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이 실패한 후 나타난 가해권력의 시도: 리스트의 문구나 이름을 없애기(2)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와 리스트의 이름들

하지만 “진상조사단에서 이렇게 진술했다”는 형식이 아닌 앵커와의 문답 형식으로 윤지오는 증언의 핵심 내용을 말한다.  당시 윤지오와 인터뷰한 앵커 손석희는 장자연이 피해사실을 문건으로 남겼는데 그것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그것을 세간에서 ‘장자연 리스트’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었다.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님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문건이 그 4장 외에 고유한 의미의 ‘장자연 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편지글 형식의 3장이 더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지오의 인터뷰는 앵커의 (그리고 시청자의) 그러한 앎을 자신의 인터뷰 증언을 통해 바로잡는 과정이다. 자신이 피해사실을 적은 문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앵커가 모르고 있는 것, 즉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 아래에 이름들이 나열된 ‘리스트’가 따로 있었음을 밝힘으로써다. 중요한 대목이므로 있는 그대로 인용해 보자.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저하고 인터뷰하시는 분께서 이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성추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장 씨와 같이 신인 배우로서 여러 가지 강요를 받고 피해를 보셨기 때문이기도 한데 실제로 장자연 씨의 경우에 피해 사실을 문건으로도 남겼습니다. 그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자연 언니가 떠난 지 며칠 안 돼서 자연 언니가 문건을 가지고 있던 매니저분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울 봉은사에서 유족분들과 함께 자연 언니가 남긴 문건을 소각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문서를 직접 처음보게 되었습니다.][앵커]피해 사실이 적혀 있다는 4장의 문건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우는 그 문건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보도됐던 문건과 같은 내용이었습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피해사실을 적은 내용인 건 맞는데 그와 별도로 리스트처럼 사람 이름만 적힌 종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앵커] 그런가요?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장자연 문건에는 사람 이름만 적힌 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존에 알려진 문건과 또 다른 문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저는 무엇이 세상에 알려지고 알려지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은 그 리스트 맨 위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 아래에 이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앵커] 그러니까 문서 위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 아래 이름들이 있었다. 혹시 저하고 말씀 나누신 분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있던가요?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이름이 적힌 부분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아직 어려움이 있습니다.][앵커]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중에서 장자연 씨와 함께 만났던 인물들도 검찰조사단에 이 얘기는 했습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이번에 검찰 과거사위와 조사를 받을 때 사진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제가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여기 근거해서 지목했고 그중에 검찰과 언론에 계신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윤지오는 피해사실을 기록한 문건 외에 고 장자연이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고 쓰고 그 아래 이름들을 나열한 리스트의 존재를 밝혔다. 그런데 이 점은 실제로는 “밝힌”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8년전인 2010년 6월 25에 윤지오는 거의 어구 하나 틀리지 않는 방식으로 똑 같은 내용을 수사기관에 진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토록 중요한 8년 전의 진술이 어떻게 국민대중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로 알려져 있는 손석희조차 이 사실을 모를 정도로, 그리고 그 진술을 새삼스럽고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그 진술이 깊이 감추어질 수 있었는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 왜 사회적 인지 프레임을 그렇게 왜곡시켰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책 출판보다 중요한 미래행보: 증언과 진실 말하기의 기술 

“아는 사람의 이름”을 묻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는 “이름이 적힌 부분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아직 어려움이 있습니다.”라고 하여 아직 언급의 방법과 기술을 결정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변호사 박훈이 추후에 어이없게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꾸며 국민들을 기망한’ 사기술로 단정해 버리는 이 “언급하기의 어려움”은 가해권력측의 “남자들”이 입을 맞춰 자신의 말을 거짓말로 모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미래 행보”를 어떻게 “영리하게” 밟아나갈 것인가라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 사실은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짧게 해달라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가 내놓은 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는 조금 있으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갈 것이고 조만간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책을 쓰는 이유는 자연 언니와 저를 위해서 진실을 밝혀야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뿐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일로 연예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저의 20대를 뒤돌아보고 9년의 세월 동안 저를 따라다니는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라는 주홍글씨를 제 스스로 털어버리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저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법정에 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6개월 동안 재판이 두 번밖에 열리지 않았고 다음 재판도 3개월 뒤에나 열리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내년 인사 때 재판부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데 만일 새로운 재판부에서 제 증언이 필요하다면 다시 한 번 증언석에 서겠습니다.”

여기에서 윤지오는 자신의 “미래행보”의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서 보여주고 있다. 1)장자연의 죽음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2)새로운 재판부가 증언을 요구하면 다시 증언대에 서겠다. 3)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난 9년을 따라다니며 연예인의 꿈을 접게 만들었던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라는 주홍글씨”를 “스스로” 털어버리고 싶다.

실제로 윤지오는 2019년 3월 7일 장자연 10주기에 맞춰 <13번째 증언>을 출판했으며 재판부의 추가 증언 요구는 없었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으로 인한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추가조사 요구에 응해 추가 증언했다. 이 시기에 2018년 말과 비교해서 중요한 변화가 발견된다. JTBC 전화인터뷰에서 말한 저 “언급하기의 어려움”에 대한 윤지오의 나름 대로의 타개 방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지금까지의 소극적 인터뷰 기피에서 적극적 인터뷰 응락으로의 전환, 2)가명/가면 인터뷰에서 실명/실면 인터뷰로의 전환, 그리고 3)장자연 리스트 공개에서 진상조사단에서는 실명을 밝히되 언론 인터뷰에서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대한민국 형법(“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위반하지 않는 선 속에서만 진술한다. 이러한 방법에 따라 그는 진상조사단에서의 실명증언과는 달리 언론에서는 리스트의 내용을 “언론사 관련 성이 같은 세 명”,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라는 식으로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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