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엉성한 그림을 하나 그려본다. 신용이 팽창될 때에는 C가 B보다 훨씬 커지고 수축될 때에는 B에 접근한다.
C가 측정되지 않은 가치(왜 측정되지 않는가? 무상이기 때문이거나 미래이기 때문)를 가치화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부채의 발행, 혹은 신용의 제공이다. 신용의 제공은 삶[행복]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잉여가치[축적] 기준을 따른다. 신용의 강제력은 삶의 활동들을 가치화가능한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삶의 활동들을 교환회로로 흐르게 하는 것. 죽은노동과 산노동의 교환 회로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 모든 삶활동의 가치회로로의 인입. 비물질노동의 증대. (예컨대 물좀 주소에서 그려지는 이른바 채권추심원들.)
[부채 발행에서 국채의 최종 책임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기업채나 은행채의 경우도 결국 최종 책임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미국은 달러 그 자체가 국채에 의해 발행되고 그 궁극적 파장은 세계시민들 모두에게 미친다는 것이 금융위기에서 확인되었다. 사실상 거칠게 표현하면 국가나 은행들이 다중들의 노동능력을 담보로 이자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중들이 스스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관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할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C가 크게 팽창하더라도, 그래서 B보다 큰 버블을 물게 되더라도 D보다는 작다고 볼 수 있다. 물론 E를 고려한다면 C는 훨씬 더 작다고 볼 수 있고 버블은 그것이 비실제적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틀이 삶의 잠재력과 실재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폐기되어야 할 체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좌파까지)이 버블에 놀라 ABC만을, 특히 AB만을 가능한 삶의 틀로 이해하곤 하고 그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치마폭 밑으로 숨곤 하지만 말이다.
거칠게 우리는 A가 상업자본주의의 세계이고, B가 산업자본주의의 세계이고, C가 금융화된 인지자본주의의 세계로 볼 수 있다. E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D의 세계가 자본주의에 의해 다스려질 수 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너무 협소한 시스템이다.

2009/12/28 13:57 2009/12/28 13:57

http://amelano.net/trackback/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