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이라는 도시는 괴물이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된 승용차의 대부분을 먹고, 국민들이 수고한 돈의 대부분을 자신의 수중에 넣고,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로부터 사람들을 끌어들여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독식한다. 서울이라는 대한민국의 거대도시는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의 자본과 사람들을 중앙집중적으로 독식한 나머지, 넓게 뚫린 도로조차 교통지체와 정체를 매일 반복한다. 오염된 도시의 하천과 환경은 청계천과 같은 지속적인 비용 남발의 인공하천을 통해서야 시민들의 눈에서 가리어진다. (...) 대한민국의 모든 지방과 도시의 사람들에게 손을 뻗친 나머지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인 서울은 가슴에 젖멍울이 지도록 노력하지만, 천만이 넘은 인구를 다 먹이고 재울 수가 없다. (2)주택 가격은 살인적이다.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은 은행빚에 허덕이며, 집값이 올라서 빚을 청산하고 더 넓고 살 만한 집을 장만하기를 꿈꾼다. 출퇴근길의 도로는 항상 정체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른 승용차 유류비는 운전자의 눈이 유량계의 눈금을 흘끔거리게 만든다. (3)서울이라는 매력적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탐욕이 시민들의 시간과 돈과 건강과 행복할 기회를 모조리 빼앗아간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족히 수십조는 넘어가리라. (4)이전 도시의 위정자들은 탐욕스런 서울이라는 도시가 소화불량에 걸려 막대한 재화와 용역이 버려지지 않도록, 도심 주변에 거대한 그린벨트 지정과 지방자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계획과 법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사람이 누구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수도 서울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수도권에 밀집된 산업시설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교통정체 현상이 해결되고 인구 과밀에 따른 주택 수요의 급증에 의한 주택가격 폭등 현상을 막는 것은 시민의 행복한 삶에 기초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5)행정도시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 부처의 타지방 이전으로 한 해 5조원가량의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보면 인구의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 현상에서 나오는 주요한 폐해들로 말미암아 서울 시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담하게 되는 막대한 재화와 용역의 손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숫자는 인용자)
남한에서 서울은,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한 것과 같은 위치에 있다. 미국이 (채권행사로든 신용창조로든) 전 세계의 부를 흡수해서 사용했듯이 서울은 나머지 지역들의 부를 흡수하여 사용한다. 위글의 (1)은 수도 서울이 부패하고 늙은 흡혈귀임을 보여준다.
(2)의 사태에 주목해보자. 서울이 자랑하는 거대한 부는 이곳 주민들의 생산활동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보다 오히려 끊임없이 치솟는 자산가격, 무엇보다도 주택가격에서 기인한다. 주택 가격의 상승은 주택소유자, 특히 다/고급주택소유자 계급의 생존전략이다. 이것은 중앙집중과 인구과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과밀에 의해 지탱된다. 주택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야만 주택가격을 그 가치 이상으로 높일 수 있는 소유독점의 권력이 실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의 상당부분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미래임금[및 잠재임금]의 상당부분까지 대출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투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구입한 주택가격이 다시 상승한다면, 아니 해야만 가난한 사람들은 주택마련에 삶을 바치는 지금의 경쟁적이고 탐욕적인 삶형태를 지속할 수 있고 또 지속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택가격의 꾸준한 상승이 없이는 서울의 현재의 재생산구조가 유지될 수 없고 서울의 붕괴는 대한민국의 근본적 구조변화를 강제하리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흥미있는 것은 (3)이다. 필자는 "서울이라는 매력적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탐욕이 시민들의 시간과 돈과 건강과 행복할 기회를 모조리 빼앗아간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족히 수십조는 넘어가리라."라고 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민들의 시간과 돈과 건강과 행복할 기회를 빼앗가가는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림은 역전된다. 주변을 엮어짜 흡수하면서 공룡화한 서울이라는 대도시, 그 다중의 공통생활세계는 도리어 궁극적 흡혈자인 자본권력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대상이다. 대도시가 불행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도 삶은 중단되지 않으며 오히려 활성화된다. 기업에 의해 착취되지 않는 비고용다중들의 삶활동들은 부채에 의해 가치화될 수 있다. 그들의 생명, 시간, 행복은 각종의 부채로 누적되어 자본의 장부에 가치로, 자산으로 계상되기 때문이다.(여기서는 그 자산의 증권화를 통한 가공화, 유동화는 논외로 하자.)
문제는 이 메커니즘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채는 각종 형태(지폐, 어음, 수표, 국채, 증권 등)의 통화발행에 의해 자산화되는 데, 이것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발행과 환류의 상쇄를 통해서이다. 이 상쇄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느낌, 지각이 어느 곳에선가 나타날 때 신용관계는 깨어지고 발행과 환류의 순환구조는 갑작스럽게 붕괴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폭발적 악순환의 계기를 내포한 현재의 경쟁적 탐욕적 순환구조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전략을 택한다. 서울을 지키는 것이 자본을 지키는 것이고 권력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재벌에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돈으로) 세종시에 속한 수조원의 땅값 특혜를 제공하는 것1은, 서울을 지키는 것이 자본을 지키는 것이고 자본을 지키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는 혈세를 짜내는 것도 한몫한다는 자본의 지상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물론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이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이 고통에서 행복으로 역전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고통의 양을 줄이고 질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지연책이다. 문제는 자본관계 자체가 집적할 뿐만 아니라 집중시켜며 집중은 위계적 흡혈구조를 필연화하며 이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위로 오르기 위한 경쟁을 멈출 수가 없고 그래서 삶은 썩고 텅비게 되며 죽음충동만이 증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삶이 자본관계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다행인 것은 자본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큰 집적과 집중이 이루어지면 그럴수록 삶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해지며 붕괴의 계기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자본과 서울은 착취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부채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도 기업가 부채가 아니라 소비자들, 노동자들, 다중들의 부채에. 부채는 다중의 공통된 삶을 자산으로 재현하여 가치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적지 않은 국가 수준의 디폴트(default)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부채는 커지면커질수록 갚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성격전환한다. 신용에 의존하는 인지자본주의는 채무자들이 채권자들을 수탈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성, 부채관계에 의한 신용을 공통되기의 신용으로 대체해야 할 필연성을 매일매일 키우고 있다.

-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것이 과거에는 가난한 농민들이 생산한 곡물이었는데, 지금은 부유한 재벌이 차지하게 될 땅이다. [Back]
Pensu kiel singulara aŭtonoma marksisto, agadu kiel kosmopolitika esperantista homaranis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