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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의식을 의식된 존재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의식은 존재이다. 반영론으로 해석되기보다 실재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미 설정된 주체가 그에 상응하는 계급의식을 갖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 자체가 소수계급이며 다양성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자본에게 끌려 들어와 있는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히드라로 사유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의 지식인이란 복수적이며 다양한 지성의 네트워크로만 사유될 수 있지 응고된 집단으로 사고될 수 없다. 당은 그 소수적 지성들의 네트워크 이상일 수 없다. 그것은 특이성과 공통성에 따라 움직일 뿐 보편성과 개별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람시는 지식인과 사회집단을 연결짓고 사회집단을 경제의 맥락에서 사고하는 한계를 갖는다. 그는 다중지성을 풍부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되고 전문화된다고 본다. 프롤레타리아를 경제적 이해집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지식인이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환상이라는 테마는 지성의 존재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관계가 집단으로 환원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푸코에게서 지식은 지식 외의 근거에 의지하지 않고 그 자체로 권력들로 기능한다. 소수적인 무수한 지식의 그물관계가 있고 그것이 국가와 같은 것에 의해 집약된다. 국가적 집약 말고 정원과 같은 연결도 가능할 것이다. 푸코는 다중지성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전문성으로 그것이 환원될 때, 다중성은 다시 엘리뜨주의적으로 제한된다. 전문성은 다중성의 특이함의 능력이다.
맑스주의의 역사라고 하지 말고 진화라고 하자.
역사는 동일성의 이행임에 반대 진화는 차이의 도래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맑스는 의식을 의식된 존재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의식은 존재이다. 반영론으로 해석되기보다 실재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미 설정된 주체가 그에 상응하는 계급의식을 갖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 자체가 소수계급이며 다양성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자본에게 끌려 들어와 있는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히드라로 사유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의 지식인이란 복수적이며 다양한 지성의 네트워크로만 사유될 수 있지 응고된 집단으로 사고될 수 없다. 당은 그 소수적 지성들의 네트워크 이상일 수 없다. 그것은 특이성과 공통성에 따라 움직일 뿐 보편성과 개별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람시는 지식인과 사회집단을 연결짓고 사회집단을 경제의 맥락에서 사고하는 한계를 갖는다. 그는 다중지성을 풍부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되고 전문화된다고 본다. 프롤레타리아를 경제적 이해집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지식인이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환상이라는 테마는 지성의 존재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관계가 집단으로 환원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푸코에게서 지식은 지식 외의 근거에 의지하지 않고 그 자체로 권력들로 기능한다. 소수적인 무수한 지식의 그물관계가 있고 그것이 국가와 같은 것에 의해 집약된다. 국가적 집약 말고 정원과 같은 연결도 가능할 것이다. 푸코는 다중지성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전문성으로 그것이 환원될 때, 다중성은 다시 엘리뜨주의적으로 제한된다. 전문성은 다중성의 특이함의 능력이다.
맑스주의의 역사라고 하지 말고 진화라고 하자.
역사는 동일성의 이행임에 반대 진화는 차이의 도래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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