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희망과 회의의 두 얼굴 야누스적 동아시아 담론
2007.02.07
게시글 주소 : http://komun.net/zbxe/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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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조체는 amelano에 의한 것)
필자는 지난 두 번의 글을 통해 다소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하나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자화상이었고 -드라마 속 고대사: 단일민족의 판타지(9월호)- 다른 하나는
이웃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에 대해서였다. -울타리 저편 이해하기(10, 11월호)- 두 번의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 역시 한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국가이야기의 상극에 의한 역사분쟁을 해결하려는 나름의 시도였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했다고 자평한다.
이번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이다. 최근에는 역사적 갈등 혹은 분쟁을 경험하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지역들을 중심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일국 중심적 역사이해를 폐기하고 지역을 단위로 하여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하는 이른바 ‘동아시아’라는 지역도 그 중 하나다.
이 논의에 따르면,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은 분명히 실현 가능하다. 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을 통해 여러 가지 역사분쟁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과연 궁극적인 목적으로, 혹은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동아시아’가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동질적인 역사경험을 해왔는지, 그리고 ‘동아시아’는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개념인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냥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만 같은 ‘동아시아’에 관한 논의, 즉 동아시아 담론에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새삼스런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1. 새삼스런 질문: 동아시아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책이나 논문 제목에서 ‘동아시아’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요즘 출간되는 것들을 확인해보면 ‘동아시아’가 빠져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나 인문ㆍ사회계열의 각종 저술을 보면,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분석패턴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대중들이 ‘동아시아’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데 반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두는 경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원래 ‘동아시아’라는 단어는 외부 사람들인 유럽인들에 의해 명명된 편의적인 지역 테두리였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자명한 지역, 고유의 문화권이라기보다는 어느 시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지역 개념이라고 해두는 편이 옳다. 유럽에 대한 타자로서‘동아시아’라는 말이 성립되었지만, 그 개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바로 일본 학자,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였다. 1960~70년대부터 활발한 연구를 전개해온 니시지마는 동아시아 세계를 ‘문화권과 정치권이 일체가 된 자기 완결적인 세계’라고 정의했다.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을 포함하는 한자문화권을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불렀고, 그 배경에는 책봉체제 -주로 6~8세기에 걸쳐 중국 황제와 주변민족-주로 중국 동쪽 지역의 나라들의 수장 사이에 관작을 매개로 맺어진 정치 관계, 군신 관계를 가리킨다.- 라는 독자적인 정치구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니시지마가 정의한 ‘동아시아’는 이후 1980년대 들어와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이른바 신흥 공업 경제 지역(NIEs)의 경이적인 경제 발전 동향에 촉발되어 이 지역을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 중국문화권 등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문화권으로서의 ‘동아시아’가 주목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향에 따라 이 지역이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발전한 배경을 한자, 유교와 같은 문화적 동일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논의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전까지 근대화의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취급되어 온 유교가 경제발전 요인으로 재평가되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이질성보다도 동질성이 강조되게 되었다. 이후 하마시다 타케시(濱下武志)를 비롯한 학자들이 니시지마의 정의를 수정, 보완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영역과 의미를 재해석하게 되었고, 동아시아 담론을 학술적으로 주도해 나가게 되었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아시아 담론이 활개를 치지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이 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 말은 일본제국의 정치적 언설로 작용한 ‘동아’(東亞)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시아협력체’, ‘동아공영체’의 단계를 거쳐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정치적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 바로 ‘동아’라는 말이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형태는 ‘동아’에서 ‘동아시아’로 변모했지만 그 언설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전근대에는 이른바 동아시아 지역의 맹주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동아시아’라는 말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본의 경우에도, ‘동아’라는 말이 패전 이후 일정기간동안 그들의 언어공간에서 배제되었지만, 경제부흥과 더불어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니시지마의 분석에 의하면 동아시아 세계는 기본적으로 책봉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이 책봉체제가 영향을 미치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따라서 동아시아 세계의 공간적 범주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규정된 동아시아 세계는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했다. 때로는 한, 중, 일에 국한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때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혹은 인도 등 남부아시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동아시아’역시 여전히 유동적인 실체이며, 언설의 맥락에 따라 공간의 외연이 변화되는 실체이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닌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사전 정의와 개념설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본디 한반도와 중국 간, 한반도와 일본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과 그 해결점을 노정하려 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반도, 중국, 일본이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2. 역사분쟁 시대의 장밋빛 미래, 동아시아 담론 : 그 감춰진 얼굴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세계를 논할 때면, 책봉. 조공의 양 체제가 언제나 거론되기 마련인데 이것으로 그 개념의 구심점에는 중국적 화이질서로서의 중화(中華)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는 적어도 역사적인 실체로서 중화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전근대의 동아시아가 중화라는 구심점에 이끌리고 있었다면,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는 일본제국에 이끌려 온 감이 없지 않다. 태평양전쟁을 끝으로 일본제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시 종말을 맞이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당시 일본이 주창했던 ‘대동아’의 잔상이 동아시아 담론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지성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동아시아’ 이다. 국민국가라는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라는 것에 대해 100%의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담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술했듯이, ‘동아시아’라는 틀은.제국의 기억을 가진. 일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불신감과 경계심은 상상 외로 큰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역사분쟁은 대부분 자기의 역사인식은 옳고 이웃 나라의 역사인식을 틀렸다는 ‘국사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역사인식의 상이함에서 출발하는 반목과 갈등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이웃나라 자체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분쟁이 ‘국사체제’때문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사체제’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사체제’를 대체할 구체적이면서 대안적인 인식 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창된 것이 바로 ‘동아시아 담론’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이러한 동아시아 담론이 과거 ‘대동아공영권’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동아시아 세계론에 대해서는 일찍이 식민지 시대에 한국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였던 ‘만선일체론’(滿鮮一體論)이나 ‘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처럼 다시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사, 한국문화를 매몰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이러한 염려를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동아시아 세계의 축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각자의 전략에 의해 동아시아 중핵의 위치를 점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들 양국에게 있어서 ‘동아시아’란 다자적인 구심점을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층위가 있는 집합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뭉치기는 뭉치되 그 중심에는 내가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적 내셔널리즘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외연을 확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화평굴기론’(和平屈起..) 평화를 지향하며 발전을 도모하자는 언설, 일본의 ‘보통국가론’은 그들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지향점이 어디쯤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라는 말 자체에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여망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들이 가지는 지향의 명분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면밀히 검토해보면, 여기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경제협력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나온 구상이다. 이 경우, 평화라는 것도 ‘특정한’국가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주변지역의 안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그럴듯한 허울을 쓰고 있지만, EU, NAFTA, ASEAN 등의 주변 지역공동체에 ‘대항하는’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지역적 통합, 경제협력체 구성은 세계적인 현상이라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이러한 성격의 동아시아 공동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존 국민국가의 틀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이익을 위해 통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국가의 외연이 확대된 것일 뿐, 배타적 이익을 고수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전의 패러다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규모의 확대로 인해 지역과 지역의 이해가 상충할 때, 갈등의 규모는 국가와 국가 간의 그것에 비해 몇 배나 더 커질 것이다. 그 속에 평화와 공존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머지 하나는, 일시적 위기타개책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쟁은 차치해 두더라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와 공존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중심에 경제의 논리가 자리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개별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합집산을 전제로 한 공동체라면,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담론이라도 자기중심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는 담론 그 자체가 곧바로 장밋빛 미래일 수는 없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겠다.
3. 자극과 반응: 동아시아 담론과 한국사회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한국사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너무 이상적이라서 아직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역사를 이해하는 단위로서 여전히 국가가 유효하다. 이들은 어느정도의 융통성도 갖추고 있어서 이웃 나라의‘객관적인’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 반면 단 한 가지라도 불순한 기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한국의 국사와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웃 나라 국사는 왜곡이며,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대응해 나가야할 대상이다.
좋든 싫든 이러한 입장은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구성원은 정부를 비롯하여 학계, 민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구성원의 공통점을 보면, 우선 고구려ㆍ발해의 역사수호를 시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독도는 말할 것도 없다. 국제법상 한국의 영토가 아닐지라도, 역사주권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변 국가의 도발행위에 대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만이 역사주권을 지켜내고 민족의 자부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러한 주장의 논리적 맥락은 이웃 나라의 자기중심적 역사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적대적 공범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해온 지 수 년이 흘렀지만,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골이 더욱 선명해져 가는 것을 보면 문제해결의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최근 방송, 금융, 학계, 교육계,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 입장을 한층 굳건히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TV를 통해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을 본다. 드라마를 보면서 고구려ㆍ발해는 한민족이 세운 국가임을 각인시키고, 중국(한나라와 수ㆍ당나라)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고구려 지킴이 통장’을 개설한다. 또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발표장을 찾아다닌다. 또한 자신의 나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본다. 충성심이 일정 정도 확인되면, 자신감과 만족을 갖고 공무원이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국민’들은 역사(특히, 국사)를 지키는 한 명의 투사가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원인은 국사교육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점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오히려 대응 일변도를 벗어나 상호 이해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앞의 입장과는 달리 이미 역사를 통한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동아시아’는 현안이 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만들기도 바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최근 몇 년 간 전문 집단에 의해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최근 사례를 두 가지만 소개한다면, 『미래를 여는 역사』(2005, 한겨레신문사)와『마주보는 한일사 1, 2』(2006, 사계절)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라는 단체에서 제작하였다. 한, 중, 일의 학자, 교사,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기획, 집필하여 3국에 동시 출판한 책으로 출판 당시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후자의 경우,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가 한일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필, 편집, 번역하여 양국에서 동시 출판하였던 책이다. 두 책 모두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3국, 혹은 한일 양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성과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래를 여는 역사』의 경우 근현대사만을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동아시아 3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한, 중, 일 각각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다가 엮어놓았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마주보는 한일사 1, 2』또한 한, 일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모아두었을 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람들이 공통으로 삶을 영위했다는 관점에서의 서술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공통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공통의 역사경험을,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로 서술해야하는 것임에도 (이렇게 한다고 공통의 역사인식이 생길지도 미지수지만), 기존의 상이한 관점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이 얼마만큼 유효할지 의문이다.
그래도 여태껏 접하기조차 힘들었던 내용을 보다 쉽게 다루었고, 더군다나 그것을 중등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는 점은 매우 높이 살만 하다. 두 가지 저작 모두, 형식이나 내용에서는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동아시아 구성원들이 상호간의 역사인식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4. 강박관념에서의 탈피: 이해와 인정의 역사인식
‘동아시아’는 국민국가를 아우르는 지역적 단위로서 국민국가의 틀이 양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시아’가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는 그자체로 정치적, 전략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 사회 간의 우직한 교류만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동아시아’의 어원적 역사를 보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속성들에 대해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내셔널히스토리의 대안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인식을 내세우곤 하지만, 동아시아라는 지역개념 내부에 공통의 역사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화를 중심으로 한 책봉체제나 일본제국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권의 실체가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그것은 상흔을 간직한 공동체의 모습들이었고 일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 자체가 미래지향적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이야기의 상극이 초래한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역사를 국사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포괄적 범주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고 상대방의 낯선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해와 인정이 바탕이 되면, 역사를 인식하는 단위가 그 무엇이 되었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일정한 틀 속에서 역사를 인식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를 지속적으로 상대화하고,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야누스적 실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그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속에 살아가는 각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며, 또 그 지역 속에 살아가는 생활자들의 상호 교류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이해하자는 조심스런 제언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읽을거리
- 백영서 외,『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제국을 넘어서 공동체로』, 창비, 2005.
- 고야스 노부쿠니,『동아, 대동아, 동아시아』, 역사비평사, 2005.
- 김기봉,『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푸른역사, 2006.
- 강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뿌리와 이파리, 2002.
- 전국역사교사모임ㆍ역사교육자협의회 편,『마주보는 한일사 1, 2』, 사계절, 2006.
-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 편,『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 ..成市(이성시),「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만들어진 고대』, 2001.
- 권용혁,「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 모색」,『사회와 철학』5, 사회와철학연구회, 2003.
- 이상혁,「친미와 경제내셔널리즘의 이중성」,『민족연구』25, 한국민족연구원, 2006.
- 조성환,「세계화시대의 동아시아민족주의」,『동양정치사상사』5-1,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6.
- 佐佐木一.. (사사키 이치로),「협력공동의 동아시아세계형성」,『당대비평』5, 1998.
정순일 | 대학원 사학과 동양사전공 석사과정 | taijired@hanmail.net
이번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이다. 최근에는 역사적 갈등 혹은 분쟁을 경험하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지역들을 중심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일국 중심적 역사이해를 폐기하고 지역을 단위로 하여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하는 이른바 ‘동아시아’라는 지역도 그 중 하나다.
이 논의에 따르면,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은 분명히 실현 가능하다. 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서술을 통해 여러 가지 역사분쟁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과연 궁극적인 목적으로, 혹은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동아시아’가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동질적인 역사경험을 해왔는지, 그리고 ‘동아시아’는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개념인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냥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만 같은 ‘동아시아’에 관한 논의, 즉 동아시아 담론에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새삼스런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1. 새삼스런 질문: 동아시아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책이나 논문 제목에서 ‘동아시아’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요즘 출간되는 것들을 확인해보면 ‘동아시아’가 빠져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나 인문ㆍ사회계열의 각종 저술을 보면,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분석패턴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대중들이 ‘동아시아’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데 반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두는 경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원래 ‘동아시아’라는 단어는 외부 사람들인 유럽인들에 의해 명명된 편의적인 지역 테두리였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자명한 지역, 고유의 문화권이라기보다는 어느 시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지역 개념이라고 해두는 편이 옳다. 유럽에 대한 타자로서‘동아시아’라는 말이 성립되었지만, 그 개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바로 일본 학자,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였다. 1960~70년대부터 활발한 연구를 전개해온 니시지마는 동아시아 세계를 ‘문화권과 정치권이 일체가 된 자기 완결적인 세계’라고 정의했다.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을 포함하는 한자문화권을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불렀고, 그 배경에는 책봉체제 -주로 6~8세기에 걸쳐 중국 황제와 주변민족-주로 중국 동쪽 지역의 나라들의 수장 사이에 관작을 매개로 맺어진 정치 관계, 군신 관계를 가리킨다.- 라는 독자적인 정치구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니시지마가 정의한 ‘동아시아’는 이후 1980년대 들어와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이른바 신흥 공업 경제 지역(NIEs)의 경이적인 경제 발전 동향에 촉발되어 이 지역을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 중국문화권 등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문화권으로서의 ‘동아시아’가 주목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향에 따라 이 지역이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발전한 배경을 한자, 유교와 같은 문화적 동일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논의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전까지 근대화의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취급되어 온 유교가 경제발전 요인으로 재평가되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이질성보다도 동질성이 강조되게 되었다. 이후 하마시다 타케시(濱下武志)를 비롯한 학자들이 니시지마의 정의를 수정, 보완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영역과 의미를 재해석하게 되었고, 동아시아 담론을 학술적으로 주도해 나가게 되었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아시아 담론이 활개를 치지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이 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 말은 일본제국의 정치적 언설로 작용한 ‘동아’(東亞)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시아협력체’, ‘동아공영체’의 단계를 거쳐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정치적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 바로 ‘동아’라는 말이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형태는 ‘동아’에서 ‘동아시아’로 변모했지만 그 언설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전근대에는 이른바 동아시아 지역의 맹주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동아시아’라는 말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본의 경우에도, ‘동아’라는 말이 패전 이후 일정기간동안 그들의 언어공간에서 배제되었지만, 경제부흥과 더불어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니시지마의 분석에 의하면 동아시아 세계는 기본적으로 책봉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이 책봉체제가 영향을 미치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따라서 동아시아 세계의 공간적 범주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규정된 동아시아 세계는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했다. 때로는 한, 중, 일에 국한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때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혹은 인도 등 남부아시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동아시아’역시 여전히 유동적인 실체이며, 언설의 맥락에 따라 공간의 외연이 변화되는 실체이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닌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사전 정의와 개념설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본디 한반도와 중국 간, 한반도와 일본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과 그 해결점을 노정하려 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반도, 중국, 일본이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2. 역사분쟁 시대의 장밋빛 미래, 동아시아 담론 : 그 감춰진 얼굴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세계를 논할 때면, 책봉. 조공의 양 체제가 언제나 거론되기 마련인데 이것으로 그 개념의 구심점에는 중국적 화이질서로서의 중화(中華)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는 적어도 역사적인 실체로서 중화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전근대의 동아시아가 중화라는 구심점에 이끌리고 있었다면,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는 일본제국에 이끌려 온 감이 없지 않다. 태평양전쟁을 끝으로 일본제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시 종말을 맞이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당시 일본이 주창했던 ‘대동아’의 잔상이 동아시아 담론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지성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동아시아’ 이다. 국민국가라는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라는 것에 대해 100%의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담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술했듯이, ‘동아시아’라는 틀은.제국의 기억을 가진. 일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불신감과 경계심은 상상 외로 큰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역사분쟁은 대부분 자기의 역사인식은 옳고 이웃 나라의 역사인식을 틀렸다는 ‘국사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역사인식의 상이함에서 출발하는 반목과 갈등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이웃나라 자체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분쟁이 ‘국사체제’때문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사체제’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사체제’를 대체할 구체적이면서 대안적인 인식 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창된 것이 바로 ‘동아시아 담론’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이러한 동아시아 담론이 과거 ‘대동아공영권’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동아시아 세계론에 대해서는 일찍이 식민지 시대에 한국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였던 ‘만선일체론’(滿鮮一體論)이나 ‘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처럼 다시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사, 한국문화를 매몰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이러한 염려를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동아시아 세계의 축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각자의 전략에 의해 동아시아 중핵의 위치를 점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들 양국에게 있어서 ‘동아시아’란 다자적인 구심점을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층위가 있는 집합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뭉치기는 뭉치되 그 중심에는 내가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적 내셔널리즘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외연을 확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화평굴기론’(和平屈起..) 평화를 지향하며 발전을 도모하자는 언설, 일본의 ‘보통국가론’은 그들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지향점이 어디쯤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라는 말 자체에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여망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들이 가지는 지향의 명분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면밀히 검토해보면, 여기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경제협력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나온 구상이다. 이 경우, 평화라는 것도 ‘특정한’국가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주변지역의 안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그럴듯한 허울을 쓰고 있지만, EU, NAFTA, ASEAN 등의 주변 지역공동체에 ‘대항하는’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지역적 통합, 경제협력체 구성은 세계적인 현상이라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이러한 성격의 동아시아 공동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존 국민국가의 틀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이익을 위해 통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국가의 외연이 확대된 것일 뿐, 배타적 이익을 고수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전의 패러다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규모의 확대로 인해 지역과 지역의 이해가 상충할 때, 갈등의 규모는 국가와 국가 간의 그것에 비해 몇 배나 더 커질 것이다. 그 속에 평화와 공존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머지 하나는, 일시적 위기타개책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쟁은 차치해 두더라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와 공존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중심에 경제의 논리가 자리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개별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합집산을 전제로 한 공동체라면,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담론이라도 자기중심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는 담론 그 자체가 곧바로 장밋빛 미래일 수는 없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겠다.
3. 자극과 반응: 동아시아 담론과 한국사회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한국사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너무 이상적이라서 아직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역사를 이해하는 단위로서 여전히 국가가 유효하다. 이들은 어느정도의 융통성도 갖추고 있어서 이웃 나라의‘객관적인’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 반면 단 한 가지라도 불순한 기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한국의 국사와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웃 나라 국사는 왜곡이며,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대응해 나가야할 대상이다.
좋든 싫든 이러한 입장은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구성원은 정부를 비롯하여 학계, 민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구성원의 공통점을 보면, 우선 고구려ㆍ발해의 역사수호를 시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독도는 말할 것도 없다. 국제법상 한국의 영토가 아닐지라도, 역사주권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변 국가의 도발행위에 대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만이 역사주권을 지켜내고 민족의 자부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러한 주장의 논리적 맥락은 이웃 나라의 자기중심적 역사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적대적 공범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해온 지 수 년이 흘렀지만,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골이 더욱 선명해져 가는 것을 보면 문제해결의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최근 방송, 금융, 학계, 교육계,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 입장을 한층 굳건히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TV를 통해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을 본다. 드라마를 보면서 고구려ㆍ발해는 한민족이 세운 국가임을 각인시키고, 중국(한나라와 수ㆍ당나라)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고구려 지킴이 통장’을 개설한다. 또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발표장을 찾아다닌다. 또한 자신의 나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본다. 충성심이 일정 정도 확인되면, 자신감과 만족을 갖고 공무원이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국민’들은 역사(특히, 국사)를 지키는 한 명의 투사가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원인은 국사교육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점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오히려 대응 일변도를 벗어나 상호 이해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앞의 입장과는 달리 이미 역사를 통한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동아시아’는 현안이 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만들기도 바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최근 몇 년 간 전문 집단에 의해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최근 사례를 두 가지만 소개한다면, 『미래를 여는 역사』(2005, 한겨레신문사)와『마주보는 한일사 1, 2』(2006, 사계절)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라는 단체에서 제작하였다. 한, 중, 일의 학자, 교사,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기획, 집필하여 3국에 동시 출판한 책으로 출판 당시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후자의 경우,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가 한일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필, 편집, 번역하여 양국에서 동시 출판하였던 책이다. 두 책 모두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3국, 혹은 한일 양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성과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래를 여는 역사』의 경우 근현대사만을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동아시아 3국 공통의 역사인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한, 중, 일 각각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다가 엮어놓았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마주보는 한일사 1, 2』또한 한, 일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모아두었을 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람들이 공통으로 삶을 영위했다는 관점에서의 서술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공통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공통의 역사경험을,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로 서술해야하는 것임에도 (이렇게 한다고 공통의 역사인식이 생길지도 미지수지만), 기존의 상이한 관점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이 얼마만큼 유효할지 의문이다.
그래도 여태껏 접하기조차 힘들었던 내용을 보다 쉽게 다루었고, 더군다나 그것을 중등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는 점은 매우 높이 살만 하다. 두 가지 저작 모두, 형식이나 내용에서는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동아시아 구성원들이 상호간의 역사인식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4. 강박관념에서의 탈피: 이해와 인정의 역사인식
‘동아시아’는 국민국가를 아우르는 지역적 단위로서 국민국가의 틀이 양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시아’가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는 그자체로 정치적, 전략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 사회 간의 우직한 교류만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동아시아’의 어원적 역사를 보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속성들에 대해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내셔널히스토리의 대안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인식을 내세우곤 하지만, 동아시아라는 지역개념 내부에 공통의 역사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공통의 역사인식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화를 중심으로 한 책봉체제나 일본제국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권의 실체가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그것은 상흔을 간직한 공동체의 모습들이었고 일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 자체가 미래지향적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이야기의 상극이 초래한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역사를 국사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포괄적 범주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고 상대방의 낯선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해와 인정이 바탕이 되면, 역사를 인식하는 단위가 그 무엇이 되었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일정한 틀 속에서 역사를 인식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를 지속적으로 상대화하고,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야누스적 실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그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속에 살아가는 각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며, 또 그 지역 속에 살아가는 생활자들의 상호 교류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이해하자는 조심스런 제언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읽을거리
- 백영서 외,『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제국을 넘어서 공동체로』, 창비, 2005.
- 고야스 노부쿠니,『동아, 대동아, 동아시아』, 역사비평사, 2005.
- 김기봉,『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푸른역사, 2006.
- 강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뿌리와 이파리, 2002.
- 전국역사교사모임ㆍ역사교육자협의회 편,『마주보는 한일사 1, 2』, 사계절, 2006.
- 한중일 3국 공동 역사편찬위원회 편,『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 ..成市(이성시),「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만들어진 고대』, 2001.
- 권용혁,「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 모색」,『사회와 철학』5, 사회와철학연구회, 2003.
- 이상혁,「친미와 경제내셔널리즘의 이중성」,『민족연구』25, 한국민족연구원, 2006.
- 조성환,「세계화시대의 동아시아민족주의」,『동양정치사상사』5-1,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6.
- 佐佐木一.. (사사키 이치로),「협력공동의 동아시아세계형성」,『당대비평』5, 1998.
정순일 | 대학원 사학과 동양사전공 석사과정 | taijired@hanmail.net
공통도시, 다중의 로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