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정치학 논고> 때문에 강한 반발과 비난을 샀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피노자의 명성은 높아져 1673년에 독일의 팔츠 지역의 영주 카를 루드비히에게서 철학교수 자리를 제안 받는다. 카를 루드비히는 한 신학교수를 통해 그러한 제안을 스피노자에게 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심사숙고 끝에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교수직을 맡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더라면, 저는 다른 자리가 아닌 팔츠의 영주 전하께서 당신을 통해 제게 제의한 바로 그 교수직을 맡았을 것입니다. 자비로운 영주께서도 황송하게도 제게 허락해 주는 철학의 자유 때문에라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자리를 맡는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이 훌륭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철학함의 자유가 어떠한 한계에 머물러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인된 교회를 혼란시키려 든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불화란 종교에 대한 내적인 사랑에서 생기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인간 감정의 상이함 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왜곡하고 단죄하는-이렇게 얘기해도 된다면- 대립의 정신에서 생겨나옵니다. 저는 이미 저의 고독한 사생활을 통해서도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처럼 영광된 자리에 오를 경우에는 얼마나 더한 일들을 우려해야 하겠습니까? 따라서 진실로 존경하는 선생님, 당신께서는 제가 어떤 더 나은 삶에 대한 전망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방해 받지 않는 생활에 대한 애정  때문에-그러한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기 위해- 제가 공식적인 강의를 거절하였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3211&n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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