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이 받았던 ‘성상납 강요’에 대한 용기 있는 증언들과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에서의 증언 무력화

“성상납 강요”는 ‘성폭행’을 의미한다(2)

윤지오는, 편지형식의 글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고 그 다음에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유장호는 그 편지형식의 글에 “김종승과 만날 때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씌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전자는 뚜렷하지만 후자는 모호하다. 전자는 편지형식의 글 끝에 씌어 있었다는 글귀 ‘가족들과 지인들께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호응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두 사람의 진술이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김종승이 (윤중천처럼) “성상납 강요”의 공모행위자였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장호가 자신의 진술의 그 모호함을 걷어버린 한 순간이 있었다. 과거사진상조사단과의 예비면담 때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의 은어(隱語)임을 밝혀왔다.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방식에 여성들이 항의하면서 “성상납이 아니라 성폭행이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에서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리스트에서 봤다고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윤지오 증언자 한 사람 뿐이었다. 리스트가 있었다고 증언한 유장호나 유가족(오빠)도 리스트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에 상응할 만큼 명료한 증언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과거사진상조사단과의 예비면담에서 유장호는 장자연과 자신이 문건을 작성할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장자연이 써서 자기가 지우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윤지오가 본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말보다도 더 선명한 말이다. 어찌된 일일까? 

자료에 의하면 4장의 문건은 2009년 2월 28일에 유장호와 함께 작성했고 3장의 편지글은 3월 1일 유장호가 장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장호가 지우라고 한 그 표현(“성폭행을 당했다”)이 다시 장자연의 손을 거쳐 똑 같은 의미의, 그러나 은어(隱語)화된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로 고쳐진 후 되돌아 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표현이 다르더라도 사실은 하나고 의미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윤지오의 증언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는 유장호의 증언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에 의해 확실하게 교차검증되는 증언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발표는 “성폭행”과 관련된 증언들에 대해 어떻게 다루었는가? 먼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한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요약(이것이 정확한 요약인지 아닌지는 진상조사단의 보고서가 비공개라서 확인할 수 없다!)이다.

❍ 조사단의 조사과정에서 장자연이 일시, 장소를 알 수 없는 술접대 자리에서 누군가가 몰래 약을 탄 맥주를 반 컵가량 마신 후 마치 마약에 취하거나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음 

– 장자연이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 자료는, 

①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는 윤○○의 조사단 진술 

②‘장자연이 처음에 작성한 문서에 심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내가 지우라고 했다’는 유○○의 조사단 면담 전 진술. 그러나 유○○는 그 후 조사단과의 면담에서는 이러한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장자연이 하소연하듯이 처음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기는 하였는데, 장자연에게 되묻지도 않았고, 장자연이‘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고 진술하였음 

③ 드라마 감독 정○○가 작성한 2011. 8. 1.자 사실확인서(김종승의 배우 이△△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김종승 측 증거로 제출된 것)에 배우 이△△이 전화로 “장자연이 쓴 A4 용지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기재된 부분 및 이△△으로부터“물에 약을 탔다고 들었다”는 정○○의 조사단 진술이 있음 

우선 여기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에 기재되어 있다고 윤지오가 진술한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를 몰각하고 있으며 그것의 의미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윤지오가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했다가 없었다고 했다고 진술번복한 것으로 조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몰각과 몰이해는 과거사조사위원회만이 아니라 변호사 박훈을 비롯하여 윤지오를 사기 프레임 속에 몰아넣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는 윤지오의 조사단 진술이 과거 10년 전 진술과 무관한 어떤 새로운 장면을 기억에서 지어내고 있는 것처럼 오해했다. 그런데 윤지오는 이 진술을 통해 2009년 3월 12일 자신이 봉은사에서 본 리스트에 기재된 문구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 즉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의 맥락을, 당시에는 주목하지 못했던 기억의 상기를 통해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성폭행을 당하기 전에 몰래 마약을 주입당했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라고. (그러므로 뒤에서 보게될 심의결과에서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까지 윤지오의 추정으로 돌려 이중 추정 진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윤지오의 진술이 장자연 리스트에 기재된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를 “성폭행을 당했습니다”로 되살려 내고 있는 것임을 몰각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은폐하는 것이다.)

윤지오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몇 가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애기야, 너는 발톱의 때만큼도 몰라”라는 장자연 ‘언니’의 반복된 말이다. 또 하나는 김종승이 택시비를 쥐어주며 자신을 술자리에서 먼저 보냈던 기억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위에 서술된 것, 즉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 대한 기억과 그에 대한 의문이다. ‘40여 차례 이상 술접대에 동행했으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그것은 무엇일까? 왜 김종승은 다른 손님들이 있는 상태에서 장자연 언니만을 남겨두고 자기를 먼저 가라고 했을까? 왜 장자연 언니는 술을 반 컵 정도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인사불성의 상태에 빠졌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들이 문건의 첫줄 “김종승 사장님은 저희 언니에게 문자로 니 동생이랑 그 약 같이 했다며 협박 문자를 보내고”에 객관적 문서 증거물로 나타난다. 또 캐나다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인사불성의 상태가 재인(re-cognition)된다. 그리고 그것이 리스트에 씌어 있었던 문구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와 연결된다. 이렇게 다양한 기억들과 체험들이 증언이라는 행동의 필요 속에서 서로 연결됨으로써 윤지오의 위와 같은 진술로 엮여나왔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혼잣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드라마 감독 정00가 작성한 2011년 사실확인서 및 2019년 조사단 진술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장호의 조사단 면담 전 진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유장호의 진술과 관련해 후에 유장호가 그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 언론의 주된 보도방식이었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술번복의 뉘앙스를 담아 인용하고 있는 위의 구절을 놓고 보더라도 유장호가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우선 유장호가 면담조사에서도 ‘그 비슷한 말을 했다’고 내용상 이전의 진술(“성폭행을 당했다고 썼다”)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유장호가 장자연에게 되묻지 않았다 하더라도, 3월 1일 전달한 편지글에서 장자연은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로 바꿔 ‘성폭행을 당했음’을 기재했다. 그리고 “장자연이 ‘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에서 부정되는 것은 동사이지 명사 ‘성폭행’은 아니다. 그런데 성폭행을 목적어로 유지하면서 ‘당했다’ 말고 어떤 동사를 쓸 수 있는 것일까? “했다”일 수 없는 한에서 ’겪었다’ ‘경험했다’ 외의 동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중 어떤 동사를 사용했건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미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즉 유장호는 면담 전 진술에서나 면담조사에서나 윤지오의 진술과 거의 동일한 진술을 했다. 번복은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어떤 방식으로 복수 증언들의 이 놀라운 일치를 외면해 버리는가?

 – 그러나 배우 이△△은 정○○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매니저 등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며, 유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하여 적힌 것이 없었다고 진술하였음 

❍ 유○○의 최초 진술 및 정○○, 윤○○의 진술을 종합하면, 장자연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음 

여기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입장을 무질서하게 뒤섞은 후 결론적으로는 피해자의 입장을 버리고 가해자의 입장으로 갈아탄다.

이△△이 누구인가?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장자연으로 하여금 문건을 쓰게 하고 그 문건을 장자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니 문건을 유통시키지 말고 돌려달라는 장지연의 간절한 요청을 뿌리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의 소송에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던 사람이다. 만약 경찰과 검찰이 피해자 입장에 충실했다면, 문건과 리스트를 장자연의 의사에 반해 유통시킨 2차 가해자로 기소했을 사람이다. 

그에 이어지는 “매니저 등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며”는 무의미한 말이다. 누구의 매니저인지도 알 수 없으려니와 “매니저 등”이란 표현은 의미도 없는 복수의 사람들을 가져와 피해자 입장의 진술을 뭉개고 쓸어버리는 빗자루로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가해자 입장의 말이나 표현으로 피해자의 진술과 증거를 덮고 삭제하려 한다. 

물론 유족은 가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유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하여 적힌 것이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가족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가해권력과 본의 아니게 공조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그런데 유족의 말은, 물질적으로는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구절에 의해, 설령 그것을 제외한다하더라도 피해사실을 적은 4장의 문건에 물질적으로 아로새겨져 남아있는 장자연의 문구들에 의해 부정된다. 아래에 그 문구가 있다.

김종승 대표의 접대강요 및 반복되는 욕설과 또 구타를 견뎌야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언니까지 폭언과 욕설과 협박을 당했습니다.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2008년 9월 경 조선일보 B[1]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B[2] 사장님이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후 B[2]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13번째 증언>, 126쪽. 강조와 숫자는 인용자 삽입, B가 ‘방’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원문 그대로 둔다.)

폭언, 욕설, 협박을 당하고 잠자리를 강요받은 것이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와 다른 의미일 가능성이 있을까? 게다가 장자연의 이 문구에는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없다고 말한) 2008년 9월경(범행일시), 룸싸롱(장소), 조선일보 B[1] 사장님과 B[2] 사장님의 아들(구체적 가해자), 방법(술접대 강요 및 잠자리 강요[성상납 강요]) 등이 모두 객관적으로 적시되어 있다. 그런데 검찰이 주축이 되었던 대한민국 법무부의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 명백한 증거를 외면하면서 “유○○의 최초 진술 및 정○○, 윤○○의 진술을 종합하면, 장자연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일시, 장소, 방법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음”이라고 시치미를 뗀다.

과거사조사위원회 종료후 페미시국 집회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피켓이 “검찰이 공범이다”였음이 과연 우연일까? 검찰은 자신들이 가해자들의 공범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강조는 인용자) 

여기까지가 “조사결과”에 대한 분석이다.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한 심의결과”부분은 한 술 더 떠 가해자들의 입장과 시선을 고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눈으로 만든다. ‘조사결과’에는 검찰(2명)외에 교수(2명), 변호사(2명) 등이 포함되었던 진상조사단의 리얼리즘(realism)적 관점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심의결과는 그렇지 않다. 리얼리즘의 흔적이 지워지고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실리주의(utilitarianism)적 조급함이 엿보인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누구나 그 의도를 간취할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이므로 간단히만 논평하고자 한다. 

❍ 윤○○의 진술은 이중적인 추정에 근거한 진술(술에 약을 탔을 것이라는 1차 추정, 자신이 떠난 후 성폭행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2차 추정)이라는 점에서 성폭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삼기 어려움. 또 배우 이△△과의 대화 내용에 관한 정○○ 감독의 진술은 원진술자인 이△△이 진술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술 또는 물에 약을 탔다는 내용만으로는 성폭행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판단할 수 없음. 유○○가 조사단 면담 전에 한 진술이 성폭행 의혹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나 유○○는 정식 면담에서는 해당 진술을 번복하였음

앞에서 잠깐 말했듯 유장호는 면담조사에서 면담 전 조사에서의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관점에서는 진술번복 조작이다.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알리는 정○○ 감독의 진술을 부인하는 것은 2차 가해자 이△△의 진술이다. 여기서 검찰은 피해자주의가 아니라 가해자주의를 선택한다. “술 또는 물에 약을 탔다는 내용”은  “니 동생이랑 그 약 같이 했다며 협박문자를 보내고”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폭언과 욕설 협박을 당했습니다”, “잠자리를 강요 받아야 했습니다”,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장자연의 피해사실 문건의 문구, 그리고 윤지오가 리스트에서 본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장자연의 편지글 문구와 결합되어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에서 비극적으로 종합되면서  “성폭행과의 직접적 관련성”을 절규하듯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결과는 이것들 사이의 뚜렷한 상관성을 외면하면서 종합적 사건을 미시적 사실들로 분해해 형해화(形骸化)한다. 그리하여 결국 가해자에게 이익이 될 “판단할 수 없음”이라는 회피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과거사위원회의 사실조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 구절을 살펴 보자.     

❍ 성폭행 의혹 부분은 장자연 사망 직후 이루어진 수사과정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사항이고 성폭행이 사실인 경우 그 혐의가 매우 중대하나, 윤○○, 정○○ 등의 진술만으로는 성폭행이 실제 있었는지, 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을 알 수 없음

과연 그런가? 2009년 3월 15일 윤지오는 피해사실 문건 외에 이름이 나열된 별도의 편지형식의 글이 있었고 거기에 ‘가족과 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있었다고 말했으며 2010년 6월 25일 그 별도의 편지형식의 글에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는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외의 다른 것을 의미할 수가 없다. 유장호가 편지형식의 글에 ‘김종승을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 것도 실제로는 이 내용을 에둘러 표현한 것임을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폭행 의혹 부분은 장자연 사망 직후 이루어진 수사과정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사항이고”라는 구절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윤지오가 분명하게 “제기”했으나 경찰, 검찰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엉뚱한 질문들로 회피하고 덮어버림으로써 그 실체를 감춘 “사항”인 것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또 이렇게 심의결과를 발표한다. 자신이 알아내야 할 내용을 더 알아내기는커녕 이미 알려져 있는 내용조차 감추는 구절이다. 

❍ 추가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가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단순 강간, 강제추행 혐의에 대하여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현시점에서 수사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의 혐의가 인정되어야 하나,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음

이 말이 과연 상황에 맞는 말인가? 문건에서 장자연은 구타가 반복되었다고 쓰면서 술집접대부 같은 일을 하고 잠자리를 강요당했다고 쓴다. 구타에 상해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 구타가 성폭행과 이어졌을 가능성은 김학의 사건의 A씨 경우를 보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접대 및 성상납 강요에는 장자연 문건만으로도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공모협동 관계가 의심된다(형법 297조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조특수강간). 김종승과 B[1] 사장 혹은 B[2] 사장의 아들의 공모말이다.

김종승과 두 B사장의 관계는 윤중천과 김학의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공모의 의심조차 들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넘어 세계시민들이 이미 읽어 알고 있는 이 장자연의 문건조차 읽지 않은 것인가? 또 마약의 경우 마약의 종류까지 밝혀져야 재수사에 대한 착수가 가능한 것인가? 차라리, 마약의 성분이라거나 제조처라거나 유통경로라거나 유효기간까지 확인되어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는 심의결과 발표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드러난 사실들을 분절시켜 ‘사실들의 가루’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종합적인 사건으로서의 성폭행을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만들 용도로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저 행간들 너머로 가해권력들의 흐뭇한 미소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 체셔 고양이(Cheshire cat)의 저 기이한 미소처럼 감돌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환각처럼 보게 된다. 

어쨌든 2019년 6월,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의 보존 권고

❍ 성폭행 피해 의혹에 관해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제기된 의혹상 범죄혐의가 중대하며,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성폭행 의혹과 관련하여 최대한 상정 가능한 공소시효 완성일인 2024. 6. 29.까지 이 사건기록 및 조사단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관련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함 (강조는 인용자)

아마도 이것이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마지막 남은 양심일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조건에 대한 변명으로서 다음처럼 고쳐 읽고 싶다: “제기된 범죄혐의는 성폭행, 특수강간, 강간치상이므로 중대하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미 드러나 있는 증거들을 있는 그대로 증거로서 직시하고 인정하기에는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 지금 드러난 증거들을 증거로서 직시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기관이 출현하거나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 공소시효 완성 전에 이 사건이 재수사될 수 있도록 사건기록 및 조사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렇게 해서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진상규명 문제는 다시 다중과 국민의 수중으로 되돌아 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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