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에 대한 제 각각 다른 규정은 삶에 대한 다른 시각과 태도에서 나온다. 공통되기의 존재론은 근대적 잉여가치화의 인식론 및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 및 그것과의 투쟁을 함축한다.  이것은 공통되기를 통한 생명의 자기혁신과 자기창조(autopoiesis)가 잉여가치의 틀 속에 갇히는 것에 대한 거부의 운동을 함축한다. 공통되기의 존재론에서 볼 때 미적인 것은 시학적인 것이며 그것은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것이다. 그 생산성과 활동성은 특이한 것들의 사회역사적 공통되기의 맥락에서 정의된다. 공통되기는 오늘날 삶정치적 생산에 기반을 둔다. 시학과 창조력은 가치론의 살이다. 그것들은 이질적인 것들의 협력과 공통되기를 통한 세계구성, 새로운 제헌의 과정이다.  특이화하는 공통되기 혹은 공통되는 특이화는 역사 그 자체이다. 그것은 정체화하고 잉여가치화하는 경향, 즉 죽음충동에 맞서는 삶충동의 역동이다. 미학은 죽음에 대한 관조를 함축하지만 시학은 오직 삶의 관점과 비전에서만 죽음에 관심을 갖는 활동이다.

시학이 '특이화하는 공통되기'의 활동과 그 이론으로 방향 잡을 때, 20세기 미학사는 어떻게 보이게 되는가? 루카치의 반영론과 리얼리즘론은 공통되기를 대상화하면서 관조한다. 하이데거는 미의 문제를 기원으로 가져감으로써 존재론화하지만 공통되기를 세계를 변혁하고 구성하는 실천적 활동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벤야민은 기술과 매체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공통되기를 촉진하는 수련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규명한다. 그는 기술이 몰아적이고 집단적인 진정한 우주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보았다. 마르쿠제는 공통되기를 현실원칙을 넘어서는 쾌락원칙의 구현으로, 요컨대 에로스의 해방으로 이해했다. 아도르노에게서 공통되기는 자본주의 문명을 재현하면서 비판하는 순수와 자유의 추구로 나타나지만 그것의 궁극적 지평은 자연으로 귀착된다. 야우스는 예술의 수용현상 속에서 공통되기의 수용적 측면을 강조하며 하버마스는 공통되기를 합리적 의사소통의 문제로 해석한다. 넬슨 굿맨은 예술언어의 (모방과는 다른) 지시적 측면을 탐구하면서 이미지를 복사가 아니라 관찰자가 독해하는 연관들의 고안으로 본다. 이로써 그는 재현과 리얼리즘의 틀 속에서 공통되기의 문제를 사고할 길을 연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공통되기를 숭고로 환원한다.  등등.
2010/01/08 08:04 2010/01/0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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