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의 일반화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가치화와 잉여가치화는 어떤 자연필연성이나 역사필연성도 갖지 않는 복합적이고 우연적인 행동들의 정치적 교차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가치의 지배라는 현실, 가치화와 잉여가치화의 법칙에 가까울 정도로 필연적인 관철을 부인할 수 없는 명확성으로 입증한다. 그런데 그의 정치의도는 이 법칙적 관철과정이 일시적이고 역사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의도는 그의 글을 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 법을 실증적으로 긍정하고 그 법에 따라 삶을 사유하려는 습관을 만들어 내곤 한다. 심지어는 사회주의자들에게서조차 우리는 종종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다.
 
자본주의는 자연, 인간, 수단들(기계류)의 복합적 교호작용에 권력관계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요소화하여 노동조건(즉 생산수단) 소유자들[즉 자본]의 지배를 관철시킴으로서 창발된 체제이다. 맑스는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근본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이 변론은 중요하고 또 올바른 것이지만 자연, 인간, 수단의 상호관련성과 협동성을 부각시키지는 못한다. 공통되기의 더욱 근본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는 부족한 것이다. 노동이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 것은 가치화 과정에서이지 탈가치화, 대안가치화, 공통가치화 과정을 고려하면 자연이나 기계나 인간이, 물질적 과정이나 비물질적 과정이 모두 특이한 위치와 역할을 갖는다.

문제는 가치화 과정의 내적 모순을 통해서는 대안가치화의 과정을 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진화적 길은 없다. 대안가치화의 과정은 가치화 과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가치개념과 가치행동에서만 출발되고 또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선에서 가치화 내부의 모순은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할 뿐이다.
2009/12/16 15:34 2009/12/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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