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에서 제도 대 개인

제도 대 개인

영화 <서치>. 피터 킴(주이공)이 담당경찰과 제도의 가면극 및 여론의 장막을 뚫고 실종된 마고(딸)를 찾아내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경찰(제도)이 범죄 수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고 범죄를 은폐한다. 여기서는 그것이 담당경찰의 특수한 개인적 이유(모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제도 일반이 사실은 이와 유사한 개인적 이유들로 엮여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것이다. 공공적인 것은 사적인 것들의 제도적 네트워크일 뿐이다.

피터 킴은 마고의 실종에 직면하여 실종현장인 호수를 찾아내고, 딸이 마리화나를 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담당경찰이 사건 은폐를 위해 자백범인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헐리우드 영화는 자주 개인 자율성, 특이한 개인들의 자율성을 그린다. 대개는 그것이 개인의 영웅화와 얽혀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집단적 자율은 좀체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도 앎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필요(마고를 찾고 싶다, 마고를 찾아야 한다)에서 나온다는 것, 제도는 믿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비록 흥행의 필요에서이겠지만) 자주 강조한다.

<어느 가족>의 모색

영화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혈연주의 가족이 도달해 있는 참상을 드러내면서 비혈연적 비제도적 가족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다. 아쉬운 것은 그 모색 속에서도 계속 아빠, 엄마, 오빠와 같은 혈연적 어휘를 벗어나기를 두려워하고 그 오이디푸스적 구도[의 잔재] 속에서 대안을 찾으려 한다는 것. 그냥 각자의 이름들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전근대적인 것의 대안근대적 잠재력

제와 굿이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경우 박정희 정권 하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의 연속과정에서 전근대적 비합리(미신)로 간주되어 타파대상으로 된 후 사회의 비주류로, 후미진 구석으로 내몰렸다는 김수남 작가의 관점은 근대화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제와 굿, 무속 속에 깃들어 있는 비근대적 생명력을 대안근대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주어진다. 백남준이 서구의 과학기술과 몽골적 샤머니즘을 결합시키려 했을 때 이미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