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기업에 대한 다중의 섭정을 위한 상상

공무원을 국민이 섭정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공무원이 국민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섭정이 정치적 과제로서 나타나는 것은 대의제가 과도한 나머지 공무원이 자립성을 갖게 되고 심지어 공무원이 주인인 공무원을 지배하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접 민주제의 간접 민주제로의 대체라는 극단적 결과를 가져왔다. 공직의 사유화와 권력화는 그것의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아래로부터 국민-다중의 섭정은 공직을 부름에 대한 응답, 즉 소명(Beruf)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며 사유화된 공직을 다중을 공통화시키는 봉사활동으로 개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검찰이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다중의 권력에 봉사하는 서비스기관으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국민배심제 하의 AI검찰’이라는 형상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경우에는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있어 자본가의 권력이 인정되는 것이 통례다. 이 영역에서는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위치지워지며 대다수 국민들은 기업 영역에서 주권을 잃고 노예로 전화한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 영역에서 국민-노동자의 주권됨과 모순된다. 또 기업체제가 지배적으로 되면 국민-노동자는 정치영역에서 자신의 주권성을 망각하게 되며 자신의 기관인 국가와 자신을 고용한 기업의 배신적 유착도 심화되게 된다. 대의제가 기업제와 동화되면서 정치적 대의자들이 기업주처럼 군림하고 국민이 노예처럼 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로써 국민주권은 실질적으로 해체된다. 정치영역에서 국민-다중의 주권회복이 기업영역에서 노동자의 주권쟁취와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업영역에서도 노동자-다중이 주인으로 될 때에만 다중에 의한, 다중을 위한, 다중의 정치/경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은 ‘다중통제 하의 AI기업’의 형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업영역의 공통화의 가능성은 무엇보다도 노동으로부터 노동자의 해방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해방이 현재는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계화, 정보화, 자동화로 인한 실업과 비정규직화의 경향이 그것인데, 노동(여기서는 ‘고용노동’을 지칭한다)과 소득을 강제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결합시켜온 자본주의의 오랜 경향과 장치들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무소득, 저소득과 묶어 놓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의 경향은 직접적으로 삶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고용노동=강제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수행하는 삶정치적 활동은 노동으로 평가되지 않고 무상수취되는 경향이 있다. 기본소득 및 무조건적 보장소득에 대한 토론은 이러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일반화되는 상황이 삶의 고통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이 방안의 핵심은 ‘고용되어 노동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소득 문제와 분리시키는 것이다. 삶의 생산과 재생산을 위한 활동은 기업적 고용세계 바깥에서도 전개되고 있고 기업들은 이 활동들을 외부효과로서 전유하고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없이 소득 없다’(예컨대 무노동무임금)는 관념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없다.

노동자가 강제노동에서 해방되어 욕망으로서의 삶정치적 활동에 자유롭게 종사하면서도 그것이 삶의 고통으로 나타나지 않는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욕망으로서의 삶정치적 활동에 행복한 느낌으로 충실할 수 있을 때 국민과 노동자 사이의 현재의 배리현상(주인이 노예되는 현상)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삶정치적 활동에 종사하는 (비)노동자들은 기업을 자신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으로 섭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기업은 고용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기관이 아니라 (비)노동자-다중의 부름을 받아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지탱하는 소명기관(Beruf-organ)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착취기관에서 소명기관으로 전화하는 것과 국가가 권력기관에서 소명기관으로 전화하는것은 하나의 과정의 두 측면이다. 하나의 과정이란 다중의 자기조직화와 섭정능력이 향상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다중의 공통화 없이 국가와 기업의 공통화 없다. 국가와 기업에 대한 섭정 능력을 위한 사유실험과 행동실험이 끊임없이 시도되면서 그 성과들의 공통화-연결망(commoning-network)이 섬세하게 구축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촛불을 통해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이 첫 걸음에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는 아직 누구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2019년 10월 19일 촛불집회의 분화, 그 양상과 의미에 대한 관찰메모

  • 2019년 10월 19일 촛불집회는 서초동과 여의도로 분산 개최되었다.
  • ‘분열’이 아니라 ‘분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집회의 이슈와 강조점이 다변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촛불은 반드시 단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양화하고 분산되는 것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면 분산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 물론 현재는 서로를 인정하기보다 경쟁하고 때로는 적대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전체 촛불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 9차까지의 서초동 촛불집회의 주최측을 자임했던 개국본이 10월 12일을 갑작스런 마지막 집회로 선언한 것이 이 경쟁적 분화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집회의 종료를 선언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의 암묵적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방적 종료 선언이었고 이것이 촛불을 지속하자 하는 사람들을 별도의 경향적 세력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즉 서초동인가 여의도인가의 분화가 있기 전에 종료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화가 있었다.
  • 북유게 사람들이 촛불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은 조국이 사퇴한 날과 겹치는 월요일(10월 14일)이었다. 개국본이 여의도 촛불을 결정한 것은 수요일(10월 16일)이었다. 종료나 계속이냐의 분화가 여의도인가 서초동인가의 분화로 나타났다.   
  • 섭정의 관점에서 두 개의 촛불 중에서 하나를 취사선택할 이유는 없다. 촛불다중에게는 두 주최측, 두 집회의 에너지가 사회개혁의 집합적 에너지로 공동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두 집회의 공통점은 검찰을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 서초동 집회는 “검찰이 범인이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현존하는 검찰권력의 불법성을 크게 강조했다. 여기에 윤석열 수사, 구속 등 검찰총장에 대한 강한 사법적 압박 요구가 더해졌다.
  • 여의도 집회는 “공수처 설치”와 “응답하라, 국회” 등의 입법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서초동과 여의도의 뚜렷한 차이는 여의도에서 윤석열에 대한 비판적 구호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 서초동 집회는 이전 9차 집회까지와 마찬가지로 ‘조국 수호’를 외치면서 조국을 이슈화했다. 여의도 집회는 ‘조국 수호’라기보다 ‘조국 계승’(수고했습니다) 쪽으로 초점을 옮기는 분위기였다. 서초동이 조국을 현재화한다면 여의도가 조국을 과거화한다는 느낌이었다.
  • 서초동 집회보다 여의도 집회에 더 많은 사람(감으로는 약 1.5배~2배)이 모인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이 여의도 집회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것을 고려하면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고 할 수 있다.
  • 성별 측면에서 서초동 집회는 여성이 주축이었다. 8대 2 정도로 여성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반면 여의도 집회는 5:5로 동등하거나 6:4 정도로 남성이 더 많은 집회였다.
  • 세대 측면에서 서초동 집회는 2~30대가 주축이고 여의도는 그보다는 연령이 더 놓은 세대가 주축이었다.
  • 서초동 집회는 참가자들의 자유발언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여의도 집회는 공연과 유명인사들의 연설 중심이었다. 
  • 서초동 집회에 비해 여의도 집회가 미디어 동원이 많았다. 여의도 집회는 스크린이 과잉동원되었다는 느낌이었다. 9월 28일의 과소동원과 대조되는 풍경. 전체적으로 너무 큰 마이크 소리로 집중이 어려웠다. 국회의사당역 출구의 포스트잇 시위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서초동의 경우는 미디어 동원이 적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히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주요 슬로건을 담은 큰 깃발들 대오가 외곽을 오가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 전체적으로 여의도 집회의 방식이 전통적 조직운동의 집회방식이라면 서초동 집회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트워킹 방식을 오프라인 집회에 전용하는 것이었다.
  • 수백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가 구심점을 이루면서 촛불다중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졌던 2008년이나 2016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2019년의 촛불집회는 개국본이나 북유게 등 개별 단체나 커뮤니티가 주최측이 되어 집회를 개시하고 다중들이 그것에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주최측의 정치적 색깔이 집회 전체의 색깔을 좌우할 수 있고, 주최측 간의 의견차이나 갈등이 촛불 다중들의 갈등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 공통의 목적을 위해 의견의 차이를 어떻게 생산적 토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주최측이 뚜렷한 데서 오는 이 위험성을 어떻게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나타난다. 

조국 사퇴의 정치적 의미와 사퇴 이후의 검찰개혁에 대한 연구노트

  1. 조국의 조기사퇴는 검찰개혁 전선에서의 후퇴다. 조국에게 맡겨졌던 최소한의 개혁목표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기사퇴는 검찰개혁에 저항해온 언론과 검찰 및 자유한국당의 압력에 민주당 지도부가 동화된 결과이다. 
  2. 검찰-언론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를 사법과 문화로 비선(秘線)지배하면서 강탈적 축적을 가속시키는 두 개의 ‘비선(秘線)축’으로서 서로 연합하여 작동한다. 이것은 과거 발전주의 국가를 군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비선지배했던 것에 비교할 수 있다.
  3. 언론과 검찰은 표적보도(편의보도)와 선별기소(편의기소)를 통해 다중의 인지적 정치적 삶을 왜곡하며 착취적이고 수탈적인 사회관계를 온존, 강화한다. 
  4. 이 두 축은 국가에 대한 다중의 아래로부터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능력을 찬탈하고 왜곡한다. 이 두 축은 국내적으로 지배하는 엘리뜨와 복종하는 군중,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지배하는 제국과 종속하는 주변국 사이의 구조적 연합(국민통합과 미일한 동맹)으로서의 국가를 표상한다. 지배, 사대, 전쟁, 경쟁, 승리가 이들의 지향성이다. 이 두 축은 전쟁으로서의 삶이라는 호전적 이미지를 삶의 본질로 제시한다. 
  5. 이것은 자율, 자주, 평화, 연대, 공통이라는 현시기 촛불다중의 염원과 대립한다. 그러므로 현 시기에 전 국민적 의제가 되어 있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이 두 비선축의 비선지배를 촛불다중의 민주적 섭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 통과절차다.
  6. 조국의 법무부 장관임명은 촛불다중의 검찰개혁 요구에 대한 자칭 촛불정부의 최소한의 부응조치였다. 즉 다중 섭정의 정치적 첨점이었다.
  7. 검찰은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에 저항했고 그 수단이 조국 일가에 대한 먼지 털이식수사였다. ‘검찰개혁’ 메시지에 ‘사기꾼 일가’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이다. 이것은 ‘권력형 성폭력 리스트(장자연 리스트)’ 메시지에 ‘사기꾼 윤지오’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과 동일하다. 
  8.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성착취-성수탈 관계가 사회적 의제로 표면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조선일보가 주도했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검찰권력을 침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검찰 특수부가 주도했다.
  9. 증언자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는 윤지오의 인성, 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통해 증언의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마녀사냥을 통해 이루어졌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는 조국 일가의 자산가적 계급성을 비난하고 말과 삶의 불일치를 집중 공격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도덕’과 ‘정의’의 담론은 ‘인권’을 짓밟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10. 이 두 공격 모두에서 “누구를 사냥하는가?”는 분명했지만 “누가 사냥하는가?”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져보면, 실제 상황은, 성폭력 가해권력이 피해여성의 노출을 비난하고, 거대한 규모의 착취수탈자가 임금 외의 가외지대(extra-rent)를 수취하는 정규직노동자를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성격의 것이었다.
  11. 좌파 일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 상층의 (상당히 일반화된) 지대수취(‘사모펀드’), 기회수취(‘장학금’, ‘표창장’)를 비판하기 위해, 도덕주의적 정의를 내걸고 거대 권력이 주도하는 이 마녀사냥에 동참하거나 쟁점회피하면서 기권하는 태도를 취했다.
  12. 조국은 검찰발 사퇴압박을 거부했고 검찰개혁의 ‘최소한(불쏘시개)’을 전진시켰다. 그것을 뒷받침한 힘은 조국 자신에게서 나왔다기보다 촛불 집회에 결집한 수백만 다중에게서 나왔다.
  13. 9월 28일 이전에 개국본은 다른 시민단체와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촛불을 꾸려가면서 사법개혁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9월 28일 국민-다중의 분노의 폭발은 개국본/사국연을 놀라게 하고 후퇴시켰다. 더 이상 ‘주최측’이 무의미해지는 다(多)중심의 시간이 열렸다. 이것은 검찰개혁의 급진화, 더 급진적인 검찰개혁을 가져올 다중지성적 에너지였다. 10월 12일을 마지막으로 한 집회중단(그것은 ‘최후통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결국 검찰이 아니라 문재인과 조국을 향한 최후통첩이 되고 말았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국본/사국연의 대응방식이다.
  14. 촛불의 혁명적 폭발이 집회에 가져온 충격(‘중단’) 외에 권력장에 가져온 충격도 있다. 9월 28일의 촛불혁명은 조국을 일거에 대선 유력 후보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10월 5일 촛불다중의 더 폭발적인 참여는 민주당까지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검찰 및 광화문 집회의 압박에 짓눌린 상태였지만 서초 집회의 촛불에 결정적으로 놀라서 후퇴를 시작했다.(다음날인 10월 6일 조국, 주진우 만남. 주진우-김건희[윤석열] 네트워크를 고려할 때 이것은 의미심장한 만남이다. 대화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사퇴의 의사타진과 일정 조율 및 사퇴형식의 조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5. 지금까지 조국사퇴를 요구해온 자유한국당, 노동당 외에 이제 민주당 지도부가 조국사퇴 대오에 가담한다. 명분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하락이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통계적 지지율이 하락을 보이는 순간에 거리에서 촛불이 보여준 현실적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거리의 현실다중이 아니라 통계 속의 가상 군중을 입장선택의 근거로 삼았다.
  16. 10월 11일 ‘동교동계 원로들’이 이낙연 총리를 불러 조국 사퇴를 권유한다.(https://news.v.daum.net/v/20191011145155705 ) 이후 민주당 내에서 11월 조국의 명예사퇴론이 나왔다. 10월 12일 촛불집회는 ‘주최측’에 의해 잠정 마지막 집회로 계획되었는데(김어준은 그 잠정성과 관련하여 “다시 집회가 열리는 상황은 없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장 내에서 이미 일정정도의 교감이 있었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17. 10월 12일 집회에 대학생진보연합을 비롯한 단체가 촛불 집회 지속을 주장한 것.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는 플랭카드를 내건 것은 촛불집회의 중단에 대한 거부심리가 촛불 다중 속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집회계속 플랭카드 철거를 요구했다. 이미 인쇄되어 참가자들이 든 피켓은 검찰개혁-조국수호인데 연단에서 조국수호 발언은 억제되었다. 일찍이 조국이 법무부장관 후보자였던 8월 28일 후보자사퇴를 주장했던(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1908284024H) 이부영을 촛불집회 연사로 내세웠다. 이런 현상들은 촛불집회 주최측이 다중의 폭발적 참여로 인해 점점 ‘조국수호’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검찰개혁’을 ‘조국수호’로부터 분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8. 10월 12일 촛불집회의 열기가 여전히 폭발적이었던 것, 그리고 노무현-문재인-조국을 잇는 이미지가 자생적으로 등장하면서 조국을 더욱 더 확고하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시키는 것을 확인한 후 11월 퇴진보다 더 이른 ‘조기’퇴진을 권유할 필요성이 민주당 기득권 세력 내에서 더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19. 또 다른 계기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윤석열 원주 별장 접대 진술에 대한 수사회피 보도(한겨레)가 나오고 이 문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조기단속의 필요성. 12일의 촛불집회에서 윤석열체포 주장의 대중적 등장. 윤석열이 국회의 뜻에 따를 의사를 표현한 것. 이런 여러 계기들이 결합하여 국회-검찰이 합세하여 서초집회의 촛불을 끄고 청와대를 포위하여 조국의 사퇴를 부분 명퇴의 형식(‘검찰개혁의 불쏘시개’)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20. 조국 사퇴 후 자유한국당은 “국민승리”를 외치며 환호하고 나경원, 황교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검찰개혁의 길이 난망하고 험난할 것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사퇴 계획을 “몰랐다”고 발빼면서 적어도 말로는 검찰개혁을 지속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개혁을 더 잘 할 인물을 찾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해하고 존중한다”, 노동당은 “환영한다”, 이다. 즉 국회와 제 정당들은 조국 사퇴 사건의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오히려 긴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묵묵부답”의 윤석열이다.) 그런데 문재인 지지층은 조국 사퇴를 범 동교동계(이해찬-이낙연-이재명)의 압박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고 김어준-주진우-시사타파가 이에 동조했다고 보고 있다.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이며 지지율 회복도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 조국 사퇴는 어떤 방식으로도 검찰개혁 전선의 승리로 규정할 수 없다. 조국 사퇴가 검찰개혁의 후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조국 사퇴 압박이 거셌고 지지율 하락이 견디기 어려웠다는 점에 동의한다. 즉 조국 사퇴가 외압에 의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조국의 입장에서 사퇴외압은 두 종류다. 하나는 검찰, 자유한국당, 언론에서의 사퇴압력, 그리고 또 하나는 민주당 내부에서의 사퇴압력.
  22. 조국 사퇴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면 신상이 털리고 가족이 걸레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었다. 검찰로서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개혁을 실제로 주장하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23. 그런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추진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당 내에 있지 않다. 9월 28일을 분기점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검찰개혁을 한 목소리로 외친 사람들, 즉 촛불이 있다.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과 절박성을 학습하는 집단지성적 공간이었다. 촛불이 강하게 밀어준다면 촛불국민의 뜻을 받아 나설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4. 촛불은 조국수호를 외쳤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잔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조국사퇴가 닥쳐온 것은 조국수호라는 촛불의 주장이 정면에서 거부된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의 갑작스런 ‘폐지’와 때를 같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다중이 나서지 않으면 검찰개혁의 완수가 이번에도 난망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군사독재”를 대체한 “검찰공화국”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10월 12일 마지막 촛불집회”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집회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25.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입니다.”“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의 뜻과 마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라는 조국 사퇴 문구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당정청이 힘을 합해 검찰개혁 작업을 기필코 완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에서의 ‘당정청’보다 훨씬 근본적인 역량에 대한 호소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의 검찰개혁 립서비스가 립서비스에 그칠 것인가 실질적인 것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서초 촛불집회의 의미와 양상에 대한 몇가지 생각

집회와 의회

  1. 대의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집회(assembly)는 의회(parliament)가 기능장애에 빠진 때에 의회를 치유하고 개혁하기 위해 출현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정치장이다. 그것은 일종의 의회밖의 의회, 거리의회이다.
  2. 집회는 언어, 분석, 이성에 의해 이끌리는 의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 직관, 정동의 요소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3. 집회는 의회를 대체하기보다 의회를 섭정한다. 의회의 가능조건과 기능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4. 집회의 언어는 이 때문에 주로 명령어이다.

9월 21일, 9월 28일, 10월 5일/10월 12일의 집회변이

  1. 내가 참가한 주말집회는 6, 7, 8, 9 총 4회 중 3회였다. 내가 참가하지 못한 8차 집회(10월 5일)는 9차 집회와 유사한 질/량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 첫 주말집회였던 6차 집회는 사법개혁국민운동본부(초기의 개싸움하는국민운동본부)라는 명확한 집회주체가 있었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전개되었던 2008년이나 2016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사국본은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집회를 주최했다. 1차 집회를 수백명에서 시작하여 9월 21일 6차 집회에서는 내가 참석한 시간에 대검 정문 앞에서 수천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검찰이 이것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이전의 검찰 수사 관성이 집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3. 7차 집회에서는 빅뱅이 일어났다. 서초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나갈 때부터 여기저기서 검찰개혁을 외치는 구호소리가 요란했다. 페스티벌이 있었던 예술의 전당 방향을 제외하고 교대역 방향과 서리풀터널 방향, 그리고 검찰청 방향으로 집회군중이 서 있었다. 주최측은 대검 정문 앞에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무대를 설치했는데(수 만 명의 참가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 무대는 집회군중에 떠밀린 왜소한 섬처럼 보였다. 7차집회는 주최측의 예상을 넘어선 다중의 폭주공간이었다. 통행이 어려웠고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도 없고 촛불도 없이 스마트폰 랜턴 앱으로 집회를 이어갔다. 무대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꽤 많은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구호도 다양했다. 통신폭주 때문인지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았다. 촛불혁명의 시간이 있었다면 9월 28일 7차 집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4. 9차 집회는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6시 50분에 도착하여 한자 십(十)자형 집회대오를 외곽으로 취재 사진을 찍으면서 걸어보았다. 예술의 전당방향 한 블럭 반을 돌았다. 교대역 방향이 가장 길었는데 강남역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대오였다. 대검 방향은 서초경찰서를 분기점으로 태극기 집회 수천명과 대치/분리되어 있는 형상. 서리풀 방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나 군데 군데 빈자리가 많았다. 2시간 10분이 걸려 9시에 출발점인 서초 사거리에 도착했다.
  5. 6차 집회가 결의를 했지만 불안한 선구자들의 형상이었고 7차 집회가 성난 군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면 9차 집회는 자신감 넘치는 축제참가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장터가 생겼다. 어린이를 등목 태운 사람들, “검찰개혁, 윤석열체포” 피켓을 두른 반려견, 일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9차 집회에서 7차 집회의 아나키스러움은 사라졌다. 교통경찰이 통행을 관리하고 자원봉사자들이 군중을 관리했다. 서초 네거리에 설치된 거대한 중앙 무대는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 복제되었다. 거대한 복제 스크린이 대충 열 개는 되어 보였다. 집회는 다중의 자발적 운동이라기보다 중앙이 일사분란하게 진행하는 행사의 성격을 띠었다. 이 때문에 구호는 “검찰개혁, 조국집회”로 일정하게 수렴되는 분위기. (태극기 집회 쪽은 “문재인 퇴진, 조국구속”만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6. 태극기 상징의 재전유/탈환이라는 이유로 태극기 문양 피켓들 및 대형 태극기가 집회 도구로 도입되었다. 9차 집회에서는 그것이 애국가와 결합되었다. 이것이 애국주의로 나아갈지 “나라의 새로운 형상”에 대한 모색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앙 무대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전자로 귀결될 위험성이 높다.
  7. 집회 무대에서 먼 곳, 특히 교대역과 강남역 사이에서는 중앙 무대의 복제 스크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독자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중앙 무대를 등진 대오를 꾸리는 모습도 보였다. 자세히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중앙 무대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난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을 보완하는 것?
  8. 지역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의 대오도 일정하게는 무형의 독립성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9. 주최단체인 사국본이 9차 집회를 잠정적 마지막 집회로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대학생진보연합은 19일 26일에도 대학생 주도로 집회를 계속한다는 선언을 한 상태.

단상

  1. 촛불다중들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위해할 수 있는 검찰권력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검찰개혁을 하라는 명령을 하기 위해 모였다.
  2. 조국은 검찰개혁을 수행할 최소 행위자(최소강령의 이행수임자)로 호명된다.
  3. 국민의 사법주권이 현재 주어진 최소강령인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를 통해 달성되지는 않는다. 대법관 및 검사장 직선, 재판배심원제(국민참여재판)를 보충할 기소대배심제(Grand jury), 법관 및 검사장에 대한 국민소환제 등 국민의 사법주권을 보장하면서 대의기관들을 통제할 제도들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4. 이러한 과제들은 사법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완수될 수는 없기 때문에 국민-다중이 행정주권과 입법주권을 획득하는 과정과 동시병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동물과 집회

“[네팔의 자나 안돌란 당시] 비라트나가르에서는 당나귀와 개와 고양이도 검은색 스카프와 민주주의 구호로 장식한 채 거리를 뛰어 다녔다”(조지 카치아피카스, <아시아의 민중봉기>, 원영수 옮김, 오월의봄, 347쪽)

서초동에서도 “검찰개혁, 윤석열체포” 띠를 두른 반려견이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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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조사편의주의와 윤석열 총장의 과잉대응에 대해

1.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겨레 하어영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과잉대응이라고 생각한다. 하기자의 기사는 윤총장이 윤중천으로부터 ‘접대’를 받았는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진술이 있는데 검찰의 조사나 수사가 없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왜 조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답해야 할 순간에 검찰총장이 나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며 논점을 벗어난 대응을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잉이고 그것이 언론의 질문에 말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으로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두 번째 과잉이다. 이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협박으로 느껴진다.

2. 윤석열 총장이 매우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공직자인 때에 그 공직자의 접대 혐의에 대한 윤중천의 과거사진상조사단 진술이 있었고 이에 대해 추가 조사/수사가 없었다는 것이 하기자의 보도내용이다. 검찰이 누구를 조사하고 누구를 조사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주권자 국민의 주권행사의 필요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검찰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보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기소편의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수사편의주의의 악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

3. 장자연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국회의원의 이름을 장자연 리스트에서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 이름이 홍준표임은 홍준표 자신에 의해 명백하게 밝혀졌다. 홍준표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검사를 혼내 주었다고 유튜브를 통해 자랑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윤지오가 자신의 이름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진술했다며 윤지오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윤석열이 조사를 받지 않은 것이나 홍준표가 조사를 받지 않은 것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문제는 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검찰이 어떤 것은 조사하고 어떤 것은 조사하지 않는가, 하는 것 즉 조사, 수사, 그리고 기소의 임의성이다. 

4. 윤석열 총장은 혐의가 있으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하는 것으로 좋은 평판을 얻은 검사다. 조국 일가에 대한 이른바 ‘먼지털이식’ 수사도 바로 그런 논리와 이미지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조사 회피문제를 제기한 하어영 기자를 고소한 것은 자신을 예외의 자리에 놓음으로써 기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어영 기자를 고소하기 전에, 자신에 대해서도 한 치의 남김도 없이 먼지 털듯이 조사하고 수사하라고 말하는 것이 일관된 태도였을 것이다.

5. 조선일보나 김어준은 윤석열이 ‘접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식의 동문서답을 하고 있고 조국 장관은 그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검찰이 윤석열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하어영 기자의 주장에 기초한다면, 조선일보나 김어준은 윤석열이 접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무엇을 근거로 단정하는가? 또 조국 장관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무엇을 근거로 내렸는가? 공식적인 조사가 없었는데 그에 상응하는 조사자료가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발언의 당사자들은 윤중천 진술과 관련하여 윤석열 총장에 대해 갖고 있는 조사자료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며 만약 있다면 그 조사자료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내가 읽은 김경록 인터뷰 pdf 파일

김경록 인터뷰는 최근의 사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일차자료들 중의 하나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KBS, 유시민과의 인터뷰 자료 두 종류를 정독했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언론과 검찰은 정말 조심해야 할 집단이다.’ 핵심인물의 인터뷰 진술이 위와 같은데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지금 전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사건 스케치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의아스럽다. 추후 시간과 조건이 된다면 코멘트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읽은 자료를 토론용으로 올려두기만 한다.

증여 공통장(gift commons)의 등장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의 삶정치적 성격에 대한 논고

‘증언’은 ‘진실을 밝히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증언은 과학, 예술, 철학과 공통점을 갖는다. 과학, 예술, 철학이 증언의 요소를 갖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윤지오는 장자연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장자연의 증언을 이어받아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현주소에 관해 증언했다. 이 증언은 성폭력적 가해권력이 엄청난 재력, 광대한 인맥, 노련한 기법을 동원해 역사의 어두운 곳으로 은폐해온 진실을 꺼집어 내 말하는 것이다. 이 증언은 이렇게 진실을 증여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차단되어 있었던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또 이것들에 기초하여 과거의 사건에 대한 새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 자신의 주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증언은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의 행사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적 증여의 행동이다. 

2019년 3월 4일 이후 윤지오는 자발적이고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언어적 증여행동에 나섰다.  지난 10년간 경찰, 검찰, 법원을 통해 이루어진 간접적이고 매개적인 증언이 가해자를 찾아내고 실제로 처벌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그가 ‘이 조사를 통해서 국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마다 진상조사단은 ‘기록’에 남는다거나 ‘역사적 평가’가 남는다는 식으로 사건을 역사화하는 답변을 준다. 하지만 윤지오에게 장자연 사건은 자신의 청춘이 아로새겨져 있는 역사이면서 동시에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될 신체적 정신적 상처이고 극복되어야 할 현재적 아픔이다. 이 상처의 치유와 아픔의 극복은 가해자의 규명과 단죄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므로 기록이나 역사적 평가로 만족될 수는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가 김수민과의 카톡에서 ‘이 책[13번째 증언]이 어떻든 이슈가 될 것이고 그 책이 얼마나 팔리든 상관 없이 그것을 바탕으로 영리하게 지금까지 못해본 것을 해 보려 한다’고 말했을 때, 그 ‘영리하게’의 실질, 영리하게 해보려는 그 과제는 바로 이것을 지칭한다.

수사기관을 매개로 한 증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이 증여언어의 수증자는 바로 직접적으로 국민 자신이 된다. 신문, 방송, SNS 등에서 윤지오의 증언을 접한 시민들과 네티즌들이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언니는 용기있고 멋진 사람이에요’ 등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밝은 세상에서 재미있게 삶을 살아냈을 아름다운 젊은이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소리내지 못하게 했던 더러운 이름들을 딛고 더 나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준 지오님을 응원합니다”(juk***won,  2019년 3월 7일, ohmabella 인스타그램)라는 댓글은 윤지오의 증언증여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 증여인지를 명백히 드러낸다. 그것은 가격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의 한 걸음’이라는 긍정적 가치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곧 ‘더러움’은 일의적이지 않다는 것, 그것은 사회적 갈등 속에 노출되어 분열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앞의 댓글에서 ‘더러움’은 가해권력의 특징으로 나타나지만, 증언자에게서 ‘더러움’을 보는 가해자적 시각이 바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가해자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이름을 빌려 나타난다. “더러운 년. 최소한 고인의 아픔을 덜어주는게.? 고인을니야욕에이용하지마라.더불어 정치액션그만둬”(sim1****, 2019.3.5)에서 표현된 “더러움”이 그것이다. 

가해권력에 대한 증언이 있자마자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장자연을 숭고화하면서 살아있는 증언자를 더럽다고 모욕하는 언어가 즉각적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인에 대한 숭고화와 숭배는 산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 아래에 굴복시키는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수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고인 숭고화와 숭배는 권력자들이 산 사람들의 생명력을 착취하고 수탈하기 위해 산 사람들의 자기가치를 격하하는 통제양식이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욕받지만 죽은 후에는 숭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조장함으로써 살아있는 동안의 모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기법이 고인에 대한 숭고화와 숭배라는 테크놀로지이다. 

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죽음이 된다. 그런데 이 테크놀로지는 다른 한편에서 특수한 죽음, 장자연의 죽음만은 비하하고 격하해도 좋다는 예외조항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고인이 숭고한 것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장자연이는 죽어서도 좌빨들 노리개신세로구나ㅎㅎㅎㅎㅎㅎㅎ!!”(inte****, 2019.3.5)라는 정치적 비난의 수사가 그것이다. 죽음은 숭고한 것이지만 어떤 죽음은 모욕되어도 된다는 태도로 이들은 고인이 된 장자연을 비하한다. 그 비하는, “시체팔이 그만해라…”(thde****)라며 고인을 ‘시체’로 물건화하고 상품화하는 언어조차 주저 없이 사용하는 행동양식이다.

이렇게 출판과 공개증언의 개시에 때맞춰 연대자들의 지지와 격려와 더불어 나타난 이 격렬한 정치적 반동(reactions)과 비인간적 모욕(insult) 그리고 진실에 대한 보복(revenge)의 사회심리는 윤지오에게 즉각 신변보호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을, 숨어있던 가해권력이 증언에 대하여 취하는 대응과 위협으로 읽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8일 가족간 카톡 소통은 증언 이후에 닥쳐오고 있는 이 신변불안을 여실하게 나타낸다.

“엄마: 빨리 와 그게 최선이야 …비행기 변경해서오버되는 돈 엄마가 줄게 … 늘 조심하고 밤에 돌아 다니지 마 사람 많은 곳에 있고 뒷골목으로 절대 나니지 말고 …꼭 택시타고.. 숙소 꼭 알려주세요!!! 이동시마다 알려주세요!!!!!!! 되도록 빨리 와!!! 그게 최선일 듯

내사랑: 댓글은 보호 안해주니까”

그런데 3월의 2차 한국 방문은 국가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신변보호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국민이 행한 청와대 신변보호 청원은 많은 사람이 동의참여를 했지만 한 달 뒤인 4월 초가 되어야 정부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3월 13일 윤지오 가족은 응급조치로 어쩔 수 없이 사비로 사설경호원을 고용하기로 결정한다.

“오빠: 엄마가 무장경호원 붙여준데 지금 견적 뽑았음 24시가 2명 교대로…차량 지원해준데.

윤지오: 나는 증언자인데..한국은 항상..사건사고후에 움직이는게 슬프다 오빠..

오빠: 여기도 마찬가지야 사람이 죽어야 경찰오고 수사시작돼…..

엄마: 안전이 최고! …이제 경호원이 밀착해서 경호해 줄거니 안심해 차량도 지원해주니 편하게 다녀”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윤지오의 자비 무장경호는 가해권력자들에 의한 보복이 따를 수 있는 증언에 수반되는 필수경비이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과 더불어, 국민과 대한민국의 주권 증진과 세계시민들의 행복증진에 이바지하는 윤지오 가족으로부터의 증여에 해당한다. 이것은 분명 계약과 교환에 의해 주어지는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힘과 가치가 윤지오와 그 가족으로부터 국민들과 시민들에게  주어진다(be given)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경호비는 윤지오 자신의 재산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증여를 위해 엄마의 재산이 사용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윤지오는 엄마에게 빚진 것이 되며 이 때문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야 했다.

“네 감사해요. 그간 맘고생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엄마가 또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셨기에 이렇게까지 용기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신께서는 감당할 고통만 주실테고 제가 감당할 수 있기에 감사해요. 앞으로 제가 엄마도 지킬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또 선한 기업인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좀 냉혹해 보이지만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이 가족 대화에도 적용해 보자. 감사(thank)는 정치경제학적 의미에서는 채무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think)는 약속이다. 윤지오는 엄마에게 선한 기업인이 되어 엄마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겠다는 약속을 한다. 자신을 대신해서 엄마가 경호비용을 부담하게 되었기 때문에, 윤지오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받는 조건으로 가족 관계 속에서 빚진자(채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미래시간과 미래의 삶이 가족에게 담보로 잡히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 그는 선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엄마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빚짐의 의식은 더 일반화되어 윤지오는 엄마만이 아니라 신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신에게도 정신적으로 빚지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고마워~~ 울 딸이 힘들 때마다… 엄마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면서 딸을 위한 경호비용 지출을 자신의 ‘큰 행복’(‘다행’)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전통적 증여 공동체인 가족의 태도이다.

그런데 정작 헌법과 공익신고자 보호법(공익신고자 보호법 13조 1항 신변호보조치: “공익신고자 등과 그 친족 또는 동거인은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었거나 입을 우려가 명백한 경우에는 위원회에 신변호호에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경찰관서의 장에게 신변호조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2항 제1항에 따른 신변보호조치를 요청받은 경찰관서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즉시 신변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에 따라 신고자/증인의 보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국가 ‘공동체’는 어떤가?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윤지오 신변보호 청원을 받고도 이후 다시 변호사로부터 윤지오 신변보호 요청을 받을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증언자가 명백히 국민의 알권리와 주권 증진을 위해 증언을 하고 있고 그 증언으로 인한 보복 우려에 대비해 사설 경호비용을 지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대의하는 국가는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일까?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항상 국민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이 역사적 상례였다.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나 1987년의 시민항쟁, 2008년의 촛불집회나 2014년의 세월호 집회, 그리고 2016년의 촛불혁명 등은 대의민주주의가 기능장애에 빠진 순간에 시민의 직접행동이 그것을 치유하는 힘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용된 사람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주인이 나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019년 9월 28일의 서초동 촛불집회도 선출되지 않은 검찰권력이 비대해져 선출된 대의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권력원천인 국민이 ‘검찰개혁’이라는 요구를 내세우며 직접 자신의 사법주권을 주장하며 나선 사건이다. 

국민을 위한 증언자가 국가 공동체에 의해 방치되는 상황을 지켜본 네티즌들은 윤지오 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이게 나라입니까? 너무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ma_***ong, 2019년 3월 13일 ohmabella 인스타그램)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후원계좌 열어주세요. 사람 한명 살린다 생각하고 후원할 거예요. 진짜….경찰들은 믿을만한 것들이 못되네요.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지만… 이제 더 이상 뉴스에서 안 좋은 소식은 안 듣고 싶네요. 용기내어주신 윤지오님 항상 응원할게요”(amd*****13, 2019년 3월 13일 ohmabella 인스타그램)라며 후원계좌 개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3월 14일에도 후원계좌 개설을 요구하면서 한 네티즌은  “이건 윤지오 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장자연 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피해자분들 그리고 넓게 봐서는 우리 국민들을 위한 겁니다! 윤지오 님이 끝까지 안전하게 싸워주셔야 우리도 이런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ㅠㅠ 연대합시다”(byj****)라고 말한다. 증언은 증인의 몫이지만 증인이 안전하게 싸울 수 있도록 최대한 연대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는 정확한 인식에 따라 후원금 계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연대의 입장에서 후원금 계좌 개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오씨 항상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혹여 지오시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지쳐하실까봐 매번 걱정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여성분들이 밤에도 눈 한번 감지 않고 지켜볼 것이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겁먹지 말고 지쳐하지 말아주세요. … 남성들에 의해 마치 고깃덩어리마냥 죽어나가고 죽어나갈 여성들만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우리 여성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고 연대할 것이고 이길 것입니다. 용기내주시고 힘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그리고 혹시 경호비 모금 받으실 생각 없으신 건가요? ㅠㅠ”

이러한 목소리들에 윤지오는 이렇게 답한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신변보호에 걱정을 해주시고 그런 염려를 하게 해드리고 마음을 무겁게 해드리는 것 같아 국가에서의 도움을 받기에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판단에 사설 경호원을 24시간 대동하게된것을 말씀드렸어요. 현재의 상황이기도 했고요. 이런 사실을 아시고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생각지도 못한 후원계좌를 말씀해주고 계신것 같아요.댓글과 DM[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시고 계시지만 제가 감히 뭐라고 여러분의 열정으로 창출한 귀하고 값진 금액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정도로 한것이 아직 없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고있고 아직도 무엇이 좋은지 방법과 자문을 구하고 신중히 제 개인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저보다 어려움을 겪고 계시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분들께 전달되어지면 너무나 의미있고 더 뜻깊지 않을까란 생각이되었어요.”(3월 14일 인스타그램)

후원계좌는, 윤지오가 사기를 기획했다는 고발자나 악플러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후원계좌 공개 제안을 받고서야 윤지오는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데 증여교환의 관계와 영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  일정한 돈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먼저 지불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이 정도로 한 것이 아직 없는” 것이다.  

그런데 증여증언은 계약교환의 관계형식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증여증언은 측정될 수 없는 가치, 교환가치로서 서로 비교불가능한 말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몸과 행동으로 증언이라는 증여행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증여-수증-답례의 순환으로 나타나는 증여관계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약교환의 관계가 지배적으로 된 현대 자본주의에서 증여교환의 관계는 예외적 교환양식으로 치부되고 억압되며 부단히 계약교환의 문법, 관례, 언어로 번역되고 치환됨으로써만 마치 이해된 것처럼 간주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여관계는 여전히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당장 개개인의 출생부터가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다. 가족관계, 친구관계와 같은 상당 부분의 관계가 계약관계가 아니다. 이런 전통적 관계만이 아니라 디지털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계약교환의 관계가 아니다. 이렇게 삶의 상당부분이 증여교환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계약교환 관계의 문법을 통하지 않고는 번역할 수 없는 의식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의 세계시민들인이 처한 보편적 딜렘마이다.  증여관계는 전근대적 친밀성 관계나 탈근대적 온라인 관계 모두에서 일상적으로 실재하는 흔하디흔한 관계이면서도 상품교환의 관계의 지배로 인해 관계와 교류의 합당한 형식으로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증여관계의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위상변화로 인해 증여는 뇌물, 사기와 부단히 혼동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윤지오의 증언증여와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증여를 계약교환의 문맥에서 독립된 증여교환의 독자적 문법 속에서 더 일관되게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티즌들의 이러한 후원계좌 개설 요구를 받아 방송에서 처음(3월 15일)으로 언표한 것이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이다.  이상호 기자는 이미 3월 13일에, 신변보호 요청을 한 윤지오가 자비로 경호를 하기로 한 사실을 고발뉴스에서 보도한 바 있다. 또 그는 장자연 사건 ‘보도’로 인해 이미숙 배우로부터 고소를 겪은 바 있는 경험자로서, 윤지오가 ‘증언’으로 인해 권력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신변보호를 위한 경호비만은 국민들의 손으로 마련해 주자는 뜻으로 후원금 통장 개설을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증여론의 맥락에서 이 제안은, 국가가 증언자로부터 받은 증여에 대해 필요한 답례증여를 행하지 않고 있는 무례(無禮)의 상황에서, 그리고 그 무례가 증언자의 신체를 위험에 방치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주인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증언자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답례증여를 직접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윤지오는 3월 14일과 동일한 취지에 따라 이 제안에도 응하지 않는다.    

“후원계좌도 너무 많이 말씀해 주시는데 여러분들이 고생하시면서 번 돈을 감히 받기가 너무 죄송스럽고요. 저는 젊잖아요. 아직 저야 뭐 노동을 통해서도 열심히 벌면 되고 … 또 거절하는 것조차도 또 되게 건방진 것 같아서 계속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알아주셨으면 좋겠구요.”(3월 15일 발언 녹취: https://www.youtube.com/watch?v=kOh4CrB_nSk&list=PLnjhiitCpmZtTDRnfnPhDdPn8mAoxPRRO&index=25, 1시간 53분 전후)

시민들이 고생해서 번 돈을 받기는 죄송스러운데 거절만 하는 것도 무례한 것 같아 난처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실제로 계약교환이 아닌 증여교환의 관계에서는 증여가 공동체적 연대의 의사표시인 만큼 그에 대한 답례도 공동체적 연대의 의사표시이다. 따라서 증여교환의 관계에서 답례의 거부는 연대의 거부로 인식되어 상호 연대관계를 깨고 전쟁관계로 들어가자는 의사표시로 해석되곤 한다. 후원금에 대한 거절이 ‘건방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난처하다는 생각은 이러한 증여교환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틀 뒤인 3월 17일  윤지오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을 위한 4.16 기억저장소에 개인 후원금을 기부하러 갔다. 이 자리에서 4.16기억저장소 대표인 김00 어머니로부터 4.16기억저장소도 100%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후원금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는 예(禮)가 아니라는 취지의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2019년 3월 18일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은 일대 사건이 기록된 장소로 나타난다. 신한은행 통장에 입금된 후원금액(약 1억 1천 7백만원, 참고로 현재의 잔고도 약 1억 1천 7백만원이다)보다 놀라운 것은 후원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다. 3월 18일 22시 45분부터 3월 19일 13시 50분까지 총 15시간 5분 동안 동안 무려 5745건의 송금참여가 이루어진다. 1분당 약 6.4명이 후원송금에 참여한 것이다. 

단 시간에 이런 속도의 송금참여가 이루어진 경우가 있을까? 나로서는 이런 경우를 떠올릴 수조차 없지만 있다면 아마 사익을 위해 경합이 붙은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후원참여의 경우에 송금 하나하나는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것이고 좀더 엄밀히 말하면 공통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즉 장자연 사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에 공감하면서 그 용기에 감복하고 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증언을 해달라는 요구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사를 담은 송금이었다. 

이것은 증여교환 순환관계에서의 행동, 즉 윤지오의 증여증언에 대한 답례증여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증인의 신변안전을 바라는 열망과 증인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려는 연대의 취지가 아로 새겨져 있다. 이것은 증인의 신체가 나의 신체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공통장적 인식의 표현이다. 실명으로 증여한 사람도 있고 익명으로 증여한 사람들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이름 대신 적어 보냈다. 그 구호들은 통장 위에서 집회의 깃발이나 만장처럼 펄럭인다. 아래에 이름 대신 찍힌 문구들 중 이 후원금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하는 것들을 몇 개 골라 적어보자. (아마도 8자로 제한된 것으로 보이는 글자 제한 때문에 문구가 잘려 있는 경우도 있는데, 잘린 글자는 잘린 그대로 쓴다)

“윤지오짱예쁨, 힘내세요~~^^, 강0예지 존경, 유00고발후원, 고맙습니다, 적어서미안해요, 윤지오지킨다,정00(홧팅!!), 그대미소영원, 진실은승리한다, 항상응원할게요, 응원합니다, 지오님 감사해, 증언자윤지오, 벨라 화이팅, 멋진사람윤지오, 적게나마보태요, 함께하겠습니다.그동안수고하, 제주도연우맘, 정의사회구현, 용기에감사합, 고마워요!힘내, 딴게니키스오, 지지합니다, 끝까지함께해요, 혼자가아니에요,도움이되길, 용기내주셔서, 소액이라죄송,다담주에더보낼, 무너지지말아요, 끝까지함께가요, 언니힘내세요, 당신이지치지않, 용기감사합니다,연대합니다, 끝까지연대하겠, 나00달려라, 이시대영웅입, 경호는내가맡는, 같이해요!화이, 터널지오최고ㅋ, 전재산이이것, Justice…, 무탈기원, 용기잃지마세요, 꼭취뽀해서힘드, 멋져요힘내요, 증언에는후원, 긴시간을지나가, 지오님힘내세요, 금쪽같은 윤지오, 부디안전하시길, 힘네세요고맙습, 쫄지말기!!힘내, 함께싸울게요,실수투성이밤,딴지방판소년단,끝까지싸워주세, 대신해서 감사, 용기에응원과, 촛불하나, 아자!, 배우님힘내세요, 지나가는과객, 15번째증언응원, 깨어있는시민, 사필귀정, 적은돈죄송해요, 연대합니다, 작은용기가모여, 힘이되어드리고, 저희가함께할께, 백수라서,조금, 진실은밝혀진다, 두달연장화이팅, 감동감사함께해, 포기하지마세요, 사설경호후원금, 늘초심으로힘내, 고기도사드세요, 담엔더보낼게요, 그 용기에 박수, 다치지마세요, 많은여자들이같, 걱정하지마세요, 이제우리가지켜, 같은여자로써응, 김00.지켜줄, 증언감사합니다, 지치지말아요, 짐을지워미안해, 정의가승리하기, 진실이밝혀지기, 쭉 연대할께요, 봄은꼭돌아오거,진실은침몰하지, 학생이라부족하, 지나가는스님입, 훌륭하십니다.., 기도보탤께요, 끝까지살아주세, 지오님지지마세요, 김학의구속, 이것밖에힘이안, 학생이라죄송해, 홀로싸웠을시간, 커피사드세요, 언니아프지마요, 적지만마음만은, 당신은착한사람, 우리모두가증인, 이봐요힘내요딴, 큰용기감사합, 끝까지지지말아, 우리가지키겠, 밥한끼라도힘나, 아자아자!!!!, 돈패닉, 정의는이긴다, 그대의 용기에, 대한민국이응, 두딸의아빠 힘, 이렇게라도제망, 미안해요고마워, 용기내줘고마워, 딴게이와같이가, 함께임을잊미마, 이길수있습니다, 무사기원부탁, 지켜드릴게요, 토론토박00힘, 000국회의원, 일반시민, 기린은울지않는, 윤지오씨를국회,KOOL하게, 의인은힘내시라, 한국페미니스트, 서로의용기, 경호비용지원, 정읍아인이아빠, 행복합시다-딴, 성불하십시오, 본명이더예뻐, 진실을 응원합, 어느시각장애인, 소시민의정의, 사랑합니다.응, 죄지은자반드시, 윤배우님고맙습, 용기가대단해요, 힘들어지오화이, 우리는서로의용, 진실승리, 낙숫물이바위, 곁에있어요, 진실규명을위, 꿋꿋하고당당, 행복하게사세요, 윤지오씨경호비, 머리숙여감사드, 당신은멋진사람, 온마음으로연대, 이길거에요, 잊지않고지지합, 강한멘탈을지지, 당신이자랑스럽, 핸사리반짝, 차비라도보태요,  ……..”

위의 문구들은 틀림 없이 서로 다른 곳에 있었을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대동소이하게 여러 차례 반복되는 문구들이다. 다시 말해 이것들은 서론 다른 사람들의 공통의 정동과 공통의 인식, 공통의 의지를 표명한다. 천원부터 백만원까지 (평균하면 1인당 약 2만원의, 그러나 결코 평균해서는 안 될) 크고 작은 송금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방식으로 합류하는 무수히 많은 응원과 격려(힘내세요, 이깁니다 등등), 무수히 많은 연대결의(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함께연대하겠습니다 등등) 무수히 많은 감사(당신의 증언과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미안함(짐지워서 미안합니다, 소액이라 죄송합니다 등등)의 격류이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이 정동의 격류는 서로를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후원금 흐름의 형태로 이루어진 집회(assembly)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증인의 용기에 감사하고 지치지 않도록 격려하며 진실의 승리를 기원하고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이것은 윤지오의 진실증언 증여에 대한 답례의 증여로서 진실규명과 진실승리를 위한 용기와 연대의 공통장(commons)을 구축하는 힘의 출현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상호증여를 통해 서로의 진실과 힘을 다지는 무형의 공간이 생성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사건을 ‘증여 공통장의 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2019년 3월 18일 이후 15시간 여에 걸친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은, 우리의 서랍에서 흔히 발견되는 은행통장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겠지만, 결코 경제적 수입과 지출이 기록되는 사인(私人)의 통장이 아니다. 그것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와 이 체제의 가해권력에 대한 저항의 용기, 진실규명의 의지, 함께 이 체제와 맞서자는 연대의 결의, 이 실천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로빚짐(감사)의 확인이 표현된 정치적 공간이고 그 정치적 목소리들이 낱낱이 기록된 삶정치적(biopolitical) 문서이다.  이 통장에는 경제적 일상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드물다(rare)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특이하다(singular)는 의미에서 사건의 문서이다. 

이 사건은 화폐로 기록된 사건이다. 맑스는 화폐가 교환수단, 지불수단, 축장수단, 세계화폐라는 네 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화폐는 이 중 어디에 속하는 기능을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통장에 입금된 화폐는 상품의 대금으로 송금된 것도 아니며 이미 산 상품의 대금을 지불한 것도 아니며 부를 모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한 맥락에서 신한은행 통장의 화폐는 증여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증여는 경호비라고 불리는 특이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5745명(이 숫자는, 15시간 여의 입금흐름 후 신한은행 계좌를 윤지오가 닫음으로써 강제로 제한된 숫자이다)의 후원집단이 무엇을 ‘경호’하려고 한 것인가? 무엇을 ‘지키려고’ 한 것인가? 윤지오의 신체를 지킴으로써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진실을 지키고 그것에 대항 저항을 지키며 그 저항의 연대를 지키고 서로에 대한 빚짐과 상호의존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다시 말해 진실의 연대를 위한 증여의 공통장을 경호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의미에서 신한은행 통장의 화폐는, 결코 경제적 수치로 환원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삶정치적 화폐였고 삶정치적 언어 그 자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송금 그 자체가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이미 삶정치적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3)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9

2018년에 윤지오는 증언을 달라는 검찰(검사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장자연에 대한 조0천의 강제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해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증언했다. 그 증언들은 경찰 수사관에게 했던 2009년의 증언과 유사하게 검사나 조사위원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이 증언들은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얼굴 없이 이루어졌다. 

2019년에 윤지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증언의 대상을 소수의 수사 및 조사 전문가에서 국민 대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직업으로서 수사나 조사를 하는 전문가를 매개로 했던 간접증언에서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 국민 대중을 향한 직접증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2018년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실명을 가리고 얼굴을 숨기는 식의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실명과 실면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명 증언은 2018년 피디수첩 인터뷰 및 JTBC와의 전화인터뷰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국민의 명령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진 이 절호의 기회에 실명, 실면의 증언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하는 증언보다 증언의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장자연 사후 10주년에 맞추어진 <13번째 증언>의 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간접증언에서 직접증언으로, 폐쇄증언에서 개방증언으로, 수동증언에서 능동증언으로, 타율증언에서 자발증언로, 수세증언에서 공세증언로의 이러한 증언 태도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일까? 

우선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10주년이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13번째 증언>, 224쪽)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학의, 버닝썬 등의 동종사건과 연동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아진 상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와 연관된 것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사권도 없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겨우 6명의 조사위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재조사가 과연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즉 국가에 대한 의문의 문제이다. 실제로 2009년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직후 초동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무려 42명의 수사팀이 꾸려졌고 대대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재수사는 가해혐의를 받은 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는 절차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해 보면, 비록 정부가 바뀌었고 촛불국민의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조건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한계인식 속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은,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주고 국민이 이 증언을 기초로 재조사라는 사법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 윤지오가 염두에 둔 것은 애초에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도록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그것은, 국민이 대의자들에 대한 소환, 해임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국민이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갖고 그것에 관여하는 주체로 되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여 위로부터 답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주 약한 표현형태이다. 윤지오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법 위의 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자생적 법철학 속에서 그는 국민의 제헌적 역량(법 위의 법)이 실정법(법)을 통제하고 재구성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러한 생각 위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증언 인터뷰를 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광장에서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소식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 3월 4일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는 뉴스공장을 기점으로 며칠간에 걸쳐 조선일보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방송사와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민들은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와 접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세 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1)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증언조서라는 것, (2)증언조서가 유서로 둔갑되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만큼 문건이 유서가 아닌 것이 명확한 한에서 장자연의 사망원인에 대한 원점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3)그 증언조서와는 별도로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성상납을 강요”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4)장자연이 당시 술자리에서 보였던 일련의 모습을 보면 이 “성상납 강요”가 마약을 강제 주입 당한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5)“성상납을 강요”한 이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에서 방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기억난다는 것 등이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주어진 이러한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류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자연은 우울증을 앓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고 그 유서에서 폭행과 협박을 한 당사자인 김종승은 처벌을 받았으며 장자연이 술접대나 잠자리를 강요받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나 ‘방사장의 아들’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며 문건의 해당 구절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 수사발표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주어진 주류 상식과 윤지오의 새로운 대국민 증언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증언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류 상식 세계에서 장자연 사건은 (다행히 경찰이 의도하고 있었던 장자연의 사기 미수사건으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기껏해야 악덕 기업주의 일탈적 악행 사건으로 인지되었다. 이럴 때 그 최종 책임은, 김대오가 주장하는 바처럼, 더 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윤지오의 증언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의 집단적 성폭행 사건으로, 즉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문제로 인지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특수강간 사건이나 살인 사건의 관점에서도 수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이럴 때 최종 책임은 권력자들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주어지게 된다. 이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는 기존의 사법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공소시효가 아직 충분히 남은 사건으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증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그 관심과 지지는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준 윤지오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고 그 증언에 따라 장자연 사건의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3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우선 신변보호요청 청원자는 이렇게 쓴다.

“고 장자연씨 관련, 어렵게 증언한 윤00씨의 신변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목격자진술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의 불이익, 또는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신변보호를 청원합니다. 보복, 불이익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 그 밑바탕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20대초반에 그 큰 일을 겪고 10년간 숨어 살아야했던 제2의 피해자 윤00씨의 신변보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원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이 정의로운 사회의 밑바탕인 만큼 증언자에게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요청은 윤지오의 증언을 사회에 대한 진실증여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증여를 받은 국민이 수증자로서 진실증여자에 대한 신변보호라는 최소한의 답례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후세대에게 떳떳한 나라의 성원일 수 없다는 것을 신변보호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86,50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청원, 즉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 요청은 다음과 같은 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고 장자연씨의 수사[조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수사기간을 연장해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의 초기 재수사에서 참고인 및 피의자 진술을 통해 명백히 제기되었으나 경검의 수사를 거친 후 사라진 주제다. 윤지오의 증언은 이 주제를 1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사회적 의제로 다시 가져왔다. 이 청원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을 재수사 연장의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청원은 신변보호 요청보다 많은 738,56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주어진 기간내 20만명 이상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낼 때 정부는 답변의 의무를 진다. 실명과 실면으로 국민에게 직접 증언키로 한 증언방식의 전환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매개로 윤지오가 다른 국가기관을 만나도록 만든다. 지금까지는 사법경찰과 검찰 및 법원이라는 사법 계통의 국가기관만을 만났으나 이제 청와대와 행정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후에는 입법부인 국회(의원)도 개입하게 됨으로써다.

청와대는 이 두 청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지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그 지시의 전문은 좀 길지만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 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 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 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랍니다. 


강남 클럽의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인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 기관이 유착하여 묵인・방조・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입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 시기와 유착 관계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므로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사한 불법 영업과 범죄 행위, 그리고 권력 기관의 유착 행위가 다른 유사한 유흥업소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사건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인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 등 행정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특권층’) 범죄로 규정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통해 진실규명을 가로막아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한 정황들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규정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는 특권적 주체였던 경찰과 검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점에서 관점의 커다란 도약과 진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윤지오는 3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통령의 이 응답을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일”로 평가하고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되었”다고 밝힌 후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지시에는 숨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지시가 검찰과 경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설정한 후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조사와 수사의 대상인 검찰과 경찰을 다시 조사와 수사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깊은 반성”을 통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제3의 조사/수사 주체를 구축해야 할 시점, 즉 수사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는 방향의 혁명적 발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다시 경찰과 검찰 자신을 자기수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검찰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권세력으로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않을까? 수사와 기소에서의 국민주권을 골간으로 하는 경찰 및 검찰 기관의 실질적 개혁이 부단히 지체되고 실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이런 양면적 태도와 무관할까? 이런 지시 이후에 실제로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가 포함되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담겨 있었던 최소한의 진실추구적 요소마저 지워버리면서, 재수사의 길을 닫아버리고 사건 재조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이러한 종결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변보호 청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의 일정한 반응이 있었다. 3월 8일 시작된 청원이 마감되기 전인 3월 14일 윤지오 변호사로부터 신변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청은 동작경찰서로 하여금 “△스마트워치 제공 △112 긴급 신변보호 대상자 등록 △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하도록 결정하고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 증언 중에서 재조사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윤지오를 재차 증인으로 불렀고 이 조사에서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나 출판물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가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들의 실명)을 증언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3월 30일 윤지오가 “스마트 워치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경찰관이 9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은”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경찰은 3월 31일 스마트워치 전체에 대한 긴급점검 실시를 약속하고 새로운 숙소로 윤지오를 이동시키고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가 동행 밀착 보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뒤 경찰은 3월 30일 당일 윤지오가 불안감을 느껴 스마트워치를 누르게 된 것이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 의한 것이며 스마트워치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지 않게 된 책임도 윤지오의 기기 조작미숙에 있었다면 책임을 윤지오게게 돌렸던 것도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 등에 떠밀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은 일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보호하고 은폐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예민한 책임감을 보이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국회는 어떠했던가? 국회는 윤지오 동행의원모임 구성과 간담회, 그리고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라는 형태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애초에 국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출판기념 북콘서트가 하루 전날 취소된 것도 신변안전 문제였다. 윤지오는 출판기념 북콘서트 무대에서 자신과 가까이 서게 될 출연진이 누구인지,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지 확인해 주기를 요청했고 극장측이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북콘서트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안민석의 주도와 공익제보자 모임의 연대로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무렵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증언자 윤지오를 동행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4월 초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과정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개되던 반윤지오 흐름의 표면화와 겹쳐졌다. 이 흐름은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나 악성 DM의 수준에 머무렀던 지하흐름이었으나,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증언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또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예정에도 없던 추가증언을 윤지오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 그 자체가 재수사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강하게 표출되고 표면화된다. 이것이 가해권력측이 느낀 위기의식의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증언에 대한 이 반동(reaction)은 호야스포테인먼트 전 실장 권0성의 발언을 근거로 삼은 뉴시스의 윤지오 공격과 박준영의 증인검증론을 거쳐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사기론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핵심은 증언에서 증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작업의 선봉에 섰는데, 장자연 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윤지오의 인성과 도덕성이 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제도언론들의 센세이셔널한 보도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의 까판 담론이 결합되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윤지오 동행모임은 동행은커녕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윤지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이 동행모임의 침묵은 이후에, 윤지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간 전혀 접촉한 바 없다는 해명, 윤지오의 난처함보다 자신과 동료의원들이 윤지오로 인해 겪는 난처함을 중시하는 엘리뜨주의적 냉정함, 다른 공익제보자로부터 윤지오를 분리시키는 교묘한 언어놀음 등으로 범벅이 된 항복문서를 가해권력 앞에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긴밀한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 받을 때에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선적 과정의 끝에 윤지오는 10년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 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 작가, 기자,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했다. 일찌기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자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끝)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2)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8

장자연의 육성파일이 말해주다시피 증언조서 문건을 작성한 후 장자연은 짧은 기간동안 마녀사냥에 시달렸다.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의 별의 별 이야기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가 이후 오랫동안 겪게 되었을 수난 이야기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의 마녀사냥이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장자연의 수난사는 극적으로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폭력 가해혐의자들 모두가 무혐의 처분되었다는 것은 국가 사법의 수준에서 장자연 문건의 핵심이 허위인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고 장자연의 문건작성을 미수로 그친 사기행위로 본 경찰의 시각이 사법적 수준에서 관철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 사법의 수준에서 이러한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다중의 마음에 수용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사법의 이러한 판결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러한 판결에 이르게 된 수사상의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019년 7월 12일 오후 7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렸던 제1차 페미시국광장 집회 <시위는 당겨졌다. 시작은 조선일보다>에서 한 여성 발언자는 성폭력은 여성이 겪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우리는, 성폭력이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 범죄행위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며 가부장 체제 자체의 내밀한 논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절도가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 범죄행위가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내밀한 논리를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08년의 촛불집회가 여고생들(촛불소녀)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들, 그리고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들에 의해 탄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성폭력 의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의 퇴진/탄핵을 초점으로 삼았던 2016년의 촛불집회에서는 오히려 (박근혜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적 언어가 촛불의 언어로사용되기까지 했다. 성차별 문제에서 촛불이 보이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성폭력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기 위한 본격적 노력은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폭발해 나왔다. 그것이 2018년의 미투이다. 미투 운동은 “나는 성폭력을 겪었습니다”라는 미투형식의 증언조서 문건을 작성한 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이 재조사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이 재조사는, 새로운 조사주체의 구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검찰 관료계급의 자기반성이라는 형식 속에서 전개되었다. ‘과거사조사위원회’라는 이름은 정확히 이것을 반영한다. 진상조사단 차원에서는 검사 2인 외에 대학교수 2인, 변호사 2인이 참여하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가 대검 산하에 놓여 있는 한에서 검찰이 자신의 과거사를 스스로 조사한다는 본질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우리 속담에서 불가능하다고 한 것, 즉 중에게 제 머리를 깎게 하고 의사에게 제 병을 고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틀 속에서 장자연의 증언조서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기행각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기존의 시각이 바뀔 수 있겠는가? 윤지오가 대한민국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증인으로 소환된 것은, 불행하게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이다. 검찰은 윤지오가, 장자연 사건을 과거지사(過去之事)로 돌리는 데 협력하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구천을 떠돌며 끊임없는 재조사 요구로 가부장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그 영혼을 영구 안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검찰은 윤지오가 이 사업에 협조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윤지오의 증언이 미투봉기를 통해 다시 불러내어진 그 영혼을 달래고 미투가 제기한 문제를 미봉하면서 정치권력을 안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윤지오는 검찰의 과거사조사위원회가 갖는 이러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가 처음에 검찰의 참고인 출석요구에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까지 말하며 장자연 사건 재조사를 위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그가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먼저 설득해야 했다. 20대 초의 나이에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에 참고인으로서 어려움과 억울함을 무릅쓰고 증언을 통해 협조한 바 있는 윤지오가 30대 초에는 왜 국가의 증언 요구에 협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하나는 국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다. 경찰은 참고인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밤새 수사하기를 반복했다. 밤샘수사, 장시간 수사는 피의자를 괴롭려 자백을 이끌어내는 악명높은 수사기법이고 수사관행이다.윤지오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당한 수사방식에 적극 협조했다. 장자연의 ‘억울함’을 풀고 조금이라도 ‘위로’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타난 결과는 가해권력자들이 모두 무혐의로 면죄된 것이었다. 수사기관은 장자연이 리스트에 기록한 사람들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문건에 이름이 또렷이 기록된 사람들도 무혐의처분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자신이 강제추행 현장을 직접 목격한 바 있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바 있는 가해자(조0천)마저 무혐의 처분한 것이었다. 기억 속에 분명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를 밝혀야 하는 이 과정에서 윤지오는 경찰이 밤샘수사, 장시간수사, 최면수사, 논점일탈수사 등으로 자신의 기억을 교란시켜 가루로 만들고 남성 동석자들이 서로 입을 맞춰 성추행을 본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경험했다. 부인이 현직 검사였던 그 남자는 대질신문에서 윤지오가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지오가 느낀 심경과 감정은 대질신문조서에 다음처럼 나타나 있다.(질문자는 사법경찰관 손0천이다.)

“문: 조0천이 장자연을 잡아당기어 무릎에 앉힌 다음에 장자연의 가슴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다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이때 진술인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문: 진술인은 지금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인가요.

답: 아니예요….

문: 진술인은 조0천이가 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답: 제 생각에는 진짜 기억이 나는데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한편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분이 인생이 달려 있다고 하는 말을 했지만 저 같은 경우도 이와 같이 말을 한다고 해서 자연이 언니가 살아 온다고 볼 수가 없고, 저 분이 자연이 언니의 죽음에 대해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에 격분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가라오케에 참석한 변0호 대표, 김대표와 저분은 친한 분이고 제 편은 한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말을 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오늘 경찰서에 왔을 때 방송사에서 저를 상대로 취재를 하면서 저에게 물어보기를 잠자리도 같이 했습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 저 자신이 이곳까지 와서 그런 말을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저분이 자연이 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저분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은 저도 알지만 죽은 자연이 언니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 제가 스스로 말을 한 것인데, 저 분은 자연이 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을 하였고, 저 같은 경우는 저 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반성을 하거나 사과를 했다면 제가 본 것이 잘못 보았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저 분이 끝까지 그 자리에서 저를 본 사실이 없고 자연이 언니에게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 진술인은 계속하여 울면서 휴지로 눈물을 닦고 진술하다)”

윤지오가 국가기관인 경찰에서 직면한 것은 취재왔던 방송기자들이 피해자인 장자연과 자신을 마치 윤락녀인 듯이 대하고, 피의자 조0천이 동석했던 남성들과 합세하여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이 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진술하는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말을 비웃고 심지어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우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끼는 “격분” 때문에 윤지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이 장면의 정동적 측면이다. 

윤지오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잠자리도 같이 했습니까”라는 방송기자의 가해자주의적 시각은 때로 경찰 수사관에게서도 발견되는 시각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조0천과의 이 대질의 시간에 윤지오는 언론, 경찰, 남성이라는 세 가지 권력에 포위되어 자신이 목격한 사건에 대한 진술이 억울하게도 거짓말로 내몰리는 참담한 억압의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이 고립과 억압의 체험이야말로 10년 여가 지나 요구받은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증언요청에 윤지오가 선뜻 나설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유였다.  

또 하나는 첫 번째의 국가에 대한 불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의 한 계기를 이루지만 따로 논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훨씬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삶정치적인 이유로서 검찰이 증언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장자연은 아무 힘이 없는 자신에 비해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물리적 성적 폭행, 협박과 강요를 당한 피해자임에도 그 피해사실들을 증언조서 문건으로 작성했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성적 험담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다가 실제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검찰이 불러 윤지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자 하는 증언이 장자연의 죽음을 가져온 그 증언조서의 증언과 과연 달랐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경찰 수사기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윤지오는 장자연과 술접대하는 자리에 언제 참석했고 거기서 무엇을 겪고 무엇을 느꼈는지, 대표 김종승이 장자연과 자신에게 어떤 행위를 했는지, 장자연이 문건에 적은 피해사실 증언들과 관련하여 함께 겪은 것이나 추가로 생각나는 것이 없는지, 장자연에 대한 가해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등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윤지오는 증언조서를 썼으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진정한 증인인 장자연을 대신하여 증언해야 했다. 유태인 집단학살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학살당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진정한 증인 무젤만(Muselmann)을 대신하여 불가능한 증언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한편에서 윤지오 역시 장자연의 그 ‘말할 수 없음’을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의 증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윤지오는 장자연과 동일한 경험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2009년 2월 어느날 유장호로부터 ‘피해사실에 대해 써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쓰지 않았던 그 문건, 장자연의 죽음을 가져온 그 피해사실 문건을 수사관 앞에서 뒤늦게, 말로 써야 하는 증인이었다. 가해자들의 이름을 뒤늦게 쓴다고 해서 과연 안전한 것일까? 동일한 가해자들이 시퍼런 권력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현실에서 진술로 쓰는 그 문건이 아직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장자연의 증언조서는 이 땅의 여성노동자가 겪는 일상적 피해경험이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힘센 권력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에 대한 피눈물의 기록이었다. 장자연이 권력자들의 위선과 부패 및 폭력성을 증언조서에 기록한 이상, 장자연을 대신해서 증언해야 하는 윤지오 역시 그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증언에 협박과 보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장자연이 선례로 보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윤지오가 증언을 한 후 기자들에 쫓기면서 ‘이순자’ ‘동료 여배우 X’등의 가명 뒤에 숨어 살아야 했던 10년의 시간을 통해 다시 입증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국민의 명령을 받아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과 ‘생명인지 감수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검찰청은 윤지오에게 이렇게 말을 건다. “윤애영 씨께서 저희 과거사조사단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오시면 왕복 항공권 비용 정도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국내 체재비용은 안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한국에 와주실 수 있을까요?…대검찰청에서 비용지원을 많이 해주지는 않네요. ㅠㅠ 과거사조사단 장자연 사건에서 윤애영씨가 핵심적인 분이라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능한 빨리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2018년 10월 14일) 그런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증언을 하는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지난 세월의 경험을 통해 윤지오가 느끼는 생명인지 감수성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을 대표해 실무적으로 윤지오에게 증언요청을 하는 이 담당 변호사도 이것이 충분하지 않은 비용 지원책이라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그런데 윤지오는 담당 변호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가장 큰 관심이 가 있다.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안전이다. 검찰의 이 제안에 대한 윤지오의 반응을 살펴보자.

“그렇군요. 처음 말씀해주신 사항과는 변동사항이 있네요. 혼자서 보호없이 가야하는 건가요? 가능한 한 빨리라 함은 언제를 말씀하시는지요? 또 국가에서 보호해주시는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불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신변을 어찌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법원 서기 전에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할 것이고요. 그렇게 하는 것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판단되어 집니다”. (2018년 10월 16일)

윤지오의 핵심 문제는 신변안전, 신변보호다. 이 짧은 답변에서 그는 ‘혼자서 보호없이’, ‘국가에서 보호해주는 시설’, ‘신변을 어찌 보호해 줄 수 있을지’, ‘그렇게 하는 것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판단되어’ 등 네 번에 걸쳐 보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신변보호 지원에 대한 윤지오의 이러한 질문을 받고서야 담당 변호사는 “지원 여부는 변호인단에 확인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라고 답한다. 어떤 답변이 왔을까? 

“대검찰청에서는 항공권 지원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10월 말 또는 11월 중순, 하순 귀국 가능할까요? 조0천 사건 법정 증언 관련해서는 추가로 입국하셔야 할 거 같고 그때 다시 항공권 지원이 될 거 같습니다만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힘드시겠지만 국내에 오셔서 과거사조사단 면담도 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빨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변보호 지원은 불가하다는 냉정한 대검찰청의 답변, 그리고 조0천 사건 증언 관련 추가 입국시 항공권 지원은 가능할 것 같다는 최소 비용지원 원칙의 재확인인 것이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증언할 경우 재정 측면에서 항공권 외에 육상교통비, 숙박비, 식사비 등 기본적인 체류 비용이 들어간다. 증언을 위해 해외에서 건너온 사람의 이 기본적 체류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일까? 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증언을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야 하면 그 시간 동안 손실이 발행한다.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므로 증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고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 “진실”은 누구를 위한 진실일까? 그런데 “윤애영씨가 저희 과거사조사단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오시면”이라는 앞의 인용이 보여주듯이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진실”이 과거사진상조사단과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를 위해 사용될 것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진실”이 검찰을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국민을 위해 사용될까? 그리고 또 국민의 한 사람인 “증인”을 위해 사용될까? 또 신변보호 지원 없이 자신의 국민을 신변위협이 따르는 증언에 나서도록 재촉하는 국가는 누구의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국가일까?

이 상식적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돌아가보자. 검찰로부터 신변보호 약속이 없기 때문에 윤지오는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본 사항을 담당 변호사에게 전달한다. 내용인 즉,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말이, 경호 제공 등 형사지원제도를 갖추고 있어 지원해 드릴 수 있는 것들을 확정하는 대로 지오님께 먼저 연락드리겠다”는 것이다. 윤지오는 국가가 이동상의 보호를 제공해 줄 수 없다면 보호자나 동행자의 대동보호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대검찰청의 답은 무엇일까?

“비행기 티켓은 참고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를 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면 비용을 계좌로 지급을 해준다고 합니다. 단 이코노미석만 비용 지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입니다. …항공사 선택은 제약이 없는데 가급적 비용이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하면 좋다는 답변입니다. 아쉽지만 동반자는 지급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것도 대검 답변입니다.”(10월 18일, 담당 변호사) 

신변보호자에게는 비용지원이 없다, 이코노미석만 된다, 가급적 저렴한 항공편으로, 최대한 빨리! 이것이 증인을 대하는 대한민국 대검찰청의 마음이고 태도이다. 국가의 돈이 국민이 낸 혈세이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세가 아깝다는 이유로 검사나 진상조사단의 조사위원들도 월급이나 활동비를 받지 않고 자신의 비용을 들이면서 “진실”을 밝히는 업무를 하고 있는가? 그들이 최저의 교통수단으로 최저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가? 왜 “진실”을 밝힐 증인에게만 체류비 부담, 손실부담, 최저생활을 요구하는가? 증인이 “진실”을 위한 희생제물인가? 증인이 “정의”를 위한 순교자여야 하는가?

조0천 건을 위한 검사측 증언과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한 증언은 별개의 건이라고 하면서 진상조사단 증언건을 위해 “언제쯤 오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담당 변호사에게 윤지오는 조사가 어디에서 몇 차례 몇 시간이 진행될 예정인지, 그리고 그곳이 “안전한 곳”(10월 19일)인지 묻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과 위험 부담을 고려하여 진상조사단 조사와 조0천 증언을 합쳐 한꺼번에 묶어서 진행하면 좋겠고 과거사진상조사단 측이 항공권을, 조희천 증언 담당 검사측이 숙박료를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명함과 동시에 그 동안의 대화에서 참았던 감정과 속생각을 털어놓는다. 

“무조건 빨리와라 오갈 곳은 알아서하시고요 보호도 잘 모르겠네요는 무책임하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굳이 한국에 귀국할 이유도 없고요. 저는 잃는 것이 더 많고 보호받지 못한다면 위험을 감행하고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10월 19일)

윤지오는 대한민국 대검찰청이 증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면서 무책임하게 증인을 대하는 것에 분노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에 임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담당 변호사는 다짜고짜 연락선을 바꾼다는 취지의 다음 답변을 보낸다.

“윤애영씨 연락 주고 받는 것을 과거사조사단에 같은 팀인 다른 검사님하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과거사조사단에서 지금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0화 검사 님이 저희 팀인데 윤애영씨 한국 오시는 문제 관련해서 연락드릴 것입니다.”(10월 22일)

그런데 이것은 윤지오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윤지오는 같은 날 과거사진상조사단 출석을 위한 협의의 중단을 선언한다.

“이렇게 막무가내식인 경우는 처음봤네요. 사회생활을 해외에서 몇년 해와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경우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그쪽 팀하고 그 어떤 것도 같이하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법원에서 진술하고 기자회견하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간 수고 많으셨고 건승하시길 바람하겠습니다.”

이 예상치 못한 협의중단 선언에 당황한 담당 변호사는 연락선 전환에 관한 위의 일방적 결정에 대해 상세하고 진지하게 해명하고 사과하는 장문의 글을 보냈고 이 해명과 사과를 거쳐 양자간의 협의가 계속된다. 이런 갈등적인 조율 끝에 마침내 두 건을 하나로 묶어 11월 말 윤지오가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며 애초의 왕복 항공권 지원 외에 숙박료와 일부 경호지원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증인 출석을 위해 윤지오가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협의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증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증언출석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응해 달라고 호소했고 공익제보자의 인권옹호와 지원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에 윤지오를 공익제보자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런 표면적 얼굴 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증인을 보호하려는 어떠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고 어떠한 실제적 보호조치도 준비해 두고 있지 않았으며 저렴한 삶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위해 증인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나라 다운 나라”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자칭 촛불정부였음에도 말이다. 국가는 공동체를 자임하면서도 여전히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공동체로서는 자격미달의 기관이었다. 

또 하나는 윤지오가 신변위협을 들어 “영리하게” 국민들을 기망하여 후원금을 편취했다는 김수민 발(發) ‘소설’의 허구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한국으로 와서 증언하기를 원치 않았던 윤지오가 국민의 생명도 성도 재산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대한민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 대검찰청이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변호사를 통해 진실, 정의 등의 “대의”를 가지고 반복해서 설득했기 때문이다. 김수민이 관련된 저간의 사정을 알기 위해, 과거사진상조사단 및 조0천을 기소한 검사측과의 일정 조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인 11월 13일 윤지오가 김수민과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대화는 검사측에서 마련해준 것으로 보이는 오피스텔을 두고 시작된다.

“김 : 오피스텔?

김: 어떤 오피스텔이지

윤 : 오피스텔도 오피스텔 나름이지 ㅜㅁ ㅜ

윤 : 그러니까

윤 : 제대로된 정보도 안알려주고

김 : 모텔 깨끗하고 괜찮은데 7만원이면 충분히자는데

김 : 실비지급?

김 : 숙박비를 나중에준단소리얘

윤 : 근데 모텔은 치안이 별로여서 ㅜ

김 : 야?

윤 : 그러니까

윤 : 경비처리도 영수증줘도 언제 줄지도 모르고

김 : 일단 니돈을쓰라는거야?

윤 : 말도 계속바꾸니

윤 : 그러니까

김 : ㅡㅡ 염병할것들이네진짜

윤 : 에혀

윤 : 다 인스타에 까발려버리고싶다

윤 : 분노게이즈 올라온게

윤 : 한두번이 아니야 ㅜㅜ

윤 : 필요하다고 울아빠까지 들들 볶더니

윤 : 애걸복걸이더니

김 : 그때 그 조사단인가뭔가 개네들은어케됐어

윤 : 거기서도 뭐 비슷하지

윤 : 근데 100만원정도 지원시스템 뭐 준다는데

윤 : 내가 목숨걸고 내 인생에

김 : 응

윤 : 주홍글씨 만드는건데

김 : 그치

윤 : 뭔가 초라하다랄까

윤 : ㅜㅜ

김 : 그치그치

윤 : 내가 이상한건가

윤 : 여기에서 하는일도 올스탑하고 가니까

김 : 아냐 나같아도그런생각들지

윤 : 손실도 있는데

김 : 숙소랑 식비 그런걸 확실하게 말해줬음좋겄구만

김 : 그래야 너 맘도 편하지

윤 : 그러니까 ㅜ

윤 : 닥치면 해결할라하고 늘

윤 : 00사람들은 ㅜ

윤 : 특히나 위로 갈수록 더 그런거같아

김 : 00이그치뭐 제대로 일처리들을안하지 원고는 다 쓴거야?

윤 : 언니는 요새 어때?

윤 : 몸은 좀 괜찮아?

윤 : 아니 아직 계속쓰고 수정하고 그러고있지 뭐

김 : 언니 어제 퇴원했어

윤 : 가서 인터뷰형식으로해서 쓸수도 있고 일정부분은

김 : 나도 원고때문에 스트레스ㅜ

윤 : 고생했네 언니 ㅜ”

김수민과 달리 윤지오에게 숙소 선택에서도 기준은 무엇보다 “치안”, 즉 안전임을 다시 한 번 주목하자. 윤지오는 검찰과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증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고 김수민은 “나같아도그런생각들지”라며 이에 동조하고 있다. 자신에게 경제적 손실, 시간 지출, 생명의 위협을 감나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에 대해 이런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영리하게” 돈을 편취하기 위한 사기 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음모론은 누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미 이 때에 윤지오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책에 대한 대화도 김수민과 나눈다. 김수민이 원고는 다 썼는지 물었을 때 윤지오는 원고를 계속 쓰면서 수정하고 있고 일부는 한국에 가서 인터뷰 형식으로 쓸 수도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책쓰기가 이후에 김수민에 의해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술책”으로, 글쓰기의 비전문가로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집필과정이 “대필”로 묘사될 줄이야 윤지오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변호사, 기자, 경찰 등 국가 수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배척하면서 변심한 김수민의 말에만 근거하여 고소고발, 비난, 영장청구를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윤지오는 2018년 10월 무렵에 조0천 강제추행 사건 증언을 위해 “법원 서기 전에”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다. 그것이 신변보호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은 얼굴과 실명을 그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과 실명 공개 계획은 포기되고 2019년 3월 4일까지 미뤄진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겠지만 국가로부터 증언자에게 신변보호 조치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2018년 11월 6일 기자회견 관련하여 담당 변호사와 나눈 대화에서 이 점이 드러난다. 

“지난 번에 기자회견을 하신다고 했는데 하실건가요? 만일 기자회견을 하신다면 과거사조사단에 출석하실 때 조사단이 있는 0부지검에서 기자회견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담당 변호사의 질문과 제안이다. 윤지오는 이 시점에서 아직 망설이고 있다. “네 한번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별 인터뷰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도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을 만큼 짧게 제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공개할지 안할지 여부도 아직 고민이 많이 되네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피해자나 피해자의 증인이 숨어야 하고 가해자나 범죄자는 당당한 것일까? 왜 그런 것일까? 윤지오의 고민을 깊게 하는 대한민국의 이 적나라한 현실 앞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는다면 언제 던져야 하는 것일까? 윤지오의 고민에 대한 과거사진상조사단 담당 변호사의 답변은 이러하다.

“아, 그건 너무 중요한 문제라 윤애영씨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자회견을 하라는 게 아니라, 만일 하신다면 조사단 출석하실 때 하는 게 좋겠다는 거라서요. 만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면 절대 비공개로 할 거예요. 지난 번에 신변보호를 위해서도 기자회견을 하시겠다고 윤애영씨가 말씀하셔서. 너무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니 윤애영씨가 주변분들, 또 변호인들과 충분히 상의하셔서 결정하세요. 지금 조희천 공판에서도 ‘이순자’라고 부르고 있지 ‘윤애영’이라는 이름은 공개되어 있지 않아요. 심사숙고 하셔서, 윤애영씨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시고 정하시면 됩니다. 누구도 윤애영씨에게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라고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아요. 일단 한 번 공개가 되면 이후에 이런 저런 파장도 있을 수 있으니 심사숙고 하시고요, 저는 기자회견을 하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래요^^ 윤애영씨가 상처받지 않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담당 변호사는 얼굴과 이름의 공개가 “너무 중요한 문제”이고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으며 그것이 윤지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신변보호를 위한 공개 기자회견이 예상과는 달리 신변위협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방향을 결정해 줄 수는 없고 주변분들이나 변호인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신변보호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윤지오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 감사합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 아직 많이 헷갈리네요.” 

뭐가 “헷갈리”는 것일까? 만약 자신만 생각한다면 증언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데 가해자 처벌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을 “언니 장자연”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윤지오와의 협의 대화 테이블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말을 올려 놓고 증언을 요구할 때, 윤지오가 거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대검은 생명안전에 대한 관심은 없으면서 생명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증언을 달라고만 한다. 

이 “헷갈리”는 현실 앞에서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 담당 변호사에게 세 가지를 묻는다. “제가 증인으로 한 번만 출석하면 되는 건가요? 제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 분은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 건가요? 또 제가 증언한 것들이 증거불충분이나 다시 덮어지는 사태가 발생할수도 있는 것인가요?” 이 세 가지 질문 중에서 윤지오가 들은 답은 하나, 즉 첫째 질문에 대한, “아마도 한번만 가시면 될 거 같아요”라는 답뿐이다. 

변호사가 답해주지 않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이후 전개된 현실이 답해준다. 그 답이 무엇일까? 온갖 망설임, 고뇌를 거쳐 2018년 12월에는 얼굴과 실명 공개를 하지 않다가 4개월여 뒤인 2019년 3월 4일 ‘뉴스공장’을 통해 마침내 처음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 변호사, 작가, 까판계정주들로부터 돌아온 것은 “네가 언제 숨어 살았냐?!”라는 무자비한 언어폭력이었다. 이 언어폭력 속에서 “얼굴과 실명의 공개”란 “숨어 있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자명한 사실조차 사유되지 않는다. 사유의 이 철저한 무능력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윤지오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누군가의 실리적 필요이다. 그리고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실리적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맹목적으로 (비)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 능력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역관계 속에서 현실에 두 가지 답이 주어졌다. ‘어떠한 처벌도 없었다.’ ‘증언이 있었음에도 사태는 다시 덮였다.’ 윤지오가 예상치 못했고 그래서 질문하지 못한 한 가지 사태가 여기에 더해졌다. 자기자신이 글/말과 법에 의해 ‘가해자’로, ‘범죄자’로 위조되는 사태…!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1)

증언자 장자연과 국가

윤지오 이전에 장자연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자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장자연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다. 장자연은 자신이 쓴 증언조서 문건에서 많은 수의 권력자들을 협박, 강요, 폭행,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이 증언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장자연이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꾼으로 몰려 고소고발되고 압수수색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구금되었을지 모른다. 4장만 남은 증언조서 문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저 ‘죄없는 사람들’에 대해 허위사실을 가지고 명예훼손한 증거물로 제출되었을 것이며 권력자들이 ‘김밥값'(후원금) 으로 입금해준 수표는 사기로 편취한 재물로 압류되었을 것이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음란죄로 몰아붙일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어딘가로부터 쏟아져 나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론들과 기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떻게 움직였을지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장자연은 경찰, 검찰로부터만이 아니라 기자로부터 쫓기며 취조형 취재를 당해야 했을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포위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앞다퉈 톱기사로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들에 동화된 사람들이 그를 마녀로 지목하고 화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군중들의 손가락질로 잠을 설쳐야 했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에는 근거가 있다. 그 그림의 윤곽이 앞에서 분석한 대한민국 경찰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이미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건조사에서 경찰의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증언조서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만드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망하여 돈을 벌고자했으나 자살로 인해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경찰의 시각에서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가해권력자들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가난한 연예노동자 장자연의 ‘사기 미수 사건’이었다. 

검찰, 법원은 이런 시각 하에서 합동수사를 진행했던 경찰과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경찰로 하여금 장자연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통화내역 조사 지휘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피해자 장자연과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통화내역은 1년치를 조사했으면서 조선일보 방상훈에 대해서는 한 달치만 조사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이모 수사관은 “통상 1년의 통화내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이지만 검사, 판사가 문건에 2008.9이라고 나와 있으니 2008.9 한 달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판사가 “청구는 1년치를 하였나요?”라고 다시 확인하자 이모 수사관은 “예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한다. 진짜 문제는 경찰이 아니라 검사, 판사라는 답변이다.

그런데 1달치 통화내역으로 조사범위를 넓기기 전에 원래는 그보다 짧은 1주일치 통화내역만 조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관해 판사와 이모 수사관이 나눈 문답은 이러하다.  

문: 경찰서에서 성남지청으로 청구한 청구서를 토대로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것인데, 당초 수사팀에서는 원래 1년치를 신청했으나 일주일치만 신청하라는 검찰의 수사지휘에 따라 신청서에 일주일로 줄여서 기재하였다는 것인가요?

답: .

문: 검찰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는 신청서를 보낸 적은 있나요.

답: 증인의 기억에는 문서로 오갔는지 구두로 오갔는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원래 분당경찰서가 성남지청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고 요청하였는데 검사의 수사지휘로 일주일치의 통신자료만 청구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이 맞다면, 경찰이 진상규명과는 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시간에 이러한 방향을 규정하고 수사가 진실과 괴리되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와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였던 셈이다. 즉 피해자의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할 목적으로 가해(지목)자에 대한 수사범위를 축소하는 일에서 경찰, 검찰, 법원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전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기획사 대표였던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처벌을 내린 것 외에 실질적인 가해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로 면죄시킨 것이다. 이 결과의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검찰개혁’에 대한 강렬한 국민적 열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검의 수사와 기소 및 법원의 판결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의혹, 즉 행정 및 사법관료 체제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국민을 기만하고 진실을 억압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불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