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희망과 회의의 두 얼굴 야누스적 동아시아 담론
2007.02.07
게시글 주소 : http://komun.net/zbxe/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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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조체는 amelano에 의한 것)
필자는 지난 두 번의 글을 통해 다소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하나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자화상이었고 -드라마 속 고대사: 단일민족의 판타지(9월호)- 다른 하나는
이웃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에 대해서였다. -울타리 저편 이해하기(10, 11월호)- 두 번의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 역시 한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국가이야기의 상극에 의한 역사분쟁을 해결하려는 나름의 시도였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했다고 자평한다.
이번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이다. 최근에는 역사적 갈등 혹은 분쟁을 경험하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지역들을 중심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일국 중심적 역사이해를 폐기하고 지역을 단위로 하여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하는 이른바 ‘동아시아’라는 지역도 그 중 하나다.
이 논의에 따르면,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은 분명히 실현 가능하다. 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을 통해 여러 가지 역사분쟁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과연 궁극적인 목적으로, 혹은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동아시아’가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동질적인 역사경험을 해왔는지, 그리고 ‘동아시아’는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개념인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냥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만 같은 ‘동아시아’에 관한 논의, 즉 동아시아 담론에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새삼스런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1. 새삼스런 질문: 동아시아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책이나 논문 제목에서 ‘동아시아’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요즘 출간되는 것들을 확인해보면 ‘동아시아’가 빠져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나 인문ㆍ사회계열의 각종 저술을 보면,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분석패턴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대중들이 ‘동아시아’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데 반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두는 경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원래 ‘동아시아’라는 단어는 외부 사람들인 유럽인들에 의해 명명된 편의적인 지역 테두리였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자명한 지역, 고유의 문화권이라기보다는 어느 시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지역 개념이라고 해두는 편이 옳다. 유럽에 대한 타자로서‘동아시아’라는 말이 성립되었지만, 그 개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바로 일본 학자,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였다. 1960~70년대부터 활발한 연구를 전개해온 니시지마는 동아시아 세계를 ‘문화권과 정치권이 일체가 된 자기 완결적인 세계’라고 정의했다.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을 포함하는 한자문화권을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불렀고, 그 배경에는 책봉체제 -주로 6~8세기에 걸쳐 중국 황제와 주변민족-주로 중국 동쪽 지역의 나라들의 수장 사이에 관작을 매개로 맺어진 정치 관계, 군신 관계를 가리킨다.- 라는 독자적인 정치구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니시지마가 정의한 ‘동아시아’는 이후 1980년대 들어와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이른바 신흥 공업 경제 지역(NIEs)의 경이적인 경제 발전 동향에 촉발되어 이 지역을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 중국문화권 등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문화권으로서의 ‘동아시아’가 주목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향에 따라 이 지역이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발전한 배경을 한자, 유교와 같은 문화적 동일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논의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전까지 근대화의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취급되어 온 유교가 경제발전 요인으로 재평가되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이질성보다도 동질성이 강조되게 되었다. 이후 하마시다 타케시(濱下武志)를 비롯한 학자들이 니시지마의 정의를 수정, 보완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영역과 의미를 재해석하게 되었고, 동아시아 담론을 학술적으로 주도해 나가게 되었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아시아 담론이 활개를 치지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이 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 말은 일본제국의 정치적 언설로 작용한 ‘동아’(東亞)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시아협력체’, ‘동아공영체’의 단계를 거쳐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정치적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 바로 ‘동아’라는 말이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형태는 ‘동아’에서 ‘동아시아’로 변모했지만 그 언설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전근대에는 이른바 동아시아 지역의 맹주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동아시아’라는 말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본의 경우에도, ‘동아’라는 말이 패전 이후 일정기간동안 그들의 언어공간에서 배제되었지만, 경제부흥과 더불어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니시지마의 분석에 의하면 동아시아 세계는 기본적으로 책봉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이 책봉체제가 영향을 미치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따라서 동아시아 세계의 공간적 범주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규정된 동아시아 세계는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했다. 때로는 한, 중, 일에 국한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때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혹은 인도 등 남부아시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동아시아’역시 여전히 유동적인 실체이며, 언설의 맥락에 따라 공간의 외연이 변화되는 실체이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닌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사전 정의와 개념설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본디 한반도와 중국 간, 한반도와 일본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과 그 해결점을 노정하려 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반도, 중국, 일본이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2. 역사분쟁 시대의 장밋빛 미래, 동아시아 담론 : 그 감춰진 얼굴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세계를 논할 때면, 책봉. 조공의 양 체제가 언제나 거론되기 마련인데 이것으로 그 개념의 구심점에는 중국적 화이질서로서의 중화(中華)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는 적어도 역사적인 실체로서 중화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전근대의 동아시아가 중화라는 구심점에 이끌리고 있었다면,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는 일본제국에 이끌려 온 감이 없지 않다. 태평양전쟁을 끝으로 일본제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시 종말을 맞이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당시 일본이 주창했던 ‘대동아’의 잔상이 동아시아 담론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지성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동아시아’ 이다. 국민국가라는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라는 것에 대해 100%의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담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술했듯이, ‘동아시아’라는 틀은.제국의 기억을 가진. 일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불신감과 경계심은 상상 외로 큰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역사분쟁은 대부분 자기의 역사인식은 옳고 이웃 나라의 역사인식을 틀렸다는 ‘국사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역사인식의 상이함에서 출발하는 반목과 갈등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이웃나라 자체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분쟁이 ‘국사체제’때문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사체제’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사체제’를 대체할 구체적이면서 대안적인 인식 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창된 것이 바로 ‘동아시아 담론’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이러한 동아시아 담론이 과거 ‘대동아공영권’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동아시아 세계론에 대해서는 일찍이 식민지 시대에 한국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였던 ‘만선일체론’(滿鮮一體論)이나 ‘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처럼 다시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사, 한국문화를 매몰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이러한 염려를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동아시아 세계의 축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각자의 전략에 의해 동아시아 중핵의 위치를 점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들 양국에게 있어서 ‘동아시아’란 다자적인 구심점을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층위가 있는 집합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뭉치기는 뭉치되 그 중심에는 내가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적 내셔널리즘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외연을 확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화평굴기론’(和平屈起..) 평화를 지향하며 발전을 도모하자는 언설, 일본의 ‘보통국가론’은 그들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지향점이 어디쯤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라는 말 자체에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여망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들이 가지는 지향의 명분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면밀히 검토해보면, 여기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경제협력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나온 구상이다. 이 경우, 평화라는 것도 ‘특정한’국가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주변지역의 안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그럴듯한 허울을 쓰고 있지만, EU, NAFTA, ASEAN 등의 주변 지역공동체에 ‘대항하는’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지역적 통합, 경제협력체 구성은 세계적인 현상이라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이러한 성격의 동아시아 공동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존 국민국가의 틀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이익을 위해 통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국가의 외연이 확대된 것일 뿐, 배타적 이익을 고수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전의 패러다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규모의 확대로 인해 지역과 지역의 이해가 상충할 때, 갈등의 규모는 국가와 국가 간의 그것에 비해 몇 배나 더 커질 것이다. 그 속에 평화와 공존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머지 하나는, 일시적 위기타개책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쟁은 차치해 두더라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와 공존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중심에 경제의 논리가 자리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개별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합집산을 전제로 한 공동체라면,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담론이라도 자기중심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는 담론 그 자체가 곧바로 장밋빛 미래일 수는 없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겠다.
3. 자극과 반응: 동아시아 담론과 한국사회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한국사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너무 이상적이라서 아직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역사를 이해하는 단위로서 여전히 국가가 유효하다. 이들은 어느정도의 융통성도 갖추고 있어서 이웃 나라의‘객관적인’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 반면 단 한 가지라도 불순한 기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한국의 국사와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웃 나라 국사는 왜곡이며,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대응해 나가야할 대상이다.
좋든 싫든 이러한 입장은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구성원은 정부를 비롯하여 학계, 민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구성원의 공통점을 보면, 우선 고구려ㆍ발해의 역사수호를 시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독도는 말할 것도 없다. 국제법상 한국의 영토가 아닐지라도, 역사주권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변 국가의 도발행위에 대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만이 역사주권을 지켜내고 민족의 자부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러한 주장의 논리적 맥락은 이웃 나라의 자기중심적 역사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적대적 공범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해온 지 수 년이 흘렀지만,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골이 더욱 선명해져 가는 것을 보면 문제해결의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최근 방송, 금융, 학계, 교육계,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 입장을 한층 굳건히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TV를 통해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을 본다. 드라마를 보면서 고구려ㆍ발해는 한민족이 세운 국가임을 각인시키고, 중국(한나라와 수ㆍ당나라)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고구려 지킴이 통장’을 개설한다. 또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발표장을 찾아다닌다. 또한 자신의 나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본다. 충성심이 일정 정도 확인되면, 자신감과 만족을 갖고 공무원이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국민’들은 역사(특히, 국사)를 지키는 한 명의 투사가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원인은 국사교육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점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오히려 대응 일변도를 벗어나 상호 이해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앞의 입장과는 달리 이미 역사를 통한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동아시아’는 현안이 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만들기도 바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최근 몇 년 간 전문 집단에 의해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최근 사례를 두 가지만 소개한다면, 『미래를 여는 역사』(2005, 한겨레신문사)와『마주보는 한일사 1, 2』(2006, 사계절)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라는 단체에서 제작하였다. 한, 중, 일의 학자, 교사,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기획, 집필하여 3국에 동시 출판한 책으로 출판 당시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후자의 경우,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가 한일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필, 편집, 번역하여 양국에서 동시 출판하였던 책이다. 두 책 모두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3국, 혹은 한일 양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성과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래를 여는 역사』의 경우 근현대사만을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동아시아 3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한, 중, 일 각각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다가 엮어놓았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마주보는 한일사 1, 2』또한 한, 일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모아두었을 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람들이 공통으로 삶을 영위했다는 관점에서의 서술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공통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공통의 역사경험을,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로 서술해야하는 것임에도 (이렇게 한다고 공통의 역사인식이 생길지도 미지수지만), 기존의 상이한 관점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이 얼마만큼 유효할지 의문이다.
그래도 여태껏 접하기조차 힘들었던 내용을 보다 쉽게 다루었고, 더군다나 그것을 중등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는 점은 매우 높이 살만 하다. 두 가지 저작 모두, 형식이나 내용에서는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동아시아 구성원들이 상호간의 역사인식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4. 강박관념에서의 탈피: 이해와 인정의 역사인식
‘동아시아’는 국민국가를 아우르는 지역적 단위로서 국민국가의 틀이 양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시아’가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는 그자체로 정치적, 전략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 사회 간의 우직한 교류만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동아시아’의 어원적 역사를 보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속성들에 대해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내셔널히스토리의 대안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인식을 내세우곤 하지만, 동아시아라는 지역개념 내부에 공통의 역사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화를 중심으로 한 책봉체제나 일본제국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권의 실체가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그것은 상흔을 간직한 공동체의 모습들이었고 일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 자체가 미래지향적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이야기의 상극이 초래한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역사를 국사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포괄적 범주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고 상대방의 낯선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해와 인정이 바탕이 되면, 역사를 인식하는 단위가 그 무엇이 되었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일정한 틀 속에서 역사를 인식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를 지속적으로 상대화하고,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야누스적 실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그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속에 살아가는 각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며, 또 그 지역 속에 살아가는 생활자들의 상호 교류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이해하자는 조심스런 제언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읽을거리
- 백영서 외,『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제국을 넘어서 공동체로』, 창비, 2005.
- 고야스 노부쿠니,『동아, 대동아, 동아시아』, 역사비평사, 2005.
- 김기봉,『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푸른역사, 2006.
- 강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뿌리와 이파리, 2002.
- 전국역사교사모임ㆍ역사교육자협의회 편,『마주보는 한일사 1, 2』, 사계절, 2006.
-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 편,『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 ..成市(이성시),「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만들어진 고대』, 2001.
- 권용혁,「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 모색」,『사회와 철학』5, 사회와철학연구회, 2003.
- 이상혁,「친미와 경제내셔널리즘의 이중성」,『민족연구』25, 한국민족연구원, 2006.
- 조성환,「세계화시대의 동아시아민족주의」,『동양정치사상사』5-1,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6.
- 佐佐木一.. (사사키 이치로),「협력공동의 동아시아세계형성」,『당대비평』5, 1998.
정순일 | 대학원 사학과 동양사전공 석사과정 | taijired@hanmail.net
이번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이다. 최근에는 역사적 갈등 혹은 분쟁을 경험하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지역들을 중심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일국 중심적 역사이해를 폐기하고 지역을 단위로 하여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하는 이른바 ‘동아시아’라는 지역도 그 중 하나다.
이 논의에 따르면,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은 분명히 실현 가능하다. 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을 통해 여러 가지 역사분쟁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과연 궁극적인 목적으로, 혹은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동아시아’가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동질적인 역사경험을 해왔는지, 그리고 ‘동아시아’는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개념인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냥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만 같은 ‘동아시아’에 관한 논의, 즉 동아시아 담론에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새삼스런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1. 새삼스런 질문: 동아시아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책이나 논문 제목에서 ‘동아시아’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요즘 출간되는 것들을 확인해보면 ‘동아시아’가 빠져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나 인문ㆍ사회계열의 각종 저술을 보면,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분석패턴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대중들이 ‘동아시아’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데 반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두는 경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원래 ‘동아시아’라는 단어는 외부 사람들인 유럽인들에 의해 명명된 편의적인 지역 테두리였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자명한 지역, 고유의 문화권이라기보다는 어느 시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지역 개념이라고 해두는 편이 옳다. 유럽에 대한 타자로서‘동아시아’라는 말이 성립되었지만, 그 개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바로 일본 학자,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였다. 1960~70년대부터 활발한 연구를 전개해온 니시지마는 동아시아 세계를 ‘문화권과 정치권이 일체가 된 자기 완결적인 세계’라고 정의했다.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을 포함하는 한자문화권을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불렀고, 그 배경에는 책봉체제 -주로 6~8세기에 걸쳐 중국 황제와 주변민족-주로 중국 동쪽 지역의 나라들의 수장 사이에 관작을 매개로 맺어진 정치 관계, 군신 관계를 가리킨다.- 라는 독자적인 정치구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니시지마가 정의한 ‘동아시아’는 이후 1980년대 들어와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이른바 신흥 공업 경제 지역(NIEs)의 경이적인 경제 발전 동향에 촉발되어 이 지역을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 중국문화권 등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문화권으로서의 ‘동아시아’가 주목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향에 따라 이 지역이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발전한 배경을 한자, 유교와 같은 문화적 동일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논의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전까지 근대화의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취급되어 온 유교가 경제발전 요인으로 재평가되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이질성보다도 동질성이 강조되게 되었다. 이후 하마시다 타케시(濱下武志)를 비롯한 학자들이 니시지마의 정의를 수정, 보완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영역과 의미를 재해석하게 되었고, 동아시아 담론을 학술적으로 주도해 나가게 되었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아시아 담론이 활개를 치지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이 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 말은 일본제국의 정치적 언설로 작용한 ‘동아’(東亞)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시아협력체’, ‘동아공영체’의 단계를 거쳐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정치적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 바로 ‘동아’라는 말이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형태는 ‘동아’에서 ‘동아시아’로 변모했지만 그 언설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전근대에는 이른바 동아시아 지역의 맹주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동아시아’라는 말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본의 경우에도, ‘동아’라는 말이 패전 이후 일정기간동안 그들의 언어공간에서 배제되었지만, 경제부흥과 더불어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니시지마의 분석에 의하면 동아시아 세계는 기본적으로 책봉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이 책봉체제가 영향을 미치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따라서 동아시아 세계의 공간적 범주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규정된 동아시아 세계는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했다. 때로는 한, 중, 일에 국한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때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혹은 인도 등 남부아시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동아시아’역시 여전히 유동적인 실체이며, 언설의 맥락에 따라 공간의 외연이 변화되는 실체이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닌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사전 정의와 개념설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본디 한반도와 중국 간, 한반도와 일본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과 그 해결점을 노정하려 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반도, 중국, 일본이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2. 역사분쟁 시대의 장밋빛 미래, 동아시아 담론 : 그 감춰진 얼굴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세계를 논할 때면, 책봉. 조공의 양 체제가 언제나 거론되기 마련인데 이것으로 그 개념의 구심점에는 중국적 화이질서로서의 중화(中華)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는 적어도 역사적인 실체로서 중화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전근대의 동아시아가 중화라는 구심점에 이끌리고 있었다면,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는 일본제국에 이끌려 온 감이 없지 않다. 태평양전쟁을 끝으로 일본제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시 종말을 맞이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당시 일본이 주창했던 ‘대동아’의 잔상이 동아시아 담론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지성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동아시아’ 이다. 국민국가라는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라는 것에 대해 100%의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담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술했듯이, ‘동아시아’라는 틀은.제국의 기억을 가진. 일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불신감과 경계심은 상상 외로 큰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역사분쟁은 대부분 자기의 역사인식은 옳고 이웃 나라의 역사인식을 틀렸다는 ‘국사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역사인식의 상이함에서 출발하는 반목과 갈등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이웃나라 자체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분쟁이 ‘국사체제’때문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사체제’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사체제’를 대체할 구체적이면서 대안적인 인식 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창된 것이 바로 ‘동아시아 담론’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이러한 동아시아 담론이 과거 ‘대동아공영권’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동아시아 세계론에 대해서는 일찍이 식민지 시대에 한국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였던 ‘만선일체론’(滿鮮一體論)이나 ‘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처럼 다시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사, 한국문화를 매몰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이러한 염려를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동아시아 세계의 축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각자의 전략에 의해 동아시아 중핵의 위치를 점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들 양국에게 있어서 ‘동아시아’란 다자적인 구심점을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층위가 있는 집합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뭉치기는 뭉치되 그 중심에는 내가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적 내셔널리즘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외연을 확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화평굴기론’(和平屈起..) 평화를 지향하며 발전을 도모하자는 언설, 일본의 ‘보통국가론’은 그들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지향점이 어디쯤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라는 말 자체에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여망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들이 가지는 지향의 명분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면밀히 검토해보면, 여기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경제협력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나온 구상이다. 이 경우, 평화라는 것도 ‘특정한’국가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주변지역의 안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그럴듯한 허울을 쓰고 있지만, EU, NAFTA, ASEAN 등의 주변 지역공동체에 ‘대항하는’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지역적 통합, 경제협력체 구성은 세계적인 현상이라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이러한 성격의 동아시아 공동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존 국민국가의 틀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이익을 위해 통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국가의 외연이 확대된 것일 뿐, 배타적 이익을 고수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전의 패러다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규모의 확대로 인해 지역과 지역의 이해가 상충할 때, 갈등의 규모는 국가와 국가 간의 그것에 비해 몇 배나 더 커질 것이다. 그 속에 평화와 공존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머지 하나는, 일시적 위기타개책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쟁은 차치해 두더라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와 공존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중심에 경제의 논리가 자리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개별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합집산을 전제로 한 공동체라면,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담론이라도 자기중심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는 담론 그 자체가 곧바로 장밋빛 미래일 수는 없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겠다.
3. 자극과 반응: 동아시아 담론과 한국사회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한국사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너무 이상적이라서 아직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역사를 이해하는 단위로서 여전히 국가가 유효하다. 이들은 어느정도의 융통성도 갖추고 있어서 이웃 나라의‘객관적인’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 반면 단 한 가지라도 불순한 기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한국의 국사와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웃 나라 국사는 왜곡이며,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대응해 나가야할 대상이다.
좋든 싫든 이러한 입장은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구성원은 정부를 비롯하여 학계, 민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구성원의 공통점을 보면, 우선 고구려ㆍ발해의 역사수호를 시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독도는 말할 것도 없다. 국제법상 한국의 영토가 아닐지라도, 역사주권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변 국가의 도발행위에 대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만이 역사주권을 지켜내고 민족의 자부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러한 주장의 논리적 맥락은 이웃 나라의 자기중심적 역사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적대적 공범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해온 지 수 년이 흘렀지만,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골이 더욱 선명해져 가는 것을 보면 문제해결의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최근 방송, 금융, 학계, 교육계,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 입장을 한층 굳건히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TV를 통해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을 본다. 드라마를 보면서 고구려ㆍ발해는 한민족이 세운 국가임을 각인시키고, 중국(한나라와 수ㆍ당나라)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고구려 지킴이 통장’을 개설한다. 또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발표장을 찾아다닌다. 또한 자신의 나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본다. 충성심이 일정 정도 확인되면, 자신감과 만족을 갖고 공무원이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국민’들은 역사(특히, 국사)를 지키는 한 명의 투사가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원인은 국사교육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점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오히려 대응 일변도를 벗어나 상호 이해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앞의 입장과는 달리 이미 역사를 통한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동아시아’는 현안이 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만들기도 바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최근 몇 년 간 전문 집단에 의해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최근 사례를 두 가지만 소개한다면, 『미래를 여는 역사』(2005, 한겨레신문사)와『마주보는 한일사 1, 2』(2006, 사계절)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라는 단체에서 제작하였다. 한, 중, 일의 학자, 교사,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기획, 집필하여 3국에 동시 출판한 책으로 출판 당시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후자의 경우,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가 한일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필, 편집, 번역하여 양국에서 동시 출판하였던 책이다. 두 책 모두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3국, 혹은 한일 양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성과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래를 여는 역사』의 경우 근현대사만을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동아시아 3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한, 중, 일 각각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다가 엮어놓았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마주보는 한일사 1, 2』또한 한, 일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모아두었을 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람들이 공통으로 삶을 영위했다는 관점에서의 서술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공통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공통의 역사경험을,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로 서술해야하는 것임에도 (이렇게 한다고 공통의 역사인식이 생길지도 미지수지만), 기존의 상이한 관점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이 얼마만큼 유효할지 의문이다.
그래도 여태껏 접하기조차 힘들었던 내용을 보다 쉽게 다루었고, 더군다나 그것을 중등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는 점은 매우 높이 살만 하다. 두 가지 저작 모두, 형식이나 내용에서는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동아시아 구성원들이 상호간의 역사인식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4. 강박관념에서의 탈피: 이해와 인정의 역사인식
‘동아시아’는 국민국가를 아우르는 지역적 단위로서 국민국가의 틀이 양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시아’가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는 그자체로 정치적, 전략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 사회 간의 우직한 교류만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동아시아’의 어원적 역사를 보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속성들에 대해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내셔널히스토리의 대안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인식을 내세우곤 하지만, 동아시아라는 지역개념 내부에 공통의 역사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화를 중심으로 한 책봉체제나 일본제국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권의 실체가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그것은 상흔을 간직한 공동체의 모습들이었고 일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 자체가 미래지향적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이야기의 상극이 초래한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역사를 국사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포괄적 범주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고 상대방의 낯선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해와 인정이 바탕이 되면, 역사를 인식하는 단위가 그 무엇이 되었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일정한 틀 속에서 역사를 인식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를 지속적으로 상대화하고,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야누스적 실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그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속에 살아가는 각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며, 또 그 지역 속에 살아가는 생활자들의 상호 교류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이해하자는 조심스런 제언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읽을거리
- 백영서 외,『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제국을 넘어서 공동체로』, 창비, 2005.
- 고야스 노부쿠니,『동아, 대동아, 동아시아』, 역사비평사, 2005.
- 김기봉,『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푸른역사, 2006.
- 강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뿌리와 이파리, 2002.
- 전국역사교사모임ㆍ역사교육자협의회 편,『마주보는 한일사 1, 2』, 사계절, 2006.
-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 편,『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 ..成市(이성시),「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만들어진 고대』, 2001.
- 권용혁,「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 모색」,『사회와 철학』5, 사회와철학연구회, 2003.
- 이상혁,「친미와 경제내셔널리즘의 이중성」,『민족연구』25, 한국민족연구원, 2006.
- 조성환,「세계화시대의 동아시아민족주의」,『동양정치사상사』5-1,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6.
- 佐佐木一.. (사사키 이치로),「협력공동의 동아시아세계형성」,『당대비평』5, 1998.
정순일 | 대학원 사학과 동양사전공 석사과정 | taijire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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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에 성행하는 동아시아 담론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 담론은 중국, 한국, 일본이 정치/경제적으로 공동체를 이루어야하는 역사적 필연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며, 서구의 지식과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이며, 서구담론에 대항하는 아시아 특유의 문화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진다. 어쨌든, 동아시아 담론은 8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틀에서 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일례로 E. SAID의 ORIENTALISM 을 들 수 있다. 이글은 이슬람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을 정리한 것으로서, 서구적 시각으로 본 동양관을 보여주고 있다. E.SAID의 오리엔탈리즘의 이론적 체계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 논리적 체계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정신속에서 이성의 지배력이 증대되면서 이성이 보기에 이성적이지 않은 비이성적인 것을 자신의 밖으로 밀어내어 비이성적인 것들의 집합체를 타자화하여 광기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성은 자신을 성숙한 성인으로 인식하고 광기를 어린이, 부랑자로 보아 감시와 처벌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긴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정신속에 존재하는 본성의 분열을 낳게 되고 자신을 제한하는 SUPER EGO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논리에 E.SAID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차원의개념을 적용시켜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을 설명하게 된다.
합리적인 문화와 비합리적인 문화가 공존하던 과거의 기존 서구의 문화에서 비합리적인 문화를 타자화하여 분리함으로써 마치 서구의 문화에는 합리적인 것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 비합리적인 문화는 동양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이러한 동양적인 비합리 문화는 서구의 문화에게 감시를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어린 아이 취급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화적 인식은 우리의 인식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동양적인 것하면 떠올리는 것은 신비로운 것, 보수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 정적인 것 이라는 이미지들이다. 이런 문화적 인식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당연한 지식의 형태로 행사되고 있으며, 동양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시간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점점 증가시키도록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서양적인 것에는 동적인 것, 앞서가는 것, 개방된 것, 합리적인 것, 진보적인 것 등의 비교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동양적인 것보다 우수한 것인양 잠재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현상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근래의 동아시아 담론의 실체를 알려는 운동은 근대화 초기에 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문물을 결합하려는 동도 서기론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것을 확립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동아시아 담론과 동아시아적 인식: (김승환 , 11/21-16:46)
동아시아 담론과 동아시아적 인식
East Asian Discourse and East Asian Recognition
2003년 11월 20일(*목) 오후 2시
*장르 논문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국제학술발표대회
김승환 (충북대학교 사대 국어과 교수)
1.동아시아 개념의 담론화 비판
동아시아(東亞細亞, East Asia)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간개념이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아시아적 가치의 문화영토(文化領土)이고 사이드식으로 말하면 지배 대상으로서의 타자(他者)이다. 그 자체로 완결적인 개념이면서 과정과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담론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공간과 시간이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설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남한의 동아시아론에 불을 지핀 백영서 교수는 '발견적 방편으로서의 동아시아'라고 개념화(槪念化)하면서 자기성찰을 동반한 사고와 실천의 방법이라고 규정했다. 학문의 개념과는 달리 동아시아론은 내재적 발전론의 일국가적 인식을 넘어서 국제주의적 시각에서의 담론이다. 선행 연구들을 다 열거할 수 없는 한계도 나의 몫이겠지만 나의 졸렬한 글은 선행 연구의 토대를 딛고 시공간적 사유(思惟)의 방식을 택해 보기로 하겠다.
먼저 기하학적 공간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살펴보기로 하자. 아시아학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UCLA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을 동아시아로 설정해 두고 있다.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에서의 동아시아는 이미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동열항은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와 남아시아(South Asia)이다. 하버드 대학(Harvard univ)의 범주는 몽고 만주 베트남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독일의 킬대학(Kiel univ)에서는 동아시아의 범위를 아주 광범위하게 설정해 두고 있다. 러시아부터 한국까지라는 이 공간개념은 공간지각 능력을 의심케 하는 매우 편의적인 재단(裁斷)이다. 더 이상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학술적인 편의에 의해서, 자신들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개념단위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정작 이 서양식 학술개념의 범주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누구로부터 동아시아인(東亞細亞人)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타율적으로 강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인들은 서양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방법을 표절(剽竊)하여 내재화시켜서, 경험적 진리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제는 완결적 개념이어서 이미 승인을 받은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동아시아란 개념은 원래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동양(東洋) 개념의 서구적 변형이다. 동쪽 바다라는 어의(語義)를 넘어서서 지역과 역사가 틈입하면서 원래 그 어휘를 만들어냈던 중국까지도 동양의 범주 속에 위치시켜 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랬을까? 아마도 근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과 기술문명이다. 과학기술문명이 역사의 동양적 궤도(軌度)를 덮쳐 버려서 자기 식으로 변형시켰다. 이 변형된 역사의 궤도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동양, 아니 동아시아의 현실이다.
동아시아와 같은 범주는 무엇인가? 라틴아메리카(Latin America), 오세아니아, 동유럽(East Europe), 서유럽(West Europe), 북아메리카(North America), 아랍(Arabic Countries), 북아프리카(North Africa) 등이다. 공간개념상의 규준이 없음을 즉각 인지할 수 있다. 이런 동열항들을 일렬로 배열해보면, 공간의 구조적 분할이기는 하지만 근대의 수치계량화가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의 근대성(modernity)은 과학, 기술, 합리주의(合理主義), 이성중심주의(理性中心主義), 효율성, 자본주의와 같은 원리와 아울러 수치계량화이다. 효율성이나 실용성의 준거가 되는 수치계량화와 표준화·객관화는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의 관점처럼 모든 것을 냉정하게 분류하라는 돈의 명령이다. 이처럼 공간을 분할하여 인지하고 관리하겠다는 근대의 기획은 성공했다. 성공한 근대의 기획에 저주(詛呪)를 보내야 할지 상찬(賞讚)을 보내야 할지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그 반동(反動)의 속도로 탈근대, 탈식민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것.
간단히 살펴보았거니와 이런 동아시아 개념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존재하고 담론 속에서 논의됨으로써 드디어 개념화된 미완의 어휘이다. 따라서 '동아시아가 무엇인가?'라든가 그 담론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귀납적(歸納的)으로 논의하기보다는 왜 이런 담론이 제출되었고 무엇 때문에 아젠다(agenda)로 성립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성급한 것 같지만 간단히 말해서 동아시아(東亞細亞) 담론(談論)은 중국(中國)의 중화주의(中華主義), 일본(日本)의 동양주의(東洋主義)에 상응하는 남한(南韓)의 담론(discourse)이라고 규정하겠다. 비유적인 예를 들어보자. 황화론(黃禍論 yellow peril)은 유럽 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경계의식이 만들어낸 담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논의할 예정임으로 생략하거니와 실제 황화론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황화론이라는 담론이 생산된 원인과 과정이다. 동아시아 담론 역시 마찬가지다. 동아시아적 정체성(正體性)이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동아시아 담론을 성립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한편 동아시아 담론이 새로운 문명개념(文明槪念)으로 설정되는 경우도 있는데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한민족공동체의 실현과정과 연계(連繫)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동아시아 담론이 남한 민족주의(民族主義)의 기획이라고 말한다면 화를 낼 분도 많을 것이다. 탈민족(脫民族)을 위한 민족의 기획이라는 것이 역설처럼 보이지만, 남한의 지식인들은 반드시 그런 역사의 길을 걸어가야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남한의 동아시아론은 그 담론 주체들이 이미 여러 번 공언(公言)한대로 탈권력(脫權力) 탈중심(脫中心)이라는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다. 이처럼 담론 발신(發信)의 주체가 남한의 지식인들이고 남한의 지식인들이 처한 역사에 대한 인식과 미래사의 전망(展望)이 동아시아 담론을 성립하는 원동력(原動力)이다.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동아시아 담론은 비정형적(非定形的)이기에 침착하게 그 전후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 그렇다면 동아시아 담론의 실체와 그 형성과정은 무엇인가?
2.중화주의적 천하관 - 이분법의 오류
1)이분법의 전통
고려(高麗)가 몽고 원(元)의 속국(屬國)이 된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 황제의 부마국으로서 충(忠) 자를 왕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특히 상징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한자의 충성 충(忠)을 의미하지 않고, 새로운 천하관(天下觀)을 고려인들이 수용했다는 징표(徵標)이다. 비록 강제였지만 그 천하관은 중화중심주의에서 약간 비켜난 것이었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고구려가 중화지역의 중국을 상대로 싸우면서 독자적 체제를 구축한 바 있지만 천하관은 중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고려 후기에 중원 중심의 중화중심주의가 아니라 몽고적 중화주의로 고려인들의 지향의식을 바꾸어야만 했던 것이다.
중국중심주의는 흔히 중화사상(中華思想) 또는 화이관(華夷觀)이라고 한다. 진의 군현제(郡縣制)를 통치형식으로 하고 주변국에 대해서 조공(租貢)과 책봉(冊封)이라는 간접 지배방식을 취한다. 그 주변국의 체제를 '국(國)'이라고 했는데, 국가의 대표이자 천자의 신하로써 왕(王)이 배치되는 완결적인 구조였다. 이것을 베버는 지속(持續)의 제국(帝國)이라고 표현했고 토인비는 순환사관(循環史觀)으로 해석했거니와 서구와 다른 천하관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대중화주의 즉 용광로와 같이 모든 것을 중화화(中華化)한다는 논리가 형성된다. 천(天)/하(下)라는 이분법은 천상계와 인간계로 나뉘고, 음과 양은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분화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중국 중심의 관점을 가지게 되는데 완결된 제도체로 근대라는 복병(伏兵)을 만나기까지 중화주의는 융성했다. 황하(黃河)와 중원(中原)을 지향하면서 소중화(小中華)이고 싶어했던 내면의 열망은 한국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겠지만 낙양(落陽)이라는 어휘에 실린 중국 동경(憧憬)은 바로 한국인의 심리기저에 놓인 지향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중화중심주의 천하관이 새로운 형태로 역사화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 즉 몽고대제국이다. 몽고가 유럽이나 아랍에 중심을 두지 않고 중국에 제국의 중심을 두었음은 당시로서는 이해할 만하지만, 고려인들은 몽고가 중국을 정복하고 지배했기 때문에 몽고제국을 곧 중화(中華)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점령군인 몽고 역시 중화주의에 감염되어서 원(元)이라는 연호가 나타내주듯이 중화사상 속으로 착종(錯綜)되어 버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족(漢族) 중심의 중화주의가 몽고족 중심의 새로운 천하관 속에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중화이적(中華夷狄)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붕괴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화이관이라는 이분법이 본질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인류학적으로 고려인은 한족보다는 몽고족에 가깝다. 그런데 문화적으로는 중국문화에 동화된 측면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韓國人)이 완전히 중국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여하간 몽고중심주의(蒙古中心主義)라는 전혀 새로운 천하관의 상징적 표징인 충*왕(忠*王, 예 忠烈王)체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중원사상(中原思想)과 화이관(華夷觀)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에 대한 변화의 징후였다. 물론 여기서 충(忠)의 대상은 인류학적으로 몽고인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중화(中華)였다.
나는 이것이 불안하게 놓인 한국인들의 역사적 좌표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인력(引力)이 당기는 강약에 따라서 한국인들의 생존은 요동쳤다. 명조의 성립으로 다시 지향의식은 중원중심주의로 바뀌었지만 중세 후기의 조선은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유교 안에서의 실학 혁명이 나름대로 훌륭하기는 하지만 근대라는 세계의 흐름에 대처할 수는 없었다. 과학기술이라는 신식 무기를 이용후생(利用厚生) 정도의 구식 무기로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문화적, 사상적 인력은 조선인에게 일탈(逸脫)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이관을 그대로 조선/일본의 관계에 적용시켰다. 조선시대에 일본을 소중화(小中華)인 조선 변방으로서의 이(夷)로 간주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일본은 이미 16,7세기에 서구의 문물을 학습하고 있었는데 조선은 겨우 북경을 통하여 난 작은 창으로 서구(西歐)를 보고 있었다. 근대의 비교 수치계량화가 아니라면 조선의 이러한 세계인식은 탓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근대라는 이 거대한 힘은 세계 모든 민족과 국가를 서열화(序列化)하고 지배와 피지배로 구획했다는 점이 한계였다.
이러한 중화주의에 대한 오랜 친소(親疎)는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아시아적 천하관을 잉태(孕胎)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화이라는 이분법에서 한국은 화(華)이면서 이(夷)였지만 완전한 화(華)도 완전한 이(夷)도 될 수가 없었다. 중화주의라는 담론을 모방해서 적용하는 습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간주했던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은 그제서야 근대의 무서운 힘을 인식했다. 민족이 무엇인가도 자각했고 자신의 역사와 동아시아에서의 위치도 재인식했다. 한국인들은 20세기에 식민과 민족, 근대와 탈근대를 동시에 경험하고 초극(超克)해야 하는 역사의 혼돈을 걸었다. 식민과 종속의 경험을 해체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하는 탈식민의 공간(decolonized space)에서 한국인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찾아야 한다. 나는 오랜 역사의 중압에서 벗어나 한국인들이 중화주의에 대한 애증(愛憎)은 새로운 세계관이자 천하관을 준비하도록 했고 그것이 바로 동아시아 담론의 출현이라고 소결론으로 제출하겠다.
2)중화주의에서 동아시아 담론으로의 분화
동아시아(東亞細亞, East Asia)라는 하나의 역사개념, 사회 인식체계 또는 생존의 방법과 과정으로서의 동아시아 담론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적 공간개념일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기하학을 떠나서는 사실 허상이다. 역사문화적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타율적으로 강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동질성만큼 이질성이 많은 이 개념을 하나의 생존단위로 쓰고자 하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동아시아라고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사이드의 망령(亡靈)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E. 사이드의 오류를 동아시아 담론은 반복하고 있다. 아니 사이드(E. Said)가 해부한 서구인(유럽인)들의 의도적인 오류를 우리 스스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라는 말을 쓰는 순간, 우리는 서구(西歐)의 전략(戰略), 정확히 말해서 제1세계의 전략에 휘말리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동아시아라는 어휘를 피할 길이 없는데 이것이 바로 내재적인 식민성(植民性)이다. 구조적인 식민성이기도 하다. 그 구조화되고 내재화된 식민성이 만들어낸 용어가 바로 동아시아다. 말하자면 하나의 개념단위로 묶이기 곤란한 공간과 역사를 하나로 묶어야 하는 이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왜 그런 의도가 생겨나는 것인가? 예컨대 하버드대학의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 교수가 동아시아주의자로서 동아시아의 전통이 공유되고 있다고 말한다든가 그의 제자 윌리엄 배리(William De Bary)가 BC 11세기부터 AD 2세기까지가 동아시아적 기본관념과 제도를 전파하고 공유한 시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시간적 개념에서의 동아시아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개념이 20세기 서구인들로 인하여 존재하게 된 비실재적 공간이다. 이처럼 동아시아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다. 그래서 나는 동아시아란 인식의 방식이며 담론의 아젠다화라고 말하고 싶다.
서구인들의 동아시아는 지역분할의 구조적 인식이다. 바꾸어 말하면 서구지배전략의 지역분할 방식이다. 서구인들이 쓰는 동아시아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또는 일본인이 쓰고 인식하는 것과는 다르다. 서구는 지배의 대상이자 훈육(訓育)의 대상으로 동아시아를 설정한 것이다. 물론 지역을 정치경제적으로 분할하여 통치하고 지배하는 방식이야말로 효율적이다.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을 공통분모로 하는 세계분할인식이 편리하고 유용하다. 여기서 보편성(普遍性)이라는 개념이 생성된다. 보편성은 특수성의 대립항(對立項)으로 인간이나 자연의 공통적 특질을 말한다. 그런데 이 보편성은 역사와 문화에서 검증 받아야 한다. 만약 이 검증이 없으면 보편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나는 이 보편성이라는 것도 아주 기본적인 속성(屬性)을 제외하면 사실은 한 개념의 역사적 인정(認定)과 인증(認證)을 뜻한다고 말하고 싶다. 보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강약의 우열(愚劣)이 개입하여 강제적인 보편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학적 사실이나 생물적 본성을 제외하고 보편의 자리에 오른 것들은 거대가 인정투쟁(認定鬪爭)을 거친 승리의 전리품이었다. 예를 들어 군현제라는 것도 다른 행정제도와 겨루어서 승리한 다음에 보편의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편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그 개념이 안고 있는 선험적 오류가 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동아시아라고 하는 개념은 지역(region) 개념이다. 그런데 이 지역개념은 서구중심주의가 만들어낸 공간개념이다. 간단히 말해서 서구의 세계지배전략(戰略)의 산물인 것이다. 공간을 분할하여 통치하고 자기들끼리 교환하는 이 방식에서 지역개념을 이해한다면 동아시아인들은 즐겁게 동아시아라는 공간개념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비록 허상이지만, 이미 하나의 단위로 존재하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해체(解體)할 능력이 동아시아인들에게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동아시아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동아시아론의 허상을 인식하기 위함이면 나아가 동아시아론을 해체(解體)하기 위함이다. 역사의 리좀(rhizome)처럼 깊이 얽혀 있는 생존의 모습을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이미 시공을 초월한 사회가 실현되고 있는 마당에 지리적 공간개념이나 역사문화적 일체감(internal consistency)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고정된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동아시아의 개념을 만드는 것은 전자기술(電子技術)의 혁명을 통한 사이버 네트웍을 구축하는 것과 반비례할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라는 지역개념을 상정하는 순간, 동아시아는 하나의 동질성(同質性)을 가진 단일사회로 고정된다. 큰 의미에서의 단일성 아래에 작은 의미에서의 다원성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다원성(multiplicity)은 제 민족과 국가간의 차별성(差別性)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데 동아시아론 또는 동아시아 담론에는 절대적인 금기가 있다. 즉, 민족성은 전혀 훼손되지 않으면서 동아시아적 동질성을 논할 수 있다는 허상이 지시한 금기 말이다.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적 동질성을 밝히고 공유하는 것이 제 민족과 국가에게 이롭고 중요하다는 더 큰 허상까지 심어두었다. 여기서의 동질성이란 정체성과도 상통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적 동질성 내지 정체성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 동아시아성(東亞細亞性)이란 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동아시아성과 같은 개념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허상만을 쫓게 된다. 인식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서구유럽에 대한 대립항으로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설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타적 개념으로 성립하는 동아시아적 정체성은 동아시아 내에서는 성립하지 못한다. 가변적인 개념인 것이다. 사이드가 지적한 유럽인들의 오류를 우리 스스로 재현할 것인가? 하기야, 그런 오류가 우리 인식의 아비투스(abitus)로 정착되었을 수도 있으니 이 역시 서구의 음모라고 할 수도 있겠지? 따라서 남한에서 담론화하는 동아시아론이 중국(中國)의 중화주의(中華主義)나 일본(日本)의 동양주의(東洋主義)의 모방담론이어서는 안되고 철저히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상생(相生)의 담론, 인간의 담론이어야 한다. 그 조화와 상생의 담론을 추출하는 것은 동아시아 3국의 역사적 전통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미 적지 않은 논의가 축적되었거니와 무엇이 과연 동아시아적 동질성인가는 문화적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유교적 가치나 도교적 인식과 같은 것이 동아시아성의 한 요소라고 한다면 그것은 동아시아성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어휘 그대로 유교적 가치나 도교적 인식일 뿐, 동아시아적 가치는 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서구인들이 아시아와 동아시아를 획정(劃定)하려 하는 인식의 음모와 전략이다. 그런데 음모를 음모인 줄 알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바로 내재적 식민성(internal coloniality)이다. 그 내재적 식민성을 탈식민의식으로 치유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담론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는 역사적 인식의 몫이므로 미루어둘 수밖에.
- 이하 첨부화일에 -
동아시아의 담론을 바로 읽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의 등장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동아시아 담론이 근자에 부쩍 유행하고 있는 이유로써, 우선 정치적,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동아시아 지역의 대두라는 맥락이 있고, 사상적,문화적으로는 후기 구조주의 이후 근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 경향의 확산이라는 맥락이 있다.
첫 번째 맥락에서 보자면, 1980년대 초,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서구 자본주의 세계와는 사회구조적으로 달랐던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그것이 자본주의 논리를 더욱 확고하게 하는데, 특히 이 때 동아시아 지역의 자본주의적 경제 성취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인간관계와 같은 ‘동아시아적인 특수성’으로서 자본주의를 논하려 하는 것을 말한다. 유교 자본주의의 등장 배경, 그리고 여기에서 서구적 근대(modern)의 비판 또한 나올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후자의 맥락에서 보자면, 서구적 근대(이성, 합리의 정신)의 비판 등장, 즉,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근대를 극복한 새로운 인간세상을 만들자는 주의가 나타나는데, 근대에 대한 반성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정신, 조화를 중시하는 ‘덕(德)사상’과 같은 동양 전통으로써, 해결하려는 경향의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와 이성 중심주의에 의해 동양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와 같은 것,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인, 서구적 잣대로써 우리 자신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관한 극복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동아시아 담론의 등장
2. 동아시아 담론의 현주소
1) 현실적 배경 및 ‘동아시아’의 개념
2) ‘동아시아’에 관한 왜곡된 논리
3) 동아시아론의 연구
4) 유교 자본주의론
5) 동아시아 담론의 방향
3. 비판적 고찰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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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사
정부와 자본에서 논의되는 동북아시아 담론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며 동아시아를 서구와 국가 그리고 자본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구성될 수 있는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보여주는 논의들을 요약정리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논의들 전반을 다룬 것은 전혀 아니구요. 일단은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진행된 동아시아논의들 가운데 지난 토론과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꺼리들을 던져 줄 수 있는 글들을 순전히 저의 임의대로 요약했습니다. 사실 저의 순전히 저의 관심사에 따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의 관심이 주체성과 관련된 부분이기에 다중포럼의 문제의식과 접속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며 대충 위안해봅니다.
우선은 창비진영의 동아시아론의 대표적 논객들인 백영서와 최원식의 글을 먼저 요약했습니다. 최원식과 백영서는 주변부적 시각으로 동아시아론을 전개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세계체제론적 시각에 입각해서 동아시아의 세계체제적 위상을 설정하고 국가주의와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지대로서 ‘주변’을 동아시아론의 이론적 거점으로 삼습니다. 그러한 주변성을 담지하고 있는 존재들로 근대적 국민국가체제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오키나와, 홍콩, 티벳 지역 등 주민들이나 화교나 재일조선인 등과 같은 디아스포라 혹은 소수민족들과 같은 비국가적 주체들을 주목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주변적 주체성을 직접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에게 동아시아란 무엇보다 학문의 대상과 방법으로써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중국사 연구자인 백영서는 동아시아적 시각을 바탕으로 국가중심의 역사해석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일차적으로 주목을 하고 있고, 문학연구자인 최원식은 국가체제의 경계에 있는 이들의 문학을 동아시아적 시각으로 분석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변적 주체성을 연구한 구체적 사례는 윤건차의 글이 보여줍니다. 물론 이 연구 역시 시론적 연구이기는 하지만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탈식민적이고 탈국가적인 집합적 정체성(주체성)의 가능성을 재일 조선인의 경우를 통해서 제시하고자 합니다. 백영서와 최원식의 원론적 논의를 보다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글이라 판단되어서 윤건차의 논의는 이들의 글 보다 좀더 논리적 전개과정을 자세하게 요약했습니다. 하지만 윤건차의 글은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이 주변적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는 규범적 논의에 좀더 경도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주변적인 것-탈국가적이고 탈식민적인 것, 더하여 탈자본적인 것-으로 만드는 조건에 대한 분석은 좀 약한 듯 합니다.
창비 출판사를 통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대만의 문화연구자 첸콴신은 그러한 주변적 주체성의 생성을 위한 이론적 논의를 보다 심도있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눈』이라는 책에 소개된 ‘탈식민과 문화연구’라는 글 가운데서 그러한 주체성을 이론적으로 논의한 부분을 요약했습니다. 첸콴신은 식민강자를 동일시의 모델로 삼아온 대만의 경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피식민 약소주체들의 상호동일시와 주체구성을 위한 참조체제의 다원화를 통해서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이를 타자-되기(becoming other), 비판적 혼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피식민 약소주체들의 상호 동일시, 참조체제의 다원화, 타자-되기, 비판적 혼합 등의 개념으로 논의되는 탈식민적/탈국가적 주체성에 관한 논의는 결국 아시아인들간의 상호 동일시, 참조체제로서 아시아, 타자-되기의 대쌍으로서 아시아, 아시아인들 간의 비판적 혼합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 두 개를 전제했습니다. 하나는 현재 비판이론진영에서 논의되어온 동아시아담론 진행 상황에 대한 간략한 분석 기사로 동아시아담론의 지형을 정말 대략 정리한 기사이구요, 다른 하나는 이러한 동아시아론이 보여주는 탈민족주의적 경향성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비판을 요약한 기사입니다.
임의로 선택하여 마음대로 요약한 글이라 원래 글을 제대로 소개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차피 요약이라는 것이 요약하는 이의 취사선택과 해석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라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감만 잡는 정도에 만족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좀더 관심이 생기시면 한국어로 쓰인 글이거나 이미 번역된 글들이니 원문을 쉽게 구하셔서 읽을 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유럽헌법과는 달리 동아시아 논의에서는 탈식민이라는 중요한 차별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요약한 글들은 물론이고 아니라 비판적 동아시아담론의 대부분은 탈식민의 문제를 주요한 쟁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네그리는 포스트콜로니얼의 문제의식이 제국적 기획에 포섭되었다고 비판하지만 저는 네그리의 그러한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네그리의 논의 자체가 좀 수박 겉핥기식이라..... 이번 포럼에서 탈식민(그것이 post-colonial이건, ex-colonial이건...)의 문제를 좀더 깊이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http://waam.net/bbs/zboard.php?id=guerrilla_sem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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