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윤지오 사건을 바라보는 김대오의 가부장적 성차별주의 시각의 세 가지 구성요소

대체 김대오가 누구인가? 그는 2009. 12. 9. 성남지원에서 장자연 문건의 끝 두줄 외에는 아무것도보지못했다고 진술한 사람이다. 또 그는 2009. 3. 12. 봉은사에서 문건을 태울 때에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반면 윤지오는 누구인가? 봉은사 차 속에서 총 7장의 문건을 읽었고 원본과 사본을 태우는 자리에 유장호 및 유가족과 함께 있었다고 2009년 3월 18일에 경찰에서 진술한 사람이다. 또 윤지오는 2010. 6. 25일에 그 문건에 리스트가 있었다고 성남지원에서 증언했던 사람이다. 이 진술은 당시 유장호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2019년 4월에 갑자기 김대오가 윤지오를 향해 “자신이 문건을 보았을 때 거기에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윤지오가 리스트가 있었다고 거짓말한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문건을 보지도 않은 사람이 문건을 본 사람을 꾸짖는 셈인데, 우리 속담에서는 이런 경우를 (장님 비하가 담겨 있어 피하고 싶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빌어오자면) “장님이 매질하는 격”이라고 표현한다.

김대오가 왜 비판되어야 하는가? 그의 이 거짓말을 기초로 한 윤지오에 대한 고소고발 책동이 국민의 재수사 열망을 담은 과거사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조사와 윤지오의 증언에 찬물을 끼얹어 결국 장자연 사건 재수사의 불발을 가져온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김대오의 이 거짓말을 사람들 앞에 명백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김대오의 거짓말”(http://amelano.net/?p=373) “네 가지 법정과 김대오는 어디로?”(http://amelano.net/?p=489)에 이어 “김대오의 입은 거짓말 제조공장인가 자동거짓말기계인가?”(http://amelano.net/?p=806)를  쓴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쓴 후 김대오는 또 그입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바가지 뭔가를 토해 놓았다. 그 악취가 심하여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그 악취나는 페이스북을 면밀히 살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일날 그가 나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여 내가 그의 그 글-토사물을 살펴 줄 것을 (어떤 동기에서든) 바라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요청을 내가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이제 이른바 ‘페북-친구’가 되어 그것을 살펴보니 동서남북도, 전후좌후도, 자초지종도, 기승전결도 없이 그냥 사방으로 막 뿌려놓은 것이었다.

김대오의 위키 이력을 보니 1967년 생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학사, 석사”라고 나온다. 내가 1988년에 중대 문창과 4학년 문학비평 강의를 했는데 정상 코스를 밟은 경우라면 그때 학부 3학년 정도 되었을 것 같다. 안성에서 비켜간 인연이 장자연-윤지오와 관련하여 이렇게 꼬일 줄이야… 그런데 중대 문창과라면 대한민국의 걸출한 문필가들이 배출되는 곳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전직 ‘베테랑 기자’ 김대오가 2019년 4월에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그래도 “진흙 속에서 진실을 캔다”(김대오)는 마음으로 김대오의 말들을 수거하여 몇 차례나 반복해서 살피면서 버릴 건 버리고 뭔가 알갱이가 있는 것들을 채취해 내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여 분류하고 정리해 보았다. 아래는 그의 무의식까지 고려하여, 즉 표면의식(surface consciousness)과 심층의식(deep consciousness)을 종합하여 그의 생각의 뒤죽박죽인 조각들을 모으고 떨어진 고리들을 사유-보철물로 연결해서 정리한 것이다.([ ]속은 문맥 속에서 추정하여 내가 삽입한 것이다)

1.김종승이 장자연의 불쌍한 죽음의 책임자다.

  • 장자연은 [폭행당하고 착취당하다가] 불쌍하게 죽었다.
  • 그의 죽음의 원인은 [그를 폭행하고 착취한] 김종승이 제공했다.
  • 그러므로 김종승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한다.

2.윤지오가 김종승 처벌을 방해했다.

  • 그런데 윤지오가 김종승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여 김종승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 사자명예훼손으로 단단히 처벌했어야 했는데 윤지오 때문에 못하게 됐다.
  • 김종승을 처벌하겠다는 판사의 사법의지 부족이 아니라 윤지오가 김종승에게 유리하게 한 진술이 수사, 기소, 판결 모두에 인용되었기 때문에 처벌이 안 이루어졌다.

3.윤지오는 사기증언을 통해 출세하려 했다.

  • [윤지오는] “그저 그런 딴따라년”(당신들의 표현이야:원문그대로)이다. 
  • [윤지오는] 연기력도 부족했고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가끔은 많이 마셨고 연애관계도 활발했다.
  • [윤지오가] 아프리카에서 ’벗방’했는지, 뭔지 그게 뭐가 문제냐. 나[김대오]는 ‘벗방’ 같은 것 너무 많이 봐서 관심 없다.
  • 문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성공을 향해 질주해야 하는 그저 그런 “딴따라년”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게 뭐냐는 거고 이번 사건에 대한 연구는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 굴레를 벗어나는 길은 사기증언을 통해서 [주목을 받고 돈을 버는 것이다].
  • 장자연 리스트, 조선일보, 국정원 등은 모두 [윤지오가] 만들어 낸  사기증언이다.
  • 그런 사기에 속아 넘어가는 김어준, 손석희, [그리고 조정환] 등이 ‘병신’이다. 
  • 그래서 내[김대오]가 이 사건을 故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 사기 증언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4.리스트는 윤지오의 사기증언의 산물이고 진상조사단/김영희도 그렇게 결론내렸다.

  • “리스트, 증거 있어? 무슨 리스트임…. 도대체 무슨 리스트임? 있으면 구체적으로 검찰이나 수사기관 혹은 일반인이 납득할만한 증거를 내놓던가… 유족이 못 봤다는 게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결론, 이 결론에는 김영희 변호사도 동의했음”.

5.조선일보는 장자연과 상관 없다.

  • “조선일보를 찢어죽이든, 방씨 일가에게 돌을 던지든 죽은 장자연은 내버려 두고 해.” 
  • “망자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가짜 진술 몇 줄짜리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기득권층과 싸워보겠다는 자들이 그래서 병신같은 거야.”

6.윤지오가 국정원 직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국정원 직원이 아니며 유장호가 문건을 봉은사에 파묻은 것은 유족 동의 없이는 문건 내용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는 나(김대오)의 말에 따른 것이다.

  • 유장호의 경호원을 자처하며 봉은사의 차량 속에 유장호와 동승했던 사람은 장자연이 평소 언니라고 불렀던 L씨의 연예인 남편의 소속사 대표였다.
  • 봉은사에는 경찰이나 국정원 직원 아무도 없었고, 유장호가 개인적으로 부른 젊은 사설 경호원이었다. 유장호의 경호원 역할을 했던 동생이, 유장호가 자리를 지적하고 그것을 파오라고 했다.
  • 내가 “문건 존재는 알릴지 언정, 내용은 유족이 결정할 문제”라며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족 동의없이 문건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죄악이다. 내가 문건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도 이야기하지마라”라고 했기 때문에 유장호가 원본을 특정 장소, 봉은사에 묻어둔 것일 뿐이다.

이 여섯 까지가 김대오가 쏟아 놓은 글들에서 내가 추려낸 골자이다. 이렇게 추려놓고 보니 하나의 시각, 분명한 프레임이 드러난다.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여기서 나는 다음 세 가지 핵심적 요소들이 가져오는 효과와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분석해 보고자 한다: (1)김종승을 장자연 죽음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하여 장자연 사건을 사기업 수준으로 축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사기업 위에서 작용하는 가해권력을 가리는, 가해권력에 대한 소극적 방어의 시각  (2)여성 연예인 윤지오에 대해 비하하고 모독하면서 음해하는 성차별주의적이고 성폭력적인 시각 (3)리스트, 조선일보, 국정원을 윤지오 사기증언의 산물로 그림으로써 가해권력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시각. 이 세 가지는 성폭력적 성격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들이기도 하다.

김대오의 입은 거짓말제조공장인가, 자동거짓말기계인가?

2019년 6월 15일자 페이스북에서 김대오는 윤지오, 이민석, 김형남의 말을 터무니 없이 왜곡하고 조롱하고 나에 대해서는 욕설을 퍼붓는다. 이것이,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은 김대오 기자와 박훈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발단입니다”(김형남)라는 객관적 진실을 덮기 위한 연막 피우기임을 나는분명히 직시한다. 너무 길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당자자 분들의 답변이 이미 있으므로(http://bitly.kr/Brc7PH) 여기서는 우선 나는 나에 대한 김대오의 거짓말만을 다루겠다.

“또한, 여기에 밥숟가락 얹고 있는 조정환 문학평론가?(그냥 사노맹 마지막 도바리자)로 표현하자, 이 자가 지랄하고 날뛰는데, 당신 도바리 자금 나도 월시 보증금 500만원은 냈으니, 공익제보자라고 자처하는 윤지오의 똥구멍이나 그 잘난 이론의 혓바닥으로 쓴 글로 열심히 핥기 바란다. 이게 사회구성체 이론으로 설명될 일이냐? 똥인지 방구인지도 모르는 얼치기 같은 인간 보겠나… 나는 적어도 1991년도부터 뼈가 뒤틀릴 정도로 이 연예계 한곳만을 바라봤고, 이 진흙 속에서 행간의 진실을 전하려 했다. 조정환 …. 당신들의 허울 좋은 한줄 규정으로 이 세계가 그렇듯. 이 연예계(너희들은 딴따라라 부르기를 좋아하지… )가 재단될 곳이 아니다. 좀 더 연구하길 바란다. 차라기 해운대에서 프랑스제 수영복에 수입 수경 쓰고 도바리치며 특급호텔 스위트룸을 전전하던 박노해에 대해 헌신적으로 라면만 먹으며 결사보위의 정신으로 버티던 그 잘난 사노맹 혹은 노해문의 헌신적 지지자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무시하지 말길 바란다. 그래서 조정환 너는 ‘토마토’를 닮았다. ‘뭐 잡고’ 자기반성에 힘쓰시길….”(http://bitly.kr/NWsQlh)

나는 여기서,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욕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싶지 않다. 그의 욕설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정신이 자신의 내면에 쌓이고 쌓인 나머지 마침내 ‘부패해가는 진실’의 쓰레기 더미를 견디지 못해 쏟아내는 토사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오의 욕설하기는 그렇게 토사물을 쏟아내고서야  꼭 그 만큼 더 거짓말을 할 정신공간을 확보하는 생존수단,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비겁하게 살아남기 위한 토악질 외의 다른 것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한에서 매일매일 쏟아지는 그의 욕설을 보면서 불쌍함을 느끼는 것 외에 내가 도와 줄 것이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1. 나는 윤지오를 둘러싼 논란에 밥숟가락을 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밥숟가락으로 밥을 뜨던 중 김대오의 어이없는 거짓말이 윤지오의 진실을 덮어 버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침몰하는 진실구조하기 위해 이 문제에 뛰어 든 것이다.  
  2. 나의 도피 자금으로 500만원을, 그것도 월세 보즘금을 빼서 냈다고 하는 데 대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나는 1989년 3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정보경찰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그 중 1989년 3월부터 1990년 10월까지는 내사상태에서의 예방적 도피였으며, 1990년 10월 30일 전국공개수배 이후 9년 동안은 강제된 도피였다. 앞의 1년 반여 동안 대학강사 직을 자발적으로 그만 둔 나는 과외를 해서 내가 도피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금을 조달했다. 이와 별도로 친구, 친지로부터 노동해방 실천을 위해 구한 모든 돈은 월간 <노동해방문학>의 편집 제작 광고 등 조직사업에 전적으로 귀속되었다. 뒤의 9년 동안 얼굴이 대중에게 공개돼 다른 소득 수단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몇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김대오 당신은 결코 아니다.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김대오라는 사람을 태어나 지금까지 만난 적도 본 적도 통화한 적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김대오라는 이름을 나는 2019년 4월에서야 언론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김대오의 얼굴 이미지는 그 후 페이스북에서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러한 김대오가 나를 위해 도피자금으로, 그것도 500만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자신의 월세방 보증금을 빼서 준단 말인가?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ㅋㅋㅋ’대는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김수민은 윤지오의 조력자였다는 이름으로 윤지오의 진실을 무너뜨렸고 윤지오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이제 김대오는 마치 나의 조력자였던 것처럼 꾸미면서 거의 같은 방법으로 나를 모함하고 또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생면부지인 김대오 당신의 조력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
  3. 2019년 6월 13일 오후 3:51분 김대오는 이렇게 썼다. “박노해와 조정환은 도바리치면서 해운대 특급호텔에서 묵으며 프랑스 수영복에 외제 스노쿨링으로 위장했던가? 라면도 못 먹고 해변에서 난장치던 하부에 도바리 자금 할당시키면서….”.(http://bitly.kr/1MLeZR) 사흘이 지나 김대오는 그 말을  위의 인용문처럼 “해운대에서 프랑스제 수영복에 수입 수경 쓰고 도바리치며 특급호텔 스위트룸을 전전하던 박노해에 대해 헌신적으로 라면만 먹으며 결사보위의 정신으로 버티던 그 잘난 사노맹 혹은 노해문의 헌신적 지지자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무시하지 말길 바란다.”로 살짝 바꾼다. 나는 1990년에 박노해와 해운대에 모임을 위해 간 적이 있다. 그곳은 특급호텔이 아니라 지인이 계약해 두고 사용하지 않고 있는 콘도미니엄이었다. 사용료는 없었다. 수배자를 포함한 수십명의 조직원들의 비합법 모임이 해운대에서 수영을 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 말인가? 우리는 2박 3일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식사 시간 외에는 회의에 또 회의를 하고 헤어졌다. 바다에 입수하기는커녕 해운대 백사장에 나가보지도 못했다. “프랑스 수영복에 외제 스노클링”은 대체 어떤 머리가 지어내는 상상력인가?  연예계 기자로 오랫동안 “뼈가 뒤틀리면” 이런 망상증이 나타나는가? 사노맹 혹은 노해문의 동지들은 실제로 헌신적이었다. 사노맹과 노해문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이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내가 언제 “사노맹 혹은 노해문의  헌신적 지지자들”을 “무시”했는가? 근거와 증거를 대라. 또 우리들은 하부가 상부를 “돕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노동해방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 관계였다. 투사들을 조력자로 격하시키지 말라. 또 내가 전국공개수배로 소득수단을 강제로 상실한 1990년 10월 30일 후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은 사노맹과 노해문의 “하부”가 아니었다. 나는 이때부터 조직적 실천을 그만두고 2년 반의 조직적 실천을 재검토하고 자기비판하는 개인적 이론 공부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하부”도 없었다. 위기에 빠진 인간 조정환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인도주의적 사랑이 나를 구조했을 뿐이다. 게다가 1994년이후로 나는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번역작업을 해서 나름 대로의 소득원을 확보했다. 약 6년간에 나는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역시 필명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해 원고료를 받았다. 그러므로 내가 사노맹/노해문 하부에 “도바리” 자금을 할당했다는 김대오 당신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4. 공익제보자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공익제보자가 제보로 인해 손실을 볼 수 있는 가해권력의 힘에 떠밀려 수난의 똥구덩에 빠졌을 때 그 똥구덩에 뛰어들어 진실을 규명하고 진실을 구조하는 것은 실천적 이론과 실천적 지식인의  마땅한 의무이고 또 생리이다. 김대오 당신도 1991년부터 연예계 한 곳만을 바라보며 “진흙(똥구덩) 속에서 행간의 진실을 전하려 했다”고 자부하고 있지 않은가! 왜 당신은 이제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가? 김대오 당신은 연예계의 “진흙 속에서 행간의 진실을 전하”는 일이 연예계의 “똥구멍”을 “핥”는 것으로 느껴진 어느날 이후부터 “진흙 속에서 행간의 진실을 전”하기보다 반대로 ‘진실을 진흙 속에 파묻는’ 권력결탁형 수익성 사업으로 전업했는가? 그것이 장자연-윤지오와 관련하여 거짓말을 쉼 없이 반복하여 혐오감을 주는 <오봉연예뉴스>의 사업 사이템인가?
  5. 김대오가 지금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은 ‘조정환’이 토마토를 닮았는지, 고구마를 닮았는지, 수박을 닮았는지 따위의 정치관상놀음이 아니다. 지금 국민들이 당신의 입을 통해 듣고자 하는 말은 “왜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한 김대오 자신의 답이다. 이것은 이미 변호사 이민석이 명확히 정식화된 질문으로 제기해 두었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당신의 답변을 요구했던 것이다.(https://www.facebook.com/minseokl) 그런데 김대오 당신은 이 질문(메시지) 앞에서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질문자(메신저)를 희롱하면서 진실로 답하기를 에둘러 회피함으로써 국민을 우롱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인가? 대한민국의 언론들이 그렇게 거짓말을 해도 아무런 검증 없이 당신의 말을 받아 써 주면서 당신의 정체를 가려주기 때문인가? 김대오 당신의 마음 속에 진실에 감응할 수 있는 한 조각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제 그 질문에 답하라! 왜 당신은 거짓말을 당신의 생존수단으로 삼고 있는가?!

“당당하게”의 교활성과 “영리하게”의 진실성

-증언자 윤지오와 영리함에 대하여(2)

박훈은 2019년 4월 20일 페이스북에서 윤지오에게 “님이 열어 놓은 모든 계좌를 닫고 다음 주 내로 출국하고, 다시는 장자연 언니 사건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불문에 붙이겠습니다.”라고 썼다. 후원계좌를 무기로 한 출국협박이다. 여기에는 장자연 사건에 대한 증언권을 박탈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표명되어 있다. “장자연 언니 사건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증언자인 그 증언자로부터 증언의 권리를 박탈한다면 누가 장자연 사건을 증언할 것인가? 장자연 문건을 본 적도 없고 장자연 사건을 이제 막 연구하기 시작하며 사건의 본질을 “윤지오 사건”이라고 명명하는 박훈인가? 장자연 문건을 본 적도 없다고 하고 10년이 지나 자기가 본 문건에는 리스트는 없었다고 말하는 거짓말쟁이 김대오인가? 윤지오를 통해 장자연 사건을 알게 된 깜깜이 김수민인가? 배후 세력의 요구에 따라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한몫을 한 꼭두각시 유장호인가? 장자연을 폭행하고 착취하면서 권력자들의 먹잇감으로 장자연을 내놓았던 사장 김종승인가?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의 이미숙인가? 봉은사에서 문건과 리스트를 불태우고 사라진 그 국정원 직원인가? 병원에서 유장호를 감시하던 그 국정원 직원인가? 증거는 빼돌려져 구멍이 난 상태에서 대체 누가 증언하여 장자연 죽음의 진실을 밝힐 것인가? 박훈은 자신이 ‘진실을 밝히겠다’는 허황된 공언과는 달리 명백하게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 은폐하는 결과를 가져올 행동을 했다.

윤지오가 이 요구에 대해 “헛소리하는 변호사”라는 말로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박훈은 으르렁거리며 실제로 4월 23일 김수민을 대리하여 윤지오를 고소하고 이어 Gofundme로 본인이 직접 윤지오를 사기혐의로 고발한다. 그는 진실증언의시간사법의시간으로 뒤덮어 문질러 버렸다. 증언자를 범죄자로 만들기, 그리하여 유일한 증언자를 증언자격 없는 자로 만들어 역사무대로부터 끌어내리고 영원히 퇴장시키기, 이것이 사법기술자 박훈의 역사적 역할이었다.      

이 역할을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4월 23일에 그는 윤지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을 하고 윤지오가 캐나다로 떠난 4월 24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다.

[윤지오 출국에 대한 입장]

(…) 제가 이런 점을 우려하여 출국금지 요청을 하였던 것인데 사건이성숙되지못하다보니 고소한 것만으로는 출국 금지할 수 없다는 경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윤지오에 대한 법적대응은 계속적으로 할 것이며 윤지오에게 후원금을 입금했던 여러분들이 윤지오에 대한 사기 고소에 동참하겠다고 하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윤지오씨는 캐나다로 출국하였지만 경찰 소환 통보에는 당당하게 응하기 바랍니다.(강조는 인용자)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사건의 성숙”, 그것은 부단한 고소고발을 통한 증언자 흠집내기와 기자회견을 통한 여론조작, 그리고 SNS 등을 통한 집요한 마녀사냥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사회적 뇌(惱)와 눈을 마비시키고 혼을 교란시켜 사물들을 거꾸로 보이게 만드는 환등상(phantasmagoria) 놀이다. 법적 대응, 그것은 법 올가미에 마녀를 포획하고 화형터로 끌고 가는 가학성 놀이다. 그런데 바다멀리 캐나다로 몸을 옮긴 그 “마녀”가 순순히 올가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을 찾지 못한 박훈은 마지막 문장에서 여론도 법도 아닌 도적적호소에 의지한다. “당당하게” 경찰소환 통보에 응하기 바란다는 호소가 그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총을 겨눈 사냥꾼이 표적인 사슴에게 숲으로 숨지 말고 “당당하게” 나오라고 소리칠 때의 그 “당당하게!”다. 사법의 부족한 힘을 도덕적 기만술로 보충하여 기필코 윤지오를 포획하고야 말겠다는 적의가 표현되는 교활한 방법이다. 

박훈의 이 도덕적 호소는 박훈의 앵무새 김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당당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구속되라!”는 도덕(당당함)+사법(구속)의 짬뽕 스타일로 변형되더니 각종 벌레 무리들의 디지털 합창으로 변용되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성폭력-한류를 널리 퍼뜨리는 참으로 부가가치 높은, 그러나 수치스러움을 금할 수 없는 성폭력-산업의 일환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슴 까고 춤출 시간은 있고…”(윤지오 이모부)의 저 “가슴 까고”의 포르노그래피 시선, 여성을 관음산업의 생산수단으로 보는 시선을 낳는 공장이다. 이것은 justicewithus가 맨 앞에 하얀글씨로 써서 보이지 않는 글귀, sexually violent의 시선이다. 이들의 “정의”는 SVJ(Sexually Violent Justice), 성폭력적 정의이다. (이에 대해서는 달리 다룰 시간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선 앞에서 “당당하게”의 도덕심이란 사나운 포획자들에게 잡혀 날로 뜯어 먹히는 순진한 희생(犧牲)양의 도덕심 이상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요청했던 두 가지 덕이 필요하다.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두뇌, 용맹함과 영리함이 그것이다. 나는 노태우 정권의 추적을 피해 도피한 후 3당합당으로 등장한 보수 김영삼 정부 내내 숨어살고 1997년 전후 최초의 노동자 총파업의 위력 덕분에 등장한 김대중 정부 2년째에 수배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나타나 조사받으라는 도덕적 당당함의 호소, 그 기만술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진실을 자유롭게 하는 것, 우리를 실제로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래로부터 다중의 봉기와 항쟁, 그리고 혁명뿐이다.

도덕을 포획의 기술로 사용하는 교활한 사법적 사냥꾼들과 성폭력 체제의 파수꾼들에게 화 있을진저! 

1987년 서울구치소의 봄에 대한 추억

-윤지오와 “영리하게”에 대하여(1)

안기부에서 서울구치소로 넘어오니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온 느낌이었다. 안기부에 비해 구치소는 혹독하게 추웠지만 고문과 취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것은 좁은 독방의 천정에 밤새 켜져있는 형광등이었다. 간수들이 각방을 밤에도 감시하기 위해 켜놓은 그 형광등은 안기부에서의 밤샘조사처럼 잠을 방해했다. 구치소에서의 하루는 군사훈련을 받던 사관후보생 시절처럼 점호로 시작하여 점호로 끝났다. 큰 식당에서 집단배식을 받는 대신에 좁은 식구통으로 개인배식을 받는 것, 그리고 군사훈련 대신 강제로 정좌를 하고 앉아 있거나 폭이 채 1미터가 되지 않아 앉은 자세에서 무릎끝이 앞벽면에 닿고 등이 뒤벽면에 닿는 비좁디비좁은 밀폐공간에 감금된 채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검찰조사를 받고 돌아오는 것이 차이였다. 그 좁은 공간에서 기다리는 것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벽면에 ‘군사독재 타도하자!’고 손톱으로 쓰고 ‘그날이 오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를 반복해 부르며 그 시간을 견뎠다. 

얼마 뒤부터 소내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종철이 고문치사로 죽었다는 소식이 면회온 사람을 통해 소내에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구치소 10사하 각 방 재소자들의 소통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에서 물고문으로 죽었다. CA 조직원의 은신처를 불라는 요구를 거부하던 중이었다. 돌아보면 그 날에 나도 남산 안기부에서 고문수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교도관들의 태도가 위압적인 것에서 관리적인 것으로 다소 부드러워진다고 느끼던 어느날, 젊은 대학생이었던 구학련의 은재형이 저 멀리 끝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투쟁을 시작했다. 옷이 찢어졌으니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바늘과 실을 달라는 요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도관들이 몰려가 독방 문을 따고 소리를 지르는 은재형을 구타하며 진압한 것에 대한 항의가 1987년 초 서울구치소 재소자 인권투쟁의 시작이었다. 항의가 거세지면서 여기저기서  세수 시간을 늘려라, 신문을 읽을 수 있게 하라 등의 재소자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각방에 강제로 정좌하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일어서서 감시구 창살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내 정면 방에 있던 김성식(현 바른미래당)의 얼굴을 감시구 창살 사이로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비스듬히만 볼 수 있거나 아예 볼 수 없었지만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안기부에서 신체적으로 고통받고 심리적으로 짓눌린 후 구치소에 와서도 위축되어 한 동안 펼 수 없었던 기(氣)가 확 펴지는 느낌이었다. 1987년 봄, 31세의 나에게는 이 순간이 생의 전환점이었다. 스피노자의 용어로는 슬픔에서 기쁨으로의 전환이었다. 몸은 갇혀 있었지만 다시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솟았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빗자루로 감시구의 창살을 두들기거나 긁어 소음을 일으켰다. 10사(舍)하(下) 전체가 드르륵드르륵대고 쾅쾅거리는 소리로 진동했다. 사방에서 구호가 들려왔다. 이 소요를 진압하러 중앙복도로 교도관들이 떼지어 몰려 들었지만 그들은 벌써 엄청난 소음투쟁에 위축되어 주춤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분 때문에 마지못해 중앙복도로 들어온 간부급 교도관들에게 우리들은 사식으로 받은 계란을 던졌다. 서울구치소의 하얀 회벽들에 계란 노란자위가 터져 여기저기 누렇게 흘러내렸다. 날계란 세례 앞에 두려움을 느낀 교도관들은 황급히 중앙복도 문을 잠그고 바깥으로 도망쳤다. 모두가 아직은 여전히 독방에 갇혀 있었지만 10사하 사동이 반은 점거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점호를 거부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통방투쟁을 시작했다. 단절되어 있는 각 방 재소자들이 1방, 2방, 3방방 식의 번호존재에서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 투사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저 멀리 끝방까지 들리게 큰 소리로 돌려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사건으로 구속되었는지, 구속 전에는 무얼 했는지 등등에 대해 말했다. <민중미학연구회> 관련자로는 나와 정남영이 그 사동에 있었고 구학련(구국학생연맹) 핵심 활동가들, 그리고 CA(Constituent Assembly) 활동가들도 있었다. 김성식과 김찬도 CA 중앙위원들이었다. 그러니까 대략 반은 NL, 반은 PD인 셈이었다. 정치적 경향과 전망은 달라도 재소자인권투쟁에서는 하나였다.  

당시는 소내에서 신문도 티비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재소자는 사회로부터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보적으로도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반입되는 책들에는 검열딱지가 붙어있었고 편지들은 교도관들이 가위로 위를 잘라 내용물을 본 후 통과되는 것만 우리에게 전달했다. 신문구독 허락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면회시간을 정보투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면회를 할 때 면회온 사람에게 최대한 사회면 정치면 소식을 물어 그 내용을 서로 공유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면회오는 사람들도 이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에 신문을 읽고 와야만 했다. ‘잘 지내냐?, 먹을 것이 뭐가 필요하냐?’ 식의 형식적 면회방식으로부터 ‘어떤 시위가 있었다, 어디에서 파업이 있었다, 어떤 사건이 벌어져 누가 구속되었다, 어떤 정당이 어떤 행동을 했다’ 식으로 정치적 면회시간으로 면회시간의 내용이 바뀌었다. 면회시간이 면회자들 서로의 학습시간이 된 것이다. 

연필도 종이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갇힌 우리는 매직보드(플라스틱 펜으로 쓰면 글자가 나타났다가 털면 사라지기 때문에 텍스트를 보관할 수는 없지만 반복해서 글자를 쓸 수 있다)에 꼼꼼히 메모를 해 와서 통방투쟁을 통해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읽어주었다. 면회를 통해 입수한 사회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불충분하지만 바깥 사회의 투쟁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정보투쟁 덕분에 우리는 4.3 호헌선언 이후 전두환 정부에 대한 투쟁이 고조되어 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에 맞춰 재소자 인권투쟁도 더 활기를 띠었다. 정보투쟁은 정치토론으로 발전했다. 아침 식사후 점심 식사까지, 점심 식사후 저녁 식사까지 우리들은 수시로 정치토론을 했다. 때로는 마주한 방들끼리 국지토론을 했고, 때로는 모든 방들이 참가하는 전체토론을 했다.

투쟁은 소내생활도 좀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세수시간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세숫대로 가서 세수를 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이제 그 시간도 길어졌고 교대하며 마주치는 동지들에게 목례도 하고 말도 건넬 수 있었다. 운동시간도 더 길고 자유로워졌다. 담요를 터는 시간에는 두 사람이 잡고 털어야 하므로 다른 방 동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때도 교도관이 옆에 있던 말든 좀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정서적 교감과 지적 교류를 통해 우리는 각방에 나눠 가둬진 분할된 존재로부터 함께 싸우는 지성적 집합존재로 변형되어 갔다. 점점 영리한 개인으로, 점점 공통적인 집합으로 발전해 간 것이다.  

내게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각 방에 가두어진 사람들의 공소장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가 재판 준비를 위해 자신의 공소장을 갖고 있었지만 인권 투쟁 이전에는 방들 사이의 소통이 금지되어 있어 공소장 역시 유통될 수 없었다. 재소자인권투쟁은 이 금지의 벽을 허물었다. 공소장을 앞방, 옆방으로 전달하는 일은 소지(같은 수감자지만 소내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로 국보법 위반자가 아닌 소위 ‘일반사범’ 재소자들이 이 노동을 담당했다)가 도와주었다. 소지가 유단포(플라스틱 보온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채워주러 올 때나 편지를 전달하러 올 때, 우리는 이것 XX방으로 전달해 줄래요?, 라고 부탁한 후 감사의 표시로 과자 같은 것을 선물로 줬다.

나의 공소장은 앞 부분에 의례히 들어가는 구절, ‘반국가단체인 북한 괴뢰를 이롭게 하고 어쩌구 …’하는 부분을 빼면 거의 대부분이 언제, 누구와 무슨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은 이러하다는 식으로 맞줄표 다음에 책 내용이 한 줄 한 줄 요약된 독서노트 같은 공소장이었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요약문 끝에는 아마도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어쩌구’ 하는 구절들이 적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CA 중앙위원들의 공소장은 달랐다. 거기에는 독서내용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이 적혀 있었다. 몇날 몇시 어디에서 누구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보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다. 모임이 발각되어 위험이 있을 때에는 창가에 컵을 내놓아 위험신호를 알리며 그것을 본 사람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피신하기로 한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일보전진 이보후퇴>를 독서내용으로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글귀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차이는 사회적 적대성에 대한 지각방식에 놓여 있었다. <민중미학연구회>의 나는 사회적 적대성을 이론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몸으로 그것을 느끼고 체화하지는 않았다. 학문사상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된다는 미신에 사로잡힌 채, 나는 엉겁결에 안기부 요원에게 붙들려 구속되고 범죄혐의를 쓰게 된 것이다. 당시 CA 조직원들은 그 적대성을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체현하고 있었다. 나는 순진했지만(순수주의), 그들은 (비록 불철저했다 하더라도) “영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맑스주의가 연구건 실천이건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불법의 조건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영리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머리로만 아니라 몸으로까지 인식하고 그 생각과 감각을 삶 속에 체현하고 있어야 한다는 깨우침.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따른 공부는 합헌적이므로 두려워하거나 회피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혹은 연구행위는 당당한 것이라는 생각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며 이윤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라면 생각이건 행동이건 용납하지 않는 자본주의에서는 순진무구한 생각일 뿐이라는 깨우침. 

우리는 우리 자신이 순수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음모와 술수를 통해 착취와 수탈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에 적합하고 효과적인 대응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실(당당함)을 영리함과 결합시켜야 한다. 승리하는 혁명을 위해서는 강령(진실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략과 전술(영리함)이 필요하다. 이것이 1987년 봄 서울구치소에서 공소장들에 대한 독서를 통해 얻은 교훈이었다. 이때 검찰이 작성한 각자의 공소장들은 나의 진정한 교과서였다.

이것은 내가 교회, 학교, 대학, 대학원에서 목사, 교사, 교수로부터 배울 수 없었던 가르침이었고 친구, 가족으로부터 얻을 수 없던 교훈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1987년의 서울구치소가 나에게는 진정한 학교였고 그곳의 동지들이 나의 진정한 교사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노동해방문학>이 출간되면 수배될 것을 예상하고 예방적으로 집을 나와 은신했던 1989년 3월 7일부터 1999년 12월 말까지 10년 8개월의 장기 수배 기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때 얻었던 깨달음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폭력체제의 고수의 길인가 공통장 촛불혁명의 길인가?

-국정원의 추억(2): <민중미학연구회>와 <지상의 빛> 

<민중미학연구회>의 경우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후에야 나는 내가 어떤 정치적 그물에 먹잇감으로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안기부가 강철 김영환의 <민족해방노동자당>을 반국가단체로, <민중미학연구회>를 대학강사들로 조직된 그 배후지도세력으로 그린 기소의견을 검찰에 제출했던 것이다. 

언론은 <민족해방노동자당>은 “김일성의 혁명이론을 토대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이론 (NLPDR) 을 정립하여 「강철시리즈」 등 지하유인물을 학원가와 노동계에 확산시켜 전방입소거부·부산미문화원점거·건대 점거농성 등을 배후 조정해 온 ‘친북괴 반미공산혁명 음모조직’”이라고 보도했다. 민중미학연구회는 졸지에 이 무시무시한(?) 성격의 조직을 배후지도한 이적단체로 만들어졌고 나는 그 이적단체를 구성한 주범(대표)으로 몰렸다.

<민중미학연구회>의 목적은 미학의 민중적 재구성이었지 북한이나 <민족해방노동자당>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민족해방노동자당>이 존재하는지 않는지 당시에 전혀 알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것이 실제 존재했던 조직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그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조직을 우리가 어떻게 배후에서 지도하는가? 또 조금만 운동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맑스주의를 공부하는 사람들(PD경향)이  김일성주의 조직(NL경향)을 지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양자는 경쟁적인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에 벗어나는 어거지 기소의견이었다. 

게다가 안기부 기소의견에는 <민중미학연구회>가 <민족해방노동자당>에 105만원(현재 화폐로는 2000만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을 지원했다는 혐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표’인 내가 모르게 어떻게 이런 거액이 지원되었다는 것인가?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대학원생과 강사들의 연구모임에 회비를 모아 이런 거액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게다가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내게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일언반구 묻지조차 않았다. 안기부는 우리들의 조직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목적을 기입하고 우리들의 행동을 날조했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이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1986년 말 전두환 군사정권이 간선제 헌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1987년 4월 13일 ‘호헌선언’을 앞두고 이에 저항할 것으로 예상되는 운동권 세력의 뿌리를 뽑아 간선제 호헌과 장기집권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해 두려는 것이었다.

<지상의 빛>의 경우

지금 윤지오를 기소하라고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이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의 ‘증언자 보호’라는 목적을 지우고  ‘돈벌이를 위해서’라는 목적을 기입하고, “국민들을 기망하여 최소 1억5천만원 이상을 갈취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윤지오의 행동으로 여론조작하는 것은 내가 겪은 것과 동일한 과정이다. 나는 이러한 목적 조작과 행동 조작의 동기가 증언, 즉 진실말하기의 억압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고 성폭력체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에 있다고 보고 있다. 성폭력체제는 가족제도와 국가제도를 기초로 수 십 세기 지속되어왔고 오늘날 기업, 교회, 군대, 정당, 학교 등에 널리 뿌리박고 있는 일종의 물질적 헌법(material constitution)이다. 이런 의미에서 윤지오 마녀사냥의 목적도 일종의 ‘호헌’이라고 볼 수 있다.

두 경우의 차이와 그 사회정치적 의미

그런데 두 가지 점이 다르다. 

하나는 사건을 조작하는 방법과 방향의 차이다. 

학술조직인 <민중미학연구회>는 이적(利敵) 정치조직으로 조작되었음에 반해 비영리단체인 <지상의 빛>은 사기를 위한 유령조직으로 조작된다. 앞의 경우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사상범을 만드는 테크놀로지고 후자는 ‘사기꾼’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적 파렴치범을 만드는 테크놀로지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범죄조작의 경제화를 하나의 뚜렷한 경향으로 드러냈는데, 한국의 경우 노동운동 탄압의 주요 무기가 집시법을 이용한 정치적 탄압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손해배상 청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탄압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 하나는 사건을 조작하는 주체의 차이다. 이 점은 조금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민중미학연구회>의 이적단체 조작은 명백히 일방적으로 안기부가 전면에 나서 수행하는 정보공작이었다. 주체는 중앙집중화되어 있었고 권력집중적이었으며 단독적이었다. 그것이 중앙 국가권력의 소행이라는 것은 누구나의 눈에 확연히 보이는 것이었다. 전두환의 장기집권 구상의 실패는 이러한 중앙집권적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1987년 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시민사회의 뚜렷한 성장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초한 가상공간과 디지털 시민사회도 크게 성장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1999년 1월 21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도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개조되었다. 국정원은 점점 단독으로 정보공작을 할 수 없게 되고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필요로 했다. 정보공작의 민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이것은 사회운동의 탈집중화, 탈정당화, 시민화, 다중화 과정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사회적 갈등은 점점 국가 대 시민의 투쟁이 아니라 시민 대 시민의 투쟁, 즉 내전(civil war)의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 여전히 중앙집권주의는 살아 있었지만 중앙집중적 국가기관이 전면에 나서 공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의 투쟁의 배후에서 그 투쟁에 특정한 방향으로 은밀하게 영향을 미치고 그 투쟁의 결과를 정치적으로 수렴하고 종합하는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띄어갔다. 2008년 촛불봉기 당시 사람들은 아고라에서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는 거대규모의 ‘알바’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는데 그것은 이명박-원세훈 국정원의 댓글조작을 통해 확인되었다. 2019년 현재에는 ‘알바’보다는 ‘벌레’가 더 문제인데 이들은 내가 보기에는 기존의 시민사회 구조(현재의 장자연-윤지오 쟁점에서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는 정보의용병들이다. 즉 정보전쟁(infowar)에서 수구 세력은 정규군(기관, 정당, 언론, 교회), 비정규군(알바), 의용병(벌레)의 세 구성부분을 갖고 있고 세 번째 의용병의 자발적 움직임이 더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부분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시적 비가지적으로 협동하는 구조를 놓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경험한 <민중미학연구회>에 대한 이적단체 조작이 하향적(위에서 아래로) 구도를 갖고 있었음에 반해 윤지오와 <지상의 빛>의 사기꾼-사기단체 조작은 명백히 벌레에서 시작하여 알바, 정규군으로 향하는 상향적(아래로부터 위로) 구도를 갖고 있다. <민중민학연구회>가 장지집권을 획책하는 군사정권의 먹잇감이 되었다면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만들어 권력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려 하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려는 시민사회 구성원들 자신이다.  그들은 국가기관 이전에 비제도 다중지성(multitude intelligence)의 등장이 자신의 지성지위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변호사 기자 작가 교수 등의 전문가들,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가족에서 최후의 피난처를 찾는 소시민들, 그리고 비정규직 실업 등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삶의 재난 속에서 미투 등 아래로부터 여성권력의 대두에 불안을 느끼면서, 여성과의 연대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공통장 촛불혁명의 길이 아니라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통해 성폭력적 기득권을 내려 놓지 않으려는 남성들 등 복잡한 구성을 갖는다.

성찰과 선택의 시간 

이제 장자연 사건을 넘어 거대한 사회적 쟁점이 된 윤지오 논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세계, 어떤 삶을 그려 나갈 것인가?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만들고 장자연의 절규를 묻어버리면서 차별과 폭력을 통해 성폭력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장자연의 절규와 윤지오의 증언을 소중히 받아 안으면서 성폭력 가해자들을 단죄하고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소시민, 전문가와 다중이 서로 협력하여 공통장을 다듬어 내는 민주공화적인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 우리가 성찰하고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장자연을 매장하는 정치적 ‘불도저’ 소리

김수민 인스타그램에서 김수민과 그 지지자들이 환호를 지르며 반기는 기사가 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61118088213425)

변호사 박민식이 윤지오를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부당지원혐의로 고발했다는 기사다.

박상기 민갑룡도 직무유기로 함께 고발되었다고 쓰여 있다.

이 기사는 윤지오가 술자리에서 받아 갖고 있었던 유일한 언론인 명함이었던 이유로 조희천 대신에 윤지오에 의해 장자연 성추행 혐의자로 잘못 지목되었던 홍선근의 머니투데이에 의해 대서특필되었다.

대체 변호사 박민식이 누구인가?

위키에 이런 이력들이 씌어 있다.

아버지는 맹호부대의 정보·통역장교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1972년 6월 2일 베트남 중부 빈딘성에서 전사한 박순유 육군 중령이다.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었으며 “불도저 검사”로 불리었다. 

장자연이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2009년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2008년 1월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
  • 2008년 5월 ~ 2012년 5월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

윤지오가 장자연과 관련해 증언을 하고 그로 인해 마녀사냥과 추방을 겪은 2019년에 그는 무엇을 했는가?

  • 2019년 1월 ~ 현재 : 자유한국당 부산시당 강서구(갑) 당협위원장
  • 2019년 4월 ~ : 자유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 공천혁신소위원회 위원
  • 2019년 4월 ~ : 자유한국당 부산시당 21대 총선공약준비위원회 부위원장
  • 2019년 4월 ~ : 자유한국당 부산시당 21대 총선공약준비위원회 직능분과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은 이명박 정권과 그 시기의 성폭력 체제이다. 그는 이명박정권과한나라당의정치적톱니바퀴이며 지금은 그 후신인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톱니바퀴다.

김수민 인스타그램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환호성은 장자연의 목소리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들릴 수 없도록 깊이 매장하는 요란한 정치적 불도저 소리다. 누가 윤지오를 범죄자로 만드는지 그 정체가 지금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길이 닦였고 손님들이 가득하며 이제 살륙의 잔치판을 벌여도 될 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기부와 국정원의 추억(1)

-30세에 나는 어떻게 ‘범죄자’가 되었나?

연행과 구속

장자연은 배우가 되려다가 3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비통한 죽음을 맞이했다. 윤지오는 배우의 꿈을 안고 살았지만 30대 초에 그 장자연의 증언자로 나섰다가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내몰리고 있다.  동료배우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도 정확히 30세에 처음으로 범죄자가 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자, 반공 주류사회의 언어로 ‘빨갱이’가 되었다.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과 임화를 주제로 한 학위논문 준비에 한참이던 1986년 12월 31일 오후 나는 봉천동 집으로 찾아온 건장한 체구의 세 사람에게 연행되었다. 안기부[전 중앙정보부, 현 국정원]에서 나왔는데 참고인 조사라면서 잠깐만 시간을 내 협조해 주면 좋겠다고 말해 그들의 승용차에 올라 탔는데 어디에서부터인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손으로 뒷머리를 눌러 창밖을 보지 못하게 했다. 도착한 곳이 남산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약간 어두운 지하방이었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바짝 긴장한 상태의 나에게 옷을 갈아 입으라고 했다. 군복 상하의였는데 바지에 허리띠가 없었다. 바지가 계속 흘러 내리기 때문에 일어서서 움직일 때는 허리춤을 둔 손으로 움켜쥐어야 했다. 허리띠가 무기나 자해수단으로 될 수 있다는 이유였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무력감을 심화시키는 수단이었다고 생각된다.

약간의 심문이 진행된 후 구타가 시작되었다. 내가 들어오면서 들었던 그 비명을 내가 내지르게 되었다. 몽둥이질이 끝나고 나서 수사관들은 따뜻한 표정으로 달래듯이 말을 걸어왔다. 야식도 주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면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밤샘조사였다. 나는 한 사람인데 수사관들은 돌려가면서 수사했다. 졸면 ‘여기 자러 왔냐?!’면서 몽둥이질을 했다.  이러기를 20일. 나는 해를 넘겨 기억컨대 1987년 1월 19일에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었다. 구속기소였다. 내가 왜 구속기소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는 공부가 유죄가 되듯 증언도 유죄가 된다

대학 초년 시절에 나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문학에 대해 토론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어차피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고 분위기가 살벌했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 두 번의 학사징계를 받고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손’, ‘이등변삼각형의 꼭지점은 밑변을 시기한다’ 등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 경향의 작품을 쓰던 내가 사회문제를 주제로 습작을 한 첫 작품이 ‘율도국에서 생긴 일’이다. 대학4학년 그러니까 1978년이었는데 홍길동의 이상도시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던 것 같다. 이 무렵 나왔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조세희가 메타포 방식으로 그린 노동도시 ‘은강’과는 다른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상상을 통해 그려본 것이었다. 학사학위 논문으로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요절한 두 작가 이상과 김유정의 작품을 비교한 연구를 제출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던 첫 해인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정권이 부마항쟁과 김재규가 쏜 총에 붕괴했다. 서울의 봄에 이어졌던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전후에 나는 국문학, 영문학, 독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언더모임에 합류했다. 헤겔, 루카치, 맑스의 독일어 원전을 강독하는 것이 주요한 학습내용이었다. 독문학을 공부하면서 독일어교육과 조교를 하고 있던 조만영이 독해를 이끌었고 모임 장소도 수업이 없는 주말 독일어교육과 조교실을 주로 사용했다. 독문학을 하는 사람으로 조만영 외에 정재경, 영문학을 하는 사람으로 정남영(전 경원대)과 김명환(현 서울대), 미학을 하는 사람으로 이영욱(현 전주대), 국문학을 하는 하는 사람으로는 김종철(현 서울대)과 임규찬(현 성공회대), 그리고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독일어 원전강독을 통해 확보한 관점(지금 회상해 보면 ‘헤겔리언 맑스주의’ 관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을 기초로 이 모임이 정치경제학, 제3세계론, 한국근대사, 민중론, 민족문학론 등을 두루 공부하는 데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에게 한국어문학을 가르치면서 대방동과 신림동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나름 대로 열정적인 연구시간을 보냈다. 1985년경에 우리는 신림동에 독립연구실을 마련하고 우리를 민중미학연구회(민미연)로 부르기 시작했다. 28세의 나이에 대학 전임강사가 된 정남영 외에는 대부분이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독일어, 영어로 된 맑스주의 저작 번역을 사회실천이자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이 무렵부터는 호서대 강사로 나가면서 게오르크 루카치의 책 <변혁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을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했다. 조만영은 <역사와 계급의식>을 공역했고, 이영욱은 <역사소설론>을 번역했으며 정남영과 김명환도 프레데릭 제므슨을 비롯한 영미권 주요 맑스주의 문헌들을 번역했다. 나름 내로 한국 사회 문예미학 담론에서 우리 나름의 독자적 경향성을 확보했다고 믿은 우리는 1986년에 민중미학연구회를 공개모임으로 전환하여 회원을 공개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민중미학연구회는 신두원, 진중권 등 젊고 진취적인 신진연구자들이 모여서 미학의 민중적 재구성의 방향을 연구하는 활기찬 공간으로 발전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도 대학원 밖에서 행한 것은 한국 사회의 민중적 재구성에서 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한 연구였다. 윤지오가 장자연의 죽음 전후에 어떤 일을 경험했는가에 대해 증언한 것이 전부였듯이, 나(우리)의 경우는 어떻게 사회와 삶을 좋게 만들 수 있을까를 알기 위해 맑스주의 문헌을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것이 이유가 되어 범죄자가 되었고 구속되었고 반년간의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증언이 유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30여년 전인 1980년대에 나의 공부가 반공적=자본주의적 주류사회에서 유죄로 낙인 찍혔다. 이제 2010년대의 성폭력적=가부장적 주류사회(내가 성폭력체제라고 부르는 것)에서 윤지오의 증언이 유죄로 낙인 찍히고 있다.

장자연 사건에서 국정원의 역할이라는 수수께끼

오늘 오전에 있었던 정의연대의 “김대오 기자 고발과 장자연 사건 국정원 개입 증거 기자회견” 요지를, 짧은 동영상을 기초로 정리해 본다.(https://www.youtube.com/watch?v=LJ6twEYjYng&feature=youtu.be)

1.오늘 우리는 장자연 사건 당시 봉은사, 유장호 입원 병원에 나타났던 국정원 박팀장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 전화번호 두 개를 공개한다.(위 동영상 속에 번호 있음)
2.국정원 직원은 윤지오 어머니에게 “따님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어요. 국정원에서 김대표 잡으려고 몇년 전부터 계속 관찰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김종승으로부터 연락오면 국정원에 알려 달라고도 했다.
3.윤지오가 진상조사단에서 국정원이 장자연 사건에 개입되어 있는 상황과 정보에 대해 아는 바를 진술한 후 박훈 김대오 김수민 등이 앞장선 윤지오 마녀사냥과 음해공작이 시작됐다.
4.이것은 2014년 4월 해경이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후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어 구속까지 되었던 홍가혜 사건과 완전히 닮은 꼴이다.
5.국정원이 장자연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 
6.이 두 사람을 수사하면 장자연 사건의 실체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7.특검을 구성하여 전화번호가 드러난 두 사람의 국정원 직원을 수사하라.
8.정의연대는 홍가혜 씨가 해경, 조선일보, 스포츠월드 등을 상대로 싸워 5년이 지난 지금 사과와 손해배상을 판결을 받아내고 있는 것처럼 윤지오를 음해공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내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반드시 처벌할 것이다.
9.오늘 그 출발로서 윤지오에 대한 음해를 시작한 김대오를 고발한다.

동영상을 보고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도 국정원 개입의 윤곽이 드러났으나(세월호의 실질 소유주라는 의혹) 결국 유병언의 책임으로 정리되고 말았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에서도 국정원의 자취가 뚜렷이 보인다. 그런데 윤지오는 10년 전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핸드폰 통화내역이 제출되었고  그 속에 국정원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음에도 국정원 이야기를 묻는 수사관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번 3, 4월에 윤지오는 국정원 개입 가능성에 관해 명확하게 진술했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결과에 국정원에 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오늘이나 국정원은 풀어야할 수수께끼로 남는다. 

1.유장호의 경호원을 자처하며 봉은사의 차량 속에 유장호와 동승했던 사람은 국정원 직원이었다. 왜 신인배우 장자연이 죽었는데 국정원 직원이 유장호와 함께 나타난 것일까?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을까? 언론들은 봉은사에서 문건을 불태운 사람이 장자연의 오빠였다고 쓰지만, 윤지오는 문건을 땅밑에서 꺼내온 것도, 불을 붙인 것도, 구둣발로 문건을 비벼끈 것도 모두 그 국정원 직원의 소행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사례증언조서(문건)과 리스트증언조서(리스트)를 (유장호와 함께) 땅밑에 묻은 것도 분명히 국정원 직원일 것이다. 국정원 직원은 유장호가 문건/리스트를 꺼내오라고 말했을 때, 이미 그것이 묻힌 장소를 알고 있었고 그곳으로 가서 문건/리스트를 꺼내왔다.

2.봉은사에서 문건/리스트가 소각된 자리의 흙을 감식한 결과 인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때 태워진 것들이 원본이 아니고 원본처럼 만들어진 사본 혹은 의제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연대가 시사하듯이 원본은 지금도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장호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미 국정원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국정원 직원이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도 나타났던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윤지오의 어머니에게 “따님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어요. 국정원에서 김대표 잡으려고 몇년 전부터 계속 관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사실은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왜 국정원이 김종승을 잡으려 했을까? 당시 김종승의 범죄혐의는 마약과 성추행이었는데 이것들이 당시 국정원이 수사를 맡는 범죄영역이었는가?  

4.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정원 개입설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사람은 이상호 기자다. 그런데 장자연 죽음 이후 국정원 직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한 후 갑자기 윤지오는 메신저 공격과 마녀사냥, 그리고 음해의 파도에 휩쓸렸다. 그런데 그 선두에 섰던 것이 김광석 사건과 관련하여 이상호 기자와 다투고 있었던 박훈 변호사라는 사실이 새삼 주목된다. 그 후 이상호 기자는 뇌경색 재발로 입원했으며 이 상태에서 김광석 부인에게 5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2019년 3월 28일 박훈의 포스팅이다.

“고김광석 부인 서해순을 남편 살해범으로 몬 이상호가 윤지오 배우를 통해 장자연 사건을 폭로한다면서 이미숙을 공격하던데 또 다른 참사를 저는 목도하는 바입니다. 서로들 맘대로 씨부린 뒤에 무슨 재가 남는지 알아 봅시다. 난 이상호가 하는 일은 나의 일이라 봅니다. 어이 자네 좀 있다 보세.”

5.과거사조사위원회는 ”최초로 받은 통신자료를 경찰관이 통화내역 파일을 수정, 편집하여 유통할 수 있어서 통신자료에서 특정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것이 가능했던 구조”였음을 지적한다. 얼마든지 증거조작이 가능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 역시 국정원이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구멍이다.

6.또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문 중에서 주목할 점으로 “압수수색의 부실함과 증거자료의 기록편철 누락” 항목이 있다. 즉 압수해야 할 기초자료를 압수하지 않아 누락되거나 증거로 확보되었는데도 지금 사라지고 없는 자료들에 관한 항목이다. 도대체 누가 왜 고의로 증거자료를 누락하고 또 확보된 것 중에 결정적인 것은 빼돌리는가?

오늘 기자회견 내용에 비추어 국정원 개입의 관점에서 이 항목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일 것 같아 아래에 참고자료로 옮겨둔다.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국정원과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중요한 것은 강조체한 부분이다. 특히 ⑦ 은 국정원 직원의 음성이 녹음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증거자료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빼돌려서인지 사라지고 없다. 맨 마지막 결론 부분(강조체)에서 과거사조사위원회도 이러한 경우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하면서 장자연 사건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이례성의 정도는 경찰이나 검찰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장자연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부실한 압수수색 및 주요 증거자료의 기록편철 누락 등> 

❍ 이 사건 수사 초기인 2009. 3. 15. 경찰은 장자연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여 장자연의 자필 기재 다이어리와 수첩, 휴대폰, 컴퓨터 등을 압수하였고, 압수한 휴대폰 3대 및 컴퓨터, 메모리칩 2개는 디지털포렌식을 의뢰하여 분석을 완료하였음 

❍ 그러나 수사기록에 있는 것은 ‘장자연의 컴퓨터에 대본, 기획안, 프리토킹 동영상, 골프여행 사진 216장이 있었다’는 간략한 수사보고와 ‘메모리칩 3개 중 2개는 닌텐도 게임팩이며, 1개는 2003. 3.경 촬영한 사진 9매 있음’이라는 경기청의 중간회신이 유일하며, 디지털포렌식 결과물인 엑셀파일을 저장한 CD가 기록에 첨부되어 있지 않음. 또한, 경찰은 2009. 3. 31. 장자연의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을 적어 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대하여 압수수색을 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후 이 부분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내용 확인 등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 

– 휴대폰, 컴퓨터 등의 디지털포렌식 분석자료는 현재 경기청 및 분당서에 보관되어 있지 않으며, 장자연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도 남아 있지 않음 

❍ 이 사건의 압수수색 및 검사의 수사지휘에서 다음과 같은 부실함과 업무 소홀이 발견됨 

① 경찰의 부실한 압수수색 

– 장자연의 지인 이○○이 조사단에서 한 진술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장자연의 침실 위주로 압수수색하고 침실과 별도로 있던 옷방을 수색하지 않았고, 침실 여기저기에 수첩, 메모장이 많았음에도 ‘조선일보 방사장’ 등이 적힌 다이어리(압수한 다이어리와 다른 것임)를 압수하지 않았으며, 화장대 위 및 핸드백에 보관된 명함도 압수하지 않았고, 장자연이 들고 다니던 가방도 열어보지 않았음. 기록에 의하면, 경찰이 장자연의 주거지 및 차량을 압수수색한 시간은 2009. 3. 14. 19:35경부터 20:32경까지 불과 57분이었음 

– 2009. 3. 13. KBS에서 장자연 문건이 보도되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는데,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장자연의 수첩, 다이어리, 명함 등을 거의 가져가지 않았고, 옷방과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초동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압수수색에서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임. 결국, 경찰이 압수물의 중요도나 사건 관련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아니한 채 성급하게 압수수색을 하였음을 알 수 있음 

② 디지털포렌식 결과와 압수된 휴대폰이 상이함 

– 지인 이○○은 조사단 면담에서, 경찰이 장자연의 핑크색 모토로라 휴대폰을 가져갔다가 돌려주었는데 기록에 남아 있는 압수물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진술하였고, 기록상 압수물 사진에 나타난 3대의 휴대폰 중에는 장자연이 사용하였다는 핑크색 모토로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됨 

– 장자연의 또 다른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결과에는 해당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을 통화기록의 추출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SMS와 MMS 착발신, 음성녹음, 동영상, 사진, 스케줄 기록의 개수만 기재되어 있음), 해당 휴대폰의 전화번호에 대한 통신사의 통신자료에는 해당 휴대폰 전화번호의 통화내역이 다수 있는 등 디지털포렌식 결과가 석연치 않음 

③ 수사검사의 압수물 처리 지휘의 부적정성 

– 수사검사는 김종승이 검거되기 전인 2009. 5. 15. 압수품인 장자연의 개인 다이어리, 수첩 등을 유족에게 가환부하도록 경찰에 지휘하면서 그 사본을 만들어 기록에 첨부하도록 지휘하지 않았는바, 이로써 다이어리 등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되는 등 부적절한 압수물 처리를 하였음(가환부 된 다이어리 등은 유족에 의해 소각되었음) 

④ 수사검사의 통화내역 기록편철 누락 

– 당시 경찰은 장자연, 김종승 등 주요 인물에 대한 1년 치 통화내역을 조회하였으나 현재 보존된 수사기록에는 통화내역이 편철되어 있지 않음. 이 사건이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었던 점, 이 사건으로 인해 명예훼손 사건도 발생하는 등 추가적인 형사적 분쟁도 예상되었던 점, 피의사실 대부분이 불기소 처분되어 재수사의 가능성도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통화내역 원본을 기록에 보존했어야 했음 

⑤ 디지털 압수물 자료 편철의 누락 

– 경찰이 장자연의 휴대폰, 컴퓨터와 메모리칩을 압수한 후 디지털포렌식을 의뢰하여 담당자로부터 그 결과를 받았음에도 이를 기록에 편철하지 않았으므로, 수사검사는 이를 확인한 후 해당 포렌식 결과물을 기록에 편철하도록 지휘해야 했음 

⑥ 인터넷 자료 현출의 누락 

– 수사기록상으로는 경찰이나 검찰에서 장자연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내용을 확인하였는지 알 수가 없으나, 기록상 경찰이 압수수색 필요성까지 검토할 정도였으므로, 수사검사는 경찰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확인한 내용을 기록에 남기도록 지휘하여야 했음 

⑦ 유족 장□□이 2009. 3. 12. 봉은사에서 장자연 문건을 받을 당시 상황을 녹음한 녹음파일 및 녹취록의 누락 

– 유족 장□□은 2009. 3. 12. 유족들이 유○○, 윤○○를 봉은사에서 만나 유○○로부터 장자연 문건의 원본 및 사본을 받아 소각하는 과정을 녹음하였음. 유족 장□□은 2009. 3. 15. 경찰에서 참고인조사를 받을 당시 이 사실을 “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녹음기를 가지고 갔는데 당시 상황이 다 녹음되어 있으니 수사에 참고하세요”라고 진술하였고, 진술조서에는 “이때 봉은사에서 녹음된 녹음기를 제출하여 보관하다”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장□□이 제출한 ‘봉은사에서 녹음된 녹음파일’ 또는 녹취록은 수사기록에 남아 있지 않음 

⑧ 문건을 본 유족 장□□이 작성한 ‘장자연 문건의 내용 및 형식’을 진술조서에 첨부한다고 되어 있으나 누락됨 

– 장□□ 참고인 진술조서에는 장□□이 본 ‘장자연 문건의 내용 및 형식’을 장□□이 자필로 기재하고 기록에 첨부한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수사기록에는 장□□이 작성한 ‘장자연 문건의 내용 및 형식’을 쓴 문서가 첨부되어 있지 않음 

⑨ 장자연 사망 직전 발송한 문자메시지 3통 삭제 의혹 

– 장자연의 휴대폰, 장자연 문건 작성에 관여한 유○○의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결과를 기재한 보고서에 의하면, 사망 당일인 2009. 3. 7. 15:29~15:34 사이에 장자연이 유○○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3통이 장자연의 휴대폰과 유○○의 휴대폰에서 모두‘문자 내용 복구 불가’로 나왔지만, 유○○가 2009. 3. 7. 15:27~15:34 장자연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3통은 복원되었음. 복구 불가 원인에 대해 장자연의 휴대폰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고, 유○○의 휴대폰에 대해서는‘장자연이 보낸 문자메시지 10건은 유○○가 삭제한 것으로 판단되고 삭제 공간에 다른 메시지를 덮어씀’이라고 하였음 

– 장자연이 유○○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3통이 장자연 휴대폰에서 삭제,‘복구 불가’된 점이 석연치 않으나, 각각 다른 분석기기를 이용하여 포렌식이 이루어졌고 휴대폰 포렌식을 할 때 삭제된 문자메시지가 복구되지 않고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때도 있어서, 현재로서는 해당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제3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인지를 추단할만한 구체적인 자료는 없음 

❍ 위와 같이 통화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압수물 등 객관적인 자료들이 모두 기록에 편철되어 있지 않은 이유가 석연치 않으나, 자료가 누락된 것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외압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음. 그러나 통화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수첩 복사본 등이 모두 기록에 누락된 것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이나 검사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이례적임 

“윤지오가 10년 동안 검은 옷만 입고 다녔다고 거짓말 했다”는 거짓 선동

-성폭력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정보의용병 오온욱(2)

오온욱은 자신의 글 ‘<벗방>과 사과’(http://tinyurl.com/y36db242 ; 이하 괄호 속 쪽 번호는 이 글의 쪽 번호다)에서 이제는 지워진 자신의 “질문”글을 이렇게 복원시켰다.

“(장자연님이 세상을 떠난 후), 지난 몇 년동안, ohmabella씨가 사업도 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모델 활동도 하시는 비디오도 봤고, <벗방>하는 비디오들도 인터넷을 통해 꽤 봤습니다. 이는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검은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서 지냈다는 ohmabella님의 주장과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요?”(2쪽)

이 질문에 대한 오온욱 자신의 평가는 이러하다. “어떤 욕설도, 비아냥도 없는 공익적인 질문이었다”(2쪽). 그런데 lamer297이 오온욱의 질문글을 비판하기 위해 아마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이는 오온욱의 질문글 일절(一節)은 이러하다. 

“집 밖에도 못나가고 “몇.년.을 일 자체를 못”한 바로 그 동안 많은 벗방라이브를 하셨더군요.”(3쪽)

“<벗방>하는 비디오들도 인터넷을 통해 꽤 봤습니다.”와는 사뭇 다른 어감이다. 과연 이것이 ‘어떤 욕설도, 비아냥도 없는 공익적인 질문’인가? 곧 이어지는 문장이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요?”라는 비판적 질문인 점에서 “벗방라이브를 하셨더군요”는 비아냥이다. 이 점은 오온욱이 이러한 질문글을 달기 훨씬 전부터 윤지오를 비난하고 모독하면서 “거짓말”(나의 블로그에서 박훈, 김대오, 김용호 등의 거짓말에 대해 논증한 글을 이미 제출했으므로 여기서 근거를 다시 반복하지는 않는다)을 하는 사람들과 계정들의 시각으로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 논란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박훈 변호사, 김수민 작가를 비롯한 인스타그램 (@justicewithus, @do_remisol)의 계정을 통해 윤지오 님의 모순적인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마녀사냥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윤지오 님의 모순적인 행동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나의 스크랩 아카이브에서 인용하는 오온욱의 글, 강조는 인용자)

2019년 6월 초의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결코 ‘공익적’이지 않다. 아무리 좋게 평가한다고 해도 ‘당파적’ 시각이다. 박훈, 김수민, 김대오 트리오가 윤지오 파괴전선에서 가로세로연구소, shootTV 등의 극우 당파와 연합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과 정의당이 윤지오를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에 이용한 후, 그를 버렸다고 비난하던 시점이었는가? 그러므로 ‘욕설도 비아냥도 없는 공익적인 질문’이라는 오온욱의 자기평가는 자신의 당파적 관점을 감추기 위한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이고 허구적인 평가이다.

그런데 나의 눈에는 ‘마녀사냥’으로 보이는 것이 왜 그의 눈에는 ‘문제제기’로 보이는 것일까? 계급입장, 세계관, 젠더관, 여성관, 정치전망 등 아주 근본적인 비가시적 차이들이 이러한 시차(視差)를 가져오는 것이지만 직접 그 비가시적 차이들에 접근할 수는 없으므로 이미 드러난 차이에서 시작해서 그쪽으로 조금씩 접근해 보도록 하자. 

오온욱의 주장은 이러하다. [A]“사업”, “술”, “모델활동”, “<벗방>”을 한 것은 “[B]”’죄인처럼 고개숙이고 검은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서 지냈다”는 ohmabella님의 주장과  [C]”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요? [C]의 ‘서로 모순’이 성립되려면 [A]와 [B]가 각각 진실한 명제여야 한다. 이제 각 명제의 진실성을 검토해 보자.

[A] 명제는, lamer297이 ‘성희롱 및 온라인 괴롭힘(cyberbullying)’ 혐의를 들어 오온욱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명제이다. 이에 대해 오온욱은 반성과 사과의 뜻을 이미 표한 바 있다. 그런데 ‘<벗방>과 사과’에서 그는 그것을 ‘협박에 의한 사과’였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했던 거짓 사과였다고 번복한다. 소용 없는 일이다. 그런다고 해서 이전의 반성과 사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을 지킨다는 실리를 위해 거짓사과말을 하는 사람은, 동일한 논리에 따라, 실리를 위해 타인을 음해하는 거짓말을할/했을수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오온욱의 사과와 번복의 과정이 이미 [A]명제의 진실성을 허문다. 사과문이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위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기 때문에, 윤지오가 ‘벗방’을 했다는 말 자체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위해지어낸 거짓말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게 되기 때문이다.(참고로 김대오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오온욱이 ‘벗방’에 대해 사과하고 번복하고… 하는 방식처럼 오락가락이다. 즉 큰 흐름의 일관성을 갖는 윤지오의 진술과는 달리 진술로서의 일관성이 전혀 없다.)

이제 [B] 명제에 대해 살펴 보자. 이 명제는 ohmabella가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검은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서 지냈다”고 말했어야 진실명제이다. 정말 그럴까? ohmabella 윤지오는 자신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고맙게도 오온욱 자신이 김어준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윤지오의 말 동영상과 텍스트 버전을 그대로 인용해 두서 사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오온욱이 [B] 명제를 끌어내는 텍스트 버전을 그대로 옮겨보자.

“[1]이런 일들을 겪었다고 [2]제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이럴 필요가 없었는데 [3]그동안 저는 집밖에도 못 나가고 ‘몇.년.을’ 일 자체를 못했거든요.”(31-32쪽, 대괄호 속 번호는 인용자)

인터뷰 문장을 분석해 보면 그 속에 세 개의 명제가 있다. [1]이런 일들을 겪었다 [2]그렇다고 내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이럴 필요가 없었다. [3]그런데 그동안 나는 집밖에도 못 나가고 ‘몇.년.을’ 일 자체를 못했다. 문장 [1]과 [3]은 윤지오 자신이 자신의 경험 및 삶 과정을 서술한 일반적 긍정진술문이다. 그렇다면 [2]의 문장은 무엇인가? 가정법에 의한 부정진술문이다. 이 가정법 부정진술문을 풀면, “내가 죄인이라면,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이래야 했겠지만 내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식의 죄인적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로 된다. 윤지오의 긍정진술은 ‘집밖에 못나갔다’, ‘몇 년을 일 자체를 못했다’이지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검정 옷만 입고 다녔다’, ‘구석에 있었다’가 아니다.

오온욱은 (그리고 김수민, justicewithus 등의 계정들은) 이 가정법 부정진술문을 윤지오의 긍정진술문으로 왜곡한다. 즉 위의 명제 [B]는 오온욱이 지어낸 거짓 명제이다. 이런 정보편집, 정보곡해, 정보조작을 통해 오온욱은 (그가 따르는 박훈, 김수민 , @justicewithus, @do_remisol 등과 더불어) 윤지오가 ‘10년 동안 검은 옷만 입고 다녔다고 거짓말했다’는 거짓 선동을 일삼고 SNS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이러한 거짓말을 퍼뜨린다. (여기서 나는 그가 거짓인 줄 알면서 거짓명제를 조작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하는 줄 모르면서 그렇게 하는가의 차이는 무시한다. 사법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내가 그를 ‘정보의용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다.

위 인용문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명제 [A]와 명제 [B]가 지금에서는 유지될 수 없는 거짓명제로 드러났기 때문에 “서로 모순”이라는 [C] 주장도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이제 이 분석에 기초해서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복자는 벗긴다)

“이것이 인터뷰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웹에 떠도는 윤지오씨에 관한 많은 비디오 사진들을 보면, 그동안 인터넷 BJ활동도 꽤 하시고, 모델 활동도 하시고, 친구들과 밖에서 술도 마시고, 사업도 하시는 등, 여러가지 일을 꽤 활발히 한 기간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는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셨다는 주장모순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던 겁니다. 바로 이런 모순되는 주장에 대해 아프리카 티브이 BJ활동을 하는 동안, 제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지 않고, 그 동안 “많은 벗방 라이브를 하셨더군요”란 질문도 드린 겁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을 한 겁니다.”

왜 오온욱은 거짓명제들에 기초해서 인위적으로 이끌어낸 ‘윤지오의 말의 모순’이라는 생각을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윤지오의 모순이 아니라 오온욱의 사고체계의 거짓됨을 밝힘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우선 나는 윤지오의 ‘라방’을 ‘벗방’으로 보는 오온욱의 시선이 이미 신인배우 장자연을 성적 노리개로 보면서 성착취와 성폭력을 일삼았던 성폭력 체제의 저 가해권력자들의 시선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시선이라고 보지만 논점을 집중하기 위해 이후 별도로 그 문제를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여기서 집중하고 싶은 문제는 그의 정보편집, 정보왜곡, 정보조작이다. 그는 윤지오가 행하지 않은 것을 윤지오가 행한 것으로 조작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윤지오가 한 행동은 ‘집밖에 못나갔다’, ‘몇 년을 일 자체를 못했다’이지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검정 옷만 입고 다녔다’, ‘구석에 있었다’가 아니다. 그런데 오온욱은 이로부터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셨다는 주장”을 윤지오가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에 기초한 자신의 질문을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오온욱의 합리성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합리성=정보조작=거짓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정보의용병으로서의 오온욱과 대학교수로서의 오온욱이 모순되는 것일까? 오온욱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일까? 대학에는 지킬 박사이고 SNS에서는 하이드 씨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의 최근 연구 주제에 비추어 보면 그는 대학에서도 여전히 권력을 위한 정보정규군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amer297이 파악했고 오온욱 자신이 인정한 바에 따르면 대학에서 그의 최근의 연구 주제는 두 가지다. (1)하나는 어떤 종류의 불가분리한 기술사회적 루틴들(technosocial routines)이 발생해서 이전의 루틴 양식들을 대체하고 있는가 (2)새로운 기술사회적 루틴들이 어떻게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수준에서 안착되고 있는가? (12쪽) 이 두 주제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과거의 루틴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사회적 루틴의 발생과 안착이라는 주제다. 

먼저 루틴(routine)이란 무엇인가? 경로/길을 뜻하는 route에 접미사 ine가 붙은 말이다. route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인 street(길/산책로)와는 다르고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물리적 길인 road(도로)와도 다른다. route는 폭력적이고 조작적으로 만들어진 정보적 길이다. 이것은 route가 침입하다, 파괴하다, 깨뜨리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rumpere에서 기원한 것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전통적 루틴(일상 패러다임)은 직접적이고 인신적인 폭력(이나 근대에는 경제폭력)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 그것이 전통적 합리성(대표적으로는 초월신의 전능함 혹은 자본의 영구함이라는 신화=거짓말)이다. 

그런데 일상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합리성은 기술과 정보, 미디어를 매개로 만들어진다. 정보편집, 정보조작은 폭력이 조직되는 새로운 양식이다. 그것은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폭력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사회기술적 방식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일정한 경로, 즉 루틴을 통해 흐르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새로운 합리성(대표적으로는 제4차혁명이라는 신화=거짓말)이다. 내가 보기에 오온욱은 (자신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혹은 그 자신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통제사회를 안착시키려는 제국권력의 정보의용병 및 정보정규군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중, 저항, 탈주, 투쟁 등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끼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감각방식이다. 그가 속해 있는 유일한 현실은 제국현실이고 그것과 다투는 다중 공통장의 실재성과 현실성이 그에게는 감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윤지오의 등장은 그에게는 전혀 감각되지 않는 후자의 힘에 기초한 특이점의 출현, 즉 “루틴”을 단절시킬 수 있는 힘의 부상이었다. “루틴”을 조직하는 가해 권력자들에 대한 재수사, 말이다.

지금 윤지오가 하지도 않은 말을 윤지오가 한 것으로 편집조작하여 마치 사실처럼 정보망을 통해 유통시키는 “합리적(!)” 행위는 이 통제사회적 폭력의 행사방식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술사회적 루틴”을 정착시키려는 제국권력에 대한 투쟁,  요컨대 AI, 사물인터넷, 제4차산업혁명의 제국적 이용이 인류의 삶에 미칠 수 있는 해악적 영향에 대한 투쟁은 성폭력 체제에 대한 투쟁과 별개의 것이 결코 아니다.     

성폭력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정보의용병” 오온욱(1)

가해 권력자들이 아니라 증언자 윤지오를 의심하기

사건의 실체적인 가해자들에게는 아주 피상적이고 가볍게 농담처럼 분노를 표하면서 윤지오님에게는 광기어린 분노를 보이는 것을 보면 정확하게 분노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느끼게 됩니다. -네티즌 eidbfissm

여기에 지난 2019년 5월 오온욱(Onook Oh, Onugi97)이 나와 관련하여 쓴 글들에 대해 몇마디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래에 인용할 것들은 전부 모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그가 댓글로 달았던 글들이다. 그는 나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트 등에는 어떤 댓글도 달지 않았다. 나에게는 대놓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모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가서 나를 (근거도 대지 않고)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 점에 비추어 나는 그의 글이 나에 대한 모함을 통해 그 변호사를 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이간질이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바로 이 무렵 그의 이름이 나의 페이스북 친구요청 리스트에 나타났다. 나는 ‘SNS에 떠도는 소문에 좌우되지 말고 나의 글을 좀더 꼼꼼히 읽고 사태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요청을 수락한 적이 있다. 지금 살펴보니 친구 목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자진해서 끊은 듯하다. 그의 글이 달렸던 모 변호사의 페북에도 그의 글이 지워지고 없다. 아래는 그의 글로부터의 인용문들이다.

1. “조정환씨의 글을 보면, 윤지오씨가 섭정운동을 하고 있고, 대중은 윤지오의 생존방송에 청취및 댓글로 참여 및 후원하고 있다는 식의 아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2. “조정환 님의 과거 활동이 어땠든 링크된 그의 글에 동의하기 힘들군요. “권력자, 착취자, 남성의 눈” 그리고 “다중, 저항자, 탈주자, 여성의 눈”등처럼, 들뢰즈, 네그리, 하트등이 사용하는 거창한 말들로 글을 시작하지만, 용두사미격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지오 님의 모순된 혹은 의문에 쌓인 현재의 말과 행동들을 설명하기에는 디테일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상황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3. “윤지오님 스스로 해명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 (1) (윤지오님의 이모부에 따르면) 암에 걸리지도 않은 엄마를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하고 출국하고, (2) 단순 빙판길 교통사고를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음모처럼 방송에서 말하고, (3) 앞뒤맞지 않는 증언도 여러 차례 (이를 조정환은 경찰의 교란전술이라고 말 하[더]군요. 그런면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윤지오 님의 모순된 행동과 말들이 그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잃게 했다는 점이죠.), (4) 후원금 모음 상황공개하겠다고 했다고 라방에서 후원금 상황에 대해 질문하면 차단, (5) 장자연 배우의 유족 동의없이 책 출간, (6) 지난 10년간 사람도 제대로 못 만나며 검은 옷만 입고 지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이미 돌아다니구요. 가장 중요하게는, 윤지오 님 스스로 이런 의문들에 댓구할 맘이 전혀 없는 것 처럼 보이구요.”

얼마 안 되는 예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그의 정신경향의 일단을 엿보는 데는 큰 부족함이 없다. “아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거창한 말들로 시작하지만 용두사미격의 글”, “디테일이 턱없이 부족” “상황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 “그런 면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어떤 글이, 어떻게 그렇다는 것인지 근거는 단 한 마디도 없다.

이런 말들은 보통 대학에서 지도학생들의 논문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교수들이 마치 아는 체 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학생의 무지인 것으로 덮어씌울 때 쓰는 상투적이고 공허한 언어들 중의 일부이다. 권위주의적 학교체제에서 학생들은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갑’의 위치에 있는 교수가 근거 없이 아무렇게나 평가하고 지적해도 자신의 논문에서 혹시 그에 해당될 지 모를 지점을 애써 찾아야[만들어야] 하며 논문을 어떻게든 그에 맞춰 고쳐서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죄를 자신이 알아야 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나는 오온욱의 지도학생이 아니므로 나와 관련된 1, 2에 대해 해명하거나 설명하는 노고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가 궁금하면 내가 쓴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면 혹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아무 근거 없이 윤지오를 비난하는 3에 대해서는 짧게 몇 마디 해야겠다.

(1)은, 윤지오는 구별해서 말한 ‘암’과 ‘종양’을 “윤지오 이모부”나 그가 구별하지 못해서(혹은 않음으로써) 생기는 착각이다. ‘종양이 발견되어’는 ‘암에 걸려서’와 같은 뜻이 아니다.

(2)는, 윤지오가 ‘그 교통사고들이 우발적인 것이 아닐까봐 두렵다’고 한 것인데, 이에 대해 ‘단순 빙판길 교통사고인데 왜 기획된 음모처럼 말하느냐’며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잘 이해가 안되면, 추돌한남자로 바꿔 대입해 보면 좀 쉽게 이해될 것이다.)

(3)은, 윤지오 증언의 앞과 뒤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실사구시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친(親)가해자 네티즌들이 하는 말을 줏어듣고 사태를 판단하는 지적 나태함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4)는 조직사상의 철저한 결여의 산물이다. <지상의 빛>은 비영리단체이므로 기금(후원금) 의제는 그 단체 정관이나 내규 등 운영수칙에 따라 총회와 같은 곳에서 논할 문제이다. 개인 라이브방송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방송 방해자이므로 제지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5), 저자가 자신의 삶과 증언을 담은 책을 내는데 왜 유족의 ‘동의’가 의무인가?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법체계에 그런 의무를 규정한 조항은 없다.

(6)은 오온욱의 성차별주의 시각과 연결되어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므로 뒤에서 좀더 상세히 따져보겠다.

굳이 던져진 질문들에 짤막짤막하게 반박을 했지만 사실 2019년 4월과 5월의 정세 속에서는 이렇게 피해자 측을 향해 던지는 질문들의 제기 자체가 가해권력이 사용한 전쟁수단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전 사회적 핵심의제였기 때문이다. 재수사 위기에 몰린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가해권력은 촛불혁명, 미투봉기, 진상조사단 재조사, 증언자 윤지오 등 자신들을 향해 치올라오는 아래로부터의 공세에 직면해 자신이 아니라 증언자 윤지오에게 화살(의심의 시선)을 돌리도록 반격[‘윤지오가 해명하라!’]을 함으로써 공세의 방향을 뒤틀고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했다.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이 전쟁수법은 증언자 윤지오의 사실상의 추방과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재조사 회피라는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는 성공했다 할 것이다. 나는 오온욱도 성폭력 체제의 혁명을 둘러싼 이 사회적 정보전쟁에서 박훈, 김대오, 김수민, justicewithus, “윤지오 이모부”, shootTV, 가로세로연구소 등과 함께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한 명의 친(親)성폭력 정보의용병(info-militiaman)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근거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