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과 국가의 장면들: 얼굴, 몸짓, 행동(1)

장자연이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의문에 가득찬 죽음을 당했는데도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은 그 죽음의 비밀을 밝히기는커녕 증거인멸에 조력했으며 행정, 입법, 사법을 보충하는 권력의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기관은 이 죽음과 관련해 유일하게 유의미한 증언을 해 오던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몰아 그 증언의 능력을 박탈해 버림으로써 비밀의 규명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최후의 증거인멸 시도를 벌이고 있는 이 기이한 사건에서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이것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나는 국가가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의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해자와 피해자, 수탈자와 피수탈자,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나눠진 적대적 사회를 은폐하는 ‘가면 공동체’의 역할을 하는 데 머물고 있는지 살펴 보고 싶다. 

Scene #1 계약과 해약

장자연과 윤지오가 소속사 더콘텐츠에서의 활동을 고통으로 느끼기 시작한 이후에도 선뜻 소속사를 떠나지 못한 것이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억의 위약금에다가 추가적인 제재 및 손해보상의 조항 그리고 사장중심의 계약해석권 등을 담고 있는 이 계약서는 이들을 연예활동을 빙자한 이른바 “술접대” 노동에 단단히 결박시켜 놓는 노예계약과 다를 바 없었다. 계약서가 갖는 그 단단한 결박의 효과가 계약서 자체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이 갖는 힘은 국가가 그 계약을 자신의 합법적 폭력을 통해 보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계약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약관계 속에서 공포의 권력이었던 사장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장의 고소고발에 반응하여 배달될 경찰의 출두요구서와 수사, 검찰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과 벌금, 그리고 감금장치인 감옥과 그에 부속된 간수, 징벌방 등의 폭력장치들이다. 시장에서의 사적 계약은 이 일련의 국가 폭력 기구들이 그 이행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그 계약관계 속에 단단히 결박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과 윤지오가 계약관계 속에서 부당함과 고통을 느끼면서도 소속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궁극적 힘은 김종승의 불법적인 주먹폭력보다는 그 배후에서 기능하고 있는 국가의 합법적인 제도폭력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적어도 장자연・윤지오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에서 최소한 그 계약이 사장에게 유리한 바로 그 만큼은 국가가 사장을 편들고 사장의 권력을 보증하는 배후의 불평등 폭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계약으로부터의 다른 출구, 즉 쌍방합의를 통한 ‘중도해약’의 출구가 규정되어 있었다.(‘6조 가’ 항) 이것은 1억의 위약금을 물지 않고도 계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위약’보다는 쉬운 경로이지만 사장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는 경로였다. 윤지오의 경우는 이 쌍방합의를 통한 탈출에 성공한 운좋은 경우에 속한다. 계약금 300만원에 지출경비 보상금 300만원을 합친 총 600만원의 합의금, 그리고 다른 소속사에서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및 반성문. 장자연도 이 쌍방합의를 통한 탈출을 시도하지만 2009년 3월 7일 사망하기 전까지 그것에 성공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마약과 강제추행 혐의로 일본에 도피 중이었던 김종승 측이 합의금을 계속 상향 제안한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장자연이 윤지오보다 훨씬 더 깊이 더콘텐츠와 연관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밖의 이유들도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이유들을 그 이후 사태들을 통해 오직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장자연은 합의를 통한 윤지오식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자 (호야의 대표 유장호와 함께) 김종승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이유로 김종승과의 계약관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 19조 1항은 “제17조에 따라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 근로자는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강조는 인용자)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에서 적시한 사항들은 하나 같이 김종승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김종승이 폭행, 협박, 강요를 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나 김종승으로 인해 “성상납을 강요당한”(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리스트는 폭행과 협박에 의해 계약과는 다른 노동을 강요당한 사실에 대한 육필 기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건과 리스트는 김종승과의 계약관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법정에 제출될 증언조서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증언조서는 작성되자마자 장자연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호야 소속 연예인인 이0숙은 이 증언조서를 자신과 김종승과의 계약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푸는 데 이용했고 이 과정에서 이 증언조서는 장자연의 기대범위를 훨씬 넘어서까지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던가는 장자연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부터는 이틀 뒤이고 편지글형식의 리스트를 유장호에게 전달한 바로 다음날인 3월 2일 경 ‘동료로 추측되는 인물’과의 육성대화 녹음 파일(이 파일은 SBS를 통해 2019년 4월 27일 처음 공개되었다)을 통해 드러난다. 이 대화에서 장자연은, 잘못한 것도 없고 회사에서 하라는 거 그대로 충실히 하고 있는 자신에게 김종승이 “엄청난 말들과 엄청난 입을 가지고” “내가 무슨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면서 장난을 쳤”고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그쪽”이 누구일까?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자연은 알고 있었던 “그쪽”. 장자연은 우리에게 “그 사람은 발이 넓고 힘 센 사람이야. 김 사장도 소리 못 지르고 ‘아, 예’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라는 암시적 증언만을 남겨 두었다. “그쪽”은 “힘 센 사람” 즉 권력자라는 뜻이다. 장자연은 자신과 “그쪽”의 관계를 이렇게 권력관계 맥락에서 파악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자신과 대비시킨다. 나는 “누구도 백도 없고 지금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힘센 사람” 대(對)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과의 이 절대적 권력 비대칭을 “바위” 대(對) “계란”의 적대적 비대칭 관계(“나는 아무 힘도 없고 바위에 계란치기 밖에 되지 않아.”)로 파악하면서 장자연은 이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풀 힘이 자신에게는 없고 그것의 압박을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으니 “죽이려면 죽이라고 해. 나는 미련도 없어”라는 체념의 자세로 받아들인다. 장자연은 신고라거나 고발과 같은 흔하디 흔한 법률적 호소의 방법으로 국가에 의지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장자연은 마치 “그쪽”이 국가 자체이거나 국가와 한 패임을 보았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생명을 조용히 국가 ‘공동체’의 바깥에 내려 놓는다. “저는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며 해약을 시도했던 몸부림이 이렇게 불과 이틀만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되돌아온 지 닷새 뒤 장자연은 실제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 주검 곁에 유서는 없었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7)

나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김수민의 증여 혐오 감성을 사례로 증여사회와 교환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찰했다. 교환사회에서도 증여관계는 소멸되지 않는다. 심지어 증여관계는 교환사회의 바탕에서 교환의 가능조건을 제공하고 교환사회의 한계를 보충하며 교환사회를 넘어 도래할 사회에 대한 상상을 제공한다. 김수민은 증여사회에 한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관념상에서 증여를 부정하고 특히 화폐적 형태의 증여(후원금)에 대해서는 혐오 알레르기를 보인다.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 고 장자연 사건 증언자 윤지오가 후원금과 관련되자마자 김수민은 ‘사기야!’를 외쳤다. 그는 증여관계의 실재를 부정하고 교환관계만을 유일하게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장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김수민의 변호인을 자청한 박훈의 사회주의도 이 시장근본주의, 즉 교환지상주의에서 멀지 않다는 것은 양자의 협력관계를 통해 반증된다. 그런데 이들의 경우에는 관념과 정동 사이에 괴리가 있고 모순이 있다. 이들과 달리 5월 이후 윤지오에 대한 고소고발에 나선 최나리, 강연재(홍준표), 박민석 등은 시장근본주의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뉴라이트적 태도 속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사건은 더욱 철저해진다.  

김수민의 세 번째 “사기야!”와 그 이후의 행보, 그리고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은 시장근본주의가 교환의 가상 아래에서 본질적으로는 진정한 사기행각을 벌이는 체제임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칭은 언론사와의 교환 계약을 통해 합법화된다. 즉 누구든 돈만 내기만 하면 의사, 부동산투자자문가, 교수, 기자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있다. 언론이 돈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누구이건 뭘 하는 사람이건 그가 원하는 바로 그 직업의 사람이라고 기사홍보를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X’라고 사칭할 필요가 없다. 언론이 화폐와의 교환 조건으로 내가 말하는 것을 사칭해 주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한 사람도 돈만 내기만 하면 무죄의 사람으로 세탁될 수 있다. 피해자나 증언자 같은 무죄의 사람도 언론과 변호사에게 돈만 내기만 하면 가해자, 사기꾼 같은 유죄의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증여에 대한 혐오를 기초로 드높아진 김수민의 교환에의 열정은 이처럼 폭력, 절도, 사기 등 등가교환이 추방하고자 했던 모든 어두운 관계들과 행동들을 뒷문으로 불러들이는 열정임이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증여사회에서 교환사회로의 이행이 시초축적을 위해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자를 분리시키는 국가권력의 사기적 입법 폭력, 무자비한 엔클로져(enclosure) 폭력, 그리고 여성을 수천년 걸쳐 익숙해진 생활환경에서 분리시키고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마녀사냥 폭력 등에 의해 강제되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환사회가 폭력, 강탈, 사기에 의해 탄생했던 만큼 그것의 지속과 재생산도 교환의 탈을 쓴 폭력, 강탈, 사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6)

“사기야!”의 종국과 본질

증여-수증-증여의 호혜적 순환은 자본주의적 상품사회와는 별개의 논리와 메커니즘을 갖고 가동되는 다른 질서다. 증여관계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시장사회의 바탕에서 시장질서의 한계를 보충하는 보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데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증여관계는 언젠가 시장질서가 더 완전해지면 사라질 그 무엇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그 반대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등가의 시장질서야 말로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공통장, 즉 호혜적 증여관계 위에서 파생된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질서일지 모른다. 증여의 공통장이 시장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시장질서가 점점 더 폭력, 수탈, 절도, 사기에 의해 지배되어가는 현대적 경향 속에서 좀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시장의 완숙이 철저한 등가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철저한 부등가의 질서, 불평등의 질서, 사유화의 독재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의 생각을 참조하면 시장 질서 속에 과연 등가교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 등가의 질서가  단 한 번이라도 성립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맑스는 우리가 등가교환으로 알고 있는 상품교환의 질서야 말로 부불노동의 절도라는 부등가교환을 그것의 내적 비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가치, 이윤은 등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절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질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시장이 점점 강탈, 절도, 사기에 의해 지배되어 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질서의 세포관계인 상품교환 그 자체가 애초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부등가교환과 절도의 맹아가 만발하여 등가교환 질서를 침식하고 파괴하기에 이르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민은, ’윤지오의 귀국 목적은 증언이 아니라 돈과 명성이었다’ ‘윤지오는 자기홍보에 장자연을 이용했다.’’윤지오는 출판과 사업을 통해 돈을 모으려 했다’ ‘윤지오는 돈을 모으기 위해 위험을 과장했다’ ‘윤지오는 유가족의 뜻을 무시했고 유가족을 비난했으며 그들과 나눠야할 할 돈을 독차지했다.’ 등등의 말로 윤지오의 증언을 돈벌이를 위한 사기 수단으로 폄하했다. 김수민의 고발논리는 윤지오의 증언은 1억원 이상 화폐 후원금과 교환될 수 없고 또 교환되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김수민의 생각대로 그것이 ‘가식’과 ‘가짜’의 증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증언은 제로가치(0원)일 것이고 그러니 1억원과 교환될 수는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김수민은 시장근본주의적 인식 속에서 증언-증여라는 현상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10년 동안에 걸친 16번의 증언을 모두 돈을 목적으로 한 사기행동으로 만드는 불합리한 시간소급까지 행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재벌,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의 성폭력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이 문제다’라는 표적 바꾸기를 가져왔다. 이후 그는 ‘사기꾼’ 타도라는 구호 아래에서 윤지오를 죽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다. 김수민은 말로는 ‘장자연 사건이 희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일보 SBS 등 장자연 사건과 연관된 이른바 ‘가해권력’과 손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김수민이 이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윤지오의 증언은 거짓이고 사기’라고 말할 때, 이 가해권력들은 확실한 면죄부를 얻고 장자연 사건의 본질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희석’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성폭력 가해권력이 아니라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김수민을 가해권력이 증언 대오에 들여보낸 트로이의 목마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수민은 모순에 찬 자신의 증여 혐오를, 한 번은 이수역 피해 여성 그리고 또 한 번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해 표현했다. 이들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사기행위자로 고발한 두 번의 행동이 그것이다. 이솝우화 속의 양치기 소년도 두 번 “늑대야!”라고 외쳤지만 그 소년은 늑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수민은 자신이 사기꾼으로 고발한 사람들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수역 사건에서 ㅎㅇ가 김수민에게 피해 여성이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음에도 김수민은 모른체하며 이른바 “공론화”(피해여성측에서 보면 2차가해이자 무고)를 멈추지 않았다. 윤지오가 김수민에게 “당신이 나에 대해 행하는 것은 이수역 사건 피해여성에 대한 2차가해와 동일한 2차가해이자 무고”라고 알려주었음에도 김수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말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주장하며 변호사 박훈과 함께 고소를 했다. 김수민은 이들이 사기꾼이 ‘아님’을, 혹은 적어도 ‘아닐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체한다. 이것은 결국 알고 모름, 즉 인식이 근본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처벌받게 하고 싶다는 의지, 욕망이 근본 문제임을 보여준다. 

양치기소년은 실제로 늑대가 몰려 온 세 번째 순간에도 “늑대야!”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양들은 늑대의 먹잇감이 되었다. 김수민도 이 양치기 소년처럼 “사기야!”라고 외쳐야 하는 세 번째 계기를 맞게 된다. 서0혁이 나타나 슛맨과 손잡고 윤지오에 대한 유튜브 방송 까판을 벌렸을 때다. 김수민은 이들과 손잡고 윤지오 비난 까판에 합류했다. 하지만 얼마 뒤 김수민은 서0혁이 사칭 전문가임을 알게 된다. 김수민은 늘 그렇듯이 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윤지오 까판을 슈퍼챗(후원금)을 얻는 데 이용한다며 다시 한 번 “사기야!”라고 외치게 된다. 이번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김수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도리어 김수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기꾼과의 투쟁’이라는 미명하에, 한 번은 피해자를, 또 한 번은 증언자를 사기로 몰아 여론의 뭇매를 맞게 만듦으로써 가해자를 유리하게 만들었던 김수민의 “사기야!”는, 실제의 사칭 전문가가 나타났을 때에는 어떤 경보기능도 하지 못했으며 늑대들이 양들을 먹어치울 수 있도록, 즉 사칭과 사기가 여론을 지배할 수 있도록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피해자와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독을 내뿜는 화기로 사용되었던 김수민의 인스타그램은, 드디어 진짜 사기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것과 싸우는 무기로 기능하기는커녕 안온한 일상의 혼잣말로 돌아가 그 진짜 사기를 방조하는 평화로운 잡담장소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에 대한 고발의 본질이 진짜 가해권력을 돕는 것에 있었고, “사기야!”의 본질이 진짜 사기를 돕는 것에 있었음을 자백이라도 하려는 듯이.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5)

증언의 진실

김수민의 이 주장들 중 (1)이 사실이 아님은 여러 증거들이 보여준다. 그 증거는 무엇보다도 윤지오가 지난 10년간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위험만이 따르는 열여섯번의 증언을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감내한 것에 의해 입증된다. 수사관들도 윤지오가 수 십 차례에 걸쳐 가해권력자들을 만나는 술자리에 장자연과 동행했고 어느 연예인보다도 장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며 핸드폰 통화기록에 그 사실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윤지오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남보다 더 많이 요청했음을 인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지오가 장자연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자정 시간에 빈소로 달려가 조문하고 사흘을 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맞절을 하기도 하였다는 점, 고 장자연씨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뿌리는 과정을 유가족과 함께 했다는 점, 유장호가 자신과 말조차 섞기 싫어하는 유가족과 장자연이 남긴 문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윤지오에게 유가족과의 만남의 장소와 날짜를 조율하는 중간매개자 역할을 부탁했다는 점, 유장호가 장자연의 문건을 보여준 (유가족 이외의)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점, 유가족과 함께 문건을 읽고 소각하는 현장에 있었다는 점 등은 김수민의 말이 거짓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도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2009~10년 전의 진술자료들이 명확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여러 편의 글에서 이미 상세히 비판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논하지 않을 것이다.

 (3)의 윤지오와 과거사조사위원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증언자의 안전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이 증언을 요청하는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기 위해 윤지오가 사용한 기술적 답변을 김수민이 맥락에서 분리하여 읽음으로써 오독한 것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괄호 속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김수민이 사실을 모르는 탓에 빚어낸 왜곡이다. 왜냐하면 윤지오는 장자연이 방사장을 만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만남의 날짜 장소 상황을 당연히 알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또 조사과정에서 추행이 문제로 된 것은 조0천이지 김종승이 아니었다. 조0천의 추행에 대해서는 이미 10년 전의 윤지오 진술서에 또렷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김수민의 이러한 예시는 김수민이 말들을 임의로 지어내고 있으며 이 사건에 대해 얕은 차원에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증언이 거짓이라는 이 주장들은 무엇으로도 입증될 수 없는 김수민의 ‘혼잣말’로 남아 있다. (그런데 티비조선이나 SBS를 비롯한 제도방송들과 여러 신문들이 김수민의 이 근거 없는 혼잣말에 어떤 진실이 담긴 양 증거자료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김수민은 이수역 사건에 뒤이어 다시 장자연 사건에서 “윤지오는 사기를 쳤고 나는 속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나는 윤지오에게 여러 가지를 증여했지만 그는 나에게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하지 않았다’는 인식을 표현한다. ‘윤지오는 이기적이고 일방적이며 의존적이었다’, ‘윤지오의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관계를 유지했다.’는 생각이 그러하다. ‘서로 증여하며 살자고 했지만 나의 증여에 그가 답례하지 않았다’는 느낌은 ‘윤지오는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 표리부동하고 배은망덕한 두 얼굴을 가진 사람, 위선적인 사람, 거짓말쟁이’라는 생각으로 표현된다. 김수민이 이수역 사건의 피해 여성과 결별한 것이 후원금 요청, 즉 언어 증여를 넘는 화폐 증여의 요구였던  것처럼, 그가 윤지오와 결별한 것도 청원에 대한 동의서명 요청 즉 새로운 증여의 요청이었다. 이에 비추어서 우리는, 김수민이 ‘자신이 상응하는 답례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그것이 양자 관계에서 사실인가 아닌가는 여기서 중요치 않다) 증여-수증의 관계를 사기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여기서 김수민이 ‘화폐(돈)는 증여의 수단일 수 없다는 판단을 기초로 화폐를 증여해 달라는 요구를 사기라고 보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자는 증여를 교환으로 환원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후자는 화폐(돈)는 교환수단이지 증여수단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두 경향은 본질적으로는 증여에 대한 부정, 증여에 대한 혐오, 증여를 교환으로 대체하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오직 인간들 사이에는 교환만이 가능하며 등가가 교환되는 관계 외의 관계는 사기라는 인식은 이러한 의지에 기초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김수민은 스스로 증여행동을 한다.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이수역 피해 여성을 옹호하기 위한 여론투쟁에 에너지를 쏟고 윤지오의 질문들에 답하며 카톡을 통해 애정의 표현들을 준다. 그런데 이것들은 등가로 교환될 수 없는 것들이다. 바로 이 등가로 교환될 수 없는 증여관계를 ‘모든 것은 등가로 교환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관적 관념 아래에 종속시킴으로써 김수민은 스스로 증여행동을 하면서 등가교환을 기대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 모순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김수민은 돌변하여 자신과의 증여-수증-증여의 호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을 갑자기 사기꾼으로 모는 악순환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김수민과 증여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 상처를 남긴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4)

윤지오의 증언을 사기로 둔갑시키기    

김수민이 인스타그램을 통한 2차 가해의 흔적을 지운 것은 자신이 이수역 피해여성을 사기꾼으로 몰아세움으로써 자신의 살길을 도모한다는 비난이 쏟아진 이후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인 2019년 4월 23일 김수민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수역 사건에서의 ‘사기’ 혐의를 ‘공론화’(피해 여성 입장에서는 ‘무고’)하기 위해 기자와 변호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바 있는 윤지오를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다. 이 고소에서 김수민이 든 주요 고소사유는 윤지오가 자신을 “이수역 사건 2차 가해자”라고 “비난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는 2019년 4월 16일  김수민이 “윤지오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윤지오의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증언과 후원금 모집이 ‘사기’라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 파열의 시발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난과 관련하여 윤지오는 김수민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이수역 피해 여성과 동일한 입장에 처했음을 깨닫고 김수민이 자신에 대한 2차 가해자인 것처럼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자라고 대응했다.

김수민은 윤지오와 수 개월 동안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어 왔고 2018년 12월에는 한 차례 윤지오를 만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수민은 윤지오와 도움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윤지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지지하는 “언니”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2018년 11월 27일 이수역 사건과 관련해 윤지오로부터 JTBC 기자를 소개받은 후 김수민은 “지오야 진짜 고마워. (윤지오: 고맙긴요 한것도 없는데.) 왜 한게없어 이렇게 도움을 마니주는데. 우리 서로 지금처럼 서로에게 도움도 되고 의지도 하면서 좋은 인연으로 살아가자”고 말하는데 이 말이 두 사람의 관계와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윤지오도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으로 잘부탁해요 울수민언닝❤/난 늘 언니편이니까/힘내/우리 힘내자”고 말하고 다시 김수민도 “우린 의리! 나도 언제나 늘 너 편이야”라고 화답한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의 논의 맥락에서 보면 증여에서 증여로 이어지는 비적대적 증여관계이다. 서로 돕는 것은 교환의 관계가 아니며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받는 증여-수증-답례의 반복적 순환을 통한 협력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협력관계의 파열을 사회적으로 선언하는 ‘윤지오씨 말은 100% 진일일까요?’가 나오기 전에 두 사람 사이의 이 증여적 협력관계가 위기에 처하는 두 번의 순간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첫째 위기는 카톡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만나기 위해 약속을 정할 때이다. 김수민이 12월 10일 윤지오를 만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온 것은 12월 9일이었다. 그런데 12월 10일 약속 당일 새벽 2시에 윤지오로부터 “언니 언제까지 서울에 있어요?”라는 문자가 와서 “언니 너땜에 올라왔지. 너보구내려갈거야 왜? 오늘 안볼려고?”라고 묻는다. 이에 윤지오는 “아 오늘만 잇다가 내일가요? 언니 일정이 어찌돼요? 몸이 안좋아서 ㅜㅜ 술을 못마실거같아서. 맛난거먹고 수다수다는 좋아요. 종검[종합검사: 인용자]하고 못쉬고 계속 사람들 만나가지고 ㅜㅜ”라고 답한다. 김수민이 관계의 단절까지 고려할 정도의 불쾌의 감정을 드러낸 것은 이 순간이다.

“언니 너랑 약속 아니였음 부산에서 바로 광주내려갔어 일부러 서울 가는 케텍스 시간때문에 부산에서 저녁까지 기다리다가 어제 12시에 서울도착한거야 언니는 안피곤할거같니? 넌 다른사람들하고의 약속은중요하고 언니하고 약속은안중요해? 니맘대로 미뤄도되는거야? 너14일까지 밖에 시간없다고해서 또 13,14는 너 약속있다고해서 피곤해도 얼굴이라도볼려고올라왔더니 이게무슨 행동이니 내가 너 보자고 사정하는거야? 언니기분매우안좋다 언니도 머리아픈일많고 안좋은일많고 너무피곤하고쉬고싶어도 그래도 지금아니면또못만나니까 힘들어도왔더니 너 약속당일날 이게 무슨태도야? 나랑 술안마시면 못보고 그러는거야?? 내가너한테 어떤 사람인지는모르겠으나 지금 너의 그런태도는 실수인거같다. 만나서 우리가 술먹는것밖에는할게없었니?? 그래?? 너는 그래서 언니를볼려고했어? 너 푹쉬고 볼일들보고 잘 돌아가라”

나의 몸도 마음도 좋지 않은 상태지만 나는 너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서울까지 어려운 걸음을 했는데 당일날 갑자기 약속을 변경하는 것은 나와의 약속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고 이렇게 하는 것은 ‘실수’하는거다, 라는 지적이며 너를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절교선언이다. 이수역 피해 여성을 향해서도 김수민은 “날 후회하게 만들지마/당신들이 나와 많은 사람들을 속인거라면/큰 실수한거야.”라고 말했었다. 이에 윤지오는 이렇게 대응한다. 

“언니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시는거같아요. 언니에게도 상황이있듯이 저도 상황이라는게 있고 당연히 언니가 저보러온것도 고맙고 언니를 술마시면 보고 안마시면 못보고 이런게아니라 위에다보면 언니 내일가는지 일정이 어떤지 물어보고 종검후에 사람들 계속만나서 술못마셔서 맛난거먹고 얘기하는거 좋다고한거에요. 저도 제일이 사건자체도 크고 저는 10년을 넘게 겪어오고 이번에 판사도 판결안하고 또 넘겨주고 귀국전에도 그렇고 언니도 이수역일로 힘드신거 알기에 저도 기자나 변호사 연락하는거 저도 도우려했고 언니 가족분들이랑 시간보내시고 그런 일정도 있으시니까 컨디션좋을때 좀 쉬다가 보던지 아니면 오늘 가볍게보던지 하려했던거고요 언니야 말로 절 어찌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직 절 한번도 보시지 못한상태에서 문자 몇개로 너는 그런애구나라고 판단하고 말하시는거에 저는 더 상처받았어요”

윤지오가 만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은 좋은데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으면 날짜를 바꾸고 싶은데 일정이 되는지 물었던 것은 대화맥락에서 분명하다. 김수민이 윤지오의 이 질문을 “오늘은 못만나겠으니 일정을 바꾸자”고 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즉 ‘실수’는 오히려 김수민 편에 있었다. 김수민은 자신의 이 ‘실수’에 대해 다른 정황을 들어 변명한다.

“언니 오래된팬이 내가 정말 믿었던사람인데 언니친분을이용해서 뒤에서 내 지인들과 사람들에게 돈을요구했다는 소식을 알았다 지금 확인된사람들만5명이넘어 손이떨린다 언니가 충격도크고 오늘 대표가 회사로찾아가봤는데 그런회사도없고 언니도 진짜마니힘들다 언니때문에 상처받았다면 미안하다 널 상처주려고한게아닌데 지금 내가 많이 예민해져있어서 그런가보다 미안하다지오야 언니가 흥분을해서”

믿었던 사람의 “사기” 행각 때문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윤지오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과인 셈이다. 그런데 김수민이 “사기”라고 판단하여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사건도 당사자가 김수민을 반박하는 글을 올려 이수역 사건과 동일한 논쟁 상황 속으로 들어갔고 이 때문에 김수민이 “머리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한 점을 고려하면, 김수민이 윤지오에게 처음에 했던 말, 즉 자신의 팬으로서 자신이 믿었던 그 사람이 자신과의 친분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주장은 비판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위기는 김수민이 사과하고 윤지오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파국에 이르지 않고 넘어갔고 두 사람은 만나서 첫 만남(이자 마지막이 될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두 번째 위기는 바로 파국으로 이어졌다. 시점은 2019년 3월 7일[한국시간 3월 8일]이다. 윤지오가 김수민에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윤지오 씨 신변보호 요청” 청원글 링크를 김수민에게 알려주고 동의서명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고 우리의 주제 안에서는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리는 “증여”의 요청이다. 이에 대해 김수민은 이렇게 답한다. 

“너는 언니 연락을 두번이나 계속 씹더니 니할말만 딱 하러 나한테 톡 보내니?? 그리고 글에 페미 저격글을 그대로 올렸던데 너 나보라고 쓴 글이야?? 너는 니가 필요하고 뭐가 궁금할땐 신나게 연락하더니 너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식으로 연락하니?? 니할말만 딱 내뱉어?? 내가 너 부탁들어주고 모른거있음 알켜주고 그런 사람이야? 나한테 글 올려주란 부탁을 참 쉽게도한다 너 ㅎㅎ 일 잘봐라”

이 대화 전에 김수민이 두 번 카톡 메시지를 보냈고 윤지오의 응답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번은 3월 5일에 “책 온라인판매시작한거야?”라고 물었고 또 한 번은 3월 7일에 “8시뉴스 인터뷰한거봤어 한국나오자마자 계속 인터뷰하고다니느라 진빠지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메시지에서 김수민도 말하고 있듯이 장자연 10주기인 이 시기에 윤지오는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윤지오는 그 상황을 “저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차적응할 시간도 갖지 않은채 ‘김어준 뉴스공장’생방송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그후 어제 자연언니의 10주기에 맞춰 ‘김현정의 뉴스쇼’, ‘이이제이’, ‘SBS 8시 뉴스’, ‘KBS 9시 뉴스’ ‘연예가 중계’에 생방송과 녹화촬영을 진행하였습니다. 공중파와 종편을 포함하여 2곳의 언론사를 제외하곤 연예소식을 전하는 매체부터 각종 매체에서 출연제의를 받았습니다.”라고 3월 7일[8일] 인스타그램에서 묘사한 바 있다. 

이러한 일정과 증언행동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더러운년. 최소한 고인의 아픔을 덜어주는게.? 고인을 니 야욕에 이용하지 말라. 더불어 정치액션 그만둬”(sim1****) “시체팔이 그만해라”(thde****), “장자연이는 죽어서도 좌빨들 노리개 신세로구나 ㅎㅎㅎㅎㅎㅎㅎ!!~*”(inte****) “책 홍보하러 나오셨나봐요~그저 좋게만은 안보이네요”(show****) 방향의 비난반응이고 또 하나는 “미투 어쩌구저쩌구 하던 여성가족부 한 마디도 없네 신변보호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니니 세금 축내면서”(kol3****)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햇겟다. 이렇게 거악에 맞선 사람들은 국가차원에서 신변을 보호하고 보복이 잇을시엔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tlag****) “이분 대단하시네 신변보호확실히재줘라 이 썩어빠진 나라야”(ckj8****) 방향의 지지반응이다. 모두 3월 7일[8일] 전후 하루 이틀 사이의 반응이다. 

이런 두 가지(가해권력중심주의적 반응과 피해자중심적 반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반응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윤지오는 김수민의 반응을 본 후 김수민이 자신을 ‘전혀 배려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언니 말을 좀 너무 쉽게하시네요. (….) 저는 잠한숨 못잔체 인터뷰 7개를 했고요. 언니야 말로 제 신상을 올리기도전에 제 얼굴을 올리시고 응원글을 올리겠다고하셨었고 이번에 제 동의도 없이 글이 아닌 함께 찍은 사진도 올리셨는데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무말하지 않았습니다. 말씀 그렇게 함부로 하시는거 아닙니다. 절 전혀 배려하시지 않음을 잘 알게되었고요.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을 한번이라도 생각하셨더라면 저런 말씀은 안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첫번째 위기 순간과는 달리, 이 두 번째 위기 순간에는 윤지오의 이런 항변이 김수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도리어 이 순간 김수민은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가해권력중심주의적 반응 방향을 취하면서 윤지오에 대한 비난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너가 10년동안 계속 숨어지냈다고 말하는거 좀 웃기지않니. 너랑 나랑 나눈 대화들이 있는데 책 홍보도 좋다지만 너 나한테 장자연이랑 그렇게 깊이 친하지는않았다고 말했는데 그냥 너가 어려서 널 애기야라고 불렀다고 넌 위약금내고 나간후에는 모른다고 말하더니 너 방송에서나 인터뷰에서나하는말들보니 좀 가식이 많이느껴지더라 너 그리고 니 신상을 올리기도전에 니 얼굴을 올렸다고 이미 너 인스타 프로필 네이버에 다 떠있는거 보고올린거다 내가 사진밑에쓴말은 안읽었니? 그리고 방송은 니 욕심에서 하는거아냐?? 솔직해져라. 니가 니욕심이없다고 장자연만을 위해서라고 니모든걸걸고 말할수 있어?? 사람이 가식이느껴지는건 어쩔수가없더라 일보고가라 그리고 니 사진은 지울란다.”

이에 대해 윤지오가 “절 생각하는 지인들은 함부로 연락조차하기 어려워하고 상황이 정리될 때 연락을 달라고합니다.언니가 변호사의 도움을 필요하다고 말씀한 순간에 제가 어떤상황이었는지 알고도 계셨고 제 상황도 버거웠지만 도움드렸고요. … 언니? 말 앞뒤 자르고 그렇게 인식하시는거 아니에요. 저는 누굴 위해 단한번이라도 증언하신적있나요? 법적인 공방과 지난 사건으로 언니가 함부러 말하는 바람에 언니는 스트레스 많이 받고 함구했고 저는 그런 경솔한 행동에도 도우려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ㅎㅎㅎ 가식이나그만떨어라 못봐주겠다 너랑나랑 지금껏 나눴던대화들 톡 공개하면 볼만하겠네ㅎㅎ죽은사람가지고 니 홍보에 그만 이용해라”가 답이었다. 윤지오는 김수민이 “영리하게”라는 말을 오독하여 악용하고 있음을 느끼고 “위에 말한것은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간 못했던 말을 한다고 했도[고] 그러고 있어요”라고 해명해 보지만 역시 돌아온 것은 “ㅎㅎㅎ”였다.

이 대화 속에 이후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에 사용되는 기본 프레임의 상당 부분이 제시된다. (1)10년동안 계속 숨어지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2)고인이 된 장자연을 이용하여 책을 홍보한다. (3)장자연과 윤지오는 깊이 친하지 않았다 (4)윤지오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방송과 인터뷰를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윤지오가 자신의 이익(돈벌이)을 위해 가식을 떨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김수민의 감정적 반응에서 시작하여 결별과 적대에 이르는 이 대화는 3월 7일[8일] 불과 10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고 김수민이 “8시뉴스 인터뷰한거봤어 한국나오자마자 계속 인터뷰하고다니느라 진빠지겠다”고 (공감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 때로부터) 불과 16시간 정도 뒤에 벌어진 대화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김수민의 관점은 180도 뒤바뀌어 지지자에서 비난자로 돌변한다. 이것이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에 대해 보인 돌변에 이어 김수민이 보인 두 번째 돌변이다.

첫 번째 돌변과 더불어 김수민이 이수역 사건 여성 피해자에게 ‘피해자를 빙자한 사기’ 혐의를 씌웠듯이 두 번째 돌변과 더불어 김수민은 윤지오에게 ‘고인을 이용한 사기’ 혐의를 씌운다. 이 비난 작업은 2019년 4월 16일 SNS에 올린 ‘윤지오씨 말은 100% 진실일까요’에서 본격화되어 이후 수 개월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점 강도 높게 이루어진다.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에 대해서 김수민은 그 후원금 모집의 비공개성, 비밀성을 사기의 단서라고 고발했는데 윤지오를 사기로 문제삼기 위해 김수민은 윤지오의 증언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글에서 다음처럼, 즉 (1)윤지오는 장자연에 관해 증언할 만큼 친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윤지오가, 자기는 장자연이랑 친하지 않았다고, 어울리지도 않았고, 개인적 연락도 없었다고 말했으며 장자연이 겪은 경험을 자기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2) 윤지오는 장자연 문건을 본 적이 없다.(왜냐하면 윤지오가 경찰 조사를 받는 중에 책상에 놓여 있는 문서를 우연히 봤다고 말했으며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도 거기서 봤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3) 윤지오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왜냐하면 윤지오가 진상조사단과의 대화에서 김종승이 장자연씨 추행한 것이나 방00 얼굴 본 날짜 장소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고 씀으로써 윤지오의 증언이 거짓말이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3)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이 후원금을 요청한 실제 이유

우선 우리는 당시 김수민 및 피해 여성측 사이에서 양자 모두와 소통할 수 있었던 ㅎㅇ의 반응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접근해 갈 수 있다. ㅎㅇ은 맨 처음 김수민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는, 피해여성의 후원금 요구가 합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며 김수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김수민이 피해 여성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요청 메시지를 ㅎㅇ과 공유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ㅎㅇ도, 개인후원을 비밀리에 요청한다는 것이 이상하고 변호사가 공개모금한 돈으로는 수임을 받을 수 없고 비밀모금한 돈으로는 수임을 받겠다고 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ㅎㅇ은 김수민보다는 신중하게 피해여성들과 함께 일해온 지인에게 사정을 더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연락이 도착하기도 전에 김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피해 여성의 후원금 요청을 ‘사기’로 보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공개해 버린다. 위에 인용한 구절이 그것이다. ㅎㅇ은 이 공개가 문제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김수민에게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말해 준다. 피해 여성과 함께 일해온 지인이 “변호사가 사회적으로 격렬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에서 공개리에 모금을 하여 자신이 변호사임이 공개되면 여론상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고 이런 사정 때문에 첫 변호사가 사임하여 두 번째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으로 비밀, 개인 후원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음을 알려주면서 ㅎㅇ은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글을 보관으로 돌려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 요청을 거부하고 김수민은 그 글의 공개를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한다.

이 글을 읽고 개인 후원금 메시지를 보냈던 피해 여성이 이 사태와 관련하여 김수민에게 보낸 메시지는 이 사태의 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직접적 증언의 목소리이다.

“작가님 께서 올리신 새로운 인스타 피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드린 메세지가 오해를 살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에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메세지 드립니다. 그간 있었던 무수한 일들을 짧은 메세지로 축약해 보내는 과정에서 저희의 상황이나 의도가 온전히 전달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많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우셨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의아하신 점이나 짚고 넘어 가고 싶으신 점 등이 있다면 얼마든지 연락주십시오. 저희는 모든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작가님께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남겨드릴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불쾌하시거나 오해를 살만한 점이 있었다면 대화를 나누면서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여기에서 피해 여성은 자신들의 불찰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우셨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싶으니 연락을 달라고 말한다. 

제3자인 ㅎㅇ의 사태조사(즉 지인의 말)와 피해자의 직접적 해명은 일치한다. 만약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김수민이 여성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성 피해자는 앞서 본 바처럼 김수민을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불찰을 성찰하고 사과와 대화를 통한 오해풀기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여성측이 남성측을 가해자로 몰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 왔다고 주장해온 남성측 지지자들도 김수민의 이러한 돌변을 반겨 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김수민이 이수역 사건의 당사자 여성을 사기꾼으로 몰면서 자신은 빠져 나가고 사건 당사자 여성에게 독박을 씌운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니까 ..어쨌든 작가란 X도 병신짓 했고 이제서야 깨달아서 이래나 저래나 까발려지면 매장 될 판인데 좀 살 수 있는 루트 만들어서 자기는 쏙 빠져나가고 저 이수역 X들이 다 독박 씌우겠다 이거네???”

김수민으로서는 난처한 반응들이 이렇게 연속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피해 여성에게 제공한 언어적 증여가 답례로 보답 받기는 커녕 오히려 추가의 화폐 증여 요구로 이어졌다고 느끼면서 언론 제보와 인스타그램 피드 공개로 대응한 것이 가져온 응보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여기에서 우리는 화폐 증여에 대한 김수민의 혐오 반응을 읽을 수 있다.  김수민은 요청 받지도 않은 언어적 증여를 피해 여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제공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요청까지 받은 화폐 증여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식의 혐오 반응을 보인 것일까?

피해 여성이 김수민에게 해명과 사과 및 당부를 담은 위의 메시지를 보낸 후 김수민이 이에 응답한 글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암시해 준다.  

“네 많이 불쾌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공식적인 후원도 아닌 갑자기 디엠을 보내와서 계좌번호 던져 주고는 후원 부탁한다 대신 침묵해 달라 알려져선 안 된다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 부담 없이 읽어달라는 건 무슨 뜻이죠 저한테는 듣는 순간 부담이 무척 되더군요 그거 알죠 그쪽과 저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리고 저도 당신들을 위해 싸워주고 분노해 주고 해명해 주는 거 변호사 모금을 후원해 주는 거 이중에서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습니다 단지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신들 편을 드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무조건 억울한 피해자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들이 잘해서 그렇게 당신들을 위해 글을 쓰고 해명하려고 노력하고 당신들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딱하나 분명 서로 잘못은 있지만 어찌됐던 여자는남자 보다 약자고 그쪽은 수가 더 많았고 남자쪽은 다친 것이 없었고…”

여기서 김수민이 피해 여성측을 “사기”로 보는 글을 올려 ‘공론화(?)’한 것을 정당화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원래 피해 여성측에도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과실은 쌍방에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식 후원 형식을 따르지 않는 후원 요청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표명함으로써 김수민은 이제 이수역 사건 여성측의 내부고발자가 된다. 여성측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성측이 피해자를  가장한 사기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김수민의 이 내고고발로 인해 피해 여성들은 사기꾼의 누명을 뒤집어 쓰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다. 

그런데 피해 여성들의 입장에서 첫째 이유는 쟁점사항이지만, 둘째 이유는 참으로 억울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후원금을 비공개로 모금했던 것은 첫 번째로 선임된 변호사가 사임하고 새로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변호사들이 공개모금 방식을 거부한 데 따른 불가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애초 피해 여성이 보낸 디엠이 어떠했길래 김수민은 “공식적인 후원도 아닌 갑자기 디엠을 보내와서 계좌번호 던져 주고는 후원 부탁한다 대신 침묵해 달라 알려져선 안 된다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 부담 없이 읽어달라는 건 무슨 뜻이죠”라고까지 반응한 것일까? 김수민 작가에게 피해 여성측에서 보낸 애초의 인스타그램 디엠은 다음과 같다.

“부끄럽지만 현재 저희에게 도움을 주시겠다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모금을 열지 못했습니다 변호사들이 모두 사건에 쏠린 여론, 변호사로서의 이후 본인 커리어에 영향을 줄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모금을 통한 변호사 선임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호사 선임, 치료비 등 그간 약 8백만원에서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본인이나 최측근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변호사를 재선임 해야 하는데 역시 공개적인 모금을 원치 않으며 모금이 없어야 변호사 선임 가능성이 조금 더 올라 갑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금전적인 문제의 큰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린 저희가 직접 한분 한분께 연락을 드리며 도움을 요청 하는 중입니다 비용에 대한 부분은 투명하게 진행 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갑작스러운 긴 텍스트에 놀라셨겠지만 금전적 후원이 가능하시다면 도움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모금과정이 누설되면 저희측의 변호사 선임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비밀 엄수를 꼭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조금 모순되는 말이지만 주변에 정말 신뢰 가능한 분들이 계시다면 저희 이야기를 전달해주실 수 있을까요 계좌는 시티은행…”

읽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 디엠에는 비공개 방식의 사적 후원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다.  처음에 김수민의 이야기를 듣고 김수민의 말에 공감했던 ㅎㅇ도, 이러한 방식의 후원금 요청이 ‘사기’가 아니라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선택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을 열심히 김수민에게 설명해 준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피해 여성들이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보았던 자신의 처음의 의심이 사실과 다르고 오히려 피해 여성이 처음 김수민 작가에게 보낸 메일의 문구 그대로가 사실이라고 말이다.  

“이수역 피해자분들이 지금 여러가지로 언론도 그 누구도 못믿고 일이 틀어질까봐 걱정도 되고 또 이런 식으로 선임을 거부할까봐 최대한 몸사리며 하고 있는 중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고, 사기나 이용하려던 건 정말 아니라고 하는데 이 분은 제가 개인적으로 많이 만나고 하는 분이라 신뢰도가 있거든요. 작가님도 많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우셨겠지만 그쪽에서 답장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으실까요?ㅠ”

이런 조사를 기초로 ㅎㅇ이, (자신과 김수민의 오해와는 달리) 피해 여성들이 변호사 선임했다가 계약 파기되고 재선임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보이니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관으로 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이에 대한 김수민의 응답은 냉담하고 확고하다. 

“공론화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침묵해 주는 게 옳지 않는 것같아요. 그럼 그들은 뒤에서 계속 그렇게 비밀스럽게 돈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고 사람들한테 피해자든 뭐든 분명 저건 옳지 않아요.”

“피해자든 뭐든 분명 저건 옳지 않아요”라는 말은 사실보다 규범이 우선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표현한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서 사실을 더 확인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주관적 규범을 앞세움으로써, 김수민은 이수역 사건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지지자, 언어적 증여자에서 ‘내부고발자’ 형식의 ‘2차 가해자’로 변신한다. 

이 변신의 순간에 김수민이 피해 여성에 대한 자신의 이전의 지지가 “증여”였음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흥미롭다. 앞서 말한 지지의 세 가지 성격 중 ‘자기실현’이나 ‘연대’의 성격을 제외시키고 ‘증여’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쪽과 저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리고 저도 당신들을 위해 싸워주고 분노해 주고 해명해 주는 거 변호사 모금을 후원해 주는 거 이중에서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습니다.”에서 “주다”(증여)는 네 번 등장한다. “싸워 주고, 분노해 주고, 해명해 주고, 후원해 주다”가 그것이다. 감정의 증여, 해명의 증여, 투쟁의 증여, 후원금의 증여. 

이 네 가지 증여 중 “당연한 건 없습니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증여에는 일정한 답례의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분노의 증여, 해명의 증여, 투쟁의 증여를 했다. 그런데 수증자로부터 돌아온 것이 답례증여이기는커녕 추가의 증여, 그것도 화폐 증여에 대한 요구였다. 현대 사회에서 화폐는 교환수단이며 교환수단이기 때문에 지불수단, 축장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그것이 증여수단일 수 있을까? 김수민은 이에 부정적으로 답한다. 화폐는 증여의 수단이 아니다. 이런 관점 때문에 김수민은 화폐적 형태의 후원금 요구를 ‘사기’로 파악하면서 그 요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피해 여성을 ‘사기 가해자’로 묘사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기에 이른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2)

이수역 사건에서 증여를 사기로 둔갑시키기

김수민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8년 이수역 사건 때이다. 이 사건은 2018년 11월 13일 새벽 4시 이수역 근방의 주점에서 여성 두 명과 남성 네 명 사이에 시비와 싸움이 일어나 여성 한 명과 남성 한 명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고 기소 되기에 이른 사건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2018년 11월 15일부터 김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사건의 여성 피해자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밀지 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도 피해 여성의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고 남자들은 여성 피해자를 발로 차버리고 계단으로 밀어버립니다.” 여기서 김수민은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파악한 후, 남자 가해자들이 경찰 진술, 언론 플레이, 동영상 조작, 목격자 진술 조작을 통해 여성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남자 가해자들은 경찰 진술에서도 언론플레이로도 자기들은 손끝도 때린 적이 없다 건들인 적이 없다. 여자혼자 넘어진거다. 자기들이 되려 폭행당했다며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갔습니다. 유튜브 영상에서도 피해자들이 욕한 부분만 편집해서 올려댔고 사람들은 피해 여성들을 또 다시 2차 가해를 하였습니다. 목격자 진술도 주작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사람들이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수민은 이러한 여론몰이에 맞서면서 “한국 사람들”이 피해자 말은 듣지도 않고 피해자들을 “사기꾼”이라고 하면서 가해자들에게 감정이입하고 편집된 영상만 보고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언론보도가 가짜 기사인데 사태의 진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가해자들의 말만 듣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의심부터 한다는 것이다. 김수민이 보기에 이 의심은 “피해자 증거사진들”,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하는 처사이다.

“누가 얼마나 큰 피해를 당했는가?”보다 “누가 시비를 먼저 걸었는가?”로 쟁점을 옮기려는 남성측의 반론에 대한 응답으로 11월 16일 김수민은, 시비를 누가 먼저 걸었는가보다 여성 피해자가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서 생명의 위험과 여성인권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사람이 다쳤다. 계단에서 남자가 밀쳐서 사람이 다쳤다. 사람이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 그런데 차라리 죽지 그랬냐는 댓글들이 넘쳐나고 그정도 맞은 걸 다행인줄 알라고 말하고 나같아도 때렸을거라고 말하고 맞을짓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게 정상인건가?”라고 물으면서 김수민은 “중립충을 지향하는 사람들”(방관자),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는 사람들”(적대자)을 가리지 않고 이들에 맞서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

사흘 뒤인 11월 19일 김수민은 “가짜 목격자의 증언과 여자들만 욕한 편집된 영상”만을 보고,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여성 피해자에게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이 악플러 군중들이야말로 거짓 기사들을 쏟아내는 언론들과 더불어 “여성 피해자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가서 “죽을 뻔한 피해자들을 진짜 죽이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김수민은 사건 초기에 이수역 피해 여성들에 대한 공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론투쟁을 수행했다. 그것은, 남성 가해자들의 일방적이고 거짓된 주장, 가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목격자 이야기,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거짓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 이것들에 지지를 보내면서 여성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악플러들을 비판하고 피해 여성들의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 가지 성격, 즉 (1)SNS 글쓰기를 통한 여성 인권의 옹호로서의 자기 실현이라는 성격 외에 (2) 여성 피해자와의 연대라는 성격을 가지며 나아가 (3)피해 여성들의 절박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언어적 증여행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김수민의 태도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약 8일 뒤인 2018년 11월 27일경부터이다. 남성 가해자들이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아세운다면서 그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했던 김수민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의심은 혼자 마음 속에서 하는 의심에 머물지 않고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의심토록 만드는 SNS ‘공론화’ 행동으로까지 나아갔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공론화’는 실제로는 피해 여성에 대한 거짓 고발이었다. 

지지 행동에서 공격 행동으로의 이 돌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우리는 김수민과 (그에 의해 약 5개월 뒤에 갑자기 ‘사기꾼’으로 지목되는 당황스런 경험을 하게 되는) 윤지오가 나누었던 카톡 대화를 통해 김수민의 이러한 돌변의 이유와 맥락을 짚어볼 수가 있다.

2018년 11월 27일 윤지오가 조0천 강제추행 건에 대한 증언을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오는 날 김수민이 윤지오에게 카톡으로 갑자기 “너 아는 기자있지? 언니 소개 좀 시켜줄 수 있어? 뭐 제보할 게 있는데 이걸 기사화시켜줄 기자가 필요해.”라는 부탁의 메시지를 보낸다. 무엇을 위해서 기자가 필요했을까? 그 이유는 “이수역 폭행 피해자들이 나한테 돈을 요구하는 듯한 말을했거든. 페미니스트 욕 먹이는 일일까봐 침묵할려고 했었는데 이 사건을 공론화시킬까말까 고민중이야.”에서 찾아진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페미니스트는 타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페미니스트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피해를 빙자하여 돈을 요구하는 사기행동으로 의심될 수 있다’는 김수민의 사고방식을 읽어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김수민은 ‘여성 피해자가 왜 자신에게 돈을 요구하는가?’, 라는 기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즉 사태의 진상에 접근하여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이수역 사건 여성 피해자의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페미니스트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사기행동일 수 있다’는 자신의 주관적 규범이 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지하도록 만든다. “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피해여성의 요구에 그는 자신의 이 규범을 기초로 반응하고, 상황에 대한 성찰 없이 즉각적으로 기자에게 제보하려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초기 대응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관적 반응방식이 발견된다. 김수민이 피해 여성을 옹호할 때에도 그는 “잘잘못, 시시비비” 즉 원인보다 “여성이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는 결과의 측면에만 주의를 집중했고 이 결과를 기초로 남성측을 일방적 가해자로 단정했다. 그의 판단과는 달리 2018년 12월 16일 경찰은 남녀 5명 모두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과 모욕죄 등으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고 2019년 7월 30일 검찰은 이들 중 남녀 각 1명씩을 약식기소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불기소처분했다. 즉 쌍방 폭행, 쌍방 가해-피해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수민이 제기하지 않고 있는 그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피해 여성들은 김수민에게 후원금을 요청했던 것일까?’가 그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사건이 법정으로 옮겨가면서 변호사 선임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이 사건에서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면 변론을 맡기 어렵다고 했다. 변호사의 이런 수임조건을 고려하여 선택한 것이 비공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후원금 모금이었다. 피해 여성들이 김수민에게 후원금을 요청한 것은 김수민이 인스타그램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글을 쓰고 있고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돈을 후원해 달라”는 요청은 피해자가 해서는 안 될 요청이라는 자신의 주관적 규범에 따라 여성 피해자의 후원금 요청을 ‘사기’로 의심하고 이를 언론에 제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김수민은 윤지오에게 아는 변호사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은 이러한 방식의 후원금 모집이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갖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던 탓에 이수역 사건을 모르고 있었고 김수민을 통해 이 사건을 처음 들은 윤애영은 알고 있던 모언론사 기자 2명과 민변 변호사를 김수민에게 소개해 주었다.

바로 다음날인 11월 28일 김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수역 피해 여성측이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한 메시지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이 일은 꼭 사람들에게 공론화시켜야 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내가 숨길 필요도 침묵해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쓰고, 이것은 “당신들이 나와 사람들을 속인 거”, 즉 사기라는 강한 함의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나 지금 좀 회의감이 들려고 하네/내가 그동안 뭘 위해 그렇게 싸워왔던건지/진심을 다해 싸워왔던 마음마저 무너질려하네/난 내 아픔을 진심으로 말했던건데/글쎄 당신들 아픔이 진심인지는 모르겠네/결국 원한 건 무엇이었나/침묵을 가장한 본심이었나/진심을 이용한 거짓이었나/날 후회하게 만들지마/당신들이 나와 많은 사람들을 속인거라면/큰 실수한거야.”

이러한 ‘공론화’의 정체가 무엇일까? 피해를 빙자하여 후원금을 모으는 ‘사기꾼’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 것일까? 그게 아니라,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운 절박한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후원금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여성 피해자를 김수민이 사기꾼 혐의를 씌워 2차 가해한 것일까? 이것은 당시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고 왜 후원금을 요청했는가를 살피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것은 김수민이 외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1)

들어가며

‘증여(贈與)’를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주다’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증여를 뜻하는 ‘gift’도 주다는 뜻의 ‘give’에서 나온다. ‘주다’는 물건, 시간, 자격, 권리, 역할, 지식, 감정, 경고, 암시, 마음 등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것을 넘겨주어 그것을 누리거나 느끼게 하는 행동을 지칭한다.  이 말은 ‘투자하다’, ‘기부하다’ 등의 (준)경제적 행동; ‘수여하다’, ‘하사하다’, ‘상납하다’, ‘선사하다’ 등의 사회적 행동; ‘투여하다’, ‘베풀다’ 등의 윤리적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주다’는 ‘얻다’나 ‘뺏다’보다는 ‘받다’에 대응한다. 우리말 ‘받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받치는 모양을 암시한다. 즉 ‘받다’는 물질적 비물질적 은혜를 입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돌려주어야 할 책무, 즉 ‘갚’을 의무를 어느 정도 함축한다.

‘주다-받다-갚다’의 연쇄는 근대 이전의 시대에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 아니 기본적 원리였다.  마르셸 모스는 이것을 ‘증여-수증-답례’의 순환적 반복연쇄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답례는 새로운 증여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새로운 수증과 새로운 답례의 순환이 촉발되기 때문이다. 얼핏보면 증여사회를 구성하는 이 원리는 근대 이후 사회의 교환원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교환사회에서도 상품을 주고 화폐를 받으며 화폐를 주고 상품을 받는 C-M-C의 부단한 순환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여사회와 교환사회 사이에서 주고-받음은 두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증여사회에서 주고-받음은 계약한 두 당사자간의 주고 받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을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고 받음이 개인들(계약 당사자들) 사이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 속에서의 주고-받음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교환사회에서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은 등가여야 한다는 원리가 작동함에 반해 증여사회에서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같게 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다르고 부등가일 때 오히려 의미를 갖는 것이 증여였다. 증여사회의 후기에 관찰되는 포틀래치 경쟁은 이 다름의 원리가 받은 것보다 경쟁적으로 더 많은 것을 줌으로써 자신의 명예 및 권력 상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문화로 될 때 나타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증여형식이었다.

이 자리는 증여사회가 어떻게 교환사회로 이행했는지에 대해서 논할 자리는 아니다. 다만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는 맑스의 시초축적에 대한 분석(<자본론>)이나 실비아 페데리치의 마녀사냥에 대한 분석(<캘리번과 마녀>), 정신병원 감옥 임상의학 등의 탄생에 관한 푸코의 분석(<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임상의학의 탄생>) 등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저자들은 한결같이 이 이행이 자연스럽고 순조로운 이행과정이 아니라 입법만이 아니라 총칼이나 감금, 화형식과 같은 군사적 사회적 종교적 폭력을 동원한 과정이었다고 서술한다. 사람들을 교환사회 질서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증여사회의 인지양식, 문화, 관습에 대한 대대적 공격이 필요했다. 증여에 대한 혐오가 그것인데, 부등가의 교통형식인 증여는 등가교환의 질서를 안착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증여혐오는 증여질서의 구성원으로서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사회질서 바깥으로 추방하거나 강제로 수용하여 감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술사, 예언자, 점술가, 음유시인, 떠돌이, 예술가, 혁명가 등이 이 증여혐오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4)

4.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주장의 위험성

증언자 주변을 맴도는 위협들은 이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변호사 박훈의 귀에 이러한 주장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다. 박훈이 보기에 윤지오는 있지도 않은 위협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통장으로 후원금이 굴러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꽃뱀’과 다르지 않다. 

박훈은 “사실은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었고, 일반 교통사고임에도 불구하고 2019년 1월경 캐나다 고속도로와 도로에서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차량 테러를 당하였다고 거짓 주장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포하고”, “2019년 3. 30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하면서 사실은 아무 위협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이 머물고 있던 호텔의 환풍구를 누군가 고의로 끈을 날카롭게 끊었다거나, 출입문 잠금 장치에 액체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거나 이상한 가스냄새를 맡았다면서 마치 엄청난 신변 위협이 있는 것처럼 하면서 ‘경호비용’ 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모금행위를 하였습니다.” 

박훈은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었음”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단정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위에 언급한 여덟가지 유형의 경험을 겪은 사람이 자신의 자녀라도 그는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다”며 무방비로 거리로, 숙소로 내보낼까?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다”는 박훈의 판단을 믿고 아무런 방비를 갖추지 않고 거리와 숙소로 갔던  그 사람이 다치거나 시신으로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윤지오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27만명을 상회하는 시점에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정장은 박훈 변호사와는 전혀 다른 입장, 전혀 다른 판단,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나 피해자 보고는 경찰의 중요한 본분임에도 이번 사건에 미흡한 업무처리로 윤지오 씨는 물론 국민 여러분들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서 진실규명을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윤지오씨에 대한 신변보호를 소홀히 한 점에 대해 서울경찰의 책임자로서 한 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라고 답했다. 또 “윤지오 씨가 느꼈을 불안감과 경찰에 대한 실망감과 절망감,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에게는 신고 직후 알림 문자가 전송되었으나 담당 경찰관이 이를 제때 확인하지 못하여 연락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스마트워치 긴급 신고 시스템 미작동 및 담당경찰관의 부주의로 인해 극심한 불안을 느끼셨을 윤지오 씨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문제가 된 스마트워치를 교체 지급했고 불안감을 주는 기존 숙소에서 새로운 숙소로 숙소를 옮겨 주었으며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간 동행 밀착보호 조치를 취해주었다. 아울러 숙소의 기계음소리, 떨어진 환풍구, 출입문의 액체 등에 대해서는 서울청 과학수사에서 현장감식을 실시하고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그 결과를 통보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것은 아마도 국민과 증언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진 국가가 마땅히 취했어야 할 최소한의 조치였을 것이다. 

박훈은 아마도 4월 23일, 서울청 과학수사 결과 발표를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로 삼고 싶을지 모른다. 4월 16일 김수민이 윤지오에 대한 불만감정을 ‘윤지오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는 비난문건으로 표현하고 박훈이 김수민을 대리해 윤지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과 거의 같은 때에 이루어진 이 조사발표에서 경찰청은 현장감식과 과학수사 결과 ‘신변위협을 시도한 범죄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윤지오가 제기한 의심사항에 대해 아래처럼 하나하나 응답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가 객실 벽면·화장실 천장에서 들었다는 의심스러운 기계음 소리는 구청의 소음측정 결과, 화장실 환풍기나 보일러가 작동할 때 벽면을 통해 들리는 미세한 소리로 확인됐다. 화장실 천정 환풍구 덮개 분리 및 끈이 끊어진 점도 해당 호텔에서 지난 3월13일 관광공사 점검 때, 이미 환풍기 덮개 한쪽 브라켓이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양면 테이프로 고정 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객실 출입문 잠금장치 쪽에 액체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는 윤씨 주장에 대해서는 경찰은 출입문 상단에 설치된 유압식 도어장치에서 오일이 흘러내린 것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이 응답은 현장조사와 탐문, 그리고 과학수사 후에 나온 것으로, 윤지오가 없는 위협을 만들어낸 것이기는커녕 오히려 윤지오가 제기한 문제들이 일상적 지각과 감각으로 누구나가 의심할 만한 것들이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하물며 윤지오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였고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음을 고려하면 반드시 의심되어야 할 것이 윤지오에 의해 의심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발표에 대해 조선일보, 뉴시스, 머니투데이 등 고 장자연 문건에 그 이름이 등장하거나 장자연 사건과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을 사주로 두고 있는 언론들은 ‘신변 위협 시도로 볼 범죄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경찰청의 발표를 정확하게 박훈의 언어로, 즉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제목으로 왜곡하여 보도했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경찰 “윤지오 신변위협 정황 없어… 비상호출 무응답은 기계 조작미숙”>으로, 머니투데이는 <경찰 “윤지오 스마트워치 미작동 ‘조작미숙’ 탓…신변 위협 없어”>로, 뉴시스는 <경찰 “윤지오 신변위협 없어…SOS 미신고는 조작실수”>로 보도했다. 경찰의 실제 발표문이었던 ‘신변 위협 시도로 볼 범죄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신변위협이 없었다’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는 시도’(침범행동)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북한의 ‘위협은 상존한다’고 말한다. 칼을 든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위협 시도’(범죄행동)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신변위협이 있다’고 느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두운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남성이 성폭행이나 성추행과 같은 ‘신변위협 시도’(범죄행동)를 하지 않을 때에는 여성은 ‘신변위협’을 느껴 심장이 뛰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뉴시스, 머니투데이는, 변호사 박훈이 고발장에서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신변 위협 시도로 볼 범죄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경찰청의 발표를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말로 왜곡한다. 

신변위협 행동과 신변위협의 실재를 혼동시키고 신변위협 행동이 없으면 신변위협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허구적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가해권력자들 앞에 사람들을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그것은 가해권력의 가해행동을 용이하게 만드는 한편, 사람들을 위태롭게 하며 반복해서 피해를 당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상의 서술은 박훈이 ‘윤지오가 후원금을 받은 것은 사기다’라는 법률적 주장을 끌어내기 위해 든 논거(“리스트와 위협은 없었다”) 그 자체가 거짓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실천적으로 오도하는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증언자 주변을 맴도는 위협들은 이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변호사 박훈의 귀에 이러한 주장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다. 박훈이 보기에 윤지오는 있지도 않은 위협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통장으로 후원금이 굴러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꽃뱀’과 다르지 않다. 

박훈은 “사실은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었고, 일반 교통사고임에도 불구하고 2019년 1월경 캐나다 고속도로와 도로에서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차량 테러를 당하였다고 거짓 주장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포하고”, “2019년 3. 30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하면서 사실은 아무 위협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이 머물고 있던 호텔의 환풍구를 누군가 고의로 끈을 날카롭게 끊었다거나, 출입문 잠금 장치에 액체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거나 이상한 가스냄새를 맡았다면서 마치 엄청난 신변 위협이 있는 것처럼 하면서 ‘경호비용’ 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모금행위를 하였습니다.” 

박훈은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었음”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단정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위에 언급한 여덟가지 유형의 경험을 겪은 사람이 자신의 자녀라도 그는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다”며 무방비로 거리로, 숙소로 내보낼까? “아무런 신변위협이 없다”는 박훈의 판단을 믿고 아무런 방비를 갖추지 않고 거리와 숙소로 갔던  그 사람이 다치거나 시신으로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윤지오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27만명을 상회하는 시점에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정장은 박훈 변호사와는 전혀 다른 입장, 전혀 다른 판단,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나 피해자 보고는 경찰의 중요한 본분임에도 이번 사건에 미흡한 업무처리로 윤지오 씨는 물론 국민 여러분들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서 진실규명을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윤지오씨에 대한 신변보호를 소홀히 한 점에 대해 서울경찰의 책임자로서 한 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라고 답했다. 또 “윤지오 씨가 느꼈을 불안감과 경찰에 대한 실망감과 절망감,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에게는 신고 직후 알림 문자가 전송되었으나 담당 경찰관이 이를 제때 확인하지 못하여 연락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스마트워치 긴급 신고 시스템 미작동 및 담당경찰관의 부주의로 인해 극심한 불안을 느끼셨을 윤지오 씨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문제가 된 스마트워치를 교체 지급했고 불안감을 주는 기존 숙소에서 새로운 숙소로 숙소를 옮겨 주었으며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간 동행 밀착보호 조치를 취해주었다. 아울러 숙소의 기계음소리, 떨어진 환풍구, 출입문의 액체 등에 대해서는 서울청 과학수사에서 현장감식을 실시하고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그 결과를 통보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것은 아마도 국민과 증언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진 국가가 마땅히 취했어야 할 최소한의 조치였을 것이다. 

박훈은 아마도 4월 23일, 서울청 과학수사 결과 발표를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로 삼고 싶을지 모른다. 4월 16일 김수민이 윤지오에 대한 불만감정을 ‘윤지오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는 비난문건으로 표현하고 박훈이 김수민을 대리해 윤지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과 거의 같은 때에 이루어진 이 조사발표에서 경찰청은 현장감식과 과학수사 결과 ‘신변위협을 시도한 범죄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윤지오가 제기한 의심사항에 대해 아래처럼 하나하나 응답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가 객실 벽면·화장실 천장에서 들었다는 의심스러운 기계음 소리는 구청의 소음측정 결과, 화장실 환풍기나 보일러가 작동할 때 벽면을 통해 들리는 미세한 소리로 확인됐다. 화장실 천정 환풍구 덮개 분리 및 끈이 끊어진 점도 해당 호텔에서 지난 3월13일 관광공사 점검 때, 이미 환풍기 덮개 한쪽 브라켓이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양면 테이프로 고정 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객실 출입문 잠금장치 쪽에 액체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는 윤씨 주장에 대해서는 경찰은 출입문 상단에 설치된 유압식 도어장치에서 오일이 흘러내린 것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이 응답은 현장조사와 탐문, 그리고 과학수사 후에 나온 것으로, 윤지오가 없는 위협을 만들어낸 것이기는커녕 오히려 윤지오가 제기한 문제들이 일상적 지각과 감각으로 누구나가 의심할 만한 것들이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하물며 윤지오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였고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음을 고려하면 반드시 의심되어야 할 것이 윤지오에 의해 의심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발표에 대해 조선일보, 뉴시스, 머니투데이 등 고 장자연 문건에 그 이름이 등장하거나 장자연 사건과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을 사주로 두고 있는 언론들은 ‘신변 위협 시도로 볼 범죄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경찰청의 발표를 정확하게 박훈의 언어로, 즉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제목으로 왜곡하여 보도했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경찰 “윤지오 신변위협 정황 없어… 비상호출 무응답은 기계 조작미숙”>으로, 머니투데이는 <경찰 “윤지오 스마트워치 미작동 ‘조작미숙’ 탓…신변 위협 없어”>로, 뉴시스는 <경찰 “윤지오 신변위협 없어…SOS 미신고는 조작실수”>로 보도했다. 경찰의 실제 발표문이었던 ‘신변 위협 시도로 볼 범죄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신변위협이 없었다’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는 시도’(침범행동)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북한의 ‘위협은 상존한다’고 말한다. 칼을 든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위협 시도’(범죄행동)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신변위협이 있다’고 느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두운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남성이 성폭행이나 성추행과 같은 ‘신변위협 시도’(범죄행동)를 하지 않을 때에는 여성은 ‘신변위협’을 느껴 심장이 뛰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뉴시스, 머니투데이는, 변호사 박훈이 고발장에서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신변 위협 시도로 볼 범죄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경찰청의 발표를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말로 왜곡한다. 

신변위협 행동과 신변위협의 실재를 혼동시키고 신변위협 행동이 없으면 신변위협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허구적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가해권력자들 앞에 사람들을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그것은 가해권력의 가해행동을 용이하게 만드는 한편, 사람들을 위태롭게 하며 반복해서 피해를 당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상의 서술은 박훈이 ‘윤지오가 후원금을 받은 것은 사기다’라는 법률적 주장을 끌어내기 위해 든 논거(“리스트와 위협은 없었다”) 그 자체가 거짓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실천적으로 오도하는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3)

3. 신변위협은 실재한다.

두 번째로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윤지오에 대한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박훈의 주장에 대해서이다. 이 주장을 살펴 봄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실재성의 두 차원이다. 실재성은 잠재성과 현실성의 두 차원으로 나뉜다. 신변위협의 문제에서 현실성은 행사의 차원이며 잠재성은 존재의 차원이다. 혼자 밤길을 걷는 여성에게 남성으로부터의 신변위협이 행사되지 않을 때에도 여성이 신변위협을 느끼는 것은 신변위협이 잠재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변위협이 행사되고 있을 때에 신변위협이 실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변위협이 행사되지 않고 있음이 현실일 때조차 신변위협은 잠재적으로 실재한다고 해야 한다. 윤지오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현실적 신변위협과 잠재적 신변위협에 대해 여러 차례 진술해 왔다. 그 진술들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발췌해 보자.

첫째 10년전 밤에 경찰서에 출석하여 새벽까지 이어진 참고인 조사를 마친 후 경찰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조선일보라는 로고를 새긴 차량이 경찰의 차를 미행했다. 미행하는 차를 따돌리기 위해 쫓고 쫓기기를 얼마동안 하다가 수사관이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조선일보 기자였다. 경찰이 그에게 왜 따라오느냐고 물으니 “취재를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는데 이후에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둘째 조희천 강제추행에 대해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한 후 기자들이 윤지오를 찾았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윤지오는 이 기자들이 가해자들을 대신해서 증언자인 윤지오를 찾아다니고 가해자들이 할 공격적인 말을 가해자 대신 증언자에게 퍼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즉 윤지오에게 기자들은 가해자들의 분신처럼 느껴지며 실질적인 보복위협을 하는 가해세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셋째 JTBC와의 비실명 전화인터뷰에서 고 장자연 사건을 다룬 책을 쓴다고 한 후 자신을 ‘조선일보‘ (기자)라고 밝힌 어떤 사람은 향초 제품 납품회사와 교회에 전화를 걸어’(윤지오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런다‘ ’그곳에 윤지오가 다니는 것이 맞냐‘며 물었다.  남긴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없는 전화번호였다. 윤지오는 이것을 가해권력자들이 벌이는 스토킹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넷째 2019년 1월에 고속도로와 도로에서 두 차례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근육이 찢어지고 염증이 생기는 부상을 입었다. 교통사고 직후에는 별 것 아닌 평범한 교통사고로 생각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또 가족들과 지인들이 우려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것들이 우연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자행하는 위협공격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두려움이 점점 커져 갔다.

다섯째 2019년 4월 전 소속사 매니저였던 권0성이 생전 연락이 없다가 인스타그램으로 갑작스레 연락을 하여 JTBC가 너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니 JTBC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 후 정작 그는 뉴시스 기자와 ‘윤지오는 생전에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는 식의 음해성 인터뷰를 가졌다.

여섯째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증언을 시작한 후 기자들은 윤지오가 투숙한 호텔을 찾아내 증언자에 대한 의심을 표현하는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윤지오에게 쏟아내기 시작했고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는 ‘공항에 도착하면 칼로 찌르겠다’거나 ‘손톱을 드릴로 뚫고 싶다’는 식의 끔찍한 댓글이 달렸다.

일곱째 2019년 3월 8일 naver-*** 명의의 청원인이 ‘고 장자연씨 관련 증언한 윤**씨 신변보호 청원’을 하고 3월 14일 고소인의 변호사들이 경찰청에 윤지오에 대한 신변보호를 요청한 후 동작경찰서에서 스마트워치를 제공하고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조치를 결정했다. 그 후 숙소 화장실 쪽에서 기계음이 들리고 환풍기 부분이 뜯겨있고 출입문 잠금장치가 고장나고 문틀 손잡이에서 액체가 흘러내리고 가스냄새가 나는 일련의 불안한 일들을 경험했다.

여덟째 4월 하순 경에 뮤지컬 배우 ‘민00’씨의 초대로 어머니와 경호원과 함께 뮤지컬을 관람할 예정이었는데 누군가가 숙소 위치를 알아내 그 위치를 무단으로 인터넷에 올리고 새벽에는 모르는 남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두려운 나머지 예정된 뮤지컬 관람도 하지 못했다. 22일과 23일에는 경찰 및 경호원과 함께 숙소를 변경하였으나 변경한 숙소마저 노출되었다. 어떤 약속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 숙소 1층에서 대기하던 기자가 무단으로 자신을 촬영하는 바람에 경호원이 카메라를 압수해 해당 영상을 삭제한 적도 있다.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신변위협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두고 신변위협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2019년 4월 이후 증언자 윤지오에게 쏟아진 엄청난 강요들(‘한국으로 와서 조사받으라’)과 협박들(‘감옥에 가둬라’)은 이 신변위협들의 다른 형태로의 지속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박훈의 고발은 그 다른 형태의 신변위협의 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