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수집에 대해 성찰한다. 그 성찰은 수집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리되지 않은 벤야민의 자료더미로부터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거친 대로 메모해 두자.
1. 수집, 모으기는 생명과 삶을 구성하는 원초적인 수단이다. 새들이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듯이, 인간들도 자연의 여러 소재들을 모아(채집) 생명을 유지했다.
2. 수집으로 나타나는 행위는 생명이 대상의 유성과 관계맺는 방식이다. 나뭇가지가 새들에게는 보금자리의 소재이고 수렵채취 시대의 인간들에게 식물과 동물은 자신들의 생명유지를 위한 살을 제공했다. 이것들은 존재론적 순환의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존재들은 각각의 존재들의 본질을 직관한다.
3. 새들은 나뭇가지를 소유하고 인간 종족은 자신이 딴 바나나나 자신이 잡은 동물의 살을 소유한다. 그러나 이 때의 소유는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소유는 존재론적 순환의 한 마디이다. 그것은 지속의 시간을 표현한다. 여기서 존재론적 물음, 지속의 시간은 존재자적 유용성의 시간과 대립하지 않는다.
4. 터부는 이 자연스런 수집활동이 사적 소유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금지한 자는 금지된 것을 타자로부터 박탈함으로써 소유한다. 여기서 과정은 붕괴하고 상태가 지배적으로 된다. 공통되기의 과정에서 추상되고 떼어내어진 것, 그것이 터부이다.
5. 사적 소유는 터부의 발전태이다. 그것은 박탈을 통한 소유를 반복한다. 교환가치가 지배하고 상품이 존재들의 존재형식이 되면서 교환가능성이라는 유용성이 지배적 유용성으로 자리잡고 다른 유용성들은 억압된다. 그럼에도 노동계급은 상품들을 교환가능성이라는 유용성보다는 그것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유용성과 관계맺는 존재이다.(C---M---C) 부르주아지에 비해 프롤레타리아가 존재론적 감각과 사유를 더 깊이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맑스가 사적 소유는 폐지하되 개인적 소유는 복구해야 한다고 했을 때, 소유의 의미는 달라진다. 전자는 상태로서의, 그것도 법인된 상태로서의 소유가, 후자에서는 생명과정의 계기로서의 소유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6. 수집행위는 시장화되고 상품화되어 가치축적의 수단으로 되었다. 이 맥락 속의 수집가는 더 이상 고전적 수집가가 아니라 축적가이다.
7. 수집물들이 공공예술, 공공문화로 발전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 때 수집행위는 가치축적보다는 권력실행의 맥락 속에서 더 많이 놓인다. 박물관, 도서관, 전시회, 박람회 등은 기억들, 문화생산물들, 사유생산물들을 수집하여 보여주곤 하는 데 그 보여줌은 특정한 권력형태를 뒷받침하면서 그것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