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 시대 진실의 운명: 범죄로 되는 증언, 수배자가 되는 증언자(1)

객관진실, 탈진실, 공통진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미치코 가쿠타니의 얇은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진실이 무의미해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원제는 The Death of Truth: Falsehood in the age of Trump인데, 한국어 번역본에 저자의 집필의도를 잘못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이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해제를 쓴 정희진 연구자의 생각과 유사하게 나는 근대적 객관진실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애도를 표현하는 저자의 심경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진실’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객관진실에 대한 비판이 곧장 진실혐오로 나아가서는 안 되며 객관진실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진실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객관진실도 탈진실도 아닌 그 새로운 유형의 진실을 나는 스피노자의 공통관념(common notion)을 응용하여 공통진실(common truth)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그런데 돌아보면 현실에서는 진실에 대한 무관심, 진실에 대한 혐오, 진실에 대한 적대가 이미 일상화되고 널리 대중화되었다. 2019년 4월말 이후 윤지오의 증언에 대한 대한민국의 반응양식이 그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언론과 SNS가 증언자의 사적 생활에 의심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후부터 ‘증언’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증언이 진실을 밝히는 말인 한에서 증언에 대한 무관심은 진실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낸다. 장자연의 고발문건에 이름이 등장했고 그래서인지 이 무관심의 공간을 조성하는 데 남다른 역할을 한 조선일보는 이후 그 공간에 윤지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증언을 거짓으로 만들어 그것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증언자에 대한 적대를 불러오는 방법이다. 

적색수배의 배경맥락들

마침내 2019년 11월 6일 인터폴은 증언자 윤지오에게 수배단계 중 가장 강력한 조치인 적색수배조치를 내렸다. 이름도 으스스하지만 살인자, 강도, 강간 등의 강력범죄 관련 사범이나 폭력조직 중간보스 이상 조직폭력 사범, 50억원 이상 경제사범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터에 이 조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분노를 일으킨 조치이다. 여성단체들은 이러한 납득할 수 없는 조치에 대한 항의로 민갑룡 경찰청장의 사직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경찰청장으로 내정되고(2018년 6월 15일) 취임한(7월 2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강행하고 적색수배를 인터폴에 요청하는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민갑룡 청장이 2019년 5월에 청룡봉사상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청룡봉사상 폐지 여론이 높아진 것은  CBS 보도로 ‘장자연 사건’의 의혹 당사자인 조선일보와 이 사건 수사 당사자인 경찰 간의 수상한 연결고리가 드러난 이후다. ‘장자연 수사’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 경찰관이 그해에 조선일보로부터 청룡봉사상을 받아 특진을 한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유착이 분명하게 의심되는 이러한 대목 외에 특진후보 경찰관들에 대한 세평과 감찰내용이 조선일보 측에 제공되어 경찰이 조선일보의 영향력에 종속되었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갑룡 경찰청장은 청룡봉사상을 존치시키고 조선일보가 최종심사를 진행하며 수상자를 1계급 특진시키는 방식의 기존 청룡봉사상 제도를 강행하기로 결정해 진실과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킨 바 있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경찰청장이 적색수배를 요청했다고 해도 국제기구인 인터폴이라면 국내정치에서 독립적으로 사고하여 그것을 기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보통 일주일에서 두 달까지 걸린다고 하는 인터폴 심사는 불과 사흘 만에 끝나고 인터폴은 참으로 신속하게 윤지오에게 적색수배령을 내렸다. 이 상식을 초과하는 신속한 조치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2019년 11월 11일 여성조선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기사를 내보냈다.

현재 인터폴(ICPO, 국제형사경찰기구) 수장은  제30대 경기지방경찰청 청장을 지낸 김종양 총재다. 한국인 대상의 인터폴 공조가 어느 때보다 수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캐나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한 매체의 이메일 질의에 보낸 회신서에서 “캐나다 정부는 지난 1995년 이래 한국 정부와 범죄인 인도협약을 맺고 있다. 윤지오 사건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사건들을 인도협약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제기구지만 총재가 한국인인 것이다. 김종양 인터폴 총재는 인터폴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총재며 중국 출신의 멍홍웨이 전임 총재가 비리혐의로 구속된 후 약 한 달 반 가량 권한대행을 하다가 약 1년 전인 2018년 11월 21일 인터폴 총회에서 인터폴 총재로 선임되었다. 이때 경쟁후보가 러시아내무부 출신의 알렉산드르 프로콥추크였는데 김종양이 다수 득표를 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인터폴을 통해 자국 출신의 야권 지도자,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적색 수배 명령을 내릴 것을 우려한 서방권 국가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 배경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인터폴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국제정치에 이용되고 있는 정치기구임을 시사한다.

김종양 총재는 어떤 사람일까? 여성조선이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2009년에 장자연 사건의 담당청이었던 경기지방경찰청의 청장을 역임(2014년)한 바 있다. 또 그는 2018년 인터폴 부총재를 맡고 있던 당시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바 있는데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우리는 살인, 강도, 강간, 다액경제사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윤지오에 씌워진 혐의만으로 인터폴 적색수배라는 과잉대응을 연출한 정치적 네트워크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네트워크는 조선일보-경찰/검찰-자유한국당-인터폴을 잇는 네트워크로 추정된다.

증여 공통장에 대한 범죄화 시도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그런데 이 증여 공통장(이에 대해서는 http://amelano.net/?p=1318 참조)은 아직은 유령적이다. 그것은 정동적 구호를 동반하면서 화폐로 표현된 공통장(commons)이지만 공통체(commonwealth) 혹은 공동체(community)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지 하다. 그것은 상호인정이나 수평적 소통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자기재생산의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윤지오의 증언에 대해 각 증여자들이 감사, 격려, 연대결의 등을 표명함으로써 공통의 추구를 표현하지만 상호관계의 분명한 형태를 갖추지는 않은 공통장이다. 국가의 기능장애의 시간에 국가 바깥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이 공통장은 증언자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형성된 증여의 공통장으로서 이후에 그 공통장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는 수증자의 결단과 화폐의 힘에 맡겨지게 된다.

그런데 윤지오는 후원금 증여가 지속되고 있던 다음날인 19일 신한은행 통장을 자신의 의지로 닫는다. 왜 그랬을까? 국가 바깥에 구축된 이 증여 세계, 증여 공통장이 국가(국법)와 맺는 관계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에서 독립되어 국가의 관여 범위를 벗어나는 자율적 장(場)인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한 장이면서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영역인가? 앞서 살펴 보았듯이 신한은행 통장을 통해 나타난 증여 공통장은 국가가 국민의 공통감각(common sense, 상식)에 맞게 기능하지 못하는 때에 발생한 것으로 공론장도 시장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제3의 장이다. 하지만, 사회를 통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 나가는 경향이 있는 국가는 이 증여공통장이 자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회 속에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게 되면 이 장을 자신의 통제 안으로 끌고 오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 지점에 주목하도록 윤지오에게 조언을 해준 것은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원금 수증이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과 상충할 수 있으니 관계기관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었다. 후원금이 증여와 수증의 관계, 즉 증여교환의 관계로서 시민사회의 자율(自律, autonomy)에 속한다면 기부금품법은 이 증여교환 관계에 대해 국가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하는 통제장치, 즉 법률(法律, law)에 속한다. 

자율과 법률의 관계가 문제로 되는 이 상황에서 윤지오가 찾아가 만난 그 ‘관계기관’은 서울시 민간협력과였다. 자율과 법률의 중간 지대에서 민간과 공공 양자 간의 협력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때의 면담내용에 대해서는 윤지오와 담당자의 기억이 서로 엇갈린다. 담당자가 기부금품법에 관한 일반적 설명을 윤지오에게 한 점에 대해서는  기억이 일치하지만 개인 후원금이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서로 기억이 다르다. 담당자는 경호비가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이라고 말했다고 기억함에 반해 윤지오는 그 반대로 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기억의 이 차이는 단순한 기억의 차이라기보다 기부금품법의 모호함이 반영된 지각과 인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민간협력과 상담 담당자가 3월 19일에 신한은행 통장 후원금이 기부금품법 적용대상이라고 만약 단정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면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월권이다. 대한민국의 기부금품법은 30여분간의 시간 동에서 후원금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유권해석을 즉석에서 내릴 수 있을 만큼 명료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부금품법 적용대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행복을 고려한 상담을 해주려면 후원금의 성격, 기부금품법 적용배제대상에 속하는가 않는가에 대한 법리해석, 등록 의무에 대한 판단, 즉각 반환의 기술적 방법 등등에 대한 고려가 있었어야 할 것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보들이 포함된 추상적 상담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모호성은 기부금품법의 전개과정이 자율영역과 법률영역 사이의 투쟁을 반영하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역관계, 정치적 필요 등에 따라 변화해 나왔고 이로 인해 법조항들이 상당한 내적 모순을 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금도 시민들로부터 상당한 항의를 받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기부금품법은 권위주의적 ‘금지법’에서 시작되었다. 국가가 보증하는 시장의 계약관계 외의 사인 간의 금품수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려 한 것이다. 이것은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자신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자율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금지 중심의 기부금품법은 국민의 행복추구권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시민생활에서의 행복을 충분히 보장해 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스스로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부금품법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불만과 항의가 고조되고 이것을 법제에 수용하는 과정에서 금지법은 점차 ‘규제법’으로 발전했다. 이후 국가가 자신의 복지책임을 시민사회에 전가하여 시민사회의 자율적 에너지를 축적에 활용하는 방향, 즉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2017년 7월 26일 개정된) ‘조성법’, 즉 기부문화의 조성을 위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률 역시 아직 여러 가지 모호함을 갖고 있어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기부문화의 “금지”나 “규제”보다 “조성”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진일보한 법률이다. 현행법에서 기부금품은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으로 광범위하게 정의된다. 이러한 의미의 기부금품은 “반대급부”가 없는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증여의 일반적 개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증여는 시차가 있다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답례를 반대급부로서 수반하기 때문이다. 증여관계에서 답례는 일반적으로 의무에 속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기부금품법이 규정하는 기부금품의 정의는 일반적 증여라기보다 증여의 특수한 형태로서 답례를 전제하지 않는 “순수증여”의 개념에 더 가깝다.

기부금품법의 핵심적 취지는 기부금품 일반을 법률로써 관리하려는 것에 있지 않다.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이라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 “모집과 사용”을 관리하는 것에 그 핵심적 취지가 있다. 모집되지 않은 “후원금”이나 “기부금품”은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그 외에도 회비나 헌급 납부처럼 “모집”이라고 보기 어려운 많은 경우들이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들로서 규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집”이란 무엇인가?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 제2조 2항은 “서신, 광고,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품의 출연(出捐)을 타인에게 의뢰ㆍ권유 또는 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항은 “모집자”라는 이름으로 모집 주체를 규정하는데 그것은 “제4조에 따라 기부금품의 모집을 등록한 자”를 지시한다. 그 주체는 다시 모집종사자를 두어 모집행위를 할 수 있는데 다음의 4항이 그것을 규정한다. “‘모집종사자’란 모집자로부터 지시ㆍ의뢰를 받아 기부금품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를 말한다.”가 그것이다. 이렇게 모집, 모집자, 모집종사자에 대한 세밀한 법률 규정을 제시한 후 제4조 1항에서 “1천만원 이상의 금액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는 다음의 사항을 적은 모집ㆍ사용계획서를 작성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특별시장ㆍ광역시장ㆍ도지사ㆍ특별자치도지사에게 등록하여야 한다.”하여 등록할 의무가 있는 모집금액을 따로 규정한다. 1천만원 미만이면 등록하고 모집할 필요가 없지만 1천만원 이상이면 등록 후 모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12조, 13조, 14조는 모집된 기부금품의 사용에 관한 규정으로서 모집목적에 맞는 사용 및 공개 의무 그리고 모집비용에 충당할 수 있는 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16조는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대한 규정을 위반한 때에 주어지는 벌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제4조 제1항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아니하였거나, 속임수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을 하고 기부금품을 모집한 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처럼 현행의 기부금품법은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창출하는 순수증여의 문화를 장려하고 국가기관에 등록하여 모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아울러 등록된 모집행위에 대해 일정한 혜택을 주고 모집된 기부금품의 공정한 사용을 감독하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그러면 우리가 증여 공통장의 출현이라고 부른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은 기부금품법과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SBS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방송사들은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에 입금된 후원금을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으로 보면서 그 후원금 모집이 기부금품법 4조(1천만 원 이상 모집하고자 하는 자의 등록 의무)를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후원금의 증여와 수증이라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관계행위를 범죄화하는 보도다. SNS 계정주들의 일부도 이에 동조하면서 신한은행 후원금을 범죄화하는 피드/댓글 행동을 지속했다. 국가에 의한 범죄화 이전에 언론과 SNS에 의해 선제적으로 범죄화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증여 공통장을 범죄화하여 국가에 종속시킴으로써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영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시민사회 내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시민사회의 국가화의 징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 후원이 범죄라면 시민사회에서 자율적 공통장을 구성하고 그것을 공통체나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것은 크나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상당히 많은 활동들이 자발적 후원과 기부에 의해 유지되고 재생산된다는 점, 집회와 시위처럼 헌법에 보장된 공통의 정치실천들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자발적 후원, 자발적 증여를 범죄화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국가의 건강한 존립조차 위협하는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의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도 “모집”을 통하지 않은 자발적 기부금품은 법률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즉 “서신, 광고,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품의 출연(出捐)을 타인에게 의뢰ㆍ권유 또는 요구하는 행위”를 통해 모집된 기부금품만을 법률의 적용대상으로 삼으며 등록의 의무도 그러한 모집행위를 수반하는 기부에 대해서만 강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에 대한 후원에 모집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앞서 서술한 것처럼 네티즌들이 윤지오의 증언에 공감하고 신변위협을 염려하여 자발적으로 후원통장 개설을 요청했고 이 요청을 망설임 끝에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 신한은행 통장의 후원금이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이자 기부금품법 연구자인 이상신 교수에 따르면 모집행위에 의하지 않은 자발적 기부는 기부금품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상호 기자가 윤지오의 개인통장을 온라인에 공개한 것을 모집행위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부금품법 2조 2항의 모집행위는 “서신, 광고 등” 각각의 “개인에게 도달 가능한 수단을 활용하는 능동적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온라인을 통한 기부참여는 모집행위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이상신, 기부활성화를 위한 법제개선안,https://research.beautifulfund.org/wp-content/uploads/1/cfile5.uf.183639344FC5E71C1F7C08.pdf) 이런 한에서 언론방송과 SNS 계정들이 신한은행을 통해 증언자 윤지오를 후원한 다중의 자율적 증여행동을 국가의 기부금품 법률에 의해 규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장려하려는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법률의 오용(誤用)을 선동하여 탈법의 위험을 초래한다.

이제는 주지의 사실이지만, 방송이나 기사 혹은 피드를 통해 법의 오용을 선동하는 것을 넘어서 후원금 수증 그 자체를 사기로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훈 변호사나 최나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후원금 증여자들을 “피기망자”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후원금 증여자들은 “교묘하고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기망한 윤지오에게 속아 “자신의 행위가 낳을 결과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착오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박훈은 윤지오의 신한통장에 후원금을 증여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 후원금 증여자들을 ‘피기망자’로 규정하고 나선 것은 놀랍다. 이 때에는 후원금 증여자들 중의 누구도 자신이 속았다고 주장하지 않을 때였다. 누가 그에게 후원금 증여자들을 피기망자, 어리석은 사람, 착오에 빠진 사람으로 비난하고 모욕할 권리를 준 것일까? 누가 혹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대리주의적 행동에 나서도록 재촉한 것일까? 

누가 봐도 어색하고 불합리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박훈에게는 후원금 증여자들이 스스로를 피기망자로 자처하고 나서는 것이 필요했다. 박훈에게 자신의 명예훼손 소송 변호를 맡긴 김수민이 그 일을 맡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후원금 증여자들로 하여금 후원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도록 촉구하고 최나리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해주므로 변호사비 걱정 말고 반환청구 소송에 함께 해 달라고 후원금 증여자들에게 간절하게 요청했다. 438명의 소송동참자들이 모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가! 최나리 변호사가 반환소송청구자들을 대리하여 후원금반환소송을 제기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반환소송청구자로 변한 후원금 증여자들이 최나리의 소송에 동의서명했다고 하는 것이 더 사실적일 것이다. 438명의 후원금 반환소송 참여자들이 나서 자신들이 피기망자, 착오에 빠진 사람, 어리석은 사람임을 자인한 후에야 박훈의 일방적이고 대리주의적인 고발도 그 수만큼의 사회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남는다. 윤지오에게 후원금을 낸 사람들은 신한은행만 5,745명이다. 국민은행 지상의 빛 계좌의 후원자를 합친다면 훨씬 더 많은 숫자일 것이다. 그 중 438여명이 스스로를 피기망자로 인정했다고 해도 압도적인 숫자의 사람들, 적어도 5천 3백명이 넘는 후원 증여자들이 스스로를 피기망자, 착오에 빠진 사람, 속임을 당한 사람, 사기 피해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후원금반환소송에 참여한 438명의 사람들에 비할 때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다.  한국의 언론사회는 이 압도적 다수의 생각과 의견을 무시하면서 극소수의 의견에 따라 후원 증여자들 전체를 피기망자, 사기 피해자로 단정하는 폭력적 어조의 방송들, 기사들, 피드들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보도폭력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는 증여관계가 불법화되고 증여 공통장이 범죄공간으로 인식되어 증여자가 어리석은 자로 비난받고, 수증자가 범죄자로 지탄되는 것이다. 2019년 10월 30일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국가의 기능장애의 순간에 진실을 지키기 위해 출현한 다중의 자율적 증여 공통장을 범죄화하려는 시도의 첨점이다. 그것은 증여 공통장이 지키고자 한 진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언론을 비롯한 준국가기관과 그에 영향 받은 시민사회 일각이 시작한 범죄화 움직임을 경찰, 검찰, 법원 등의 국가기관이 사법적으로 배서(背書)으로써 힘을 실어주고 있는 영화적 장면의 하나이다.

최나리는 소장에서 “피고[윤지오]는 후원을 받음으로써 원고들을 비롯한 여타의 후원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분노, 수치심 등 정신적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라고 태연하게 쓴다. 그런데 실제로 후원금 반환청구 소송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후원금 증여자들을 터무니없이 피기망자, 사기 피해자, 심각한 착오에 빠진 사람으로 규정하여 증여자로서의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분노, 수치심 등의 정신적 고통”을 불러일으키며 증여문화를 조성하기보다 상처 입혀 퇴행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최나리 자신임을 누가 모를 수 있겠는가? ‘정의’의 이름을 내걸고 수행되는 이런 반증여문화적이고 반공동체적인 고소고발 행렬의 소음 때문에, 후원금 수증자인 윤지오가 수증자이기 전에 증언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권력체제를 고발하는 진실 증여자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져 간다. 진실이 혼탁해지면서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모호해지고 심지어 거꾸로 뒤집어져 가는 이 정치적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지금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을 뒤에서 부채질하면서 투항하거나 죽거나를 선택하도록 밀어붙일 생각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지난날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부장주의적 가해권력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진실을 가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음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역전의 과정을 통해 국가권력을 자신의 수중에 사유화할 수 있는 곳으로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정된 총선과 대선이 이들의 이 음울한 목표를 현실화시켜 주권자를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의 희생물로 만들 대의주의의 정치 의식(儀式)으로 되고 말 것인가? 

조국사퇴 전 24시간에 무슨 일이?

2019년 10월 13일 오후 2시 조국 장관의 워딩:

검찰개혁의 입법화, 제도화가 궤도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시작이다. 검찰개혁의 방향과 시간이 정해졌지만 가야할 길이 멀다.… 흐지부지하려고 하거나 대충 끝내려고 하는 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확실한 결실을 맺도록 당정청의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

2019년 10월 14일 오후 2시 조국 장관의 워딩:

더는 제 가족 일로 대통령님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자리에서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의 쓰임은 다하였습니다.

가족 때문으로 인한 자발적 사퇴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워딩 차이다.

이 두 워딩 사이에 권력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미래,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향배를 가늠하는 데 필수적이다.

“대충 끝내려고 하는” 세력이 누구였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들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단위에서 집회를 갑작스럽게 중단한 이유도 이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할 기사: 조국 장관 사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주도http://www.newbc.kr/news/articleView.html?idxno=7111

지난 며칠 동안 민주당 주변의 권력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트위터: https://twitter.com/lalapesto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3)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9

2018년에 윤지오는 증언을 달라는 검찰(검사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장자연에 대한 조0천의 강제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해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증언했다. 그 증언들은 경찰 수사관에게 했던 2009년의 증언과 유사하게 검사나 조사위원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이 증언들은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얼굴 없이 이루어졌다. 

2019년에 윤지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증언의 대상을 소수의 수사 및 조사 전문가에서 국민 대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직업으로서 수사나 조사를 하는 전문가를 매개로 했던 간접증언에서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 국민 대중을 향한 직접증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2018년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실명을 가리고 얼굴을 숨기는 식의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실명과 실면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명 증언은 2018년 피디수첩 인터뷰 및 JTBC와의 전화인터뷰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국민의 명령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진 이 절호의 기회에 실명, 실면의 증언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하는 증언보다 증언의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장자연 사후 10주년에 맞추어진 <13번째 증언>의 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간접증언에서 직접증언으로, 폐쇄증언에서 개방증언으로, 수동증언에서 능동증언으로, 타율증언에서 자발증언로, 수세증언에서 공세증언로의 이러한 증언 태도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일까? 

우선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10주년이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13번째 증언>, 224쪽)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학의, 버닝썬 등의 동종사건과 연동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아진 상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와 연관된 것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사권도 없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겨우 6명의 조사위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재조사가 과연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즉 국가에 대한 의문의 문제이다. 실제로 2009년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직후 초동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무려 42명의 수사팀이 꾸려졌고 대대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재수사는 가해혐의를 받은 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는 절차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해 보면, 비록 정부가 바뀌었고 촛불국민의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조건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한계인식 속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은,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주고 국민이 이 증언을 기초로 재조사라는 사법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 윤지오가 염두에 둔 것은 애초에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도록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그것은, 국민이 대의자들에 대한 소환, 해임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국민이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갖고 그것에 관여하는 주체로 되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여 위로부터 답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주 약한 표현형태이다. 윤지오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법 위의 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자생적 법철학 속에서 그는 국민의 제헌적 역량(법 위의 법)이 실정법(법)을 통제하고 재구성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러한 생각 위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증언 인터뷰를 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광장에서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소식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 3월 4일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는 뉴스공장을 기점으로 며칠간에 걸쳐 조선일보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방송사와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민들은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와 접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세 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1)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증언조서라는 것, (2)증언조서가 유서로 둔갑되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만큼 문건이 유서가 아닌 것이 명확한 한에서 장자연의 사망원인에 대한 원점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3)그 증언조서와는 별도로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성상납을 강요”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4)장자연이 당시 술자리에서 보였던 일련의 모습을 보면 이 “성상납 강요”가 마약을 강제 주입 당한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5)“성상납을 강요”한 이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에서 방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기억난다는 것 등이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주어진 이러한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류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자연은 우울증을 앓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고 그 유서에서 폭행과 협박을 한 당사자인 김종승은 처벌을 받았으며 장자연이 술접대나 잠자리를 강요받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나 ‘방사장의 아들’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며 문건의 해당 구절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 수사발표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주어진 주류 상식과 윤지오의 새로운 대국민 증언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증언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류 상식 세계에서 장자연 사건은 (다행히 경찰이 의도하고 있었던 장자연의 사기 미수사건으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기껏해야 악덕 기업주의 일탈적 악행 사건으로 인지되었다. 이럴 때 그 최종 책임은, 김대오가 주장하는 바처럼, 더 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윤지오의 증언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의 집단적 성폭행 사건으로, 즉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문제로 인지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특수강간 사건이나 살인 사건의 관점에서도 수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이럴 때 최종 책임은 권력자들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주어지게 된다. 이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는 기존의 사법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공소시효가 아직 충분히 남은 사건으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증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그 관심과 지지는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준 윤지오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고 그 증언에 따라 장자연 사건의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3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우선 신변보호요청 청원자는 이렇게 쓴다.

“고 장자연씨 관련, 어렵게 증언한 윤00씨의 신변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목격자진술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의 불이익, 또는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신변보호를 청원합니다. 보복, 불이익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 그 밑바탕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20대초반에 그 큰 일을 겪고 10년간 숨어 살아야했던 제2의 피해자 윤00씨의 신변보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원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이 정의로운 사회의 밑바탕인 만큼 증언자에게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요청은 윤지오의 증언을 사회에 대한 진실증여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증여를 받은 국민이 수증자로서 진실증여자에 대한 신변보호라는 최소한의 답례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후세대에게 떳떳한 나라의 성원일 수 없다는 것을 신변보호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86,50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청원, 즉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 요청은 다음과 같은 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고 장자연씨의 수사[조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수사기간을 연장해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의 초기 재수사에서 참고인 및 피의자 진술을 통해 명백히 제기되었으나 경검의 수사를 거친 후 사라진 주제다. 윤지오의 증언은 이 주제를 1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사회적 의제로 다시 가져왔다. 이 청원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을 재수사 연장의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청원은 신변보호 요청보다 많은 738,56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주어진 기간내 20만명 이상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낼 때 정부는 답변의 의무를 진다. 실명과 실면으로 국민에게 직접 증언키로 한 증언방식의 전환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매개로 윤지오가 다른 국가기관을 만나도록 만든다. 지금까지는 사법경찰과 검찰 및 법원이라는 사법 계통의 국가기관만을 만났으나 이제 청와대와 행정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후에는 입법부인 국회(의원)도 개입하게 됨으로써다.

청와대는 이 두 청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지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그 지시의 전문은 좀 길지만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 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 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 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랍니다. 


강남 클럽의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인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 기관이 유착하여 묵인・방조・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입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 시기와 유착 관계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므로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사한 불법 영업과 범죄 행위, 그리고 권력 기관의 유착 행위가 다른 유사한 유흥업소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사건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인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 등 행정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특권층’) 범죄로 규정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통해 진실규명을 가로막아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한 정황들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규정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는 특권적 주체였던 경찰과 검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점에서 관점의 커다란 도약과 진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윤지오는 3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통령의 이 응답을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일”로 평가하고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되었”다고 밝힌 후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지시에는 숨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지시가 검찰과 경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설정한 후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조사와 수사의 대상인 검찰과 경찰을 다시 조사와 수사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깊은 반성”을 통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제3의 조사/수사 주체를 구축해야 할 시점, 즉 수사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는 방향의 혁명적 발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다시 경찰과 검찰 자신을 자기수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검찰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권세력으로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않을까? 수사와 기소에서의 국민주권을 골간으로 하는 경찰 및 검찰 기관의 실질적 개혁이 부단히 지체되고 실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이런 양면적 태도와 무관할까? 이런 지시 이후에 실제로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가 포함되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담겨 있었던 최소한의 진실추구적 요소마저 지워버리면서, 재수사의 길을 닫아버리고 사건 재조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이러한 종결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변보호 청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의 일정한 반응이 있었다. 3월 8일 시작된 청원이 마감되기 전인 3월 14일 윤지오 변호사로부터 신변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청은 동작경찰서로 하여금 “△스마트워치 제공 △112 긴급 신변보호 대상자 등록 △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하도록 결정하고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 증언 중에서 재조사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윤지오를 재차 증인으로 불렀고 이 조사에서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나 출판물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가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들의 실명)을 증언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3월 30일 윤지오가 “스마트 워치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경찰관이 9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은”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경찰은 3월 31일 스마트워치 전체에 대한 긴급점검 실시를 약속하고 새로운 숙소로 윤지오를 이동시키고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가 동행 밀착 보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뒤 경찰은 3월 30일 당일 윤지오가 불안감을 느껴 스마트워치를 누르게 된 것이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 의한 것이며 스마트워치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지 않게 된 책임도 윤지오의 기기 조작미숙에 있었다면 책임을 윤지오게게 돌렸던 것도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 등에 떠밀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은 일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보호하고 은폐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예민한 책임감을 보이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국회는 어떠했던가? 국회는 윤지오 동행의원모임 구성과 간담회, 그리고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라는 형태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애초에 국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출판기념 북콘서트가 하루 전날 취소된 것도 신변안전 문제였다. 윤지오는 출판기념 북콘서트 무대에서 자신과 가까이 서게 될 출연진이 누구인지,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지 확인해 주기를 요청했고 극장측이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북콘서트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안민석의 주도와 공익제보자 모임의 연대로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무렵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증언자 윤지오를 동행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4월 초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과정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개되던 반윤지오 흐름의 표면화와 겹쳐졌다. 이 흐름은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나 악성 DM의 수준에 머무렀던 지하흐름이었으나,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증언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또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예정에도 없던 추가증언을 윤지오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 그 자체가 재수사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강하게 표출되고 표면화된다. 이것이 가해권력측이 느낀 위기의식의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증언에 대한 이 반동(reaction)은 호야스포테인먼트 전 실장 권0성의 발언을 근거로 삼은 뉴시스의 윤지오 공격과 박준영의 증인검증론을 거쳐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사기론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핵심은 증언에서 증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작업의 선봉에 섰는데, 장자연 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윤지오의 인성과 도덕성이 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제도언론들의 센세이셔널한 보도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의 까판 담론이 결합되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윤지오 동행모임은 동행은커녕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윤지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이 동행모임의 침묵은 이후에, 윤지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간 전혀 접촉한 바 없다는 해명, 윤지오의 난처함보다 자신과 동료의원들이 윤지오로 인해 겪는 난처함을 중시하는 엘리뜨주의적 냉정함, 다른 공익제보자로부터 윤지오를 분리시키는 교묘한 언어놀음 등으로 범벅이 된 항복문서를 가해권력 앞에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긴밀한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 받을 때에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선적 과정의 끝에 윤지오는 10년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 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 작가, 기자,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했다. 일찌기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자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끝)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1)

증언자 장자연과 국가

윤지오 이전에 장자연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자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장자연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다. 장자연은 자신이 쓴 증언조서 문건에서 많은 수의 권력자들을 협박, 강요, 폭행,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이 증언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장자연이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꾼으로 몰려 고소고발되고 압수수색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구금되었을지 모른다. 4장만 남은 증언조서 문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저 ‘죄없는 사람들’에 대해 허위사실을 가지고 명예훼손한 증거물로 제출되었을 것이며 권력자들이 ‘김밥값'(후원금) 으로 입금해준 수표는 사기로 편취한 재물로 압류되었을 것이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음란죄로 몰아붙일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어딘가로부터 쏟아져 나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론들과 기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떻게 움직였을지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장자연은 경찰, 검찰로부터만이 아니라 기자로부터 쫓기며 취조형 취재를 당해야 했을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포위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앞다퉈 톱기사로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들에 동화된 사람들이 그를 마녀로 지목하고 화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군중들의 손가락질로 잠을 설쳐야 했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에는 근거가 있다. 그 그림의 윤곽이 앞에서 분석한 대한민국 경찰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이미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건조사에서 경찰의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증언조서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만드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망하여 돈을 벌고자했으나 자살로 인해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경찰의 시각에서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가해권력자들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가난한 연예노동자 장자연의 ‘사기 미수 사건’이었다. 

검찰, 법원은 이런 시각 하에서 합동수사를 진행했던 경찰과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경찰로 하여금 장자연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통화내역 조사 지휘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피해자 장자연과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통화내역은 1년치를 조사했으면서 조선일보 방상훈에 대해서는 한 달치만 조사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이모 수사관은 “통상 1년의 통화내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이지만 검사, 판사가 문건에 2008.9이라고 나와 있으니 2008.9 한 달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판사가 “청구는 1년치를 하였나요?”라고 다시 확인하자 이모 수사관은 “예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한다. 진짜 문제는 경찰이 아니라 검사, 판사라는 답변이다.

그런데 1달치 통화내역으로 조사범위를 넓기기 전에 원래는 그보다 짧은 1주일치 통화내역만 조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관해 판사와 이모 수사관이 나눈 문답은 이러하다.  

문: 경찰서에서 성남지청으로 청구한 청구서를 토대로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것인데, 당초 수사팀에서는 원래 1년치를 신청했으나 일주일치만 신청하라는 검찰의 수사지휘에 따라 신청서에 일주일로 줄여서 기재하였다는 것인가요?

답: .

문: 검찰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는 신청서를 보낸 적은 있나요.

답: 증인의 기억에는 문서로 오갔는지 구두로 오갔는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원래 분당경찰서가 성남지청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고 요청하였는데 검사의 수사지휘로 일주일치의 통신자료만 청구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이 맞다면, 경찰이 진상규명과는 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시간에 이러한 방향을 규정하고 수사가 진실과 괴리되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와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였던 셈이다. 즉 피해자의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할 목적으로 가해(지목)자에 대한 수사범위를 축소하는 일에서 경찰, 검찰, 법원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전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기획사 대표였던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처벌을 내린 것 외에 실질적인 가해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로 면죄시킨 것이다. 이 결과의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검찰개혁’에 대한 강렬한 국민적 열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검의 수사와 기소 및 법원의 판결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의혹, 즉 행정 및 사법관료 체제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국민을 기만하고 진실을 억압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불신이다.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표정, 행동에 대하여(3)

Scene #3 장자연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고인을 사기꾼으로 만들기

조선일보가 이종걸 의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하여 2011년 10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증인신문이 열렸다.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장자연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이모 수사관이었다. 이날 이모 수사관은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엉겁결에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대해 경찰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깊은 무의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만다.

“문: 경찰이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 확인한 사실은 어떤 것인가요?

답: 수사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고, 아들이 룸싸롱에서 장자연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이하 모든 문답 인용은 한국일보의 <장자연 사건 진술전문공개: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에서 가져온다.) 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dfc34fa8eb2d4eeda905360705cd90bf/index.html#&gid=1&pid=1

놀랍게도 대한민국 경찰의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내용 전부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이 답을 듣고 변호인은 문건의 한 항 한 항에 대해 경찰이 사실로서 확인했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문: 장자연의 문건 중 “제가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촬영할 때는 진행비를 저에게 부담시켰고 이것도 모자라 매니저 월급 및 스타일리스트 비용 실비 모든 걸 제가 부담하게 강요하여 제 자비로 충당하였습니다”라고 기재된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수사발표 당시에는 발표를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문건의 첫 항에 대한 사실 여부부터 이 수사관의 기억에는 없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그토록 강하게 단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변호인은 이어 문건의 두 번째 항이 사실로서 확인되었는지 묻는다.

“문: 또 문건 중 “어떤 감독님이 태국에 골프 치러 오는데 드라마 스케줄 빼고 태국으로 와서 술 및 골프 접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요구를 제가 응하지 않자 차량도 네 돈으로 렌트해서 타고 다니시라고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예”

다시 놀랍게도 이모 수사관의 답은 ‘예’이다. 수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항의 사실 여부는 기억에 나지 않고 두 번째 항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 확실한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정도로는 이모 수사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던 때문인지 변호인은 더 묻는다. 

“문: 문건 중 “저는 김00 사장님 회사에 계약되어 일하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출연하고도 1,500만원 중 300만원만 받았고 끊임없는 사장님의 지인과의 술접대 강요를 받았으며 그렇게 지내면서 저는 그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이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는가요.

답: 그런 강요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체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일까? 변호인은 문건 중의 다른 항목을 질문한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이 ..저를 방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저를 수없이 때리면서 … 온갖 욕설로 구타를 당했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이모 수사관은 답한다. ‘예, 기소하였습니다.’ 변호인은 또 묻는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하였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부분도 김00이 장자연을 수십 회에 걸쳐 술자리에 불러낸 사실을 확인하였나요[?]’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의 이모 수사관이 답한다. “예, 경찰에서는 사실로 확인하였습니다.” 

변호인이 이런 방식으로 문건의 세부항목에 대한 사실확인 여부를 하나하나 점검해 들어가 보니, 문건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모 수사관이 명백하게 위증을 한 것이 아닐까? 이모 수사관은 이 증인신문에 앞서 판사 앞에서 위증의 벌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선서와 서약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변호인의 질문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나는 이모 수사관의 ‘장자연의 문건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 거짓 주장, 거짓 의식이 그의 개인적 생각이었을까? 

그는 이 신문과정에서 문건에 대한 이 문답의 시간에 이르기 전에 당시 수사팀이 어떻게 꾸려졌는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장자연 사망 직후 분당경찰서가 이 변사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살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유족을 중심으로 수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3월 13일 KBS에서 장자연 문건이 보도되었고 이후 경기지방경찰청에 광역수사대를 편성하여 분당경찰서와 합동 수사를  시작했다. 42명의 거대 수사팀이 꾸려졌고 분당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매일 수사회의를 했으며 50명 이상의 기자에게 매일 브리핑을 했다. 증인신문에 소환된 이모 수사관은 2009년 3월초부터 2009년 7월 9일까지 장자연 수사팀에서 근무했으며 2009년 4월 24일 중간수사발표 직후 가진 기자와의 문답에서 답을 했던 인물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 개인의 특별한 생각이라기보다 당시 수사팀의 일반적 생각을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증인신문 서두에서 미리 정해진 특별한 수사방향은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므로 “경찰 수사의 명예를 걸고 떳떳하게 수사하자” “다른 건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수사하자”고 수사팀원들이 서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문건내용의 사실여부 확인 과정에서 그는 판사, 검사, 변호인, 방청객 앞에서 여지 없이 거짓말로 드러날 불공평하고 불명예스런 증언을 무릅쓰게 되었을까? 그가 문건에 대해 이렇게 거짓증언을 한 동기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자 한 것, 즉 숨기고자 한 사실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변호인과 이모 수사관이 나눈 다음 문답은 시사적이다.

“문: 문건 내용중 2008.10.28 방상훈의 아들 방정오가 강남 라000 유흥주점에서 장자연 김00 등과 술자리를 한 사실은 확인되었나요.

답: 예.

문: 장자연의 문건 중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부분만 확인할 수 없었는가요.

답: 예, 그 부분은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라는 답이 나온다. 거듭말하거니와 이 말도 문건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 합동수사팀이 “확인이 안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수동태로 쓰여진 이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가 ‘정말 확인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확인을 못한 것’인지 ‘덮어두고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갖가지 이유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실제로 45쪽 이후 변호인들과 증인 이모 수사관 사이의 문답은 이 문제에 집중된다. 

변호사는 이모 증인의 답을 들은 후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에서 그 시기와 사람이 특정되어 가장 구체적인 진술 부분이라고 보이는 조선일보 방사장의 부분만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데, 어떠한가요”? 라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이모 수사관의 답은 어딘가 논점을 벗어난 횡설수설로 보이는데, 살펴보면 엄밀해야 할 수사 결론을 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생각과 일반적 추론으로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자.  

“‘아들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라는 부분도 과장된 문구로 쓴 소송용 문구입니다. 소속사에서 골프 접대를 오라고 하였으나 오지 않아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차도 빼앗기고 다 빼앗겨서 옮겨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장자연이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소속사를 옮기고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00와 연결이 되어서 소속사를 옮길 목적으로 소송용으로 쓴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술자리에 다녀간 것도 증인은 여러 군데를 다녀갔다고 봅니다. 과연 조선일보 사장이 룸싸롱 성접대를 했느냐, 그 아들인 스포츠 조선 사장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요구했느냐는 수사가 제일 어려운 수사였고, 룸싸롱에서 만난 것은 맞지만 과정이 장자연만 불러서 장자연만 접대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방정오라는 아들과 한00 등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한00과 김00이 연락이 되어서 갑자기 장자연을 데리가 가서 인사만 시겨준 자리입니다. 그래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했다는 부분은 과장된 것이고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되지 않았나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입니다.”

뒤죽박죽으로 표출된 그의 생각의 골자를 정리해 보자. (1)장자연은 당시 김종승 사장의 명령을 거부하여 모든 것을 빼앗겨서 돈이 없었다 (2)소속사를 옮겨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장호와 함께 소송용 문서를 작성했다. (3)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 (4)그러므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하게 했다’는 문구는 과장이다 (5)그 자리는 김종성이 방정오에게 장자연을 인사만 시킨 자리였다.

이런 추론과 가해(혐의)자에 대한 변론(!)을 통해서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 문건을 협박용 허위 문건으로 만든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는 이 이모 수사관의 추론에 따르면, 장자연은 유장호의 도움으로 과장과 허위의 소송용 문서를 작성해 김종승을 협박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새 소속사로 옮겨 계약금을 받아내려한 인물, 즉 ‘사기꾼’에 다름 아니게 된다. 망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이 이상의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생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위의 이모 수사관 주장 중에서 ‘장자연이 남긴 글은 유서가 아니라 문건이다’라는 주장은 우리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 국민들 상당 부분은 그 글이 유서라고 알고 지난 10년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모 수사관의 이 진술은 경찰이 처음부터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문서, 즉 증언조서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유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수사기관만 알고 있고 국민은 몰라야 하는 내부비밀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비밀로 했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로 단정하기에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사인에 대한 분석부터 재수사가 시작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건 공개로 재수사가 착수된 이상 왜, 언제, 어떻게, 어디서 등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수사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모 수사관이 진술에서 몇 번씩이나 “자살”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원점 재수사는 경찰에 의해 전혀 의도되고 있지 않았다. 첫 수사에서 발표된 바의 그 “자살”이라는 설명은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경찰 재수사의 확고한 전제이고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점은, 유장호, 유가족(오빠), 윤지오가 서로 유사하게 진술한 바 있고 언론과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수사 당시 수사관들이 이 리스트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입증된다. 이모 수사관이 말하는 초기 장자연 재수사에서 경찰의 관심은 KBS에서 넘겨 받은 그 4장짜리 ‘문건’이 “(1)고인이 쓴 것인가? (2)그것이 사실인가? (3)그것의 성격이 무엇인가(즉 유서인가 아닌가)? (4) 문서와 그것의 유통이 자살에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네 가지에 한정되고 또 집중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모 수사관은 “증인이 본 2개의 문건 외에 장자연이 작성했다고 제출된 다른 문건이 있었나요.”라는 (피고인의) 질문에 “경찰에 제출된 문건은 없었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답할 뿐이다. 그런데 당시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4장짜리 문건 외에 3장짜리 편지글 형식에 명단(리스트)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관들은 그러한 진술을 흘려듣고 그것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이 리스트에 관한 질문이 조사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까지에는, 이명박 정부를 지나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국민의 손으로 세운 촛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그리고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착수할 때까지의 10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2018년에 구성된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리스트에 누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진 국가 조사기관이었다.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 질문을 처음으로 받고서야 윤지오가 비로소 “방씨 성을 가진 세 사람”,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 등 그 리스트에서 본 권력자들의 실명을 진술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공소시효는 대부분 끝났다는 관점을 갖고 사건 재조사를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으며 강제수사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 결과 윤지오의 진술은 거명된 그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질적 수사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술 자체가 신변위협을 빙자해 돈을 벌기 위한 거짓 진술이라는 가해 권력측으로부터의 역공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지오가 장자연이 겪은 “성상납 강요”(즉 성폭행)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 그 ‘리스트’는 봉은사에서 물질적으로 소각되고 경찰에 의해 배제되어 수면에서 사라졌음에도 10년의 세월을 이기고 윤지오의 기억과 진술로 되살아 왔지만 ‘사기를 위한 허위진술’로 매도되어 다시 파묻히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라짐을 강요받아온 이 리스트의 이 운명에 두 번의 인간학적 사건이 수반되었는데 그 중의 한 번은 장자연의 죽음이고 또 한 번은 윤지오의 매장이다.

이 두 가지의 부당전제를 갖고 출발한 합동수사팀과 이모 수사관의 위 다섯 가지 주장은 “장자연에게 당시에 돈이 없었다”를 모든 추론의 기초로 삼는데 이것이 타당한 주장일까? 이모 수사관은 이날의 진술(25쪽)에서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문: 장자연의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도 조사하였는가요.

답: 예

문: 특이사항이 있던가요.

답: 100만원 이상의 수표가 들어온 것이 많이 있어서 수사를 하였습니다.

문: 그 100만원 권 수표가 대략 어느 정도나 되었나요.

답: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억 단위인가요?

답: 전부 합치면 억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그 수표가 기획사 사장 김00이니 김00의 회사로부터 받은 것인가요?

답: 아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진술은 장자연에게 소속사로부터의 수입 외에 다른 수입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중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진로소주 회장 박0덕이 김밥값으로 주었다는 1000만원일 뿐 나머지 입금자와 입금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규모가 “억이 넘는 것”이었다고 하므로 누가 봐도, 특히 가난한 연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이 문건을 쓴 동기를 돈을 벌기 위한 것에서 찾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그러한 돈이 입금된 기록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망 당시 장자연에게 돈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 돈을 다 써버렸을 수 있고 또 사용해서는 안 될 돈으로 간주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에 제출할 ‘소송용 문서’에 장자연이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허위사실을 적어 “300만원” 정도(장자연과 윤지오의 계약서는 동일했다고 하며 계약 당시 윤지오가 받은 계약금이 300만원이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다) 의 계약금을 벌려고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가 없어도 지나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을 바보로 알만큼 충분히 바보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구이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의 몇 배로 그 “허위사실”을 기록한 사람은 치명적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몇 백만원의 돈에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말인가?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상식에 비추어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유서라면 사실대로일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적이지만, 소송용 문서가 과장을 포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장자연과 조선일보의 역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억측이다. 소송이야말로 사실인가 허위인가를 다투는 긴 과정을 포함하는데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가 어떻게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하는” “힘 센” 조선일보와의  소송에서 ‘허위사실’을 가지고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모 수사관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고도 그 문건에 기록된 나머지 피해사실들 중 단 하나도 허위임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 어떻게 나머지는 모두 사실인데(“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유독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항목만 과장이고 허위일 수 있겠는가? 이모 수사관은 정황에 비추어 가장 허위이기 어려운 항목이 유독 허위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자연이 다른 목적(돈을 벌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관(팀)이 오히려 다른 목적으로 장자연과 문건에 대한 허위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목적과 핵심적 방법은 분명하다. 장자연을 사기꾼으로 만듦으로써 ‘조선일보 방사장 및 그 아들’을 도덕적 지탄과 법률적 유죄로부터 구출하는 것. 이 증인신문조서의 후반부 문답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이 사용한 수사기법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끔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온 것을 중심으로 몇 가지 기법만 간단히 요약해 보자. 무엇보다 (1) 문건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그리고  (2)누가 “조선일보 방사장”인지 누가 그 “아들”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가능한 혐의자들을 임의로 축소하여 주요 혐의자를 조사 대상에서 빼거나[방용훈의 경우] 다른 인물을 고의로 잘못 지목하기[스포츠조선 하0 사장의 경우]  (3)핵심 증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새벽까지 반복 조사함으로써 진술 일관성을 뒤흔들기(추가로 참고인 윤지오에게, 장자연과 함께 ‘성접대’ 했잖느냐며 모욕주어 기죽이기) (4) 피해자나 참고인의 통화내용은 1년치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가해(혐의)자의 통화는 이틀치, 일주일치, 한달치 식으로 소극적으로 조사하기[방상훈의 전화] (5) 가해(혐의)자의 전화기가 몇 대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가해(혐의)자 측에서 불러주는 전화번호의 통화내역만 조사하기 [방상훈 전화기의 경우] (5)피해자나 참고인은 소환해서 조사하고 가해(혐의)자는 방문하여 조사하기[여러번에 걸쳐 여러 시간동안 반복된 윤지오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30여분 정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방상훈 조사의 차이] (6)언론에서 보도 나오면 뒤쫓아 수사하는 식으로 수사하기 (7) 수사정보를 가해(혐의)자에게 알려 주어 대응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김종승 스케쥴표 방상훈에게 전달] 수사내용에 대해 가해(혐의)자 측과 협의하기[방상훈 알리바이의 경우] (8)사법처리 대상자 중에 언론사 대표는 없다는 식으로 정보를 흘려 여론의 반응을 탐지하고 여론을 조성하기 (9)참고인 조사 한 사람(한00)의 자필진술서를 추가로 받아 가해(혐의)자 측을 유리하게 만들기 (10)중간수사결과 발표내용을 발표 전에 가해(혐의)자 측에 유출하기 등등.

대한민국 경찰이 이러한 기법으로 가해(혐의)자 측에 유리한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른바 “유력” 언론기관인 조선일보는 경영기획실(강효상)을 비상대책팀으로 운영하고 사회부장(이한동)을 보내 경기지방경찰청장 등에게 수사외압을 행사하고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한00)을 경찰에 보내 허위진술을 하게 하고 사건 직후인 2009년 3월 17일에는 도피중이던 김종승을 단독으로 취재하여 “소송 막으려고 전 매니저가 꾸민 자작극”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하여 은연중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탈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가 결국 가해(혐의)자인 조선일보 측의 이러한 노력 및 요구에 부응하고 협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가해(혐의)자 위주의 수사였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끝)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몸짓, 행동에 대하여(1)

장자연이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의문에 가득찬 죽음을 당했는데도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은 그 죽음의 비밀을 밝히기는커녕 증거인멸에 조력했으며 행정, 입법, 사법을 보충하는 권력의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기관은 이 죽음과 관련해 유일하게 유의미한 증언을 해 오던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몰아 그 증언의 능력을 박탈해 버림으로써 비밀의 규명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최후의 증거인멸 시도를 벌이고 있는 이 기이한 사건에서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이것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나는 국가가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의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해자와 피해자, 수탈자와 피수탈자,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나눠진 적대적 사회를 은폐하는 ‘가면 공동체’의 역할을 하는 데 머물고 있는지 살펴 보고 싶다. 

Scene #1 계약과 해약

장자연과 윤지오가 소속사 더콘텐츠에서의 활동을 고통으로 느끼기 시작한 이후에도 선뜻 소속사를 떠나지 못한 것이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억의 위약금에다가 추가적인 제재 및 손해보상의 조항 그리고 사장중심의 계약해석권 등을 담고 있는 이 계약서는 이들을 연예활동을 빙자한 이른바 “술접대” 노동에 단단히 결박시켜 놓는 노예계약과 다를 바 없었다. 계약서가 갖는 그 단단한 결박의 효과가 계약서 자체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이 갖는 힘은 국가가 그 계약을 자신의 합법적 폭력을 통해 보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계약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약관계 속에서 공포의 권력이었던 사장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장의 고소고발에 반응하여 배달될 경찰의 출두요구서와 수사, 검찰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과 벌금, 그리고 감금장치인 감옥과 그에 부속된 간수, 징벌방 등의 폭력장치들이다. 시장에서의 사적 계약은 이 일련의 국가 폭력 기구들이 그 이행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그 계약관계 속에 단단히 결박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과 윤지오가 계약관계 속에서 부당함과 고통을 느끼면서도 소속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궁극적 힘은 김종승의 불법적인 주먹폭력보다는 그 배후에서 기능하고 있는 국가의 합법적인 제도폭력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적어도 장자연・윤지오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에서 최소한 그 계약이 사장에게 유리한 바로 그 만큼은 국가가 사장을 편들고 사장의 권력을 보증하는 배후의 불평등 폭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계약으로부터의 다른 출구, 즉 쌍방합의를 통한 ‘중도해약’의 출구가 규정되어 있었다.(‘6조 가’ 항) 이것은 1억의 위약금을 물지 않고도 계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위약’보다는 쉬운 경로이지만 사장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는 경로였다. 윤지오의 경우는 이 쌍방합의를 통한 탈출에 성공한 운좋은 경우에 속한다. 계약금 300만원에 지출경비 보상금 300만원을 합친 총 600만원의 합의금, 그리고 다른 소속사에서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및 반성문. 장자연도 이 쌍방합의를 통한 탈출을 시도하지만 2009년 3월 7일 사망하기 전까지 그것에 성공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마약과 강제추행 혐의로 일본에 도피 중이었던 김종승 측이 합의금을 계속 상향 제안한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장자연이 윤지오보다 훨씬 더 깊이 더콘텐츠와 연관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밖의 이유들도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이유들을 그 이후 사태들을 통해 오직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장자연은 합의를 통한 윤지오식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자 (호야의 대표 유장호와 함께) 김종승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이유로 김종승과의 계약관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 19조 1항은 “제17조에 따라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 근로자는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강조는 인용자)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에서 적시한 사항들은 하나 같이 김종승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김종승이 폭행, 협박, 강요를 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나 김종승으로 인해 “성상납을 강요당한”(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리스트는 폭행과 협박에 의해 계약과는 다른 노동을 강요당한 사실에 대한 육필 기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건과 리스트는 김종승과의 계약관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법정에 제출될 증언조서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증언조서는 작성되자마자 장자연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호야 소속 연예인인 이0숙은 이 증언조서를 자신과 김종승과의 계약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푸는 데 이용했고 이 과정에서 이 증언조서는 장자연의 기대범위를 훨씬 넘어서까지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던가는 장자연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부터는 이틀 뒤이고 편지글형식의 리스트를 유장호에게 전달한 바로 다음날인 3월 2일 경 ‘동료로 추측되는 인물’과의 육성대화 녹음 파일(이 파일은 SBS를 통해 2019년 4월 27일 처음 공개되었다)을 통해 드러난다. 이 대화에서 장자연은, 잘못한 것도 없고 회사에서 하라는 거 그대로 충실히 하고 있는 자신에게 김종승이 “엄청난 말들과 엄청난 입을 가지고” “내가 무슨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면서 장난을 쳤”고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그쪽”이 누구일까?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자연은 알고 있었던 “그쪽”. 장자연은 우리에게 “그 사람은 발이 넓고 힘 센 사람이야. 김 사장도 소리 못 지르고 ‘아, 예’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라는 암시적 증언만을 남겨 두었다. “그쪽”은 “힘 센 사람” 즉 권력자라는 뜻이다. 장자연은 자신과 “그쪽”의 관계를 이렇게 권력관계 맥락에서 파악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자신과 대비시킨다. 나는 “누구도 백도 없고 지금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힘센 사람” 대(對)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과의 이 절대적 권력 비대칭을 “바위” 대(對) “계란”의 적대적 비대칭 관계(“나는 아무 힘도 없고 바위에 계란치기 밖에 되지 않아.”)로 파악하면서 장자연은 이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풀 힘이 자신에게는 없고 그것의 압박을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으니 “죽이려면 죽이라고 해. 나는 미련도 없어”라는 체념의 자세로 받아들인다. 장자연은 신고라거나 고발과 같은 흔하디 흔한 법률적 호소의 방법으로 국가에 의지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장자연은 마치 “그쪽”이 국가 자체이거나 국가와 한 패임을 보았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생명을 조용히 국가 ‘공동체’의 바깥에 내려 놓는다. “저는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며 해약을 시도했던 몸부림이 이렇게 불과 이틀만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되돌아온 지 닷새 뒤 장자연은 실제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 주검 곁에 유서는 없었다. 

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1)

2019년 8월 2일 정의연대는 박훈 변호사를 윤지오에 대한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였다. 이 고발장은 ‘윤지오가 후원금을 받은 것은 기망행위 혹은 사기다’라는 법률적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내세우는 박훈의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 두 주장 중의 하나는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윤지오에 대한 신변위협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박훈의 고발에 기초하여 손해배상과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고소장을 작성한 여성 변호사인 최나리는, 리스트도 위협도 없었다는 박훈의 이 강한 버전을,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은 믿기 어렵고 위협은 과장되었다는 식의 약한 버전으로 바꾼다.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 이후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상황에서 심의발표와 너무 배치되는 박훈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중에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 고발문건을 기초로 박훈의 두 가지 주장을 비판함으로써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고 신변위협도 있었다는 점을 좀더 분명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재확인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박훈의 고발이 허위주장에 기초해서 조작된 가짜고발임을 밝히고자 한다.

위에서 말한 ‘윤지오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고발’의 원인이 된 것은 2019년 4월 26일 변호사 박훈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한 윤지오에 대한 고발장이다. 이 고발장에서 박훈은 다음과 같은 고발사유를 제시했다. 

“피고발인은 고 장자연 씨가 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면서 존재하지도 않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고 하면서 ”법 위의 사람들 30명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고 하고, 사실은 전혀 신변위협을 당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변위협을 당하였다는 허위주장을 하여 사람들을 기망하여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하였는 바 이는 정확히 형법상 ”사기“ 범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피고발인을 엄정하게 조사하시어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강조는 인용자)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고 윤지오는 위협당한 바 없으며 따라서 후원금 모금은 허위주장에 기초한 사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김대오의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고 김수민의 왜곡된 4.16 문건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이후 최나리 고소장에서 고소의 근거로 인용된다. 박훈의 이러한 그릇된 주장이 언론과 유튜브, 악플을 통해 무한 재생산되고 여론화됨으로써 당시 한창 장자연 사건을 조사중이던 과거사재조사위원회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이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는 동력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심지어 고발장에서 박훈 자신조차 윤지오의 증언이 유의미하다고 인정한 조0천의 강제추행 1심 판결에서조차, 판사 오덕식이 윤지오의 사기죄 피소 등을 이유로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무죄를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건은, 윤지오에 대한 박훈의 사기죄 고소가 명백히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무죄방면하는 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사회정의 실현에 큰 장애물로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훈의 고발사유에 대한 상세한 비판을 통해 진실을 회복하는 일이 절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 장자연 리스트는 있었다.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박훈의 주장에 대해서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기 때문에 윤지오가 그것을 보았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훈의 생각과는 달리 자료는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고 또 읽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없는’ 리스트를 보고 또 읽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진술자료 등을 통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던 그 사실과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윤지오는 노컷뉴스와 조선일보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유서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 있음을 보도한 직후인 2009년 3월 10일 호야엔터테인먼트의 유장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때 유장호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의 명함을 고소인이 갖고 있는지 차례로 대조하며 확인했다. 이것이 윤지오가 이후 ‘리스트’라고 불리게 될 명단을 최초로 경험한 시간이다. 이 때 윤지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녹음기로 통화내용을 녹음했고 그 녹음내용을 수사기관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당시의 통화에서 유장호는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유장호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 ‘명단’(즉 리스트)이 있음을 윤지오에게 처음으로 알려 준 것이며 그 명단=리스트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것임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009년 3월 12일 윤지오는 봉은사에서 유장호를 만났다. 그곳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에서 윤지오는 실내등을 켜고 유장호가 건네준 장자연의 문건을 읽었다. 거기에는 피해사실을 적은 장들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말 아래에 명단이 적혀 있는 장들도 있었다. 윤지오는 이와 관련해 장자연의 사망 뒤 약 일주일 뒤인 2009년 3월 15일의 진술에서 문건의 맨 끝에 편지글 형식으로 씌어진 “지인들, 가족들, 특히 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고 말했고 2010년 6월 25일 법정에서는 “어떤 장에는 성함만 기재되어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고 그때 본 것의 다른 부분을 진술했다.

2009년 3월 12일 장자연 씨의 오빠와 언니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경호원이 땅 밑에서 파내온 별개의 문건을 보고 읽었는데 윤지오는 이때 그 문건도 친언니와 함께 보았고 그것이 자신이 보고 읽은 것과 내용상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원본이고 다른 하나가 사본이라면 윤지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봉은사에서 보고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종의 문건과 리스트는 유가족의 요구로 그곳에서 모두 소각되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3월 13일 KBS가 유장호 숙소의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며 A4 4장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것은 태워진 원본과 사본 외에 또 다른 문건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단이 포함된 편지글 형식의 3장의 리스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지오는 피해사실을 기록한 그 문건의 내용은 자신이 본 것과 대동소이하나 자신이 봉은사에서 본 것과는 글씨체가 다르며 또 리스트가 없는 것은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이후 리스트는 끝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장자연 리스트를 윤지오가 봉은사에서 보고 읽었다는 사실은 그의 혼잣말이 아니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장자연 문건은 호야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이자 실질적 소유주인 이0숙이 더 콘텐츠의 김종승과의 송사를 유리하게 끌고갈 목적으로 대표인 유장호로 하여금 장자연과 함께 작성토록 한 것이다. 그것은 2월 28일에 작성되었다. 그런데 장자연 리스트는 그 다음날인 3월 1일 장자연이 작성하여 유장호에게 건네준 편지형식의 글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리스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우선 그 작성자인 장자연(고인)이고 그것을 보고 읽은 사람에는 최소한 유장호와 윤지오, 그리고 유가족이 포함된다.

실제로 유장호는 2010년 10월 법원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장자연과 함께 2009년 2월 28일 작성한 4장의 피해사실 문건 외에 장자연 씨가 3월 1일 신사동 소재 세0000라는 곳에서 장자연을 만나 장자연이 쓴 편지형식의 A4 3장을 따로 받았고 그 편지의 내용은 “문서로 작성된 내용은 다 사실이라는 내용, 법률적으로 잘 알아봐 달라는 당부의 내용, 김종승과 관련하여 조심해야 할 사람들 등”이었다고 진술했다. KBS가 보도한 문건은 장자연 등의 피해사실을 기록한 내용만 포함하고 있으므로 유장호의 이 진술에 따를 때 리스트가 따로 있었음은 분명하다. 또 이것은 명단(리스트)는 제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유장호의 3월 10일 통화중 말과 일치한다.

그리고 장자연의 오빠 장00 씨도 경찰조사에서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었던 것으로 진술했다.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에 “유족 장□□은 경찰 조사에서 마치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는 것처럼 진술한 바 있으나”라고 표현된 문장이 그것이다.   

이상 윤지오, 유장호, 유가족 장00의 사건 당시 진술이 리스트와 관련하여 서로 일치하고 또 유장호가 윤지오와의 통화에서 명단을 불렀으며 그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장호와 오빠 장00가 최근에 자신의 진술취지를 바꾸었다는 것이 이미 10년 전 교차검증된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유장호의 경우는 문건이 공개된 직후 윤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문건을 네가 공개했다고 해주면 안 되겠냐’는 식의 위증교사[윤지오는 이 부탁을 거절했으며 해당 녹음을 경찰에 제출했다.]를 하기도 한 사람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수사기록에 편철된 문건 외에 피해사실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명단’이 기재된 문건, 즉 ‘리스트’가 있었을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에 실려 있었을 최소 13명의 명단을 재구성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제출했다.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는데 윤지오가 보았다고 한다는 박훈의 주장은 이 모든 것과 배치되는 성급하고도 맹목적인 것이었다.

가해권력과 가해자중심주의의 논리: 조0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오덕식 판사의 판결에 대해(1)

2019 8 22서울중앙지법 6 509호의 풍경

2019년 8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2층 ‘오늘의 공판’ 게시판에는 몇 번씩이나 확인했지만 조0천 공판 게시글이 보이지 않았다. 강제추행이라는 죄목이 딱 하나  있었는데 조0천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전 공판이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가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 ‘오늘의 공판’ 게시판으로 가서 마침내 오덕식 부장판사 이름을 찾았다. 6관 509호를 사용하는 판사였다. 그런데 6관 509호의 오전, 오후 공판 일람에는 이미 확인했듯이 조0천 강제추행 건 공판이 게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509호로 갔다. 재판은 이미 진행중이었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이 경험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피고인에 대한 ’조직적 은폐’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사건번호를 모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문턱에서 공판 참관을 못했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509호실 우측 입구에서 발돋움을 하며 선고 내용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들리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간간히 윤지오가, 윤지오는…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지 문장맥락을 따라잡기는 완전히 불가능했다. 

아마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일 부장판사 오덕식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판사석의 높은 의자의 한 귀퉁이가 조금씩 움직였지만 인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흰색 옷을 입은 경관(?)이 방청석을 마주하고 판사석 정면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로 누군가의 독백을 듣는 무료한 시간이 한참 지났을 무렵, 그 경관이 다리가 아픈지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그 짧은 순간에 한 사람이 판사석에 앉아 앞으로 웅크린 자세로 청중을 외면한 채 손에 든 판결문에 시선을 파묻고 그것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좀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리고는 그 경관이 다시 바른 자세로 서고 나서는 그 경관 뒤에 숨은 그 인물의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판사석을 바라보는 중앙 피고석에는 정장 차림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아마도 조0천일 것이었다. 그 사내 때문에 검사석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약 30여분이 지난 뒤 갑자기 재판정이 술렁이더니 조0천이 뒤돌아 섰다. 살짝 미소가 배인 얼굴이었다. 이 때문에 선고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0천에게 유리한 판결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0천이 몇 사람과 함께 나의 옆을 지나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는 선고 이후 법정을 나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법정은 벌써 다음 피고를 불러내 다음 재판을 시작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고형량이 뭐냐고 물어도 잘 알지 못했다. 이러저리 확인하고서야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제추행 가해자를 지목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

2008년 8월 5일 김종승 생일 날에 김종승, 변0호, 조희천[당시 39세], 장자연, 윤지오 등이  22시 30분에서 23시 30분까지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 있었다는 것은 이제 확인된 사실이다. 윤지오는 당시 좌석 배치도를 제출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졌던 강제추행 상황을 이렇게 처음으로 진술한다. 

“술테이블에 자연이 언니가 올라가서 춤을 출 때 밑에 앉아 있는 김종승과 손님들이 자연이 언니가 마침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밑에서 치마속 팬티를 보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손님 중에 신문사에 사장님이 자연이 언니를 테이블에서 손목을 잡아 당겨 자기 무릎에 앉아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만지고, 곁으로 가슴을 만졌을 때 자연이 언니가 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강제추행을 한 것이 누구인가? 그 사건의 장소 일시, 어느 신문사인지 등 인적 사항을 묻는 수사관의 질문에 윤지오는 이렇게 답한다. 

“날짜는 잘 모르고 장소는 청담동 엠넷 방송국 건너편에 있는 가라오케이고 어느 신문사인지 모르고, 나이는 약 50대초반으로 일본어를 유창하게잘했고, 그 당시 5명 정도가 참석을 하였습니다.”(2009년 3월 15일)

이후 윤지오는 자신이 받아두어 보관하고 있던 명함들 중에서 유일하게 언론사 사장 직함이었던 머니투데이의 홍0근이 강제추행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사흘 뒤인 3월 18일 참조인 조사에서 거의 동일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정확한 날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카키색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갔으니까 여름이고, 김 대표님 생일이기 때무에 기획사 사무실 3층 VIP홀에서 직원들과 소속 연예인 고00, 장자연이 참석을 하고, 대표님이 부르신 머니000 홍0근 대표, 보0인베스트먼트 변0호 대표가 참석하여 식사를 마치고 저녁 9시경에 자리를 옮겨 청담동 엠넷 방송국 건너편에 있는 상호는 모르는데 5층 정도 건물에 2-3층에 가라오케에 갔습니다.”

그러자 수사관은 머니000 홍0근 대표와 보0인베스트먼트 변0호의 인상착의에 대해 진술하라고 한다. 수사관은 남자 셋 중 김종승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둘 중에서 강제추행 가해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머니000 신문사 대표 홍0근은 나이는 약 40대중반이고 신장은 약 168정도이고 체격은 보통이고 안경은 착용하지 않았고 얼굴형이 넓은 편이면서 얼굴이 긴편이고 머리스타일은 그 당시 하이칼라 형이면서 양머리가 짧은 편이고(윗머리는 긴편), 밝은 계통의 남방을 입은 것으로 기억하고,(진술인이 제출한 명함 참조)

주식회사 보0인베스트먼트 대표 변0호는 나이는 약 50대 초반이고 신장은 약  170 초반이고 체격은 좋은 편이지만 근육질이 아니라 살이 많았고 얼굴형이 보통 사람보다 옆으로 큰 편이고 피부가 검은 편이고 쌍꺼풀은 없고 머리스타일은 그 당시 나이에 비해 많은 편이고 하이칼라를 하였는데 양쪽 머리는 짧은 편이고 그 분은 항상 정상을 입었는데 그 날은 남방에  마이를 입은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진술인이 제출한 명함 참조)”(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로써 변0호는 강제추행 당사자에서 배제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윤지오가 “항상 정상[장]을 입었는데”라고 말할 정도로 윤지오가 잘 아는 사람이었고, 만약 그 사람이 강제추행을 했다면 그 당사자를 지목하는 것은 너무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대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강제추행 당사자는 윤지오가 처음 만난 남자, 3월 18일에 “머니000 신문사 대표 홍0근”으로 지목한 그 남자로 좁혀진다. 그런데 명함을 제출하면서 이루어진 이 두 번째 진술에서 그 신문사 사장의 나이는 5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으로 낮추어진다. 당시 조0천의 나이는 39세로 약 6세 정도의 차이가 난다. 홍0근은 그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위이므로 당시 49세 정도였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를 찾는 이 과정에서 경찰이 사용한 방법은 지극히 불합리한 것이었다. 위의 진술이 보여주듯이 윤지오의 기억 속에는 강제추행한 사람의 구체적 이미지가 이미 들어 있다. 그런데 진술은 그 구체적 이미지를 분석해 추상적 특징들로 세분한다. 나이, 언어, 옷, 체형, 체격, 키 등으로.  이제 다시 그 추상적 특징들이 지목된 인물의 실제와 부합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1)기억 속의 구체적 이미지 (2)기억을 말로 표현하면서 추상된 특징들 (3)인물의 실제,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경찰은 (1)과 (3)을 대질을 통해 바로 조회토록 하면 되는 것을, 진술로 표현된 (2)의 추상특징들이 실제 (3)과 맞는지를 확인하면서 고의로 먼 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우회방법은 개개의 특징들에 대한 진술자의 혼선을 자아내어 진술자를 공격하기(즉 진술자의 진술 진빙성을 낮추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사진을 놓고 맞추는 과정에서조차 조0천의 사진을 꺼내놓지 않았다. 조0천이 그 자리에 참석했는지 안 했는지를 경찰이 몰랐을 리는 없다. 장자연은 고인이 되었으므로 증언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조0천을 초대했던 김종승과 변0호의 진술이 이미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찰이 윤지오 증언자를 교란시키고 구두 색깔이 뭐냐 따위를 묻는 해괴한 최면 조사를 통해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렸지만, 윤지오는 참고인(피의자가 아니라!) 조사를 받으러 온 조0천을 우연히 본 후, 즉각 “저 분이 바로 자신이 말한 홍0근 대표이고 강제추행의 당사자”(“그 분이 오셨네요.”)라고 말한다. 즉 (1)기억 속의 구체적 이미지와 (3)인물의 실제가 조회되는 순간에 바로 양자의 일치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우연히! (2)의 추상적 특징들을 뽑아내 그것을 (3)과 매치시키려는 경찰의 노력은 바보같은 일이었거나 조0천을 숨겨주기 위해 고안된 속임수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그런데 윤지오의 생각과는 달리 그의 이름은 홍0근이 아니었고 조0천이었다. 윤지오는 기억 속에 처음부터 이름을 모르는 “조0천”의 형상을 갖고 있었지만 갖고 있던 명함 때문에 그것을 “홍0근”으로 오인했으며, “조0천” 없는 사진들 속에서 “조0천”을 찾는 경찰의 수수께끼 깥은 대조작업, 진술자를 고문하는 최면수사 등을 받으며 기억 속의 가해자를 정확하게 지목하지 못한 채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0천의 실물이 윤지오의 눈 앞에 나타나자마자 윤지오는 바로 저 사람이라고 지목했고 이후 단 한 번도 조0천이 강제추행의 당사자라는 증언을 바꾼 적이 없다. 

이상이 윤지오가 조0천을 강제추행의 당사자로 지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요약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영상클립 속의 어떤 ‘호모 사케르’와 법 위의 가해권력들에 대한 단상(끝)

요점: ‘호모 사케르’가 문제가 아니라 ‘호모 사케르’를 창출하고 또 퇴출시키는 ‘지탄 공동체’의 범죄행동이 문제이며 이 문제의 극복은 포함과 배제의 이중구속 상태에 있는 ‘호모 사케르’들의 투쟁을 통해 달성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타락”과 “성스러움” 사이 

당신이 지탄의 무리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하기 전에 한 번 꼭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타락’(墮落)이란 무엇인가? 누가 어떤 목적에 타락이란 말을 이용하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타락’이란 말은 ’제사상에 올릴 고기가 풀잎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다’는 뜻에서 기원한다.  

이것은 지극히 종교적인 용어로서 어떤 것이 신께 바칠 제물로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영상 클립 속 여성이 ‘타락했다’는 것은 그 여성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제사상에 올리기에 바람직한 여성이 아니라는 것, 즉 가부장적 성권력에게 바칠 제물(이른바 ‘먹잇감’)로는 부적절하다는 의미이다. 김종승, 김학의, 승리 등으로 인해 유명해진 (그러나 참으로 잔인한) 현세적 용어를 사용해 보자면 그 여성이 ’접대’에 사용될 수 없는 여성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평가되는) 일반 시민으로 되는 것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이 ’타락했다’고 보는 여성들을 제물로 ‘접대’받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타락한’ 여성이란 현세에서 이들 성폭력-권력자들의 접대상에 올릴 제물로 사용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렇게 ‘접대’될 자격조차 박탈당한 그 ‘타락한’ 여성을, 가부장제 성폭력 체제는 그 누가 짓밟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런 범죄로 되지 않을 존재로 간주하곤 한다.

조르죠 아감벤은 로마법에서 이런 존재의 원형을 찾아낸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 “성스러운 인간”이 그것이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페스투스(Sextus Pompeius Festus)의 『단어의 의미에 관하여』는 호모 사케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인민에 의해 고발당한 자를 성스럽다(sacer)고 한다. 그를 희생의 제물로 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그를 죽인다면, 그 사람은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초의 호민관 법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민투표를 통해 성스럽게 된 사람을 죽이더라도 살인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악하고 불결한 사람을 가리켜 ‘성스럽다’고 말하는 관습이 있다.”

이 인용을 보면, 로마법은 특이하게도 우리가 앞서 ‘타락했다’고 표현한 존재를 ‘성스럽다’고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표현방식이야 어떻든 이 인용은 로마 사회가 ‘인간 접대’의 문화를 갖고 있었음도 보여준다. “성스러운 인간”(호모 사케르)은 ‘접대’ 제물로 사용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접대’ 당할 수 있는 인간이라 함은 그 ‘접대’ 당함을 통해 신의 세계, 신의 질서로 넘어갈 수 있는 인간으로 이해되었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딸이 왕에게 ‘상납’됨으로써 왕의 질서(“궁녀”)로 넘어가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접대’용으로 사용될 수 없는 “범죄자”들은, 그 “성스러움” 때문에 신의 세계로 넘어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인간의 세계 내부에 자리를 얻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든지 죽여도 무방한 존재, 항상적 배제상태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호모 사케르는 경계의 존재이다. 그는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 모두에서 배제됨으로써 비로소 거기에 포함되는 모순의 존재이다. 아감벤은 로마법 속의 이 개념을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부르면서 우리 시대로 가져와 현대의  국가권력이 본질적으로 로마법에서 말한 이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현대의 국가주권은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이라기보다 법을 멈추고 예외상태를 선포하며 모든 권한을 박탈당한 저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을 창출하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현대적 국가주권에 의해 법질서 외부로 추방당하는 방식으로 법질서에 겨우 포함되는 생명형태들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나치 하의 ‘유대인’, 일제 하의 ‘조센징’, 전후 대한민국에서의 ‘빨갱이’, 1990년대 말 이후의 ‘종북’, ‘좌빨’, 9/11 이후의 ‘테러리스트’, 트럼프 하의 ‘미등록자’ ’이주민’, ‘난민’ 등등등. 여성을 ‘호모 사케르’로 만들면서 특별히 붙이는 이름으로는 ‘마녀’, ‘풍기문란녀’, ‘꽃뱀’, ‘매춘부’, ‘창녀’ 등등이 있다. 그런데 아감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특수한 생명형태들만이 아니라 현대인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국가주권이라 불리는 폭력에 의해 바로 이런 식의 예외존재로 낙인 찍히고 법질서 바깥으로 추방당해 임의의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계정들이 영상 클립 속의 그 등장인물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형상화하고 댓글러들로 하여금 그 여성을 마음 대로 짓밟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호객을 하는 것은 로마 사회나 현대의 국가주권이 호모 사케르를 창출하는 방식을 흉내낸다. 그런데 영상 속 인물이 로마법에서 말하는 범죄자인가? 그들이 마구 짓밟는 그 영상 속 인물이 타인을 살해하는가? 그 인물이 타인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수탈한 후 어쩔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모는가? 영상 속의 그 인물이 누구를 폭행하는가? 그 인물이 누구에게 ‘성접대’를 강요하는가? 그 인물이 누구를 특수강간하는가? 그 인물이 누구를 성추행하는가? 그 인물이 누구를 성희롱하는가? 그 인물이 누구를 협박하는가? 그 인물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외압을 행사하는가? 가해자를 감추기 위한 부실수사를 하는가? 그 인물이 불법으로 획득한 영상물을 고객들에게 송출하는가? 그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 범죄가 될 만한 그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윤지오가 터무니 없는 무고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것과 똑같이 영상 클립 속 그 인간도 그가 누구이든 터무니 없는 지탄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타자의 인권을 침해할 자유를 부여받지는 않았다.  

‘지탄 공동체’의 범죄성에 대해

오히려 범죄적 행동을 하는 것은 영상 속 인물을 손가락질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 영상 클립들을 바라보고 조롱하고 댓글을 달고 그 계정을 응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인지 모를 동영상 속의 실제 인물로부터 어떤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인물의 사생활 장면들을 공중 앞에 드러내 공연(公然)히 전시하고 성희롱적 댓글들을 역시 공연(公然)히 전시한다. 이 지탄의 제의(祭儀) 속에서 이들은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고 공동체를 이룬다.

그런데 동의 없는 저작물의 사용은 명백히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사실이건 허위사실이건 타인의 명예를 공연히 훼손하는 것은 형법상의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 범죄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계정 운영자들과 “악플러”들은 이런 범죄적 행동을 매일매일 반복한다. 이들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부품이 되어 죄의식도, 도덕감정도, 양심의 가책도, 주저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이 이 불법들을 버젓이 보고 있으면서도 그냥 ‘좌시(坐視)’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들 사실상의 범죄혐의자들이, 실제로는 어떤 범죄 행동도 하지 않는 영상 속 인물의 도덕성을 규탄하고 있는 것은 적반하장식 아이러니다. 이들 중 A씨는 윤지오를 규탄하는 1인시위 쇼를 하더니 며칠 전에는 영상클립 속 인물이 윤지오라고 주장하며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고발(김수민에 따르면 이 사람은 고발장에 자신의 이름을 “서준혁”으로 밝혔다고 한다)을 하면서 윤지오를 잡기 위해 캐나다까지 가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한민국 ‘언론’은 그의 1인시위와 고발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한겨레21>(https://news.v.daum.net/v/20190108113802124)에 따르면 “서준혁”은 2016년 게이오대병원 정신과 의사를 사칭하다 걸렸고, 부동산 전문가를 사칭해 피해자를 만들었으며, 서울시 도시재생 연구위원을 사칭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가 제출한 고발장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가 슛맨과 짜고 윤지오 마녀사냥 놀이를 통해 슈퍼챗을 챙기려 한 것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슛맨은 그 슈퍼챗이 실수로 들어온 것이며 모두 돌려줄 것이라는 황급한 해명을 해야 했다. 기자였던 적이 없는데 전직이 기자였다고 사칭했지 않느냐는 의혹은 빼고 말이다.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소문난 조선일보가 이렇게 정권을 쥐고 흔드는 방법이 이런 사기전문가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말과 행동을 홍보해주고 더러운 이미지를 세탁해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참 안쓰럽다. 그래도 이제 조선일보가 대답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언론이 ‘증언자 윤지오’에게 ‘놀아나는’ 것은 나쁜 것이고 ‘사기전문가’에게 ‘놀아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이들 범죄혐의자들에게는 안 된 이야기지만, 로마의 노예제 권력이 ‘호모 사케르’라고 부른 특수한 인간존재를 창출하고 로마법이 누구나 그를 죽여도 좋은 것으로 인정했다고 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법률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에 누구나 짓밟아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 특수한 인간존재는 없다. 로마에서 ‘호모 사케르’로 되는 사람들은 로마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이었는데 이 법을 따른다면 누구나 짓밟아도 되는 사람은 영상 속 인물이라기보다 영상 클립의 자의적 이용으로 타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작권법을 침해하는 계정주와 댓글러들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고대 로마법과 다르며 누구든지 짓밟고 죽여도 될 ‘벌거벗은 생명’을 적어도 법 속에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누구든지 타인의 인권을 짓밟고 명예를 훼손하는 자들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확실히 이들은 사법적 단죄가 필요한 대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왜 이토록 죄의식이 없을까?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까? 어떻게 이토록 국법을 우습게 볼까? 이것에 대한 설명을 위해 우리는 다시 아감벤을 참조해야 한다. 아감벤은 현대의 국가주권이 부시가 그러했듯이 법을 중지시키는 권력으로, 법 위의 권력, 법 밖의 권력으로 행세하며 벌거벗은 생명을 창출한다고 했다. 윤지오도 장자연 사건의 가해권력들을 여러 차례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의 계정주들도 자신을 예외권력으로 사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이것은 이들 계정주들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가해권력의 일부, 마디, 톱니바퀴, 끄나풀, 심부름꾼, 알바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범죄혐의자, 가해권력의 톱니바퀴들은 영상 속 인물 즉 타인의 인권, 명예, 성적 자기결정권, 저작권을 짓밟으면서 그것에 ‘정의’의 이름을 붙이기까지 한다. 1980년대 초 “살인마” 전두환이 광주시민에 대한 자신의 학살행위를 “폭도”를 처단하는 ‘정의’의 행동이라고 불렀던 것과  똑같이 말이다.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을 정점으로 하는 독재정당은 “민주정의당”(1981~1990)이라는 이름으로 폭력통치를 수행했다. 그 통치행위가 범죄행위로 입증되기까지(아직도 충분치 않다!) 무려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산재한 가해권력의 작은 기계입들이 나날이 자행하는 인권침해, 명예훼손, 성희롱, 저작권침해 등이 범죄로 입증되는 데에도 그런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전두환은 계엄군으로 광주를 포위할 수 있었고 계엄령으로 전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지만 지금 윤지오를 2차, 3차… n차 가해하고 있는 장자연 사건의 그 가해권력자들은 돈을 통해 전문가를 매수하고 언론을 통해 가짜진실=환상을 창출하고 고소고발의 사법소동을 벌이는 것 이상의 수단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진실을 가리는 것 이상의 수단 외에는 마땅히 사용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근대적 디지털 세계는 진실을 가리는 것도 쉽게 만들지만, 가려졌던 진실이 지하에서 더 큰 폭발력을 모아 되돌아오는 것도 더 쉽고 빠르게 만든다. 문제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저 진실을 가리는 환상의 장막을 찢어내어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적나라한 범죄적 얼굴을 드러내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관계, 인간관계의 형상을 새로이 그려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세계를 뒤흔든 1968년의 혁명이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순간에 뜻밖에 찾아 왔듯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2008년, 2016년의 촛불봉기와 촛불혁명도 그렇게 몰래 그리고 갑자기 찾아 왔었다. 진실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찾아올 것이다.

맺음말: 우회로도 샛길도 없다

하지만 혁명을 신비화하지는 말자. 2016년의 촛불혁명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유가족을 주축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끈질긴 연대투쟁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던 사건이다. 촛불혁명의 스모킹건은 태블릿 피시 이전에 세월호 가대위의 진상규명 투쟁이었다. 박근혜에 대한 탄핵도, ‘세월호 7시간’을 설명하지 못하는, 정부책임자의 그 무책임성 때문이었다. 장자연의 죽음의 진상은 윤지오에 대한 음해공작으로 인해 10년이 지난 지금도 규명되지 못했다. 이제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려면 그것을 켜켜이 뒤덮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중인 윤지오 음해공작의 쌓이는 잔해들을 먼저 걷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회로도 샛길도 없다.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가해권력이 지금 윤지오를 음해하는 바로 그 권력인 한에서 지금 작동하고 있는 현재의 그 가해권력에 대한 투쟁과 음해폭력에 대한 진상규명 없이 어떻게 과거의 그 가해권력의 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