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소득

Posted at 2009/12/25 10:54// Posted in 쓰기(skribi)/사회운동_S
자본들은 경쟁을 통해 자신을 사회화한다. 시장유통은 경쟁의 시공간이다. 개별 자본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찾아 고투하며 다른 자본보다 더 높은 이유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 하지만 경쟁은 끊임없이 이윤을 평균화시킨다. 평균이윤, 평균이자, 평균지대는 경쟁을 통해 자본이 사회화되는 형상들이다. 개별 자본들은 본원적으로 이기주의적이지만 경쟁은 자본들 사이에 평등주의를 관철시킨다. 개별 자본들은 자유주의적이지만 자본 일반은 사회주의적이다.  개별자본들은 더 많은 가치를 착취한 자본과 더 적은 가치를 착취한 자본으로 나누어지지만 평균화, 사회화, 일반화로 인해 이들의 소득률은 투자자본의 크기에 비례하여 평등해지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면 노동자간의 경쟁도 임금률을 평등화하는가? 노동력 재생산비로서의 본원적 임금은 그 자체로서 평등주의적이다. 한 시대의 노동력의 재생산에 커다란 편차가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임금은 끊임없이 편차화된다. 성과제 임금의 도입은 그것을 극단화한다. 요컨대 임금은 본원적으로는 평등주의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차등주의적이다. 자본들의 경쟁은 평등을 가져오는데 노동자들의 경쟁은 노동자들 사이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이것은 시장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은 단결의 취약함의 결과이자 또 그것의 원인이 된다.

그러면 노동의 목적은 평등의 성취인가? 평등은 양적 개념이다. 만약 노동의 목적이 평등이라면 평균임금을 쟁취하는 것이 그 목표여야 할 것이다. 자본에게 평등은 서로간의 협상과 이해조정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노동에게 평등은 조건 이상일 수 없다. 평등은 자유의 조건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는 행복의 방법이 된다. 임금 평균화의 이상은 사회적 임금, 보장소득, 기본소득의 개념 속에 깃들어 있다. 소득의 평등(동등이 아니다) 없이 자유는 불가능하다. 즉 소득의 평등(재현)은 삶의 자유와 행복(표현)을 위한 조건이다. 여기서도 재현은 표현을 위한 계기이자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사회적 삶의 자유와 행복을 증대하는 데에, 다시 말해 다중의 공통되기에 복무하는 소득형태를 '공통소득'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2009/12/25 10:54 2009/12/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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