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역사의 법칙이 아니다. 하지만 생물들 중에서 인간종은 더 나은 삶, 더 새로운 시간을 원한다. 인간들이 더 열악했던 삶,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어쩌면 더 나빠졌을 수 있는) 지금의 삶으로부터 더 나아지고 더 새로와지려는 열망의 산물이다. 진보가 있다면 (어떤 초역사적이고 추상적인 법칙의 실현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더 새로와지고 더 나아지려는 개개인들의 욕망의 결과로서이다.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이룬 삶보다 더 나쁜 삶을 가져오게될 모든 혁명은 결국은 실패한다. 자본주의는 이윤논리에 눈멀었지만 가부장제와 성차별, 궁핍과 고통, 인신적 예속, 인종적 지역적 민족적 편협성, 국가적 억압 등을 실제적으로 극복할 잠재력을 축적했다. 물론 그 잠재력이 이미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현실에서는 나열한 문제들이 더 악화되고 나빠진  상태를 체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만 국지적이고 모순적일 뿐인 그것들의 실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실현할 잠재력의 실재성(에 대한 직관)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섣부른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착취, 수탈, 강도, 사기에 의지하고 있고 그것이 낳는 결과들이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들에 다중들은 냉소적이거나 혹은 자본주의에 별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그 비판들을 수용한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이고 종교적인 비판뿐만 아니라 합리주의적인 비판도 포함된다. 그 비판들이 자본주의의 현실태를 정확하게 꼬집고 있을 때조차 실제로 그러하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종교적이어서는 안 되고 자본주의를 비종교적 종교로서 철저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은 그러므로 현실태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의 잠재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현실태를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그것의 잠재력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성장의 약속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불평등하고 모순투성이이지만 성장을 실제적으로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분배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의 잠재력을 파괴하거나 축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그것의 합리적 핵심을 살리면서 동시에 그것의 모순과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에 반성장이나 분배를 대치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자본의 성장에 삶의 성장을 대치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비판이란 실제적 대안성의 제시,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의 제시에 이를 때에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중요한 입지점이 될 수 있지만 생산력의 파괴와 축소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하는 현재의 농경주의적 생명주의 비판이 대안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중요하지만 복고적 이슬람주의가 대안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1 

오늘날 자본주의 제도교육은 명백히 부패했지만 대안적 교육기관들이 교육 소매상들처럼, 맑스가 말한 바 있는 철학적 소기업들처럼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뒷골목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데 머무르는 한에서는 아직 대안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늘날 세계시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계지평은, 그것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 하더라도 인류가 수천, 아니 수만년의 역사적 고투를 통해 도달한 지점이다. 그러므로 세계성을 살려나갈 능력이 없는 모든 것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대안력을 갖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클린턴이 알카에다를 성격규정하면서 사용한 용어, 관민족적 비국가 네트워크(transnational non-state network)는 비판의 무기를 무기의 비판으로 전환시키는 일에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다중지성에 적용한다면 "관지성적 비학교 네트워크"일 것이다.
  1. 하지만 알카에다와 같은 조직 모두를 복고적 이슬람주의로 취급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알카에다나 탈레반이 어떻게 미국과 같은 거대 국가를 위협하는 '관민족적 비국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그 동력과 관점이 무엇인지는 연구주제가 되어야 한다. http://is.gd/7Ybru 참조. [Back]
2010/02/09 08:22 2010/02/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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