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 서술된 맑스만큼이나 서술되지 않은 맑스도 중요하다. 그의 계획의 거의 대부분이 미완성 상태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읽는 맑스는 그 계획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 주목되어야 한다. 계획되었으나 연구되고 서술되지 못한 부분이 무엇일지를 우리는 상상해야 하며, 만약 그것이 연구되고 서술되었다고 가정할 때, 이미 서술된 부분에 미칠 영향들을 숙고해야 한다. 그것은 내용의 수정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로 서술된 것을 통해 갖고 있는 맑스의 이미지의 수정일 것이다. 후자는 참으로 큰 문제로 남아 있다.
2. 맑스는 19세기의 사상가이다. 그의 사상은 그의 역사적 체험과 문제의식에 묶여 있다. 역사적 체험에서 분리된 사상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상은 자신의 시대에 비추어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맑스가 무엇을 말하고 생각했는가를 당연히 이해해야 하지만 나아가 맑스가 왜 다른 식으로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가 우리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풀기 위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좀더 분명하게 설정할 수 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첫째 자신의 시대에 지난 역사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창조적으로 넘어서는 맑스를 이해하기의 어려움, 둘째 맑스까지 포함하는 과거 역사 전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창조적으로 넘어서기의 어려움. 하지만 이 두 가지 어려움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4. 이 어려움의 극복은 개인의 문제이자 집단의 문제이며, 생각의 문제이자 행동의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자로서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설정하고 또 풀어가기 위한 주체들로서 이 자리에 참가해 있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