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미래인가현재(과거)인가?

박노자, <소련몰락이후소련과동구권의사회경제적형태에관한포스트소비에트마르크스주의자들의논의들>대한토론문

(조정환/다중지성의정원)

박노자선생의발표문은1920년대이후소련과동구에서전개된소련/동구권사회-경제형태에대한다양한논의들을유형화하여소개하는방식을취하고있다. 여러논자들이어떤입장에서그러한분석견해들을제시하고있는가는이논문의선구적안내를따라가면서전문연구자들이한국사회운동에대한시사점을중심으로세심히검토할필요가있는중요한주제들이라고생각한다. 나는여기에서박노자선생이‘일부부분들에대해서다르게생각할수있어도, 기본적취지에서동의하는’ 관점임을밝힌타라소프의견해와이논문결론부분에제시된박노자선생의정리를중심으로토론해보고싶다. 이런방식의토론을위해이논문외에박노자선생의소련관이잘표현되어있는레디앙연재글<박노자의소련-미래를향한추억>과역시레디앙에번역, 게재했던타라소프의<초국가주의와사회주의: 문제제기>를참조했음을밝혀둔다. 

  1. 자유주의입장에서주로제시되는‘봉건왕조국가론’과스탈린주의입장에서제시되는‘사회주의론’을제외하면, 소련/동국사회경제형태에대한기존의비판적논의는소련/동구사회가과도적사회형태(변질된노동자국가론: 트로츠키)라는관점과자본주의형태라는관점(국가자본주의론: 라야두나예프스카야)을축으로, 즉두유형의관점을축으로발전되어왔다.  
  1. 박노자(타라소프) 선생은이두축과는다른관점을제시한다. 그관점은다음과같은표현으로제시된다.

“도대체소련이란무엇이었던가? 이질문에대해러시아의주요마르크스주의적사상가인알렉산드르타라소프는, 매우명쾌하고도전적인해답을내놓는다. 나는이해답의일부부분들에대해서다르게생각할수있어도, 기본적취지에서타라소프의의견에동의한다. 소련은비자본주의적, 비(非)이윤추구적산업사회를건설하려는과감한시도이었고, 이시도는비록우리가꿈꿀수있는사회주의의수준에도달하지못했다해도, 지금파산돼가는자본주의사회에대한하나의“대안”임에틀림없다. 단, 타라소프도지적하듯이, 매우선별적으로, 비판적으로대해야할대안이다. “국가화된경제, 사회”에서는관료집단의힘이절대화되는경향이있는데, 이힘을밑으로부터의민주주의, 즉노동자민주주의를통해서어떻게제한시키고상쇄시킬는지“대안”을꿈꾸는혁명가들이앞으로고심해야할부분이다.”(http://www.redian.org/archive/56059)

  1. 소련/동구사회가사회주의는아니지만그렇다고자본주의도아니라는관점이다. 타라소프에따르면이러한관점은하나의생산양식(산업적생산양식)에자본주의와초국가주의라는두개의체제가대응할수있다는생각에의해정당화된다. 부르주아혁명의두형태가있고서구에서는부르주아가혁명을통해자본주의체제를구축했다면, 동구에서는프롤레타리아와소농이혁명을통해초국가주의체제를구축했다는것이다. 이것은이후에과학자와예술가들이사회주의혁명을통해지식적생산양식/사회주의체제를구축하리라는전망과결합되어있는것으로보인다.
  1. 나는기본적으로현실사회주의가국가자본주의라는위(1)의두번째입장에동의한다. 그렇다고국가자본주의가아닌어떤“진정한” 형태의사회주의가미래의사회일것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 현실사회주의가국가자본주의일뿐만아니라국가권력을사회혁명의중심에놓고당형태에의한운동의대의/대표를통해사회주의로의이행을표상하는사회주의의일반적이미지가국가자본주의와불가분하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노동계급의당으로서의공산당국가자본주의와관료계급화된공산당국가자본주의를질적으로구분되는것으로이해하려는시도가있을수있겠지만그것은가상적인것이며실제의질적인구분은공통장들과그것의자기조직화로서의코뮌형태를섭정주체로확보했는가그렇지못했는가사이에서만주어질수있다고생각한다.
  1. 그런데이런생각에대한박노자/타라소프의비판이이미주어져있다.

“소련이단순한“국가자본주의” 즉, 자본주의의하나의형태라면거기에서노동력의상품화가있었느냐라는질문부터받게될것이다. “자본주의”라면노동자들이잉여가치를착취하려는자본가들에게자신들의노동력을팔아이윤을남겨야했을텐데, 소련같은경우에는반대로완전고용을보장하겠다는의미에서차라리잉여노동력이있는곳에서굳이불요불급이고없어도될돌공장등을지어주는등“이윤을위한착취”를했다기보다는어떤정책적목표(완전고용, 국방력제고, 인민생활수준제고등)를경제적합리성” 에두곤했다. 구소련의절대다수노동자들이소련에대해향수를느끼는이유도여기에있지않겠는가? 또, “국가자본주의”라면자본시장이어디에있는것이고, 이윤추구를목적으로하는자본운동이어디에있는것인가? 한마디로“사회주의”가아니었다해도, 이사회는분명히그어떤형태의자본주의아니었던이다.”(http://www.redian.org/archive/56059; 강조는인용자)

  1. 이에대해다음과같이재반론할수있다고생각한다.
  • 자본주의의본질은상품화(시장)에있다기보다노동강제에있다. 노동력의상품화는노동강제(살기위해서는[자발적이든비자발적이든] 노동해야한다)의한형태이다. 
  • 비상품적비시장적관계를통해서도노동강제는가능하다.(예, 여성) 시장이없다는주장에대해서는국가자본주의도세계자본주의의한마디로서자본시장속에놓여있다는반론이가능하겠지만더중요한것은“자본시장”의존재여부가자본주의인가아닌가를궁극적으로결정하지않는다는것이다. 상품시장은자본주의의지배적(서구적) 형태이지본질적이고유일한형태는아니다. 
  • 국가자본주의에서생산자는비시장적형태로, 즉폭력적방식(국유화)으로생산수단으로부터분리된다. 이분리는지속적이다. 그분리의재생산이시장자본주의에서는주로교환을통해서이루어지지만국가자본주의에서는국가권력(폭력)을통해서이루어진다. (자유주의자들이현실사회주의를봉건왕조국가로인식하는이유가아마이런점때문일것이다.) 
  • 교환과폭력은형태적으로는구분되지만본질적으로구분되는것이아니다. 시장자본주의에서교환질서가폭력을통해유지되고보장되기때문이다. 은폐된폭력인가공개된폭력인가가문제일뿐이다. 
  • “시초축적” 후에단계적으로“제발로선자본주의”가오는것이아니라“제발로선자본주의”는“시초축적”에늘기초하고그것에의존하며양자는상호보조적으로병진한다.
  • 이윤은경제적범주로나타나지만본질적으로는지배력, 즉노동강제력이다. 맑스가자본주의적축적의일반법칙에서정식화한것처럼이윤의축적은노동에대한더큰지배력의축적이다. 이런의미에서자본운동은노동강제력의확대재생산운동으로정치적으로이해될필요가있다. 
  • 소련/동구사회주의들에서노동은일반적으로강제되었다(노동의일반화). 이것이그사회가자본주의인이유라고생각한다.
  1. 소련/동구사회주의는국가자본주의라는것이지금까지의이야기지만, 나는국가자본주의가자본주의의이상변종이거나타락변종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 사회주의에대한역사적상상들은대개국가자본주의에대한상상이었다. 레닌이사회주의를(공산당으로이해된) 노동계급통제하의국가자본주의로이해한것은오해가아니라역사적사회주의자들에게보편적이었던사회주의이해방식을표현한것이다. 그러므로국가자본주의다음에사회주의가오는것이아니라국가자본주의가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는국가자본주의이외에다른것이아니다. 국가자본주의에서국가에대한통제를관료화되기전의공산당이수행하느냐관료화된공산당이수행하느냐는중요한차이이지만사회주의인가아닌가를가르는차이는아니다. 문제는공통장과코뮌(소비에트)이기때문이다. 코뮌(소비에트)가공통장(commons)을기초로자주적인섭정력을갖고움직일수있을때국가자본주의는노동에서해방된대안사회(노동의삶으로의전화)로나아갈수있다. 그렇지못할때국가자본주의는그자체가노동강제체제일뿐만아니라언제든지시장자본주의로게걸음을칠수도있는사회로남는다. 
  1. 이런의미에서나는관료집단의힘이절대화되는경향을밑으로부터의민주주의, 즉노동자민주주의를통해서어떻게제한시키고상쇄시킬것인가를고민해야한다는박노자선생의취지에공감한다. 그런데이고민은, 관료집단의힘에대한제한과상쇄라는부정적지평을넘어그힘을어떻게노동으로부터의해방의방향으로견인, 이용할것인가라는긍정적섭정의과학으로까지발전되어야한다고생각한다. 현시기에는이를위해서는노동자민주주의만으로는부족하고, 다중의절대민주주의가필요하다고생각한다. 난민이민여성소수자비정규직등시민사회경계밖으로내몰리는존재들을포함하는프롤레타리아다중의절대민주주의가필요하다고생각한다. 다중의절대민주주의는다중의생산적및재생산적공통장을근거로하면서그것을전사회적인것으로확장시키는방향에서추구되어야한다고생각한다. 이러한표상은사회주의라는개념에의해서는더이상포착될수없고그것과는단절되는것, 즉맑스가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말로표현하고자했던어떤새로운개념(commonism)을요구한다. 이런의미에서사회주의는이미과거이거나현재이지프롤레타리아트다중의미래는아니다.

재심변호사 박준영의 절차주의적 ‘정의’관은 누구를 이롭게 하는가?(3)

우리는 4월 16일 김수민이 윤지오를 폭로하는 긴 글을 공개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약 일주일 뒤인 4월 23일에 박준영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냉정하게 윤지오 씨의 말과 행동을 검증합시다. 검증으로 밝혀지는 사실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공개합시다. 사건이 정리되면, 우리가 이런 상황까지 온 과정과 이유를 분석해 봅시다. 이 사건이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앞서 그는 윤지오의 “증언”에 대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그에 대한 의혹제기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 말 자체가 자신이 조사를 맡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주제 넘는 말이다. 왜냐하면 진상조사단이 바보들이 아닌 한에서 모든 증언들을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과 혼동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증이 조사의 필수적 구성요소인 한에서, 오히려 박준영 자신이 윤지오를 검증해야 한다는 자기목적성을 과잉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 자기목적성은 윤지오에 대한 그의 원초적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4월 23일에 와서 바뀌고 있는 것은 박준영이 윤지오의 “증언”이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을 검증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것은 증언 검증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고 인격 검증을 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가 장자연 사건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가 그 증언 밖에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검증하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요청한 증언 밖에서 윤지오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가는 헌법에 규정된 그의 기본권에 속하는 문제다. 그리고 법의 테두리 속에서 누구든지 말과 행동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박준영은 법 전문가의 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검증선동에 나선다. “우리 모두 냉정하게 윤지오 씨의 말과 행동을 검증합시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는 검증의 주체로 진상조사단도 검경도 아닌 “우리 모두”를 끌어들인다. “우리 모두”가 경찰이나 검찰과 법원 같은 국민 대의기구들을 통하지 말고 직접 검증하고, 그 “검증으로 밝혀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합시다”라고 그의 제안한다. 이것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가 강조해온 “책임”이라는 말에 값하는 방식인가?

왜 박준영은 아니고, 또 김수민, 박훈, 김대오는 아니고 윤지오만 검증대에 올라야 하는가? 또 윤지오를 검증할 검증력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무슨 수단으로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그가 검증을 거부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검증의 결과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누가 무엇으로 보장할 것인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검증 결과의 공개가 미칠 악영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든 의문을 제쳐둔 채 박준영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라고 목적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의 제안에 따라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윤지오 검증행동은 거의 한 가지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채 5월 말 현재 “윤지오는는 성매매업소에 다닌 매춘부였다”는 식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있는 그대로의 공개”, 즉 성폭력적 테러행동으로 치닫고 있다. 검증몰이가 도달한 이 집단광기적 상황과 그 효과에 대해 나는 박준영이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4월 23일의 페이스북 메시지가 실제로는 역사에서 가부장주의 성폭력 체제가 반복적으로 행해온 바의 “마녀사냥” 선동과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박준영은 자신의 선동이 미칠 결과를 이미 어느 정도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에 대해 미리 말한다.

“분명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윤지오 씨의 진술로 전 조선일보 기자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진술의 가치가 지금 벌어지는 일들로 인한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았으면 합니다. 그 당시는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가 없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냉철하게 판단해주리라 믿습니다.”

요컨대 자신의 검증 선동이 전 조선일보 기자 조희천 재판에 미칠 영향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 당시는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가 없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모호한 답이다. 이 표현을 해석해 보면 조희천이 기소된 2018년 6월에는 윤지오의 진술이 다양한 이해관계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염되었다고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계구분은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말이 아니다. 최근 발표된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는, 장자연 사건이 박준영이 말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던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소속사들은 소속사대로,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대로, 경찰과 검찰은 또 자신의 필요와 외부 압력의 정도에 따라, 다른 언론사는 또 언론사의 필요에 따라, (그리고 아마도 국정원은 국정원 대로) 자기 나름의 자기목적성, 전략, 음모, 기획에 따라 이용하고 관리했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의 상충과 어우러짐이 그때그때의 결과들(크게 보면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유죄,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무혐의)을 낳아 왔다. 진실규명을 원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장자연 사건은 진실을 덮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중에서 편의대로 처분되고 관리되어 왔다. 2016년 촛불혁명과 더불어 세력관계가 바뀌어 촛불과 미투의 힘이 강화된 것이 현재와 지난 10년과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행정 국회 법조 내 각 정파와 재계, 언론계 제 세력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고 가려는 본질적 경향은 변함이 없고 촛불세력과의 관계에서 그 세력판도가 달라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박준영의 선동(“검증합시다”!)의 파급효과는 그가 멈추고자 하는 선을 훨씬 멀리까지 넘쳐 흘러갈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박준영이 이 선동을 통해 경계하고 제어하고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론”, “세간의 의혹”, “국민적 의혹”이다. 이것들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지만 그 중 박준영이 가장 위험한 것으로 경계하는 것은 촛불과 미투운동이 불러일으킨 “여론”이다(물론 그는 이것을 아래로부터의 촛불의 영향으로 보지 않고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의 영향으로 일면적으로만 이해한다). 촛불과 미투 이전에 장자연 사건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자리매김되어 있었고 이러한 정리를 뒤흔들 수 있는 요소들은 증거 없는 “의혹”으로 치부되었다. 촛불과 미투는 이 “의혹”들을 “여론”으로 만들고 장자연을 죽게 만든 가해자, 가해집단, 가해체제의 해체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의혹이 커지고 재조사와 재수사의 여론이 드높아진 것은 “객관적 사실” 자체가 권력자들의 외압에 의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거나 규명된 사실조차 은폐, 편집, 삭제되었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준영이 “세간의 의혹”과 “기록된 사실”을 대립시키고 사실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장자연 사건의 경우는 부당하다. 왜냐하면 그 “기록된 사실” 자체가 이처럼 축소, 은폐, 편집, 삭제의 조작을 거친 후 남아 있는 엉터리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세간의 의혹”이 “기록된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사실가치를 갖는 것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도 박준영은 철저히 절차주의적 정의를 앞세운다. 그리고 세간의 의혹을 냉각시킬 방법으로 ‘증거법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윤지오 씨가 이전 수사과정, 법정 그리고 조사단에서 여러 차례 진술했고, 언론을 통해 한 말들이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 의심이 드는 것, 믿을 수 없는 것 등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분을 함에 있어서는 철저한 증거법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근거가 없거나 부족함에도 여론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사기관에 수사의뢰는, 혐의가 드러나 있거나 수사를 통해 드러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냥 공을 떠넘기는 식의 수사의뢰는 무책임한 것입니다.”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자면서 그는 수사의뢰를 “무책임”한 것으로 단정하는데 이것은 ‘장자연 사건에서 재수사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어떤 판단을 전제할 때에만 타당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기존의 프레임을 고착화시키고 성폭력 체제의 실재를 감추게 될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박준영은 시종일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봉쇄하고 억제하는 역할을 “냉정”, “신중”, “책임”의 이름으로 떠맡는다. 촛불과 미투의 힘에 의해 형성된 진실규명 요구를 잠재우려는 이 보수주의적 태도가 윤지오의 증언을 억제하고(‘사회적 파장이 큰 증언이므로 증언에 신중해야 한다’) 이에서 더 나아가 그의 ‘말과 행동’을 검증하자는 주장으로, 다시 말해 그가 그토록 강조한 “냉정”을 잃은 마녀사냥 식 선동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선동행위에 사례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법이 윤지오가 주장하는 위협에 아무런 실체가 없었다는 경찰의 조사발표를 무비판적으로 4월 24일의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었다. “경찰이 윤지오 씨가 주장하는 위험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했던 ‘노력’”이 상당했으므로 그 발표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논평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증언자가 느끼는 위협은 결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이 복도 시시티브이(CCTV) 분석을 통해 객실 출입자를 확인하고, 소음 측정, 경찰청의 지문 감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오일 감정, 호텔 시설담당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오직 직관을 통해서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이 그 실체를 과학적 분석 대상으로 나타내는 때는 대개는 그것이 이미 살상과 같은 현실로 전화하여 위험이 해소된 상태에서다. 경찰이 찾았던 것은 위험의 실체가 아니라 그 자취인데, 위험의 자취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위험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준영은 이 양자를 혼동하면서 윤지오에 대한 경호지원이 특혜이며 자원배분에서의 불합리라고 단정한다. 이런 섣부른 단정은 그의 절차주의적 정의관과 맞짝을 이루고 있었던 염치론, 즉 이해관계들의 양적 조정론(합리적 배분론)에 근거하여 나타나는 안일한 현실인식이다. 그의 시야는 성폭력과 같은 우리 삶의 실질적 갈등의 심부로 파고들기보다 삶의 표면을 거닐면서 편안한 조정/배분의 길을 찾는데 집중되고 있다. 이 경쟁적 이해관계론의 관점에서 ‘힘센 사람들’의 폭력 앞에서 내지르는 장자연의 절규가 공감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의 죽음이 박준영에게 단지 “안타까운” 것으로서만 받아들여지고 윤지오의 증언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과장된 진술로 비춰지는 것이 필연적인 것으로까지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지금 필요한 것은 합리의 이름으로 껍데기(형해)의 세상을 만드는 절차주의를 넘어서 ‘실질’과 ‘실질에 고유한 절차/방법’를 주장하는 여성-다중의 실질적 과잉(excess)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약을 탄 술을 마신 것 같다. 왜냐하면 눈이 풀려 있었고.”라는 윤지오의 추측진술은 ‘과장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 속에서가 아니라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여성-다중의 이 실질적 과잉’이라는 맥락에서 더 실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심변호사 박준영의 절차주의적 ‘정의’관은 누구를 이롭게 하는가?(2)

4월 16일 박준영은 <검증>이라는 제하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에 근거”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일견 타당해 보이는 그의 이 주장은 이미 빛을 잃고 있다.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검증 요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가 뉴시스 보도의 진실성에 대한 검증도 동시에 요구했어야 한다. 그는 윤지오 진술에 대한 검증이 더 “엄격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과연 뉴시스 보도의 진실성에 대한 검증을 그가 외면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는가? 4월 초의 시점은 윤지오의 진술을 둘러싸고 격렬한 사회적 투쟁이 전개되는 시기로 그의 진술의 신빙성을 주장하는 세력과 그것을 부인하는 세력 사이에 화해불가능할 정도의 논쟁이 전개된 시점이다. 뉴시스 기사는 후자를 대표하고 선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은 박준영이 (자신이 의식했던 못했건 간에) 뉴시스를 옹호하면서 그것을 검증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윤지오를 검증대에 올리려는 자기목적성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에 근거”한 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따라가보자. 그는 윤지오 진술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데, 그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한탄한다. 그는 “이 검증은 도대체 누가 하고 있나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할 수 있는 검증 그리고 검증의 결과 발표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라고 쓴다. 당연히 주권자 국민들은 과거사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에 진술들에 대한 조사와 검증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므로 그 단위에서 증거와 증언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최종 결과가 국민에게 보고되어야 한다. 그 보고가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을 때에 국민은 다시 조사를 명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박준영은 조사팀을 나온 후 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 내부에서 진술들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일종의 내부고발을 페이스북을 통해 쏟아내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디수첩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조사를 마친 후 재배당된 김학의 사건 조사를 맡아 사건기록을 봤습니다. 조사팀을 나올 때까지 기록을 꼼꼼히 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제 게으름을 탓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에 대중이나 언론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 등 다른 사건을 조사하는 단원들과도 고민과 고충을 나누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걸 풍문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내부고발의 정보 출처는, 장자연 사건에 있어서는, “사건을 조사하는 단원들과도 고민과 고충을 나누면서 주워들은 얘기”정도이다. 박준영은 자신의 개인적 조사체험에 대해 과도한 가치부여를 하면서 “사건의 실체에 대중이나 언론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식의 권위주의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주저없이 내세운다. 주권자인 국민 “대중”은 그에게 조사를 잘 하라고 명령한 것이지 그 조사 경험을 근거로 “사건 실체에 국민 대중보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식의 오만을 부리는데 사용하도록 허락한 바가 없다.

실제로 조사원들이 세부 정보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들보더 더 많이 알게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건의 실체에 그 조사원이 국민대중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사원의 경우는 가령 수백년동안 조사해서 정보를 산 더미처럼 뇌에 집어 넣는다고 하더라도 사건의 실체에 단 한 발도 더 다가갈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장자연 사건처럼 남성 가해자들에 의한 성폭력이 쟁점인 사건에서 남성 조사원이 “자기를 버리는 혁명”(여성되기 혁명) 없이 그 사건의 국민대중보다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는 것 자체가 오만이요 환상이다. 게다가 박준영이 입수한 정보는 다른 조사원들로부터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그것으로 내부고발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형편 없는 조직인가? 박준영이 자신이 “주워들은 이야기”가 “풍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조사원의 신분이나 지위와 같은 권위에 의해 뒷받침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반드시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과 “실체적 진실”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연 박준영은 자신이 “주워들은 이야기”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과 “실체적 진실”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검증”을 거쳤을까? 자신의 생각에 대한 “검증”은 뒤로 한 채, 박준영은 이렇게 계속 말한다.

“윤지오 씨가, 장자연 씨가 술이 아닌 다른 약물에 취한 채 강요를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이 진술이 언제 비로소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 이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특수강간죄를 논하고 공소시효 연장 등 특례조항 신설을 이야기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입니다.”

이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은 진상조사단 활동 전인 10년전 사건 조서에서 이미 명백히 나타난다. 장자연 소속사였던 더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은 장자연 사망 당시 마약복용 혐의로 일본 도주 중이었다. (나는 이것이 김종승이 마약혐의로 해외도피한 첫 번째 사례가 아닌 것으로 어디선가 읽은 바 있는데 확인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당시 장자연의 지인 언니인 이모씨의 진술 중에는 김종승이 “약 니동생이랑 같이 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장자연이 ‘떳떳함’을 주장하므로 이 진술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버닝썬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여성 피해자들의 상당 수가 자신이 마신 음료에 (남성 가해자들이 몰래 탄) 마약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진술이 객관적 사실일 ‘정황’은 실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장자연이 약물에 취해 성폭행 당했을 가능성은 윤지오 외의 다른 진술자들의 교차증언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다음은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진상조사단 총괄단장 김영희의 발언이다.

“▷ 김경래 : 그런데 그런 평가들도 있어요. 과거사진상위원회에서 낸 자료에서도 나오는데 윤지오 씨의 진술이지 않습니까, 구체적으로는? 특수강간 의혹과 관련해서는. 그 부분의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김영희 : 윤지오 씨 진술뿐만 아니라 윤지오 씨는 정확하게는 약을 탄 술을 마신 것 같다는 얘기를 한 거고요. 그리고 아마 자기가 없을 때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겠나하는 추측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윤지오 씨 진술은 오히려 추측성이라고 한다면 본인이 본 것은 사실관계에 관한 것은 “약을 탄 술을 마신 것 같다. 왜냐하면 눈이 풀려 있었고.” 이런 진술인데 오히려 윤지오 씨가 아니라 당시 매니저였던 윤모 씨가 저희 조사단에게 처음 했던 진술은 장자연 씨가 쓴 문건에 성폭행을 심하게 당했다는 내용도 썼었다는 겁니다. 

▷ 김경래 :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은 문건에요. 

▶ 김영희 : 그렇죠. 처음에 썼던 문건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고 진술을 했고. 물론 이것을 나중에 윤모 씨가 진술을 번복했으나 처음에 했던 진술은 어쨌든 성폭행을 심하게 당했다는 내용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자연 씨가 문건에 남겼다는 진술이 있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또 다른 A씨가 뭐라고 얘기했느냐면 당시 장자연 씨 문건에 술에 약을 탔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문건을 봤던 이모 씨가 그런 내용을 불러줬다는 진술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윤지오 씨 진술은 자기는 약을 탄 술을 마신 것 같다는 것을 봤다는 진술인 반면에 윤모 씨 진술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장자연 씨가 문건에 썼었다는 거고 굉장히 중요한 진술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또 장자연 씨 문건에 술에 약을 탔었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또 다른 2명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진술을 저희 조사단으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진술이고 저희 조사단은 굉장히 한계가 많기 때문에 이 부분과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수사를 해야 되지 않느냐? 수사기관이 판단해서 이 부분은 강제수사권이 있는 수사기관에 기록을 넘겨서 봐달라는 그런 취지였습니다.” 

그러므로 특수강간 의혹은 냉정을 잃은 사람들의 몰염치한 소행에 의해 부채질된 것이 아니라 비록 진술들이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 진술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의혹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박준영이 이제 막 진술증거들을 확보중인 상태에서 “진술이 언제 비로소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를 살피자면서 초점 흐리기와 논점 전환을 시도하는 강한 “자기 목적성”을 몰”염치”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어떤 문건의 객관적 내용이 자신들에게 가져올 위험성을 문건 유출 경로의 불법성을 가지고 덮어버리곤 했던(예컨대 정윤회 문건 사건) 공작정치의 테크놀로지를 방불케 한다.

나는 이것이 여성이 겪었을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한 실감을 결여한 상태에서, 특수강간 혐의로 그것의 가능성을 수사하게 해야겠다는 진상조사단 일부와 윤지오의 실질적인 ‘자기목적성’의 절실함을 그 진술의 발생 시점, 발생 경로 등을 밝혀야 한다는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박준영 고유의 ‘자기목적성’으로 덮어버리는 남성중심적 보수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박준영의 이러한 사고경향은 이제 뉴시스 보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동조로 나타난다.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숙소를 마련해주고 경호팀을 붙여주는 등의 국가 예산 지출로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윤지오 씨가 주장하는 ‘가해의 실체’는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가해의 실체가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숙소를 마련해 주고 경호팀을 붙여주는 국가예산지출은 냉정을 잃은 불공정한 처사라는 비판이다. 증언자로서의 윤지오가 느끼는 가해위협은 자신의 증언행위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법 위의 사람들’(권력자들)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장자연에 대한 가해혐의자로 지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적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박준영은 윤지오에 대한 보호를 요구하는 ‘가해의 실체’가 과연 있는지 물음으로써 윤지오가 장자연의 죽음을 이용해 거짓말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뉴시스발 의혹들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것이 정의로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변호사의 동조이고 정당화였기 때문에 그것의 힘은 강력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가해의 실체’에 대한 박준영의 의심이 심각한 자기모순임을 보여주는 한 대목을 발견한다. 그것은 4월 21일에 올린 <새끼들>이라는 글이다.

“자식들 사진입니다. 약촌오거리 사건 재심을 준비할 때 다음 스토리 펀딩으로 진범을 공개하면서 sns에 있는 아이들 사진을 내렸습니다. 이번에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서 아이들 앞모습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재심 사건을 진행하면서 맺게 되는 악연에 대한 부담 때문입니다.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의 개명과 개명한 이름은 한동안 제게 현실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외모와 달리 겁이 많은 박상규 기자는 몽둥이를 옆에 두고 잠을 잤습니다.”(4월 21일 페이스북, 강조는 인용자)

그는 “재심 사건을 진행하면서 맺게 되는 악연에 대한 부담” 때문에 프로필 사진에 아이들 앞모습 사진을 못올리고 뒷모습을 올리거나 혹은 아이들 사진을 내리기도 한다. 그 악연의 부담은 그가 말하듯이 “현실적인 두려움”이다. 이 부담과 두려움을 이해하는 데 분석과 증거가 필요한가? 그것은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명체험에 비추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부담이며 두려움이고 사진을 내리거나 뒷모습만을 올리는 것은 누가 봐도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조치이다. 그런데 왜 그는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윤지오도 증언에서 맺게 될 악연에 대한 그부담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현실적 두려움”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윤지오가 느끼는 위협의 “실체”라는 것을 감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는 여성, 타자, 약자(‘힘 없는 신인배우’)에 대해 이토록 둔감한 것인가? 윤지오가 증언을 통해 악연을 맺게 될 그 법 위의 사람들을 재심을 통해 악연을 맺게 될 약촌오거리 사건의 그 진범보다 왜 덜 위협적인 것으로, 위협의 실체가 없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것은 윤지오가 실제적 두려움으로 경험하는 그 ‘법 위의 남자들’에 대해 박준영 자신은 친화감과 믿음(그러니까 ‘한 패 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빼놓고는 이 둔감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박준영은 자신이 “법의 불평등” 때문에 서러움을 느끼는 사람들, 이른바 “서민”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주장들이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고, 가해자들의 책임을 면하거나 경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바로 그 서러운 사람들(특히 여성들이다)의 실제적 “우려”(그는 자신의 글에 대한 ‘댓글들’에서 이 ‘우려’를 읽는다)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는 댓글자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쓸 글들을 보면 이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계속 말한다. 어떻게 해소된다는 것일까? 그의 행보는 ‘서러운 사람들의 실제적 우려’를 외면하고 ’나는 서민들을 위한다’는 자의식에 기대,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수사는 법 절차에 맞아야 한다는 절차주의적 정의를 밀고 나가는 쪽을 향한다. 그는 “저는 서럽다는 분들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이유 없이 강자 쪽에 서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습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소용 없는 일이다. 실질로부터 절차를 분리시키고 절차적 정의를 앞세울 때, 그것이 절차에 대한 온갖 통제권력(수사외압, 통화기록 삭제와 임의편집, 녹취록 빼돌리기, 조사않기, 등등)을 가진 그 “강자”를 바로 “지금”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쌓아온 정의의 이미지 모두를 한 순간에 상실하는 순간이라는 점도 보지 못한다.

재심 변호사 박준영의 절차주의적 ‘정의’관은 누구를 이롭게 하는가?(1)

영화 <재심>으로 인해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전문변호사라는 명성과 정의로운 변호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박훈, 김대오, 김수민으로 이어지는 ‘윤지오 검증몰이’가 힘을 얻게 된 것이 박준영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그 검증몰이의 과정에 법률적 도덕적 정당성을 불어넣어 준 한 축으로 작용한 것만 분명하다.  이 사실은 그의 페이스북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단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박준영이 조사단 활동을 끝마친 것은 2019년 3월 8일인데 그가 자신의 조사건이 아닌 장자연 사건에 대해 처음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한 것은 공교롭게도 변호사 박훈이 이상호-윤지오를 적대시하는 포스팅을 올린 바로 다음날인 3월 29일이다. 그 포스팅에는 이후 그가 장자연 사건 재조사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모두 나타나 있다.

“때론 세간의의혹과기록으로확인되는사실의괴리도 확인했다. 이걸 알거나알수있는위치에있으면서의혹을키우고활용하는 ‘염치없는자기목적성’도 보게 된다. 그 끝이 어디일지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사필귀정임을 믿는다. 여성의몸과성이여러형태로이용되고착취당하는현실. 한국사회에서뿌리뽑아야할적폐다. 이런 문제를사건을통해공론화하고해결하는것은큰의미가있다고생각한다. 대통령의 철저한 수사지시도 이런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대통령이 ‘사건에담긴여러이해관계와문제점’을충분히알고계셨다면그지시를함에있어신중하지않았을까생각도해본다. 대통령이 김의겸 대변인의 이런 투자를 알았다면, 대변인 선임과정에서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했을 것이다. 윤중천과김학의의잘못, 장자연사건의가해자들을두둔할생각은전혀없다. 반드시 정의롭게 해결되었으면 한다. 단, 사건 속 여러 이해관계를 냉철히 살펴보고 정의로운해결의 ‘절차와방식’을 고민했으면 한다. 어렵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길게 보면 신뢰를 얻는 길임을 믿는다. 믿고 의지할 곳 없다는 서민들의절망을 가장 우선시했으면 한다.”(3월 29일 페북)

그는 성폭력 체제가 한국 사회의 적폐로 실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론화되고 해결되는 것이 의미있음에 대해 인정한다. 자신은 가해자를 두둔할 생각이 없다고도 말한다. 이렇게 말로 성폭력 체제의 실재와 그 해결의 의미를 인정하는 립서비스를 한 후 그는 곧장 이 문제의 해결에서 내용적(실질적) 정의보다 그 문제 해결의 절차와 방식의 정의, 즉 형식적(절차적) 정의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이 논리 전개는 정의는 절차에 있지 실질에 있는 것이 아님을 주장하는 것이거나 적어도 절차적 형식적 정의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내용적 실질적 정의는 달성될 수 없다고 하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절차적 정의가 재조사에서 충족되고 있는가 없는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나는 이것이 실질로부터 절차를 분리시킨 후 절차를 우위에 놓는 형식주의적-절차주의적 사고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조금 더 들어보자.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조사단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 그 경험은, 세간의 의혹과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 사이의 괴리를 알거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의혹을 키우고 활동하는 염치없는 자기목적성을 자기가 보았다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누군가가 고의로 사실과 괴리되도록 의혹을 부풀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래 인용은 이 경험에 대한 좀더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과거사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리고 조사를 지켜보면서 사건 속 다양한 이해관계를 봤다. 이익이 되는 사실을 부각하려 애를 쓰고 반면에 모순을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모습도 봤다. 이런 모습은 사건 관계자, 언론, 공권력, 사건 속 연대 세력, 정치권 모두에게 공통되는 문제였다. 부끄럽지만, 관여하고 있는 재심사건 3건이 조사대상인 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자기목적적 존재라 하지 않았던가. 그 목적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염치가 없을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3월 29일 페북)

재조사 사건에서 사건 관계자, 언론, 공권력, 사건 속 연대 세력, 정치권, 그리고 자기자신도 그 사건을 두고 이해관계 투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염치가 없을 때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얼핏 보면 진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 정의를 형식적 정의로 환원한 것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나의 사건 속에 여러 세력들의 전략(이것이 ‘자기목적성’의 의미이다. 이 전략들은 ‘음모’라고 표현되어어 무방할 것이다.)이 교차하고 그것들 사이에 투쟁이 벌어진다는 생각은 옳다. 하지만 그 투쟁을 다양한 ‘이해관계’들의 투쟁으로 이해할 때 그 투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중대한 왜곡이 발생한다. 이것은 투쟁 당사자들 사이의 절대적 대칭과 등질성을 부당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연의 죽음을 성폭력 체제에 대항하는 절규로서 이해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가해의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그것을 은폐하려는 자 사이의 투쟁은 결코 대칭적이거나 등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관계 투쟁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고유한 정치적 질과 방향을 갖는다. 박준영은 이 정치적 질을 무시함으로써 다양한 관계 당사자들 사이의 투쟁을 이해관계 투쟁으로 환원하며 이 틀 속에서 ‘문제는 염치다’라고 주장한다. 염치는 지나치지 않도록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체면 감정이며 그것은 경쟁의관계에있는 권력자들 사이 혹은 자본가들 사이, 혹은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들을 적당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 적대의 관계는 이해관계의 양적 차이가 아니며 그 관계 자체의 해체 없이는 해결 불가능한 비조정의 관계이다. 박준영이 이 ‘지나치지 않음’을 자신의 조사윤리로 삼는 것은 앞에서 실질보다 절차를 우위에 놓는 정의관과 마찬가지로 적대관계까지 경쟁관계로 환원하고 경쟁관계를 우위에 놓는 관점과 상통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모든 사건 속에서 다양한 그러나 등질적인 이해관계들이 경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즉 그 투쟁의 질, 목적의 이질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해관계들 사이의 양적 분배적 적당함(염치있음)을 추구하고 그 분배적 적당함은 절차적 정의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사윤리와 정의관에 따라 그는 3월 18일 대통령 문재인이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 주기 바란다”고 한 것에 관해 사건에담긴여러이해관계와문제점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부적절하게 내린 지시로 규정한다. 그런데 위의 지시는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설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박준영은 이 지시가 절차적 정의를 어기고 조사를 염치없도록(이해관계 세력들 사이의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어떤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것이 특정 세력에게 부당하게 힘을 실어주어 의혹이 사실과 더 괴리되도록 만드는 계기로 된다는 비판이다.

그로부터 약 열흘 뒤인 4월 9일 박준영은 4월 8일 노컷뉴스 기사, “윤지오 “뉴시스 기자님 오셨나요?”…법적대응 예고”(김형준.김광일 기자)를 올리면서 <이건 아닌 것 같아요>라는 제목 하에 한줄로 “윤지오 씨를 비판하면 ‘악’인건가요? 우리 좀 더 냉정합시다.”라면서, 의문문과 청유문 속에 꽤 단호한 비판과 명령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반응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이 기사는 뉴시스 최지윤의 취재수첩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윤지오의 대응 외에 민주당 안민석, 바른미래당 김수민, 민주평화당 최경환, 정의당 추혜선 등이 ‘윤지오와 함께 하는 의원모임’을 만들어 윤지오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박준영이 뉴시스 4월 7일자 기사를 (읽어보았는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윤지오에 대한 ‘비판’으로 본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기사의 내용을 “뉴시스와 김수민”(http://amelano.net/?p=399)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1)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중이다 3)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이것이 과연 윤지오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사실근거에 의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윤지오 마녀화의 프레임 속에서 버무린 것으로 언론을 빙자한 인신공격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읽힌다. 나는 이 보도가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될 윤지오 마녀사냥의 기본 프레임을 제공한 것으로 본다. 윤지오는 뉴시스 기자를 악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기사이므로 정정보도를 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기사는 결국 뉴시스가 자체판단에 따라 삭제했다. 이것은 스스로 이 기사가 윤지오에 대한 온당한 비판이 아니라 기사가치를 갖지 않는 불법적인 것임에 대한 승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타인들(아마도 그 자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이 주요 대상일 것이다)에게 냉정을 요구하는 박준영 자신이 실제로는 냉정을 잃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의 용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그의 자기목적성이 과도하여 염치를 잃고 자기 이해관계를 내세운 경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용어로 보면 그것은 뉴시스가 행한 성차별적인 인격권 침해와 인격 모독이라는 뉴시스 보도행위의 고유한 질(質)[성폭력 체제의 재생산]을 그가 인지할 능력(혹은 의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녀사냥의 암구호들 2: “(유)가족을 욕되게 하지 말라”

가족이라는 집단은 흔히 누구도 모욕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될 ‘신성한 조직’으로 간주되곤 한다. 부모, 자녀, 혈족은 불가침의 영역이며 그 어떤 가치도 그것 위에 있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곤 한다. 국가, 교회, 학교, 법원, 매스미디어 등이 이러한 가치관을 확대시키는 주요 기관들이다. 그래서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 논쟁에서도 유가족을 욕되게 하지 말라, 가족을 욕되게 하지말라 등의 가족주의 구호가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는 절대적 가치기준인양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윤지오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만약 가족이 지배적 국가기관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성하고 불가침한 조직이라면 왜 가족의 의미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가족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또 사람마다 왜 다 다른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좋은 삶의 전형임에 반해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나쁜 삶의 표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보금자리임에 반해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지옥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으로 인해 생명을 보장받음에 반해 어떤 사람은 가족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따뜻한 관계를 상징함에 반해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참혹한 관계를 대표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서로 돕고 공생하는 공동체 조직으로 나타남에 반해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어떤 민주적 가치도 지켜지지 않는 최악의 폭력 조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가족에 대한 한 사회의 지배적 통념과 가족의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한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체험은 성별에 따라, 계급에 따라, 인종에 따라, 연령과 세대에 따라, 장애인인가 아닌가에 따라, 성적 취향, 정치적 지향에 따라 제 각각이며 다양하고 또 이질적이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공동체 조직으로서의 가족이라는 통념이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에게 타당하고 또 바람직할런지 몰라도 그것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타당한 생각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기관들이 가족을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체제적이고 물질적인 이유가 있고 또 목적이 있다. 하나는 가족을 통해 여성의 노동을 무임금으로 착취하기 위한 것이다. 여성의 몸은 산업공장이나 사회공장과는 구분되는 신체공장으로서 그 신체가 노동력의 재생산을 주로 담당하도록 분업화되어 있다. 임신, 출산, 양육, 돌봄, 부양의 노동이 그것이다. 이것은 막대한 시간과 정성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인류 재생산의 필수적 요소이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노동력 재생산 노동에 특화시키는 성별분업 체계를 구축한 후 이 재생산노동을 마치 자연을 수탈하듯 무상으로 수탈한다. 이 수탈체제를 은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이 재생산노동을 신성화, 신비화하는 것이다. 다양한 유형의 국가기관들에 의해 이 재생산노동은 생물학적인 것, 자연적인 것, 신성한 것 등으로, 즉 이성적 사유 너머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신성하기 때문에 그것에 가격이 붙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헌신과 사랑이라고 묘사된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와 자본은 재생산노동을 비임금노동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가족의 신성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첫번째 목표는 거대한 여성노동의 비임금노동화와 그에 대한 수탈이다.

가족의 신성화가 노리는 두 번째 목표는 계급질서의 재생산이다. 그것은 가족을 독점적 상속기관으로 만드는 것에 의해 가능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개의 계급이 있듯이 상속과 관련하여 가족은 두 종류의 가족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상속할 양(+)의 재산을 가진 가족과 그렇지 못한 가족이 있다. 상속할 양(+)의 재산을 가진 가족은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가족이다.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경우 그렇게 상속할 만한 의미 있는 재산을 갖지 못하거나 오히려 음(-)의 재산, 즉 채무를 남긴다. 그러므로 상속제가 유의미한 것은 주로 부르주아 가족의 경우다. 부르주아지는 가족 경로를 통해 유산을 상속함으로써 계급체제를 대물림하는 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재산의 상속이 불가능하다면 부르주아지는 계급질서를 세대마다 재생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족을 신성화해야 할 두 번째 이유이다. 가족을 불가침의 신성영역으로 만듦으로써 자본가계급은 자본주의 질서의 재생산에 대한 노동계급과 다중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두 번째 기제는 첫 번째 기제의 성공에 의해 뒷받침된다. 여성을 노동력 재생산에 할당하는 성별분업의 유지와 막대한 무상노동의 수탈이 착취적 계급질서 재생산을 뒷받침해 준다. 전자, 즉 성별분업의 유지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가부장적 지배를 필요로 한다. 성차별주의는 이런 조건 속에서 번성한다. 가부장제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그러므로 계급과는 별개의 어떤 범주라기보다 특수한 의미의 계급 개념에 속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은 계급적대가 나타나는 특수한 양상들이다. 

장자연의 죽음은 이중적 의미에서 계급적 죽음이다. 장자연이 계약직 노동자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비정규직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이다. 또 장자연이 성서비스 노동과 성폭력의 환경 속에서 죽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힘 없음으로 인한 고통과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음을 기록한 문건과 리스트를 남겼음에도 그것들에 대한 관리와 처분의 권한은 아주 당연한 듯이 ‘(유)가족’에게 귀속된다. 그 문건과 리스트는 한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적대의 조건, 그 구조와 메커니즘 및 양상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관리와 처분의 독점적 권한이 가족에게 귀속되는 것이 정당한가? 그것이 사회적 정의인가?

지금까지 알려진 정황과 사실들에 따르면 장자연 문건 및 리스트가 관리되고 처분된 과정은 이러하다. 1)2009년 2월 28일 문건 4장이 장자연(과 유장호)에 의해 작성되고 유장호에게 맡겨진 후 다음날(3월 1일) 장자연이 리스트가 포함된 3장의 편지글을 유장호에게 전달한다. 2)장자연이 유장호에게 문건과 리스트의 반환을 요구하던 중 사망한다. 3)유장호가 문건을 공개해야 할 실리적 필요성과 문건/리스트가 가족에 의해 관리되고 처분되어야 한다는 통념 사이에서 고민한다. 4)유장호가 가족과의 협의 없이 문건의 존재와 문건의 일부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다. 5)유장호가 윤지오에게 문건/리스트 사본을 보여준 후, 그것을 봉은사 땅 밑에 묻어두었던 원본과 함께 유가족의 결정에 따라 소각한다. 6) 이후 유가족은, 가족 동의 없이 문건을 공개한 것에 대해 유장호와 3명의 기자를 상대로 사자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다. 7)경찰은 사자명예훼손은 술접대의 사실 여부가 가려진 후에만 적용가능하다고 보고 이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지만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는 적용가능하다고 결론내린다. 등등.

이러한 과정은 한국사회에서 가족중심주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첫째 문건과 리스트의 공개가 무엇보다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게 된다는 법리적 판단은 한국 사회의 개인들의 행위 공과(功過)가 무엇보다도 가족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둘째 문건/리스트의 공개여부의 권리가 전적으로 가족의 의사에 맡겨져 있음으로써 그것을 공개한 자와 심지어 그것을 보도한 기자까지 고소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것은 가족의 이해관계 판단이 언론자유보다 상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유가족의 결정으로 장자연 문건/리스트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소각되는데 이것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 사건의 증거물 인멸의 합법적 권리까지 가족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은 장자연의 죽음의 사회적 진실을 알고 국가로 하여금 그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제도개혁을 실행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국민-다중들의 기본적 권리와 상충한다. 국민의 이 기본적 권리와 가족의 명예인격권 사이의 상충에서 가족의 명예인격권이 우선함으로써, 장자연의 죽음의 비밀을 풀 수 있는 핵심 단서였던 문건/리스트가 소각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 지금까지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남게 된 조건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유가족의 권리에 대한 주장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김수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윤지오가 유가족의 동의 없이 <13번째 증언>을 출판한 것이 부당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것은 윤지오의 기본권인 사상, 표현, 출판의 자유를 유가족의 동의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유가족의 권리를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상당히 침해할 정도로까지 확장하는 논리를 선택하는 것이 만약 옳다면 국민들이 장자연 사건의 재조사와 재수사를 국민청원으로 촉구하는 것도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는 부당한 것이 될 것이며 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거사조사위원회 그 자체도 유가족의 동의 없이는 부당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실제로 유가족들이 문건/리스트의 소각에서부터 그 문건/리스트 일부의 언론공개를 명예훼손으로 제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일관되게 장자연 사건의 사회적 공개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을 고려하면 유가족의 동의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유가족의 동의가 증언, 조사 등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활동의 전제라는 주장은 국민들의 기본권리에 대한 침해로 귀착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중심)주의는 윤지오의 출판증언를 비롯한 증언활동을 억압하고 비난하는 강력한 정동적 무기로 사용되었다. 특히 김수민과 그 주변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그들은, 윤지오의 증언활동에 반대하면서 힘으로 딸의 의지를 꺾으려한 아버지의 요구를 윤지오가 거스르는 것, 또 증언활동과 <지상의 빛>을 위해 이에 반대하는 아버지와의 관계까지 단절할 것을 고려하는 것을 ‘패륜’이라고 부른다. 패륜이란 윤리에 어그러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윤리’가 여성의 재생산노동을 무상으로 수탈하는 것의 관습적 정당화 기제를 지칭하고 사회적으로 성차별적 자본권력에 의한 성적 서비스 노동의 착취와 성폭력을 일상화하는 관념적 장치라면 어떨까? 그것이 성폭력 질서에 대한 증언을 억압함으로써 가부장질서를 안정되게 재생산하기 위한 윤리라면 어떨까? “가족을 욕되게 하지 말라”면서 윤지오를 ’패륜아’라고 비난할 때, 그 비난은 가부장적 착취체제를 정당화하고 그것에 복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덧씌우는 억압의 굴레가 아닐까?

마녀사냥의 암구호들 1: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


산사람을 이용한 자들이 죽은 사람도 이용한다

장자연은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배우를 하고 싶었다. 신인배우가 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권력자들에게 성서비스 노동을 강요당해야 하는 억울함을 견뎌야 했다. 소속사 사장 김종승(갑)과 맺은 노예계약 때문이었다. 윤지오의 계약서와 동일한 그 계약서에서 장자연(을)은 “연예활동 전반에 걸쳐 ‘갑’의 결정 및 지시에 충실히 따라야”(3조 바) 했고 “방송활동, 프로모션, 이벤트, 각종 인터뷰 등 ‘갑’이 제시하는 활동에 전적으로 수락하여야” 했으며 “행사불참 또는 방송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을’은 ‘갑’이 제시하는 민, 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4조 다). ‘갑’인 김종승의 결정에 따라 지시된 성적 서비스노동은 ‘갑’에 의해 “[방송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의 기회로 해석 및 주장되었고 계약에 따르는 의무적 활동으로 강제되었다. 이러한 노동이 부당하게 느껴져 중도해약하고 싶을 때에는 “위약벌금 1억 원과 ‘갑’이 ‘을’을 관리하기 위해 발생한 비용 중 증빙자료가 있는 모든 경비에 대하여 ‘을’은 이의제기 없이 계약 해지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현금으로 ‘갑’에게 배상하고 잔여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모든 수익활동의 20%를 ‘갑’에게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7조). 그러한 악조건의 중도해약마저 ‘갑’의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6조 가). 또 ‘을’이 연예활동을 중단한다 해도, “그 기간만큼 계약기간은 자동연장”(3조 바)되도록 되어 있었다. 장자연이 체결한 계약서는 ‘갑’이 계약기간 중 철저하게 노예소유주로서 노예노동자인 ‘을’을 이용할수있는 조밀한 장치들을 빈틈 없이 갖추고 있다. 소속사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장자연의 희망을 이용하여 그의 생명력을 쥐어짜는 맷돌이었고 그 생명 에너지의 이용자=소비자는 재계,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연예계의 권력자들이었다. 이것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성폭력 권력이 가동되는 메커니즘이었다.   

장자연은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고 이 상황에서, 기회가 있다면, 빠져나오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이 강제수용소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노예노동수용소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장자연의 필사적 저항과 탈출의 시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연예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마약, 폭력, 협박, 강요, 수탈, 착취, 부당이용의 사례들을 낱낱이 적시하여 보여주고 자신을 이용한 권력자들, ‘조심해야 할’ 권력자들의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가 어떻게 여성들의 예술적(연예적) 능력과 성적 에너지를, 요컨대 생명력을 착취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폭로했고 그 착취를 수행하는 인격적 행위자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폭로행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작게는 연예계에서 고립되어 더 이상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될 위험으로부터 크게는 초법적 권력자들의 손에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폭로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올 위험 사이에서 장자연의 고뇌는 깊었다. 김종승 기획사와의 싸움에서 장자연의 폭로 문건을 자신의 기획사에 유리하게 이용하고자했던 유장호가 삭제를 요구해야 할 만큼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 대한 장자연의 폭로 의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그 폭로문건이 기획사들의 소송전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발견한 후에 그는 그러한 위험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유장호에게, 그 문건을 자신의 의지 밖에서 불법적으로 유통시키지 말고 그 문건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유장호는 그 요구를 묵살한 채 자신의 유통행보를 계속했다. 이 시간, 그러니까 2009년 2월 28일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를 작성한 후 약 일주일 뒤인 3월 7일 주검으로 발견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힘도 없고 빽도 없고 미련도 없다”며 자신을 옥죄어 오는 ‘힘센 자들’에 대한 절규를 표현한 절박한 통화기록이 그의 심경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업가들과 권력자들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계약상의 ‘갑’인 김종승이 그를 노예노동자로 이용했고, 권력자들은 김종승을 매개로 그를 성노예로 이용했음은 분명하다. 김종승은 수사기관에서 유장호의 기획사가 자신과의 싸움에 장자연을 이용했다고 진술한다. 이상호는 이명박의 국정원이 장자연의 죽음을 당시의 법란(판사파동)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장자연 문건 및 리스트의 공개와 은폐의 과정에 유장호를 매개로 개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장자연이 죽기 전에 남긴 문건과 리스트조차도 정치적 이용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윤지오가 증언을 시작하자마자, 아니 증언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윤지오는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누가 장자연을 죽였는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에서 증언하는 것이 물론 고인을 생물학적으로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증언은 고인이 현대 자본주의의 가부장적이고 노예제적인 성폭력 체제에 저항하다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된 인격임을 밝히고 가해자와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고인의 존엄을 되살릴 수 있고 존엄의 체제를 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윤지오의 증언은 고인 장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 자신이 고인 장자연을 빙의하여 말하는 것으로 증언자 윤지오의 생명을 고인 장자연과 산 장자연들을 위해 이용하는 우애와 선물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이름을 남긴 권력자들 및 그 권력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체제는 증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그들이 그 이름들과 체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생리상 당연한 것이다. 그 이름들과 체제들이 성착취자, 성범죄자, 살생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또 법률적 수사와 재수사를 받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윤지오의 증언을 막아야 했다. 증언을 막는 것은 다양한 수준의 목표지점들을 갖는다. 첫째로는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둘째로는 증언을 막지 못한다면 증언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셋째로는 증언을 축소시키지 못했다면 증언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넷째로 증언을 왜곡시키지 못했으면 증언자를 쓰러뜨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윤지오의 생존방송과 경호요구, 증언자보호법 청원, 비영리단체 구성 등의 노력은 증언을 끝까지 수행하면서 증언의 원천봉쇄, 축소, 왜곡의 시도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었다. 권력자들이 증언자를 쓰러뜨리는 방법에 총력을 다한 것은 증언이 끈질기게 진행된 후 선택한 최후의 방법(윤지오는 이것을 ‘최후의 발악’이라고 표현한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권력자들이 이 최후 대공세에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권력자들과 그 파수꾼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장자연을 ‘어머니 기일’에까지 이용한 자들이며 죽은 후에도 이용한 자들이다. 이들은 타인노동의 착취(이용=exploitation)를 자기재생산의 본질로 삼는 자본주의의 권력자들이고 체제의 대행자들이다. 이제 이들은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장자연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영구화하면서 증언자 윤지오의 목소리로 귀환하고 있는 장자연의 절규를 다시 땅속 깊이 파묻으려 한다. 세월호의 생명을 수장한 바로 그 반생명적 죽음의 권력이 댓글, 고소, 고발, 보도,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 등 온갖 수단들을 동원하여 윤지호의 증언을 아귀(餓鬼)들의 소음 속에 파묻는다. 이것은 윤지오의 목소리로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 장자연의 절규, 그 문건과 리스트를 영원한 침묵과 어둠 속에 파묻는 여론장(與論葬)의 행렬이다.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와 강용석, 김용호의 가로세로연구소 등이 보조를 맞추면서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고 부르짖으면서 윤지오의 은행계좌를 뒤져 불순한 기록들을 찾으려 하고 가족관계에 있는/있었던 사람들을 이간시켜 증언자를 비난하도록, 혹은 그 비난이 널리 유통되도록 도울 때 이들이, 고인이 된 장자연이 영원히 죽어 있도록, 장자연의 절규가 영원히 잊혀지도록, 고인의 주검을 결코 부활할 수 없는 죽은 시신 그대로 이용하려는 주검정치(necropolitics)의 집행위원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들의 이러한 행보가 본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간에 거대자본의 분식회계, 차명계좌, 자금도피, 투기놀음 등의 경제범죄와 각종 유형의 성범죄를 은폐하는 가림막이며 생명을 위한 촛불행진을 가로막았던 2008년 광화문 ‘명박산성’의 현재태라고 생각한다.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3)

윤지오를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기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박훈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것을 그는 ‘가지치기’라고 부른다)이다. 2009~2010년 사이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최소한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유장호이고 또 한 사람은 윤지오이다. 이 중에서 유장호는 장자연 사건의 이해당사자로서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증언할 의지가 불분명한 사람이다. 이것은 최근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장자연의 진술을 자신이 지우라고 했다고 말했다가 보름 뒤에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장자연 리스트를 증언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윤지오가 남는다. 그러므로 박훈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기만 하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은 부정될 수 없는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박훈의 일차적인 방법은 윤지오 스스로 보지 못했다고 자백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4월 21일까지 박훈은 이 방법에 주력한다. 

그는 4월 16일에 세상에 이미 알려진 4장짜리 장자연 문건을 자신의 수타로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이것이 현존하는 “장자연 문건”의 전부임을 선언한다. 그 현존하는 문건은 유장호가 보관하고 있던 사본의 일부로서 KBS가 입수, 보도한 것이다. 

박훈은 윤지오가 문건을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장례식장(3월 7-9일)에서 소각되었으므로 윤지오가 3월 12일에 봤다고 한 것은 거짓일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는 4월 16일에야 사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고 윤지오가 맞았음을 비로소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3월 12일에 봉은사에서 소각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지오가 그 문건들을 봤다는 것까지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뭏든 보지 못했을 수 있다”며 의심을 지속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발견하고도 왜 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4월 13일에 쓴 박훈의 글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 자가 왜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인가?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유일하게 말을 한 사람이 윤지오다. 그러나 장자연 문건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무도 아직까지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거대한 권력의 압박을 받아서? 누구 말대로 국정원 공작 때문에? 아님 고인을 위해서?)

이 글에서 박훈의 주장은 단 하나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윤지오는 ‘유일한 목격자’를 주장하지 않는다. <13번째 증언>의 표지와 목차에 ‘유일한 목격자’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지만 이것은 윤지오의 인식이 아니라 출판사의 인식과 의지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여러 차례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 ‘유일한 증언자’라고 말해야 했다. 장자연 문건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여럿이다. 윤지오 외에 유장호, 스타일리스트 이00, 유가족, 그리고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유장호의 경호원’ 등이 있다.  둘째로 문건의 내용에 대해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고 오직 윤지오만이 말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거짓이다. 문건의 내용은 KBS 보도를 통해 이미 대중에게 공개된 터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구분하지 않고 혼란스럽게 이야기하는데, 리스트를 본 사람은 정황상으로는 유장호, 경호원, 윤지오, 유가족인데, 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말한 사람은 유장호와 윤지오(그리고 장자연의 오빠)이고 그 내용에 대해 말을 한 사람은 윤지오가 유일하다.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고 리스트에서 문건으로, 문건에서 리스트로왔다 갔다 한다. 이 혼란을 벗어나려면 문건과 리스트가 있고 문건과 리스트를 장자연으로부터 받았거나 함께 작성한 유장호가 문건만을 보여준 사람과 문건과 리스트를 다 보여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월 18일 박훈은 여전히 문건과 리스트를 혼동하면서 이런 질문을 윤지오에게 던진다.

“님이 본 장자연 문건에 4,50명이 있었는데 그게 2009. 3. 12. 봉은사에서 유장호가 보여줬다는 것에 있었는지요? 님이 본 것이 진짜 봉은사에서 본 것이 맞는지요.”

윤지오는 이미 10년 전의 수사기관 진술에서, 박훈의 질문에 답했다. 유장호가 넘겨준 문건과 리스트를 봉은사 차 속에서, 그리고 소각 시에 봤다고. 이미 진술되어 있는 것을, 그리고 유장호와 유가족 진술의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왜 묻는 것일까? 윤지오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강변하기 위한 것이다.

4월 19일에 박훈은 드디어 “장자연이 직접 작성한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리스트가 무엇인지, 어디서 봤는지도 자신은 알고 있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 리스트는 누가 작성한 리스트이며 [윤지오가] 어디서 봤다는 것일까? 같은 날 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은 이것이다”라는 제하에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실은 장자연 계좌로 수표를 입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경찰이 리스트로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즉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고 리스트라 불리는 것은 사후에 경찰이 작성한 수표송금 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윤지오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 서류에 있던 “그 명단이나 수사 대상자로 올린 50여명의 리스트를” 우연히 “잠깐” 봤을 개연성은 있다.’고 쓴다.

윤지오의 말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가능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쓴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4월 16일 작가 김수민이 술자리에서 새벽에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며 한 이야기가 주요 구성요소로 차용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에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수사기관에서 우연히 봤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는 3월 12일 윤지오가 녹취하여 제출한 유장호와의 통화기록에 등장하는 장자연 관련 ‘목록’이라는 말, 그리고 유장호와 윤지오가 10년 전에 이미 일관되게 진술하는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명단’에 관한 진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미 물질화되어 존재하는 진술문서를 외면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상상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뒤인 4월 20일에도 그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봤다면 그것은  ‘경찰이 작성한 “수사대상자 리스트”, “장자연 수표 리스트”, 아니면 “전준주 리스트”다.’라고 씀으로써 자신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내세울 뿐, 장자연 리스트의 부재에 대한 어떤 신뢰할 만한 분석이나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라는 윤지오의 반격

이 때는 이미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발언들이 윤지오의 증언들을 뒤흔들기 시작한 때이다. 박훈은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질문에 대한 윤지오의 최초의 응답을 올리는데 그 응답에서 윤지오는 박훈을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로 묘사하고 ‘헛소리 하려거든 본인 일기장에 하고, 자신의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말한다. 왜 윤지오의 응답이 이렇게 거칠었을까? 그것은 박훈이 증언자 윤지오를 증언과는 상관 없는 문제로 인신공격하여 그의 증언행동을 실추시키고 인격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모독들인가?

첫째로는 장자연 사건 관련 재판에서 윤지오가 가해자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노래나 춤을 추게 된 것도 강압적이 아니었다”)을 했다는 비난이다. 윤지오는 김종승과 관련하여 두 번 진술했다. 한 번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래나 춤을 추는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고 김종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고(2009) 또 한 번은 김종승이 자신[윤지오]에게 ‘강압적으로 춤을 추게 했는가’라는 물음에, ‘강압은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2010). 그런데 후자가 판결문에서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로 인용되고 박훈은 이 판결문에서 윤지오가 가해자를 편들었다는 이미지를 끌어낸 후 윤지오 공격에 사용한다. 윤지오의 대답은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고 후자만을 맥락에서 떼 내어 읽으면 윤지오가 가해자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구조적 압력과 직접적 압력을 구분해서 접근하면 이 진술은 윤지오 내부에서는 일관된 것이다. 두 번의 진술을 통해 윤지오는, 김종승이 자신에게 직접적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계약서를 통해 구조적(계약적) 압력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박훈은, 판사가 윤지오의 진술로부터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인용한 판결문만을 보고 윤지오가 가해자에게 유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윤지오는 장자연을 위한 증언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끌어낸다.

둘째로 박훈은 윤지오가 의문의 교통사고와 증언으로 인해 ‘법 위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위험을 언급할 때 그것을 “쇼”로 단정한다. 이것은 유튜버들과 댓글들을 통해 무한 재생산된 윤지오 악마화의 이미지다. 박훈이 이런 생각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 그의 주장대로라면 리스트를 수 도 없이 본 유장호와 김대오 (Dae O Kim) 기자는 이미 살해됐어야 했다. (실제 이들은 윤지오가 주장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

마지막 구절,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라는 말이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다. 분명히 리스트의 물적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오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고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그 리스트의 공개를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 사람이고 이 때문에 ‘자신의 경호원’이라는 신분으로 유장호를 보호/감시했던 국정원의 협력자이거나 국정원으로부터 통제를 받는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그가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두 사람은 윤지오와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박훈은 잘못된 비교를 통해 윤지오가 실제적으로 느끼는 위험을 허구화하고 위협에 대한 발언을 쇼라고 단정한다. 그는 윤지오가 왜 ‘혼자 법 위의 30명을(원래 4,50명 이었다) 상대”하는가?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질문하지만 그에 대한 악의적인 인격적 의심(거짓말쟁이, 사기꾼) 외에 어떤 진지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셋째로 박훈은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의심의 심리에서 출발하여 윤지오에 대한 경호를 혈세낭비로 규정하거나 윤지오의 후원계좌 개설을 돈벌이로 규정하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급기야는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멈춰세워햐 한다(“윤지오는 가고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만이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소, 고발, 그리고 변론의 자가당착

이러한 인신공격은 4월 23일 김수민을 대리하여 윤지오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법률행동으로 나타났다. 당일 기자회견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윤지오씨는 고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윤지오씨는 조모씨 성추행 건 이외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자연 리스트 봤다” “목숨 걸고 증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는 가상적인 자신의 시나리오를 근거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부정한다. 또 그는 윤지오가 거짓말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자신의 근거 없는 추정을 확립된 사실처럼 주장한다. 또 그는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면서 자신의 상상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밝혀졌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 그는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 10년전의 진술증거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사실의 신빙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임의적 주장을 확인된 결론처럼 내세운다. 한 인격에게 결정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이러한 허구적 변론폭력이 과연 용납되어도 좋은 것인가? 

박훈은 말한다. “나아가 저를 비롯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해자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윤지오의 인격에 대한 공격과 고소고발 행위가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출 것이며 윤지오가 처벌을 기대하며 내놓은 ‘법 위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진술이 힘을 잃으리라는 것을 박훈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박훈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훈은 자신이 조선일보를 싫어하며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사회주의자라는 진보혁명가-제스쳐로 자신이 가해자의 편이라는 일련의 비판을 차단하면서 4월 26일 윤지오를 사기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이호진, 손석희, 노영희, 정지영, 안민석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피력하는 것을 넘어 윤지오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반을 ‘윤지오한테 농락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한심한 작자들’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논리는, 박훈 자신이 ‘권력에 농락당하고 있는 한심한 작자’라는 역공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이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알렉산드로스인가 돈키호테인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한 박훈의 이 돈키혼테적 돌진과 칼질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재수사의 무산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는 달리, 그는 장자연 리스트의 매듭을 결코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삭제하는 방식에는 중요한 약점 즉 아킬레스건이 있기 때문이다. 박훈이, 유장호와 윤지오가 이미 10년 전에 수사기관에서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다고 말한 사실을 끝까지 외면한 것이 그것이다. 이미 확인된 진실을 외면한 것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변론을, 10년 전에 장자연 리스트는 물론이고 장자연 문건의 마지막 단 한 구절 외에는 문건의 내용도 형식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자신의 ‘기자친구’ 김대오(가 문건을 보았다는 가정)와 ‘작가친구’ 김수민에 기대서 끌어낸다. 그런데 김대오가 문건도 리스트도 전혀 본 적이 없으며 윤지오가 그것 모두를 보았다는 사실은 한국일보가 대중에게 공개한 ‘누가 장자연을 죽였나?’의 유장호, 윤지오 진술서 디지털 프린트물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진술서들이야말로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질적 흔적이며 가장 중요한 흔적이다. 윤지오의 진술들은 10여년 전의 진술들이므로, 오늘날의 진술처럼 거짓말이라거나 사기라거나 하는 잡음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장자연 리스트”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설령 박훈을 비롯한 사람들이 윤지오를 도덕성의 심급에서 파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윤지오의 이 증언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다는 그의 증언의 진실가치는 불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박훈이 이 진술을 알면서 모른 체 하는 지, 아니면 누구나 본 그 진술을 보지 않으려는 옹고집스러운 태도로 윤지오 죽이기를 위한 변론의 칼을 벼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의 이 물적 흔적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박훈의 칼질은 여론의 일시적 흥분을 이용하여 잠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코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라는 그 매듭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매듭을 푸는 힘겨운 과제는 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실규명의 의지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않을 수록, 더 분명하게 다중의 집단지성에, 촛불 공통장의 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끝]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1)

박훈과 고르디우스 매듭

서구 제국 권력의 놀라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 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방법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고 그 전차에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그 매듭은 오직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풀 수 있는 매듭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어느날 알렉산드로스가 그 지역을 지나가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단칼에 그 매듭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단칼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었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 한국에 한 사람 있다. 변호사 박훈이 그 사람이다. 그가 드디어 10년동안 풀리지 않고 있던 ‘장자연 리스트’의 매듭을 풀었다고 한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를 증언했던 윤지오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들어 그를 해외로 “추방”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단칼에 해결했다고 하는데, 그가 사용한 주장은 놀랍게도 ‘장자연 리스트는 애초에 없었다’는 아주 단순한 주장이다. 이로써 애초에 리스트는 없었으므로 이제 리스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조리 거짓말쟁이가 되며 사기꾼이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로써 그는 리스트에 거명되어 왔던 언론계, 정치권, 법조계의 모든 사람들을 ‘악몽’에서 해방시키고, 리스트에 대한 부실수사로써 권력자들에게 부역했다는 비난을 들어온 검경의 ‘누명’을 벗겨주고 이 사건의 최상위 개입자로 지목되어온 이명박 청와대와 국정원에 자유를 주어 장자연의 죽음 자체를 초기 경찰수사(3월 9일)의 결론처럼 단순 변사에 가까운 것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장자연의 죽음이 가져왔던 지난 10년의 미망에서 전 국민과 세계시민이 깨어나도록 촉구하는 저 단칼의 알렉산드로스가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그간 10년 동안 우리는 미망에 사로잡혀 권력자들을 의심하고 그 의심의 눈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윤지오가 본 권력, 법, 그리고 국가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매듭임이 분명하다. 그 문건과 리스트는 힘없는 계약직 연예노동자인 장자연이 노예계약을 통해 한국의 기업가, 정치가, 법조인 등의 권력자들로부터 당한 참을 수 없는 강제노동과 학대의 고통을 적은 눈물의 기록이다. 그것이 유장호의 기획사와 김종승의 기획사 간의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문건과 리스트라고 해도 이 점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문건과 리스트 중 언제부터인가 문건만 남고 리스트가 사라졌다. 아니 문건도 리스트도 소각되었으나 문건만이 기적처럼 부활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정확할지 모르겠다. 

지난 10년간 엄청난 수사력이 동원되어 뭔가를 조사하는 듯이 부산스레 움직였지만 두 기획사 대표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있었을 뿐 피의자였던 권력자들은 전부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혐의 처리되었다. 긴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은 결과적으로 사건을 ‘흐지부지’하게 만들면서 결국 이들 권력자들에게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고비용의 절차, 고난도의 테크놀로지에 다름 아니었다. 윤지오는 이 과정에서 ‘법 위의 사람들’의 실재를 확인한다. 그는, 대한민국에 법이 있고 법을 다루는 공무원들이 있지만 법, 경찰, 검찰, 판사 등은 권력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장자연과 같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며 법적 처벌은 권력자들에 대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비롯한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가해지는 무전유죄의 형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증언과 조사의 과정에서도 계급차별은 분명하게 나타났다. 방상훈 같은 자본가는 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 조선일보로 찾아가 경우 35분 동안 황제처럼 모시면서 조사를 하고 윤지오처럼 계약직 노동자였다가 그 계약이 노예제 계약임을 깨닫고 가까스로  탈출하여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사람에게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 한 밤부터 새벽까지 똑 같은 질문을 돌아가며 반복적으로 던짐으로써 증언을 견디기 어려운 노동으로 만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윤지오의 이 증언노동은 열 번 이상 반복되었다. 이것은 국가가 윤지오에게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쉽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실제 경험을 통해 실감나게 가르쳐 주는 과정이었고 그에세 진실을 지키며 살기보다 진실을 외면하면서 살라는 명령을 내리는 과정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는 소진(燒盡)과 정신질환이 있을 뿐이다! 사법에서의 증언의 시간은 국가가 다중을 학대하는 또 다른 강제노동의 시간이었다. 장자연의 죽음과 더불어 윤지오가 경험한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였다.

촛불의 힘

‘이게 나라냐!’라는 집단성찰, 집단절규의 힘으로 박근혜를 파면한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그간의 증언 과정에서 충분히 실망하고 소진된 윤지오가 다시 증언대에 설 힘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다시 장자연 사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조희천 강제추행 공소시효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던 2018년 여름이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의 <고 장자연> 인터뷰에 응했던 윤지오는 이후의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진실도 때로는 사람을 다치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머지 않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처라고 나는 믿는다. 오히려 침묵하는 진실은 독이 되는 법. 나는 인터뷰에 응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나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새로운 에너지가 그리고 기폭제가 되기를 빌었다.”(<13번째 증언>, 228)

이 인용구의 첫 문장은 아마도 그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었던 힘듦, 실망, 소진의 경험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검찰의 소환을 받아들여 진상조사단의 증언에 임한 이후 진실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이 명제는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폭발한 백래쉬로 현실화되었다. 그 기폭의 도화선이 앞서 언급했던 한국의 알렉산드로스 박훈이고 그가 내친 칼이 ‘애초에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는 마법의 칼이다.

박훈의 가짜 칼

이제 그의 칼이 어떻게 주조된 칼인지, 즉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는 명제가 어떻게 구성된 명제인지를 살펴보자. 다행히 그는 자신의 칼/명제가 만들어져 온 과정과 제조법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그가 처음 윤지오에 대해 부정적 관점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9년 3월 28일로 나타난다. 

“고김광석 부인 서해순을 남편 살해범으로 몬 이상호가 윤지오 배우를 통해 장자연 사건을 폭로한다면서 이미숙을 공격하던데 또 다른 참사를 저는 목도하는 바입니다. 서로들 맘대로 씨부린 뒤에 무슨 재가 남는지 알아 봅시다. 난 이상호가 하는 일은 나의 일이라 봅니다. 어이 자네 좀 있다 보세.”(3월 28일)

이것은 뉴시스의 반윤지오 비난보다도 열흘은 앞서 나타나고 있는, 그리고 그 뉴시스 흐름과는 다른 흐름의 반윤지오 기류이다. 이것은 이상호의 서해순 공격이 잘못된 것인데 이상호의 이미숙 공격 역시 잘못된 것이고 윤지오가 후자의 잘못된 공격의 도구(무기)로 이용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첫 포스팅에서 윤지오는 박훈의 반이상호 전선에서 부차적 위치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4월 9일에 박훈은 윤지오에 관한 세 개의 글을 페이스북에 순차적으로 올린다. 4월 7일 윤지오가 민주당 안민석, 정의당 추혜선 등의 초청으로 국회에서 북콘서트를 가진 직후다.

“아놔 진짜! 이상호가 선동한 남편 살해범 서해순을 처단하기 위해 이른바 “김광석 법” 발의에 나타난 안민석, 추혜선이 또 등장했다. 쫌 알고나 했으면 한다마는. 윤지오 배우가 장자연 사건의 진실 독점자인가? 진짜로? 그이가 하는 말은 다 진실인가? 이렇게 막 가겠다는 것인가?”(4월 9일)

전선이 확대된다. 이상호에 안민석, 추혜선이 더해진다. 윤지오는 이제 이상호의 도구이기를 넘어 민주당 안민석, 정의당 추혜선으로 이어진 범진보의 도구로 인식된다. 주요 공격 방향(주공방)은 이상호-안민석-추혜선으로 이어지는 여권 범진보다. 하지만 주요 타격은 그것이 휘두르는 도구인 윤지오를 향한다(주타방). 중요한 것은 위의 짧은 포스팅에서 윤지오에 대한 이후의 타격 방향의 윤곽이 암시된다는 것이다.  이상호에 대해서와는 달리 윤지오에 대한 박훈의 입장설정 방식은 적이 아니라 경쟁자이다. ‘진실 독점자’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독점 비판은 나눠가짐(分有)을 지향한다.  자유경쟁 상태가 독점 비판의 지향점이다. 윤지오가 진실 독점자일 수 없다는 말은 나도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진실을 나눠 갖고 싶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윤지오의 말에 거짓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들춰내어 진실권을 분유받으려는 전술이다. 방법론은 사회를 향해 “그이[윤지오]가 하는 말은 다 진실인가?”라고 묻는 것인데 이것이 일주일 뒤 4월 16일 김수민의 입을 통해 “윤지오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는 장문 폭로글로 나타났음은 주지의 것이다. 박훈 식의 전쟁적 시각을 이 현상에 적용해 보면 김수민은 박훈의 반-범진보 전쟁의 도구다.

이 날 4월 9일, 주공방과 주타방을 정한 후에 주공방에 한 통, 주타방에 한 통 도합 2통의 편지를 보낸다. 하나는 주공방 타겟인 이상호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상호에게] 

자네 그만 두게나/ 안타까워 하는 말이라네 / 자비는 없을 것이네/ 그러나 /윤지오 배우는 놔 주게나 / 부탁이네.(4월 9일)

이것은 장자연 사건으로 이미숙, 국정원을 공격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면서 윤지오를 거기에 이용하지 말라는 ‘부탁’이다. 이것은 이미숙이라는 사적 연예인이, 그리고 국정원이라는 공적 기관이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이상호와 세간의 의심과 주장이 허망한 것이라는 강한 비판을 표현한다. 여기까지 윤지오는 어떠한 자율성도 없는 도구 혹은 꼭두각시로 간주된다. 박훈에게서 윤지오 자율성에 대한 부정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나는 이것이 박훈의 노동운동, 정당운동 체험(과 그 실패)이 남긴 부정적인 유산이며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등장한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맹목, 그리고 공론장과 구분되는 공통장에 대한 감수성의 미형성이 가져온 박훈 세계관의 사각(死角)지대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박훈이 주타방 대상인 윤지오에게 당일 남긴 편지를 읽어보자.

[윤지오 배우에게 간단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님이 봤다는 이른바 “장자연 문건”은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장자연씨가 유장호와 같이 쓴 것이 14장 짜리 초안하고, 8장짜리 최종본이 있습니다. (8장 짜리 최종본은 내 친구인 김대오 기자가 봅니다. 그리고 이상호와 님이 그걸 까더군요) 

그것 님 말대로 전혀 유서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고 장자연씨가 유장호에게 넘겨준 저 “문건”들은 장례식장에서 다 태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사망 전 일주일 상간으로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님이 도대체 본 것이 무엇인지요? 

혹여 낸시랭 남편이었던 전준주 (왕진진) 사기꾼이 감옥에서 조작한 내용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간단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에 뛰어 들기로 작정했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위해서 말입니다. (4월 9일) 

실체적 진실! 윤지오와 진실을 나눠가지려고 한다는 반독점 투쟁으로 출발한 지 아주 짧은 시간 뒤에 박훈은 “실체적 진실을 위해서”를 기치로 내세우는 데 이것은 윤지오의 진실이 비실체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포석에 다름 아니다. 박훈의 목적은 바뀌었다. 그것은 윤지오와 진실을 놓고 경쟁하려 하는 데서 더 나아가 윤지오의 진실을 비실체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해체하고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진실독점자의 위치에 놓는 것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윤지오를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

하나는 “장자연 문건”에 대한 임의의, 즉 근거없는 규정을 사용해 자신의 프레임 속으로 상대방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장자연 문건에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초안 14장, 최종본 8장이 그것이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KBS보도자료(4장)만이 눈으로 확인된 문건의 일부이며 나머지는 진술로만 확인되는데 유장호와 윤지오는 4장의 문건, 리스트가 포함된 3장의 편지글이라고 진술한다. (페이스북 포스팅의 순서로 보면) 박훈은 “장자연 문건”에 대한 검토를 이 글 이후에 본격적으로 착수(뛰어듦)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므로 “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한” 순간의 박훈이 얻은 “문건” 관련 정보는 그의 “친구” 김대오로부터 얻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런 추론일 것이다.

그런데 김대오는 어떤 인물인가? 노컷뉴스 기자였을 당시인 2009년 3월 10일 장자연 문건을 보도할 때 그는 문건이 “12장”이었다고 썼다.(“이 문건의 양은 당초 알려진 A4지 4장에서 훨씬 늘어난 총 12장 분량으로 모두 친필로 썼다.” 노컷뉴스 2009. 3.10) 이 12장 짜리 문건은 위의 초안과 완성본 중 어느 버전에 속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버전인가? 진술서의 김대오는 노컷뉴스 기자인 김대오와는 또 전혀 딴판인 진술을 한다. 유장호는 김대오에게 장자연의 마지막 문구(“나는 힘없는…벗어나고 싶습니다”)를 사진 찍게 한 것 외에 내용이나 형식 등 일체를 김대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대오 역시 증인선서 한 후의 진술에서 자신은 위의 글 귀에 “장자연 문건”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해 본 바가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므로 12장 짜리라고 말할 수 있는 ‘언술 권리’가 그에게는 없다. 그리고 2019년 4월말부터 공개적으로 그는 “장자연 문건”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분량의 장수를 말할 수는 없고 4장+알파다라는 식의 모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9년 4월 24일 YTN 이동형과의 인터뷰에서 “실제적으로 저는 이 장 수 부분이 굉장히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만큼은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몇 장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가 뭐하고”라며 장 수에 대해 언급하기를 회피한 후, “저는 이제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장자연과 관련한 가짜 부분들을 밝히는 데 문건을 본 사람으로서, 만진 사람으로서 그것이 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감별사 역할을 하겠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패를 깠는데 자기 패는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 궤변, 나는 문건의 장 수에 대한 모든 주장들의 초월자이다는 궤변을 “나는 모른다” 이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식일까? 김대오가 본 문건에 대한 진술은 “본 적이 없다, 12장이다, 4장+알파다, 말할 수 없다” 등인데, 누구보다 증거를 분명히 해야 할 박훈 변호사가 여기에 더하여 “초안은 14장, 최종본은 8장”이라는 주장을 (김대오를 기초로) 내놓는다. 김대오의 이 어떤 일관성도 없는 주장들을 “내 친구”의 말이라는 이유로 믿는 것이 박훈의 변호법인가? 

다음으로 박훈은 장자연 문건과 관련된 일련의 전후 사정을, 그것도 핵심적인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윤지오를 다그친다. “제가 알기로는 고 장자연씨가 유장호에게 넘겨준 저 “문건”들은 장례식장에서 다 태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사망 전 일주일 상간으로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님이 도대체 본 것이 무엇인지요?”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장자연 장례식은 2009년 3월 7일부터 3월 9일까지 치러진다. 지금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으며 모든 증거와 진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은 3월 12일 봉은사에서 문건이 소각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12일에 벌어진 “장자연 문건의 소각이라는 사건”이 7일에서 9일 사이에 열려 있었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다는 것인가? 이런 기적은 모세라고 해도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윤지오는 너무나 분명하게 말한다. 2009년 3월 12일 봉은사에 도착하여 차 안에서 유장호가 건네주는 사본을 읽었고 땅 밑에서 ‘유장호의 경호원’이 파온 원본을 가족들과 함께 보았노라고. 그리고 유장호와 유가족들도 모두 윤지오가 그 문건을 보았고 또 소각에 함께 했음을 진술했다. 이것이 “실체적” 진실이다.

세번째의 질문은 참으로 유치하고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것은 이미 사기범으로 확인된 전주주(왕진진)과 윤지오를 연결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술책이다. 그것은 조심스럽지만 간교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나타난다. “혹여 낸시랭 남편이었던 전준주 (왕진진) 사기꾼이 감옥에서 조작한 내용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이 수법은 약 1주일 뒤 김수민의 저 유명한 폭로글에서 ‘윤지오가 훔쳐본 리스트’라는 테마로 다시 재활용될 것이다.

박훈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든다고 했지만 그 용감한 돌진은 불행하게도 짙은 안개보다도 더 모호한 김대오의 오락가락에, 그리고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사실(그리고 조금이라도 이 사건에 진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완벽한 무지와 오판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돈키호테가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한 이유는 그가 풍차를 괴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박훈이 김대오를 타고 풍차를 향해 달려들 때 그는 윤지오를 무엇으로 보고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다 알고 있듯이, “사기꾼”으로….. 박훈의 저 “실체적 진실”을 향한 돌진에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장자연 사건에서 리스트 공개 및 윤지오 증언의 중요성에 대해

2009년 3월 7일에 있었던 장자연의 사망은 3월 9일 단순 변사로 처리되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는 물론이고 ‘장자연 문건’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후 왜 단순 변사를 넘어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역사적 사건으로 전환되었을까? 

이것은 전적으로 ‘장자연 문건’의 공개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혼란을 막기 위해 장자연이 남긴 문서가 두 종류임을 분명히 해 두자. 하나는 피해사실을 담은 ‘문건’이고 또 하나는 가족의 안전을 당부하는 편지글 형식 속에 이름들의 목록이 들어 있는 ‘리스트’이다. 전자를 여기서는 ‘문건’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리스트’라고 부르겠다. 

장자연의 죽음 직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망처리 방식에 반대하는 하나의 힘이 물밑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장호의 움직임이다. 

1. 문건의 대인공개

(1)유장호는 3월 7일 오후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3-4장의 문서를 보여주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문건을 최초로 타인에게 공개한 것이다. 이 대인공개에서 유장호는 리스트는 빼고 문건만 보여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2)스타일리스트 이** 및 노컷뉴스 기자 이지현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차 속에서 유장호는 혼잣말로 장자연이 남긴 문서가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세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의 문서 존재의 불명확한 공개라고 할 수 있다. 

(3)장례식장에서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유장호는 다시 그 문서를 보여준다. 이것은 ‘(1)’의 행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반복하는 대인공개이다. 

(4)유장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장자연이 단순히 우울증을 앓아 자살했다고 비쳐지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다. 

하지만 이 네 단계의 공개는 아직 불명확한 대인공개에 머물렀으며 사회적 공개라고는 할 수 없고 사회의 주목을 받지도 못한 물밑 공개 차원의 것이었다.   

2. 문건의 언론공개

5)유장호는 3월 8일 밤 다시 스타일리스트 이**를 부르고 노컷뉴스의 김대오 이지현 기자와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문건의 마지막 문구(나는…싶습니다)를 사진찍게 했고 김대오는 이 문구는 유서 분위기도 있으니 이런 정도는 공개하면서 문건의 존재를 알리자고 했다.

6)두 언론사는 3월 10일 동시에 해당 문구의 이미지를 포함한 장자연 문건의 존재를 보도한다. 이것이 최초의 언론공개이다. 

::여기에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두 기자가 자신들이 본 문건의 출처를 모두 유장호가 아닌 것처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가)노컷뉴스 김대오는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서 자신이 입수한 문건이 유장호가 갖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지를 유장호에게 전화로 확인했으나 유장호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고 씀으로써 그 출처가 유장호가 아닌 것처럼 서술한다. 그리고 조선일보 박은주는 아예 유장호와 별도의 ‘장씨 지인 A씨’로부터 문건을 본 것처럼 서술한다. 이 두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문건에 관한 정보의 출처는 유장호가 아닌 것으로 된다. 

나)또 하나는 두 기자가 위의 문구 외에 문건의 장 수, 형식, 간인, 지장, 볼펜글씨, 친필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장호, 스타일리스트 이**, 김대오의 진술조서와 배치된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두 언론의 기자는 문건의 장 수나 형식 등에 관해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스타일리스트 이**는 제외)이 입을 맞춰 정보출처에 대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문건의 소지자가 유장호 외에 최소 한 사람이 더 있고 문건도 두 본 이상임을 의미한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서술한다) 

7)첫 번째 언론공개에 이어 3월 13일 KBS가 타다만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출처를 유장호 사무실의 쓰레기통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문건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언론공개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리스트는 없는 문건만의 공개이며 그것마저 타다만 문건, 불완전한 문건이었다.

3. 에피소드: 윤지오, 가족, 경호원(국정원 직원) 공개와 문건 및 리스트 소각

8)3월 10일 유장호는 윤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여러 사람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거명하며 윤지오가 그들의 명함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목록’(리스트)은 경찰에게 넘겨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유장호가 문건과 리스트 중 문건만 경찰에게 넘길 것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리스트에 대한 불명확하지만 최초의 공개이다.

9)3월 12일 유장호는 경호원(국정원 직원)을 대동하여 봉은사 부근 차 안에서 윤지오에게 문건과 리스트 사본을 보여준다. 이것은 최초의 대인 리스트 공개이다. 그런데 그 경호원의 정체는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조사가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황으로 보면 경호원은 이미 그 문건과 리스트를 보고 또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인물의 정체와 장자연 사건에서의 역할 문제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점이다.

10)같은 날 봉은사에서 유장호는 봉은사 땅 밑에 파묻어 두었던 비밀봉지 속의 문건과 리스트를  유가족들에게 보여주고 가족의 결정에 따라 소각한다. 이 때도 유장호는 문건의 언론공개를 강력히 주장한다.

11)이 맥락에서 보면 유장호는 문건의 내용까지 공개하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추구했고 다음날 KBS가 문건 4장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유가족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그 내용이 공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문건의 존재 공개에서 문건의 내용 공개에 이르는 과정은 지난한 것이었다. 유장호는 합법적 공개에는 실패했지만 기필코 문건의 존재와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에 성공한 셈이다.

4. ’리스트’는 어디로?-윤지오 증언의 중요성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리스트는 비공개 상태이다. 

12)리스트는 김대오, 이지현, 박은주 기자에게는 공개되지 않았고 스타일리스트 이**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3)리스트는 유장호가 여러 이름과 윤지오가 소지한 명함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처음 시사되었고 ‘목록’이라는 말로 확인되었다(녹취됨). 유장호가 사람 목록의 이러한 대조작업을 한 것은 유장호가 장자연과 윤지오의 행동반경이 유사하다는 것에 착목한 때문일 것이다다.

14)봉은사에서 유장호는 윤지오에게 처음으로 리스트를 보여줬고 이후 가족에게 보여준 후 함께 소각했다.

이후 리스트는 공식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도 리스트가 없는 문건 4장의 타다만 사본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윤지오와 유장호가 리스트의 존재를 시사하는 진술이 있었음에도 검경은 이에 주목하지 않고 수사 없이 넘어갔다. 

윤지오의 증언이 중요한 것은 그가 2009년 3월 10일 전화를 통해 유장호로부터 들었던 이름들, 전화 속에서 유장호가 사용한 ‘목록’이라는 말, 그리고 이틀 뒤인 3월 12일 봉은사 부근 차 안에서 문건과 함께 사본으로 봤던 리스트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이고 그 중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리스트 내용의 일부를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윤지오 증언을 부정하는 김수민, 김대오, 박훈 네트워크의 등장과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 죽이기는 지금까지 비공개상태로 남아 있었던 ‘리스트’의 존재를 비공개 상태로 묻어두고 그 내용의 공개를 아무리 부분적이라도 부정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누가 그러한 시도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이다.  

5. 김대오, 박은주 기사의 정보출처에 대해

박은주가 쓰고 있는 ‘장씨 지인 A씨’가 누구일까라는 의문 때문에 다시 유장호, 김대오, 스타일리스트 이**의 진술서를 읽어보았다. 진술들을 종합해 보면 김대오 박은주 기자가 정보출처를 유장호가 아닌 다른 사람, 예컨대 ‘장씨 지인 A씨’라고 쓴 것은 유장호가 유족과의 상의 없이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음을 공식화하기 위한 페인트모션(속임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즉 문건의 두 출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장호가 출처임을 감추고 유장호 아닌 다른 출처로부터 문건을 입수했다는 인식을 유족에게 줌으로써 정보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장호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1)유장호는 3월 7일 장자연이 사망한 당일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문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물었고, 장례식장에 갔다온 후 똑 같은 질문을 이**에게 반복했다. 이것은 이**의 힘을 빌어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2)유장호는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유가족에게 전화해서 문건을 태우겠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는 장자연의 언니에게 유장호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다. 언니가 3월 10일의 보도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는 유장호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3)유장호는 3월 10일 윤지오에게 문건을 ‘윤지오 네가 공개하는 것으로 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한다. 윤지오는 이것을 거절한다. 여기까지 유장호는 문건의 언론공개(사회적 공개)를 합법적으로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

(4)3월 12일 유가족을 만나 유장호는 경찰에 제출할 것을 주장하지만 가족의 거부로 소각한다.

(5)KBS 보도는 유장호 자신이 문건의 공개주체가 되지 않으면서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는 무리한(즉 유가족동의 없는)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건이 경찰에 제출되었고 이후 수사과정을 지배하게 되었다.

(6)유장호는 보도가 나간 후 병원에 입원하는데 이 때에도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내가 한[보도자료 제출한] 것 아닌 것을 너도 알잖니.”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내가 문건의 내용 공개의 책임자가 아님을 가족(장자연의 언니)에게 좀 이야기해줘!”라는 말로 새겨서 읽어야 맥락에 맞는다.

6. 결론

유장호는 자신이 언론공개 주체로 되지 않으면서 어떤 형태로든 문건(리스트는 아니다)을 공개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문건의 존재를 공개하는 데에는 노컷뉴스와 조선일보 기자들을 이용해서 성공했다. 하지만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것이 봉은사에서의 소각이다. 즉 자신이 내용 공개의 책임자로 되지 않으면서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이고 순리적인 방식으로 문건 내용을 공개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를 보충하여 문건 내용을 무리한 방식으로 공개한 것이 (유가족 동의 없이 이루어진) KBS의 보도였다. 물론 리스트는 제외하고서다. 이 사실은, 유장호 측이 원한 것은 ‘리스트 공개 없는 문건 공개’였음을 보여준다. 이후의 사법적 과정은 이것을 공식화해 왔으며 문건 내용에 드러나 있는 가해 책임자조차도 불철저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리스트 없는 문건 내용’에 대한 사법적 진리를 만들어 왔다. 이것은 리스트에 대한 권력의 봉인이 그간 성공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촛불혁명과 미투운동의 힘으로 과거사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이 출범하고 이 혁명적 흐름에 윤지오가 결합하면서 이 힘이 지금까지 안전했던 리스트 봉인을 아래로부터 뒤흔든다. 그것은 이 봉인을 파열시키는 지진과 같은 것이었다. 촛불혁명을 진원지로 하는 이 지진을 막지 못하면 리스트가 드러날 위험에 처한다. 가해자들에게 그 악몽은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로 나타날 것이었다. 2019년 4월 7일 윤지오가 국회의원들의 초청으로 국회에서 북콘서트를 연 것을 기점으로 가해자들의 반격이 본격화되었다. 뉴시스가 윤지오 증언의 허구성을 주장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그 반격은 오늘까지 한 달 이상을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장자연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정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갈등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강제수사권을 갖는 특검이 리스트의 존재와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철저한 재수사에 나서는 것이다. 긴 역사적 시야에서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단정할 수는 결코 없겠지만 지금이 진실을 규명할 절호의 기회이고 가해자의 처벌과 제도개혁에 이를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로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네 가지 법정과 ‘김대오는 어디로?’

김대오는 2019년 4월 자신이 장자연 문건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문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얻었고 그 평판권력으로 윤지오 배를 거짓말쟁이로 단죄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런데 그는 2009년 12월 장자연 관련 사건 증인신문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을 본적도 그 내용을 들은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그는 문건을 안 본 사람이면서 동시에 본 사람이다. 이것은 둘 중 하나는 거짓말임을 의미한다. 나는 ‘김대오의 거짓말’(http://amelano.net/?p=373)에서 이 모순에 대해 다뤘다. 그리고 정의연대는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김대오를 위증죄로 제소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 반응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하나는 산수를 통해 공소시효 7년이 지난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벙어리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우화를 올린 것이다. 이것이 만약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응답이라면, 자신은 어느 것이 거짓인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것(진술거부)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별한 수사권을 가진 특검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공소시효가 없는 법정들

그런데 법정은 공소시효를 갖는 사법의 법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의 법정은 시민상태가 유지되고 있을 때 법정이 취하는 지배적 형태일 뿐이다. 사법의 법정 외에 공소시효가 없는 다른 법정들이 최소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민의 법정이다. 역사의 격변기에는 항상 인민의 법정이 출현하곤 한다. 그것은 사법의 법정과는 달리 대개는 가차 없고 냉혹한 법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누적된 모순들, 불의들, 거짓들, 착취들, 기만들로 혼탁해져 있는 낡은 사회상태를 쓸어버리는 태풍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민의 법정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식의 질문은 태풍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논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질문이다. 태풍은 바람직하게 생각하건 그렇지 않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불어닥치며 가차없이 쓸어버린다. 분명한 것은 태풍이 지난 후의 바다는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민의 법정은 자연상태와 가깝다.

또 하나는 평판의 법정이다. 이것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공통장의 법정이다. 서로 다른 각자들, 각체들은 쉼없이 평가하면서 관계맺고 단절한다. 평판은 그 자체가 개개인들에 대한 중단 없는 법정이다. 평판의 법정에는 인민의 법정에서처럼 공소시효가 없다. 그 법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리면서 우리를 상주고 또 벌한다. 

마지막으로 양심의 법정이 있다. 사법의 법정, 인민의 법정, 평판의 법정은 모두 타자들이 나를 향해 내리는 심판임에 반해 양심은 나 자신이 나에게 내리는 심판이다. 양심의 법정도 공소시효를 갖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의 내 행동과 말이 양심의 심판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나의 행동에 대한 내 양심의 법정의 처벌방식이 자책, 후회, 악몽 같은 것들이다. 이 법정이 선순환적으로 가동되지 않을 때에 누적된 문제들이 정신적 질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대오 기자는 무엇을 통해 문건의 형식과 분량을 알아냈나?

김대오 진술의 모순은 이미 2009년 당시에 발견되었던 것이다. 유장호는 장자연의 끝 글귀 외에는 문건을 김대오에게 보여준 적도, 그 내용에 대해 말해준 적도 없다고 진술했고 이것은 문건을 본 적도 그 내용에 관해 들은 적도 없다는 김대오의 진술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2009년 3월  10일 김대오, 이지현 기자 명의로 나간 노컷뉴스 장자연 사건 최초보도는 1)그 문건의 양이 A4 12장이며 2)모두 친필이고 3)간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 친필 문건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가 아니라 “현재 함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여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이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기사 내용은 문건에 대해 마지막 글귀 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김대오 자신 및 유장호의 진술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문건의 양이 A4 4장 더하기 3장 총 7장이라는 유장호 및 윤지오의 진술과 어긋난다. 그래서 변호인1이 “김대오가 문서의 형식, 그 문서에 다른 연예인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썼을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유장호의 답 “그것은 피고인도 잘 모르겠습니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체 문건을 본 적이 없는 김대오가 노컷뉴스에 어떻게 문건의 장 수가 12장이고 간인이 찍혀 있고 친필로 되어 있다는 등의 사실을 ‘알고’ 보도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디에서 그러한 정보를 얻었을까? 유장호 외에 문건을 접할 수 있었던 다른 경로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누구였을까?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만난 장씨 지인 A씨는 누구인가?

같은 날 장자연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의 보도는 유장호로부터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와 함께 문건의 마지막 글귀의 사진만을 찍어왔다는 김대오의 진술이 거짓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 기사에서 박은주 기자는 유장호가 아니라 장씨의 지인 A씨를 만나 문건을 본 것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박 기자는 문건이 최소 두 개가 있음을 밝힌다. (1)”(3월) 9일 새벽에 만난 장[자연]씨의 지인 A씨는 고 장자연씨가 남긴 장문의 문건 중 일부를 갖고 나왔다. 그는 체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2)”장씨의 고민상담을 해줬던 다른 기획사 대표 유모씨도 장씨의 심경에 담긴 문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1)의 장씨의 지인 A는 분명히 (2)의 유장호가 아니다. 박은주 기자도 “저는 나약하고…싶습니다”가 포함된 글귀 외에 그 문건이 “볼펜으로 눌러쓴 A4용지 여러장”이었다는 것과 그 “여러 장에는 페이지마다 지장이 찍혀 있었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박기자는 A씨가 “연예인이 된 후 얽힌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이 소상히 기술되어 있지만 원치 않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다 보여줄 순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이 기사들과 기자는 제대로 수사되었는가?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만난 A씨는 수사되었는가? 문건은 왜 A씨와 유장호 두 사람이 동시에 갖고 있었는가? 노컷뉴스 기사와 조선일보 기사는 이 사건이 단순 변사가 아님을 알린 첫 기사들이다. 그리고 두 언론사의 기자들은 문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당사자들이다. 유장호와 A씨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들이 그 문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이들이 문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기자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왜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이른바 ‘유장호의 경호원’은 봉은사와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 참석했고 문건을 꺼내오고 불을 끄는 등의 적극적 행위자로 움직였는지 … 이 모든 것들(특히 김대오와 박은주)에 대한 조사에서부터 특검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