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의 물으면서 걷기

김학의, 버닝선, 장자연 사건을 통해 보는 대의민주주의 권력의 테크놀로지

정치
작성자
amelanojoe
작성일
2019-03-24 13:07
조회
798
김학의, 버닝선, 장자연 사건은 더 이상 한국 대의민주주의 권력장치의 예외가 아니라 정상임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대의민주주의 권력장치는 시장권력을 확대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된다. 동영상 미디어는 다중의 잠재적 시선을 대의한다. 권력자들은 서로의 범죄의 이미지(동영상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투는 이복 형제들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수중에 있는 권력장치들에 대한 사용권을 불하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다중들을 유혹하고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을 공범공동체의 하위주체, 즉 노예로 재배치한다. 고발, 수사, 기소, 재판, 판결 등을 통해 드러나는 ‘사법적 진실’과 ‘사법적 정의’는 내적으로 길항하는 권력망이 그 순간에 빚어내는 권력의 역사이고 권력의 이야기다. 권력의 범죄공동체는 성차별주의를 자신의 범행에 이용한다. 권력의 이 범죄공동체는 국민을 노예로, 개 돼지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서로 돌려 부름으로써 자신이 인간 폐품이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이자 이미 죽었으면서 어두운 곳에서 활개치는 좀비라는 사실을 인위적으로 망각/은폐한다. 신자유주의 하의 시장과 그 맞짝인 대의민주주의에서 자생하는 이 범죄적 권력공동체는 개개의 범죄 행위를 찾아내고 처벌하는 것으로 말소될 수 없다. 개개인에 대한 사법적 처벌은 이 암세포의 증식을 다소 늦출 수 있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이며 그 요법은 그 시스템이 그 범죄를 지속해 나가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영상 URL: https://youtu.be/zaA7Ro7x3YI


[이야기 노트]

- [ ] 김버장 사건은 더 이상 한국 대의민주주의 권력장치의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다중의 역능이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소수의 선출자들에게 위임되도록 하는 장치다. 이 위임의 결과 투표한 사람들은 무력해지고 그 정도 이상으로 소수의 선출자들은 강력해진다. 대의민주주의 각자의 역능의 체계적으로 소외시키는 장치다.
-김학의 사건은 선출되지 않은 자들(김학의와 그 주변 권력자, 기업가, 언론인들)조차 선출자 권력(박근혜)의 후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나누어 가지며 거리낌 없이 횡포를 부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로부터 다중들의 자기조직들에 의해 통제되고 섭정되지 않은 대의민주주의는 선출자들과 그 주변인물들에 의한 횡포를 체계적으로 재생산하는 ‘고장난 기계’와 다를 바가 없다.

- [ ] 신자유주의 하에서 대의민주주의 권력장치는 시장권력을 확대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된다.
-건설업자인 윤중천은 김학의와 조선일보(방씨 일가)에 대한 성접대를 통해 그들의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을 ‘한 번 크게’ 사용해 보려고 했다는 의도를 밝혔다.(‘병아리’를 ‘닭’으로 만들어 이용하겠다: 권력 네트워크의 구축: 권력의 알선 중개)
-이러한 의지는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시장권력에 항상 개입할 수 있고 그 질서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시장은 결코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다.
-정치는 시장의 상부구조가 아니라 그 하부구조로도 작동한다.
-정치는 시장을 왜곡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장의 직접적 구성요소이다.
-정책은 시장을 구조화하며 자원과 자산 및 자본의 재분배를 규정한다.
-인사는 정책의 결정요인이다.
-시장의 극복은 정치의 극복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은 정치의 다른 형태로의 지속이며 정치는 시장의 다른 형태로의 지속이다.
-선거에 의해 소수의 선출자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의민주주의 장치는 계약에 의해 소수의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는 시장 장치의 정치적 반복이며 역으로 후자는 전자의 경제적 반복이다.

- [ ] 동영상 미디어는 다중의 잠재적 시선을 대의한다.
-카메라, 캠코더, 핸드폰 등 촬영장치들이 갖는 힘은 그것이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편재화된 유통경로를 통해 다중의 잠재적 시선을 대의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이미지가 권력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중의 시선을 대의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소유자와 그 유통망 소유자는 이 이미지의 권력에 대한 통제력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언론사, 경찰, 검찰, 입법부, 행정부, 국가정보원 등의 권력기구들은 이미지들이 ‘정보’의 형태로 집중되(하)고 축적되(하)는 장소이다.
-곳곳에 배치된 CCTV는 권력의 자원들이며 이것을 누가 장악, 통제하는가가 권력 재구조화의 관건이 된다.

- [ ] 권력자들은 서로의 범죄의 이미지(동영상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투는 이복 형제들이다.
-윤중천은 김학의와 방씨 일가의 성범죄, 마약범죄 동영상을 확보함으로써 이 정치/사법권력과 언론권력을 통제하려고 했다.
-김태우는 윤총경이 두 번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즉 청와대 권력에 대한 광범위한 범죄 정보 통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윤총경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숙과 윤장오는 장자연으로 하여금 김승종에게 불리한 문건(동영상 정보)을 쓰게 함으로써 김승종의 고발력에 대한 역고발 무기를 갖추었다.
-동영상 범죄 정보를 서로 나누어가짐으로써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은 서로 약점이 잡혀 있으며 이 약점들의 거래를 통해 맺어진 범죄 공동체(뇌물이나 성 상납하기, 은폐하기, 감싸주기의 공동체, 공범 공동체, 유착공동체)로 성장한다.
-윤중천과 김학의는 함께 마약을 먹고 함께 성폭행을 한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대마불사)는 논리가 이 범죄공동체에도 적용된다(큰 범죄는 드러나지 않는다. 체제의 범죄는 공기처럼 호흡될 뿐이다)

- [ ] 권력자들은 자신의 수중에 있는 권력장치들에 대한 사용권을 불하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다중들을 유혹하고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을 공범공동체의 하위주체, 즉 노예로 배치한다.
-윤중천은 직업매춘여성을 원주별장에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어학원 원장, 연예기획사 대표, 주부, 대학생 등등)을 원주별장에 ‘초대’하는 방식으로 끌어들였다.(식사와 술을 대접하고 싶다. 고위권력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하고 싶다)
-시장에서 권력의 필요를 느끼고 있던 평범한 시민들은 원주별장에 초대될 수 있었지만 그것의 결과는 윤중천의 그물망에 갇히는 것이었다. 초대는 그물 던지기의 기술이었다.
-그 그물망은 시선, 즉 성관계 동영상 이미지를 유통할 수 있다는 협박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유중천은 별장에 비치된 동영상 장비와 그것으로 찍은 동영상 이미지를 권력자를 포획함과 동시에 노예를 포획하는 이중장치로 사용했다.

- [ ] 고발, 수사, 기소, 재판, 판결 등을 통해 드러나는 ‘사법적 진실’과 ‘사법적 정의’는 내적으로 길항하는 권력망이 그 순간에 빚어내는 권력의 역사이고 권력의 이야기다.
-1차 수사는 김학의 건을 연예인 도박사건으로 덮으면서(윤재필 검사) 진행된 뺄셈수사였다(조영곤 지검장): 무혐의
-강해훈 유상범 김수남 김진태 등을 통해 이루어진 2차 수사도 정권 맞춤형 수사, 즉 권력의 필요에 수사를 종속시키는 수사로 끝났다.

- [ ] 권력의 범죄공동체는 성차별주의를 자신의 범행에 이용한다.
-여성의 몸은 국정화폐를 대신하여 유통되는 뇌물의 현물형태(정유라의 ‘말’도 그 현물형태 뇌물의 하나였다)이며 부르는 것이 값인 특수상품(버닝썬 VVIP에게 팔리는 상품)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특수한 국민, 비국민, 비인간으로 내몰리고 결국 장자연처럼 살기보다 죽기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 [ ] 권력의 이 범죄공동체는 국민을 노예로, 개 돼지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서로 돌려 부름으로써 자신이 인간 폐품이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이자 이미 죽었으면서 어두운 곳에서 활개치는 강시라는 사실을 인위적으로 망각한다.
- [ ] 신자유주의 하의 시장과 그 맞짝인 대의민주주의에서 자생하는 이 범죄적 권력공동체는 개개의 범죄 행위를 찾아내고 처벌하는 것으로 말소될 수 없다. 개개인에 대한 사법적 처벌은 이 암세포의 증식을 다소 늦출 수 있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이며 그 요법은 그 시스템이 그 범죄를 지속해 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 [ ] 문제는 이 범죄공동체가 생장하고 번식하는 체제적 원인을 다중의 집단지성으로 찾아내고 공분(公憤)의 힘으로 뿌리뽑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 방향으로 나갈 자세를 갖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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