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증언과 ‘위협 경험’에 대한 증언을 기망행위로 몰기

최나리 변호사의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에 대한 비판(2)

이제 윤지오의 행위를 ‘기망행위’로 보는 (최나리의) 첫 번째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것은 “후원금을 받을 목적으로 천명한 이유가 신빙성이 없거나 극히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최나리가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미 우리는 뉴시스, 박훈, 김수민, 김대오로부터 SBS, 조선일보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조0천 강제추행 사건 1심 판사 오덕식에 이르기까지 마치 입을 맞춘듯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윤지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고 장자연에 대한 가해권력자들의 필요와 정확히 부응하는 주장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거나 확인시켜 주는 10년전의 진술자료나 과거사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보고, 그리고 조희천 강제추행을 기소한 검찰의 기소사유 등을 거스르며 자신의 희망과 욕망을 객관적 사태 속에 투사하는 주관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빙성이 없다’는 여론과 판단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객관적 사태 위에  ‘나는 믿고 싶지 않다’, ‘신빙성이 없어야 한다’, ’신빙성이 없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당위, 의지의 덮개를 덮어 씌우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김대오는 ‘자신이 문건을 본 적은 결코 없지만 그 문건 속에 결단코 리스트는 없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쳤다. 김수민은 ‘그 리스트라는 것이 윤지오가 참고인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관의 책상에서 얼핏 훔쳐본 것일 뿐’이라는 말을 지어내었다. 변호사 겸엄을 하고 있는 시인 박훈은 이번에는 이 두 거짓말을 조합하여 근거로 삼으면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거짓말로 펀딩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소설을 써냈다. 

최나리는 이 해괴하거나 날조된 주장들을 자신의 논고의 숨겨진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2009년과 2010년의 진술조서, 수사발표, 언론보도 등을 송두리째 태워 없애고 최소한 그 2년의 시간을 역사에서 파내 버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윤지오가 10년 전의 진술들 속에 리스트가 있었음을 화석처럼 분명하게 새겨놓았고 그것은 유장호와 장자연 오빠 장00의 진술에 의해서도 교차검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당시의 수사발표나 언론보도 속에도 역시 화석들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 ‘김대오의 거짓말’ ‘김대오의 입은 거짓말제조공장인가 자동거짓말기계인가?’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 ‘김수민: 살아 있는 모순’ 등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윤지오 진술이 갖는 부인할 수 없는 신빙성에 대해 이미 충분히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이것을 입증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나리가 자신의 고소장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어떤 논증도 하지 않으며 고소장 밖에서 이루어진 허구적 주장과 조작된 여론들(주로 김수민이 지어낸 말)을 마치 이미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인용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진술이 신빙성 없음’을 ‘기망’의 이유로 삼은 것은 최나리이므로 진술 신빙성이 없음을 입증할 책임도 그에게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직 그는 이에 대해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두번째로 살펴야 할 것은 최나리가 ‘극히 과장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고소장을 보면 이것은 신변위협에 관한 윤지오의 증언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변위협 과장에 대한 최나리의 논증 역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논증만큼이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체 ‘기망’의 다른 이유로 삼은 ‘신변위협 과장’이라는 주장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들고 있는 하나의 근거는 2019년 3월 30일의 윤지오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청원이다. 거기서 윤지오는 경찰측에서 지급해준 위치추적장치 겸 비상호출 스마트 워치가 작동되지 않아 신고를 한 후 9시간이 더 경과했음에도 아무런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음을 들면서 자신이 호출버튼을 누른 이유에 대해 쓴다. 벽쪽에서 기계음이 들리다가 이제 화장실 천정에서 동일한 소리가 들린다, 환풍구의 끈이 날카롭게 끊어져 있다, 출입문 잠금장치가 고장나 수리를 했는데 문쪽을 확인해 보니 오일로 보이는 액체가 문틀 맨위에서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 문을 열때 이상한 가스냄새가 났다…이런 이유로 수면을 제대로 못 취하는 중에 소리가 반복되어 비상호출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윤지오의 청원은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주지 않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험적 증언이며 증인이 사비로 24시간 경호원을 고용하여 증언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현실은 부당하다는 고발이고 이 부당한 현실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개혁의 요청이다. 

다행히 윤지오의 청원이 일부 받아들여져 문재인 정부와 경찰청은 청원마감일이 오기 전에 윤지오에 대한 일정한 경호조치를 취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나 피해자 보호는 경찰의 중요한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미흡한 업무처리로 윤지오씨는 물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최종하다”고 사과했다. 

이후 4월 하순경 경찰이 신고사항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 발표라는 이름으로 기계음, 환풍구, 출입문, 가스냄새 등에 대해 어떤 상황설명을 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윤지오가 위협으로 느낀 일련의 흔적들과 현상들이 조사결과 실제적 위협의 흔적이나 현상은 아니었다는 설명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설명은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이 본격화된 시점에 이루어졌다. 우선 그 날의 설명은, 경찰조차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지오에게 설명해 준 바 없는 스마트워치 조작상의 특성을 윤지오의 조작미숙 때문에 잘못 작동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책임전가하는 파렴치한 발표였다. 게다가 몇 가지 개개의 흔적과 현상에 대한 경찰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심지어 언론은 가스냄새가 났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호텔에서 가스냄새가 날 수 있습니까?’라는 호텔 직원의 해명을 반박 자료로 인용했다. 백보 양보하여 그 상황적인 설명들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복우려”에 대한 반증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중요 범죄 신고자에게는 “보복 우려”(와 예방공격의 위험)가 따른다는 보편적 사실, 즉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는 그 보편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 윤지오가 느낀 기계음이나 환풍구 출입문 가스냄새 등이 설령 위협이 실행되고 있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증언자가 예사롭지 않은 어떤 흔적이나 현상들로부터 우려를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증인이 느끼는 위협감과 두려움은 경찰이 제시한 설명으로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잠재적 실재성(보드리야르)이기 때문이다.  

예방이나 보복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폭력 형태로 가해져 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과연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최나리가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러한 생각은 국가가 증언자나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됨을 지시함으로써 국민들을 엄청난 위험 앞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생각에 따라 국가가 실제로 국민들을 방기한다면 국민들은 가해권력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와 별도로, 아니 국가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경단이라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윤지오가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을 설립한 것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경단은 아닐지라도 비정부기구를 통해 공익제보자를 돕자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최나리가 드는 “위협 과장” 사례의 또 하나는 윤지오가 2019년 4월 11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자신의 신변위협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손석희 앵커와 가진 윤지오의 이날의 인터뷰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0천 강제추행건에 대한 증언, 한국에서 활동하다 캐나다로 떠나게 된 이유, 2018년 6월과 12월 JTBC와의 익명의 전화 인터뷰 이후 당했던 두 번의 교통사고와 가해권력들로부터 받은 위협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윤지오는 앵커로부터 증언에 대한 보복이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이 위협감을 느낀 세 가지의 사건을 언급한다. (1)“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유력 언론사”(조선일보)가 향초납품업체와 교회에 전화를 해서 윤지오 씨와 연락이 안 된다며 소재를 물은 것. (2) 이전의 매니저 권00가 JTBC와 인터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JTBC가 너를 이용하는 기분이 드니”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정작 자신은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여 “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고 싶어 한 친구”, “실제로 지오는 자연이와 친하지 않았다”는 식의 허위주장을 한 것. (3)JTBC와의 전화인터뷰 이후 교통사고가 좀 크게 두 차례가 있었고, 근육이 찢어져서 손상되면서 염증이 생긴 것.

최나리는 여기서 (3)번 항을 신변위협에 대한 과장이라고 규정하고 그 근거를 김수민으로부터 가져온다. “소외 김수민은 피고가 당한 신변 위협은 조작된 것인데 그 중 특히 2019.1 발생한 교통사고는 눈길에서 미끄러지며 뒷차가 충격을 가한 단순한 추돌사고였으며 가해자 차주는 평범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이미 피고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 JTBC 뉴스룸[에] 출연 당시에 파손이 심한 뒷차 즉 가해자의 차량을 자신의 차량인 것처럼 기망하여 조작을 가하였고…”가 최나리가 해당 사건에 대해 쓴 문장이다.  

“가해자의 차량을 자신의 차량인 것처럼 기망하여 조작을 가하였고”라는 문장은 논박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윤지오가 거대방송사 JTBC의 자료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최나리 변호사가 JTBC 측에 확인하여 사실과 상황을 확인하는 정도의 노력은 기울였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김수민의 비꼬인 해석이다. 카톡 대화 속에 그 교통사고가 ‘애기 아빠가 일 끝나고 애들 데리러 가다가 과실로 발생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는 윤지오의 말이 나온다. 김수민의 해석은 전적으로 이 카톡구절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것은 그런 카톡 이후에 윤지오의 마음 속에 일어난 변화이다. 그는 이미 여러차례 이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처음에는 평범하고 단순한 교통사고라 생각했으나 이후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로부터 사고를 위장한 가해공격일 수 있지 않느냐, 앞으로 더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점점 그 사고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나리는 윤지오의 이러한 말은 전혀 참고하지 않고 김수민보다 한술 더 떠서 JTBC에서의 인터뷰를 ‘과장’ ‘조작’ ‘기망’ 등의 언어로 도배해 버린다. 이 인터뷰를 할 당시 앵커 손석희는 윤지오의 말을 듣고 이미, “거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은 교통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 않겠는가?]”고 있을 수 있는 반론을 의식하며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윤지오는 자신이, 증언으로 인해 불특정다수의 권력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고 교통사고를 이 맥락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조건을 토로한다.

“그런데 JTBC에 제가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을 기록한 사건을 다룬 책을 쓴다라고 한 시점부터, 제 행방을 추적하시는 어떤 분들이 계셨고. 또 사실 어떠한 한 언론사만 주목을 하시는데 사실은 한 곳이 아니라 저는 개인 혼자지만 제가 상대해야 될 분들은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는 거의 한 30명에 가까운, 공권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법 위에 선 분이시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게서 저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분들에 대해서 또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리기 때문에.”

평범한 교통사고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불특정다수로부터 가해져오는 위장된 공격의 하나일 수 있다는 답변이다. 가해자는 법 위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고 그렇게 특정하기 어려운 다수로부터 보복이나 예방공격을 당할 수 있는 것이 증언자가 놓여진 위치임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설득력을 갖는 한에서 어떻게 교통사고로부터 위협을 느꼈다는 인터뷰 진술이 과장, 조작, 기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히려 4월 이후의 사태 전개는 특정하기 어려운 가해권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윤지오의 말이 참이었음을 뚜렷이 입증해 준다. 왜냐하면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이, 조선일보 SBS 뉴시스를 비롯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언론사와 통신사, 홍준표를 비롯한 정치가, 박준영 박훈 최나리 강연재 등의 변호사, 김대오 김용호와 같은 기자, 서민과 같은 교수, 김수민과 같은 작가 등의 지적 법률적 정치적 미디어적 화력을 총동원하면서 윤지오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어지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총력전 과정을 통해 윤지오가 대한민국 시민사회로부터 추방되고 배제된 현실을 고려하면, 윤지오가 자신에게 닥쳐온 위협을 과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소평가하고, 과소대비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 잘 설명해 주지 않겠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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