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를 제국주의 침략과 동일시하거나 자본의 일방적 폭력으로 정의하는 것으로는 지난 30년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신자유주의가 제국주의적 침략이었다면 흔히 신자유주의 종주국으로 간주되는 미국에 대한 수 많은 나라들 및 그 나라의 국민들의 조용한 수용,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1945년 이전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해방투쟁과는 비교될 수 없는, 이 종주국에 대한 저항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이른바 종주국인 미국이 신자유주의 30년을 경유하면서 식민지를 강탈한 성과로 강국이 되기는커녕 천문학적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빚쟁이 나라로 전락하여 패권 상실의 위기에 놓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만약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일방적 폭력의 효과라고 본다면 그 일방적 폭력이 순식간에 세계제패의 논리로 정착되는 것을 순순히 허용할 만큼 그 폭력이 강력하고 민중들이 무력했다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를 통치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며 그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공위국면에서 실제적 대안을 찾는 일의 전제조건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주의에 대항한 아래로부터의 투쟁들에 맞서 케인즈주의를 폐기하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그 투쟁들의 힘을 축적 동력으로 흡수하면서 케인즈주의를 국제적 수준으로 확장하고 재편했다는 가설에 대해, 그리하여 케인즈주의가 그 고유의 주체성을 생산했듯이 신자유주의도 그 고유의 주체성을 생산해 냄으로써 지난 30년의 순환을 끌고 왔다는 가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케인즈주의는 1917년 혁명에서 나타난 노동자의 불복종성에 대한 자본의 적응방식이자 자본의 사회화, 사회화된 자본 범주를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한 과정이었다. 이것은 정도와 양태의 차이는 있었지만 동구의 사회주의, 서구의 케인즈주의,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의 파시즘이 공유한 과정이었다. 일본의 총력전 학파는 일본 파시즘이 노동계급을 축적 드라이브 속에 끌어들였고 사회주의자들조차도 대동아공영 논리에 흡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후 일본 민주주의는 이 총력전 논리의 연장이지 결코 그것과의 단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분석시각은 일본 파시즘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20세기 자본주의의 일반문법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0세기의 자본주의들은 노동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본에 내부화함으로써 자본과 노동의 총력전을 수행하는 체제였다. 소련의 인민헌법, 이탈리아의 노동헌법 등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노동의 힘은 헌법 속에 새겨졌고 케인즈는 노동의 힘에 대한 승인만이 공황에서 자본을 구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이 시기에 인민대표자회의, 노사정위원회 등으로 표현되는 계급간 협상과 타협의 기구들이 발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산성 임금, 복지혜택, 사회안전망, 대중소비사회 등은 노동의 힘이 승인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에 노동계급은 부분적으로 권력을 분점했고 생산성 임금과 사회적 임금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 노동조합과 노동당은 케인즈주의의 고유한 생산주체성으로 자리잡았고 이것은 경제적 생산의 수준에서는 테일러주의, 사회적 분배의 수준에서는 포드주의, 정치적 통합의 수준에서는 국가개입의 일반화에 기초한 케인즈주의가 가동되는 삼위일체 구조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체제는 대외적으로는 국경을 따라 분할된 체제였고 내부적으로는 배제되는 계급들을 생산하는 체제였다. 1968혁명으로 상징되는 저항은 이들 배제된 계급들(비보장노동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노동거부를 통해 테일러주의를 공격하고 정치적 임금요구를 통해 포드주의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관료주의 비판을 통해 국가개입방식의 문제를 비판했다. 신자유주의가 이 운동과 혁명에 대한 대응양식임은 이미 반복해서 말한 바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대응양식은 무엇이었는가?

노동거부에 대한 대응은 첫째 생산자본의 금융자본으로의 전화였으며 둘째 기계화와 정보화를 통한 정리해고였다. 이로써 노동거부의 예봉은 꺾인다. 자본이 전술적으로 노동에 대한 필요성을 축소시키는 현실에서 노동거부는 오히려 자본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으로, 즉 정리해고를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기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이러한 대응의 효과는 오늘날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양산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리하여 케인즈주의 삼위일체 총력전 체제의 외부에 발생하고 있었고 68혁명의 추동력이었던 이 배제된 제4지대, 사회적 사막화 지대는 더 거대해진다. 고용되지 못한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 임금을 받기는커녕 전혀 지불받지 못하거나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이 지대는 프랑스의 2005년 방리외 봉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세계 전역의 사회심층에 가연성 폭발물로 잠복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오직 간헐적으로만 그것도 국지적으로만 폭발하도록 관리되어온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채무폭탄이다. 지난 30년간 거대해진 소비자신용, 즉 가난한 사람들의 채무는 생존의 위기상황 속에서 그 위기의 폭발을 미봉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채무는 형식과 절차는 다르지만 케인즈주의 하에서 복지금이 수행하던 역할을 대신한다. 소비자신용이 사람들의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빨아들이는 흡혈장치임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그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는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임도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채무의 개인화 혹은 개인화된 채무는 경제적 방식으로 수행되는 통치수단이기도 하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산업국의 기능을 생각해보자. 테일러주의가 케인즈주의 시대에는 공장수준에서 작동했다면 신자유주의 하에서 테일러주의는 몇 개의 국가 수준에서 작동한다. 중국과 인도, 특히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테일러주의의 농축지대로 기능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중국 노동자의 운명으로 부과되었고 중국의 공장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저가의 상품들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케인즈주의적 복지혜택(외부로부터의 가격인하를 통한 임금상승 효과)처럼 주어졌다. 이런 조건 하에서 (크게 보아) OECD 나라들의 조직된 노동자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외에 저축 이자와 연금 보장, 부동산 임대료, 주식 배당금 등 다양한 형태의 지대(rent)를 향유할 수 있는 지대수령-임금노동자계급으로 배치되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수혜집단으로서 신자유주의 고유의 내부 주체성을 구성한다. 이 주체성은 오늘날 대기업 노동조합의 행동양식에서 확인되듯이 신자유주의의 개혁을 원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해체를 원치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수준의 변화는 어떠한가? 케인즈주의가 폐기되었다는 것은 속단이다. 신자유주의 제국의 군주국인 미국은 국가개입을 오히려 더 강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적 케인즈주의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재정적자를 누적시켜온 주요 원인이다. 1980년부터 수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 1991년의 걸프전, 그에 이어진 발칸전, 아프가니스탄전, 2차 걸프전, 그리고 마침내 테러에 대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전쟁을 생리고 삼는 국가로 전화했고 거대한 군비지출이 여기에 수반되었다. 저임노동자들에 대한 거대한 착취를 통해 축적된 중국의 거대한 부는 미국의 국채 구입비로 다시 유입되었고 이것은 신용불량자에게까지도 신용을 줄 수 있는 풍부한 저수원(서브프라임 모기지)으로 기능했다.

이상의 고찰은 신자유주의 제국이 세계적 수준으로 확장되고 재편되고 전환된 케인즈주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제국의 최상층에서 국가주도의 케인즈주의가 작동하며 그 중간층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잉여가치 구성물로서의 지대를 분배받는 포드주의 주체성을 구성하며 그 아래에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신흥산업국 노동자들이 테일러주의적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최하층에서는 실업자를 비롯하여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개인화된 채무로 연명하는 구조. 거꾸로는 최하층의 불불노동이 금융축적의 원동력이 되고 저임노동자들의 노동착취에 기초한 부 및 정규직 노동계층의 지대가 금융자본의 밑천으로 된다. 이 자본은 다시 미국 국채 구입비로 전용되어 미국으로 하여금 수십년간이나 군사무기에 무한대의 지출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연속전쟁을 통한 공포를 일상화할 수 있게 했다. 40여대의 전투기가 출항준비를 갖추고 있는 운동장 세 개 규모의 갑판, 원자력 발전소를 내장하여 20여년간 어떤 에너지공급도 없이 항해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 내부에서 자체 제작되는 신문 방송 시스템 등을 갖춘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이 메커니즘에서 생산된 괴물의 하나일 것이다.
2010/07/24 11:47 2010/07/2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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