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정치-이미지

자유한국당의 정치-이미지

이명박의 구속에 대한 정진석의 발언은 자유한국당의 정치-이미지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는 “1. 조선시대의 사화도 이렇지 않았다. 2. 역사는 반복된다. 다음은 너희들 차례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유한국당이 수 백 년 전 봉건 전제군주시대의 정치-이미지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의 구속은 2016년 촛불의 직접적 여파이며, 이명박의 구속은 2008년 촛불의 오래 지속되는 여파이다. 국민과 다중의 촛불행동(아래로부터의 정치)을 삭제함으로써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에 ‘사화’의 이미지(위로부터의 정치)를 부여한다. 역사는 5백여년 전으로 퇴행하며, 그것도 물구나무선 채로 퇴행한다. 사화는 사림파가 훈구파에 의해 공격당한 사건인데, 만약 비교를 한다면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이명박은 공격한 훈구파에 가깝지 피해자인 사림파와 가깝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임의적인 역사적 퇴행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관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다음에는 자신들이 문재인과 민주당을 공격할 차례라는 생각이 여기서 따라나온다. 그런데 정진석에게는 불행하게도,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 속에서 생성되는 변이이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의 본질이 아니라 피질(皮質)이다. 수구 보수주의 정당은 이승만의 망명(자유당), 박정희의 피살(공화당), 전두환, 노태우의 구속(민주정의당), 이명박(한나라당)과 박근혜(새누리당)의 구속이 보여주듯이 범죄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반복된 것은 범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이는 있다. 피/돈의 범죄가 돈/돈의 범죄로 변이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에 다시 기회(‘다음 차례’)가 주어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범죄의 정치일 것이다. 하지만, 미투와 위드유, 3.31뛰뛰빵빵 택시 희망버스, 평화촛불집회 등으로 나타나는 지금의 촛불혁명이 지속되고 확산된다면 그러한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러므로 ‘다음 차례’가 아니라 ‘소멸의 때’이다. 당내의 자중지란은 그 시간이 가까왔음을 예고한다.

미투의 전망

미투 운동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이다. 왜 신보수주의 세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몇 가지 해석들이 있다. 이 해석들에 대한 비판을 기초로 미투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로 자유주의 세력 중의 일부가 취하는 태도로서 미투 운동 자체를 신보수주의 우파의 공작의 산물로 보는 음모론적 해석이다. 이것은 미투의 실재적 근거(성차별과 성폭력의 실재성)를 부인하고 미투의 발전과 확산을 가로막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미투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는 자유주의 세력이 취하는 공격적 방어의 방식이다. 이것은 우파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투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젠더을 둘러싼 사회적 적대와 투쟁을 좌/, 진보/보수 간의 정치공학적 대립과 투쟁의 종속변수로 환원시킴으로서 젠더 이슈를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둘째로  보수우파 정치가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로서 미투가 좌파의 이중성, 즉 담론과 실제 사이의 분리를 드러낸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것 역사 젠더 문제를 좌우파 대립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정치적 우파라고 해서 젠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투의 폭로투쟁이 주로 자유주의 진보 세력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보수우파가 성차별, 성억압, 성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의 증거일 수 없다. 오히려 반대다. 보수우파의 여성억압과 여성수탈은 훨씬 노골적이고 일방적이다. 이들은 여성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는 시각을 수차례나 드러내었다. 이건희 성매매 사건에서 보이듯이 보수우파는 여성을 그저 하나의 비인간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에 익숙하다.   젠터문제에서 보이는 자유주의 진보파의 이중성은 그에 비하면인간여성비인간여성사이에서의 심리적 갈등과 자기분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보수우파에게 담론과 실제 사이의 이중성이 없다면[적다면], 그것은 그들이 현실에서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고 담론의 수준에서도 여성을 인간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로 미투 운동이 진보영역에 집중되고 보수 영역에서 드문 이유를, 보수 영역의 피해 여성들은 동일한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데서 찾는 해석이 있다. 이것은 미투의 주체구성에 대한 해석으로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서 시작된 최근의 미투 운동이 상대적으로 큰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주목할 만한 지위를 가진 여성들의 폭로투쟁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정규직 여성 등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은 아직 이슈로 제기되지 않고 있다. 즉 주로 보호받아 마땅한 지위의 여성들이 겪은 피해와 그것의 구제가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투의 다음 단계가 현실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의 미투여야 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와 연관된 네 번째의 해석이 가능하고 또 부상하고 있다. 3 10일 집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투를 촛불의 연장으로 보는 해석이 그것이다. 지난 시기의 촛불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가 세대를 불문한 다양한 여성집단들이었다는 점은 주목되어야 한다. 탄핵으로박근혜 즉각 퇴진이라는 촛불의 일차 요구가 달성된 상태에서 촛불은 지금성폭력 즉각 퇴출이라는 이차 요구를 향해 진전하고 있다. 이 요구투쟁이 중간층 여성들의 미투에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미투 운동의 좀더 발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계급적으로 보호받는 여성층을 성적으로도 안전하게 보장하는 운동이라는 현재의 한계를 넘어 성적으로는 물론이고 계급적으로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여성노동자들의 미투로의 확산을 통해 미투가 새로운 사회개조, 성별평등과 계급적 평등을 결합시키는 사회건설의 동력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미투는 좌우 모두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사회상의 준거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위수령 문제

촛불집회 당시 태극기집회 측이 계엄령선포와 군대동원을 요구할때, 계엄령 선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당시의 조건에서 국회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국회의 동의 없이 군대를 동원할 다른 방법(위수령)이 남아 있었고 또 실제로 그것의 사용을 고려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래의 첨부 문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헌은 국민을 정치권력의 실제적 주인으로 만드는 법률적 장치들을 준비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첨부]

촛불혁명 무력진압친위쿠데타 모의한  수뇌부를 엄단하라

탄핵 정국 위수령 군대 투입 검토 폭로 긴급 기자회견 –

박근혜 퇴진 촛불혁명’ 당시 군이 무력 진압을 모의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2016 12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국방부 내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하여 군 병력 투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하였다이러한 가운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구홍모 중장( 육군참모차장육사40)은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보수단체들이 날마다 ‘계엄령 촉구 집회를 열어 시민 학살을 운운하며 내란 선동을 하던 때에 군이 실제 병력 투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군이 이러한 참담한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위수령(대통령령 제17945)’이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위수령은 대통령의 명령만으로 치안 유지에 육군 병력을 동원하는 조치로 1970년 박정희 가 군부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근거법도 없이 제정한 시행령이다계엄령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나 국회의 동의 없이도 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우 위헌적이다실제 1965년 한일 협정 체결 반대 시위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부정 규탄 시위, 1979년 부마항쟁 시위 진압 시 발동된 바 있다위수령은 대한민국 법률 체계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법령으로 정부 시행령에 불과하나 법률의 통제를 벗어나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위수사령부 소속의 장병은 제15조에 따라 폭행을 저지르는 자나 폭력이 수반 된 소요를 총기를 발포 하여 진압할 수 있고17조에 따라 폭행 등의 현행범인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외적이 아닌 국민을 적으로 상정하여 군의 정치 개입에 단초를 제공하는 악법인 것이다.

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할 시 위수령을 선포하여 촛불혁명에 나선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는 상황을 예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정황은 탄핵 심판 중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위수령 폐지를 반대한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2016 12월과 2017 2월에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위수령 폐지 의견을 질의하였다이에 주무부서인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에서는 합참 법무실에 법령 검토를 맡겼고법무실은 폐지 의견으로 이를 회신하였다그러나 합참이 이를 한민구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자 장관은 폐지할 수 없다며 존치 의견으로 검토하게끔 지시하였다이러한 시도는 국방부 법무관리관 주도 하에 이루어졌는데당시 법무관리관은 청와대 파견 법무관들과 자주 연락하며 교감했기 때문에 위수령 존치는 사실 상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국방부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던 중 3 10일 탄핵이 가결되자 3 13일 이철희 의원실에 ‘위수령 존치 여부는 심층 연구가 필요하여 연구 용역을 맡길 예정이다.’라는 회신을 보내왔다청와대군 지휘부법무계통이 은밀히 모의하여 위수령을 활용탄핵 부결 시 군 병력을 투입하는 ‘친위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엄군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광주 시민을 학살한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군은 또 다시 부정한 권력에 빌붙어 시민들을 총칼로 짓밟을 계획을 세웠다이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란 음모나 다름없다육사 출신의 정치군인들이 여전히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망령을 잊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아 국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할 뿐이다.

3일 뒤인 3 10일은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박근혜 대통령 파면 1주기다금번 밝혀진 친위쿠데타 시도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세계사에 유례 없이 평화적으로 불의한 정권을 몰아낸 촛불혁명을 총칼로 짓밟으려 한 민주주의의 적들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한민구  국방부장관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을 위시하여 위수령 존치를 통한 친위쿠데타에 관련된 군 지휘부법무계통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을 내란 음모 혐의로 낱낱이 색출하여 엄단하라아울러 독재정권의 잔재인 초법적 ‘위수령을 즉시 폐지하고 개헌 시 계엄령 발동 조건을 엄격하게 개정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18. 3. 8.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첨부자료 출처: http://mhrk.org/news/?no=4857

‘왜 성폭력이 일어날까?’에 대한 단상.

‘왜 성폭력이 일어날까?’에 대한 단상.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는 본질적으로는 일부다처제인데, 일부일처제가 매춘에 의해 보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관계와 매춘(성매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성관계를 지탱하는 양축이다. 성폭력은 이 두 범주의 경계지대에 서식한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왜 어떤 근거에서 생겨날까?

진화적 심리 일반에서: 남성은 여성의 호의적 신호를 성적 신호로 환원하여 읽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한 환원이 문제점이 있었지만 번식의 기회를 잃지 않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환원 때문에 사회관계에서 여성의 다양한 유형(예의, 친절, 동정 등)의 호의적 태도를 ‘성적 구애’의 신호로 착각하는 많은 경우가 있게 되고 이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 이 환원의 습관이 굳어지면 여성이 보내는 비호의적 신호마저 성적 구애 신호의 역설적 형태로 착각하게 되고 이럴 때 성폭력은 반복적 습관적인 것으로 굳어진다.

자본관계에서: 자본주의는 그 발생기에 여성 착취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발명했다. 그것은 마녀사냥이었다. 자본주의 이전부터 유전되어온 가부장제에 이 마녀사냥을 결합시킴으로써 자본은 여성의 가사노동을 무상으로 착취할 수 있었다. 가사노동을 무상노동화하고 여성을 남성의 임금에 의존하도록 만든 결과,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 보잘 것 없는 종속자,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성의 의사를 무시한 성적 행동, 즉 성폭력이 생겨난다.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위계제에서 권력자는 상하관계 때문에 취할 수 밖에 없는 하위주체의 순종적 태도를 ‘성적 구애’의 제스쳐와 쉽게 혼동한다. 위계제는 정치권, 군대, 교회, 병원, 학교, 연예계, 문화예술계, 재계, 기업, 공장 등 현대 사회 제도의 모든 곳에 편재하는 동형원리이다. 기존 사회 제도에 저항하는 운동단체들도 많은 경우에 위계제를 원리로 구축된다. 오늘날의 위계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있는 경우는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특히 이 비대칭은 위계제 사다리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훨씬 심해진다. 그 결과 위계적 현대 사회 자체가 성폭력의 온상이 된다.

문화적 헤게모니에서: 최근의 성폭력 사건이 진보적 정치단체 예술단체 학술단체 대학 등을 중심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은 문화적 헤게모니가 성폭력을 조장하는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에서 새로운 헤게모니는 사회개혁과 사회변동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헤게모니는 억압과 동의의 양측면을 갖는다.  많은 부분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 체제에서 헤게모니 주체는 남성의 진화적 경향과 결합되면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성적 헤게모니와 오인하는 경향이 발생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성적 헤게모니를 전환시키는 데 실패하여 동의의 축이 빠지게 되면 억압만 남게 되고 여기에서 성폭력의 여러 유형들(희롱, 추행, 폭행)이 출현한다.

오늘날 성폭력이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는 데에는 거의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3항이 그러한 진단에 가장 가깝다. 그런데 성폭력 현상의 근절을 위해서는 권력관계 외에도 자본관계, 문화적 헤게모니, 진화심리와 같은 요인들을 고려한 좀더 총체적인 관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문제를 억압하기와 후경화하기의 공모관계

역사적 우파는 자본의 여성착취를 옹호하기 위해 여성문제를 억압했다.
역사적 좌파는 계급문제를 전경화하기 위해 여성문제를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여성문제를 후경화했다.
미투는 이 양자의 공모를 깨뜨리면서 여성문제를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제기한다.
공모의 균열 상황 속에서 우파는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이 진보좌파만의 것인양 책임을 전가하고 진보좌파는 미투가 우파의 공작정치일 수 있다고 비난한다.
아것들은 여성문제를 다시 억압하고 후경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동맹 프레임의 축들이다.

비핵화의 방법은 비적대화

무기로서의 핵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에서 출현했다. 이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국가간 적대의 산물이고 그 적대의 발전된 형태이다. 북한의 핵은 북미간, 그리고 남북간의 국가적 적대의 산물이고 그 적대의 군사무기적 발전태이다.

적대관계는 다양한 무기들의 개발을 낳고 궁극적으로는 그 무기들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를 낳는다. 핵무기는 그러므로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비핵화가 전 지구적 수준에서의 적대들의 제거 없이는 불가능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미국의 거대규모 핵무기를 온존한 상태에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북미간 적대를 심화시키는 것이고 문제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전쟁과 문제심화의 방법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미 적대관계의 해소에서 출발해야하고 북한만이 아닌 여러 핵무기 보유국, 특히 미국의 핵무기 폐지를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지금 한미동맹강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한국내 정치세력은 한반도를, 그리고 세계를 전쟁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특권계급의 요구를 표현한다.

남성은 왜 여성에 비해 큰 권력을 갖게 되었나?

남성은 왜 여성에 비해 큰 권력을 갖게 되었나?
문단, 화단, 연극계, 법조계, 교계, 대학, 정치권…. 그러니까 우리 사회 전역이 성희롱과 성추행은 물론이고 성폭력이 자행되는 공간이라는 것은, 미투 운동을 통해 그것에 대한 폭로가 집단화, 전면화되기 전에는, ‘공공연한 비밀’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일반화된 성추행과 성폭력이 권력관계 때문이라는 것은 여러 언론의 논평을 빌지 않더라도 이제 주지의  사실로 되었다. 그렇다면 왜 남성이 여성에 대한 우월한 권력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일까?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근간이 되는 성차별은 왜 생겨나게 된 것일까?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은 성별 분업일 것이다. ‘원죄에 대한 처벌’로서 남성이 노동을 맡고 여성이 출산을 담당한다는 식의 분업. 하지만 분업 그 자체가 남성에게 권력을 주는 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각 시대마다 이 분업적 조건 속에서 남성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는 사회관계들이 발전되어 왔다. 우리가 지금 긴급하게 제기해야 질문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사는 현대에 남성에게 더 큰 권력을 주는 사회관계가 무엇인가?’ 이다.
첫째로는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은 자본주의가 여성에 대한 공격을 통해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여성을 남성에 종속시키는 남성권력의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이었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캘리반과 마녀>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이 주제이다. 그런데 남성에 의해 수행되는 이 마녀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추행/폭행 피해자가 항변하거나 폭로할 때 그녀를 ‘꽃뱀’으로 몰아 집단적으로 지탄하는 것이 그 한 사례이다. 꽃뱀사냥의 본질은 마녀사냥이다.
둘째로는 가사노동의 무상화다. 자본주의는 ‘고용된 노동’만을 노동으로 평가하고 고용되지 않은 모든 노동, 특히 가사노동을 비노동으로 평가하여 무상으로 수탈한다. 여성에 대한  수탈은 자연에 대한 수탈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수탈의 양대 축을 이룬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혁명의 영점>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급 운동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가사노동은 여전히 무상으로 수탈되고 있다.
셋째로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억압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여성의 보통선거권은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반화되었다. 선거권에 대한 억압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지금도 억압되고있다.
여성의 임금노동에의 진출이 억제하기 힘든 시대적 추세가 된 20세기 이후에는 넷째의 사회관계가 작용한다.  그것은 남녀의 임금차별이다. 이것은 여성의 진출영역에 대한 정치적 제한/억압(이른바 ‘유리천장’과 ‘유리벽’)과 더불어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한다. 여성에 대한 수탈은 임금차별을 통해 지금도 다른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축적체제를 유지하고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조건은 자본관계 그 자체가 제공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남성들은 이러한 관계를 수행하는 행위자들이다. 즉 남성은 자연과 여성에 대해 자본이 자행하는 수탈을 적극적으로 돕거나 적어도 방조하는 지위에 있는 행위자들이다.
여성이 이러한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성보다 훨씬 잘 조직되어 왔고 그것의 힘으로 문화적 우월성까지 과시해온 남성집단보다 더 우월한 조직화의 수단을 발명해야 한다. 미투 운동이 보여주는 조직화의 중요한 힘은 공감이다. 남성의 조직화가 이해관계와 권력의 배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과는 달리 여성의 조직화가 정동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태이다.
공감의 대장정을 예상케 하는 미투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월한 권력을 사용하여 여성신체와 정신에 대한 희롱, 추행, 폭행을 자행한 인물들에 대한 규탄, 고발, 제척은 아마도 긴 여정의 첫 걸음일 것이다. 여성이 더 이상 자본의 수탈대상으로 되지 않을 수 있는 실질적인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는 것이 그 다음의, 그리고 중요한 여정으로 남아 있다.

정치의 종속변수로 된 진실

이명박으로 다스 실소유주를 적시하는 데에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진실 구명에 10년의 과학적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이 진실을 규명할 의지를 가진 정치권력을 만들어 내는 데 10년이 소요되었다는 의미이다. 정치권력은 진실을 숨기고 드러내고 뒤트는 작용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은 정치의 종속변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과학에 매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치를 진실접근적인 성격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들이 가리키는 ‘북한’은 없다

북한이 없다면 정치를 못할 정치가는 … 홍준표와 그 주변 정치가들이다.

북한이 없다면 존재 이유가 없는 정당은 … 자유한국당과 그 주변 정당들이다.

이들의 정치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이, 북한을 중심으로 돌고 북한에 의지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가리키는 먼 별들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듯이, 이들이 가리키는 ‘북한’은 없다.

이들은 늘 … 먼 과거의 북한, 기억 속의 북한, 이들이 각종 수법으로 만들어 낸 조제된 북한(의 이미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가상적 몸짓이 희망버스, 촛불, 미투, 위드유 등 다중의 각종 자기가치화와 자기조직화 운동의 조명을 받아 점점 웃음을 아아내는 소극으로 드러나면서  한 시대, 아니 한 무대의 막이 내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기계의 보편적 도입이 노동과 착취체제에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기계의 보편적 도입이 노동과 착취체제에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1)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 기계의 보편적 도입은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든다. 노동은 잉여로 되며 노동가치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2)고전 맑스주의의 관점 : 기계의 보편적 도입은 노동의 지역만을 이동시킬 뿐(제3세계로!) 노동에 대한 필요를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동은 확장되고 자본의 착취는 여전히 노동에 대한 착취로 남고 기계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3)자율주의 맑스주의의 관점: 기계의 보편적 도입은 직접적 고용의 필요를 감소시키면서 삶 전체를 노동시간으로 편입시킨다. 자본의 착취는 기계에 의해 매개되는 삶-공통장 전체에 대한 수탈로 바뀐다.

조지 카펜치스의 모색은 2)와 3)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노동의 일반화, 확장, 다양화라는 테제를 받아들이면서도 기계의 보편적 도입에 대해 말할 때는 기계와 변화된 노동세계의 관계를 고찰하기보다 고전적 맑스주의처럼 제1세계에서 공장노동의 감소에 비례하는 제3세계에서의 땀공장의 증가, 즉 고용노동의 유지 혹은 확장에 대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