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의 물으면서 걷기

북핵문제의 성격과 새로운 세계체제의 필요성(1)

정치
작성자
amelanojoe
작성일
2019-03-12 17:12
조회
92
핵은 전후에 지구에 들어선 전쟁체제(냉전과 테러에 대한 전쟁)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서도 이것은 변치 않고 있다. 핵무력이 세계체제의 근거인 한에서 세계체제의 경계에 놓여 있거나 그 외부에 놓인 나라들은 생존을 위해 그 체제에 대항하여 거울전략(미러링)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영상 URL: https://youtu.be/H_I7pu4aL_0



[노트]

북핵 문제의 성격과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질문


미국의 회담 지위에 대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핵국가의 대표가 아니라 핵국가, 그것도 가장 많은 핵을 가진 국가의 대표가 소규고 핵국가의 대표에게 제재를 풀어줄테니 핵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는 장면이다. 수많은 언론들은 이 담판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 (즉 돈을 받고 핵을 파는 것이) 한국민과 인류의 행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마주하고 있는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김정은과 마주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유엔의 군주로서, 제국의 군주로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인가?


유엔의 제제인가 미국의 제재인가? 유엔의 제재라면 왜 미국이 그 제재의 해제권을 갖고 있는 것인가?


유엔은 미국의 지휘 하에 조직된 폭력기구인가? 왜 승전강대국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고 나머지 국가들은 그럴 수 없는가? 이러한 조약에 누가 동의했는가?


북한의 국가자본주의 사회구성체와 미국 주도 세계체제: 훈육과 도전


북한은 왜  NPT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가? 자급자족 경제는 불가능한가?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고 싶어한다고 매체들은 떠든다. 이 때 정상국가란 무엇인가?  북한이 정상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은 북한이 불량국가라는 부시적 테러전쟁론의 시각에서 정치현실을 보고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정상국가, 비정상국가의 구분보다 신자유주의 시장국가 대 국가사회주의 개발국가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은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이 북한이 생산한 핵무기 상품의 판매에 대해 왜 규제를 하는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이 맞는가? 안젤리스는 말한다: “지구 화 시대에 무역은 훈육적 성격을 획득한다. 사후영향, 사전위협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주체성의 물질적 기반의 연속적 재구성으로부터


비핵화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누구의 필요를 반영하는가? 북한의 핵은 남한 국민을 겨냥하는 무기인가? /일을 겨냥하는 무기인가? 북한 김정은 정권이 남한 국민에게 핵무기를 사용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정권인가? 왜 우리는 미/일의 필요를 우리의 필요처럼 사고하게 되는가?


북미정상회담은 비핵화협상인가 평화협상인가?


핵청산의 실제적 조건: 협박, 제재가 아닌 적대의 해소


적대의 청산 없이 핵의 제거가 가능한가? 핵 없이 국제정치에서 방어가 가능한가? 한국은 한미동맹과 주둔군비용부담을 통해 핵을 렌트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보유하고 있는 핵과 렌트하고 있는 핵의 차이일 뿐이지 않은가?


핵의 제거가 적대의 청산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적대를 청산할 것인가?  작게 보아, 북한이 미국가 적대를 청산할 수있는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가 핵을 렌트하는 방법 외에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조선은 반미를 통해 존속하는 국가이고 미국이 지휘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의 편입은 그 역사에 대한 자기부정이 된다


만약 북한이 미국에 편승한다면 중국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중국 핵이 북한 핵 대신 정치적 삶의 공포를 제공하지 않겠는가?


북한이 중국에 편승할 수 있는가? 중국은 북한을 편승시킬 만큼 대미 관계에서 강력한가? 중미의 시장이 통합되어 있는 중국이 현실에서 북한식 국가사회주의 개발국가의 욕망을 들어주는 것이 가능한가? 중국이 그런 편승전략을 취할 의지가 있는가?


승전과 핵논리


얄타회담(45.2)과 모스크바 삼상회의(45.12) 결정에 따른 한반도 분할점령 결정이 문제의 시작이다. 승전의 논리인 그 점령에서 그 승리의 핵심 요소가 이었다


 결정내용: ‘·소공동위원회 설치·소공동위원회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가 협의하여 임시정부 수립 권고안 제출→4대국 심의임시정부 수립임시정부는 미·소공동위원회 밑에서 구체적인 신탁통치 협정의 작성에 참가→4대국의 신탁통치 협정 공동심의


이것은 승전(전적으로 힘의 논리에 입각한 폭력사용에서의 승리) 국가들이 그 외의 국가들에 폭력논리를 연장하는 방식이었다. 전쟁이 법, 협정, 조약의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지주 및 자본가를 한편으로 하고 인민을 다른 편으로 하는 계급대립과 겹치면서 미국이 지지하는 자본국가인 대한민국과 소련이 지지하는 인민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동일한 영토를 선언하면서 정립되었다


남부에 빨치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치러진 한국전쟁(1차 남조선혁명)은 남침의 형태 속에서 이루어진 내전(인민해방전쟁)의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이승만의 북벌 내전(자본독재전쟁)에 대응해온 대항폭력의 선제공격적 행사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소련의 인민전선론에 제약되고 있는 한에서 그 인민적 내전은 부르주아적인 것이지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은 아니다.


53년 정전과 남한에서 빨치산 투쟁의 종말, 이에 따른 박헌영 등 국내파의 숙청은 북한 정권을 관료 주도의 국가자본주의적인 것으로 성격짓는다. 전후 재건과 부흥의 노력은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남북관계를 규정한 장기냉전체제는 자본 대 자본(사적 자본 대 국가자본)이 대결하는 체제이지 계급 대 계급의 대결이 아니다.


1961년 이후 1971년까지 주로 북파 유격부대에 의해 수행된 북한의 2차 남조선혁명 전략은 남한 민중의 연대 거부로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의 권력이 남한 민중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이 과정에서 구축된 유격대국가는 북한 인민에 대한 권력을 의례화하는 극장국가의 성격을 띠어갔다.


71-74년까지의 남북대화는 남북 두 개의 정권이 헌법상 영토규정을 수정하여 남과 북에 각기 독립적인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을 반영한다. 이것은 74년 이후 유신 말기에 시작되어 80년 광주민중항쟁의 진압으로 끝나는 남한의 자생적 민주화 운동과 혁명운동 와중에서 1980 2월 남북총리예비회담의 형태로 재생된다.


북한의 고려연방제안의 변화과정은 현실의 이러한 변화에 따른 것이다. 과도대책으로서의 연방제(1960 8 14일 김일성: 남북의 현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양정부의 독자적 활동 보장>고려연방공화국(1973.6.23)단일 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고려민주연방공화국(1980.10.6:남북 지역정부 내정 맡고 중앙정부는 외교와 국방을 맡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평화통일 선결조건: 민주화, 평화협정, 미국의 두 개 조선 책동 저지 및 내정 간섭 종식; 구성은 민족통일정부 아래 남북지역자치제)>느슨한 형태의 연방제(1991 신년사. 잠정적으로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 부여)>낮은단계의 연방제(2000.6 남북정상회담: 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 원칙 위에서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


연방제구상의 변화는 점점 현재의 남북 정권 각각에 더 높은 지위, 더 큰 권력을 부여하며 통일국가에 형식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으로의 변화이다.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의 변화경향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1. 헌법은 (북한의 헌법이 남한의 흡수통일을 정당화하듯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2. 1982년 전두환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民族和合民主統一方案) ‘남북한 대표들로 민족통일협의회의 구성>협의기구에서 통일민주공화국 통일헌법 초안 마련>남북한 전역에서 자유로운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헌법안을 확정 ·공포>확정된 통일헌법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국회와 정부를 구성’ 3.1989년 노태우의 한민족통일방안은민족공동체헌장 채택>남북연합(남북정상회의와 실행기구인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등의 과도기구를 설치)>통일헌법 제정으로 통일민주공화국 건설(남북평의회에서 마련한 통일헌법을 바탕으로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구성)’  4. 김영삼의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은 한민족통일방안을화해협력단계>남북연합단계>통일국가 완성단계로 단계화 5. 김대중의 자주, 평화, 민주에 입각한 통일방안은 4에서 화해협력단계를 빼고 연방단계를 중간에 설정한 것이다. 남북연합(1연합, 1민족, 2국가, 2체제)-연방(1민족, 1국가, 1체제, 2지역자치정부: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제도)-완전통일(1민족, 1국가, 1체제, 1중앙정부)’. 노태우 이후 남북연합은 공통적이며 통일 이전에 두 개의 국가 혹은 두 개의 체제의 공존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북한 핵개발의 기원과 역사


중미수교(1979), 소련의 해체와 소중우호조약 무효화(1991)로 외부균형능력을 잃은 북한은 핵무장을 통해 내부균형능력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지 못할 때 북한이 미국의 핵공격을 받아 붕괴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북한의 1 NPT 탈퇴 후인 1993년 영변 폭격 계획, 2002 NPR에서 북한을 미 핵무기 사용의 잠재적 목표대상으로 설정,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등)미국의 핵공격 타겟으로 테이블에 오른 적이 있다.


1958 1월에 미국은 약 600기의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했고 1976 6월부터는 일종의 핵전쟁 훈련이라 할 수 있는 한미 팀스피리트 연합훈련을 개시했다.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서 철수한 것은 1991 10월이다. 하지만 핵항공모함은 언제든지 한반도로 진입할 수 있다.


2017 11 29 북한이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하기까지 북한은 1)단계: 1956년부터 소련으로부터 핵기술을 습득하여 1963-5 영변핵원자로 IRT-2000 건설했고, 2)단계: 미중 수교 후인 1980  영변 원자력 연구소 원전 핵연료봉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를 착공한 1985 준공했다. 1987 영변 IRT-2000 연구로를 가동하여 1990 12월에는 영변에서 80회의 고폭탄 실험을 실시했다. 1993 5 노동미사일을 실험발사했고, 1998 8월에는 대포동 1 실험을 했다. 3)2003 NPT 탈퇴한 2005 2 핵무기 보유선언을 했으며 2006 10 91 실험, 2009 5 252 실험, 2012 12 12 인공위성 발사궤도진입 성공, 2013 2 123 실험, 2016 1 64 실험, 2016 9 95 실험, 2017 7 4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4, 2017 9 36 실험에서 전략핵무기(100kt 넘는 TNT 290kt) 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2017 6 2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작은 나라는 독립과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갖는 것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2017 9 6  미국이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을 요청했지만 중국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대해 2017 9 8일 미국 정부 관계자는 "베이징이 원유 공급 중단 등 북한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추구할 것이고, 미국은 이를 저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중국 측에 명백히 전달했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핵무기는 북한의 생존전략이다. 왜 북한은 생존전략으로서 핵무기를 선택하게 되었는가?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전통적 국가자본주의(즉 인민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관료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북한 핵개발에 대한 주변국의 대응


이에 대해 주변국가가 취한 대응은 무엇인가? 소련 중국 미국 한국 일본의 대응을 살펴보자. 그것은 크게 비핵화로 일관된 것이었다. 비핵화의 방법은 우호관계단절, 규약준수요청, 경제제재, 사찰, 선제공격 위협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은 1991년 한국과 수교호 북소우호조약을 폐기했다. 중국은 경제지원을 하면서 핵개발은 하지 않도록 요구했다. 미국은 조선의 핵활동에 대해 유엔을 동원한 경제제재, IAEA 사찰, 선제공격 위협으로 대응했다.


이 모든 시도는 불발로 돌아갔으며 마침내 조선은 2017년 말 핵무력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의제는 비핵화라는 주제의 주변을 맴돌고 있고 정상간의 협상을 비핵화협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의 핵은 국가 방어수단이고 생존 수단인 한에서 국가가 방어가 보장되고 생존이 확보되지 않는 한 조선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그것은 국제적 적대의 청산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회담의 근본성격은 동북아평화회담이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의 적대 전략을 멈추지 않으며 북한의 핵개발을 동북아 포위의 구실로 이용하면서 MD포위망을 구체화해 가고 있다.


이 국제전략 속에서 조선이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한 미국의 대북 압박 전략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조선 핵무장을 핑계로 중국에 대한 압박 포위망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조선이 국가방어와 생존을 위해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방어벽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방어와 생존을 위해 즉 세력균형을 위해 스스로 핵무장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평화협상 교착의 필연성과 아래로부터 교착 타개의


조선이 미국에 편승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조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아직 아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조선의 흡수통합, 정권교체를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과 조선의 협상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이 교착상황의 돌파는 국가 수준에서 주어질 수는 없고 국가 외부에서 주어질 것이다.


하나는 위로부터 즉 자본으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 자본은 조미간 협상의 타결을 원한다. 조선에 값싼 노동력과 원료, 그리고 잠재적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정확하게 자본의 이러한 욕망을 표현한다. 비핵화와 경제재재 해제를 맞교환하자고 주장하는 트럼프도 이러한 욕망의 실재를 알고 있다. 이 욕망의 압박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운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현재의 교착을 뚫고 나갈 수 있겠지만 동북아 다중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양분되어 있는 노동계급 속에 주로 조선 인민들로 구성된 제3의 하위직을 도입함으로서 노동계급의 분할을 가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하나의 교착 타개의 힘은 아래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 교착 상태가 잠재적 전쟁상태인 한에서, 동북아는 항상적인 핵전쟁의 가능성 자장 속에 놓여 있다. 중조일한을 포함하는 동북아 다중들의 평화를 위한 연대와 평화운동의 고조는 아마도 현재의 교착을 뚫고 나갈 가장 강력하고 가장 바람직한 길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의 안전과 생존을 항구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은 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동북아 다중들의 평화연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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