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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한 여섯가지 테제

경제학
작성자
amelanojoe
작성일
2018-02-21 10:21
조회
205
2010년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에서 최초로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어제 (27일) 2부의 사회로 참가했고 이후 진행과정을 지켜본 나는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입장들의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자산 심사나 노동요구도 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조건없는 소득"이라는 결론에 대한 동의가 큰 것에 비교하면 그것에 이르는 추론들은 너무나 다양했다. 입장들과 추론들의 다양성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본소득 논의를 지금과 같은 기술적 수준의 문제에서 좀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망을 갖는 개념/실천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의 사회적 토론에서 기본소득 문제에 접근할 기본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낀다.

첫째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며 또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다른 원리를 제안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원리는 자본주의의 착취/수탈 원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원리이다. 그것은 흔히 사회정의, 평등 등의 이념적 용어나 보편복지 등의 사회적 용어로 설명되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류로서 구축하는 주체성의 원리, 즉 인류성의 원리이다. 자본주의가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를 원리로 하는 한에서 그것은 인간을 류로서 정립할 수 없다. 인간들 내부에 분열을, 그것도 적대적 분열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소득의 논리는 그 분열과 간극을 넘는 소득의 유동성을 제도화함으로써, 그리고 기본적 소득 획득을 통한 삶의 안정성과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적대로 인한 인류성의 제한을 타파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본소득은 그 원리에서, 특이한 개개인들이 소득수준, 직업, 신분, 성별, 연령, 인종, 지역, 소속 등을 넘어 공통된 류로서 자신을 재구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각각의 개개인은 시민이나 공민(국민)임을 넘어 인류인의 차원을 획득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오늘날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의 문제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주어지는 요건이다.

둘째 기본소득이 인류 및 인류인의 구축으로 사고될 때 그것은 결코 지역적, 일국적 수준에서는 완성될 수 없고 전 지구적 수준에서만 실제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지역이나 국가를 기본소득의 예외지대로 남겨둔 상태에서 기본소득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은 그 재원이 설령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치공동체에서 지불된다 할지라도 (현대의 세계시장적 조건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을 향유하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로부터의 잉여이전일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적 수준에서의 분열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조장하는 것으로서의 '기본소득'은 오래 전 레닌이 노동귀족이라고 불렀던 층이 향유한 일정한 특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것은 기본소득 쟁취운동이 지역적 수준이나 국가적 수준에서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수준들에서 기본소득 쟁취운동이 시작되더라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기본소득이라는 시각을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개혁방안이지만 이것은 또한 인간혁명의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개혁방안이지만 그것이 자본주의와 이질적인 원리에 입각한 개혁방안임이 주목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착취원리와 기본소득운동의 인류구성원리는 대칭적 구도에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양자가 대칭적 대립관계에 있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내부에서 기본소득을 제안할 수 없을 것이다. 양자는 비대칭적이며 서로 다른 발전경로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양자는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착취 원리가 인류구성 원리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착취는 인류구성의 역사적 과정, 인간들의 공통되기에 대한 착취였고 이 점은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구성의 발전경로로서의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구매력 제공을 통한 성장논리(즉 착취논리)의 한 요소로 사고하고 또 이것이 일면에서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논리 속에서 기본소득이 고려되는 한, 기본소득에는 제한이 가해지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의 기본성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결코 일관될 수 없고 파동을 치며 성장에 불리한 국면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침식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기본소득 획득을 위한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위로부터의 정책으로 나타날 때조차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뿌리를 두지 않는 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기본소득이 주체성의 구축, 인류성의 건설을 향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주체성 구축과정으로부터 유리된 상태에서 위로부터 시혜적 온정주의적으로 주어지는 소득은 대중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십상이다. 그 소득에 (자산심사나 노동요구 등) 어떤 조건도 달려 있지 않을 때에도 한 가지 조건, 그 소득의 공여자가 권력이라는 조건만은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권력의 유지가 대중의 삶의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될 때 권력에 의한 대중통제는 용이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운동으로서, 즉 사람들 사이의 공통성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과정으로서 조직되어야 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운동은 다중들이 자본이라는 축적된 죽은 노동을 재전유하여 삶의 산 피로 재가공하는 코뮤니즘적 유동화의 운동이어야 한다.

다섯째 자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혹은 자본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향에서 기본소득이 보장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우리는 이 양자가 직접적 대칭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의 적대성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하루하루 자신의 몸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착취, 수탈, 강탈, 사기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몸 팔 사람들을 만들어 왔다. 몸을 팔아야 하는 강제는 생활수단의 부족에서부터 발생한다. 기본소득운동은 기본적인 생활수단을 어떤 조건도 없이 제공함으로써 원리적으로 몸을 팔아야만 하는 강요된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고 바로 이 조건에서 삶의 창조성에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필요를 선언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에 대한 전혀 다른 개념이 창안되어야 한다. 자본의 성장이 아니라 삶의 성장이 문제이다. 나는, 삶이 실질적으로 자유로와지면 노동유인이 감퇴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주: 빠레이스도 곽노완도 모든 경제적 소득이 기본소득으로 분배되면 노동유인이 감퇴되고 결국 미래의 경제적 몰락이 불가피해지고 기본소득은 축소되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다.[글로벌 시대의 지속가능한 유토피아와 기본소득], 160쪽] 그것은 자본주의적 강제노동이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본가적 세계상을 기본소득 개념에 투영시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삶을 강제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오히려 노동은 삶의 내적 욕구로 되어 무한히 다양한 노동들이 창발될 것이다. 자본에게 문제인 것은 이 다양한 노동들이 점점 자본의 축적 원천으로 기능할 수는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가치화로 이 새로운 생산과 성장의 흐름을 가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자본주의 내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하는 외교론적 노력과는 별개로 자본가들의 저항과 공세에 대항할 실질적 주체성과 힘을 조직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점점 공통되는 삶의 활동들을 조절할 전혀 다른 가치원리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다. 기본소득운동의 실제화는 자본주의적 가치성장을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면서도 공통적 부의 성장, 삶의 행복의 성장과 선분배를, 진정한 공통복지를 가능케 할 것이다.

여섯째 하지만 기본소득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몇 가지 집합적 요구의 하나로서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행장치로서의 기본소득이 인류성의 구축으로서 사고되는 한에서 그것은 전 지구적 시민권의 쟁취 없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불구적일 수밖에 없다. 또 오늘날 집단적 생산수단인 정보재에 대한 일반적 접근권이 쟁취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생산능력은 억제될 것이고 (기본소득 재원 부담이 늘어나는 것과는 별개로) 공통화는 그만큼 지체될 것이다. 또한 생태계에 대한 사유화의 축소와 공동영유권의 확장 역시 기본소득으로 인한 소비증가 우려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인류성의 구축을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인간해방을 인간으로부터의 해방과 결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운동은 삶의 자유와 행복의 제도화를 위한 (이와 연관된) 몇 가지 다른 집합적 요구들과 공동으로 제기될 때 그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2010.1.1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