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난 영화들은 위험의 크기와 절실성을 놓고 부단히 경쟁해 왔다. 바다에 빠진 비행기, 침몰한 배, 괴물의 침입 앞에선 인간, 일본이나 미국 등 한 나라 혹은 대륙을 덮친 해일이나 지진이나 화산 등등. 《2012》는 그 크기를 '글로벌라이즈'해서 지구 전체를 위험의 무대로 삼았다. 이 점에서 구난 영화는 또 다시 한 극점에 도달한다. 2008년 전 지구적 금융위기의 발발이 국지적 위기를 넘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것은 배경의 확장으로 나타날 뿐이다. 위험의 무대를 지구 전체로 확장했지만 위기가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진지성은 약화되었고 실감은 오히려 감소된다. 그 스토리가 의존하고 있는 기독교적 종교적 패러다임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영화 《2012》의 메시지는 그것의 기술적 새로움에 비해 너무 진부하다. 살아남으려면 부자가 되거나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너무 뻔뻔스럽고 대중영합적이며 세속적이다. 노동자들은 부자(10억 유로늘 낼 수 있는 사람들)나 권력자들(G8의 권력자들과 그 가족들)의 관용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1는 메시지는 가소로울 뿐만 아니라 구역질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2012는 첨단의 기술을 권력과 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반동적 정치영화의 일부이다. 오늘날 정치영화는 오락이라는 위장을 하고 나타나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 이러한 의미의 관용에 대한 비판으로는 웬디 브라운 지음,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10 참조. [Back]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