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가장 큰 화두로 등장한 환경문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농촌은 어메너티amenity 상실이라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해 있다. 미야모도 겐이치는 『환경경제학』에서 "어메너티란 시장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포함한 생활환경으로 자연, 역사적인 문화재, 거리풍경, 지역문화, 공동체 연대, 인정, 지역적 공공서비스, 교통의 편리함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메너티 문제는 환경생태문학에서 중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환경문제는 사회문제에서 나왔으며 환경위기의 원인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 논리에서 기인한다는 데 초점을 맟추어 인간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 머레이 북친의 이야기에 주목해 왔다.
이런 의미로 어메너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신경제학이 '외부성'으로 파악한 것이며 자본이 무상으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부이다. 이것은 나의 그림에서 실제적 부(D)라고 불렀던 것의 경계지대에 있는 것들이다. 자본은 이것을 무상으로 가져다 쓰지만 반드시 가치화한다. 그것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우선은 부채다. 문화(재), 자연가꾸기, 공동체연대 등에는 어떤 형태로건 에너지가 필요하며 여기에는 활동이 든다. 그 활동에 드는 비용에 신용을 주고 그것을 지렛대로 이자 등을 수취한다. 둘째는 울타리치기다. 과거세대들의 성과물 혹은 자연이 생산하는 부에 울타리를 쳐서 입장료를 받는다거나 사용료를 받음으로써 자본은 수입을 올린다. 자본이 스스로 외부성의 창출에 투자를 하고 그것이 합체된 토지 등의 가격 인상을 통해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김종성이 "모든 생명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논리"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위의 어메너티에는 비자본적 방식으로 창출된 것과 자본적 방식으로 창출된 것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자본이 어메너티를 모두 파괴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어메너티는 파괴되면서 또 생성된다. 문제는 잉여가치화적 어메너티가 아니라 공통되기적 어메너티의 창출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메너티를 공통되기의 운동 속에 배치하는 문제이다.
얼마전 북설악에 있는 어떤 황토집을 다녀온 적이 있다. 몇 가구 살지 않는 북설악 용대리에서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 원어민 교사가 마을 학생들에게 '몰입'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작가 활동을 하는 젊은 재미교포 여성이었다. 황토마을의 머슴 노릇은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이민자가 맡고 있었다. 황토마을의 중학생 땅은 인도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종성은 김종성이 "아파트단지의 파도는 농촌에 사교육 광풍과 영어몰입 열병으 함께 옮겨왔다."고 표현할 때 아마도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려 한 것 같다. 세계화는 대도시만이 아니라 깊은 산촌에까지 파고들었다. 여기에서 위계와 차별과 독점이라는 그리드(grid)를 걷어내면 지구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global pillage(전 지구적 약탈)가 global village로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떻게?
Pensu kiel singulara aŭtonoma marksisto, agadu kiel kosmopolitika esperantista homaranis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