 가치의 결정적 요소 논쟁(땅인가 기계인가 화폐인가 노동인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그것은 창조력의 양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16. 이러한 설명방식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부, 소재, 사용가치, 즉 창조력의 질의 문제는 맑스의 논리에서 부차화되어 갔다. 이것인 맑스가 '바그너의 정치경제학 평주'에서 자신이 사용가치를 무시한 적이 없음을 강조했어야 했던 조건이다. 확실히 맑스는 사용가치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배제되는 논리 외적 요소로 남아 있었다.
17.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창조력을 필요한 것과 남는 것으로 분할하며, 공통되기를 요소들로 분할한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맑스는 잉여가치의 착취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생산과정의 요소적 분할을 강조했고 그 중에서 노동 요소의 근본성을 단언했다. 교환가치적 맥락에서 노동시간 요소의 근본성을 강조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사용가치적 맥락, 부의 맥락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부의 맥락에서는 자연력과 노동력 그리고 기계력은 각각의 요소로서가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긴밀한 접속과 연결을 통해 창조력으로 기능한다. 창조적인 것은 협력이며 바로 공통되기의 과정이다. 공통되기의 정도만큼 창조력은 고조될 수 있다.
18. 자본주의적 교환가치 체제는 이 공통되기를 자신의 목표로 삼지 않으며 그것에 무관심하다. 오히려 자본은 공통되기의 생산력을 분할하여 수취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공통되기의 협력을 가치회로(공장-시장 망) 속으로 밀어 넣고 가치 회로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철저하게 무가치한 것으로 (즉 공짜인 것으로, 외부성으로) 만들고자 시도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19. 노동자들은 이러한 자본의 시도에 임금투쟁으로 대응했다. 임금투쟁은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려는 투쟁이지만 그것은 잉여가치를 늘리려는 자본의 투쟁과는 질과 방향이 다르다. 잉여가치를 늘리려는 투쟁은 교환가치를 증식하려는 투쟁이지만(M---M')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려는 투쟁은 더 많은 사용가치, 더 많은 소재적 부를 사용하려는 투쟁이다(M---C). 자본의 투쟁 속에서 사회는 교환가치로 번역되지만 노동의 투쟁 속에서 사회는 사용가치로 번역된다.
20. 노동자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자본은 기계류를 늘려 노동을 생산과정에서 추방하는 자동화의 길을 선택하는데 이것은 스스로 자본주의의 가치토대인 노동시간을 침식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척도의 힘을 잃을 때 명령이라는 낡은 방식이 복귀한다.
21. 이 과정에서 화폐의 주된 기능도 변화한다. 화폐는 노동시간의 재현적 등가물(상대적 등가물; 지불수단, 유통수단)의 기능보다 사회적 노동의 유일한 재현체(일반적 등가물; 권력, 물신, 명령)로서의 기능을 더 많이 갖게 된다. 그 결과 토지소유계급이나 (노동과의 교환을 통해 축적하는) 자본계급보다 화폐소유계급이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한다. 교환가치보다 명령가치가 더 비중이 커진다. 교환가치가 공통되기를 요소로 분할하여 지배하는 가치형태라면 명령가치는 공통되기를 총체적으로 식민화하여 통제하는 가치형태이다. 전자에서 경제적인 것의 지배가 나타난다면 후자에서는 정치적인 것의 지배가 나타난다. 전자에서 정치가 경제의 상부구조라면 후자에서 경제는 정치의 효과로서 나타난다.
22.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의 시대에 공통되기는 은폐되어 있었지만 명령가치로서의 화폐의 시대에 공통되기는 직접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맑스가 비물질노동과 비물질생산을 발견하고서도 그것을 지엽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한 것은 리카르도가 가치의 착취를 발견하고서도 그것을 잉여가치론으로 발전시키지 않은 것과 유사하다. 맑스는 직접적인 공통되기의 생산과 재생산의 현상(생산물이 유통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인지했지만 그것을 자신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었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는 산업혁명의 시대정신에 한계지워져 있다.
23. 화폐 가 척도(상대적 등가물)로서보다 명령(일반적 등가물)으로 기능하는 시대에 가치 개념의 쌍은 달라진다. 교환가치에 사용가치가 맞짝을 이루었다면 명령가치에 공통가치가 맞짝을 이룬다. 가타리의 욕망가치 개념은 집단적으로 사고될 때에만 공통가치에 접근한다. 루카치, 아그네스 헬러의 사용가치적 접근도 한계에 직면한다.
24. 공통되기의 순환은 교환가치 텀으로 환원될 수도 없고 사용가치 텀으로 환원될 수도 없다. 그것은 공통되기의 삶정치적 순환이다. 이 순환은 지배명령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공통된 것(공통재)의 재생산의 과정이다.
25. 공통되기의 순환은 공통적인 것을 요소적으로 분할하려는 위로부터의 시도를 저지하면서 각 요소들 사이의 긴밀한 협력을 추구하고 공통적인 것을 점취하여 사유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공통적인 것을 정치적 공통체로 공고화하는 정치적 실천의 과정이다.
26. 공통되기의 운동 속에서 자연, 인간, 기계의 경계는 철폐되며 물질적 생산과 비물질적 생산의 구분도 폐지된다.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경계 역시도 철폐된다. 대신에 공통되기와 그것의 파괴 사이의 대립이 부상한다.
27. 잉여가치는 공통되기의 양적 질적 확장으로 재수용된다. 필요한 것은 공통된 것의 재생산이며 창조적인 것은 공통되기의 변형, 새로운 삶의 형성이다. 소통, 지식, 정동, 정보의 회전을 배제하고서 공통되기는 이해될 수 없다. 공통되기에서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은 서로의 순환의 계기로서 기능한다.
28. 자본주의의 운동이 이 공통되기의 운동에 대한 착취와 수탈로서 서술되어야 한다면 무엇보다도 공통되기 운동의 메커니즘, 그 전략과 전술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과 기계의 존재론적 활력들과 그 혼성을 서술하는 문제이다.
29. 오늘날 명령권력의 부상은 공통되기에 대한 직접적 접근과 그것에의 참여가 시급하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30. 공통되기의 존재론은 계급사회의 종식을 위한 이론적 무기가 될 것이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