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복지, 기본소득

Posted at 2010/01/24 01:48// Posted in 쓰기(skribi)/정치경제_PE
부채와 고전적 복지, 그리고 기본소득(혹은 더 강력한 보장소득형태)은 임금과는 별개의 소득 형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것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축소된 임금소득의 보완물로서 다중이 불가피하게 선택하거나(부채의 경우), 국가의 정책으로 선택되거나(고전적 복지), 혹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의해 조직된다. 이것들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삶의 요구에 대한 응답양식들이다.

이것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먼저 고전적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케인즈주의 하에서 수요관리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고전적 복지는 조건에 따른 선별적 복지이다. 특히 그것은 노동에 따른 소득이라는 관념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멍을 파고 다시 덮는 방식으로 노동을 하게 하면서 이루어지는 복지이다. 그래서 그것은 일반성을 결여했다. 복지적 사회안전망은 산업예비군을 유지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실패적 산업영역들(학술, 예술)에 대한 보조금을 통해 그 활동들을 기간산업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지식생산, 정보생산, 미적생산은 일종의 기간산업으로 된다. 물론  우리는 복지가 노동자의 힘에 대한 자본의 승인방식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득이 연대적으로 규정되었던 것은 바로 집단으로서의 노동계급의 힘에 의해 복지소득 형태의 다른 임금(사회적 정치적 임금)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일반화된 부채소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채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소득이 아니지만 사실상은 소득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살아 있을 수 있게 하며 활동하게 한다. 복지에 조건이 따라붙는다면 부채에는 그보다 더 강한 명령이 따라붙는다. 갚지 않으면 압류와 처벌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임금이 개인화되듯 부채는 소득을 철저히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사회연대 원리를 해체한다. 부채체제하에서 노동계급의 단합된 힘은 승인되지 않는다. 다만 개개인들이 생을 보존할 필요성에 대한 승인만이 약하게 인정된다. 아니다. 자본은 다중이 살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그러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부채에 대한 욕망을 갖게 만든다(삶정치).

기본소득은 부채에 뒤따르는 명령(생사여탈의 권력)이나 복지에 뒤따르는 조건과 선별의 철거를 요구하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이것은 소득을 직접적 노동(고용노동)으로부터는 분리시키지만 삶정치적 노동을 위시한 사회적 노동 일반에는 오히려 소득을 접근시키는 것이다. 삶정치적 노동의 시대에 삶은 노동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첩되며 잉여가치 창출은 직접적 노동에 의해서라기보다 삶노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살권리에 대한 기본소득의 주장은 삶정치적 노동에 소득을 제공하라는 요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결코 동정이나 시혜일 수 없고 살아 있는 자들의 당당한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당이나 국가의 정책이기에 앞서 다중들의 운동에 의해 요구되고 주장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2010/01/24 01:48 2010/01/2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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