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9일 촛불집회의 분화, 그 양상과 의미에 대한 관찰메모

  • 2019년 10월 19일 촛불집회는 서초동과 여의도로 분산 개최되었다.
  • ‘분열’이 아니라 ‘분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집회의 이슈와 강조점이 다변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촛불은 반드시 단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양화하고 분산되는 것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면 분산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 물론 현재는 서로를 인정하기보다 경쟁하고 때로는 적대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전체 촛불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 9차까지의 서초동 촛불집회의 주최측을 자임했던 개국본이 10월 12일을 갑작스런 마지막 집회로 선언한 것이 이 경쟁적 분화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집회의 종료를 선언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의 암묵적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방적 종료 선언이었고 이것이 촛불을 지속하자 하는 사람들을 별도의 경향적 세력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즉 서초동인가 여의도인가의 분화가 있기 전에 종료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화가 있었다.
  • 북유게 사람들이 촛불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은 조국이 사퇴한 날과 겹치는 월요일(10월 14일)이었다. 개국본이 여의도 촛불을 결정한 것은 수요일(10월 16일)이었다. 종료나 계속이냐의 분화가 여의도인가 서초동인가의 분화로 나타났다.   
  • 섭정의 관점에서 두 개의 촛불 중에서 하나를 취사선택할 이유는 없다. 촛불다중에게는 두 주최측, 두 집회의 에너지가 사회개혁의 집합적 에너지로 공동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두 집회의 공통점은 검찰을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 서초동 집회는 “검찰이 범인이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현존하는 검찰권력의 불법성을 크게 강조했다. 여기에 윤석열 수사, 구속 등 검찰총장에 대한 강한 사법적 압박 요구가 더해졌다.
  • 여의도 집회는 “공수처 설치”와 “응답하라, 국회” 등의 입법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서초동과 여의도의 뚜렷한 차이는 여의도에서 윤석열에 대한 비판적 구호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 서초동 집회는 이전 9차 집회까지와 마찬가지로 ‘조국 수호’를 외치면서 조국을 이슈화했다. 여의도 집회는 ‘조국 수호’라기보다 ‘조국 계승’(수고했습니다) 쪽으로 초점을 옮기는 분위기였다. 서초동이 조국을 현재화한다면 여의도가 조국을 과거화한다는 느낌이었다.
  • 서초동 집회보다 여의도 집회에 더 많은 사람(감으로는 약 1.5배~2배)이 모인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이 여의도 집회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것을 고려하면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고 할 수 있다.
  • 성별 측면에서 서초동 집회는 여성이 주축이었다. 8대 2 정도로 여성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반면 여의도 집회는 5:5로 동등하거나 6:4 정도로 남성이 더 많은 집회였다.
  • 세대 측면에서 서초동 집회는 2~30대가 주축이고 여의도는 그보다는 연령이 더 놓은 세대가 주축이었다.
  • 서초동 집회는 참가자들의 자유발언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여의도 집회는 공연과 유명인사들의 연설 중심이었다. 
  • 서초동 집회에 비해 여의도 집회가 미디어 동원이 많았다. 여의도 집회는 스크린이 과잉동원되었다는 느낌이었다. 9월 28일의 과소동원과 대조되는 풍경. 전체적으로 너무 큰 마이크 소리로 집중이 어려웠다. 국회의사당역 출구의 포스트잇 시위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서초동의 경우는 미디어 동원이 적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히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주요 슬로건을 담은 큰 깃발들 대오가 외곽을 오가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 전체적으로 여의도 집회의 방식이 전통적 조직운동의 집회방식이라면 서초동 집회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트워킹 방식을 오프라인 집회에 전용하는 것이었다.
  • 수백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가 구심점을 이루면서 촛불다중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졌던 2008년이나 2016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2019년의 촛불집회는 개국본이나 북유게 등 개별 단체나 커뮤니티가 주최측이 되어 집회를 개시하고 다중들이 그것에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주최측의 정치적 색깔이 집회 전체의 색깔을 좌우할 수 있고, 주최측 간의 의견차이나 갈등이 촛불 다중들의 갈등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 공통의 목적을 위해 의견의 차이를 어떻게 생산적 토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주최측이 뚜렷한 데서 오는 이 위험성을 어떻게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나타난다. 

증여 공통장(gift commons)의 등장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의 삶정치적 성격에 대한 논고

‘증언’은 ‘진실을 밝히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증언은 과학, 예술, 철학과 공통점을 갖는다. 과학, 예술, 철학이 증언의 요소를 갖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윤지오는 장자연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장자연의 증언을 이어받아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현주소에 관해 증언했다. 이 증언은 성폭력적 가해권력이 엄청난 재력, 광대한 인맥, 노련한 기법을 동원해 역사의 어두운 곳으로 은폐해온 진실을 꺼집어 내 말하는 것이다. 이 증언은 이렇게 진실을 증여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차단되어 있었던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또 이것들에 기초하여 과거의 사건에 대한 새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 자신의 주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증언은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의 행사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적 증여의 행동이다. 

2019년 3월 4일 이후 윤지오는 자발적이고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언어적 증여행동에 나섰다.  지난 10년간 경찰, 검찰, 법원을 통해 이루어진 간접적이고 매개적인 증언이 가해자를 찾아내고 실제로 처벌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그가 ‘이 조사를 통해서 국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마다 진상조사단은 ‘기록’에 남는다거나 ‘역사적 평가’가 남는다는 식으로 사건을 역사화하는 답변을 준다. 하지만 윤지오에게 장자연 사건은 자신의 청춘이 아로새겨져 있는 역사이면서 동시에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될 신체적 정신적 상처이고 극복되어야 할 현재적 아픔이다. 이 상처의 치유와 아픔의 극복은 가해자의 규명과 단죄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므로 기록이나 역사적 평가로 만족될 수는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가 김수민과의 카톡에서 ‘이 책[13번째 증언]이 어떻든 이슈가 될 것이고 그 책이 얼마나 팔리든 상관 없이 그것을 바탕으로 영리하게 지금까지 못해본 것을 해 보려 한다’고 말했을 때, 그 ‘영리하게’의 실질, 영리하게 해보려는 그 과제는 바로 이것을 지칭한다.

수사기관을 매개로 한 증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이 증여언어의 수증자는 바로 직접적으로 국민 자신이 된다. 신문, 방송, SNS 등에서 윤지오의 증언을 접한 시민들과 네티즌들이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언니는 용기있고 멋진 사람이에요’ 등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밝은 세상에서 재미있게 삶을 살아냈을 아름다운 젊은이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소리내지 못하게 했던 더러운 이름들을 딛고 더 나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준 지오님을 응원합니다”(juk***won,  2019년 3월 7일, ohmabella 인스타그램)라는 댓글은 윤지오의 증언증여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 증여인지를 명백히 드러낸다. 그것은 가격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의 한 걸음’이라는 긍정적 가치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곧 ‘더러움’은 일의적이지 않다는 것, 그것은 사회적 갈등 속에 노출되어 분열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앞의 댓글에서 ‘더러움’은 가해권력의 특징으로 나타나지만, 증언자에게서 ‘더러움’을 보는 가해자적 시각이 바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가해자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이름을 빌려 나타난다. “더러운 년. 최소한 고인의 아픔을 덜어주는게.? 고인을니야욕에이용하지마라.더불어 정치액션그만둬”(sim1****, 2019.3.5)에서 표현된 “더러움”이 그것이다. 

가해권력에 대한 증언이 있자마자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장자연을 숭고화하면서 살아있는 증언자를 더럽다고 모욕하는 언어가 즉각적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인에 대한 숭고화와 숭배는 산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 아래에 굴복시키는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수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고인 숭고화와 숭배는 권력자들이 산 사람들의 생명력을 착취하고 수탈하기 위해 산 사람들의 자기가치를 격하하는 통제양식이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욕받지만 죽은 후에는 숭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조장함으로써 살아있는 동안의 모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기법이 고인에 대한 숭고화와 숭배라는 테크놀로지이다. 

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죽음이 된다. 그런데 이 테크놀로지는 다른 한편에서 특수한 죽음, 장자연의 죽음만은 비하하고 격하해도 좋다는 예외조항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고인이 숭고한 것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장자연이는 죽어서도 좌빨들 노리개신세로구나ㅎㅎㅎㅎㅎㅎㅎ!!”(inte****, 2019.3.5)라는 정치적 비난의 수사가 그것이다. 죽음은 숭고한 것이지만 어떤 죽음은 모욕되어도 된다는 태도로 이들은 고인이 된 장자연을 비하한다. 그 비하는, “시체팔이 그만해라…”(thde****)라며 고인을 ‘시체’로 물건화하고 상품화하는 언어조차 주저 없이 사용하는 행동양식이다.

이렇게 출판과 공개증언의 개시에 때맞춰 연대자들의 지지와 격려와 더불어 나타난 이 격렬한 정치적 반동(reactions)과 비인간적 모욕(insult) 그리고 진실에 대한 보복(revenge)의 사회심리는 윤지오에게 즉각 신변보호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을, 숨어있던 가해권력이 증언에 대하여 취하는 대응과 위협으로 읽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8일 가족간 카톡 소통은 증언 이후에 닥쳐오고 있는 이 신변불안을 여실하게 나타낸다.

“엄마: 빨리 와 그게 최선이야 …비행기 변경해서오버되는 돈 엄마가 줄게 … 늘 조심하고 밤에 돌아 다니지 마 사람 많은 곳에 있고 뒷골목으로 절대 나니지 말고 …꼭 택시타고.. 숙소 꼭 알려주세요!!! 이동시마다 알려주세요!!!!!!! 되도록 빨리 와!!! 그게 최선일 듯

내사랑: 댓글은 보호 안해주니까”

그런데 3월의 2차 한국 방문은 국가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신변보호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국민이 행한 청와대 신변보호 청원은 많은 사람이 동의참여를 했지만 한 달 뒤인 4월 초가 되어야 정부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3월 13일 윤지오 가족은 응급조치로 어쩔 수 없이 사비로 사설경호원을 고용하기로 결정한다.

“오빠: 엄마가 무장경호원 붙여준데 지금 견적 뽑았음 24시가 2명 교대로…차량 지원해준데.

윤지오: 나는 증언자인데..한국은 항상..사건사고후에 움직이는게 슬프다 오빠..

오빠: 여기도 마찬가지야 사람이 죽어야 경찰오고 수사시작돼…..

엄마: 안전이 최고! …이제 경호원이 밀착해서 경호해 줄거니 안심해 차량도 지원해주니 편하게 다녀”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윤지오의 자비 무장경호는 가해권력자들에 의한 보복이 따를 수 있는 증언에 수반되는 필수경비이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과 더불어, 국민과 대한민국의 주권 증진과 세계시민들의 행복증진에 이바지하는 윤지오 가족으로부터의 증여에 해당한다. 이것은 분명 계약과 교환에 의해 주어지는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힘과 가치가 윤지오와 그 가족으로부터 국민들과 시민들에게  주어진다(be given)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경호비는 윤지오 자신의 재산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증여를 위해 엄마의 재산이 사용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윤지오는 엄마에게 빚진 것이 되며 이 때문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야 했다.

“네 감사해요. 그간 맘고생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엄마가 또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셨기에 이렇게까지 용기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신께서는 감당할 고통만 주실테고 제가 감당할 수 있기에 감사해요. 앞으로 제가 엄마도 지킬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또 선한 기업인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좀 냉혹해 보이지만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이 가족 대화에도 적용해 보자. 감사(thank)는 정치경제학적 의미에서는 채무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think)는 약속이다. 윤지오는 엄마에게 선한 기업인이 되어 엄마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겠다는 약속을 한다. 자신을 대신해서 엄마가 경호비용을 부담하게 되었기 때문에, 윤지오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받는 조건으로 가족 관계 속에서 빚진자(채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미래시간과 미래의 삶이 가족에게 담보로 잡히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 그는 선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엄마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빚짐의 의식은 더 일반화되어 윤지오는 엄마만이 아니라 신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신에게도 정신적으로 빚지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고마워~~ 울 딸이 힘들 때마다… 엄마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면서 딸을 위한 경호비용 지출을 자신의 ‘큰 행복’(‘다행’)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전통적 증여 공동체인 가족의 태도이다.

그런데 정작 헌법과 공익신고자 보호법(공익신고자 보호법 13조 1항 신변호보조치: “공익신고자 등과 그 친족 또는 동거인은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었거나 입을 우려가 명백한 경우에는 위원회에 신변호호에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경찰관서의 장에게 신변호조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2항 제1항에 따른 신변보호조치를 요청받은 경찰관서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즉시 신변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에 따라 신고자/증인의 보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국가 ‘공동체’는 어떤가?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윤지오 신변보호 청원을 받고도 이후 다시 변호사로부터 윤지오 신변보호 요청을 받을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증언자가 명백히 국민의 알권리와 주권 증진을 위해 증언을 하고 있고 그 증언으로 인한 보복 우려에 대비해 사설 경호비용을 지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대의하는 국가는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일까?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항상 국민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이 역사적 상례였다.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나 1987년의 시민항쟁, 2008년의 촛불집회나 2014년의 세월호 집회, 그리고 2016년의 촛불혁명 등은 대의민주주의가 기능장애에 빠진 순간에 시민의 직접행동이 그것을 치유하는 힘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용된 사람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주인이 나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019년 9월 28일의 서초동 촛불집회도 선출되지 않은 검찰권력이 비대해져 선출된 대의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권력원천인 국민이 ‘검찰개혁’이라는 요구를 내세우며 직접 자신의 사법주권을 주장하며 나선 사건이다. 

국민을 위한 증언자가 국가 공동체에 의해 방치되는 상황을 지켜본 네티즌들은 윤지오 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이게 나라입니까? 너무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ma_***ong, 2019년 3월 13일 ohmabella 인스타그램)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후원계좌 열어주세요. 사람 한명 살린다 생각하고 후원할 거예요. 진짜….경찰들은 믿을만한 것들이 못되네요.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지만… 이제 더 이상 뉴스에서 안 좋은 소식은 안 듣고 싶네요. 용기내어주신 윤지오님 항상 응원할게요”(amd*****13, 2019년 3월 13일 ohmabella 인스타그램)라며 후원계좌 개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3월 14일에도 후원계좌 개설을 요구하면서 한 네티즌은  “이건 윤지오 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장자연 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피해자분들 그리고 넓게 봐서는 우리 국민들을 위한 겁니다! 윤지오 님이 끝까지 안전하게 싸워주셔야 우리도 이런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ㅠㅠ 연대합시다”(byj****)라고 말한다. 증언은 증인의 몫이지만 증인이 안전하게 싸울 수 있도록 최대한 연대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는 정확한 인식에 따라 후원금 계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연대의 입장에서 후원금 계좌 개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오씨 항상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혹여 지오시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지쳐하실까봐 매번 걱정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여성분들이 밤에도 눈 한번 감지 않고 지켜볼 것이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겁먹지 말고 지쳐하지 말아주세요. … 남성들에 의해 마치 고깃덩어리마냥 죽어나가고 죽어나갈 여성들만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우리 여성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고 연대할 것이고 이길 것입니다. 용기내주시고 힘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그리고 혹시 경호비 모금 받으실 생각 없으신 건가요? ㅠㅠ”

이러한 목소리들에 윤지오는 이렇게 답한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신변보호에 걱정을 해주시고 그런 염려를 하게 해드리고 마음을 무겁게 해드리는 것 같아 국가에서의 도움을 받기에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판단에 사설 경호원을 24시간 대동하게된것을 말씀드렸어요. 현재의 상황이기도 했고요. 이런 사실을 아시고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생각지도 못한 후원계좌를 말씀해주고 계신것 같아요.댓글과 DM[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시고 계시지만 제가 감히 뭐라고 여러분의 열정으로 창출한 귀하고 값진 금액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정도로 한것이 아직 없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고있고 아직도 무엇이 좋은지 방법과 자문을 구하고 신중히 제 개인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저보다 어려움을 겪고 계시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분들께 전달되어지면 너무나 의미있고 더 뜻깊지 않을까란 생각이되었어요.”(3월 14일 인스타그램)

후원계좌는, 윤지오가 사기를 기획했다는 고발자나 악플러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후원계좌 공개 제안을 받고서야 윤지오는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데 증여교환의 관계와 영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  일정한 돈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먼저 지불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이 정도로 한 것이 아직 없는” 것이다.  

그런데 증여증언은 계약교환의 관계형식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증여증언은 측정될 수 없는 가치, 교환가치로서 서로 비교불가능한 말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몸과 행동으로 증언이라는 증여행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증여-수증-답례의 순환으로 나타나는 증여관계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약교환의 관계가 지배적으로 된 현대 자본주의에서 증여교환의 관계는 예외적 교환양식으로 치부되고 억압되며 부단히 계약교환의 문법, 관례, 언어로 번역되고 치환됨으로써만 마치 이해된 것처럼 간주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여관계는 여전히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당장 개개인의 출생부터가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다. 가족관계, 친구관계와 같은 상당 부분의 관계가 계약관계가 아니다. 이런 전통적 관계만이 아니라 디지털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계약교환의 관계가 아니다. 이렇게 삶의 상당부분이 증여교환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계약교환 관계의 문법을 통하지 않고는 번역할 수 없는 의식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의 세계시민들인이 처한 보편적 딜렘마이다.  증여관계는 전근대적 친밀성 관계나 탈근대적 온라인 관계 모두에서 일상적으로 실재하는 흔하디흔한 관계이면서도 상품교환의 관계의 지배로 인해 관계와 교류의 합당한 형식으로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증여관계의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위상변화로 인해 증여는 뇌물, 사기와 부단히 혼동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윤지오의 증언증여와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증여를 계약교환의 문맥에서 독립된 증여교환의 독자적 문법 속에서 더 일관되게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티즌들의 이러한 후원계좌 개설 요구를 받아 방송에서 처음(3월 15일)으로 언표한 것이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이다.  이상호 기자는 이미 3월 13일에, 신변보호 요청을 한 윤지오가 자비로 경호를 하기로 한 사실을 고발뉴스에서 보도한 바 있다. 또 그는 장자연 사건 ‘보도’로 인해 이미숙 배우로부터 고소를 겪은 바 있는 경험자로서, 윤지오가 ‘증언’으로 인해 권력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신변보호를 위한 경호비만은 국민들의 손으로 마련해 주자는 뜻으로 후원금 통장 개설을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증여론의 맥락에서 이 제안은, 국가가 증언자로부터 받은 증여에 대해 필요한 답례증여를 행하지 않고 있는 무례(無禮)의 상황에서, 그리고 그 무례가 증언자의 신체를 위험에 방치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주인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증언자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답례증여를 직접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윤지오는 3월 14일과 동일한 취지에 따라 이 제안에도 응하지 않는다.    

“후원계좌도 너무 많이 말씀해 주시는데 여러분들이 고생하시면서 번 돈을 감히 받기가 너무 죄송스럽고요. 저는 젊잖아요. 아직 저야 뭐 노동을 통해서도 열심히 벌면 되고 … 또 거절하는 것조차도 또 되게 건방진 것 같아서 계속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알아주셨으면 좋겠구요.”(3월 15일 발언 녹취: https://www.youtube.com/watch?v=kOh4CrB_nSk&list=PLnjhiitCpmZtTDRnfnPhDdPn8mAoxPRRO&index=25, 1시간 53분 전후)

시민들이 고생해서 번 돈을 받기는 죄송스러운데 거절만 하는 것도 무례한 것 같아 난처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실제로 계약교환이 아닌 증여교환의 관계에서는 증여가 공동체적 연대의 의사표시인 만큼 그에 대한 답례도 공동체적 연대의 의사표시이다. 따라서 증여교환의 관계에서 답례의 거부는 연대의 거부로 인식되어 상호 연대관계를 깨고 전쟁관계로 들어가자는 의사표시로 해석되곤 한다. 후원금에 대한 거절이 ‘건방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난처하다는 생각은 이러한 증여교환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틀 뒤인 3월 17일  윤지오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을 위한 4.16 기억저장소에 개인 후원금을 기부하러 갔다. 이 자리에서 4.16기억저장소 대표인 김00 어머니로부터 4.16기억저장소도 100%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후원금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는 예(禮)가 아니라는 취지의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2019년 3월 18일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은 일대 사건이 기록된 장소로 나타난다. 신한은행 통장에 입금된 후원금액(약 1억 1천 7백만원, 참고로 현재의 잔고도 약 1억 1천 7백만원이다)보다 놀라운 것은 후원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다. 3월 18일 22시 45분부터 3월 19일 13시 50분까지 총 15시간 5분 동안 동안 무려 5745건의 송금참여가 이루어진다. 1분당 약 6.4명이 후원송금에 참여한 것이다. 

단 시간에 이런 속도의 송금참여가 이루어진 경우가 있을까? 나로서는 이런 경우를 떠올릴 수조차 없지만 있다면 아마 사익을 위해 경합이 붙은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후원참여의 경우에 송금 하나하나는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것이고 좀더 엄밀히 말하면 공통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즉 장자연 사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에 공감하면서 그 용기에 감복하고 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증언을 해달라는 요구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사를 담은 송금이었다. 

이것은 증여교환 순환관계에서의 행동, 즉 윤지오의 증여증언에 대한 답례증여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증인의 신변안전을 바라는 열망과 증인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려는 연대의 취지가 아로 새겨져 있다. 이것은 증인의 신체가 나의 신체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공통장적 인식의 표현이다. 실명으로 증여한 사람도 있고 익명으로 증여한 사람들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이름 대신 적어 보냈다. 그 구호들은 통장 위에서 집회의 깃발이나 만장처럼 펄럭인다. 아래에 이름 대신 찍힌 문구들 중 이 후원금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하는 것들을 몇 개 골라 적어보자. (아마도 8자로 제한된 것으로 보이는 글자 제한 때문에 문구가 잘려 있는 경우도 있는데, 잘린 글자는 잘린 그대로 쓴다)

“윤지오짱예쁨, 힘내세요~~^^, 강0예지 존경, 유00고발후원, 고맙습니다, 적어서미안해요, 윤지오지킨다,정00(홧팅!!), 그대미소영원, 진실은승리한다, 항상응원할게요, 응원합니다, 지오님 감사해, 증언자윤지오, 벨라 화이팅, 멋진사람윤지오, 적게나마보태요, 함께하겠습니다.그동안수고하, 제주도연우맘, 정의사회구현, 용기에감사합, 고마워요!힘내, 딴게니키스오, 지지합니다, 끝까지함께해요, 혼자가아니에요,도움이되길, 용기내주셔서, 소액이라죄송,다담주에더보낼, 무너지지말아요, 끝까지함께가요, 언니힘내세요, 당신이지치지않, 용기감사합니다,연대합니다, 끝까지연대하겠, 나00달려라, 이시대영웅입, 경호는내가맡는, 같이해요!화이, 터널지오최고ㅋ, 전재산이이것, Justice…, 무탈기원, 용기잃지마세요, 꼭취뽀해서힘드, 멋져요힘내요, 증언에는후원, 긴시간을지나가, 지오님힘내세요, 금쪽같은 윤지오, 부디안전하시길, 힘네세요고맙습, 쫄지말기!!힘내, 함께싸울게요,실수투성이밤,딴지방판소년단,끝까지싸워주세, 대신해서 감사, 용기에응원과, 촛불하나, 아자!, 배우님힘내세요, 지나가는과객, 15번째증언응원, 깨어있는시민, 사필귀정, 적은돈죄송해요, 연대합니다, 작은용기가모여, 힘이되어드리고, 저희가함께할께, 백수라서,조금, 진실은밝혀진다, 두달연장화이팅, 감동감사함께해, 포기하지마세요, 사설경호후원금, 늘초심으로힘내, 고기도사드세요, 담엔더보낼게요, 그 용기에 박수, 다치지마세요, 많은여자들이같, 걱정하지마세요, 이제우리가지켜, 같은여자로써응, 김00.지켜줄, 증언감사합니다, 지치지말아요, 짐을지워미안해, 정의가승리하기, 진실이밝혀지기, 쭉 연대할께요, 봄은꼭돌아오거,진실은침몰하지, 학생이라부족하, 지나가는스님입, 훌륭하십니다.., 기도보탤께요, 끝까지살아주세, 지오님지지마세요, 김학의구속, 이것밖에힘이안, 학생이라죄송해, 홀로싸웠을시간, 커피사드세요, 언니아프지마요, 적지만마음만은, 당신은착한사람, 우리모두가증인, 이봐요힘내요딴, 큰용기감사합, 끝까지지지말아, 우리가지키겠, 밥한끼라도힘나, 아자아자!!!!, 돈패닉, 정의는이긴다, 그대의 용기에, 대한민국이응, 두딸의아빠 힘, 이렇게라도제망, 미안해요고마워, 용기내줘고마워, 딴게이와같이가, 함께임을잊미마, 이길수있습니다, 무사기원부탁, 지켜드릴게요, 토론토박00힘, 000국회의원, 일반시민, 기린은울지않는, 윤지오씨를국회,KOOL하게, 의인은힘내시라, 한국페미니스트, 서로의용기, 경호비용지원, 정읍아인이아빠, 행복합시다-딴, 성불하십시오, 본명이더예뻐, 진실을 응원합, 어느시각장애인, 소시민의정의, 사랑합니다.응, 죄지은자반드시, 윤배우님고맙습, 용기가대단해요, 힘들어지오화이, 우리는서로의용, 진실승리, 낙숫물이바위, 곁에있어요, 진실규명을위, 꿋꿋하고당당, 행복하게사세요, 윤지오씨경호비, 머리숙여감사드, 당신은멋진사람, 온마음으로연대, 이길거에요, 잊지않고지지합, 강한멘탈을지지, 당신이자랑스럽, 핸사리반짝, 차비라도보태요,  ……..”

위의 문구들은 틀림 없이 서로 다른 곳에 있었을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대동소이하게 여러 차례 반복되는 문구들이다. 다시 말해 이것들은 서론 다른 사람들의 공통의 정동과 공통의 인식, 공통의 의지를 표명한다. 천원부터 백만원까지 (평균하면 1인당 약 2만원의, 그러나 결코 평균해서는 안 될) 크고 작은 송금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방식으로 합류하는 무수히 많은 응원과 격려(힘내세요, 이깁니다 등등), 무수히 많은 연대결의(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함께연대하겠습니다 등등) 무수히 많은 감사(당신의 증언과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미안함(짐지워서 미안합니다, 소액이라 죄송합니다 등등)의 격류이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이 정동의 격류는 서로를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후원금 흐름의 형태로 이루어진 집회(assembly)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증인의 용기에 감사하고 지치지 않도록 격려하며 진실의 승리를 기원하고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이것은 윤지오의 진실증언 증여에 대한 답례의 증여로서 진실규명과 진실승리를 위한 용기와 연대의 공통장(commons)을 구축하는 힘의 출현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상호증여를 통해 서로의 진실과 힘을 다지는 무형의 공간이 생성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사건을 ‘증여 공통장의 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2019년 3월 18일 이후 15시간 여에 걸친 윤지오의 신한은행 통장은, 우리의 서랍에서 흔히 발견되는 은행통장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겠지만, 결코 경제적 수입과 지출이 기록되는 사인(私人)의 통장이 아니다. 그것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와 이 체제의 가해권력에 대한 저항의 용기, 진실규명의 의지, 함께 이 체제와 맞서자는 연대의 결의, 이 실천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로빚짐(감사)의 확인이 표현된 정치적 공간이고 그 정치적 목소리들이 낱낱이 기록된 삶정치적(biopolitical) 문서이다.  이 통장에는 경제적 일상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드물다(rare)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특이하다(singular)는 의미에서 사건의 문서이다. 

이 사건은 화폐로 기록된 사건이다. 맑스는 화폐가 교환수단, 지불수단, 축장수단, 세계화폐라는 네 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화폐는 이 중 어디에 속하는 기능을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통장에 입금된 화폐는 상품의 대금으로 송금된 것도 아니며 이미 산 상품의 대금을 지불한 것도 아니며 부를 모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한 맥락에서 신한은행 통장의 화폐는 증여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증여는 경호비라고 불리는 특이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5745명(이 숫자는, 15시간 여의 입금흐름 후 신한은행 계좌를 윤지오가 닫음으로써 강제로 제한된 숫자이다)의 후원집단이 무엇을 ‘경호’하려고 한 것인가? 무엇을 ‘지키려고’ 한 것인가? 윤지오의 신체를 지킴으로써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진실을 지키고 그것에 대항 저항을 지키며 그 저항의 연대를 지키고 서로에 대한 빚짐과 상호의존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다시 말해 진실의 연대를 위한 증여의 공통장을 경호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의미에서 신한은행 통장의 화폐는, 결코 경제적 수치로 환원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삶정치적 화폐였고 삶정치적 언어 그 자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송금 그 자체가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이미 삶정치적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3)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9

2018년에 윤지오는 증언을 달라는 검찰(검사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장자연에 대한 조0천의 강제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해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증언했다. 그 증언들은 경찰 수사관에게 했던 2009년의 증언과 유사하게 검사나 조사위원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이 증언들은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얼굴 없이 이루어졌다. 

2019년에 윤지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증언의 대상을 소수의 수사 및 조사 전문가에서 국민 대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직업으로서 수사나 조사를 하는 전문가를 매개로 했던 간접증언에서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 국민 대중을 향한 직접증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2018년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실명을 가리고 얼굴을 숨기는 식의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실명과 실면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명 증언은 2018년 피디수첩 인터뷰 및 JTBC와의 전화인터뷰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국민의 명령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진 이 절호의 기회에 실명, 실면의 증언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하는 증언보다 증언의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장자연 사후 10주년에 맞추어진 <13번째 증언>의 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간접증언에서 직접증언으로, 폐쇄증언에서 개방증언으로, 수동증언에서 능동증언으로, 타율증언에서 자발증언로, 수세증언에서 공세증언로의 이러한 증언 태도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일까? 

우선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10주년이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13번째 증언>, 224쪽)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학의, 버닝썬 등의 동종사건과 연동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아진 상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와 연관된 것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사권도 없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겨우 6명의 조사위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재조사가 과연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즉 국가에 대한 의문의 문제이다. 실제로 2009년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직후 초동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무려 42명의 수사팀이 꾸려졌고 대대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재수사는 가해혐의를 받은 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는 절차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해 보면, 비록 정부가 바뀌었고 촛불국민의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조건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한계인식 속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은,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주고 국민이 이 증언을 기초로 재조사라는 사법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 윤지오가 염두에 둔 것은 애초에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도록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그것은, 국민이 대의자들에 대한 소환, 해임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국민이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갖고 그것에 관여하는 주체로 되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여 위로부터 답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주 약한 표현형태이다. 윤지오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법 위의 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자생적 법철학 속에서 그는 국민의 제헌적 역량(법 위의 법)이 실정법(법)을 통제하고 재구성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러한 생각 위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증언 인터뷰를 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광장에서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소식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 3월 4일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는 뉴스공장을 기점으로 며칠간에 걸쳐 조선일보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방송사와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민들은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와 접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세 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1)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증언조서라는 것, (2)증언조서가 유서로 둔갑되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만큼 문건이 유서가 아닌 것이 명확한 한에서 장자연의 사망원인에 대한 원점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3)그 증언조서와는 별도로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성상납을 강요”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4)장자연이 당시 술자리에서 보였던 일련의 모습을 보면 이 “성상납 강요”가 마약을 강제 주입 당한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5)“성상납을 강요”한 이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에서 방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기억난다는 것 등이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주어진 이러한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류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자연은 우울증을 앓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고 그 유서에서 폭행과 협박을 한 당사자인 김종승은 처벌을 받았으며 장자연이 술접대나 잠자리를 강요받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나 ‘방사장의 아들’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며 문건의 해당 구절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 수사발표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주어진 주류 상식과 윤지오의 새로운 대국민 증언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증언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류 상식 세계에서 장자연 사건은 (다행히 경찰이 의도하고 있었던 장자연의 사기 미수사건으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기껏해야 악덕 기업주의 일탈적 악행 사건으로 인지되었다. 이럴 때 그 최종 책임은, 김대오가 주장하는 바처럼, 더 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윤지오의 증언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의 집단적 성폭행 사건으로, 즉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문제로 인지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특수강간 사건이나 살인 사건의 관점에서도 수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이럴 때 최종 책임은 권력자들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주어지게 된다. 이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는 기존의 사법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공소시효가 아직 충분히 남은 사건으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증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그 관심과 지지는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준 윤지오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고 그 증언에 따라 장자연 사건의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3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우선 신변보호요청 청원자는 이렇게 쓴다.

“고 장자연씨 관련, 어렵게 증언한 윤00씨의 신변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목격자진술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의 불이익, 또는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신변보호를 청원합니다. 보복, 불이익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 그 밑바탕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20대초반에 그 큰 일을 겪고 10년간 숨어 살아야했던 제2의 피해자 윤00씨의 신변보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원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이 정의로운 사회의 밑바탕인 만큼 증언자에게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요청은 윤지오의 증언을 사회에 대한 진실증여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증여를 받은 국민이 수증자로서 진실증여자에 대한 신변보호라는 최소한의 답례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후세대에게 떳떳한 나라의 성원일 수 없다는 것을 신변보호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86,50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청원, 즉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 요청은 다음과 같은 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고 장자연씨의 수사[조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수사기간을 연장해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의 초기 재수사에서 참고인 및 피의자 진술을 통해 명백히 제기되었으나 경검의 수사를 거친 후 사라진 주제다. 윤지오의 증언은 이 주제를 1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사회적 의제로 다시 가져왔다. 이 청원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을 재수사 연장의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청원은 신변보호 요청보다 많은 738,56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주어진 기간내 20만명 이상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낼 때 정부는 답변의 의무를 진다. 실명과 실면으로 국민에게 직접 증언키로 한 증언방식의 전환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매개로 윤지오가 다른 국가기관을 만나도록 만든다. 지금까지는 사법경찰과 검찰 및 법원이라는 사법 계통의 국가기관만을 만났으나 이제 청와대와 행정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후에는 입법부인 국회(의원)도 개입하게 됨으로써다.

청와대는 이 두 청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지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그 지시의 전문은 좀 길지만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 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 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 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랍니다. 


강남 클럽의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인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 기관이 유착하여 묵인・방조・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입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 시기와 유착 관계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므로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사한 불법 영업과 범죄 행위, 그리고 권력 기관의 유착 행위가 다른 유사한 유흥업소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사건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인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 등 행정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특권층’) 범죄로 규정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통해 진실규명을 가로막아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한 정황들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규정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는 특권적 주체였던 경찰과 검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점에서 관점의 커다란 도약과 진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윤지오는 3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통령의 이 응답을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일”로 평가하고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되었”다고 밝힌 후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지시에는 숨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지시가 검찰과 경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설정한 후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조사와 수사의 대상인 검찰과 경찰을 다시 조사와 수사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깊은 반성”을 통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제3의 조사/수사 주체를 구축해야 할 시점, 즉 수사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는 방향의 혁명적 발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다시 경찰과 검찰 자신을 자기수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검찰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권세력으로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않을까? 수사와 기소에서의 국민주권을 골간으로 하는 경찰 및 검찰 기관의 실질적 개혁이 부단히 지체되고 실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이런 양면적 태도와 무관할까? 이런 지시 이후에 실제로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가 포함되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담겨 있었던 최소한의 진실추구적 요소마저 지워버리면서, 재수사의 길을 닫아버리고 사건 재조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이러한 종결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변보호 청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의 일정한 반응이 있었다. 3월 8일 시작된 청원이 마감되기 전인 3월 14일 윤지오 변호사로부터 신변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청은 동작경찰서로 하여금 “△스마트워치 제공 △112 긴급 신변보호 대상자 등록 △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하도록 결정하고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 증언 중에서 재조사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윤지오를 재차 증인으로 불렀고 이 조사에서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나 출판물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가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들의 실명)을 증언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3월 30일 윤지오가 “스마트 워치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경찰관이 9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은”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경찰은 3월 31일 스마트워치 전체에 대한 긴급점검 실시를 약속하고 새로운 숙소로 윤지오를 이동시키고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가 동행 밀착 보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뒤 경찰은 3월 30일 당일 윤지오가 불안감을 느껴 스마트워치를 누르게 된 것이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 의한 것이며 스마트워치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지 않게 된 책임도 윤지오의 기기 조작미숙에 있었다면 책임을 윤지오게게 돌렸던 것도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 등에 떠밀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은 일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보호하고 은폐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예민한 책임감을 보이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국회는 어떠했던가? 국회는 윤지오 동행의원모임 구성과 간담회, 그리고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라는 형태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애초에 국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출판기념 북콘서트가 하루 전날 취소된 것도 신변안전 문제였다. 윤지오는 출판기념 북콘서트 무대에서 자신과 가까이 서게 될 출연진이 누구인지,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지 확인해 주기를 요청했고 극장측이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북콘서트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안민석의 주도와 공익제보자 모임의 연대로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무렵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증언자 윤지오를 동행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4월 초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과정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개되던 반윤지오 흐름의 표면화와 겹쳐졌다. 이 흐름은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나 악성 DM의 수준에 머무렀던 지하흐름이었으나,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증언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또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예정에도 없던 추가증언을 윤지오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 그 자체가 재수사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강하게 표출되고 표면화된다. 이것이 가해권력측이 느낀 위기의식의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증언에 대한 이 반동(reaction)은 호야스포테인먼트 전 실장 권0성의 발언을 근거로 삼은 뉴시스의 윤지오 공격과 박준영의 증인검증론을 거쳐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사기론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핵심은 증언에서 증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작업의 선봉에 섰는데, 장자연 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윤지오의 인성과 도덕성이 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제도언론들의 센세이셔널한 보도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의 까판 담론이 결합되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윤지오 동행모임은 동행은커녕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윤지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이 동행모임의 침묵은 이후에, 윤지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간 전혀 접촉한 바 없다는 해명, 윤지오의 난처함보다 자신과 동료의원들이 윤지오로 인해 겪는 난처함을 중시하는 엘리뜨주의적 냉정함, 다른 공익제보자로부터 윤지오를 분리시키는 교묘한 언어놀음 등으로 범벅이 된 항복문서를 가해권력 앞에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긴밀한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 받을 때에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선적 과정의 끝에 윤지오는 10년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 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 작가, 기자,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했다. 일찌기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자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끝)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2)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8

장자연의 육성파일이 말해주다시피 증언조서 문건을 작성한 후 장자연은 짧은 기간동안 마녀사냥에 시달렸다.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의 별의 별 이야기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가 이후 오랫동안 겪게 되었을 수난 이야기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의 마녀사냥이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장자연의 수난사는 극적으로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폭력 가해혐의자들 모두가 무혐의 처분되었다는 것은 국가 사법의 수준에서 장자연 문건의 핵심이 허위인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고 장자연의 문건작성을 미수로 그친 사기행위로 본 경찰의 시각이 사법적 수준에서 관철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 사법의 수준에서 이러한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다중의 마음에 수용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사법의 이러한 판결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러한 판결에 이르게 된 수사상의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019년 7월 12일 오후 7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렸던 제1차 페미시국광장 집회 <시위는 당겨졌다. 시작은 조선일보다>에서 한 여성 발언자는 성폭력은 여성이 겪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우리는, 성폭력이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 범죄행위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며 가부장 체제 자체의 내밀한 논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절도가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 범죄행위가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내밀한 논리를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08년의 촛불집회가 여고생들(촛불소녀)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들, 그리고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들에 의해 탄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성폭력 의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의 퇴진/탄핵을 초점으로 삼았던 2016년의 촛불집회에서는 오히려 (박근혜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적 언어가 촛불의 언어로사용되기까지 했다. 성차별 문제에서 촛불이 보이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성폭력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기 위한 본격적 노력은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폭발해 나왔다. 그것이 2018년의 미투이다. 미투 운동은 “나는 성폭력을 겪었습니다”라는 미투형식의 증언조서 문건을 작성한 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이 재조사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이 재조사는, 새로운 조사주체의 구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검찰 관료계급의 자기반성이라는 형식 속에서 전개되었다. ‘과거사조사위원회’라는 이름은 정확히 이것을 반영한다. 진상조사단 차원에서는 검사 2인 외에 대학교수 2인, 변호사 2인이 참여하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가 대검 산하에 놓여 있는 한에서 검찰이 자신의 과거사를 스스로 조사한다는 본질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우리 속담에서 불가능하다고 한 것, 즉 중에게 제 머리를 깎게 하고 의사에게 제 병을 고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틀 속에서 장자연의 증언조서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기행각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기존의 시각이 바뀔 수 있겠는가? 윤지오가 대한민국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증인으로 소환된 것은, 불행하게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이다. 검찰은 윤지오가, 장자연 사건을 과거지사(過去之事)로 돌리는 데 협력하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구천을 떠돌며 끊임없는 재조사 요구로 가부장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그 영혼을 영구 안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검찰은 윤지오가 이 사업에 협조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윤지오의 증언이 미투봉기를 통해 다시 불러내어진 그 영혼을 달래고 미투가 제기한 문제를 미봉하면서 정치권력을 안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윤지오는 검찰의 과거사조사위원회가 갖는 이러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가 처음에 검찰의 참고인 출석요구에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까지 말하며 장자연 사건 재조사를 위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그가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먼저 설득해야 했다. 20대 초의 나이에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에 참고인으로서 어려움과 억울함을 무릅쓰고 증언을 통해 협조한 바 있는 윤지오가 30대 초에는 왜 국가의 증언 요구에 협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하나는 국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다. 경찰은 참고인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밤새 수사하기를 반복했다. 밤샘수사, 장시간 수사는 피의자를 괴롭려 자백을 이끌어내는 악명높은 수사기법이고 수사관행이다.윤지오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당한 수사방식에 적극 협조했다. 장자연의 ‘억울함’을 풀고 조금이라도 ‘위로’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타난 결과는 가해권력자들이 모두 무혐의로 면죄된 것이었다. 수사기관은 장자연이 리스트에 기록한 사람들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문건에 이름이 또렷이 기록된 사람들도 무혐의처분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자신이 강제추행 현장을 직접 목격한 바 있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바 있는 가해자(조0천)마저 무혐의 처분한 것이었다. 기억 속에 분명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를 밝혀야 하는 이 과정에서 윤지오는 경찰이 밤샘수사, 장시간수사, 최면수사, 논점일탈수사 등으로 자신의 기억을 교란시켜 가루로 만들고 남성 동석자들이 서로 입을 맞춰 성추행을 본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경험했다. 부인이 현직 검사였던 그 남자는 대질신문에서 윤지오가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지오가 느낀 심경과 감정은 대질신문조서에 다음처럼 나타나 있다.(질문자는 사법경찰관 손0천이다.)

“문: 조0천이 장자연을 잡아당기어 무릎에 앉힌 다음에 장자연의 가슴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다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이때 진술인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문: 진술인은 지금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인가요.

답: 아니예요….

문: 진술인은 조0천이가 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답: 제 생각에는 진짜 기억이 나는데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한편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분이 인생이 달려 있다고 하는 말을 했지만 저 같은 경우도 이와 같이 말을 한다고 해서 자연이 언니가 살아 온다고 볼 수가 없고, 저 분이 자연이 언니의 죽음에 대해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에 격분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가라오케에 참석한 변0호 대표, 김대표와 저분은 친한 분이고 제 편은 한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말을 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오늘 경찰서에 왔을 때 방송사에서 저를 상대로 취재를 하면서 저에게 물어보기를 잠자리도 같이 했습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 저 자신이 이곳까지 와서 그런 말을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저분이 자연이 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저분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은 저도 알지만 죽은 자연이 언니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 제가 스스로 말을 한 것인데, 저 분은 자연이 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을 하였고, 저 같은 경우는 저 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반성을 하거나 사과를 했다면 제가 본 것이 잘못 보았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저 분이 끝까지 그 자리에서 저를 본 사실이 없고 자연이 언니에게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 진술인은 계속하여 울면서 휴지로 눈물을 닦고 진술하다)”

윤지오가 국가기관인 경찰에서 직면한 것은 취재왔던 방송기자들이 피해자인 장자연과 자신을 마치 윤락녀인 듯이 대하고, 피의자 조0천이 동석했던 남성들과 합세하여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이 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진술하는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말을 비웃고 심지어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우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끼는 “격분” 때문에 윤지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이 장면의 정동적 측면이다. 

윤지오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잠자리도 같이 했습니까”라는 방송기자의 가해자주의적 시각은 때로 경찰 수사관에게서도 발견되는 시각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조0천과의 이 대질의 시간에 윤지오는 언론, 경찰, 남성이라는 세 가지 권력에 포위되어 자신이 목격한 사건에 대한 진술이 억울하게도 거짓말로 내몰리는 참담한 억압의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이 고립과 억압의 체험이야말로 10년 여가 지나 요구받은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증언요청에 윤지오가 선뜻 나설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유였다.  

또 하나는 첫 번째의 국가에 대한 불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의 한 계기를 이루지만 따로 논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훨씬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삶정치적인 이유로서 검찰이 증언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장자연은 아무 힘이 없는 자신에 비해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물리적 성적 폭행, 협박과 강요를 당한 피해자임에도 그 피해사실들을 증언조서 문건으로 작성했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성적 험담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다가 실제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검찰이 불러 윤지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자 하는 증언이 장자연의 죽음을 가져온 그 증언조서의 증언과 과연 달랐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경찰 수사기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윤지오는 장자연과 술접대하는 자리에 언제 참석했고 거기서 무엇을 겪고 무엇을 느꼈는지, 대표 김종승이 장자연과 자신에게 어떤 행위를 했는지, 장자연이 문건에 적은 피해사실 증언들과 관련하여 함께 겪은 것이나 추가로 생각나는 것이 없는지, 장자연에 대한 가해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등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윤지오는 증언조서를 썼으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진정한 증인인 장자연을 대신하여 증언해야 했다. 유태인 집단학살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학살당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진정한 증인 무젤만(Muselmann)을 대신하여 불가능한 증언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한편에서 윤지오 역시 장자연의 그 ‘말할 수 없음’을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의 증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윤지오는 장자연과 동일한 경험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2009년 2월 어느날 유장호로부터 ‘피해사실에 대해 써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쓰지 않았던 그 문건, 장자연의 죽음을 가져온 그 피해사실 문건을 수사관 앞에서 뒤늦게, 말로 써야 하는 증인이었다. 가해자들의 이름을 뒤늦게 쓴다고 해서 과연 안전한 것일까? 동일한 가해자들이 시퍼런 권력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현실에서 진술로 쓰는 그 문건이 아직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장자연의 증언조서는 이 땅의 여성노동자가 겪는 일상적 피해경험이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힘센 권력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에 대한 피눈물의 기록이었다. 장자연이 권력자들의 위선과 부패 및 폭력성을 증언조서에 기록한 이상, 장자연을 대신해서 증언해야 하는 윤지오 역시 그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증언에 협박과 보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장자연이 선례로 보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윤지오가 증언을 한 후 기자들에 쫓기면서 ‘이순자’ ‘동료 여배우 X’등의 가명 뒤에 숨어 살아야 했던 10년의 시간을 통해 다시 입증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국민의 명령을 받아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과 ‘생명인지 감수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검찰청은 윤지오에게 이렇게 말을 건다. “윤애영 씨께서 저희 과거사조사단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오시면 왕복 항공권 비용 정도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국내 체재비용은 안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한국에 와주실 수 있을까요?…대검찰청에서 비용지원을 많이 해주지는 않네요. ㅠㅠ 과거사조사단 장자연 사건에서 윤애영씨가 핵심적인 분이라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능한 빨리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2018년 10월 14일) 그런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증언을 하는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지난 세월의 경험을 통해 윤지오가 느끼는 생명인지 감수성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을 대표해 실무적으로 윤지오에게 증언요청을 하는 이 담당 변호사도 이것이 충분하지 않은 비용 지원책이라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그런데 윤지오는 담당 변호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가장 큰 관심이 가 있다.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안전이다. 검찰의 이 제안에 대한 윤지오의 반응을 살펴보자.

“그렇군요. 처음 말씀해주신 사항과는 변동사항이 있네요. 혼자서 보호없이 가야하는 건가요? 가능한 한 빨리라 함은 언제를 말씀하시는지요? 또 국가에서 보호해주시는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불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신변을 어찌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법원 서기 전에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할 것이고요. 그렇게 하는 것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판단되어 집니다”. (2018년 10월 16일)

윤지오의 핵심 문제는 신변안전, 신변보호다. 이 짧은 답변에서 그는 ‘혼자서 보호없이’, ‘국가에서 보호해주는 시설’, ‘신변을 어찌 보호해 줄 수 있을지’, ‘그렇게 하는 것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판단되어’ 등 네 번에 걸쳐 보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신변보호 지원에 대한 윤지오의 이러한 질문을 받고서야 담당 변호사는 “지원 여부는 변호인단에 확인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라고 답한다. 어떤 답변이 왔을까? 

“대검찰청에서는 항공권 지원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10월 말 또는 11월 중순, 하순 귀국 가능할까요? 조0천 사건 법정 증언 관련해서는 추가로 입국하셔야 할 거 같고 그때 다시 항공권 지원이 될 거 같습니다만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힘드시겠지만 국내에 오셔서 과거사조사단 면담도 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빨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변보호 지원은 불가하다는 냉정한 대검찰청의 답변, 그리고 조0천 사건 증언 관련 추가 입국시 항공권 지원은 가능할 것 같다는 최소 비용지원 원칙의 재확인인 것이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증언할 경우 재정 측면에서 항공권 외에 육상교통비, 숙박비, 식사비 등 기본적인 체류 비용이 들어간다. 증언을 위해 해외에서 건너온 사람의 이 기본적 체류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일까? 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증언을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야 하면 그 시간 동안 손실이 발행한다.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므로 증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고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 “진실”은 누구를 위한 진실일까? 그런데 “윤애영씨가 저희 과거사조사단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오시면”이라는 앞의 인용이 보여주듯이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진실”이 과거사진상조사단과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를 위해 사용될 것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진실”이 검찰을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국민을 위해 사용될까? 그리고 또 국민의 한 사람인 “증인”을 위해 사용될까? 또 신변보호 지원 없이 자신의 국민을 신변위협이 따르는 증언에 나서도록 재촉하는 국가는 누구의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국가일까?

이 상식적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돌아가보자. 검찰로부터 신변보호 약속이 없기 때문에 윤지오는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본 사항을 담당 변호사에게 전달한다. 내용인 즉,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말이, 경호 제공 등 형사지원제도를 갖추고 있어 지원해 드릴 수 있는 것들을 확정하는 대로 지오님께 먼저 연락드리겠다”는 것이다. 윤지오는 국가가 이동상의 보호를 제공해 줄 수 없다면 보호자나 동행자의 대동보호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대검찰청의 답은 무엇일까?

“비행기 티켓은 참고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를 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면 비용을 계좌로 지급을 해준다고 합니다. 단 이코노미석만 비용 지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입니다. …항공사 선택은 제약이 없는데 가급적 비용이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하면 좋다는 답변입니다. 아쉽지만 동반자는 지급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것도 대검 답변입니다.”(10월 18일, 담당 변호사) 

신변보호자에게는 비용지원이 없다, 이코노미석만 된다, 가급적 저렴한 항공편으로, 최대한 빨리! 이것이 증인을 대하는 대한민국 대검찰청의 마음이고 태도이다. 국가의 돈이 국민이 낸 혈세이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세가 아깝다는 이유로 검사나 진상조사단의 조사위원들도 월급이나 활동비를 받지 않고 자신의 비용을 들이면서 “진실”을 밝히는 업무를 하고 있는가? 그들이 최저의 교통수단으로 최저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가? 왜 “진실”을 밝힐 증인에게만 체류비 부담, 손실부담, 최저생활을 요구하는가? 증인이 “진실”을 위한 희생제물인가? 증인이 “정의”를 위한 순교자여야 하는가?

조0천 건을 위한 검사측 증언과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한 증언은 별개의 건이라고 하면서 진상조사단 증언건을 위해 “언제쯤 오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담당 변호사에게 윤지오는 조사가 어디에서 몇 차례 몇 시간이 진행될 예정인지, 그리고 그곳이 “안전한 곳”(10월 19일)인지 묻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과 위험 부담을 고려하여 진상조사단 조사와 조0천 증언을 합쳐 한꺼번에 묶어서 진행하면 좋겠고 과거사진상조사단 측이 항공권을, 조희천 증언 담당 검사측이 숙박료를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명함과 동시에 그 동안의 대화에서 참았던 감정과 속생각을 털어놓는다. 

“무조건 빨리와라 오갈 곳은 알아서하시고요 보호도 잘 모르겠네요는 무책임하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굳이 한국에 귀국할 이유도 없고요. 저는 잃는 것이 더 많고 보호받지 못한다면 위험을 감행하고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10월 19일)

윤지오는 대한민국 대검찰청이 증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면서 무책임하게 증인을 대하는 것에 분노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에 임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담당 변호사는 다짜고짜 연락선을 바꾼다는 취지의 다음 답변을 보낸다.

“윤애영씨 연락 주고 받는 것을 과거사조사단에 같은 팀인 다른 검사님하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과거사조사단에서 지금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0화 검사 님이 저희 팀인데 윤애영씨 한국 오시는 문제 관련해서 연락드릴 것입니다.”(10월 22일)

그런데 이것은 윤지오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윤지오는 같은 날 과거사진상조사단 출석을 위한 협의의 중단을 선언한다.

“이렇게 막무가내식인 경우는 처음봤네요. 사회생활을 해외에서 몇년 해와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경우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그쪽 팀하고 그 어떤 것도 같이하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법원에서 진술하고 기자회견하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간 수고 많으셨고 건승하시길 바람하겠습니다.”

이 예상치 못한 협의중단 선언에 당황한 담당 변호사는 연락선 전환에 관한 위의 일방적 결정에 대해 상세하고 진지하게 해명하고 사과하는 장문의 글을 보냈고 이 해명과 사과를 거쳐 양자간의 협의가 계속된다. 이런 갈등적인 조율 끝에 마침내 두 건을 하나로 묶어 11월 말 윤지오가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며 애초의 왕복 항공권 지원 외에 숙박료와 일부 경호지원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증인 출석을 위해 윤지오가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협의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증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증언출석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응해 달라고 호소했고 공익제보자의 인권옹호와 지원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에 윤지오를 공익제보자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런 표면적 얼굴 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증인을 보호하려는 어떠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고 어떠한 실제적 보호조치도 준비해 두고 있지 않았으며 저렴한 삶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위해 증인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나라 다운 나라”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자칭 촛불정부였음에도 말이다. 국가는 공동체를 자임하면서도 여전히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공동체로서는 자격미달의 기관이었다. 

또 하나는 윤지오가 신변위협을 들어 “영리하게” 국민들을 기망하여 후원금을 편취했다는 김수민 발(發) ‘소설’의 허구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한국으로 와서 증언하기를 원치 않았던 윤지오가 국민의 생명도 성도 재산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대한민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 대검찰청이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변호사를 통해 진실, 정의 등의 “대의”를 가지고 반복해서 설득했기 때문이다. 김수민이 관련된 저간의 사정을 알기 위해, 과거사진상조사단 및 조0천을 기소한 검사측과의 일정 조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인 11월 13일 윤지오가 김수민과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대화는 검사측에서 마련해준 것으로 보이는 오피스텔을 두고 시작된다.

“김 : 오피스텔?

김: 어떤 오피스텔이지

윤 : 오피스텔도 오피스텔 나름이지 ㅜㅁ ㅜ

윤 : 그러니까

윤 : 제대로된 정보도 안알려주고

김 : 모텔 깨끗하고 괜찮은데 7만원이면 충분히자는데

김 : 실비지급?

김 : 숙박비를 나중에준단소리얘

윤 : 근데 모텔은 치안이 별로여서 ㅜ

김 : 야?

윤 : 그러니까

윤 : 경비처리도 영수증줘도 언제 줄지도 모르고

김 : 일단 니돈을쓰라는거야?

윤 : 말도 계속바꾸니

윤 : 그러니까

김 : ㅡㅡ 염병할것들이네진짜

윤 : 에혀

윤 : 다 인스타에 까발려버리고싶다

윤 : 분노게이즈 올라온게

윤 : 한두번이 아니야 ㅜㅜ

윤 : 필요하다고 울아빠까지 들들 볶더니

윤 : 애걸복걸이더니

김 : 그때 그 조사단인가뭔가 개네들은어케됐어

윤 : 거기서도 뭐 비슷하지

윤 : 근데 100만원정도 지원시스템 뭐 준다는데

윤 : 내가 목숨걸고 내 인생에

김 : 응

윤 : 주홍글씨 만드는건데

김 : 그치

윤 : 뭔가 초라하다랄까

윤 : ㅜㅜ

김 : 그치그치

윤 : 내가 이상한건가

윤 : 여기에서 하는일도 올스탑하고 가니까

김 : 아냐 나같아도그런생각들지

윤 : 손실도 있는데

김 : 숙소랑 식비 그런걸 확실하게 말해줬음좋겄구만

김 : 그래야 너 맘도 편하지

윤 : 그러니까 ㅜ

윤 : 닥치면 해결할라하고 늘

윤 : 00사람들은 ㅜ

윤 : 특히나 위로 갈수록 더 그런거같아

김 : 00이그치뭐 제대로 일처리들을안하지 원고는 다 쓴거야?

윤 : 언니는 요새 어때?

윤 : 몸은 좀 괜찮아?

윤 : 아니 아직 계속쓰고 수정하고 그러고있지 뭐

김 : 언니 어제 퇴원했어

윤 : 가서 인터뷰형식으로해서 쓸수도 있고 일정부분은

김 : 나도 원고때문에 스트레스ㅜ

윤 : 고생했네 언니 ㅜ”

김수민과 달리 윤지오에게 숙소 선택에서도 기준은 무엇보다 “치안”, 즉 안전임을 다시 한 번 주목하자. 윤지오는 검찰과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증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고 김수민은 “나같아도그런생각들지”라며 이에 동조하고 있다. 자신에게 경제적 손실, 시간 지출, 생명의 위협을 감나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에 대해 이런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영리하게” 돈을 편취하기 위한 사기 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음모론은 누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미 이 때에 윤지오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책에 대한 대화도 김수민과 나눈다. 김수민이 원고는 다 썼는지 물었을 때 윤지오는 원고를 계속 쓰면서 수정하고 있고 일부는 한국에 가서 인터뷰 형식으로 쓸 수도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책쓰기가 이후에 김수민에 의해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술책”으로, 글쓰기의 비전문가로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집필과정이 “대필”로 묘사될 줄이야 윤지오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변호사, 기자, 경찰 등 국가 수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배척하면서 변심한 김수민의 말에만 근거하여 고소고발, 비난, 영장청구를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윤지오는 2018년 10월 무렵에 조0천 강제추행 사건 증언을 위해 “법원 서기 전에”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다. 그것이 신변보호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은 얼굴과 실명을 그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과 실명 공개 계획은 포기되고 2019년 3월 4일까지 미뤄진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겠지만 국가로부터 증언자에게 신변보호 조치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2018년 11월 6일 기자회견 관련하여 담당 변호사와 나눈 대화에서 이 점이 드러난다. 

“지난 번에 기자회견을 하신다고 했는데 하실건가요? 만일 기자회견을 하신다면 과거사조사단에 출석하실 때 조사단이 있는 0부지검에서 기자회견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담당 변호사의 질문과 제안이다. 윤지오는 이 시점에서 아직 망설이고 있다. “네 한번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별 인터뷰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도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을 만큼 짧게 제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공개할지 안할지 여부도 아직 고민이 많이 되네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피해자나 피해자의 증인이 숨어야 하고 가해자나 범죄자는 당당한 것일까? 왜 그런 것일까? 윤지오의 고민을 깊게 하는 대한민국의 이 적나라한 현실 앞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는다면 언제 던져야 하는 것일까? 윤지오의 고민에 대한 과거사진상조사단 담당 변호사의 답변은 이러하다.

“아, 그건 너무 중요한 문제라 윤애영씨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자회견을 하라는 게 아니라, 만일 하신다면 조사단 출석하실 때 하는 게 좋겠다는 거라서요. 만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면 절대 비공개로 할 거예요. 지난 번에 신변보호를 위해서도 기자회견을 하시겠다고 윤애영씨가 말씀하셔서. 너무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니 윤애영씨가 주변분들, 또 변호인들과 충분히 상의하셔서 결정하세요. 지금 조희천 공판에서도 ‘이순자’라고 부르고 있지 ‘윤애영’이라는 이름은 공개되어 있지 않아요. 심사숙고 하셔서, 윤애영씨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시고 정하시면 됩니다. 누구도 윤애영씨에게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라고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아요. 일단 한 번 공개가 되면 이후에 이런 저런 파장도 있을 수 있으니 심사숙고 하시고요, 저는 기자회견을 하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래요^^ 윤애영씨가 상처받지 않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담당 변호사는 얼굴과 이름의 공개가 “너무 중요한 문제”이고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으며 그것이 윤지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신변보호를 위한 공개 기자회견이 예상과는 달리 신변위협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방향을 결정해 줄 수는 없고 주변분들이나 변호인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신변보호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윤지오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 감사합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 아직 많이 헷갈리네요.” 

뭐가 “헷갈리”는 것일까? 만약 자신만 생각한다면 증언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데 가해자 처벌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을 “언니 장자연”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윤지오와의 협의 대화 테이블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말을 올려 놓고 증언을 요구할 때, 윤지오가 거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대검은 생명안전에 대한 관심은 없으면서 생명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증언을 달라고만 한다. 

이 “헷갈리”는 현실 앞에서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 담당 변호사에게 세 가지를 묻는다. “제가 증인으로 한 번만 출석하면 되는 건가요? 제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 분은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 건가요? 또 제가 증언한 것들이 증거불충분이나 다시 덮어지는 사태가 발생할수도 있는 것인가요?” 이 세 가지 질문 중에서 윤지오가 들은 답은 하나, 즉 첫째 질문에 대한, “아마도 한번만 가시면 될 거 같아요”라는 답뿐이다. 

변호사가 답해주지 않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이후 전개된 현실이 답해준다. 그 답이 무엇일까? 온갖 망설임, 고뇌를 거쳐 2018년 12월에는 얼굴과 실명 공개를 하지 않다가 4개월여 뒤인 2019년 3월 4일 ‘뉴스공장’을 통해 마침내 처음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 변호사, 작가, 까판계정주들로부터 돌아온 것은 “네가 언제 숨어 살았냐?!”라는 무자비한 언어폭력이었다. 이 언어폭력 속에서 “얼굴과 실명의 공개”란 “숨어 있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자명한 사실조차 사유되지 않는다. 사유의 이 철저한 무능력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윤지오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누군가의 실리적 필요이다. 그리고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실리적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맹목적으로 (비)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 능력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역관계 속에서 현실에 두 가지 답이 주어졌다. ‘어떠한 처벌도 없었다.’ ‘증언이 있었음에도 사태는 다시 덮였다.’ 윤지오가 예상치 못했고 그래서 질문하지 못한 한 가지 사태가 여기에 더해졌다. 자기자신이 글/말과 법에 의해 ‘가해자’로, ‘범죄자’로 위조되는 사태…!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1)

증언자 장자연과 국가

윤지오 이전에 장자연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자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장자연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다. 장자연은 자신이 쓴 증언조서 문건에서 많은 수의 권력자들을 협박, 강요, 폭행,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이 증언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장자연이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꾼으로 몰려 고소고발되고 압수수색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구금되었을지 모른다. 4장만 남은 증언조서 문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저 ‘죄없는 사람들’에 대해 허위사실을 가지고 명예훼손한 증거물로 제출되었을 것이며 권력자들이 ‘김밥값'(후원금) 으로 입금해준 수표는 사기로 편취한 재물로 압류되었을 것이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음란죄로 몰아붙일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어딘가로부터 쏟아져 나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론들과 기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떻게 움직였을지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장자연은 경찰, 검찰로부터만이 아니라 기자로부터 쫓기며 취조형 취재를 당해야 했을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포위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앞다퉈 톱기사로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들에 동화된 사람들이 그를 마녀로 지목하고 화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군중들의 손가락질로 잠을 설쳐야 했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에는 근거가 있다. 그 그림의 윤곽이 앞에서 분석한 대한민국 경찰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이미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건조사에서 경찰의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증언조서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만드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망하여 돈을 벌고자했으나 자살로 인해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경찰의 시각에서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가해권력자들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가난한 연예노동자 장자연의 ‘사기 미수 사건’이었다. 

검찰, 법원은 이런 시각 하에서 합동수사를 진행했던 경찰과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경찰로 하여금 장자연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통화내역 조사 지휘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피해자 장자연과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통화내역은 1년치를 조사했으면서 조선일보 방상훈에 대해서는 한 달치만 조사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이모 수사관은 “통상 1년의 통화내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이지만 검사, 판사가 문건에 2008.9이라고 나와 있으니 2008.9 한 달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판사가 “청구는 1년치를 하였나요?”라고 다시 확인하자 이모 수사관은 “예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한다. 진짜 문제는 경찰이 아니라 검사, 판사라는 답변이다.

그런데 1달치 통화내역으로 조사범위를 넓기기 전에 원래는 그보다 짧은 1주일치 통화내역만 조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관해 판사와 이모 수사관이 나눈 문답은 이러하다.  

문: 경찰서에서 성남지청으로 청구한 청구서를 토대로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것인데, 당초 수사팀에서는 원래 1년치를 신청했으나 일주일치만 신청하라는 검찰의 수사지휘에 따라 신청서에 일주일로 줄여서 기재하였다는 것인가요?

답: .

문: 검찰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는 신청서를 보낸 적은 있나요.

답: 증인의 기억에는 문서로 오갔는지 구두로 오갔는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원래 분당경찰서가 성남지청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고 요청하였는데 검사의 수사지휘로 일주일치의 통신자료만 청구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이 맞다면, 경찰이 진상규명과는 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시간에 이러한 방향을 규정하고 수사가 진실과 괴리되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와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였던 셈이다. 즉 피해자의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할 목적으로 가해(지목)자에 대한 수사범위를 축소하는 일에서 경찰, 검찰, 법원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전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기획사 대표였던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처벌을 내린 것 외에 실질적인 가해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로 면죄시킨 것이다. 이 결과의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검찰개혁’에 대한 강렬한 국민적 열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검의 수사와 기소 및 법원의 판결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의혹, 즉 행정 및 사법관료 체제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국민을 기만하고 진실을 억압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불신이다.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표정, 행동에 대하여(3)

Scene #3 장자연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고인을 사기꾼으로 만들기

조선일보가 이종걸 의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하여 2011년 10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증인신문이 열렸다.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장자연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이모 수사관이었다. 이날 이모 수사관은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엉겁결에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대해 경찰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깊은 무의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만다.

“문: 경찰이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 확인한 사실은 어떤 것인가요?

답: 수사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고, 아들이 룸싸롱에서 장자연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이하 모든 문답 인용은 한국일보의 <장자연 사건 진술전문공개: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에서 가져온다.) 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dfc34fa8eb2d4eeda905360705cd90bf/index.html#&gid=1&pid=1

놀랍게도 대한민국 경찰의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내용 전부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이 답을 듣고 변호인은 문건의 한 항 한 항에 대해 경찰이 사실로서 확인했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문: 장자연의 문건 중 “제가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촬영할 때는 진행비를 저에게 부담시켰고 이것도 모자라 매니저 월급 및 스타일리스트 비용 실비 모든 걸 제가 부담하게 강요하여 제 자비로 충당하였습니다”라고 기재된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수사발표 당시에는 발표를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문건의 첫 항에 대한 사실 여부부터 이 수사관의 기억에는 없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그토록 강하게 단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변호인은 이어 문건의 두 번째 항이 사실로서 확인되었는지 묻는다.

“문: 또 문건 중 “어떤 감독님이 태국에 골프 치러 오는데 드라마 스케줄 빼고 태국으로 와서 술 및 골프 접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요구를 제가 응하지 않자 차량도 네 돈으로 렌트해서 타고 다니시라고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예”

다시 놀랍게도 이모 수사관의 답은 ‘예’이다. 수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항의 사실 여부는 기억에 나지 않고 두 번째 항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 확실한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정도로는 이모 수사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던 때문인지 변호인은 더 묻는다. 

“문: 문건 중 “저는 김00 사장님 회사에 계약되어 일하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출연하고도 1,500만원 중 300만원만 받았고 끊임없는 사장님의 지인과의 술접대 강요를 받았으며 그렇게 지내면서 저는 그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이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는가요.

답: 그런 강요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체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일까? 변호인은 문건 중의 다른 항목을 질문한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이 ..저를 방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저를 수없이 때리면서 … 온갖 욕설로 구타를 당했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이모 수사관은 답한다. ‘예, 기소하였습니다.’ 변호인은 또 묻는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하였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부분도 김00이 장자연을 수십 회에 걸쳐 술자리에 불러낸 사실을 확인하였나요[?]’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의 이모 수사관이 답한다. “예, 경찰에서는 사실로 확인하였습니다.” 

변호인이 이런 방식으로 문건의 세부항목에 대한 사실확인 여부를 하나하나 점검해 들어가 보니, 문건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모 수사관이 명백하게 위증을 한 것이 아닐까? 이모 수사관은 이 증인신문에 앞서 판사 앞에서 위증의 벌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선서와 서약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변호인의 질문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나는 이모 수사관의 ‘장자연의 문건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 거짓 주장, 거짓 의식이 그의 개인적 생각이었을까? 

그는 이 신문과정에서 문건에 대한 이 문답의 시간에 이르기 전에 당시 수사팀이 어떻게 꾸려졌는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장자연 사망 직후 분당경찰서가 이 변사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살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유족을 중심으로 수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3월 13일 KBS에서 장자연 문건이 보도되었고 이후 경기지방경찰청에 광역수사대를 편성하여 분당경찰서와 합동 수사를  시작했다. 42명의 거대 수사팀이 꾸려졌고 분당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매일 수사회의를 했으며 50명 이상의 기자에게 매일 브리핑을 했다. 증인신문에 소환된 이모 수사관은 2009년 3월초부터 2009년 7월 9일까지 장자연 수사팀에서 근무했으며 2009년 4월 24일 중간수사발표 직후 가진 기자와의 문답에서 답을 했던 인물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 개인의 특별한 생각이라기보다 당시 수사팀의 일반적 생각을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증인신문 서두에서 미리 정해진 특별한 수사방향은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므로 “경찰 수사의 명예를 걸고 떳떳하게 수사하자” “다른 건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수사하자”고 수사팀원들이 서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문건내용의 사실여부 확인 과정에서 그는 판사, 검사, 변호인, 방청객 앞에서 여지 없이 거짓말로 드러날 불공평하고 불명예스런 증언을 무릅쓰게 되었을까? 그가 문건에 대해 이렇게 거짓증언을 한 동기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자 한 것, 즉 숨기고자 한 사실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변호인과 이모 수사관이 나눈 다음 문답은 시사적이다.

“문: 문건 내용중 2008.10.28 방상훈의 아들 방정오가 강남 라000 유흥주점에서 장자연 김00 등과 술자리를 한 사실은 확인되었나요.

답: 예.

문: 장자연의 문건 중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부분만 확인할 수 없었는가요.

답: 예, 그 부분은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라는 답이 나온다. 거듭말하거니와 이 말도 문건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 합동수사팀이 “확인이 안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수동태로 쓰여진 이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가 ‘정말 확인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확인을 못한 것’인지 ‘덮어두고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갖가지 이유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실제로 45쪽 이후 변호인들과 증인 이모 수사관 사이의 문답은 이 문제에 집중된다. 

변호사는 이모 증인의 답을 들은 후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에서 그 시기와 사람이 특정되어 가장 구체적인 진술 부분이라고 보이는 조선일보 방사장의 부분만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데, 어떠한가요”? 라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이모 수사관의 답은 어딘가 논점을 벗어난 횡설수설로 보이는데, 살펴보면 엄밀해야 할 수사 결론을 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생각과 일반적 추론으로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자.  

“‘아들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라는 부분도 과장된 문구로 쓴 소송용 문구입니다. 소속사에서 골프 접대를 오라고 하였으나 오지 않아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차도 빼앗기고 다 빼앗겨서 옮겨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장자연이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소속사를 옮기고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00와 연결이 되어서 소속사를 옮길 목적으로 소송용으로 쓴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술자리에 다녀간 것도 증인은 여러 군데를 다녀갔다고 봅니다. 과연 조선일보 사장이 룸싸롱 성접대를 했느냐, 그 아들인 스포츠 조선 사장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요구했느냐는 수사가 제일 어려운 수사였고, 룸싸롱에서 만난 것은 맞지만 과정이 장자연만 불러서 장자연만 접대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방정오라는 아들과 한00 등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한00과 김00이 연락이 되어서 갑자기 장자연을 데리가 가서 인사만 시겨준 자리입니다. 그래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했다는 부분은 과장된 것이고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되지 않았나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입니다.”

뒤죽박죽으로 표출된 그의 생각의 골자를 정리해 보자. (1)장자연은 당시 김종승 사장의 명령을 거부하여 모든 것을 빼앗겨서 돈이 없었다 (2)소속사를 옮겨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장호와 함께 소송용 문서를 작성했다. (3)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 (4)그러므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하게 했다’는 문구는 과장이다 (5)그 자리는 김종성이 방정오에게 장자연을 인사만 시킨 자리였다.

이런 추론과 가해(혐의)자에 대한 변론(!)을 통해서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 문건을 협박용 허위 문건으로 만든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는 이 이모 수사관의 추론에 따르면, 장자연은 유장호의 도움으로 과장과 허위의 소송용 문서를 작성해 김종승을 협박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새 소속사로 옮겨 계약금을 받아내려한 인물, 즉 ‘사기꾼’에 다름 아니게 된다. 망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이 이상의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생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위의 이모 수사관 주장 중에서 ‘장자연이 남긴 글은 유서가 아니라 문건이다’라는 주장은 우리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 국민들 상당 부분은 그 글이 유서라고 알고 지난 10년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모 수사관의 이 진술은 경찰이 처음부터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문서, 즉 증언조서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유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수사기관만 알고 있고 국민은 몰라야 하는 내부비밀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비밀로 했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로 단정하기에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사인에 대한 분석부터 재수사가 시작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건 공개로 재수사가 착수된 이상 왜, 언제, 어떻게, 어디서 등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수사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모 수사관이 진술에서 몇 번씩이나 “자살”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원점 재수사는 경찰에 의해 전혀 의도되고 있지 않았다. 첫 수사에서 발표된 바의 그 “자살”이라는 설명은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경찰 재수사의 확고한 전제이고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점은, 유장호, 유가족(오빠), 윤지오가 서로 유사하게 진술한 바 있고 언론과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수사 당시 수사관들이 이 리스트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입증된다. 이모 수사관이 말하는 초기 장자연 재수사에서 경찰의 관심은 KBS에서 넘겨 받은 그 4장짜리 ‘문건’이 “(1)고인이 쓴 것인가? (2)그것이 사실인가? (3)그것의 성격이 무엇인가(즉 유서인가 아닌가)? (4) 문서와 그것의 유통이 자살에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네 가지에 한정되고 또 집중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모 수사관은 “증인이 본 2개의 문건 외에 장자연이 작성했다고 제출된 다른 문건이 있었나요.”라는 (피고인의) 질문에 “경찰에 제출된 문건은 없었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답할 뿐이다. 그런데 당시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4장짜리 문건 외에 3장짜리 편지글 형식에 명단(리스트)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관들은 그러한 진술을 흘려듣고 그것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이 리스트에 관한 질문이 조사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까지에는, 이명박 정부를 지나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국민의 손으로 세운 촛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그리고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착수할 때까지의 10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2018년에 구성된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리스트에 누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진 국가 조사기관이었다.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 질문을 처음으로 받고서야 윤지오가 비로소 “방씨 성을 가진 세 사람”,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 등 그 리스트에서 본 권력자들의 실명을 진술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공소시효는 대부분 끝났다는 관점을 갖고 사건 재조사를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으며 강제수사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 결과 윤지오의 진술은 거명된 그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질적 수사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술 자체가 신변위협을 빙자해 돈을 벌기 위한 거짓 진술이라는 가해 권력측으로부터의 역공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지오가 장자연이 겪은 “성상납 강요”(즉 성폭행)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 그 ‘리스트’는 봉은사에서 물질적으로 소각되고 경찰에 의해 배제되어 수면에서 사라졌음에도 10년의 세월을 이기고 윤지오의 기억과 진술로 되살아 왔지만 ‘사기를 위한 허위진술’로 매도되어 다시 파묻히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라짐을 강요받아온 이 리스트의 이 운명에 두 번의 인간학적 사건이 수반되었는데 그 중의 한 번은 장자연의 죽음이고 또 한 번은 윤지오의 매장이다.

이 두 가지의 부당전제를 갖고 출발한 합동수사팀과 이모 수사관의 위 다섯 가지 주장은 “장자연에게 당시에 돈이 없었다”를 모든 추론의 기초로 삼는데 이것이 타당한 주장일까? 이모 수사관은 이날의 진술(25쪽)에서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문: 장자연의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도 조사하였는가요.

답: 예

문: 특이사항이 있던가요.

답: 100만원 이상의 수표가 들어온 것이 많이 있어서 수사를 하였습니다.

문: 그 100만원 권 수표가 대략 어느 정도나 되었나요.

답: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억 단위인가요?

답: 전부 합치면 억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그 수표가 기획사 사장 김00이니 김00의 회사로부터 받은 것인가요?

답: 아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진술은 장자연에게 소속사로부터의 수입 외에 다른 수입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중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진로소주 회장 박0덕이 김밥값으로 주었다는 1000만원일 뿐 나머지 입금자와 입금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규모가 “억이 넘는 것”이었다고 하므로 누가 봐도, 특히 가난한 연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이 문건을 쓴 동기를 돈을 벌기 위한 것에서 찾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그러한 돈이 입금된 기록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망 당시 장자연에게 돈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 돈을 다 써버렸을 수 있고 또 사용해서는 안 될 돈으로 간주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에 제출할 ‘소송용 문서’에 장자연이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허위사실을 적어 “300만원” 정도(장자연과 윤지오의 계약서는 동일했다고 하며 계약 당시 윤지오가 받은 계약금이 300만원이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다) 의 계약금을 벌려고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가 없어도 지나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을 바보로 알만큼 충분히 바보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구이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의 몇 배로 그 “허위사실”을 기록한 사람은 치명적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몇 백만원의 돈에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말인가?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상식에 비추어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유서라면 사실대로일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적이지만, 소송용 문서가 과장을 포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장자연과 조선일보의 역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억측이다. 소송이야말로 사실인가 허위인가를 다투는 긴 과정을 포함하는데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가 어떻게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하는” “힘 센” 조선일보와의  소송에서 ‘허위사실’을 가지고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모 수사관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고도 그 문건에 기록된 나머지 피해사실들 중 단 하나도 허위임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 어떻게 나머지는 모두 사실인데(“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유독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항목만 과장이고 허위일 수 있겠는가? 이모 수사관은 정황에 비추어 가장 허위이기 어려운 항목이 유독 허위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자연이 다른 목적(돈을 벌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관(팀)이 오히려 다른 목적으로 장자연과 문건에 대한 허위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목적과 핵심적 방법은 분명하다. 장자연을 사기꾼으로 만듦으로써 ‘조선일보 방사장 및 그 아들’을 도덕적 지탄과 법률적 유죄로부터 구출하는 것. 이 증인신문조서의 후반부 문답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이 사용한 수사기법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끔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온 것을 중심으로 몇 가지 기법만 간단히 요약해 보자. 무엇보다 (1) 문건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그리고  (2)누가 “조선일보 방사장”인지 누가 그 “아들”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가능한 혐의자들을 임의로 축소하여 주요 혐의자를 조사 대상에서 빼거나[방용훈의 경우] 다른 인물을 고의로 잘못 지목하기[스포츠조선 하0 사장의 경우]  (3)핵심 증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새벽까지 반복 조사함으로써 진술 일관성을 뒤흔들기(추가로 참고인 윤지오에게, 장자연과 함께 ‘성접대’ 했잖느냐며 모욕주어 기죽이기) (4) 피해자나 참고인의 통화내용은 1년치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가해(혐의)자의 통화는 이틀치, 일주일치, 한달치 식으로 소극적으로 조사하기[방상훈의 전화] (5) 가해(혐의)자의 전화기가 몇 대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가해(혐의)자 측에서 불러주는 전화번호의 통화내역만 조사하기 [방상훈 전화기의 경우] (5)피해자나 참고인은 소환해서 조사하고 가해(혐의)자는 방문하여 조사하기[여러번에 걸쳐 여러 시간동안 반복된 윤지오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30여분 정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방상훈 조사의 차이] (6)언론에서 보도 나오면 뒤쫓아 수사하는 식으로 수사하기 (7) 수사정보를 가해(혐의)자에게 알려 주어 대응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김종승 스케쥴표 방상훈에게 전달] 수사내용에 대해 가해(혐의)자 측과 협의하기[방상훈 알리바이의 경우] (8)사법처리 대상자 중에 언론사 대표는 없다는 식으로 정보를 흘려 여론의 반응을 탐지하고 여론을 조성하기 (9)참고인 조사 한 사람(한00)의 자필진술서를 추가로 받아 가해(혐의)자 측을 유리하게 만들기 (10)중간수사결과 발표내용을 발표 전에 가해(혐의)자 측에 유출하기 등등.

대한민국 경찰이 이러한 기법으로 가해(혐의)자 측에 유리한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른바 “유력” 언론기관인 조선일보는 경영기획실(강효상)을 비상대책팀으로 운영하고 사회부장(이한동)을 보내 경기지방경찰청장 등에게 수사외압을 행사하고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한00)을 경찰에 보내 허위진술을 하게 하고 사건 직후인 2009년 3월 17일에는 도피중이던 김종승을 단독으로 취재하여 “소송 막으려고 전 매니저가 꾸민 자작극”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하여 은연중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탈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가 결국 가해(혐의)자인 조선일보 측의 이러한 노력 및 요구에 부응하고 협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가해(혐의)자 위주의 수사였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끝)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몸짓, 행동에 대하여(2)

Scene #2 죽음은 ‘자살’로, 문건은 ‘유서’로, 증거는 ‘인멸’로

SBS는 장자연의 이 육성파일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10년전 장자연 수사기록에도 등장했던 이 녹음파일에 대한 조사에 나선다는 보도가 있었으므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그 출처를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다. 이 음성파일이 장자연의 핸드폰에서 나왔건 통화 상대방의 핸드폰에서 나왔건 간에, 목숨을 내려놓을 정도의 체념을 토로하는 이 순간에도 장자연이 저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이 통화기록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되기 바로 며칠 앞서 통화녹음 기능이 있는 것으로 핸드폰을 새로 바꿨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녹음파일이 장자연의 핸드폰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통화기록 자체가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닥쳐온 가해위협을 고발하고 기록하는 적극적 저항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힘 센 자’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것에 맞서 싸울 힘이 없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내용을 음성으로 기록한 것이고 이것은 다른 한편 누군가의 도움과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녹음파일이 통화상대방의 핸드폰에서 나온 것이라면 장자연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후 다시 협박이 온다면 증거를 남길 목적으로 어느 시점에 핸드폰을 교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통화기능이 있는 것으로 핸드폰을 교체한 행위 그 자체가 협박에 저항하기 위해 시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자연은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닥친 실제적 위협을 우리가 들은 것처럼 고발하고 기록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핸드폰의 통화녹음 기능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죽음이 먼저 찾아 왔던 것일까? 아니면 증거확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지만 법정에서의 상대적 투쟁의 길 대신 죽음이라는 절대적 소멸의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경찰”이라 불리는 국가기관은 3월 7일 오후 7시 30분경 장자연이 목숨을 잃고 주검으로 발견된 가족(언니)의 신고를 받고서야 죽은 장자연에게로 왔다. 경찰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 죽음을 단순 자살의 변사로 처리했다. 유서도 없었고 <꽃보다 남자>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연예인인데도 말이다. 경찰이 이 죽음을 단순자살 변사로 파악한 주요 이유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2월말에서 3월초까지의 저 긴장된 영화적 시간은 경찰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정말 당시 경찰은 장자연이 소속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것을 위해 증언조서인 문건을 작성했으며 이 때문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초동수사가 부실했으므로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3월 9일 화장되어 부모의 묘소 근처에 뿌려지기 전에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다는 소문은  경찰이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널리 돌고 있었다. 장자연이 죽은 바로 다음 날 호야의 유장호가 미니홈피에 “2주 전부터 자연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연아 내가 절대 이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다”, “꼭 지켜봐줘” 식의 글을 게재했으며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장자연이 소속을 옮기고자 했던 연예기획사의) 김0형 대표도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장례 기간 중에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지오도 장례식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유가족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장자연이 죽기 전에 문건이 이0숙 등에 의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외에도 복수의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찰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경찰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경찰의 조사를 받았던 주진우 기자는, 2019년 3월 6일에 tbs FM에 출연해, 경찰이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며 부검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 사망 당일 저녁인 점, “자신에게 문건과 관련해서는 절대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 등을 들어 경찰이 문건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수사하지 않고 단순자살의 변사로 처리한 것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경찰이 “우울증”을 연예노동자들의 의문의 죽음을 빨아들이는 변명의 블랙홀로 애용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죽음을 단순자살의 변사로 처리하려 한 경찰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3월 10일 노컷뉴스와 조선일보에 의해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음이 보도되었고 3월 13일 KBS에서 타다 만 장자연의 문건 내용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재수사를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철저한 조사를 원하는 여론을 거스를 수 없었다. 문건에 소속사 대표의 협박, 강요, 폭행과 같은 범죄사실들이 기술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방사장과 같은 인물들이 이러한 범죄와 연관된 이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은 2009년 3월 13일 이 사건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재수사는 장자연의 죽음이 “단순” 자살은 아닐지라도 자살임에는 분명하다는 경찰의 초기 관점 위에서 이루어졌다. 초기에 경찰은 ‘우울증’을 자살의 동기로 설정했다가 이제 죽음의 ‘복잡한’ 맥락들이 드러나자 장자연이 ‘유서’를 남겼다는 것을 자살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법정에 제출할 증언조서로 작성된 장자연의 그 ‘문건’을 ‘유서’로 만들어야 했다. 주민등록번호에다가 지장과 간인까지 찍혀 누가 봐도 유서라고 보기 어려운 이 문건을 ‘유서’로 둔갑시키는 데에는 노컷뉴스(김대오)와 조선일보(박은주)의 초기보도가 한몫을 했다. 이 두 기사가 문건의 내용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이 유서인 것처럼 이미 보도했기 때문에 그 보도 시각을 경찰이 수사권을 통해 재확인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 장자연이 남긴 문건은 장자연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라는 관점이 지배적으로 된다. 이것이 장자연의 죽음과 관련하여 경찰권력이 언론권력과 연합하여 만들어낸 해석 프레임이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는 개인이 가치는 이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도 이 규정에서 도출된다. 만약 장자연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장자연이 자살했다면 그것은 국가의 생명보호의무의 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국가의 책임범위를 벗어난다. 우울증-유서-자살 프레임은 그러므로 국가에게 편리한 국가중심주의적 해석도식인데 이 경우에는 공공연한 사실조차 무시할 정도로 폭력적이며 책임회피적인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장자연 자신을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로 지목함으로써 죽음에 책임이 있을 수 있는 다른 가해자를 찾는 노력이나 또 책임이 있다고 ‘문건’에 실제로 기록된 가해자들에 대한 구체적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프레임이었다. 

이 시기에 경찰 외에 죽음의 현장 주변에 모습을 나타낸 다른 국가기관이 있다. 국정원이 그것이다. 1999년 1월 21일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한 이 기관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 부정사용의 죄, 군사기밀 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의 직무” 등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국정원의 움직임은 전혀 조사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아 실체 없는 유령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국정원이 장자연 사망사건에 관여했다는 복수의 진술이 남아 있다. 

당시 호야의 매니저였던 권0성은 장자연 사망 일주일 전, 그러니까 장자연이 문건을 쓴 바로 다음날부터 국정원 직원이 유장호에게 연락이 왔고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 함께 있었다고 했다. 호야 소속 배우 송0미는 유장호 입원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명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기자 김대오도 당시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정원을 포함한 국회, 재계, 조선일보, 청와대, 기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지오도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과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봉은사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건을 꺼내와 소각했으며 재수사가 시작된 후에는 조사를 어떻게 받고 있고 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전화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대한 경검의 조사 내용이 없으므로 국정원이 당시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장자연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가 작성된 후부터 줄곧 이 사건의 파장을 관리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경찰은 어떤 조사를 벌이고 있는지를 탐문한다는 것은 이 사건이 어떤 수준에서 관리되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문건 작성후 국정원이 장자연의 생명을 보호하지도 않았으며 사망 후 그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드러난 행동은 문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유장호를 감시하고 유장호, 윤지오, 유가족과 함께 봉은사에서 문건과 리스트를 소각한 것이다. 즉 진실 규명의 인적 증거를 관리하고 물적 증거를 소각한 후 그 남은 재를 구둣발로 짓이기고 흙으로 덮어 흔적조차 없게 만든 것이다. 후자는 유가족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증거인멸에 공조한 것이다.

이상이 사건 초기 재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경찰과 국정원이라는 두 국가기관의 표정과 행동에 대한 고찰이다. 이 고찰은, 국가가 위험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으며 사망 후에도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가해책임을 밝히는 데 지극히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은폐하려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국가의 기본적 관점과 태도는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니 자신의 책임이며 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남기는 방식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과 태도에 배치되는 상황들과 증거들이 이미 드러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면서 말이다.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몸짓, 행동에 대하여(1)

장자연이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의문에 가득찬 죽음을 당했는데도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은 그 죽음의 비밀을 밝히기는커녕 증거인멸에 조력했으며 행정, 입법, 사법을 보충하는 권력의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기관은 이 죽음과 관련해 유일하게 유의미한 증언을 해 오던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몰아 그 증언의 능력을 박탈해 버림으로써 비밀의 규명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최후의 증거인멸 시도를 벌이고 있는 이 기이한 사건에서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이것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나는 국가가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의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해자와 피해자, 수탈자와 피수탈자,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나눠진 적대적 사회를 은폐하는 ‘가면 공동체’의 역할을 하는 데 머물고 있는지 살펴 보고 싶다. 

Scene #1 계약과 해약

장자연과 윤지오가 소속사 더콘텐츠에서의 활동을 고통으로 느끼기 시작한 이후에도 선뜻 소속사를 떠나지 못한 것이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억의 위약금에다가 추가적인 제재 및 손해보상의 조항 그리고 사장중심의 계약해석권 등을 담고 있는 이 계약서는 이들을 연예활동을 빙자한 이른바 “술접대” 노동에 단단히 결박시켜 놓는 노예계약과 다를 바 없었다. 계약서가 갖는 그 단단한 결박의 효과가 계약서 자체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이 갖는 힘은 국가가 그 계약을 자신의 합법적 폭력을 통해 보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계약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약관계 속에서 공포의 권력이었던 사장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장의 고소고발에 반응하여 배달될 경찰의 출두요구서와 수사, 검찰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과 벌금, 그리고 감금장치인 감옥과 그에 부속된 간수, 징벌방 등의 폭력장치들이다. 시장에서의 사적 계약은 이 일련의 국가 폭력 기구들이 그 이행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그 계약관계 속에 단단히 결박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과 윤지오가 계약관계 속에서 부당함과 고통을 느끼면서도 소속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궁극적 힘은 김종승의 불법적인 주먹폭력보다는 그 배후에서 기능하고 있는 국가의 합법적인 제도폭력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적어도 장자연・윤지오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에서 최소한 그 계약이 사장에게 유리한 바로 그 만큼은 국가가 사장을 편들고 사장의 권력을 보증하는 배후의 불평등 폭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계약으로부터의 다른 출구, 즉 쌍방합의를 통한 ‘중도해약’의 출구가 규정되어 있었다.(‘6조 가’ 항) 이것은 1억의 위약금을 물지 않고도 계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위약’보다는 쉬운 경로이지만 사장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는 경로였다. 윤지오의 경우는 이 쌍방합의를 통한 탈출에 성공한 운좋은 경우에 속한다. 계약금 300만원에 지출경비 보상금 300만원을 합친 총 600만원의 합의금, 그리고 다른 소속사에서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및 반성문. 장자연도 이 쌍방합의를 통한 탈출을 시도하지만 2009년 3월 7일 사망하기 전까지 그것에 성공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마약과 강제추행 혐의로 일본에 도피 중이었던 김종승 측이 합의금을 계속 상향 제안한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장자연이 윤지오보다 훨씬 더 깊이 더콘텐츠와 연관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밖의 이유들도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이유들을 그 이후 사태들을 통해 오직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장자연은 합의를 통한 윤지오식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자 (호야의 대표 유장호와 함께) 김종승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이유로 김종승과의 계약관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 19조 1항은 “제17조에 따라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 근로자는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강조는 인용자)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에서 적시한 사항들은 하나 같이 김종승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김종승이 폭행, 협박, 강요를 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나 김종승으로 인해 “성상납을 강요당한”(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리스트는 폭행과 협박에 의해 계약과는 다른 노동을 강요당한 사실에 대한 육필 기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건과 리스트는 김종승과의 계약관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법정에 제출될 증언조서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증언조서는 작성되자마자 장자연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호야 소속 연예인인 이0숙은 이 증언조서를 자신과 김종승과의 계약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푸는 데 이용했고 이 과정에서 이 증언조서는 장자연의 기대범위를 훨씬 넘어서까지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던가는 장자연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부터는 이틀 뒤이고 편지글형식의 리스트를 유장호에게 전달한 바로 다음날인 3월 2일 경 ‘동료로 추측되는 인물’과의 육성대화 녹음 파일(이 파일은 SBS를 통해 2019년 4월 27일 처음 공개되었다)을 통해 드러난다. 이 대화에서 장자연은, 잘못한 것도 없고 회사에서 하라는 거 그대로 충실히 하고 있는 자신에게 김종승이 “엄청난 말들과 엄청난 입을 가지고” “내가 무슨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면서 장난을 쳤”고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그쪽”이 누구일까?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자연은 알고 있었던 “그쪽”. 장자연은 우리에게 “그 사람은 발이 넓고 힘 센 사람이야. 김 사장도 소리 못 지르고 ‘아, 예’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라는 암시적 증언만을 남겨 두었다. “그쪽”은 “힘 센 사람” 즉 권력자라는 뜻이다. 장자연은 자신과 “그쪽”의 관계를 이렇게 권력관계 맥락에서 파악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자신과 대비시킨다. 나는 “누구도 백도 없고 지금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힘센 사람” 대(對)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과의 이 절대적 권력 비대칭을 “바위” 대(對) “계란”의 적대적 비대칭 관계(“나는 아무 힘도 없고 바위에 계란치기 밖에 되지 않아.”)로 파악하면서 장자연은 이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풀 힘이 자신에게는 없고 그것의 압박을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으니 “죽이려면 죽이라고 해. 나는 미련도 없어”라는 체념의 자세로 받아들인다. 장자연은 신고라거나 고발과 같은 흔하디 흔한 법률적 호소의 방법으로 국가에 의지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장자연은 마치 “그쪽”이 국가 자체이거나 국가와 한 패임을 보았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생명을 조용히 국가 ‘공동체’의 바깥에 내려 놓는다. “저는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며 해약을 시도했던 몸부림이 이렇게 불과 이틀만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되돌아온 지 닷새 뒤 장자연은 실제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 주검 곁에 유서는 없었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7)

나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김수민의 증여 혐오 감성을 사례로 증여사회와 교환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찰했다. 교환사회에서도 증여관계는 소멸되지 않는다. 심지어 증여관계는 교환사회의 바탕에서 교환의 가능조건을 제공하고 교환사회의 한계를 보충하며 교환사회를 넘어 도래할 사회에 대한 상상을 제공한다. 김수민은 증여사회에 한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관념상에서 증여를 부정하고 특히 화폐적 형태의 증여(후원금)에 대해서는 혐오 알레르기를 보인다.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 고 장자연 사건 증언자 윤지오가 후원금과 관련되자마자 김수민은 ‘사기야!’를 외쳤다. 그는 증여관계의 실재를 부정하고 교환관계만을 유일하게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장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김수민의 변호인을 자청한 박훈의 사회주의도 이 시장근본주의, 즉 교환지상주의에서 멀지 않다는 것은 양자의 협력관계를 통해 반증된다. 그런데 이들의 경우에는 관념과 정동 사이에 괴리가 있고 모순이 있다. 이들과 달리 5월 이후 윤지오에 대한 고소고발에 나선 최나리, 강연재(홍준표), 박민석 등은 시장근본주의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뉴라이트적 태도 속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사건은 더욱 철저해진다.  

김수민의 세 번째 “사기야!”와 그 이후의 행보, 그리고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은 시장근본주의가 교환의 가상 아래에서 본질적으로는 진정한 사기행각을 벌이는 체제임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칭은 언론사와의 교환 계약을 통해 합법화된다. 즉 누구든 돈만 내기만 하면 의사, 부동산투자자문가, 교수, 기자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있다. 언론이 돈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누구이건 뭘 하는 사람이건 그가 원하는 바로 그 직업의 사람이라고 기사홍보를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X’라고 사칭할 필요가 없다. 언론이 화폐와의 교환 조건으로 내가 말하는 것을 사칭해 주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한 사람도 돈만 내기만 하면 무죄의 사람으로 세탁될 수 있다. 피해자나 증언자 같은 무죄의 사람도 언론과 변호사에게 돈만 내기만 하면 가해자, 사기꾼 같은 유죄의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증여에 대한 혐오를 기초로 드높아진 김수민의 교환에의 열정은 이처럼 폭력, 절도, 사기 등 등가교환이 추방하고자 했던 모든 어두운 관계들과 행동들을 뒷문으로 불러들이는 열정임이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증여사회에서 교환사회로의 이행이 시초축적을 위해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자를 분리시키는 국가권력의 사기적 입법 폭력, 무자비한 엔클로져(enclosure) 폭력, 그리고 여성을 수천년 걸쳐 익숙해진 생활환경에서 분리시키고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마녀사냥 폭력 등에 의해 강제되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환사회가 폭력, 강탈, 사기에 의해 탄생했던 만큼 그것의 지속과 재생산도 교환의 탈을 쓴 폭력, 강탈, 사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6)

“사기야!”의 종국과 본질

증여-수증-증여의 호혜적 순환은 자본주의적 상품사회와는 별개의 논리와 메커니즘을 갖고 가동되는 다른 질서다. 증여관계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시장사회의 바탕에서 시장질서의 한계를 보충하는 보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데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증여관계는 언젠가 시장질서가 더 완전해지면 사라질 그 무엇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그 반대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등가의 시장질서야 말로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공통장, 즉 호혜적 증여관계 위에서 파생된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질서일지 모른다. 증여의 공통장이 시장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시장질서가 점점 더 폭력, 수탈, 절도, 사기에 의해 지배되어가는 현대적 경향 속에서 좀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시장의 완숙이 철저한 등가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철저한 부등가의 질서, 불평등의 질서, 사유화의 독재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의 생각을 참조하면 시장 질서 속에 과연 등가교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 등가의 질서가  단 한 번이라도 성립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맑스는 우리가 등가교환으로 알고 있는 상품교환의 질서야 말로 부불노동의 절도라는 부등가교환을 그것의 내적 비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가치, 이윤은 등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절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질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시장이 점점 강탈, 절도, 사기에 의해 지배되어 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질서의 세포관계인 상품교환 그 자체가 애초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부등가교환과 절도의 맹아가 만발하여 등가교환 질서를 침식하고 파괴하기에 이르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민은, ’윤지오의 귀국 목적은 증언이 아니라 돈과 명성이었다’ ‘윤지오는 자기홍보에 장자연을 이용했다.’’윤지오는 출판과 사업을 통해 돈을 모으려 했다’ ‘윤지오는 돈을 모으기 위해 위험을 과장했다’ ‘윤지오는 유가족의 뜻을 무시했고 유가족을 비난했으며 그들과 나눠야할 할 돈을 독차지했다.’ 등등의 말로 윤지오의 증언을 돈벌이를 위한 사기 수단으로 폄하했다. 김수민의 고발논리는 윤지오의 증언은 1억원 이상 화폐 후원금과 교환될 수 없고 또 교환되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김수민의 생각대로 그것이 ‘가식’과 ‘가짜’의 증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증언은 제로가치(0원)일 것이고 그러니 1억원과 교환될 수는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김수민은 시장근본주의적 인식 속에서 증언-증여라는 현상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10년 동안에 걸친 16번의 증언을 모두 돈을 목적으로 한 사기행동으로 만드는 불합리한 시간소급까지 행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재벌,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의 성폭력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이 문제다’라는 표적 바꾸기를 가져왔다. 이후 그는 ‘사기꾼’ 타도라는 구호 아래에서 윤지오를 죽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다. 김수민은 말로는 ‘장자연 사건이 희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일보 SBS 등 장자연 사건과 연관된 이른바 ‘가해권력’과 손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김수민이 이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윤지오의 증언은 거짓이고 사기’라고 말할 때, 이 가해권력들은 확실한 면죄부를 얻고 장자연 사건의 본질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희석’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성폭력 가해권력이 아니라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김수민을 가해권력이 증언 대오에 들여보낸 트로이의 목마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수민은 모순에 찬 자신의 증여 혐오를, 한 번은 이수역 피해 여성 그리고 또 한 번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해 표현했다. 이들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사기행위자로 고발한 두 번의 행동이 그것이다. 이솝우화 속의 양치기 소년도 두 번 “늑대야!”라고 외쳤지만 그 소년은 늑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수민은 자신이 사기꾼으로 고발한 사람들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수역 사건에서 ㅎㅇ가 김수민에게 피해 여성이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음에도 김수민은 모른체하며 이른바 “공론화”(피해여성측에서 보면 2차가해이자 무고)를 멈추지 않았다. 윤지오가 김수민에게 “당신이 나에 대해 행하는 것은 이수역 사건 피해여성에 대한 2차가해와 동일한 2차가해이자 무고”라고 알려주었음에도 김수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말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주장하며 변호사 박훈과 함께 고소를 했다. 김수민은 이들이 사기꾼이 ‘아님’을, 혹은 적어도 ‘아닐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체한다. 이것은 결국 알고 모름, 즉 인식이 근본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처벌받게 하고 싶다는 의지, 욕망이 근본 문제임을 보여준다. 

양치기소년은 실제로 늑대가 몰려 온 세 번째 순간에도 “늑대야!”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양들은 늑대의 먹잇감이 되었다. 김수민도 이 양치기 소년처럼 “사기야!”라고 외쳐야 하는 세 번째 계기를 맞게 된다. 서0혁이 나타나 슛맨과 손잡고 윤지오에 대한 유튜브 방송 까판을 벌렸을 때다. 김수민은 이들과 손잡고 윤지오 비난 까판에 합류했다. 하지만 얼마 뒤 김수민은 서0혁이 사칭 전문가임을 알게 된다. 김수민은 늘 그렇듯이 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윤지오 까판을 슈퍼챗(후원금)을 얻는 데 이용한다며 다시 한 번 “사기야!”라고 외치게 된다. 이번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김수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도리어 김수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기꾼과의 투쟁’이라는 미명하에, 한 번은 피해자를, 또 한 번은 증언자를 사기로 몰아 여론의 뭇매를 맞게 만듦으로써 가해자를 유리하게 만들었던 김수민의 “사기야!”는, 실제의 사칭 전문가가 나타났을 때에는 어떤 경보기능도 하지 못했으며 늑대들이 양들을 먹어치울 수 있도록, 즉 사칭과 사기가 여론을 지배할 수 있도록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피해자와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독을 내뿜는 화기로 사용되었던 김수민의 인스타그램은, 드디어 진짜 사기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것과 싸우는 무기로 기능하기는커녕 안온한 일상의 혼잣말로 돌아가 그 진짜 사기를 방조하는 평화로운 잡담장소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에 대한 고발의 본질이 진짜 가해권력을 돕는 것에 있었고, “사기야!”의 본질이 진짜 사기를 돕는 것에 있었음을 자백이라도 하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