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사칭술에 대해

나의 글”슛맨, 가해권력, 그리고포스트모던사칭술”에 ID 김상범 님이  “사칭술이면 그냥 사칭술이지, 왜 ‘포스트모던’이 붙는지 모르겠네요.”라는 댓글을 달아 주었다. 내가 위 글에서 그 용어의 의미를 문면 속에 묻어두었지 별도로 꺼집어 내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그 점을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사전적 의미에서 ‘사칭’은 “이름, 직업, 나이, 주소 따위를 거짓으로 속여 이르다.”를 뜻한다. ‘사칭범’이라는 항목에는 “이름, 직업, 나이, 주소 따위를 거짓으로 속여 남에게 경제적인 손해를 입힘으로써 성립하는 죄. 또는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정의가 붙어 있다. 그러므로 사칭이란 고의로 실제 지시 대상과 유리된 기표(singifiant)를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의상 사칭의 주체는 사칭하는 사람 자신이다. 사칭하는 그 자신이 지속적으로 ‘나는 의사다, 나는 교수다, 나는 IT 전문가다, 나는 부동산투자자문위원이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식으로 말하고 다니고 그것이 소문으로 떠돌면서 그 사람에 대한 그러한 평판이 주변에 조성되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닐 때 보통 우리는 그가 XX를 사칭했다고 표현한다. 이것을 근대적 유형의 사칭이라 부르자.

그런데 그 사칭을 누가 대신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근대적 유형의 사칭 속에서 ‘소문’이 그 대신해주기를 함의한다. 지시대상과 유리되도록 만들어진 기표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지시대상과 상당히 강력하게 유착된 가짜 기의(signifié)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평판은 이런 식으로 소문을 통해 이루어져 왔고 사칭임이 드러나는 순간은 그러한 평판에 금이가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데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은 좁은 공동체 내에서만 통용되는 가짜 기의, 즉 사칭을 가능하게 한다. 그 공동체를 벗어나면 그 사칭은 의미를 잃게 되고 사칭자는 원점에서 다시 사칭을 시작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게다가 공동체 속에서는 사칭 자체가 쉽지 않다. 해당 공동체의 성원들이 사칭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실제를 상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상의 가까움이 갖는 감시기능 때문에 기표를 실제대상에서 유리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곤란한 것이다. 이처럼 근대에 사칭은 공동체 내에서의 장애와 공동체 밖에서의 장애라는 이중의 장애에 부딪히기 때문에 예외적 행위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스화, 미디어화, 디지털 테크놀로지 및 인터넷의 확산 등 탈근대적 현상들의 대두는 사정을 다르게 만든다. 공동체가 와해되거나 느슨해져 각자가 개체화된 점들로 바뀌고 그 점들을 미디어와 디지털 네트워크가 연결하게 된다. 이것은 사칭의 두 장애가 모두 철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 공동체의 자생적 감시기능이 사라지고 아날로그의 공간적 한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타나는 것이 대의로서의 사칭, 혹은 사칭 대의이다. 서0혁 사건은 이러한 사칭 대의가 직업적으로, 하나의 영업으로서 영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디어가, 사칭자를 대신해서 사칭해주는 일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드와이드웹(WWW)은 구매된 그 사칭상품을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키는 사칭 네트워킹 장치로 기능한다. 우리는 실제대상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가짜 기의를 품고 흘러다니는 기표만을 만나고 그것과 관계 맺는다. 하나의 기표가 가짜 기의, 즉 사칭의 담지자였음이 드러난 후에도 사칭자는 새로운 기표를 미디어에서 구매하여 그것을 WWW에 유통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칭을 해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는 동대문 의류도매상과 대리운전기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하는 서0혁이 그때그때 의사, 교수, 투자자문위원, IT전문가라는 사칭(가짜 기의)을 연쇄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지금은 다시 멀리 캐나다까지 가서 ‘정의로운 고발자’ ‘공익제보자’를 사칭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다. 그것은 서0혁의 그 사칭을 기사나 방송으로 판매하여 유통시키는 인터넷신문, 유튜브방송 등의 미디어와 인터넷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1인시위 쇼를 벌이는 서0혁을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하면서 윤지오가 아니라 서0혁이야말로 ‘공익제보자’라고 속삭이며 공공연하게 사칭해 주는 포스트모던 미디어가 없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칭 놀이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장 보드리야르) 것으로 느끼면서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서0혁의 사칭을 포스트모던 사칭이라 불렀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스스로를 ‘공익제보자’로 사칭하는 방식은 좀 새롭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공익제보자로 사칭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부여했던 사칭의 방식을 타자(윤지오)에게 강제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사람의 이름들, 직업들, 죄목들이 사칭으로 될 수 있다는 탈실재적 가정에 근거한다. 사칭자가 미디어를 이용해서(즉 구매해서) 누군가에게 갖다 붙이는 이름이 그 사람의 이름이 되고 직업이 되고 범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칭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고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 된다. 서0혁은 윤지오에게 “사기”, “음란” 등의 죄목을 갖다 붙임으로써 윤지오라는 실제 대상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칭’들을 유통시키고 가상실재화(virtualize)하는 미디어쇼를 벌인다. 캐나다의 가택 앞으로 찾아가 윤지오에게 이같은 사칭을 부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그것을 인터넷 유튜브 방송(미디어)으로 송출하도록 만들어 가상실재화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용했던 사칭의 방법을 타자에게 외부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부과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칭의 일반화와 일상화의 질서를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얼핏보면 이러한 방식은 자신의 전문특기인 사칭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 자신의 사칭이 결코 범죄가 아니라 삶의 일반적 논리, 윤리, 관행, 문화, 아니 심지어 법칙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이름들을 ‘사칭’으로 만들어 평등한 사칭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평등해 보이는 사칭의 세계에 크나큰 불평등과 적대성이 도사리고 있다. 사칭의 일반화를 추구하는 이 방법이 자신과 같은 사칭 전문가 유형의 인간이 확실하게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자신의 사칭은 언론세탁으로 끊임없이 합법화하면서 타자에게 자신이 고의적으로 부여한 사칭은 범죄화하여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유죄인 자신을 무죄사칭하고 무죄인 사람을 유죄사칭하는 이 괴이한 행동의 반복을 통해 세상을 거꾸로 물구나무 세우고 그 거꾸로 된 세상에서 지배권력을 움켜잡고자 하는 기술이 바로 포스트모던 유형의 사칭술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