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개념의 가해자중심주의적 전도

2009년 대한민국 경찰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았던 장자연 사건 가해권력의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를 ‘적색수배’하기는커녕 부실한 조사로 덮어 버렸다. 2018년부터 시작된 과거사 재조사조차도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 대통령의 엄정조사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결과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수사기관(검경)의 적나라한 실태가 이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은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결과가 발표된 지 경우 반 년 만에, 마치 심기일전(心機一轉)이라도 한 듯이, 바로 그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에 대해 증언한 증언자를 도리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의 혐의자로 적색수배 요청하고 ‘엄정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2차, 3차, n차 가해에 노출된다는 것을 이보다 여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도대체 증언자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들이 무엇인가? 경찰에 따르면 그것은 ‘사기와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 모두 인터폴 자체의 적색수배 요건인 2년 이상 징역에 포함되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기와 명예훼손 혐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그 행동의 범죄화를 통해 사법권력이 사람들에게 던지고자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사기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당신은 증언하는 동안에 혹은 그 이후에 신변위협이 있었다고 말했고 당신의 지지자들로부터 경호비와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1억 3천여 만 원의 돈을 모금했다.”가 그 혐의의 지시내용이다. 이것이 범죄혐의라는 주장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당신이 증언자라면, 기자가 당신의  소재지를 추적하며 가해자 입장에서의 질문을 퍼붓더라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더라도, 그런 것을 대중 앞에서 발설하면 안 된다. 국가가 당신을 증언자로 불렀더라도 증언자를 보호해 달라고 국가에 요구해서도 안 된다. 증언자에게 닥쳐오는 신변위협과 고통을 달게 받아 들여라.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경호비를 보내겠다고 아우성을 치더라도 결코 계좌번호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계좌번호를 공개해서 그곳으로 후원금이 입금되면 후원자를 기망하여 재물을 편취한 죄, 즉 사기죄로 단죄될 수 있다. 혹시 그렇게 당신에 대한 연대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어서 증언을 위한 경호비로 사용하여 신변안전을 도모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의 말을 의심하라. 당신을 지지한다,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 증언에 대한 지지자가 당신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당신에게 경호비를 후원한 사람이 후원금반환소송을 제기하여 당신의 사기혐의를 뒷받침할 증인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들은 원금 외에 고리대를 요구하는 사채업자처럼 돌변할 수 있도 있다. 후원회비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노력 같은 것은 하지 말라. 증언자 피해자 목격자가 겪는 고통에 무관심하라.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라. 당신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후원회비를 모집하게 되면 언제든지 그것이 기부금품법 위반의 대상으로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무엇보다도 권력자들에 대한 증언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라. 그들이 성추행을 하건 성폭행을 하건 오직 방관하라. 그것에 대한 증언은 언제든지 ‘사회적 중요범죄’로 지목될 수 있다. 권력자들 앞에서 침묵하라. 그들에게 굴종하라. 그것이 신변위협을 받지 않고 당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며 적색수배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둘째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당신은 김수민 작가를 ‘이수역 사건 2차 가해자’라고 말하여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대한민국에서는 인물을 특정하여 제3자가 들을 수 있는 공연성의 환경에서 그를 비난하면 명예훼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흔한 사건으로서 ‘사회적 중요범죄’로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정치인’을 장자연 리스트에서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당신이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한 후 홍준표 의원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검사로부터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으니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즉각 당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홍준표 의원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고 그가 당신을 범죄 혐의로 고발했다는 것은 당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이 설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홍준표’라는 이름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말해서는 안 되었다. 그 이름을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시민단체에서 말해서는 안 되었다. 권력자들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며 사법적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범죄가 될 수 있다. 권력자들의 탈법이나 부패에 대한 증언은 언제든지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단죄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침묵하라, 침묵하라, 침묵하라! 

이렇게 ‘사회적 중요범죄’로 규정된 두 가지 혐의는 가해권력자들의 불의에 대해 증언을 하지 않도록, 침묵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 온다.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증언이 명예훼손죄로 제소될 수 있으며 후원금 모금을 통해 가해권력자들의 보복으로부터 증언자의 신체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은 사기죄로 제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의 실현의 노력이 사법에 의해 부정의로, 범죄로 정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기자, 작가와 같은 전문가들,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 같은 언론사들, SNS 계정주 같은 시민사회 행위자들만이 아니라 경찰, 검찰, 법원, 정당, 그리고 국회의원 같은 국가권력의 기구들이 가해권력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증언자의 범죄화’를 위한 총력전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맥락에서 보면 “경찰청 자체 기준에 비춰 봐도 윤씨 사건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사안인 만큼 중요사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경찰관계자의 설명은 증언자의 고립과 범죄화를 위해 가해권력이 주도하는 이러한 전 사회적 총력전의 하나의 전술단위처럼 들린다. 왜 이렇게 들리는 것일까? 

촛불시민들은 윤지오가 증언한 권력형 성폭력 범죄 혐의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수사와 재수사 요구를 높이 제기했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 10년간 이 요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가 2009년 KBS의 장자연 문건 보도 이후의 수사에서 성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 혐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가해권력자들이 무혐의 처분된 것이고 2018년에 재개된 과거사 재조사가 혐의자들에 대한 재수사로 연결되지 않게 된 것이다. 촛불시민의 요구와 정반대되는 방향에서 가해권력자들은 윤지오가 행한 증언 자체와 그에 따른 부대 행위들(후원금, 숙소제공 등)을 ‘사회적 파장이 큰’ 범죄 혐의로 정죄하면서 지난 수 개월간 그에 대한 수사 요구를 ‘높이’ 제기해 왔다. 그 결과가 윤지오에게 열 가지 이상의 고소고발장이 날아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경찰관계자는 정확히 가해권력자들과 동일한 입장과 방향에서 윤지오의 증언행위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범죄화하라는 가해권력자들의 시각과 요구를 고스란히 ‘경찰청 자체’의 시각과 요구로 대변하고 있다. 요컨대 경찰 관계자가 말하는 범죄 혐의의 ‘사회적 중요성’ 평가가 촛불시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가해권력자들의 입장에서 내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탈진실 시대 진실의 운명: 범죄로 되는 증언, 수배자가 되는 증언자(2)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라는 규율장치의 등장과 경찰의 범주 혼동

11월 6일 적색수배 조치가 내려진 후 있었던 여성단체의 항의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다. 윤지오에게 씌워진 혐의는 인터폴 적색수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윤지오도 이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는 강력범죄자로 5억원 이상의 경제사범, 살인자, 강간범 등에 대해서 내려지는 것인데 이러한 적색수배를 자기한테 내린 것은 불법적인 것이며 자신은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더불어서 적색수배까지 내리면서 자신을 송환받으려 하는 것이 ‘공익제보자 보호법’과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항의에 대해 경찰이 언론 앞에 내놓은 대답은 이러하다.

윤씨는 캐나다에 거주해 수사공조가 필요하고,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 모두 인터폴 자체의 적색수배 요건인 2년 이상 징역에 포함되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또 “경찰청 자체 기준에 비춰봐도 윤씨 사건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사안인 만큼 중요사범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가 적색수배 요건인 2년 이상 징역에 포함되므로 윤지오가 적색수배 대상이라면 적색수배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우선 명예훼손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범죄로서 일상에서 누구나가 언제든지 그 범죄 혐의를 뒤집어 쓸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명예훼손 혐의는 감기 바이러스처럼 우리 모두의 주변에 산포되어 있다.

사기는 어떨까?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기혐의는 최대 1억 3천 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것이 적색수배 대상이라면 50억원 이상의 다액경제사범을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은 왜 넣어 두었는가? 이런 식의 답변은 경찰과 인터폴이 적색수배 제도를 통해 시민과 대중 일반을 잠재적인 강력범죄자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눈길을 끄는 답변은 후자, 즉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사안인 만큼 중요사범으로 볼 수 있다”는 답변이다. 이것은 인터폴 적색수배의 또 다른 사유에 “수사관서에서 특별히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범”이 포함되어 있음을 근거로 한다. 이호영 변호사도 “흔히 적색수배라고 하는 것은 사형, 무기 등 중범죄자 그리고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이상의 어떤 조직폭력 사범 그리고 특정 금액 이상의 고액 경제범죄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발령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윤씨의 그런 말은 일정부분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또 하나 사유가 뭐가 있냐면 기타 수사 관서에서 특별히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사안 이것도 적색수배는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우리 사법경찰 기관에서 윤지오씨가 가지는 그러한 사회적인 파장이 되게 크기 때문에 윤지오씨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건 맞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적색수배를 요청을 했고 그에 따라서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황이어서 윤지오씨가 다소 억울하다고 얘기하고 있긴 하지만 적색수배 자체가 불법적이거나 이렇게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찰의 답변과 이호영 변호사의 해설을 통해 우리는, 윤지오 증언자가 일반적인 적색수배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특별히” 윤지오 증언자를 적색수배 요청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특별”한 요청에 따르는 판단은 윤지오 증언자를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중요사범”이라고 본 것이다.

나는 여기서 경찰이 오히려 ‘중대한’ 범주 혼동, 범주 착오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언과 범죄를 혼동하는 것이다.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이 사회적 파장이 컸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재계 언론계 연예계 정치계 법조계를 망라한 모든 권력층의 부패와 성폭력 관행에 대한 기록인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대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이 증언이 가지고 온 사회적 파장은 분명히 컸고 증언이 지목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증언이 지목하는 가해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는 이 큰 사회적 ‘파장’이나 높은 ‘수사요구’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으로 기소된 사람조차 1심에서 무죄 처분되었다.

경찰은 돌연 여기서 ‘수사 요구’를 가해 혐의자가 아니라 증언자에게로 돌린다. 윤지오의 “증언”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증언이 지목하는 “가해 혐의자”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았다”는 사실을, 경찰은 윤지오의 “범죄”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윤지오”의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다”는 생각으로 바꿔치기 한다. 증언과 범죄, 증언자와 가해자를를 순식간에 대치하는 이 마술을 통해 적색수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윤지오 증언자의 “범죄혐의”가 실제로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요구가 높은 혐의인가? 보복우려가 높은 증언을 한 증언자에게 뜻있는 사람들이 경호비 후원을 해 준 것이 정말로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요구가 높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혐의”에 해당하는가? 증언자 목격자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에 뜻있는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보내 준 것이 정말로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혐의”에 해당하는가? 카톡 친구였던 김수민 작가가  윤지오를 “고인을 이용한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윤지오 증언자가 김수민 작가를 “이수역 사건 2차 가해자”로 말하면서 쌍방간 명예훼손으로 제소된 혐의들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요구가 높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혐의”에 해당하는가?

상식적으로는 결코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이 질문들에 경찰이 “그렇다”고 답하고 또 그에 따라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특별히”(상식에 비추어서는 ‘과잉되게’) 요청하는 행동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혐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탈진실 시대 진실의 운명: 범죄로 되는 증언, 수배자가 되는 증언자(1)

객관진실, 탈진실, 공통진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미치코 가쿠타니의 얇은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진실이 무의미해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원제는 The Death of Truth: Falsehood in the age of Trump인데, 한국어 번역본에 저자의 집필의도를 잘못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이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해제를 쓴 정희진 연구자의 생각과 유사하게 나는 근대적 객관진실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애도를 표현하는 저자의 심경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진실’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객관진실에 대한 비판이 곧장 진실혐오로 나아가서는 안 되며 객관진실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진실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객관진실도 탈진실도 아닌 그 새로운 유형의 진실을 나는 스피노자의 공통관념(common notion)을 응용하여 공통진실(common truth)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그런데 돌아보면 현실에서는 진실에 대한 무관심, 진실에 대한 혐오, 진실에 대한 적대가 이미 일상화되고 널리 대중화되었다. 2019년 4월말 이후 윤지오의 증언에 대한 대한민국의 반응양식이 그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언론과 SNS가 증언자의 사적 생활에 의심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후부터 ‘증언’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증언이 진실을 밝히는 말인 한에서 증언에 대한 무관심은 진실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낸다. 장자연의 고발문건에 이름이 등장했고 그래서인지 이 무관심의 공간을 조성하는 데 남다른 역할을 한 조선일보는 이후 그 공간에 윤지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증언을 거짓으로 만들어 그것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증언자에 대한 적대를 불러오는 방법이다. 

적색수배의 배경맥락들

마침내 2019년 11월 6일 인터폴은 증언자 윤지오에게 수배단계 중 가장 강력한 조치인 적색수배조치를 내렸다. 이름도 으스스하지만 살인자, 강도, 강간 등의 강력범죄 관련 사범이나 폭력조직 중간보스 이상 조직폭력 사범, 50억원 이상 경제사범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터에 이 조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분노를 일으킨 조치이다. 여성단체들은 이러한 납득할 수 없는 조치에 대한 항의로 민갑룡 경찰청장의 사직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경찰청장으로 내정되고(2018년 6월 15일) 취임한(7월 2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강행하고 적색수배를 인터폴에 요청하는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민갑룡 청장이 2019년 5월에 청룡봉사상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청룡봉사상 폐지 여론이 높아진 것은  CBS 보도로 ‘장자연 사건’의 의혹 당사자인 조선일보와 이 사건 수사 당사자인 경찰 간의 수상한 연결고리가 드러난 이후다. ‘장자연 수사’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 경찰관이 그해에 조선일보로부터 청룡봉사상을 받아 특진을 한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유착이 분명하게 의심되는 이러한 대목 외에 특진후보 경찰관들에 대한 세평과 감찰내용이 조선일보 측에 제공되어 경찰이 조선일보의 영향력에 종속되었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갑룡 경찰청장은 청룡봉사상을 존치시키고 조선일보가 최종심사를 진행하며 수상자를 1계급 특진시키는 방식의 기존 청룡봉사상 제도를 강행하기로 결정해 진실과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킨 바 있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경찰청장이 적색수배를 요청했다고 해도 국제기구인 인터폴이라면 국내정치에서 독립적으로 사고하여 그것을 기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보통 일주일에서 두 달까지 걸린다고 하는 인터폴 심사는 불과 사흘 만에 끝나고 인터폴은 참으로 신속하게 윤지오에게 적색수배령을 내렸다. 이 상식을 초과하는 신속한 조치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2019년 11월 11일 여성조선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기사를 내보냈다.

현재 인터폴(ICPO, 국제형사경찰기구) 수장은  제30대 경기지방경찰청 청장을 지낸 김종양 총재다. 한국인 대상의 인터폴 공조가 어느 때보다 수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캐나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한 매체의 이메일 질의에 보낸 회신서에서 “캐나다 정부는 지난 1995년 이래 한국 정부와 범죄인 인도협약을 맺고 있다. 윤지오 사건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사건들을 인도협약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제기구지만 총재가 한국인인 것이다. 김종양 인터폴 총재는 인터폴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총재며 중국 출신의 멍홍웨이 전임 총재가 비리혐의로 구속된 후 약 한 달 반 가량 권한대행을 하다가 약 1년 전인 2018년 11월 21일 인터폴 총회에서 인터폴 총재로 선임되었다. 이때 경쟁후보가 러시아내무부 출신의 알렉산드르 프로콥추크였는데 김종양이 다수 득표를 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인터폴을 통해 자국 출신의 야권 지도자,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적색 수배 명령을 내릴 것을 우려한 서방권 국가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 배경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인터폴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국제정치에 이용되고 있는 정치기구임을 시사한다.

김종양 총재는 어떤 사람일까? 여성조선이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2009년에 장자연 사건의 담당청이었던 경기지방경찰청의 청장을 역임(2014년)한 바 있다. 또 그는 2018년 인터폴 부총재를 맡고 있던 당시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바 있는데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우리는 살인, 강도, 강간, 다액경제사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윤지오에 씌워진 혐의만으로 인터폴 적색수배라는 과잉대응을 연출한 정치적 네트워크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네트워크는 조선일보-경찰/검찰-자유한국당-인터폴을 잇는 네트워크로 추정된다.

인터폴은 윤지오에 대한 적색수배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지난 수개월 동안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 님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연구하다가 윤지오 님의 증언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언자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윤지오 님의 증언 신빙성이 훼손되는 것을 보고 부당함을 느끼고 있던 중 오늘 아침 인터폴이 윤지오 님을 적색수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놀라운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대한민국이지만, 한국 경찰의 인터폴 적색수배 신청을 윤지오 님이 한국으로 들어오도록 압박하기 위한 절차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고 장자연

2009년 3월 7일 신인배우 장자연 님이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장자연 님은 자신은 힘센 사람들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자신은 힘이 없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용의 애절한 문건과 재계 정계 언론계 문화계 권력자들의 이름이 담긴 리스트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 문건에는 자신을 협박하고 폭행한 사람들, 술접대를 강요한 사람들, 성상납을 강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 죽음을 단순변사로 처리했습니다.

경찰은 KBS에서 문건을 입수하여 보도한 이후에야 여론에 떠밀려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재수사에 착수한 후에도 경찰은 권력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수사하기는커녕 장자연 님이 허위로 문건을 작성하여 소속사를 옮겨 돈을 벌려고 했다는 시각에서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문건에 등장하는 조선일보는 갖은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했고 경찰은 방상훈 사장을 황제를 대하듯 형식적으로만 수사했습니다.

결국 검찰은 권력자들은 단 한 사람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장자연 님이 왜 죽게 되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장자연 님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 되지 않을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증언

윤지오 님은 장자연 님의 후배이고 동료배우입니다.

윤지오 님은 소속사 더콘텐츠에서 장자연 님과 함께 활동했고 권력자들을 접대하는 술자리에 장자연 님과 수 십 차례 동행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장자연 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윤지오 님은 유가족보다 먼저 봉은사에서 장자연 님이 남긴 문건과 리스트를 읽었습니다.

봉은사에서 태워진 리스트는 KBS에 입수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분들이나 유장호 대표도 편지글 형식의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를 증언했지만 윤지오 님은 그 장자연 리스트의 내용에 대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증언하고자 하는 유일한 증인입니다.

윤지오 님은 2018년까지 13번에 걸쳐 이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기관인 과거사조사위원회가 불러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또 세 차례 증언했습니다. 

윤지오 님이 무엇을 증언했던가요?

(1)윤지오 님은 소속사 대표가 연예 노동자들을 부당한 방식으로 착취했다고 말했습니다.

(2)윤지오 님은 조선일보 기자가 배우의 술 접대를 받고 심지어 그 배우를 성추행했다고 말했습니다.

(3)윤지오 님은 연예계, 언론계, 정치계, 재계, 법조계의 권력자들의 이름이 장자연 님이 남긴 리스트에 적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4) 윤지오 님은 그 리스트의 이름들 중에 기억이 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방 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국회의원의 이름도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5)윤지오 님은 장자연 님이 술 반잔도 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온몸에 힘이 풀리고 동공에 초점이 없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고 했습니다.이후에 캐나다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이것이 누군가가 몰래 마약을 넣은 술을 먹고 그것에 취하게 된 모습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증언했습니다.

(6)윤지오 님은 장자연 님이 죽은 직후 봉은사와 유장호 대표가 입원한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과 만났고 이후에 통화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윤지오 님의 증언은 이렇게 소속사 대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권력층의 관련자들에게 민감한 사안들입니다. 그들의 부패와 탈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력형 성폭력을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인정한 것처럼 이 증언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에 대한 신고”입니다.

3. 마녀사냥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증언을 시작하기 전부터 윤지오 님에게는 인스타그램 DM으로 ‘공항에 도착하면 칼로 찌르겠다’거나 ‘손톱을 드릴로 뚫고 싶다’는 식의 끔찍한 문구들이 날아 들었습니다.

증언 중인 4월 7일에 뉴시스는

(1) 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 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 중이다 

(3) 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 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 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 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고 이것은 이후 윤지오 님에 대한 음해와 마녀사냥의 기본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증언을 끝마친 4월 16일에 김수민 작가가 뉴시스와 거의 동일한 시각으로 윤지오 님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4월 26일에는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는 김대오 기자의 주장을 근거로 박훈 변호사가 윤지오 님의 증언이 거짓이고 사기라며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오 기자는 10년 전에 “자신은 장자연 문건의 [널리 알려진] 단 한 구절 외에는 본 적이 없고 그 문건의 내용은 KBS 보도를 보고 대강 알게 되었다”고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진술한 사람입니다.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근거는 리스트가 있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는 사람의 말이었던 것입니다. 

4. 여론폭탄

윤지오 님이 캐나다로 귀국한 후 더 많은 고발이 이어졌습니다. 

고발고소는 지금까지 열한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들은 특히 증언자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여 신변위협을 꾸며내고 후원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신한은행 후원금은 윤지오 님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복으로 겪을 수 있는 신변위협을 염려하여 뜻있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한 것이었습니다. 

국민은행 후원금은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을 통해 “5대 강력범죄 외의 피해자, 목격자, 증언자들의 안전과 생활을 보호하라”고 국민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해 준 것이었습니다.

윤지오 님은 통장 공개를 통해 후원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바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윤지오 님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마녀사냥 담론은 시민사회-언론-국가기관을 순환하면서 단단한 여론으로 굳어졌습니다.

이것은 윤지오 님만이 아니라 후원한 수 천 명의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판단과 결의에 따라 증언자를 보호하기 위해 후원을 한 사람들을 “심각한 착오에 빠져 기망당한 사람”으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것은 뉴시스와 같은 언론사의 보도에서 시작되어 변호사의 고발로 이어지고 다시 SNS의 계정의 피드와 악성댓글 속에서 재생산되었습니다.

윤지오 님에 대한 이러한 비난과 음해는 다시 역으로 SNS 피드에서 출발하여 지식인들의 칼럼으로 되고 조선일보의 기사, SBS의 방송프로그램으로 증폭되었습니다.

마침내 이것은 경찰의 수사문건 속으로 흘러들어가 마치 증거자료인 것처럼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증언자를 파괴하는 집단적으로 조작된 여론폭탄입니다. 이것은 힘없는 한 사람의 인격을 파탄내는 여론 집속탄에 다름 아닙니다. 장자연 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비난과 협박의 폭력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강한 여론폭력을 나약한 한 사람에게 퍼붓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론폭탄이 증언의 신빙성을 어떻게 떨어뜨리는지는 조희천 사건의 1심 무죄판결에서 확인되었습니다.

5. 경찰의 과잉대응

이 음해폭격으로 인해 윤지오 님은 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장자연 사건의 후유증으로 오래 전에 자살기도를 한 바 있는 윤지오 님이 다시 사법공격과 여론공격의 트라우마로 심한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으로 불러온 증인이 지금 그 증언으로 인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인 3월 말에 ‘보복 우려가 있는 범죄 신고자에 대한 미흡한 신변보호조치’에 대해 윤지오 님에게 사과한 바 있는 경찰이 이제 윤지오 님에게 두 번에 걸쳐 체포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아 내고 그것도 모자라 여권무효화 조치를 외교부에, 적색수배를 인터폴에 신청했습니다. 인터폴 적색수배는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와 폭력조직 중간보스 이상의 조직폭력범, 5억원 이상의 경제사범 등을 대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윤지오 님을 대상으로 제기된 열 한 건의 소송 중 그 어느 것도 이런 강력범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찰이 왜 이런 과잉대응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호 기자는, 윤지오 님이 지난 10년간 경찰에게 불리한 증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경찰이 이런 과잉대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경찰이 증언자에 대한 보복행동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6. 혐오게임

실제로 우리는 윤지오 님을 사기꾼으로 만들어내는 여론조작과정에서 조선일보, SBS, 뉴시스, 머니투데이 등의 언론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언론사들은 윤지오 님이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서 보았다고 한 인물, 술자리에서 윤지오 님을 만났거나 명함을 준 바 있는 인물 등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언론사들입니다. 

윤지오 님의 증언에 대해 보복하고자 하는 충동이나 추가 증언을 예방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고 있다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언론들입니다.

지금 많은 언론들이 윤지오 님에 대한 이러한 보복사냥과 혐오게임을 지켜보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는 듯한 잔인한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윤지오, 인터폴 적색수배될까? 과연 강제송환 가능할까?” 식의 기사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보도 태도는 국민들을 진실의 주체가 아니라 마녀사냥의 구경꾼으로 만드는 행태입니다.

7. 호소

기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윤지오 님에 대한 세간의 음해를 받아쓰지 말고 진실을 파악해 보도해 주십시오. 근거 없는 마녀사냥에 동참하지 말아 주십시오.

경찰에 호소합니다. 윤지오 님에 대한 피의사실을 마구잡이로 공표하지 말고 증거에 따라 공정하게 조사해 주십시오. 국민의 공권력을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경찰은 공황장애와 정신과 치료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에게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서 한국에 건너와 조사를 받아야 한다, 오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는 무리한 요구입니다. 

조사를 건강회복 이후로 미루거나 원격 화상통신조사가 가능하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아무리 조사가 중요하다 해도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악성댓글이 설리를 죽게 만들었다는 각성이 전 국민적 수준에서 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각종 고소고발과 악성댓글만으로도 윤지오 님의 삶을 파탄내기에 충분합니다. 환자에 대한 경찰의 무리한 수사방식이 이에 더해 윤지오 님을 지금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성해 주십시오.

윤지오 님을 강력범죄자처럼 각인시켜 사회로부터 인위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여권무효화 신청과 인터폴 적색수배 신청을 즉각 철회하십시오.

문재인 정부에 호소합니다. 

윤지오 님은 문재인 정부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청탁을 받고 한국에 와서 증언한 공익제보자입니다. 

공익신조자 보호법 제15조는 “① 누구든지 공익신고자 등에게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누구든지 공익신고 등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공익신고자 등에게 공익신고 등을 취소하도록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익신고(증언)를 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윤지오 님은 너무나 큰 불이익을 겪고 있습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온갖 불이익 조치가 중단될 수 있도록 조처해 주십시오.

증언을 해 달라고 청탁한 후 범죄자로 만들어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정부로 역사에 남지 말아 주십시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공익제보자와 진실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해 주십시오.

인터폴에 호소합니다. 윤지오 님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강도도 아닙니다. 강간범도 아닙니다. 폭력조직의 보스도 아닙니다. 5억원 이상의 경제사범도 아닙니다. 윤지오 님을 적색수배하는 것은 인터폴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조치입니다. 적색수배를 즉각 해제해 주십시오.    

윤지오 님을 고소고발한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제기한 고“고발을 취하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윤지오 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힘없는 연예노동자이자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인 윤지오 님을 권력투쟁의 희생물로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끝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자 『절대민주주의』의 지은이로서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여러 가지 동기에서 오도되고 날조된 주장들이 아니라 오로지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에 입각해서만 이 사태를 판단해 주십시오. 마녀사냥의 구경꾼으로 되는 것을 거부해 주십시오. 권력기관과 권력자들은 아래로부터 주권자 국민의 감시와 통제와 섭정이 없을 때에는 국민을 공격하는 사냥꾼으로 변하며 국민을 먹잇감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2019년 11월 8일

조정환

증여 공통장에 대한 범죄화 시도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그런데 이 증여 공통장(이에 대해서는 http://amelano.net/?p=1318 참조)은 아직은 유령적이다. 그것은 정동적 구호를 동반하면서 화폐로 표현된 공통장(commons)이지만 공통체(commonwealth) 혹은 공동체(community)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지 하다. 그것은 상호인정이나 수평적 소통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자기재생산의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윤지오의 증언에 대해 각 증여자들이 감사, 격려, 연대결의 등을 표명함으로써 공통의 추구를 표현하지만 상호관계의 분명한 형태를 갖추지는 않은 공통장이다. 국가의 기능장애의 시간에 국가 바깥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이 공통장은 증언자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형성된 증여의 공통장으로서 이후에 그 공통장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는 수증자의 결단과 화폐의 힘에 맡겨지게 된다.

그런데 윤지오는 후원금 증여가 지속되고 있던 다음날인 19일 신한은행 통장을 자신의 의지로 닫는다. 왜 그랬을까? 국가 바깥에 구축된 이 증여 세계, 증여 공통장이 국가(국법)와 맺는 관계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에서 독립되어 국가의 관여 범위를 벗어나는 자율적 장(場)인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한 장이면서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영역인가? 앞서 살펴 보았듯이 신한은행 통장을 통해 나타난 증여 공통장은 국가가 국민의 공통감각(common sense, 상식)에 맞게 기능하지 못하는 때에 발생한 것으로 공론장도 시장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제3의 장이다. 하지만, 사회를 통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 나가는 경향이 있는 국가는 이 증여공통장이 자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회 속에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게 되면 이 장을 자신의 통제 안으로 끌고 오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 지점에 주목하도록 윤지오에게 조언을 해준 것은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원금 수증이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과 상충할 수 있으니 관계기관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었다. 후원금이 증여와 수증의 관계, 즉 증여교환의 관계로서 시민사회의 자율(自律, autonomy)에 속한다면 기부금품법은 이 증여교환 관계에 대해 국가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하는 통제장치, 즉 법률(法律, law)에 속한다. 

자율과 법률의 관계가 문제로 되는 이 상황에서 윤지오가 찾아가 만난 그 ‘관계기관’은 서울시 민간협력과였다. 자율과 법률의 중간 지대에서 민간과 공공 양자 간의 협력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때의 면담내용에 대해서는 윤지오와 담당자의 기억이 서로 엇갈린다. 담당자가 기부금품법에 관한 일반적 설명을 윤지오에게 한 점에 대해서는  기억이 일치하지만 개인 후원금이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서로 기억이 다르다. 담당자는 경호비가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이라고 말했다고 기억함에 반해 윤지오는 그 반대로 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기억의 이 차이는 단순한 기억의 차이라기보다 기부금품법의 모호함이 반영된 지각과 인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민간협력과 상담 담당자가 3월 19일에 신한은행 통장 후원금이 기부금품법 적용대상이라고 만약 단정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면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월권이다. 대한민국의 기부금품법은 30여분간의 시간 동에서 후원금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유권해석을 즉석에서 내릴 수 있을 만큼 명료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부금품법 적용대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행복을 고려한 상담을 해주려면 후원금의 성격, 기부금품법 적용배제대상에 속하는가 않는가에 대한 법리해석, 등록 의무에 대한 판단, 즉각 반환의 기술적 방법 등등에 대한 고려가 있었어야 할 것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보들이 포함된 추상적 상담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모호성은 기부금품법의 전개과정이 자율영역과 법률영역 사이의 투쟁을 반영하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역관계, 정치적 필요 등에 따라 변화해 나왔고 이로 인해 법조항들이 상당한 내적 모순을 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금도 시민들로부터 상당한 항의를 받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기부금품법은 권위주의적 ‘금지법’에서 시작되었다. 국가가 보증하는 시장의 계약관계 외의 사인 간의 금품수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려 한 것이다. 이것은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자신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자율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금지 중심의 기부금품법은 국민의 행복추구권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시민생활에서의 행복을 충분히 보장해 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스스로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부금품법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불만과 항의가 고조되고 이것을 법제에 수용하는 과정에서 금지법은 점차 ‘규제법’으로 발전했다. 이후 국가가 자신의 복지책임을 시민사회에 전가하여 시민사회의 자율적 에너지를 축적에 활용하는 방향, 즉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2017년 7월 26일 개정된) ‘조성법’, 즉 기부문화의 조성을 위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률 역시 아직 여러 가지 모호함을 갖고 있어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기부문화의 “금지”나 “규제”보다 “조성”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진일보한 법률이다. 현행법에서 기부금품은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으로 광범위하게 정의된다. 이러한 의미의 기부금품은 “반대급부”가 없는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증여의 일반적 개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증여는 시차가 있다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답례를 반대급부로서 수반하기 때문이다. 증여관계에서 답례는 일반적으로 의무에 속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기부금품법이 규정하는 기부금품의 정의는 일반적 증여라기보다 증여의 특수한 형태로서 답례를 전제하지 않는 “순수증여”의 개념에 더 가깝다.

기부금품법의 핵심적 취지는 기부금품 일반을 법률로써 관리하려는 것에 있지 않다.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이라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 “모집과 사용”을 관리하는 것에 그 핵심적 취지가 있다. 모집되지 않은 “후원금”이나 “기부금품”은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그 외에도 회비나 헌급 납부처럼 “모집”이라고 보기 어려운 많은 경우들이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들로서 규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집”이란 무엇인가?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 제2조 2항은 “서신, 광고,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품의 출연(出捐)을 타인에게 의뢰ㆍ권유 또는 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항은 “모집자”라는 이름으로 모집 주체를 규정하는데 그것은 “제4조에 따라 기부금품의 모집을 등록한 자”를 지시한다. 그 주체는 다시 모집종사자를 두어 모집행위를 할 수 있는데 다음의 4항이 그것을 규정한다. “‘모집종사자’란 모집자로부터 지시ㆍ의뢰를 받아 기부금품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를 말한다.”가 그것이다. 이렇게 모집, 모집자, 모집종사자에 대한 세밀한 법률 규정을 제시한 후 제4조 1항에서 “1천만원 이상의 금액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는 다음의 사항을 적은 모집ㆍ사용계획서를 작성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특별시장ㆍ광역시장ㆍ도지사ㆍ특별자치도지사에게 등록하여야 한다.”하여 등록할 의무가 있는 모집금액을 따로 규정한다. 1천만원 미만이면 등록하고 모집할 필요가 없지만 1천만원 이상이면 등록 후 모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12조, 13조, 14조는 모집된 기부금품의 사용에 관한 규정으로서 모집목적에 맞는 사용 및 공개 의무 그리고 모집비용에 충당할 수 있는 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16조는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대한 규정을 위반한 때에 주어지는 벌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제4조 제1항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아니하였거나, 속임수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을 하고 기부금품을 모집한 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처럼 현행의 기부금품법은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창출하는 순수증여의 문화를 장려하고 국가기관에 등록하여 모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아울러 등록된 모집행위에 대해 일정한 혜택을 주고 모집된 기부금품의 공정한 사용을 감독하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그러면 우리가 증여 공통장의 출현이라고 부른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은 기부금품법과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SBS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방송사들은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에 입금된 후원금을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으로 보면서 그 후원금 모집이 기부금품법 4조(1천만 원 이상 모집하고자 하는 자의 등록 의무)를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후원금의 증여와 수증이라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관계행위를 범죄화하는 보도다. SNS 계정주들의 일부도 이에 동조하면서 신한은행 후원금을 범죄화하는 피드/댓글 행동을 지속했다. 국가에 의한 범죄화 이전에 언론과 SNS에 의해 선제적으로 범죄화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증여 공통장을 범죄화하여 국가에 종속시킴으로써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영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시민사회 내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시민사회의 국가화의 징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 후원이 범죄라면 시민사회에서 자율적 공통장을 구성하고 그것을 공통체나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것은 크나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상당히 많은 활동들이 자발적 후원과 기부에 의해 유지되고 재생산된다는 점, 집회와 시위처럼 헌법에 보장된 공통의 정치실천들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자발적 후원, 자발적 증여를 범죄화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국가의 건강한 존립조차 위협하는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의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도 “모집”을 통하지 않은 자발적 기부금품은 법률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즉 “서신, 광고,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품의 출연(出捐)을 타인에게 의뢰ㆍ권유 또는 요구하는 행위”를 통해 모집된 기부금품만을 법률의 적용대상으로 삼으며 등록의 의무도 그러한 모집행위를 수반하는 기부에 대해서만 강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에 대한 후원에 모집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앞서 서술한 것처럼 네티즌들이 윤지오의 증언에 공감하고 신변위협을 염려하여 자발적으로 후원통장 개설을 요청했고 이 요청을 망설임 끝에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 신한은행 통장의 후원금이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이자 기부금품법 연구자인 이상신 교수에 따르면 모집행위에 의하지 않은 자발적 기부는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상호 기자가 윤지오의 개인통장을 온라인에 공개한 것을 모집행위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부금품법 2조 2항의 모집행위는 “서신, 광고 등” 각각의 “개인에게 도달 가능한 수단을 활용하는 능동적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온라인을 통한 기부참여는 모집행위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이상신, 기부활성화를 위한 법제개선안,https://research.beautifulfund.org/wp-content/uploads/1/cfile5.uf.183639344FC5E71C1F7C08.pdf) 이런 한에서 언론방송과 SNS 계정들이 신한은행을 통해 증언자 윤지오를 후원한 다중의 자율적 증여행동을 국가의 기부금품 법률에 의해 규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장려하려는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법률의 오용(誤用)을 선동하여 탈법의 위험을 초래한다.

이제는 주지의 사실이지만, 방송이나 기사 혹은 피드를 통해 법의 오용을 선동하는 것을 넘어서 후원금 수증 그 자체를 사기로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훈 변호사나 최나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후원금 증여자들을 “피기망자”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후원금 증여자들은 “교묘하고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기망한 윤지오에게 속아 “자신의 행위가 낳을 결과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착오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박훈은 윤지오의 신한통장에 후원금을 증여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 후원금 증여자들을 ‘피기망자’로 규정하고 나선 것은 놀랍다. 이 때에는 후원금 증여자들 중의 누구도 자신이 속았다고 주장하지 않을 때였다. 누가 그에게 후원금 증여자들을 피기망자, 어리석은 사람, 착오에 빠진 사람으로 비난하고 모욕할 권리를 준 것일까? 누가 혹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대리주의적 행동에 나서도록 재촉한 것일까? 

누가 봐도 어색하고 불합리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박훈에게는 후원금 증여자들이 스스로를 피기망자로 자처하고 나서는 것이 필요했다. 박훈에게 자신의 명예훼손 소송 변호를 맡긴 김수민이 그 일을 맡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후원금 증여자들로 하여금 후원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도록 촉구하고 최나리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해주므로 변호사비 걱정 말고 반환청구 소송에 함께 해 달라고 후원금 증여자들에게 간절하게 요청했다. 438명의 소송동참자들이 모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가! 최나리 변호사가 반환소송청구자들을 대리하여 후원금반환소송을 제기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반환소송청구자로 변한 후원금 증여자들이 최나리의 소송에 동의서명했다고 하는 것이 더 사실적일 것이다. 438명의 후원금 반환소송 참여자들이 나서 자신들이 피기망자, 착오에 빠진 사람, 어리석은 사람임을 자인한 후에야 박훈의 일방적이고 대리주의적인 고발도 그 수만큼의 사회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남는다. 윤지오에게 후원금을 낸 사람들은 신한은행만 5,745명이다. 국민은행 지상의 빛 계좌의 후원자를 합친다면 훨씬 더 많은 숫자일 것이다. 그 중 438여명이 스스로를 피기망자로 인정했다고 해도 압도적인 숫자의 사람들, 적어도 5천 3백명이 넘는 후원 증여자들이 스스로를 피기망자, 착오에 빠진 사람, 속임을 당한 사람, 사기 피해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후원금반환소송에 참여한 438명의 사람들에 비할 때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다.  한국의 언론사회는 이 압도적 다수의 생각과 의견을 무시하면서 극소수의 의견에 따라 후원 증여자들 전체를 피기망자, 사기 피해자로 단정하는 폭력적 어조의 방송들, 기사들, 피드들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보도폭력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는 증여관계가 불법화되고 증여 공통장이 범죄공간으로 인식되어 증여자가 어리석은 자로 비난받고, 수증자가 범죄자로 지탄되는 것이다. 2019년 10월 30일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국가의 기능장애의 순간에 진실을 지키기 위해 출현한 다중의 자율적 증여 공통장을 범죄화하려는 시도의 첨점이다. 그것은 증여 공통장이 지키고자 한 진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언론을 비롯한 준국가기관과 그에 영향 받은 시민사회 일각이 시작한 범죄화 움직임을 경찰, 검찰, 법원 등의 국가기관이 사법적으로 배서(背書)으로써 힘을 실어주고 있는 영화적 장면의 하나이다.

최나리는 소장에서 “피고[윤지오]는 후원을 받음으로써 원고들을 비롯한 여타의 후원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분노, 수치심 등 정신적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라고 태연하게 쓴다. 그런데 실제로 후원금 반환청구 소송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후원금 증여자들을 터무니없이 피기망자, 사기 피해자, 심각한 착오에 빠진 사람으로 규정하여 증여자로서의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분노, 수치심 등의 정신적 고통”을 불러일으키며 증여문화를 조성하기보다 상처 입혀 퇴행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최나리 자신임을 누가 모를 수 있겠는가? ‘정의’의 이름을 내걸고 수행되는 이런 반증여문화적이고 반공동체적인 고소고발 행렬의 소음 때문에, 후원금 수증자인 윤지오가 수증자이기 전에 증언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권력체제를 고발하는 진실 증여자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져 간다. 진실이 혼탁해지면서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모호해지고 심지어 거꾸로 뒤집어져 가는 이 정치적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지금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을 뒤에서 부채질하면서 투항하거나 죽거나를 선택하도록 밀어붙일 생각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지난날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부장주의적 가해권력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진실을 가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음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역전의 과정을 통해 국가권력을 자신의 수중에 사유화할 수 있는 곳으로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정된 총선과 대선이 이들의 이 음울한 목표를 현실화시켜 주권자를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의 희생물로 만들 대의주의의 정치 의식(儀式)으로 되고 말 것인가? 

국가와 기업에 대한 다중의 섭정을 위한 상상

공무원을 국민이 섭정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공무원이 국민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섭정이 정치적 과제로서 나타나는 것은 대의제가 과도한 나머지 공무원이 자립성을 갖게 되고 심지어 공무원이 주인인 공무원을 지배하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접 민주제의 간접 민주제로의 대체라는 극단적 결과를 가져왔다. 공직의 사유화와 권력화는 그것의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아래로부터 국민-다중의 섭정은 공직을 부름에 대한 응답, 즉 소명(Beruf)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며 사유화된 공직을 다중을 공통화시키는 봉사활동으로 개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검찰이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다중의 권력에 봉사하는 서비스기관으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국민배심제 하의 AI검찰’이라는 형상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경우에는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있어 자본가의 권력이 인정되는 것이 통례다. 이 영역에서는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위치지워지며 대다수 국민들은 기업 영역에서 주권을 잃고 노예로 전화한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 영역에서 국민-노동자의 주권됨과 모순된다. 또 기업체제가 지배적으로 되면 국민-노동자는 정치영역에서 자신의 주권성을 망각하게 되며 자신의 기관인 국가와 자신을 고용한 기업의 배신적 유착도 심화되게 된다. 대의제가 기업제와 동화되면서 정치적 대의자들이 기업주처럼 군림하고 국민이 노예처럼 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로써 국민주권은 실질적으로 해체된다. 정치영역에서 국민-다중의 주권회복이 기업영역에서 노동자의 주권쟁취와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업영역에서도 노동자-다중이 주인으로 될 때에만 다중에 의한, 다중을 위한, 다중의 정치/경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은 ‘다중통제 하의 AI기업’의 형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업영역의 공통화의 가능성은 무엇보다도 노동으로부터 노동자의 해방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해방이 현재는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계화, 정보화, 자동화로 인한 실업과 비정규직화의 경향이 그것인데, 노동(여기서는 ‘고용노동’을 지칭한다)과 소득을 강제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결합시켜온 자본주의의 오랜 경향과 장치들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무소득, 저소득과 묶어 놓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의 경향은 직접적으로 삶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고용노동=강제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수행하는 삶정치적 활동은 노동으로 평가되지 않고 무상수취되는 경향이 있다. 기본소득 및 무조건적 보장소득에 대한 토론은 이러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일반화되는 상황이 삶의 고통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이 방안의 핵심은 ‘고용되어 노동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소득 문제와 분리시키는 것이다. 삶의 생산과 재생산을 위한 활동은 기업적 고용세계 바깥에서도 전개되고 있고 기업들은 이 활동들을 외부효과로서 전유하고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없이 소득 없다’(예컨대 무노동무임금)는 관념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없다.

노동자가 강제노동에서 해방되어 욕망으로서의 삶정치적 활동에 자유롭게 종사하면서도 그것이 삶의 고통으로 나타나지 않는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욕망으로서의 삶정치적 활동에 행복한 느낌으로 충실할 수 있을 때 국민과 노동자 사이의 현재의 배리현상(주인이 노예되는 현상)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삶정치적 활동에 종사하는 (비)노동자들은 기업을 자신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으로 섭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기업은 고용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기관이 아니라 (비)노동자-다중의 부름을 받아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지탱하는 소명기관(Beruf-organ)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착취기관에서 소명기관으로 전화하는 것과 국가가 권력기관에서 소명기관으로 전화하는것은 하나의 과정의 두 측면이다. 하나의 과정이란 다중의 자기조직화와 섭정능력이 향상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다중의 공통화 없이 국가와 기업의 공통화 없다. 국가와 기업에 대한 섭정 능력을 위한 사유실험과 행동실험이 끊임없이 시도되면서 그 성과들의 공통화-연결망(commoning-network)이 섬세하게 구축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촛불을 통해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이 첫 걸음에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는 아직 누구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2019년 10월 19일 촛불집회의 분화, 그 양상과 의미에 대한 관찰메모

  • 2019년 10월 19일 촛불집회는 서초동과 여의도로 분산 개최되었다.
  • ‘분열’이 아니라 ‘분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집회의 이슈와 강조점이 다변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촛불은 반드시 단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양화하고 분산되는 것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면 분산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 물론 현재는 서로를 인정하기보다 경쟁하고 때로는 적대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전체 촛불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 9차까지의 서초동 촛불집회의 주최측을 자임했던 개국본이 10월 12일을 갑작스런 마지막 집회로 선언한 것이 이 경쟁적 분화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집회의 종료를 선언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의 암묵적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방적 종료 선언이었고 이것이 촛불을 지속하자 하는 사람들을 별도의 경향적 세력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즉 서초동인가 여의도인가의 분화가 있기 전에 종료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화가 있었다.
  • 북유게 사람들이 촛불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은 조국이 사퇴한 날과 겹치는 월요일(10월 14일)이었다. 개국본이 여의도 촛불을 결정한 것은 수요일(10월 16일)이었다. 종료나 계속이냐의 분화가 여의도인가 서초동인가의 분화로 나타났다.   
  • 섭정의 관점에서 두 개의 촛불 중에서 하나를 취사선택할 이유는 없다. 촛불다중에게는 두 주최측, 두 집회의 에너지가 사회개혁의 집합적 에너지로 공동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두 집회의 공통점은 검찰을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 서초동 집회는 “검찰이 범인이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현존하는 검찰권력의 불법성을 크게 강조했다. 여기에 윤석열 수사, 구속 등 검찰총장에 대한 강한 사법적 압박 요구가 더해졌다.
  • 여의도 집회는 “공수처 설치”와 “응답하라, 국회” 등의 입법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서초동과 여의도의 뚜렷한 차이는 여의도에서 윤석열에 대한 비판적 구호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 서초동 집회는 이전 9차 집회까지와 마찬가지로 ‘조국 수호’를 외치면서 조국을 이슈화했다. 여의도 집회는 ‘조국 수호’라기보다 ‘조국 계승’(수고했습니다) 쪽으로 초점을 옮기는 분위기였다. 서초동이 조국을 현재화한다면 여의도가 조국을 과거화한다는 느낌이었다.
  • 서초동 집회보다 여의도 집회에 더 많은 사람(감으로는 약 1.5배~2배)이 모인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이 여의도 집회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것을 고려하면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고 할 수 있다.
  • 성별 측면에서 서초동 집회는 여성이 주축이었다. 8대 2 정도로 여성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반면 여의도 집회는 5:5로 동등하거나 6:4 정도로 남성이 더 많은 집회였다.
  • 세대 측면에서 서초동 집회는 2~30대가 주축이고 여의도는 그보다는 연령이 더 놓은 세대가 주축이었다.
  • 서초동 집회는 참가자들의 자유발언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여의도 집회는 공연과 유명인사들의 연설 중심이었다. 
  • 서초동 집회에 비해 여의도 집회가 미디어 동원이 많았다. 여의도 집회는 스크린이 과잉동원되었다는 느낌이었다. 9월 28일의 과소동원과 대조되는 풍경. 전체적으로 너무 큰 마이크 소리로 집중이 어려웠다. 국회의사당역 출구의 포스트잇 시위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서초동의 경우는 미디어 동원이 적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히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주요 슬로건을 담은 큰 깃발들 대오가 외곽을 오가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 전체적으로 여의도 집회의 방식이 전통적 조직운동의 집회방식이라면 서초동 집회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트워킹 방식을 오프라인 집회에 전용하는 것이었다.
  • 수백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가 구심점을 이루면서 촛불다중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졌던 2008년이나 2016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2019년의 촛불집회는 개국본이나 북유게 등 개별 단체나 커뮤니티가 주최측이 되어 집회를 개시하고 다중들이 그것에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주최측의 정치적 색깔이 집회 전체의 색깔을 좌우할 수 있고, 주최측 간의 의견차이나 갈등이 촛불 다중들의 갈등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 공통의 목적을 위해 의견의 차이를 어떻게 생산적 토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주최측이 뚜렷한 데서 오는 이 위험성을 어떻게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나타난다. 

조국 사퇴의 정치적 의미와 사퇴 이후의 검찰개혁에 대한 연구노트

  1. 조국의 조기사퇴는 검찰개혁 전선에서의 후퇴다. 조국에게 맡겨졌던 최소한의 개혁목표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기사퇴는 검찰개혁에 저항해온 언론과 검찰 및 자유한국당의 압력에 민주당 지도부가 동화된 결과이다. 
  2. 검찰-언론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를 사법과 문화로 비선(秘線)지배하면서 강탈적 축적을 가속시키는 두 개의 ‘비선(秘線)축’으로서 서로 연합하여 작동한다. 이것은 과거 발전주의 국가를 군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비선지배했던 것에 비교할 수 있다.
  3. 언론과 검찰은 표적보도(편의보도)와 선별기소(편의기소)를 통해 다중의 인지적 정치적 삶을 왜곡하며 착취적이고 수탈적인 사회관계를 온존, 강화한다. 
  4. 이 두 축은 국가에 대한 다중의 아래로부터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능력을 찬탈하고 왜곡한다. 이 두 축은 국내적으로 지배하는 엘리뜨와 복종하는 군중,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지배하는 제국과 종속하는 주변국 사이의 구조적 연합(국민통합과 미일한 동맹)으로서의 국가를 표상한다. 지배, 사대, 전쟁, 경쟁, 승리가 이들의 지향성이다. 이 두 축은 전쟁으로서의 삶이라는 호전적 이미지를 삶의 본질로 제시한다. 
  5. 이것은 자율, 자주, 평화, 연대, 공통이라는 현시기 촛불다중의 염원과 대립한다. 그러므로 현 시기에 전 국민적 의제가 되어 있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이 두 비선축의 비선지배를 촛불다중의 민주적 섭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 통과절차다.
  6. 조국의 법무부 장관임명은 촛불다중의 검찰개혁 요구에 대한 자칭 촛불정부의 최소한의 부응조치였다. 즉 다중 섭정의 정치적 첨점이었다.
  7. 검찰은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에 저항했고 그 수단이 조국 일가에 대한 먼지 털이식수사였다. ‘검찰개혁’ 메시지에 ‘사기꾼 일가’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이다. 이것은 ‘권력형 성폭력 리스트(장자연 리스트)’ 메시지에 ‘사기꾼 윤지오’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과 동일하다. 
  8.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성착취-성수탈 관계가 사회적 의제로 표면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조선일보가 주도했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검찰권력을 침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검찰 특수부가 주도했다.
  9. 증언자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는 윤지오의 인성, 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통해 증언의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마녀사냥을 통해 이루어졌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는 조국 일가의 자산가적 계급성을 비난하고 말과 삶의 불일치를 집중 공격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도덕’과 ‘정의’의 담론은 ‘인권’을 짓밟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10. 이 두 공격 모두에서 “누구를 사냥하는가?”는 분명했지만 “누가 사냥하는가?”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져보면, 실제 상황은, 성폭력 가해권력이 피해여성의 노출을 비난하고, 거대한 규모의 착취수탈자가 임금 외의 가외지대(extra-rent)를 수취하는 정규직노동자를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성격의 것이었다.
  11. 좌파 일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 상층의 (상당히 일반화된) 지대수취(‘사모펀드’), 기회수취(‘장학금’, ‘표창장’)를 비판하기 위해, 도덕주의적 정의를 내걸고 거대 권력이 주도하는 이 마녀사냥에 동참하거나 쟁점회피하면서 기권하는 태도를 취했다.
  12. 조국은 검찰발 사퇴압박을 거부했고 검찰개혁의 ‘최소한(불쏘시개)’을 전진시켰다. 그것을 뒷받침한 힘은 조국 자신에게서 나왔다기보다 촛불 집회에 결집한 수백만 다중에게서 나왔다.
  13. 9월 28일 이전에 개국본은 다른 시민단체와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촛불을 꾸려가면서 사법개혁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9월 28일 국민-다중의 분노의 폭발은 개국본/사국연을 놀라게 하고 후퇴시켰다. 더 이상 ‘주최측’이 무의미해지는 다(多)중심의 시간이 열렸다. 이것은 검찰개혁의 급진화, 더 급진적인 검찰개혁을 가져올 다중지성적 에너지였다. 10월 12일을 마지막으로 한 집회중단(그것은 ‘최후통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결국 검찰이 아니라 문재인과 조국을 향한 최후통첩이 되고 말았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국본/사국연의 대응방식이다.
  14. 촛불의 혁명적 폭발이 집회에 가져온 충격(‘중단’) 외에 권력장에 가져온 충격도 있다. 9월 28일의 촛불혁명은 조국을 일거에 대선 유력 후보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10월 5일 촛불다중의 더 폭발적인 참여는 민주당까지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검찰 및 광화문 집회의 압박에 짓눌린 상태였지만 서초 집회의 촛불에 결정적으로 놀라서 후퇴를 시작했다.(다음날인 10월 6일 조국, 주진우 만남. 주진우-김건희[윤석열] 네트워크를 고려할 때 이것은 의미심장한 만남이다. 대화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사퇴의 의사타진과 일정 조율 및 사퇴형식의 조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5. 지금까지 조국사퇴를 요구해온 자유한국당, 노동당 외에 이제 민주당 지도부가 조국사퇴 대오에 가담한다. 명분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하락이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통계적 지지율이 하락을 보이는 순간에 거리에서 촛불이 보여준 현실적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거리의 현실다중이 아니라 통계 속의 가상 군중을 입장선택의 근거로 삼았다.
  16. 10월 11일 ‘동교동계 원로들’이 이낙연 총리를 불러 조국 사퇴를 권유한다.(https://news.v.daum.net/v/20191011145155705 ) 이후 민주당 내에서 11월 조국의 명예사퇴론이 나왔다. 10월 12일 촛불집회는 ‘주최측’에 의해 잠정 마지막 집회로 계획되었는데(김어준은 그 잠정성과 관련하여 “다시 집회가 열리는 상황은 없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장 내에서 이미 일정정도의 교감이 있었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17. 10월 12일 집회에 대학생진보연합을 비롯한 단체가 촛불 집회 지속을 주장한 것.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는 플랭카드를 내건 것은 촛불집회의 중단에 대한 거부심리가 촛불 다중 속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집회계속 플랭카드 철거를 요구했다. 이미 인쇄되어 참가자들이 든 피켓은 검찰개혁-조국수호인데 연단에서 조국수호 발언은 억제되었다. 일찍이 조국이 법무부장관 후보자였던 8월 28일 후보자사퇴를 주장했던(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1908284024H) 이부영을 촛불집회 연사로 내세웠다. 이런 현상들은 촛불집회 주최측이 다중의 폭발적 참여로 인해 점점 ‘조국수호’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검찰개혁’을 ‘조국수호’로부터 분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8. 10월 12일 촛불집회의 열기가 여전히 폭발적이었던 것, 그리고 노무현-문재인-조국을 잇는 이미지가 자생적으로 등장하면서 조국을 더욱 더 확고하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시키는 것을 확인한 후 11월 퇴진보다 더 이른 ‘조기’퇴진을 권유할 필요성이 민주당 기득권 세력 내에서 더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19. 또 다른 계기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윤석열 원주 별장 접대 진술에 대한 수사회피 보도(한겨레)가 나오고 이 문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조기단속의 필요성. 12일의 촛불집회에서 윤석열체포 주장의 대중적 등장. 윤석열이 국회의 뜻에 따를 의사를 표현한 것. 이런 여러 계기들이 결합하여 국회-검찰이 합세하여 서초집회의 촛불을 끄고 청와대를 포위하여 조국의 사퇴를 부분 명퇴의 형식(‘검찰개혁의 불쏘시개’)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20. 조국 사퇴 후 자유한국당은 “국민승리”를 외치며 환호하고 나경원, 황교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검찰개혁의 길이 난망하고 험난할 것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사퇴 계획을 “몰랐다”고 발빼면서 적어도 말로는 검찰개혁을 지속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개혁을 더 잘 할 인물을 찾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해하고 존중한다”, 노동당은 “환영한다”, 이다. 즉 국회와 제 정당들은 조국 사퇴 사건의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오히려 긴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묵묵부답”의 윤석열이다.) 그런데 문재인 지지층은 조국 사퇴를 범 동교동계(이해찬-이낙연-이재명)의 압박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고 김어준-주진우-시사타파가 이에 동조했다고 보고 있다.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이며 지지율 회복도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 조국 사퇴는 어떤 방식으로도 검찰개혁 전선의 승리로 규정할 수 없다. 조국 사퇴가 검찰개혁의 후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조국 사퇴 압박이 거셌고 지지율 하락이 견디기 어려웠다는 점에 동의한다. 즉 조국 사퇴가 외압에 의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조국의 입장에서 사퇴외압은 두 종류다. 하나는 검찰, 자유한국당, 언론에서의 사퇴압력, 그리고 또 하나는 민주당 내부에서의 사퇴압력.
  22. 조국 사퇴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면 신상이 털리고 가족이 걸레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었다. 검찰로서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개혁을 실제로 주장하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23. 그런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추진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당 내에 있지 않다. 9월 28일을 분기점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검찰개혁을 한 목소리로 외친 사람들, 즉 촛불이 있다.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과 절박성을 학습하는 집단지성적 공간이었다. 촛불이 강하게 밀어준다면 촛불국민의 뜻을 받아 나설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4. 촛불은 조국수호를 외쳤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잔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조국사퇴가 닥쳐온 것은 조국수호라는 촛불의 주장이 정면에서 거부된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의 갑작스런 ‘폐지’와 때를 같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다중이 나서지 않으면 검찰개혁의 완수가 이번에도 난망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군사독재”를 대체한 “검찰공화국”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10월 12일 마지막 촛불집회”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집회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25.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입니다.”“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의 뜻과 마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라는 조국 사퇴 문구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당정청이 힘을 합해 검찰개혁 작업을 기필코 완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에서의 ‘당정청’보다 훨씬 근본적인 역량에 대한 호소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의 검찰개혁 립서비스가 립서비스에 그칠 것인가 실질적인 것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조국사퇴 전 24시간에 무슨 일이?

2019년 10월 13일 오후 2시 조국 장관의 워딩:

검찰개혁의 입법화, 제도화가 궤도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시작이다. 검찰개혁의 방향과 시간이 정해졌지만 가야할 길이 멀다.… 흐지부지하려고 하거나 대충 끝내려고 하는 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확실한 결실을 맺도록 당정청의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

2019년 10월 14일 오후 2시 조국 장관의 워딩:

더는 제 가족 일로 대통령님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자리에서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의 쓰임은 다하였습니다.

가족 때문으로 인한 자발적 사퇴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워딩 차이다.

이 두 워딩 사이에 권력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미래,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향배를 가늠하는 데 필수적이다.

“대충 끝내려고 하는” 세력이 누구였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들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단위에서 집회를 갑작스럽게 중단한 이유도 이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할 기사: 조국 장관 사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주도http://www.newbc.kr/news/articleView.html?idxno=7111

지난 며칠 동안 민주당 주변의 권력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트위터: https://twitter.com/lalapesto

서초 촛불집회의 의미와 양상에 대한 몇가지 생각

집회와 의회

  1. 대의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집회(assembly)는 의회(parliament)가 기능장애에 빠진 때에 의회를 치유하고 개혁하기 위해 출현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정치장이다. 그것은 일종의 의회밖의 의회, 거리의회이다.
  2. 집회는 언어, 분석, 이성에 의해 이끌리는 의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 직관, 정동의 요소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3. 집회는 의회를 대체하기보다 의회를 섭정한다. 의회의 가능조건과 기능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4. 집회의 언어는 이 때문에 주로 명령어이다.

9월 21일, 9월 28일, 10월 5일/10월 12일의 집회변이

  1. 내가 참가한 주말집회는 6, 7, 8, 9 총 4회 중 3회였다. 내가 참가하지 못한 8차 집회(10월 5일)는 9차 집회와 유사한 질/량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 첫 주말집회였던 6차 집회는 사법개혁국민운동본부(초기의 개싸움하는국민운동본부)라는 명확한 집회주체가 있었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전개되었던 2008년이나 2016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사국본은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집회를 주최했다. 1차 집회를 수백명에서 시작하여 9월 21일 6차 집회에서는 내가 참석한 시간에 대검 정문 앞에서 수천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검찰이 이것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이전의 검찰 수사 관성이 집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3. 7차 집회에서는 빅뱅이 일어났다. 서초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나갈 때부터 여기저기서 검찰개혁을 외치는 구호소리가 요란했다. 페스티벌이 있었던 예술의 전당 방향을 제외하고 교대역 방향과 서리풀터널 방향, 그리고 검찰청 방향으로 집회군중이 서 있었다. 주최측은 대검 정문 앞에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무대를 설치했는데(수 만 명의 참가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 무대는 집회군중에 떠밀린 왜소한 섬처럼 보였다. 7차집회는 주최측의 예상을 넘어선 다중의 폭주공간이었다. 통행이 어려웠고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도 없고 촛불도 없이 스마트폰 랜턴 앱으로 집회를 이어갔다. 무대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꽤 많은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구호도 다양했다. 통신폭주 때문인지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았다. 촛불혁명의 시간이 있었다면 9월 28일 7차 집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4. 9차 집회는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6시 50분에 도착하여 한자 십(十)자형 집회대오를 외곽으로 취재 사진을 찍으면서 걸어보았다. 예술의 전당방향 한 블럭 반을 돌았다. 교대역 방향이 가장 길었는데 강남역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대오였다. 대검 방향은 서초경찰서를 분기점으로 태극기 집회 수천명과 대치/분리되어 있는 형상. 서리풀 방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나 군데 군데 빈자리가 많았다. 2시간 10분이 걸려 9시에 출발점인 서초 사거리에 도착했다.
  5. 6차 집회가 결의를 했지만 불안한 선구자들의 형상이었고 7차 집회가 성난 군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면 9차 집회는 자신감 넘치는 축제참가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장터가 생겼다. 어린이를 등목 태운 사람들, “검찰개혁, 윤석열체포” 피켓을 두른 반려견, 일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9차 집회에서 7차 집회의 아나키스러움은 사라졌다. 교통경찰이 통행을 관리하고 자원봉사자들이 군중을 관리했다. 서초 네거리에 설치된 거대한 중앙 무대는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 복제되었다. 거대한 복제 스크린이 대충 열 개는 되어 보였다. 집회는 다중의 자발적 운동이라기보다 중앙이 일사분란하게 진행하는 행사의 성격을 띠었다. 이 때문에 구호는 “검찰개혁, 조국집회”로 일정하게 수렴되는 분위기. (태극기 집회 쪽은 “문재인 퇴진, 조국구속”만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6. 태극기 상징의 재전유/탈환이라는 이유로 태극기 문양 피켓들 및 대형 태극기가 집회 도구로 도입되었다. 9차 집회에서는 그것이 애국가와 결합되었다. 이것이 애국주의로 나아갈지 “나라의 새로운 형상”에 대한 모색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앙 무대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전자로 귀결될 위험성이 높다.
  7. 집회 무대에서 먼 곳, 특히 교대역과 강남역 사이에서는 중앙 무대의 복제 스크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독자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중앙 무대를 등진 대오를 꾸리는 모습도 보였다. 자세히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중앙 무대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난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을 보완하는 것?
  8. 지역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의 대오도 일정하게는 무형의 독립성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9. 주최단체인 사국본이 9차 집회를 잠정적 마지막 집회로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대학생진보연합은 19일 26일에도 대학생 주도로 집회를 계속한다는 선언을 한 상태.

단상

  1. 촛불다중들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위해할 수 있는 검찰권력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검찰개혁을 하라는 명령을 하기 위해 모였다.
  2. 조국은 검찰개혁을 수행할 최소 행위자(최소강령의 이행수임자)로 호명된다.
  3. 국민의 사법주권이 현재 주어진 최소강령인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를 통해 달성되지는 않는다. 대법관 및 검사장 직선, 재판배심원제(국민참여재판)를 보충할 기소대배심제(Grand jury), 법관 및 검사장에 대한 국민소환제 등 국민의 사법주권을 보장하면서 대의기관들을 통제할 제도들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4. 이러한 과제들은 사법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완수될 수는 없기 때문에 국민-다중이 행정주권과 입법주권을 획득하는 과정과 동시병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동물과 집회

“[네팔의 자나 안돌란 당시] 비라트나가르에서는 당나귀와 개와 고양이도 검은색 스카프와 민주주의 구호로 장식한 채 거리를 뛰어 다녔다”(조지 카치아피카스, <아시아의 민중봉기>, 원영수 옮김, 오월의봄, 347쪽)

서초동에서도 “검찰개혁, 윤석열체포” 띠를 두른 반려견이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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