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원컨 원치 않건 모두 공무원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公務圓이 아닌 共務圓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네트워크, 즉 신체적 정신적 네트워크가 우리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소득은 (그 소득상의 차이, 차별, 비태칭, 불평등을 사상하면) 賃金보다 奉給의 성격을 더 크게 갖는다. 형태상으로 임금은 완강하게 잔존하고 있지만 임금제도는 사실상은 폐지되었다. 맑스의 목표였던 임금제도의 폐지는 이제 이 경향을 실질적으로 완결시키는 성격의 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만 공적 자금의 문제와 임금의 문제 모두에 혁명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통 (사회민주적 민주사회적 민족민주적) 좌파들이 우파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방법이 모호해진 것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이다. 소련이 놀라울 정도로 자본주의를 닮아 있었고 한국과 서방이 놀라울 정도로 사회주의를 닮아 있었다는 점 때문에 우파와 좌파의 구분기준이 점점 도덕적 수준으로 옮아갔다. 비판적 언론, 좌파 야당들은 우파의 도덕성 부족을 지적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통합민주당이 이명박의 도덕성 문제, 자질 문제에 온 에너지를 쏟을 때,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통합민주당과 구별되는 어떤 변별적 관점도 제시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삶의 문제 전체를 놓아둔 채그 스펙타클에 넋놓고 있을 때 다중들은 그들로부터 한참 멀어져 버렸다.
*도덕적 관점, 선악의 관점, 이원적 분할의 관점이 휩쓸 때 정치는 교조적으로 되고 삶정치, 생물정치는 억압된다. 도덕적 잣대는 개개인에게 거대한 몽둥이처럼 내리쳐진다. 안티북한(반북반공)의 논리가 안티조선운동에 전염되지 않았는가? 다양한 안티 운동과 그 정서는 개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역량을 고갈시켜 버린다. 안티와는 다른 counter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
*학진 자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감성은 공적 자금이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그래서 학진자금 수령자는 점점 공공연히 체제내적으로 되고 그것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예 그것을 수령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자기위안한다. 다시 도덕적 척도가 삶정치를 대신하고 받았는가 안받았는가 받을 것인가 안 받을 것인가가 재판관의 판봉처럼 우리의 의식을 내리누른다. 그래서 공적자금에 대한 비판적 혁명적사유는 폐색된다. 공적 자금에 대한 공적 토론은 불가능하게 된다. 어떠한 발언이든 "저 더러운 것"이라는 관념 매트릭스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직접적 관련을 다소 유예하면서 이에 대한 공론을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전향, 준법서약, 조선일보, 학진....우리의 역량을 안팎에서 고갈시키는....생화학 무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도덕적 비판, 권위주의 정부로의 회귀론은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서 삶권력으로서 기능하는 측면을 보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백골단 지배, 즉 강권 지배의 복귀론은 법률적 경제적 이념적 지배가 노무현 정부를 이어 여전히 우세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대응을 낡은 방식으로 조직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 (사회민주적 민주사회적 민족민주적) 좌파들이 우파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방법이 모호해진 것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이다. 소련이 놀라울 정도로 자본주의를 닮아 있었고 한국과 서방이 놀라울 정도로 사회주의를 닮아 있었다는 점 때문에 우파와 좌파의 구분기준이 점점 도덕적 수준으로 옮아갔다. 비판적 언론, 좌파 야당들은 우파의 도덕성 부족을 지적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통합민주당이 이명박의 도덕성 문제, 자질 문제에 온 에너지를 쏟을 때,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통합민주당과 구별되는 어떤 변별적 관점도 제시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삶의 문제 전체를 놓아둔 채그 스펙타클에 넋놓고 있을 때 다중들은 그들로부터 한참 멀어져 버렸다.
*도덕적 관점, 선악의 관점, 이원적 분할의 관점이 휩쓸 때 정치는 교조적으로 되고 삶정치, 생물정치는 억압된다. 도덕적 잣대는 개개인에게 거대한 몽둥이처럼 내리쳐진다. 안티북한(반북반공)의 논리가 안티조선운동에 전염되지 않았는가? 다양한 안티 운동과 그 정서는 개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역량을 고갈시켜 버린다. 안티와는 다른 counter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
*학진 자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감성은 공적 자금이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그래서 학진자금 수령자는 점점 공공연히 체제내적으로 되고 그것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예 그것을 수령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자기위안한다. 다시 도덕적 척도가 삶정치를 대신하고 받았는가 안받았는가 받을 것인가 안 받을 것인가가 재판관의 판봉처럼 우리의 의식을 내리누른다. 그래서 공적자금에 대한 비판적 혁명적사유는 폐색된다. 공적 자금에 대한 공적 토론은 불가능하게 된다. 어떠한 발언이든 "저 더러운 것"이라는 관념 매트릭스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직접적 관련을 다소 유예하면서 이에 대한 공론을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전향, 준법서약, 조선일보, 학진....우리의 역량을 안팎에서 고갈시키는....생화학 무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도덕적 비판, 권위주의 정부로의 회귀론은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서 삶권력으로서 기능하는 측면을 보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백골단 지배, 즉 강권 지배의 복귀론은 법률적 경제적 이념적 지배가 노무현 정부를 이어 여전히 우세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대응을 낡은 방식으로 조직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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